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의 진실

공지문의 문제점들

가톨릭 신앙의 보물들

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인터넷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1)

인터넷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2)

인터넷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3)

인터넷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4)

인터넷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5)

한 초보신자의 서투른 견해입니다.

왜 그렇게 분노심만 있으신지요.

나주 성모님에 관해 혼란을 겪고 계신 형제자매님들께

인터넷 상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1)

 

안녕하십니까?  인간의 제한된 두뇌로 하느님의 일들을 다 이해하려고 드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교만한 일인가라고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되는 길이라고 하신 말씀도 정곡을 찌르는 좋은 말씀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특히 현대인들에게 좋은 경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써주신 글에 몇 말씀만 더 첨가하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다음과 같은 사항들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머리만으로서는 하느님께 대하여, 하느님의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께 대하여 알려주셨고, 드디어 인간으로 강생하신 천주 성자를 통하여 그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스스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하여 해야 될 일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의 내용은 성서와 성전을 통하여 성 교회 안에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특히 교회의 교리로서 요약되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교리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제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들을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교도권에 의거해서 확정적으로 설명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지성 또한 하느님께서 창조해주신 것이니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계시와 우리의 지성이 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와 우리의 건강한 지성은 서로 상충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교황 성하께서 발표하신 "신앙과 이성(理性)"이란 회칙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계시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도 "교회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옹호"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제39조).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직전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테오 28:20).  김 창렬 주교님께서 당신의 1999년 부활절 사목서한에서 인용하신 교황님의 말씀에도 "신앙이 습관이나 순수 감정적인 체험으로 전락하는 날 그것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셔서 신앙을 우리의 이성과 떠나서 단순화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계십니다.  또 이 점이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파들과의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그러한 사실과 불가분적으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50조).  즉 (1) 우리 삶과 마음의 전체로써 하느님을 흠숭하며 사랑하며 신뢰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신앙의 삶이며, 다시 말해서 어린 아이처럼 하느님을 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써 따르는 것이며, (2) 동시에 이와 불가분적으로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 진리들을 선별적으로가 아니라 송두리째 하느님께서 주신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가톨릭 신앙입니다.  즉, 우리의 의지와 이성 두 가지를 다 동원하여 하느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개신교들에서는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가르치는 객관적으로 절대적이고 확정적인 진리들을 제시하지 못하며, 신앙을 주로 하느님과 개개인 신자들 사이의 경험에서 찾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모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들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 확고히 뿌리박고 서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을 찾는 어린 아이에게 무슨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이 필요하겠느냐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어린 아이가 자라나면서 어머니는 많은 것을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가르쳐주게 됩니다.  부모님의 교육을 보완하기 위하여 학교에도 보내고 교리반에도 보냅니다.  좋은 책도 사줍니다.  잘 배우고 좋은 습관에 젖은 아이는 착하고 훌륭한 成人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여러 가지의 결함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순진함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삶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저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여 신앙을 개신교적으로 단순화하고 개인화하려는 경향이 널리 유포되었으며, 동시에 가톨릭 교리 교육이 과거에 비해 철저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 교회 안의 신앙의 침식을 가져온 주요 측면이요 또 주요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다시 신앙의 불길이 힘차게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리 교육을 재정비하고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은 교회로부터 더 철저한 교리 교육을 해주십사고 청하는 동시에 스스로 좋은 서적들, 예를 들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및 진리의 실천에 있어서의 모범이셨던 성인 성녀들의 전기 및 저서 등을 자주 읽고 묵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오류"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사용하셨으며 또 우리가 신앙의 유산에 충실해야 함을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오류를 내포한 사상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영양분이 아니라 영혼을 죽게 하고 병들게 하는 독(毒)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주님의 진리들로써 채우지 않으면, 자연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결함있는 개념들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철학자이고 신학자라고 봅니다.  심지어는 무신론자까지도 자기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상관하지도 않는다,"라고 선언하는 사람도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의 산란한 것들을 하느님의 가르치심들로 대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이 분도 드림
1999년 7월 24일

 


 


인터넷 상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을 읽고서 (2)

 

먼저 이러한 글들을 쓰는 목적은 개인들 사이의 토론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어떤 이를 비판하기 위한 것도 아님을 밝히고저 합니다.  단지 어떤 글들이 공적인 매개체를 통하여 발표될 때 그 내용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이로 인한 공적인 영향 때문에 이를 논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론을 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진리와 사실과 양심의 기준에 충실함으로써 다 함께 진리와 사실에 더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드레아 씨의 말씀들 중에서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이의가 없고 단지 다음 부분에 대하여 논하고저 합니다.

"사제와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전부 다 옳은 것만도 아니다.  왜?  물론 하느님의 지시로 내린 가르침이겠지만 과연 그 가르침을 내리는 과정에서 미천한 인간으로서의 오류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 . . 시간의 흐름에 따라 . . . 교리도 바뀌고. . . " "교회에 대한 신자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교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교회도 틀리게 가르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 "아니다,"로 단순하게 대답하기보다는 명확한 설명을 곁들인 대답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기 쉬운 질문이라고 봅니다.

첫 째, 하느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므로 어떠한 오류도 포함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진실하시므로 우리에게 진리 아닌 것을 말씀해주실 수 없으십니다.  이는 천주 교회의 믿을 교리이며 이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실 줄 압니다.

둘 째, 완전한 진리이신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진리를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셨고 이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셨으며, 이 계시된 진리의 유산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에 위탁하셨고, 또 이를 온 세상에 세상 끝날까지 오류없이 전할 수 있도록 교도권을 교회에 위임하셨으며 특히 교황님께서와 교황님과 일치하는 공의회에서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공적인 가르침을 베푸실 때에는 무류지권(無謬之權)으로 보호하여 주신다는 사실 또한 신자들이 신앙의 순명으로 믿어야 할 교리 즉 교회의 공적인 가르치심입니다.  즉 교회는 하느님의 진리를 그리스도께로부터 위임받아 오류없이 가르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정통 가르침, 즉 교리에 오류가 있을 수 있는가 묻는다면, "없다,"라는 것이 정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교리도 변한다,"라고 하는 현대주의적인 사상을 배격해야 합니다. 설명하는 이에 따라, 문화의 변천에 따라 표현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습니다. 전보다 더 명확한 단어들로써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의 단어들이 담고 있는 진리의 내용 자체는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온 진리라면 변할 수 있어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진리는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자라든가 그 누구라도 계시 진리에 대하여 이전과 다른 표현 방식을 쓴다든가 더 깊고 심오하게 설명을 하려고 할 때 그 설명의 방식에 담겨있는 진리의 가르침 자체가 변질되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신의 주장을 마치 계시 진리의 일부인 것처럼 제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주 교회는 강생하신 천주 성자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인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진리를 충만히 위임받아 있고 또 이를 무류지권의 보호 하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자로서 천주 교회 안에 이처럼 계시 진리의 객관적인 진실성이 보장되어있다는 사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90조 참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는 제대로의 가톨릭 신앙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셋 째, 주님께서 주시고 교회에 의해서 오류없이 가르쳐지고 있는 계시 진리들은 하느님의 빛이므로, 이 빛을 암흑의 세상에 비추기 위하여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 진리들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생활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에게 주신,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그 임무 수행의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들은 있지만, 모든 신자들은 주님의 사도직에로 불림받아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1조 및 제863조 참조).  

