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 금지당한 나주의
기적 - 월간조선 98년 6월호 특집 -
우종창 월간조선 기자
● 나는 확실히 보았고, 굳이 믿습니다. (지학순
주교)
● 필리핀 제리 오르보스 신부 : 『저는 1991년 5월 16일
나주 성당에서 미사 중, 율리 아의 입속에 들어간 성체가 가장자리부터 실핏줄이 생기면서 차츰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1994년 11월 24일 주한 교황청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주교가 이곳을 방문한 날, 성모상 위의 천장에서 갑자기 알파와 오메가 문장을 새긴 성체가 두 개로 떨어져
내렸다.
● 이탈리아 종교 주간지 : 『율리아는 입을 열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광경을 보여 주었다. 교황은 이를 관찰하였다.』
● 나주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일부 신부들은『광주교구청의 공지문은
그릇된 선언이며 나주를 미신시하는 신부들 위주로 조사위원을 선정한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외국 참례객만
1만여명
전남 나주에서「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키 50cm 가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데 이어 피눈물과 향유를 흘렸고, 십자가 위에서 느닷없이 성체(하얀 밀떡으로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몸과
살을 의미함)가 떨어졌다. 이 성체를 영하자( 먹는다는 뜻) 하얀 밀떡이 살아 움직이는 피와 살로 변했다. 이러한 현상이 85년 6월30일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994년 11월24, 주한 교황청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주교가 나주를 방문한 날, 성모상 위의 십자가에서
알파(α)와 오메가( Ω) 문양을 새긴 성체가 두 개로 쪼개져 떨어져 내렸다. 성 미카엘 대천사가 하늘에서 성체를 갖고 내려와 세 목동에게
영하여 준, 포르투갈 파티마의 기적(1917년에 발생)과 같은 현상이 나주에서 일어난 것이다. 죠반니 블라이티스 주교는 이 성체를 70여 명의
신자들에게 영하여 주었다.
블라이티스 주교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일을 로마 교황청에 보고했다.
로마 교황청은 이듬해 5월 교황 개인 비서인 몬시놀(주교와 신부 가운데 직책) 투투를 나주에 보내『나주 성모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교황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나주는, 비록 공인은 받지 않았지만 세계적 성지로 떠올랐다. 85년부터 96년까지 국내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50여만명이나 나주를 방문했고 일본,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사이판 등 동남아 일대는 물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멕시코, 스위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폴란드,
이집트,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이 성지 참례차 나주를 찾았다.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일들의 진실을 알기 위해 기자는 지난
4월24일 나주로 내려갔다. 성체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는 곳은 나주시 교동 107번지, 나주『성모의 집』이었다. 금성산을 뒤에 두고, 앞에
나주천을 낀『성모의 집』은 향교동 동사무소 바로 옆에 있었다. 입구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쓴, "천주교 순례단 여러분의 나주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대형 성모상이, 건물 1층 옥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상이 서 있으며 눈물과 피눈물, 그리고 향유를 흘렸다는 화제의 성모상은 경당(성당과 달리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곳) 안에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그날, 미국에서 온 신부와 수녀들이 이곳을 방문해 기도를 올렸고, 6명의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예배를 보고
있었다.
기적을 보여준 성모상은 키 50cm 가량의 플라스틱 성물로서,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밝은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 약간은 특이했다. 성모상은 열쇠가 채워진 유리장 속에
들어 있었고, 그 위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걸려 있었다. 기자는 성모상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눈물과 피눈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제단을 바라보며 한가운데, 기도회 장소 맨 앞에 우뚝하게 설치된 나무
상자가 눈길을 끌었다. 시멘트 바닥에 카펫을 깔고 그 위에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정면에는『이곳은 1997년 8월27일 낮 12시경
성체께서 내려오신 자리입니다』라는 글이 한글과 영문으로 쓰여 있었다.
