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판공 성사를 보기는 봐야 되는데 무엇을 봐야
된다요?" (1984년 8월 9일)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내 나의 마음은 참으로 무겁기만 했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통회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야 될 시기인데도 많은 이들이 습관적으로 변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일례로 성령쇄신 운동에 한번씩 참여하고 있는 김 마리아 자매님은 남편과의 불화 끝에 결국 그의 남편은
아내와 함께 있을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 딸네 집과 아들네 집으로 전전하면서 떠돌아다니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어이, 나는 판공성사를 보기는 봐야 되겠는데 도무지
볼 것이 없어. 근데 무엇을 봐야 된당가? 볼 것이 없는데도 꼭 봐야 되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고해성사 보신지 얼마나 되셨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작년 크리스마스 때
판공성사 봤지"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있었던 나는 그 자매님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놀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아, 저 자매님은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몰라 저러는구나. 그러니 사랑으로 가르쳐
드려야겠다'하는
생각으로 그 자매님이 남편하고 싸웠던 이야기를 직접 할 수가 없어 먼저 다른 말로 돌려서
이야기했다.
"마리아 자매님! 하얀 옷을 세탁해서 입지 않고 그냥 걸어놓으면 먼지가 끼지 않나요?" "아이고 입지
않고 걸어놓기만 해도 먼지가 끼지."
"사용하지 않는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은 뒤 며칠 후에 들어가도 깨끗하나요?"
"아니야 청소해 놓고 며칠만 지나면 먼지가 많이 끼더라고-"
"그것보세요. 깨끗이 세탁하고 청소를 해도 그렇게 먼지가 끼는데 하물며 세속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영혼에는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서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큰 탓이옵니다' 하고 가슴을 치지만 정작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내 탓」이 아닌 「네 탓」으로 돌려버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고해 성사를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은 것 같지만 깨끗이 세탁해 놓은 옷에 먼지가 끼는 것처럼, 그리고 깨끗이 청소해
놓은 방에 먼지가 앉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한다 할지라도 고해성사를 게을리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에 때가 끼고 영혼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깨어 있지 않으면 이를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설사 내가 가만히 서 있는데 돌멩이가 굴러와서 내 발을 짓이긴다해도 그것을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제 발을 다쳤어요. 이 고통을 통해서 저와 저의 가족 또한 이웃까지도 회개하게 해 주세요' 한다면 은총이요, 공로가
되겠지만
'재수 없게 웬 돌멩이야?' 하고 원망한다면 쌓아놓은 공로까지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인데 하물며
자신의 잘못도 모른 채 남의 탓만 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니 고해성사 볼일이 없는지 곰곰이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큰 은총이에요"
했더니 그때서야 "우메우메, 나 그러면 고해성사 볼 것 많네이"
하더니 눈물까지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남편인 요셉씨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까지는「네 탓」이라고만 생각했지「내 탓」이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는데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참말로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네 그려"
라고 하기에 "그러면 부활이전에 요셉씨에게 찾아가서 화해하고 모시고 와서 나란히 고해성사 보시면
좋겠어요"
했더니 그제야 그 자매님은 깨달았다는 듯이 내 손목을 덥석 부여잡으면서 "워따 참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깨우쳐 주어서 고맙네. 오늘 당장이라도 딸네 집에 가서 우리 요셉씨에게 용서 청하고 집으로 모시고 와서 같이 고해성사도 보고
부활절을 기쁘게 맞이할라네. 정말 고마워"라고 하기에
"마리아 자매님, 저에게 고마워하실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절대로 아니고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저를 시켜서 하신 일이니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주님께만 감사 드리세요"
라고 말해 주었다.
바로 그때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스런 내 작은 아기야!
너는 모든 영광을 나에게 돌리는구나.
그것은 바로 나의 은총의 빛으로 인도되어
내가 네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겸손이야말로 성덕을 태동시키는 지름길임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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