그런데, 신자들이 그 완전한 진리를 스스로 수용하고 생활하고 남에게 전하는 것은 아직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완전한 진리와 오류들이 함께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주님께서 경영하시는 밀밭에는 밀과 잡초가 함께 자라고 있다라는 비유로써 이를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진짜와 가짜가 함께 섞여있는 것이 현실이나, 최대한의 노력으로 진리를 더 순수하게 반영하고 오류들을 제거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계속해야 할 일입니다. 성인 성녀들은 이러한 작업에서 특히 뛰어나셨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특히 성직자들은 주님의 진리를 왜곡이나 희석됨이나 에누리함이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가르쳐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아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아직 자신과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의 구령 사업을 힘들게 추구해나가는 도중에 계시기 때문에 그 과업의 수행에 있어서 항상 완전하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어떤 신학자 사제께서 자신의 독특한 신학을 발전하여 그 사상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고집하여 나가신다면, 그는 진리의 사도가 아닌 오류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에게 항상 존경과 사랑과 순명으로 따름과 동시에 만약 어느 성직자께서 분명히 오류를 가르치실 때에는 먼저 조용히 그분께 질문과 충고를 드리고, 그래도 안되면 주교님께 청원드려서라도 이를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만약 어떤 성직자께서 교회의 가르침을 틀리게 설명하시며 또 사생활에 있어서도 문제점을 보여주신다고 할 때, "보라, 교회도 불완전하지 않으냐!"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성령께서 내재하시고 인도하시는 성 교회는 완전하며 거룩합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교회의 영혼은 성령이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 속해있는 지체들 즉 개개인의 구성원들은 아직 완전을 향하여 힘들게 성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부족한 인간들임을 명심해야 하며 이 두 가지 현실을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들의 불완전함을 보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경시하고 단죄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완성되는 날, 교회는 그 머리 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지체들에 있어서도 완전히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이들은 갈릴레오의 예를 들며, 교회도 틀릴 수 있지 않으냐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주님께서 교회에 무류지권을 허락하시는 것은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교황님과 교황님과 일치된 전체 주교단에서 공식적인 가르침을 펴실 때입니다. 과학적인 문제에까지 무류지권이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논리를 잠시 떠나서 생각해볼 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고 우주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지구 위에는 하느님께서 우주 전체와도 바꾸지 않으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이 지구 상에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여 생활하시고 수난하시고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당신의 지상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현존과 활동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단지 물리적인 크기만을 기준하여 지구가 보잘 것 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첨언하고저 하는 것은, 위에 언급되었듯이 비록 무류지권이 적용되는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류지권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오류가 반드시 있다라든가 무시해도 좋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2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내려오는 가톨릭 교회 안의 신앙의 유산은 참으로 방대합니다. 많은 교황님들의 회칙, 공의회들의 문서, 교부들의 저서,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전기들과 저서들, 그밖에 전통 신앙에 충실하신 수많은 신학자들의 논문 등 그 안에 내포되어 흐르는, 진리의 영이신 천주 성령의 가르치심은 우리에게 참된 지혜를 주며 회개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소음과 현란함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그 방대한 신앙의 유산에로 우리는 다시 우리의 눈길과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 신앙의 유산의 엄청난 가치와 규모를 깨달을 때 우리는 "교회도 틀릴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처럼 엄청난 진리의 보고를 교회에 위탁하셔서 우리가 이에 접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즉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그 신앙의 유산에 충실하게 하여 주소서,"라는 기도를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특히 지역 교회들에서 발생될 수 있는 신앙의 부분적인 脫線들에 대하여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제83조)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글을 맺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과 규율과 전례와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 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형태들을 이루게 되는데, 거대한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된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분도 드림
 

 

 


인터넷상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에 대하여 (3)

 

안드레아 씨가 드디어 나주의 일들에 대하여 직접적인 거론들을 하시는 것을 보고서 그 일들에 대한 보다 진지한 토론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게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신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 어디까지가 옳고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나주의 일들은 교회의 여러 주요 사항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이에 대하여 진리를 진리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 안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즉, 나주의 일들은 교회의 성체 성사, 성모님께 관한 교리들, 교황님과 사제직의 중요성, 교도권의 참된 의미, 고해 성사의 필요성, 낙태 문제의 긴급성, 가정 불화의 심각성, 회개와 보속의 필요성 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서 이에 대한 사고(思考)와 기도와 토론에 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안드레아 씨의 글들에 대해서 먼저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며칠 전의 글에서는 교도권에의 맹목적인 복종을 반대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는 평신도들은 무조건 교도권에 순종해야 된다라고 주장하시니 안드레아 씨의 생각이 확실히 어느 쪽인지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뿐 아니라, "만약 교회가 오류가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정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는 오직 하느님 밖엔 없으며. . ."라고 하시어 신자들이 진리에 대하여 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확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교도권이 교회에 위임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시는 듯한 인상을 주고 계십니다. 교회가 과연 하느님의 권위로써 진리와 윤리에 관한 확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시는지 아닌지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안드레아 씨의 이번 글의 요점은 평신도가 교회의 유권적인 해석에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즉, 공지문에 복종하고 양심 운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알겠는가,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된다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다음 사항들을 논하고저 합니다.

1.  다른 글들에서도 이미 언급되었듯이 "진리와 교도권의 수호를 위하여" 책자 안에 실린 글들이나, 기타의 출판물 등을 통하여 발표되고 있는 글들은 비록 지도 신부님의 검사를 받고 또 최고 사목자들께 제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글들은 어디까지나 신자들의 양심에서 나오는 소리들일 뿐입니다. 교도권을 가진 글들이 아닙니다. 그 글들을 읽는 분들이 자신의 양심 상으로 판단해서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심에 의한 것이고 권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도권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글들에 대해서 교도권이 없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2.  안드레아 씨는 신자들이 만약 교회의 발표에 대하여 비판을 하면 교회로부터 분리해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의 행동과 같다는 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난 번에는 교도권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면 사이비 종교들에서 교주들을 맹종하는 것도 옳으냐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예를 드셨는데, 이번에도 정반대 방향으로 극단의 비유를 드시는 것 같습니다. 토론을 할 때 과장은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고찰해봅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교회법 조항들은 영문에서 번역된 것임)

(i) 교회법 제748조 제1항: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교회에 관한 사항들에 관한 진리를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신성한 법에 의해서 그들은 그들이 깨닫고 인정하게 된 진리를 수용하고 지켜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ii)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2467조:  인간은 본성적으로 진리를 찾기 마련이다. 인간은 진리를 존중하고 증거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격을 가졌기에 자신의 존엄성에 의해서 본성적으로 진리, 특히 종교적 진리를 탐구하려는 충동을 받으며, 동시에 도덕적 의무도 갖는다. 또 일단 진리를 파악하면 그 진리에 충실해야 하며 진리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생활 전체를 이끌어가야 한다" (종교자유선언, 2항)