『성모의 집』을 관리하고 있는 박연훈씨(세례명 루비노)는『성체가
떨어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성모님의 향기가 계속해서 새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나무 상자 위의 유리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코를 댔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아주 강렬하고 냄새가 짙었다. 호흡을 가 다듬고 다시 한 번 맡았다. 새콤한 향기 같았다. 성모의 향기는 흔히 장미향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장미향 같지는 않았다. 기도회장 곳곳에 꽂아놓은 짙은 흑장미 냄새와도 같지가 않았다.
상자 바깥의 카펫 위에 코를 대어보았다. 발 냄새 등이 섞인 시큼한
냄새가 났다. 나무 상자 속과 밖의 냄새는 분명 달랐다. 관리인 박씨는『수시로 카펫을 털고 말리는 청소를 하고 있지만 향기가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모의 집』과 관계있는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향수를 뿌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박씨는 『만일 그렇게 했다면 1년 반 동안이나 계속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꼬리가 잡히게 마련』이라며『그런 일이 있었다면
여기서 일어났던 각종 기적들은 벌써 부인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학순 주교의
증언
이곳은 원래 나주천변의 쓰레기장이었다. 이 일대 4백평을
매립해『성모의 집』을 지은 사람은 『성체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윤율리아(52.여.본명 윤홍선)다. 윤율리아는 개신교 신자였다. 6.25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둘이서 친척집에 얹혀 살며 고생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미용사 기술을 익혀 생활을 헤쳐나간 그녀는
20대 후반에 불치의 병, 암에 걸렸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남편의 권고로 성당을 찾았다. 성당에 나간 지
3일만에 "성경을 가까이 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병자를 낫게 하는 등의 기적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윤율리아는 미장원을 운영하는 주부에 불과했다.
83년 어느 날, 폐병에 걸린 박연훈씨가 소문을 듣고 윤율리아를
찾아왔다. 윤율리아는 박씨를 위해 기도했다. 병을 고친 박씨는 윤율리아가 돈을 받지 않자, 고마움의 표시로 성물 가게에서 산, 성모상을
선물했다. 윤율리아의 미장원(나주시 중앙동 정미용실)에 놓여 있던 이 성모상이 선물받은 지 2년 후인, 1985년 6월30일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주의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듬해 86년 10월19일부터 성모상은 눈물 대신에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윤율리아는 그해 11월5일 이 성모상을 나주 천주교회 사제관으로 옮겼고 그후 나주천변의
쓰레기장을 매입,『성모의 집』을 지어 화제의 성모상을 모셔왔다는 것이다. 『성모의 집』은 87년 12월8일 축성되었다.
성모상에서 눈물과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현상은 92년 1월4일을 기해
그쳤다. 그렇지만 문제의 성모상을 나주 천주교회에 모셔 놓은 86년부터 피눈물을 그친 92년 사이에 나주를 방문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의
수가 13만여명에 달했다고 "성모의 집 "은 밝혔다. 외국인 방문객도 1천5백명에 달했다고 한다.
가톨릭 원주교구청 지학순 주교가 이곳에서 성모상의 눈물을 목격한 것은
90년 1월20일. 일주일 전에 이곳을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있던 지 주교는 이날 오전 10시경, 성모상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
주교는 방명록에 자필로『나는 확실히 보았고, 굳이 믿습니다』라고 썼다.
원주교구청 소속으로 지 주교를 4년째 보필해 온 김 니꼴라오
수녀도『오전 10시경 주교님을 모시고 경당에 와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계셨습니다. 어느 누가 의심한다 해도 분명이 저는
보았습니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파하는『나주 성모님 메시지 보급회』에서 펴낸『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에는 눈물과
피 눈물을 보았다는 수많은 신부와 수녀, 신자들의 목격담이 실려 있다.
눈물, 피눈물에 이어
향유
광주 가톨릭대학생 이진태씨는『나 이진태는 본 대로 적는다』고 전제하고
『성모님의 왼쪽 아랫눈썹 사이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눈물은 왼쪽 뺨을 통해서 흘러내렸고, 또한 코 왼편에도 묻어 있었다. 오른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오른쪽 코 옆으로 해서 그 주위에 묻어 있었다』고 기록했다.
