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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방지거씨 사라지다. 열다섯째날 (1990년 6월 30일)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5주년 기념일)

 

방지거씨를 목욕시키기 위하여 물을 데우면서 "여기에서 가만히 계세요. 목욕하고 꼬까옷 입고 철야 기도하게요." 했더니 활짝 웃으면서 "으응, 응" 하고 대답하였다.

목욕물을 큰 다라이에 하나 가득 데운 뒤 속옷부터 웃옷과 혁대까지 새것으로 준비하고 방지거씨를 찾으니 좀 전까지 잘 놀고 있던 방지거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경당 주변과 온 동네를 다 찾아보았지만 그는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울면서 파출소, 동사무소, 시청 사회 복지과, 병원 심지어는 경찰서까지 다 찾아 다녀 보았지만 도대체가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어제 방지거씨가 남이 버린 흙 묻은 낡은 혁대 하나를 주워 와서는 좋아하며 차겠다고 하여 "새로 사다 놓았으니 내일 새옷 입고 찹시다." 고 했었는데 이렇듯 찾을 길이 없으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동안 혼자서는 소변을 잘 보지 못해 고무줄 바지만 입히다가 이제는 어지간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게 되어 혁대를 채워 주고 싶었는데...

철야기도 준비도 해야 했지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계속해서 찾아 다녀 보았으나 아무도 방지거씨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걸음걸이도 시원치 않는 몸으로 도대체 땅으로 꺼졌단 말인가 아니면 하늘로 솟았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터미널에 들러 아는 사람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 보이거든 연락해 달라며 부탁해 놓은 뒤 경당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은 너무 무거워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마치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듯 쓸쓸하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철야 기도회 때면 많은 이들이 "이 좁은 곳에서 (그 당시 경당은 제대까지 40평 남짓 밖에 안되었음) 방지거씨를 어떻게 할거냐?"며 걱정하면 나는 그때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 곁에 눕혀 놓고 철야 기도를 하겠어요. 혹시 또 알아요? 주님께서 기적적으로 방지거씨를 벌떡 일어나게 하실지…" 하면서 걱정도 하지 않았었는데… '방지거씨는 도대체 어디에 계시나요. 어디로 가버리셨나요.'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주님! 혹시 당신이었나이까? 당신이셨나요?" 하고 부르짖자

그때 아주 다정한 주님의 음성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얘야, 나는 항상 네 안에서 생활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냉혹한 현실은 세상 수많은 영혼들을 탐욕의 노예로 전락시켜 영혼을 좀먹게 하는데 너는 나를 위해 스스로 낮아져서 네 자신에게는 인색하지만 이웃에게는 관용을 베푸니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오, 오! 내 주님이시여! 바로 당신이셨군요.

당신이 가신 길에 행여 짐이나 되지는 않았는지요.

제가 하는 것이라고는 실수 투성이오며 드릴 것이라고는 미약하고 부끄럼 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죄인일 뿐이나이다."

"사랑하는 내 귀여운 작은 아기야!

나는 미약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