(iii) 교회법 제212조 제2항:  크리스챤 신자들은 그들의 필요들, 특히 영적인 필요들 및 그들의 원의들을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알려드릴 자유가 있다. 제3항:  그들이 가진 지식과 능력과 탁월함에 상응하여 교회의 선익에 관한 사항들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거룩한 사목자들에게 알려드릴 권리 및 때로는 의무까지 가지고 있으며, 또 그들의 의견을 다른 크리스챤 신자들에게도 알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신앙과 윤리의 순수성을 염두에 두고 또 사목자들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 하며 공익과 개인들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

(iv)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1조:  모든 신자는 계시된 진리의 이해와 전달에 참여한다. 그들은 그들을 가르치고 온전한 진리로 이끄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v)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00조:  모든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사도직의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을 사람들과 온 세상에 알리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일을 수행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vi)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04조:  "다른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하여 가르치는 것은 각 설교자 및 각 신자의 의무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III, 71, 4 ad 3)

이상의 교회의 가르침들을 고찰할 때 신자들이 진리에 충실해야 하며, 또 사목자들께 교회의 선익에 관한 사항들에 관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고 청원을 하는 것과 다른 신자들에게도 그들의 의견을 알리는 것이 합당하고도 바람직한 일임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악의로 한다든가, 교도권이나 성직 자체를 무시한다든가, 허위의 근거로 한다든가,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든가 한다면 당연히 크게 질책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신도는 진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양심도 덮어두고 입도 다물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주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진리를 배우고 믿고 실천하는 곳이며, 교도권은 신자들이 그 진리를 오류없이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도해주기 위한 권한입니다. 이에 관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i) 교리서 제86조:  그러나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여 성실히 진술하고, 또한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제시된 모든 것을 이 단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퍼올리는 것이다.

안드레아 씨께서는 "교회의 발표에도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지난 번에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교회가 틀릴 수 있다," 또는 "틀릴 수 없다,"라는 말을 할 때에는 꼭 곁들여야 할 설명이 있습니다. 즉, 교황님께서 그리고 교황님과 일치된 모든 주교님들이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를 선포하실 때 무류지권에 의해서 일체의 오류가 없기 때문에 교회의 정통 가르침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오류없는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지탱하고 있는 신성한 교도권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표선(漂船)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교구의 주교님께서는 교황님과 일치하고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충실하심으로써 그 무류지권에 참여하십니다. 참으로 주교님들께서는 맡아계시는 교구 안에서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시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이시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듯이 주교님을 깊은 존경과 사랑으로 따라야 합니다. 신부님들께서도 교황님께와 교황님과 일치하시는 주교님들께 충성하고 신앙의 유산에 충실하심으로써 오류를 피하고 진리 안에 머무시게 되며 진리를 가르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공지문에서는 특히 성체 도리에 관한 부분에서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미 다른 지면들에서 상세히 토론되었으며, 또 공지문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사 위원회의 위원이신 신부님의 글에서는 문제점이 더욱 뚜렷이 드러났으므로 이를 양심 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자들이 이를 토론하고 사목자들께 알려드리고 청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공지문은 교회의 공적인 문서이므로 이를 시정하는 것은 교도권을 가지신 교구나, 주교회의나, 교황청에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평신자들과 개별적인 신부님들께서는 단지 이에 대하여 양심의 소리를 알리고 청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체 성사에 관한 문제들은 대강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 아닙니다. 성체 도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 중요한 부분에서 전통적인 신앙을 희석 내지 왜곡시키는 것을 신자들이 보고서 이를 묵인한다면 그들 또한 신앙의 희석과 왜곡에 동의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위탁하신 신앙의 유산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교황청에서 나주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신다는 언급들이 있었던 데에 대해서도 비판하셨는데, 이러한 언급이 있게 되었던 이유는 이번의 공지문에 관하여 교황청과의 완전한 일치가 유지되고 있다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사실이 그렇지 않다라는 점을 언급해두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급은 추측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들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교황청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으셨으니,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이 아직 교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저희의 희망은 하루 속히 교구 차원에서 또는 주교 회의 차원에서 현재의 문제점들이 시정되는 것입니다. 현안 문제들에 대하여 전체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인 기준들에가 아니라 주님의 기준들에 충실히 부합함으로써 얻어지는 진정한 일치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안드레아 씨도 읽으셨듯이 나주의 일들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의견을 발표하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의견들의 발표와 증언들이 계속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글들을 읽을 때, "평신도는 진리를 알 수도 없고 논해서도 안된다,"라고 하는 전제 하에서 읽으시면, 그런 선입견 때문에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전제는 바로 주님께서 주신 계시 진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 진리들에 충실한다면 우리가 참다운 자유와 참다운 일치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끝으로 다음의 말씀들을 함께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9조:  우리의 영적인 삶과 교의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교의는 우리들 신앙의 길을 비추는 빛으로서 이 길을 밝혀주고 확실하게 해준다. 거꾸로 우리의 삶이 올바르다면 우리의 지성과 마음은 개방되어 신앙 교의의 빛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ii) 요한 복음 8장 31-32절: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물면 너희가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 될 것이요 너희가 진리를 알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이 분도 드림
1999년 8월 4일
 

 

 


인터넷상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의 글에 대한 답신 (4)

 

안드레아 씨의 새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번 글에 대한 답을 쓰려고 저의 지난 번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안에 이미 답들이 대략 들어있는 것 같으므로, 제가 썼던 글들을 다시 주의깊에 읽어주시면 많은 의문이 풀리시리라고 봅니다. 일례를 들어, 이번에 올리신 글에서 "여러 글 속에서 교회의 교도권에 대해 또는 교황과 사제권에 대해 절대적으로 추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신 것으로 사료되는데. . ."라고 하셨는데, 이 표현은 제가 썼던 글의 내용과는 같지 않으므로 재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교도권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위임하신 권한, 즉 신적 바탕을 가진 권한이며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막중한 권한입니다. 그 때문에 신자들이 이 교도권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듯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교도권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주님께부터의 진리를 순수하게 하느님의 백성에게 전해주기 위한 권한이며, 따라서 그 권한의 기능은 독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봉사입니다.

이는 또한 교도권이 남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위험은 특히 교황권을 경시하고 교리의 영구성을 부정하는 진보적인 신학 사상에 물든 성직자들의 경우에 크다고 봅니다. 모쪼록 교도권을 맡아 계시는 분들은 평신자들보다 더한 경외심과 겸손으로써 그 권한을 행사하셔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교회의 교도권에 대하여 공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따르는 것이어야 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그 순종이 자신의 양심의 판단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교도권의 사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사목자들께 말씀드리고 필요하면 시정을 청원드려야 할 것입니다.