나주 천주교회 이천수 주임 신부는 『1989년 7월5일, 김대건
안드레아 대축일에 피눈물을 흘린다는 전화 보고를 받았다. 경당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40분. 잠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성모 제단 앞에
나아가 자세히 관찰해보니 오른쪽 눈에서 흘린 피가 가슴과 치맛자락, 발등에까지 굳어 있었고, 왼쪽 눈에서는 머금은 듯한 눈물이 조금씩 흘러
내리고 있었다. 10분쯤 기도하고 나서 나중에 증거로 삼기 위하여 기념 촬영하였다』고 기록했다.
눈물과 피눈물 현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던 91년 5월16일, 나주
천주교회에서『성체 기적』이란 것이 일어났다고 한다. 『 성체 기적』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 때 먹는, 밀로 만든 떡 모양의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톨릭 역사에 의하면 서기 700년경 이탈리아 란치아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으며, 그 기적의
성체는 아직까지 보관돼 있다는 것이다. 이 성체는 1970년대에 실시된 과학적 조사에서 사람의 심장 근육으로서 혈액형은 AB로
판명되었다.
나주의 첫 번째『성체 기적』은 필리핀에서 온, 제리 오르보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 일어났다. 제리 오르보스 신부는『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에 목격담을 적었다.
『저는 1991년 5월16일 나주 성당에서 미사 중, 윤율리아에게
성체를 영해 준 신부입니다. 그때 저는 필리핀에서 온 30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성체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율리아의 입속에 들어간 성체가
가장자리부터 실핏줄이 생기면서 차츰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첫 번째 기적 이후 작년 8월27일까지 모두 19차례의 기적
현상이 일어났다고『성모의 집』은 밝혔다. 이 가운데 다섯 번은 윤율리아가 해외 성지 순례 중에 일어났다고 한다. 1992년 6월2일 윤율리아가
로마 성지 순례 도중 유서깊은 란치아노 성당에서 미사를 볼 때, 또 94년 11월2일 하와이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세계적 성체 연구가 마르틴
루치아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 중에 성체가 피와 살로 변하며 윤율리아의 입 안에서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윤율리아를 통한 성체 기적이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나주 성모상은
92년 11월24일부터 장미꽃 향과 비슷한 짙은 향기를 풍기는 향유를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향유를 흘리는 현상도 94년 10월23일까지
2년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주한 교황청 대사의
보고
『성모의 집』과 윤율리아를 둘러싼 이같은 각종『기적』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주한 교황청 대사가 이를 교황청에 보고한 94년 11월 말부터다. 그때까지 매년 1천명 안팎이던 나주 방문 해외
순례단이 이를 계기로 급증하기 시작, 95년에 3천68명, 96년에는 4천3백14명을 기록했다.
나주『성모의 집』을 관장하는 광주 교구청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광주 교구청은 94년 12월30일, 『나주 본당 윤율리아와 그의 성모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과 메시지에 대한 조사위원회』(약칭
나주 조사 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 85년 6월30일부터 시작된 이적에 대한 진상조사가 10년 만에 처음 시작된
것이다.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한 이후에도 기적은 계속 일어났다. 95년
6월30일은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성모의 집"에는 외국인 순례자, 국내 순례자 등 1천여명이 밤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40분경 성 모상 위의 십자가에서 7개의 작은 성체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일곱 상처(머리,
가슴, 양손, 양발, 늑방) 에서 피가 흘러나오더니 그 피가 성체로 변해 성모상 발 아래 떨어져 내렸다는 게 목격자들의
말이다.
이를 보고받은 광주 교구청은 이 성체를 보존하는 대신,
모두『영하라』(먹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에서 온 프란시스 수 신부를 비롯해, 김율리오, 박루비노, 최노렌조, 박안드레아 등이
차례로 성체를 먹었다. 일곱 번째 성체는 윤율리아가 먹게 되었다. 윤율리아는 이 성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뜻에서 처음엔 영하기를 주저하는 몸짓을
보이다 순명하는 마음에서 성체를 입 속에 넣었다. 그순간 율리아가 영한 성체는 피와 살로 변했고, 이를 목격한 프란시스 수 신부는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여러 신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광경은 현재 사진으로 보관 중이다.
