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인가"
이제민 신부 <격월간
'공동선' 1998년 5-6월호>
먼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단체로서의 이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안에 존재한다."(8항)
<교회헌장>은 교회는
가톨릭 교회 '이다'라는 종전의 주장을 넘어,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it in)고 천명함으로써 지금의 가톨릭 교회와
본래의 가톨릭 교회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교파와 종파를 넘어 인간들의 만남을 제창하고, 가톨릭 교회 밖에도 교회가 있을 수
있음과 가톨릭 교회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더욱 '가톨릭적'이 되어야
한다는 공의회의 이 용기있는 충고가 헛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가톨릭적인가? 이런 물음을 외면하는 데서 가톨릭
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스스로 반목하고 갈라진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이야기
1997년 5월 16일 블라이티스
주한 교황대사는 서강대학교의 정양모 신부(안동교구), 서공석 신부(부산교구), 그리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 근무하던 필자(마산교구)에 대해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경고가 있었다는 내용의 서한을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 정진석 주교에게 보냈다.
이 서한은 위 세 사람이 로마와
지역교회의 관계, 여성 사제, 사제 독신제 그리고 토착화 문제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진석 주교는 곧 해당 교구
소속 주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1997년 7월 1일 주교회의 상임회의를 소집하여 그 진실 여부를 검토해 보지도 않은 채, '로마의 문제
지적'만으로 주교회의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위 세 사람의 글을 싣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하였다. 그런 결정을 본인들에겐 통보조차 해 주지 않았다.
그후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정수 신부는 블라이티스 대사가 정진석 주교에게 보낸 서한을 복사하여 당사자들에게 보내 주었다. 로마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 때문에 그들의 사제들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썼는지를 알아보고 변호와 보호를 해주기는 커녕 그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조처를 취하는
것이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이다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로마와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 그 자체보다 이런 '사목적'이지 못한 행위다. 이는 슬픈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슬픈일은 바티칸을
움직이고 우리의 주교님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 배후의 '초보수주의' '근본주의적인 세력'이 교회안에서 '가톨릭의 이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자들을 '진보 또는 반가톨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회 쇄신에 대한 이야기를 진보주의자들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세력에 저항하는 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이고, 진보주의자들의 행위는 곧 가톨릭 정통교리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1998년 1월 1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필자가 속한 교구의 박정일 주교에게 서한을 보냈다.
귀교구 소속 이제민 에드워드
신부의 저서 중 몇 내용이 본성(省) 심의국에 인지되었습니다. 이 신부는 <신학전망> 103호(1993)의 서평에서 <레뎀토리스
미씨오(Redemtoris Missio)>회칙을 소개하면서, 교도권의 몇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른 몇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선교가 종교간의 대화로 대치될 수 없으며 교회만이 '구원의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종교 신자들을 마치 무신론자나 이방인으로 여기게 되는 난점과 오해, 불분명함과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저서
<교회-순결한 창녀>(분도출판사, 1995)에서 교회를 마치 민주적 형태로 조직된 그 어떤 인간 사회단체와 같이 이해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불충분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파스카 사건과 성령의 활동에 기초를 둔 교회의 친교직무는 고유한 가치를 외면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충분한 근거에서는 교회가 (사회가 아닌) 공동체라는 꿈만을 갖게 하며, 교도권을 마치 '절대이상적 권력'의 행사로
이해하여 (결과적으로) 교도권의 거부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러한 동기로 저자는 여성사제 문제에 대해서 <인테르 인식뇨레스(Inter
Insigniores)>와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점에 대하여 본 신앙교리성은 존경하는 주교님께서 저자를 만나
분명히 밝히고 교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교님의 답장을 바라며 지금까지 보여주신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기회에 경의를 표하며 인사
드립니다.