또, 안드레아 씨는 사이비 종교들의 예을 드시면서 그곳들의 교주들에게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느냐고 하셨는데, 이는 현재의 토론에 적합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봅니다. 천주 교회와 계시 진리를 위탁받아있지 않은 그런 곳들을 함께 논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가 천주 교회에 속하는 것은, 즉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진리시요 사랑이시요 선하심이요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재자이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드려 신뢰하며, 또 그분의 진리를 배우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몸바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행위에는 하느님을 절대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교회를 통한 정통 가르치심을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으로 포함됩니다. 신자가 되는 것은 무슨 클럽에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왕국에 그분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자녀로서 속하게 되는 영원불변의 계약을 맺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혈로 가능해지고 축성된 하느님과의 계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그 진리가 우리에게 참다운 자유를 줄 것이며(요한 8장 31-32절 참조),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당신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이 분도 드림
 

 

 


인터넷상에서의 나주 토론 - 안드레아 씨께 (5)

 

다소 길어지는 듯한 이 토론이 모쪼록 다 같이 주님의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이 유익하게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안드레아 씨께서 한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으므로 그 오해를 풀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안드레아 씨의 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주의 기적을 진리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분도 형제님은 기본적으로 나주의 기적 = 진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발표를 진리에 반하는 발표라고 단정하고 계신 듯 합니다."

 "계속 앞에서 같이 나주의 기적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바탕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말씀으로 결국 교회가 진리에 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신지요?"

우선 여기에서 사용된 "진리"라는 단어를 "진실"로 대체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신앙을 논하면서 "진리"라고 하면 의례 "계시 진리" 즉 "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주의 일들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그 일들이 진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 새로운 "진리"인가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어느 사적 계시라도 새로운 "계시 진리"를 가져온다라고 주장되든지 또는 그런 증거가 있다면 이는 바로 그 사적 계시의 보도가 허위라는 확증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시 진리 즉 공적 계시는 주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7조 참조). 주님께서 교회에 위탁해주신 신앙의 유산은 사적 계시에 의해서도, 신학자들의 새로운 학설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 없는 확정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주의 메시지들과 기적들을 진실이라고 믿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물론 긍정적입니다. 제가 그 일들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경험한 바에 의거해서 거듭 거듭 확인된 양심 상의 결론입니다. 제가 나주의 일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든가 또는 그 일들이 비난될 때 증거하지 않는다면 저는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고 또 이는 그 양심과 은총의 빛을 주신 주님을 거스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이산 가족이 되었다가 오래 후에 어머니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 만난 그분이 자기의 친 어머니임을 확신하고 있다면, 그 믿음을 반증하는 다른 확증이 없는 이상 그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옆에서 다른 이들이 아무리 못만나게 하고 협박을 해도 자신의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진실을 저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지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믿을 수 없고 지조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침략자들의 총부리 앞에서 굽히지 않았던 순국 선열들, 그리고 박해자의 칼 앞에서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순교자들도 마찬 가지의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개인의 판단이 교회가 내리는 공적인 판단과 대등하든가 그 위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한 사적인 분별은 교회의 공적인 분별 밑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도권에 대한 신자들의 순명의 일면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장상들께 대한 순명은 신자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에 속합니다. 그래서 안드레아 씨가 하신, 위에 인용된 말씀은 잘못 아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지금까지 쓴 글들은 다 무엇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지난 해 1월 1일에 발표된 나주 관련 공지문을 저는 자세히 읽었습니다. 나주의 일들이 참된 사적 계시가 아니라고 단정하시고 이에 의거한 사목 지침들을 발표하셨는데, 그렇게 단정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공지문에서는 율리아 씨 주변의 기이한 현상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결론이 아니라 추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나주의 일들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법정에서 추정으로 단죄하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지문 상에서 나주의 성체 기적들에 대해서는 3조항에 걸쳐서 명백하고도 단호하게 "믿을 교리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라는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서 교리에 어긋난다, 즉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어긋난다라고 하면 완전히 끝장이 난 것입니다. 세상 법정으로 말한다면 이는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교회의 임무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 오류가 설 땅은 없기 때문입니다. 광주의 공지문에서는 바로 이러한 극형의 선고를 나주의 일들에 대해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전파하지도 말고, 읽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하는 엄중한 사목 조치를 밑받침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주의 일들이 참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그 사목 지침들은 당연히 지극히 합당한 조치일 것입니다. 나주의 성체 기적들에 관한 이러한 선언은 광주 공지문의 핵심 사항입니다. 공지문의 모든 무게가 거기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나주의 성체 기적들을 단죄한 문장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정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인용하지 않고 교리에 없는 뜻을 첨가하여 교리를 잘못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리와 교도권의 수호를 위하여" 책자를 비롯하여 여러 군데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드레아 씨는 또 다시 평신도가 어떻게 교리 상의 오류를 알 수 있겠으며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겠지만, 그것은 합당한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어느 성직자나 신학자가 "성체는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가 아니고 단지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할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이에 대하여 안드레아 씨는 신자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야 합니까? "교황님도 인간이시니 그분이 발표하신 교리라고 해서 꼭 오류가 없으란 법이 있겠느냐?"라고 한다면 이것도 묵인하고 지나쳐야 합니까? "성모님께서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실 뿐 하느님이신 예수의 어머니는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진리가 짓밟히는 것을 보고도 입다물고 있는 것이 신자들의 의무입니까? 5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바로 성모님께 관하여 그러한 주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인간들이 인간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토론한다면 결론에 이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안드레아 씨 말씀대로 "현실을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진리를 계시하셨고, 천주 성자의 강생을 통하여 진리의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신성한 진리를 당신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에 위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도 있고, 절대적인 선도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하는 절대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천주 성자께서 성령에 의해서 마리아께 잉태되시던 순간부터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교회를 통하여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교회의 지체이므로 그 절대적인 현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공지문에 대한 교리 상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평신도들이 유권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사목자들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자들의 사적인 판단이 교회의 공적인 판단에 종속된다는 원칙도 엄연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평신도들도 자신들의 신앙과 양심을 바탕으로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도 진리를 전파해야 하며, 진리가 가리워질 때 잠자코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읍니다. 이 점은 이미 누차에 걸쳐서 언급되었으므로, 아직 이에 대한 확신이 없으시면, 지나간 글들을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안드레아 씨께서 제가 나주의 일들을 "진리"로 믿기 때문에 교회의 판단에 반대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나주의 일들을 교회의 가르침에 연관해서만 고려하며, 그 가르침에 부합되기 때문에만 받아들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먼저이며 중심 척도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사적인 분별이 교회의 공적인 분별에 종속됨과 동시에, 교회에 대한 순명과 자신의 양심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교도권에 대한 순명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의 공지문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고 있다라고 하는 양심 상의 갈등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교회에서 밝혀주시고 잘못이 있으면 시정해주십사고 청원드리는 것입니다.