같은 해 9월22일, 캐나다의 로만 대닐락 주교와 신학박사이자 런던
성 베드로 성당 소속인 요셉 베드로 핀 신부가 나주를 방문,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했다. 이들이 미사를 올린 곳은, 성모의 계시를 받은 윤율리아가
맨손으로 흙을 걷어낼 때마다 물줄기가 솟아 올랐다는 곳이다.
이날 미사 때 윤율리아가 영한 성체가 심장 모양의 살아 움직이는 살과
피로 변했다고 한다. 율리아 혀 위에 놓인 하얀 밀떡이 가장자리부터 시작해 흰색이 사라지고 검붉고 움직이는 살로 변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대닐락
주교가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은 비디오 카메라에 잡혔다.
성체 기적을 목격한 로만 대닐락 주교는『세속주의와 합리주의가 교회
심장부와 신자들에게까지 파고든 이 어려운 시기에, 윤율리아 자매는 우리를 회개의 길로 불러주기 위해 천주님께서 당신의 섭리로써 쓰시는 진정하고
참된 도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열매와 행실을 보고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율리아의 생애와 활동들은 풍부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열매들은 '회개' '예수님과 성모님께로 돌아옴' '신앙생활의 심원화' '평화와 기쁨', 그리고 성모님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라는
글을 나주 성모의 집에 보내왔다.
『기적수』가 솟아나는 산에는 이 물을 모으는 대형 저수탱크와 순례온
신자들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끔 하는 목욕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나주『성모의 집』에는 기적수를 길어놓은 물탱크가 있는데, 이 물을 받아가는
주민들이 꽤 많았다. 윤율리아를 둘러싼 이상한 일들은 의학적으로도 규명이 어려웠다. 눈물 흘린 성모상 11주년 기념 미사 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십자가에서 강한 빛이 내리면서 윤율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고 한다. 신자들이 가까이 다 가가자 그녀의 양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손에 낀 흰장갑이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놀란 신자들은 율리아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런데 이 상처가 특이했다는
것이다. 치료를 했던 의사 양동희씨(나주 양동희 내과 원장)는 소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손바닥 중앙에 2.5cm X 2.3cm 정도의 혈액
응고가 있었다. 과산화수소와 알코올 등으로 혈액 응고를 제거한 후 손바닥을 관 찰하였던 바, 아주 가느다란 핀끝 혹은 바늘끝 크기의 상처가
보였다. 손상 부위는 58개 정도로 관찰되었는데 크기는 채 1mm도 안되었고, 깊이도 1mm 안팎으로 추정되었다. 이 손상 부위들이 오른쪽 것은
어렴풋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었고, 왼쪽 것은 타 원형 양상을 보였다. 인위적 손상일 때, 대개의 경우 주위에 염증성 변화가 보이나 이런 게
없는 것으로 보아 인위적 손상일 가능성이 적다. 혈액 응고 양으로 볼 때, 이 정도 크기의 상처에서 그만한 출혈량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아
인위적 출혈일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의사 이하상씨도 같은 소견을 보이면서『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결론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만남
작년 2월, 이탈리아에서 발행되는 가톨릭계 전문 주간지『일
세그노』지는 3회에 걸쳐『나주 사건』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첫 번째 특집 기사의 제목은『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사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한국의 나주에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이었다. 기사를 쓴 사람은 마리아 영성 신학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르네 로랑땡 신부.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1995년 10월, 율리아는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그녀는
10월31일 오전 7시30분, 교황청 3층의 교황 개인 소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초대되었다. 교황에게서 직접 성체를 분배받았는데, 이때 성체가
피를 흘리는 놀랍고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성체를 모시고(먹고) 나서 율리아는 자신의 입에서 살과 피의 맛을 느꼈다. 그녀는 미사에 함께
참여한 한국 주교단 사무총장 신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입을 열고, 그에게 일어난 현상을 보여주었다. 다른 신자들도 그때 함께
있었다.