1998년 2월 15일자
가톨릭신문은 교회의 정통 신앙을 거스르는 일부 신학자들 때문에 주교회의가 본격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예수가 교회를 설립한 것이
아니다' 라든지 '일반사회와 같이 교회가 하나의 사회다'라는 등 교회 기원 문제나 교도권을 부정하는 국내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전국
주교들이 함꼐 모여 본격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2월 9일 CCK에서 열린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교회의 정통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이해를
거스르는 국내 일부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이를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논의키로 했다. 사도좌 신앙교리성은 지난해에 이어 최근
또다시 한국주교회의 의장 정진석 주교 앞으로 이같은 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정식 경고문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문 보도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교회를 일반 사회와 같이 하나의 사회"라고 지적한 대목은 위의 신앙교리성의 서한에 비추어 볼 때 '필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자신의 책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주장을 벌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회를 "민주적
형태로 조직된 그 어떤 인간 사회단체와 같이 이해"한 적도 없고, '파스카 사건과 성령의 활동에 기초를 둔 교회의 친교직무의 고유한 가치를
외면"한 적도 없으며, "교도권을 거부한"적도 없다.(신앙교리성은 그 근거를 필자의 책에서 인용하여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필자는, 교회를 하나의
사회처럼 여기고 직무와 제도가 성령에 바탕하지 않는 것처럼 행위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작년 7월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필자는 신앙교리성의 편지
한 장에 의해 이번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출판을 위한 출국금지' 조처를 받았다. 이번 일을 그저 세상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수는 없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공의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자는
공의회의 정신을 삼켜버리는 그 무서운 그림자를 경고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위의 두 서간에 대한 필자의 간단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증거없는 비난에 대한 간단한 해명
1997년 5월 16일자의
블라이티스 교황대사의 편지와 1998년 1월 15일자 신앙 교리성의 편지에는 필자가 그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었기에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인용도 없고, 증거 자료도 없다. 그럼에도 간단히 해명하고자 한다.
1) 로마와 지역교회의 관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역교회를 강조했다. 지역교회가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존이고 묘사이며, 지역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교회가 실현된다고
강조하였다.(<교회-순결한 창녀>, 120쪽; 주교교령 11항; 이 글 앞부분 참조) 필자가 이를 부정했어야
옳았는가?
2) 여성 사제: 인용과 증거는
없지만 이 주제는 바티칸이 지적한 그대로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교회가 여성 사제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본다. 교의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위의 책, 194 ∼198쪽)
3) 사제 독신: 필자는 본인의
책에서 독신을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 것'과 동일시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독신제 자체의 영성적 의미를 강조하였다.(위의 책, 220쪽) 설령
사제가 결혼을 한다 해도 독신의 의미는 살아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오류인가?
4) 토착화와 선교: 토착화와
선교에 대한 나의 어떤 주장이 오류로 지적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설마 토착화 불가를 외치고 나서라는 이야기는 아니리라
믿는다.
5) 교회와 사회의 관계:
신앙교리성이 필자의 교구장에게 보낸 서한에는 필자가 교회를 "민주적 형태로 조직된 그 어떤 인간 사회단체와 같이 이해"했고, "파스카 사건과
성령의 활동에 기초를 둔 교회의 친교 직무라는 고유한 가치를 외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교도권을 거부했다고 한다. 필자의 책 어디서
그런 주장을 했는가?
필자는 오히려 위의 책에서 교회는
사회 이상이며 제도 이상임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교회임을 강조하였다. 현재 한국수녀장상연합회는 이책을 필독서로 정하고 있으며, 많은 수도원에서
영적 독서로 읽히고 있는 상황에서 근거없는 곡해와 비난만큼 무책임한 처사는 없을 것이다.
가톨릭은 문맹(文盲)인가
우리의 주교들에게 보낸 바타칸의
서한은 우리 모두를 '문맹'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를 자기가 쓴 글조차 이해 못하는 자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맹은 그들이 아닐까.
인류복음화성의 톰코 추기경이나 로마 신앙교리성은 물론 한글에 문맹일 것이다. 읽을 줄은 알아도 실제로 읽지 않았다면 우리 주교회의 상임위원 역시
문맹과 다를바 없다. 로마에 글을 보내어 로마와 우리의 주교를 문맹으로 만든 그 배후의 세력도 글은 읽되 이해를 못하니 역시 문맹이라고 보아야
한다. 라틴어를 소리내어 읽어도 그 뜻을 모르면 라틴어에 문맹인 것과 같다. 하나의 신학적 담론에 대하여 발언하려면, 신학의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팔요하다. '신학의 언어'는 우리를 인간의 원초적 체험(전통)에로 이끌며, 또 거기서 부터 종말을 향하여 살게 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언어는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해석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학(교의)의 역사적 발전을 모른다. 그들은 어느 시점에 형성된 (신학) 언어의 한 표현에
머물러 신앙한다. 해석과 발전을 모르는 언어는 죽은 언어다. 죽은 언어는 교의를 죽이고, 교회를 죽이고, 하느님을 죽이고, 인간을 죽인다.