공지문 상에서 발견되는 성체 도리 관련 사항들은 조사 위원회의 위원이시며 주요 교의 신학자께서 "사목"지 1998년 3월호에 기고하신 글에서 다시 취급되었는데, 그 글에서 나주의 성체 기적들이 부정되었던 진정한 이유는 그 기적들이 개신교와의 일치라고 하는 대전제 하에서 성체와 성혈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아니라 영적인 현존이라고 하는 신학 사상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 주장하신 새로운 성체 신학은 특히 화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개발되어온 사상이었으며,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이미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회칙에서 단호하게 경고하신 사상입니다. 신학의 임무는 계시 진리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보다 깊게 보다 명확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신학의 이름으로 계시 진리의 본질을 변경시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이번 공지문을 통하여, 이미 교회에서 경고하신 현대주의적인 신학이 오히려 교회의 주인처럼, 정통 가르침 행세를 하여 진짜 정통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성체 기적들을 단죄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나주 관련 공지문 상에 존재하는 문제점의 핵심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근본 기준과 척도는 다른 그 어느 것도 아니고, 바로 주님께서 교회에 맡겨주신 "신앙의 유산" 즉 정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께서 교회 전체 안에 널리 퍼져있는 정통 진리로부터의 이탈을 시정해주시고저 특히 나주에서 성모님을 통하여 메시지와 징표들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진리와 뜻에 순명함으로써 참다운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개인적인 생각과 주장들을 하느라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우리는 자신의 뜻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치심을 부지런히 전파하는 일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이 분도 드림
1999년 8월 5일
 

 

 


한 초보신자의 서투른 견해입니다.

 

찬미 예수

저는 그리 신앙심이 깊지도 못한 새내기 가톨릭 신자입니다. 영세받은 지는 한 3년밖에 되지 못했구요. 따라서 어떤 신학적 해석같은 것에 관해 논할 자격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 나주 성모님을 뵈러 가려합니다.
교도권인가..(?)의 명으로 그곳에서 미사는 금지된 걸로 알고 있고, 교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저지만 교도권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가톨릭 신자의 도리란 것 정도는 알기에, 저 역시 평신도로서 이를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적인 방문 및 예배는 허용된다고 하였기에 저는 나주 성모의 집으로가서 그분의 향기를 뵙고 오려 합니다. 왜냐면 저는 그분의 발현과, 그분이 우리 모두에게 전하려 하시는 메시지를 '사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올리건대, 저는 아래 좋은 글들 올려 주신 분들의 높은 고견에는 견줄수도, 맞설 수도 없는, 신앙적으로 '무식한', 하지만 성모님의 메시지를 하나 하나 접하면서 그야말로 새로 태어나고 있는 중인 신자입니다. 제가 '무식한' 신자라는 건, 그만큼 믿음이 깊지 못하고 과학적 합리주의에 익숙한, 즉 '의심'이 많은 반쪽 신자 임을 의미합니다. 그런 제가, 나주 성모님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와 또한 곱비 신부에게 전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이제껏 품어 왔던, 의심이 모조리 허물어 졌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즉, 성모님의 메시지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죠.

그분이 왜 이 시대에, 이토록 많은 곳에서 친히 발현해야 하셨는지, 왜 하느님께서는 '신비주의'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성체 기적을 그토록 되풀이하여 직접 보여주시고자 했는지, 그분이 전하시고자 한 우리 자녀들에 대한 메시지를, 왜 그런 방법으로 친히 보여주시고자 했는지... 아직 불경한 '의심'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못된 자녀인지라 100%라고는 얘기 못하겠고, 90% 이상은 깨달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띄우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토론장을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었습니다. 이런 토론장을 들여다보면, 어느 사이트나 격렬한 논쟁, 그리고 심지어는 인신공격성 글월들이 난무하여, 언제나 서글픈 마음으로 사이트를 나오기 때문이죠. 그러다 무슨 생각이었는 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들리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글 올려 주셨지만, 이곳도 역시 저의 예감이 맞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건, 저같은 무식쟁이가 성모님의 메시지를 읽어 나가며 이제껏 가졌던 많은 의심들이 눈녹듯 사라졌는데, 어찌하여 신앙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높으신 님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분열하시는지, 저로서는 참으로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앞으로 미사를 일주일에 두번 이상 보기로 결심하였고, 지난주부터 이를 실천 중입니다. 영성체를 자주하라고 강조하신 성모님의 메시지 때문이지요. 그리고 묵주기도를 매일 빠지지 않고 할 작정입니다. 특별히 성모님께서 강조하셨잖아요? 그동안 들쭉 날쭉 하다 말다했지만, 그리고 특히 묵주 기도를 할때는 제가 무척 힘이 들때, 여기서 탈피하게 해주세요, 하는 바램으로 기도하는게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나의 묵주 기도야말로 외롭게 마귀와의 싸움을 벌이고 계시는 티없으신 성심에 힘이 되어드리는, 그야말로 실체적 힘이 있는 무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에 임할 수 있습니다. 미사 참여는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하셨으니 당연히 '순교자'의 사명..(감히 말씀드리건대)을 가지고 성을 다하여 참여할 것이고, 고해 성사... 아직 고해할 게 너무 많아서 가장 어렵긴 하지만 그길 이야 말로 인류를 위한 것이니 '꼭' 해야한다고 강조하셨으니 한달에 한번 이상은 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란 말씀...너무도 당연한 말씀이니.. 실천하려고 하구..

어딘가에 이런 메시지를 남기셨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그저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뭐 천국 가기 위해 대단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처럼, 단순하게, 하느님 말씀을 믿고, 섬기는, 그런 모습이면 충분히 된다고요. 근데 왜, 인본주의를 숭상하는 합리주의자들 처럼 그것을 증명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공식적인 것은... 저같은 평신도가 이러쿵 저러쿵 할 자격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을 대리하여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분들이 사제들이니, 어떤 것이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유익한 길인지는 하느님께서 당연히 이끌어 주실테니까요. 다만 성모님이 저희에게 강조하셨듯이. 우리의 희망이요, 하느님의 대리인이신 사제님들이 진정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할 때의 모습대로, 만에 하나 오류에 빠지시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곳에 글을 올리신 분들, 특히 나주 성모님의 기적에 대해 반대 의견을 올리신 분들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올린 것은 아님을 밝히고자 합니다. 음..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말고, 침묵하되 자비의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거든요.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끝으로.. 모두 읽으셨겠지만, '시간이 다해가는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일체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하느님의 나라가 빨리 오시도록, 기도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그럴수록 영성체, 고해성사, 묵주기도 많이 해야겠습니다.

여러분들.. 적어도 가톨릭의 가르침을 믿는 신자들이시라면..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우리를 하나라도 천국으로 이끄시고자 외로이 외로이 악마와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신 성모님의 짐을 덜어드립시다. 포도주가 포도주여야하느니 ..입으로 들어가면 살이 아니라 빵으로 남아있어야하느니.. 그런 이론상의 문제는. 하느님이 따로 개입하셔서 교회 지도자들을 통해 풀어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저 어린애의 믿음으로서, 직접 알려주신대로 열심히 기도합시다.

두서없고 무식한 저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저의 글로 인해 만에 하나 상처받는 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1999년 5월 24일
김 마르띠노
 

 

 


왜 그렇게 분노심만 있으신지요.

 

안녕하세요.  '초보신자'라고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박철순님께 올립니다. 우선, 전 초보 신자 맞습니다. 그리고 님은 무슨 뜻으로 제가 '나주에 관한한 '초보자가 아닌것같다'는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의문에 대해 저의 답변을 드리자면, 저는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고 '나주 문제'에 관하여도 밑에 글 올린대로 초보자 맞습니다.