교황의 비서관 중 한 명이 요한 바오로 2세가 깊은 묵상을 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율리아를 소성당 두편으로 데리고 나갔다. 미사 전례가 끝나고 나서, 늘 그랬듯이 교황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묵주를
하나씩 선사했다. 율리아에게는 그 중 두 개를 선물했다. 그리고 나서 그 변화한 성체를 보존하고 있던 율리아는 입을 열고 교황에게 살과 피로
변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교황은 이를 관찰하였고,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율리아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녀에게 멈춰 서
있지는 않고 계속해서 다른 순례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교황은 나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성모 마리아의 눈물 사진 앨범이 전달되었고, 그는 이를 매우 유심히 관찰했었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교황비서 중 한 명이 나주에 가서
교황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달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3월21일 한국의 주교들에게 나주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였는데 성체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나주 사건에 대해 어떤 암시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신학적
해석
이 기사에서 르네 로랑땡 신부는 나주에서 있었던 성체 기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율리아에 의해 완성된 영혼의 여정과 그녀의 회개, 그녀의 성모상에서
흘러내린 눈물과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의 표시로 영혼의 희생양이 된 그녀의 소명은 나에게 내면 깊숙한 감명을 안겨 주었다. 그럼에도 이
성체의 기적들은 나를 당황케 하고 혼란을 안겨준다. 이러한 현상들을 신학적으로 부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체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 물질적인 피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성체가 눈으로 식별 가능한 살덩어리로 변했다.
이는 정말로 깜짝 놀랄 현상이고 성체성사를 식인 행위로 여기는
합리주의자의 공격을 받기가 쉽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미신이라 여기고 함구할 것이다. 하지만 율리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위 성체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일들이 이루어졌다. 하 느님께서는 이 기적 표출을 통해서 학자들의 지혜를 조롱하시는 것 같고, 그분 자신이 직접 행하시는
은총의 총체인 당신의 사랑을 밖으로 드러내며,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표징으로 주시려는 것 같다.
가톨릭 신앙에 반대하여 성체성사를 단순한 상징 행위로 축소시키려고
애쓰는 신학자와 신도들이 난무한 이때에, 저 표징은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축복과 은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고 이끌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것은 내 몸의 상징이니라'하고
말씀하지 않았고, '내 몸은 이 빵 안에 있도다'라고 말씀한 적도 없다. 그분은 단지 '이는 내 몸이니라'고 했을 뿐이다. 예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리적으로 영하게 하고자 준비한 당신의 살에 대해 어떤 변화를 보여준 게 아니고, 빵이 외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실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 쪼개진 빵 안에 자신을
선사했고, 이는 이미 더 이상 빵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 따르면 몸인 것이다. 믿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과 신비의 한계를 정한다거나 기적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하고 신화적이고 부적절 한 설명들을 제거하는 것 모두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본질은 신의 초월성과 인간의 지적 한계를
뛰어넘는 그분의 사랑 의 표현행위 안에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 주교들을 향한 교황들의
메시지
『일 세그노』지는 두 번째 특집기사에서『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1995년 초, 나주의 눈물 흘리는 성모상에 관한 사진들이 교황에게
전해졌다. 교황은 마치 미사를 집전할 때 사제들 이 제단에서 하는 것처럼 양팔을 가볍게 접고서 40분 이상 그 사진들을 아주 주의깊게 보았다.
1996년 3월21일, 한국 주교들은 앗 리미나를 위해 바티칸을 방문했다. 교황은 그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자리서 교황은 나주
마리아에 대한 공감과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집기사는 윤율리아를 통해 성체 기적을 목격한 주교와 신부의
증언으로 구성되었다. 첫 증언자는 말레이시아 시라 와크 성 안토니오 성당의 프란시스 수 신부이고, 두 번째 증언자는 말레이시아 시부시 주교좌
성당의 도미니코 수 주교였다. 이 들이 목격한 성체 기적은 3천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996년 9월17일 말레이시아 시부시에서 열린
미사 때 발생했다.