님의 글을 보면서 저는 사실 형제님께서 '너도 나주 -패거리-들과 한 통속이지?'라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저의 글로 인해 본의아니게 글을 올리신 높은 신심의 형제 자매님들에게 누를 끼친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곳 나주 성모님 홈페이지를 알게 된지 몇달 되지 않은 '초보중에 초보'임을 제 명예를 걸고 밝힙니다. 나주와 관련된 분은 단 한 분도 아는 분이 없을 뿐더러, 전 금번 일요일 이전에는 나주는 커녕 전주 아래쪽으로는 제 생애 가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일요일 저는 드디어 나주 성모님집을 처음으로 방문하였습니다-)

하나, 밑에 올린 저의 글 다시 읽어보니 마치 나주 성모님 발현을 부정적으로 보고 계신 분들께는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뉴앙스를 풍기고 있네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뉴앙스를 제가 남겼고, 그점으로 인해 화가 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용서 바랄께요.

그런데... 제 느낌을 말씀드릴게요. 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가능한 '객관적' 시각으로 아래의 토론들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제가 느낀점은, 나주 성모 발현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되고 있기보다는, 마치 가톨릭 신자와 비 신자 간의 논쟁처럼 보이기만 하는데, 그것 또한 제가 무식해서, 오가는 토론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걸까요, 아님 다른 '방청객'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을까요?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신 분 중 어느분이 대답 좀 해주세요. 정말 '모르는' 제가 봐도, 일부 글을 올리신 형제 자매님들은 나주의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성경 내지 교회의 기본 바탕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선 저는 박철순 형제님께서 분개하셨던 소위 '나주 지지자'도 뭐도 아닙니다. 무슨 논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에 관한 문제이므로 지지다 뭐다 할것도 없걸랑요. 다만 나주 성모님의 현존을 믿는 부류를 형제님의 분류 방식대로 '지지자'이고 그렇지 않은 부류를 '반대자'라고 지칭하기로 한다면, 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박철순님을 비롯한 일부 '반대자' 형제 자매님들은 무엇때문에 그렇게 '지지자'들에 대해서 '분노'하고 계시는지요? 제가 보기엔 그 어느 곳도 '음모적'이거나 '무례한' 부분이 없어보이는데.. 왜 그토록 분노하신 모습이 글에서 넘쳐흐르는 지요.  혹 이분들이 '나주'를 중심으로 뭉친 이단적 집단이고, 선의의 형제 자매들이 현혹되는 것이 안타까와 그런 감정이 앞서는 것이라면, '순진한'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형제님이 하셔야 될 일은, 오히려 감정을 자제하시고 정연한 논리로 그들의 오류를 밝혀야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추가하신 글'에 관한 이야기인데... 증언에 참여하셨던 성직자님들이 대주교님의 교도권에 순명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분들의 동의없이 증언록을 올려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같은데.. 관리자님의 해명과는 별도로, 교도권에 순명하여 나주에 관한 사항을 신자들에게 논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해서 그 이전의 증언 자체가 무효가 되는 건가요? 즉, 눈으로 본 사실이 번복되는 건가요? 그렇기 때문에 증언록 자체를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삭제하여, 그간의 과정 조차 '신자들을 현혹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삭제하여야 한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주에 관한 이야기가 그 자체로 신자들을 현혹시킬 우려가 있다하여 나주에 관한 그간의 사항들을 아예 삭제, 말살한다면, 그것은 현대판 분서갱유요, 긴급조치 9호입니다.

어느 분의 글을 읽고 저도 가동 게시판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나주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것을 보고 제가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나주의 이야기가 공지문으로 단호히 금지시킬 정도로 명백한 허위라면, 나주 문제에 대한 토론 자체를 폐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언어도단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스스로 참모습을 밝힐 것이고, 허위내지 마귀의 장난이라면, 또한 그 스스로 허위임을 드러낼 것임과 동시에 저절로 그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토론장을 통해서 나주가 진실이다, 허위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기적 여부는 개인적인 믿음과는 별도로, 교회 지도층에 의해 밝혀져야한다는 생각엔 변함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 사이트를 접하면서 느낀 것은, 나주 조사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경로로 진행, 종결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조사의 결과로 인해 나주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금지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교회의 결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가톨릭 교회에 교적을 가지고 있는 한 작은 평신도로서, 저는 나주에 관한 조사가 전면적으로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디오 촬영이 사기인지 아닌지는, 조금만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면 식별할 수 있습니다. 단지 비디오 촬영이 체험자측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진실성을 부정해버린다면, 채증법칙 위반의 오류입니다. 몇년전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필리핀의 한 영적 치료사의 사기를 밝혀내는 장면,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치료사, sbs취재진에게 방영하면 보복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죠?

'기적'의 부분(성체 강림, 성모님 피눈물, 태양의 변화 등) 은 그 자체로서 과학적 입증의 한계를 넘는 분야이므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그 이외의 율리아 자매님과 관련된 '소문' 내지'루머'는 얼마든지 과학적 접근을 통해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 차원의 철저한 조사를 재개했을 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심층적 조사를 거부를 하신다면 그 스스로 허위의 개연성을 증거하시는 것일 테고, 수용을 하신다면 우리 신자들은 더이상 이런 토론을 통해 분열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지문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이고, 그로 인해 나주 문제에 대한 모든 거론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너무도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입증하듯이, 언로의 차단이 진실의 수호 기능을 발휘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진실을 왜곡, 은폐하기위한 방편이 언로의 차단/통제였음은 그 누구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단, 사기, 협잡극'임이 입증되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이토록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가 이루어져야만 했는지 저는 아직도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간에 있었던 나주 관련 사건 추이를 읽고 나서 영화 '미션'이 떠오른 것은 저뿐이었을까요.

끝으로.. 이번 일요일 나주에 들렀던 이야기를 전할까합니다.
저에겐 누님이 한 분 계신데.. 저를 간접적으로 가톨릭으로 인도해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무척 신앙심도 깊은 분이시지요. 제가 나주에 가려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전했을때, 누님의 반응은 놀라움, 그리고 우려였습니다.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결정이 난 그곳에 왜 가려하느냐는 것이었죠.. 물론 누님은 인터넷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님은 '이단'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으셨지만, 그것보다 더 강한 뉴앙스로 표현하셨습니다) 안타까와 하시면서도, 누님은 어쨌든 나주에 가보려고 할 정도로 성모님에게 관심을 갖게 된 동생이 대견했던지 가서 은총 많이 받고 오라고 말하셨습니다. 신앙이 깊다면 나주던 뭐던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고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저는 누님에게 이곳 홈페이지를 알려주면서 꼭 들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다짐까지 받았습니다.

일요일... 나주에 가던 중 누님 댁에 잠시 들렸습니다(누님은 서울과 나주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에 사십니다). 나주 가는 길이라고 하니까, 누님은 다시 한번 우려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거기 가면 사람들이 성체를 뿌린다며?' '성체를 돈받고 판다며?' '성체가 둥둥 떠다닌다며?" 등등 매우 조소적인 표현을 써가며 물으셨습니다. 잠시 들렸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제 느낌에 누님은 나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소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었지만, 이곳 홈페이지를 모두 읽은 저로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차에 올라 나주를 향하면서 저에게도 그런 회의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상업적이 되어있다면.. 어떻게 하지?'하고요.... 그런 저의 우려는 성모님의 집을 들어서면서 불식되었습니다.

저는 '좋게 생각해서' 이곳 운영이라도 하려면 뭐 기념품같은 거... 팔 수도 있겠지.. '기적수'란 것도 약간의 운반비 정도 받을 수도 있겠지...그렇게 생각하면서 나주로 향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념품은 커녕, 뒷 마당에 있는 '기적수' 탱크에서 발견한 유일한 것은,'이물은 한방울도 흘리지 맙시다'라는 문구뿐이었습니다.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탱크에 매달아둔 컵 몇개 하구요.

경당안에는 여느 성소처럼 십자고상, 그리고 그 성모님상.. 기적의 장면들을 촬영한 사진, 성서, 책자등을 진열해 놓은 소박한 진열장..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약 7-8명의 신도들이 앉아서 묵상, 기도하고 있는 모습... 성체가 내려오셨다는 자리에는 유리 상자와 함께 성체, 그리고 몇개의 묵주가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문객들처럼 그 유리 상자를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고, 저 역시 강한 꽃내음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뭐 그 꽃내음이 인위적 향수다 아님 성모님의 향기다. 그것에 관해서는 언급을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어쨌든... '약간의 상업성'이 있더라도, 운영상 그럴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하자-라고 마음먹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 첫번의 방문에서 상업적인 냄새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그 소박한 집 주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 성모님집에 들어설때의 단아하신 성모상. 장미꽃.. 아. 참 성모님이 즐겨하실만한 곳이다.. 그런 느낌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곳이. 그간 소문에 소문을 타고 마치 이단 종교 집단의 아성으로 비쳐지고 있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요. 물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이 계신 성당이 동네마다 있지만.. '기적 체험'을 떠나서 성모 신심을 좀더 가깝게 느끼기 위해 한번쯤은 들러서 묵상과 기도를 드려봄직한 아름다운 곳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틀이 지난 오늘 저는 회사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명동 성당에 가서 '참으로 오래간만의' 고해 성사를 하였습니다. 전엔 모령 성체란 말 뜻도 몰랐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회사끝나자마자 저녁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아. 고해 성사 후 성체를 모시는 제 느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요? 한 가지만 덧붙일게요... 저의 양심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저. 사실은 성모님집을 나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어제 하루 종일 좀 우울했었거든요. 그 우울함이란..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작은 '기적'이라도 체험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자동차 여행의 피로감이 겹쳐서.. 알 수 없는 실망감과 우울증에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출근해서는 마음이 되돌아왔어요.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모습이 진정 무엇이던가하고요. 그래서 잠시 허황된 생각을 한 제 자신을 부끄러워한 후(음.. 정말 부끄러워 했었나, 근데?), 오늘은 정말 미뤄뒀던 고해 성사 해야지..하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순간...어제 성모님 집에서 맡았던 그 향기...장미 향인지 뭔지는 전에 장미향을 맡아본적이 없으므로 잘 모르겠지만서두요... 그 향기가 갑자기 코를 찌르는 거예요. 누군가의 향수냄새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져봤지요, 물론. 근데 그 시간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 사무실 안에는 여직원이 딱 한명 있는데.. 제 책상 한 칸 건너에 앉지요. 그 여직원에게서 나는 냄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그렇담 왜 이 순간 전에는 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후각에 참으로 둔감한 제가.. 지금도 맡는다면 구분할 수 있는, 그런 향기입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물론 저의 상상 작용에 의한 것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향기가 약 수분에 걸쳐서, 났다 안났다 하는거예요. 마치 향기와 향기없을 때의 냄새를 비교시켜주시는 것처럼..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이야기는 저의 양심을 걸고 하는 체험담입니다. 바로 오늘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다시 한번, 저의 소망으로 인한 상상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가지고 현혹시키려 든다고 야단치지 마세요... 단지..이 이야기를 꼭 해야만될 것 같아서.. 드렸을 뿐입니다.

아뭏든... 저는 이 사이트를 통해, 나주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진정한 가톨릭신도로서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매우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전보다 조금 더 가까운 분으로 저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즉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부르다 내가 지칠 이름의 님이 아니라, 주님께서 바라시는 최소한의 모습으로 준비시키시고자 친히 불러주시는 분, 너는 이 세상에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노라.. 하고 스스로 밝히시는 분으로 조금 더 제게 다가오셨습니다.제가 먼저 워낙 다가가지 않으니까 불쌍히 여기셨는지.....이제 나머지는, 제가 좀더 많은 기도와, 묵상과, 성체 조배로서 주님의 현존에 다가가야 할 부분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저의 이 '의심'은 하나하나 부끄러움으로 변하겠지요.  

두서없고 장황한 글.. 시간 낭비 시켜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티없으신 성심, 성모님의 자비로우심이 항상 여러분을 지켜드리기를 기원합니다.

1999년 7월
김 마르띠노
 

 

 


나주 성모님에 관해 혼란을 겪고 계신 형제자매 님들께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어머니 아베 마리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아래 평화의 날을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을 비로소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감격, 신심 깊으신 형제 자매님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아아..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런 분이셨구나. 우리의 어머니는, 바로 이런분이셨구나...
우리를 향한, 이토록 깊은 인내와 자비. 자녀의 파멸을 지켜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십자가에 손과 발을 박히고 온갖 조롱속에, 만신창이의 길을 택하신 주님. 창자가 열리고 모든 피를 쏟아버려 거적데기처럼 되어버린 아들을 지켜보던, 그 참척의 고통,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바로 그 슬픔으로 우리를, 대체 우리가 무엇이길래,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대답없는 메아리를 토혈속에 끊임없이 외치고 계신 성모 마리아님...

저는 비로소 저의 존재에 대해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백컨대 그전까지 교회란 제 영혼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문을 두드린, 제 인생 여정의 여러 피난처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 유치환님의 싯귀처럼,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므로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서" 삶의 이 허허로움과 우주의 영원 허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의미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주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 그야말로 천지 개벽적인 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저의 종교는 마음의 위안을 위한 도구요, 권선징악을 위한 아득한 설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내 존재의 비밀에 관한 완전한 해답이요, 내가 마시는 공기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며, 십자가의 의미는, 사도신경의 뜻은, 하늘의 양식이란, 그저 우리가 만들어낸 교훈이나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저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생존의 열쇠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공허하게 느껴졌던,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세속적 괴로움을 당할 때만 그 존재를 갈망하다가는 낙담할 때, 탐욕과 집착에 몸을 떨 때, 향락의 달콤함에 빠져들때는 부정해버리곤 하던, 저의 기분과 필요에 따라 있었다 없었다 하던 신이 아니라, 사형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형극의 고통을 마다 않는, 지극히 자애로운 참 어버이로서의 신이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요, 성모님이었다니, 그 안도와 기쁨은 분명 이세상의 모든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겠지요.