프란시스 수 신부의 목격담. 『그때에 나는 율리아를 향했고,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그녀의 혀 위에 놓인 성체가 움직이며 심장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들은 몇 개의 사진에 찍혔다. 나는 이
현상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표징이자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거룩한 성체변화의 실제적 현존을 바탕에 둔, 우리
주교들의 강론에 대한 하나의 확신이다.』
도미니코 수 주교는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관구장 윌리암 보스
몬시뇰과 통 코노스 신부, 프란시스 수 신부, 야고보 옹 신부 , 폴 채 신부와 함께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성찬례 중 성체분배가 진행되는
동안 율리아는 앞으로 나아가 프란시스 수 신부에 게서 성체를 받았는데, 잠시 후에 축성된 성체는 율리아의 혀 위에서 심장 모양을 이루면서 살과
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그녀에게로 달려갔으나 나는 이를 말렸다. 성체 분배가 이루어지는 동안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몇분이 지나고 나서 율리아는 이 살덩어리를 삼켰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 당신의 실제적 현존이 있음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고자
이 기적을 완성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메시지
이 기사가 던진 반향은 컸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나주 방문을
촉진시켰다. 기사가 보도되고 한달 후인 작년 3월20일에는 한국을 방문한 온두라스 대통령의 영부인이 공식 일정에서 짬을 내, 외무장관 부인과
함께 나주『성모의 집』을 방문했다. 이어 4월11일에는 IPU(국제 의원연맹) 서울 총회 참석차 내한한 필리핀 국회의원 루돌프 알바노, 빅토리고
자베스 등이 주한 필리핀 대사관 관계자들과 함께 나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전 필리핀 검찰총장 프란체스코 사베즈와 필리핀 하원 금융기관위원장 빅
토리토 엘 사베즈씨도 나주를 방문했다.
전 필리핀 대통령 아키노 여사는 92년 5월 윤율리아를 필리핀 대통령
궁으로 초청, 나주 성모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필리핀의 하이메신 추기경은 나주를 방문한 적은 없으나 나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주『성모의 집』에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관련한 많은『증거물』이
전시돼 있다.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모상을 찍은 사진과 이를 비디오로 담은 테이프, 그리고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릴 때 그 피로 얼룩진,
헝겊으로 된 성모상 받침대와 성모상에서 향유가 흘러내릴 때 이를 채취했던 1회용 주사기, 윤율리아와 관련된 성체 기적 사진 등이다. 또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목격한 신부와 수녀, 신자들의 증언도 책으로 비치돼 있다.
작년 6월12일 제주교구장 김창렬 주교와 광주 교구 원로인 안당
신부가 나주『성모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두 사람 이 성모상 앞에서 성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서
천정에서 한 개의 성체가 내려왔다.
이 성체에는 사랑의 불꽃과 작은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성체는『나주 조사위원회』가 성합에 담아 광주 대교구로 갖고가 보관 중이다. 이어 8월27일에는 앞의 것과 같은 문양의 성체가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신자들이 앉은 카펫 바닥 위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 성체 역시 광주 대교구에서 가져갔다. 그 후 성체가 떨어지는 현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체가 떨어진 카펫 위에서 향기가 나는 현상은 작년 8월27일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눈물에 이어 피눈물, 향유, 성체 기적 등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윤율리아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전파다. 윤율리아는 85년 7월18일부터 성모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나주 성모의 메시지는 주 내용이 사랑이어서 『사랑의 메시지』로 불린다. 『성모의 집』을 사랑하는 신자들이 즐겨 암송하는 메시지는『최후의
만찬』과 관련한 것 이다.
윤율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최후의 만찬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사랑이며 나눔의 잔치이다. 높고 깊고 넓은 나의 사랑 전체를 내 아들 예수와 나의 사랑하는 교황과 추기경, 주교, 그외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자녀들에게 온전히 내어주고자 나를 모두 짜내어 향기와 기름을 주는 것이다. 내가 모두를 위해서 주는 향기와 기름은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것은 바로 나의 현존이며 사랑이자 우정이기도 하다』.
율리아가 받은 메시지들은 한글 영어 일어 불어 독어 월남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라틴어 아랍어 헝가리어 등으로 번역돼 전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각국의 신부들이 한글을 영어로 바꾼 책을 토대로 현지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성체 기적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도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광주교구청의
결정
그러나 광주교구청은 지난 1월1일 윤공회 대주교 이름의 공지문을
발표,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신앙적으로 참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어떤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다』며 일종의 '미신'이란 결론 을 내렸다.