왜 갑자기 나주 이야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간접적이지만 성모님의 발현 사실을 알게되고, 성모님이 보여주신 여러가지 기적과 메시지를 통해 주님의 현존을 확신하고 위에서 언급한 깨달음의 감격을 누렸으나, 이제껏의 학교 교육과 세상살이로 다져진 저의 그 잘난 이성과 의심은, 두번의 나주 방문후 성모님이 흘려주신 '사랑과 우정의 징표', 장미향을 수 차례나 맡고도 돌아서면 성모님의 발현 여부에 대해 회의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심의 메시지'를 읽고서, 저는 나주 성모님의 현존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요세피나에게 전해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나주 율리아 자매에게 전해주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몇번이고 정독하면서, 저는 두 글의 실제 주인은 한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게시판 어딘가에 글을 올리신 어느분은 문구 몇구절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나주의 메시지는 표절의 징후가 높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분과는 정 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거의 모든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시간적 급박함으로 볼 때 두 분의 메시지는 전혀 별개인 것임이 확실하지만, 글에서 배어나오는 애정  표현의 깊이, 그 애절함의 정도, 영광 그자체이신 자신의 높이를 낮추시는 말씀의 톤, 그러면서도 스스로 드러나는 위엄, 쉽고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의미 전달 등, 글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모습이,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며, 또한 메시지 전체를 통해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메시지가 결국 그분을 통한 주님의 말씀임을 생각할 때,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두 메시지의 유사성은, 주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 표절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나주 메시지가 일부 표절과 일부 창작의 혼합체라면, 그와 같은 일관성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관성은 곱비 신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 말씀에서도 공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저의 의견이 억지라고 느껴지시는 분들은, 다시 한번 이곳 사이트에 나와 있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깊이 깊이 음미하여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나주 비판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일은 삼가려고 했었습니다. 반박의 글을 쓰는데 시간을 들이느니, 기도 한번 더 바치는게 유익하다는 짧은 생각때문이었기도 하고, 교리적으로 아는게 많지 않으니 반론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때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성모님의 메시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이곳 사이트에 올라오는 비판의 글들이 정당한 반론 제기의 수준을 넘어, 영혼의 구원을 얻고자 하나 아직도 혼란을 느끼고 계실 많은 형제 자매님들에게 깊은 회의를 심어줌으로써 진실 판단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할 수도 있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참이었습니다. 이분도 형제님을 비롯하여 몇 분만이 힘겨운 응답을 하시는 모습도 저같은 방관자의 침묵때문이란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던 중 며칠전 올라온 한 형제님의 반론을 보고는, 저는 더 이상 이런 류의 반론들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많은 다른 형제 자매님들에게 간접적인 죄를 짓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반론을 인쇄하여, 제 아내에게 읽어보도록 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공지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나주와 관련되어 오고간 논쟁의 시말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 아내가 그 글을 읽고난 후 제게 들려준 의견은, '뭐 일리가 있는 말이네.' 였습니다. 나주 문제 논의의 전개과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특히 공지문과 관련된 논쟁의 본말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이런 글을 먼저 대한다면, 당연히 제 아내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모든 사정을 읽어 파악하고 있던 저로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아픔의 느낌을 주는, 허구에 가득찬 글이란 사실만이 부각될 뿐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른 비판론들은 하나같이 자가 당착적이며, 자신들의 글은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하고 거의 모든 내용들이 악의적 추측과 경험 아닌 풍문에 의한 편견에 의존하여 전개하고 있으면서도 나주 부정론에 대해 논리적으로 오류를 지적하신 형제님들의 글은 단지 논리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하고 있으며, 조소와 비아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난 논리적으로 , 교리적으로 당신보다 부족하지만, 당신의 의도는 논리적이므로 더 불순하다.' 이런식입니다. 겸손의 이름으로 침묵할 것을 요구하면서, 상대방의 의도는 자기식으로 단정지어 버리는 비겸손의 모순을 스스로 과시하고 있습니다.

어제, 아니 그저께가 성 라우렌시오 순교 축일이었습니다. 제가 참석한 명동 성당 저녁 미사에서,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여러분도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순교자의 피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나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기도 바쁜데 나주 문제를 가지고 논쟁에서 구구절절이 타당한 문서를 들이대고 논쟁에서 이겨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질타하신 밑의 형제님은,  신자들의 진실 추구 및 진리 수호에 대한 순교자적 노력없이 "유구한 역사의 가톨릭이 그렇게 가볍거나 어두운 세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믿음"을 과연 가질 수 있는 지 자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현재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아도 충분하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지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밑의 형제님은,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가 기존의 교회 가르침과 비교하여, 과연 새로운 메시지인지 확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나주 메시지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시다면, 나주 발현의 진실 여부의 명확한 규명을 교회에 호소하고 노력하는 분들에 대한 이해와 애덕의 배려는 기존 교회의 가르침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 자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기다림"의 영성이, "겸손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성"이, 순교자들이 흘린 피위에 편승하고자하는 "easy rider"의 다른 표현은 과연 아닌 지를 확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은 열어 놓은채 귀는 닫아버리는 배려를 '자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나주 발현에 대한 확신까지의 과정에는 이분도 형제님과 그 외 여러 형제님들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의 글이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도 형제님이 자기 주장의 관철을 위해 궤변을 편다거나,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장문의 글을 올리신게 아니란 것은, 이 사이트를 정독하신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억측과 비난의 난무에 대해 어찌 그다지도 인내를 가지고 사랑과 겸손에 찬 답변을 하시는지, 경외스러울 따름입니다. 또한 이 사이트에 올라온 많은 비판아닌 비난의 글들도, 성모발현에 대한 저의 믿음 형성에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글들의 한결같은 자가 당착과, 스스로 드러내는 자기 모순이 없었다면, 저의 깨달음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지 모릅니다.

끝으로 나주 성모님에 대해 혼란을 느끼시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사실 장황하고도 지루한 저의 이글은, 바로 혼동을 느끼는 형제 자매님들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진실은 그것을 추구하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이트의 모든 메시지, 그리고 게시판 상의 모든 글들을 읽어보시고,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판단을 내리시길 권합니다. 모니터상의 많은 글들을 읽어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 글들을 읽지 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는 마십시요. 그리고, 나주 성모님 집을 한번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그동안 세번 가보았는데,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오로지 묵주 기도와 성가 및 성모 찬가만 부릅니다. 30분 휴식 후에는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된 기도 봉헌과, 또다시 성가 및 성모 찬가, 새벽 세시부터 30분간 통성기도, 네시 반까지 신앙체험 발표(희망자 자유순으로)가 전부입니다. 이상한 곳 절대 아닙니다…그저 편한 마음으로, '거 어떤 곳인데…말들이 많아?' 하는 마음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한번 들러보십시오.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깊은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가냐고요? 그부분은… 저도 밑의 게시판에서 한 형제님께 도움을 받은 부분인데.. 추가적인 제 생각으로는 안주의 교만에 자녀들이 빠져버리는 것을 막기위해 성모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고도 장황한 글 읽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나주 성모님집의 봉사자도, 협력자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서울의 한 본당 소속 신자이며, 저의 글은 제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럼없이 쓴 글임을 밝힙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이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영혼을 보호해주실 것을 믿으며…

1999년 8월 11일
김 마르띠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