광주교구청은『윤율리아가 입에 모신 성체가 입안에서 살덩어리와 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실체변화한 후에도 그 형상은 여전히 빵과 포도주여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윤율리아의 메시지는 사적 계시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기존의 다른 책들을 모방, 표절, 인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교구청은 그러나 성모상에서 눈물, 피눈물, 향유가 흐르고 성체가
내려왔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성모의 집』에서 갖고 간 두 개의 성체에 대해서도 공지문은 언급하지
않았다.
광주교구청은 결론적으로『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관련된 유인물,
간행물, 오디오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의 발행과 유포를 공식적으로 금하며, 그와 관련된 홍보물을 읽서나 보는 것 역시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며『신도들은 이같은 교도권에 순종하라』고 권고했다. 동시에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진원지인 나주『성모의 집』에서 기도회 모임을
갖는 것을 금지시켰다.
가톨릭이 정한『성 마리아 대축일』이자『세계 평화의 날』로서 용서와
화해를 베푸는 성스러운 날에 광주교구청은『성모의 집』 을 사실상 폐쇄시켰다. 공지문에 따라 나주『성모의 집』은 예배금지 조치를 당했다. 『성모의
집』에는『윤공회 대주교님의 공지에 순명하여 나주 성모님 집에서는 매주 목요일 기도회와 첫 토요일 또는 기타 공동체적 집회를 하지 않는다』는
게시문이 붙었다.
이렇게 되자 해외 순례객과 국내 순례객의 발길이 급감했다고 한다.
윤율리아는 대주교의 공지문에 따르기 위해 신자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교도권과 양심의
소리
광주교구청이 이런 결정을 내리자『성모의 집』을 사랑하는 신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광주 교구의 공지문이 교리서를 잘못 해석했으며, 조사방법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달 후. 성서 전문 월간지 『가톨릭
다이제스트』는 98년 2월호에 『나주 문제를 생각해본다』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집에 모셔진 성모상에서 눈물과 향유가 흘러 나온다면 우리는
그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우리가 영하는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고, 나직한 성모님의 말씀이 들려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을 비밀에 부치고 세상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외부에 알려야 할까? 우리는 나주 성모
메시지와 관련된 광 주교구청의 공지문을 접하면서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기사는 이어『신자는 의문이 있어도 교도권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부에 숨겨진 양심의 소리를 표출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나주 성모상과 관련하여 많은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은,
나주의 여러 현상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윤공회 대주교의 공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어 혼란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 다.
두달 후, 이 잡지는『참된 일치는 성실한 교도권 행사에서』라는
글에서, 나주 조사위원회가 사실 조사를 벌였으면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데 발표문엔 결과가 나와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광주교구청의 결정을 재차
비판했다.
비판문은 CBS(기독교 방송) 객원 해설위원이며 변호사인 윤학씨가
썼다.
이무렵 하이텔을 비롯한 PC 통신에서도『나주 사건』이란 제목 아래,
진실을 밝히기보다 침묵을 강요하는 광주 대교구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이 계속 올랐다.
기자는 광주교구청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4월25일 광주교구청을
찾아가『나주 조사위원회』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가 알고 싶었던 것은 기적의 실체여부가 아니라 조사방법이었다. 이 요청에 조사위원장
신부는『우리 입장은 공지문에 다 나와 있다』 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공지문 작성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신부들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제주 주임 신부의
증언
그러나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10여명의 신부 가운데 몇 명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에 응한 신부들은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초자연적 현상에 의한 기적이며, 이 기적을
믿는다』고 말하고 그 근거로『지학순 주교를 비롯한 고명한 주교들이 믿는다고 증언했고, 증언자들의 증언에 의심할 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나주의 일을 미신시하는 신부들 위주로 조사위원을 선정한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비판하고『공지문은 그릇된 선언』이라
주장했다. 이들은『이러한 성체 기적이 보고되면 외국에서는 수천 내지 수만명을 수십년에 걸쳐 조사한 후 결론을 내린다』며 『그러나 나주 문제는
조사 위원들이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에 조사에 성의도 없고, 결론도 성급하게 내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주한 교황청 대사가 교황청에 보고할 만큼 의미있는 곳인데도
윤공회 대주교는 한번도 성모의 집을 찾지 않았고, 신자인 윤율리아의 면담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사위원들도 윤율리아를 한번 만났으며,
증언자 14명에 대한 인터뷰도 한번밖에 실시하지 않았다』며『실체규명과 관련한 노력도 없이 어떻게 이런 공지문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광주교구청이 교도권이란 이름 아래 신자들로 하여금『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결정한 것은『신자들의 영적인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주교권의 남용』이라 지적했다.
나주를 방문해 성체가 떨어지는 현장에 있었던 김창렬 제주교구장은
인터뷰 요청에『임문철 신부와 상의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해왔다. 임신부는 제주교구 서귀포 복좌교회 주임 신부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나주 성모의 집에 간 적이 있습니까.
『몇 번 다녀왔습니다.』
- 거기서 일어난 일을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믿습니까.
『사진을 보고 처음엔 믿지 않았아요. 그런데 90년대 들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느 님께서 하시는 일이알 보고 싶기도 했어요. 직접 가서 보고난 후, 성모님의 현존을 느꼈습니다. 신자들과 같이
가기도 하고 윤율리아 자매를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 눈물, 피눈물, 향유, 성체 등과 관련된 것 중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은.
『향유가 흘러 내리는 것은 내 눈으로 확인했어요. 몇 년째 계속된
일이었으니까요. 며칠이 지나도 그 향기가 가시지 않았어요. 그외 것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 김창렬 주교님께서 나주에 갔을 때 성체가 떨어지는 기적이
있었다는데요.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는데, 조작이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누가 천정에
올라가 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천정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웨하스란 과자보다 더 얇은 성체가 주교님 앞에 곧바로 떨어져 내렸다는
게 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 김창렬 주교님은 그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안타깝습니다.』
과학자들의
몫
나주 문제에 애정을 갖고 있는 필리핀 하이메 신 추기경의 견해를 듣기
위해 기자는 한 선교 단체에 인터뷰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 신추기경은 자신의 총비서인 부주교를 통해『나주 문제에 대해 필리핀 주교단이 공적인
자리를 빌려서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전해왔다.
성체 기적을 목격한 주한 교황청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작년
5월 알바니아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마리아 전문 주간지『바다의 별』은
최근호에서 나주 문제를 다루었다. 기사는 이 잡지의 주간인 앙드레 가스텔라씨가 썼다.
『한국 나주에서 일어난 일들과 율리아 자매에 관하여 발표된 공지문에
대한 논평』이란 제목에서 『바다의 별』은 먼저,『기적을 목격한 교황님과 네 분의 주교들에게 문의가 없었다는 것은 조사방법의 결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지문 내용이『강경일변도로서 주교의 권위행사에 치우쳤으며 이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모성적인 자애로움을 찾아볼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다. 또 성체가 천정에서 떨어진 기적과 관련해서는『미카엘 대천사가 파티마의
세 목동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었다는 파티마의 기적이 나주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말로 간접 인정했다.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것에 관하여는, 『만일 윤공회 대주교의 해석을
일반화한다면 교회가 이미 인정한 모든 성체 기적들 (란치아노, 시에나, 파베르네 등)이 다 교회의 가르침과 모순이 되는 것이고, 그 기적의
진실성을 믿은 사람은 오류에 빠진 것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 주간지는『성모상에서 일어난 눈물, 피눈물, 향유 현상과 율리아
몸에서 일어난 고통 오상 등의 현상을 초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주교의 권한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나주 사건』의 사실여부는 기자가 논할 대상도 아니고, 논할 자격도
없다. 기자는 광주 대교구의 조사활동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졌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성모의
집』을 사실상 폐쇄시킨 광주 대교구의 조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믿는 마음에서 오든, 호기심에서 오든, 많은 사람이 가톨릭 교회 주변에 모이는
것은 가톨릭으로서 결코 우려할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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