교회를 죽은 글자, 죽은 언어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교회인 우리의 과제이다. 교회는 살아 있는 언어이며, 성령의 교회이다. 문맹은 들려오는
'소문'에 의존한다. 남에게 순종을 강요하며 남들을 문맹으로 만든다. 바티칸과 우리의 주교 앞에서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문맹의
폭력이다. 그러기에 이 글이 비판하려는 대상은 바티칸이나 우리의 주교가 아닌, 우리 모두와 교회를 문맹으로 만드는 폭력의 실체다. 그 무서운
위력을 지닌 '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힘은 공의회의 정신을 배척하며 '쇄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그 힘은 초보수 근본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다. 경고를 받아야 할 세력은 '우리'가 아니라 이러한 근본주의적인 초보수 세력일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모반
어떤 사람들은 필자를
진보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필자는 보수주의에 더 가깝다. 필자는 우리 신앙 언어의 원천에로 거슬러 올라가 신앙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이 원천에서 가장 나중인 종말을 향하여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도 있다. 더
정확히 말해서, 필자는 보수와 진보의 긴장 속에 사는 현실인이다. 원천에 충실한 교회는 미래에도 충실하고 현실에도 충실하다. 교회는 보수적이며
동시에 진보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원천과 종말을 이어주는 살아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와
진보의 복음적 긴장'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교회 전통을 예수라는 원천에서 끌어올리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와 현실을 읽을 능력도
잃어버린다. 이 긴장을 이겨내는 것이 교회의 과제다. 이 긴장을 이기지 못하면, 원천에 충실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며, '주의(主義)나
'이데올로기'에 머물게 되고, 원천에 충실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며, 다른 견해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여기서 교의와 조직,
구조와 제도만을 고수하는 원칙적주의(성서 원칙주의, 교의 원칙주의, 제도 원칙주의 등)와 중심주의(성직자 중심주의, 성서 중심주의, 교의
중심주의)의 양상이 나타난다. 개방과 대화와 자기쇄신을 부정하고 닫힌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영성보다는 광신적인 신심을 강조하게 된다. 사회와
종교의 관계를 왜곡하고, 시대의 변화와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들이 높이 사는 여러 가치들 이른바 자유, 자주, 개성,
양심의 우선, 윤리적 판단의 독창성 등을 초월성의 상실이니 개인주의니 물질주의니 쾌락주의니 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단죄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방과 대화, 자기 쇄신을 제창하면서 이런 보수적인 세력과 온갖 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보다 거의 100년 전
제1차 바타칸 공의회 이전의 구태의연한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이성과 신앙의 갈등을 풀어낸
공적을 남겼지만 시대의 변화에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다는 비판을 모면할 수 없었다.
교의의 쇄신(ecclesia
reformanda)이라는 사고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언급되거나 취급되지도 않았을 뿐 더러, 그레고리오 16세는 이런 사고를 교회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라고까지 보았다. 왜냐하면 교회가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은 마치 교회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쇄신되고 회개해야할 대상은 오로지 세속 뿐이며, 교회는 다만 세속에 대하여 이를 촉구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대정신에 대하여 방어적
태도를 지녔던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직자들에게 의무적으로 반(反)근대주의 서약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이러한 벽을 넘어 시대의 정신을 읽을 것을 요구하면서, 사회를 향한 교회의 개방(대화)과 자기 쇄신을 강조하였다.
사목과 교의의 관계를 바탕으로 교회와 세계(사회), 교회와 다른 교회 및 종교의 관계를 재정립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교회성과
세속성의 일치, 그리고 세상 안에서 영성과 세속성의 일치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아였다. 이로써 세상을 향하여 열린 교회상을 제시하였다.
교회는 자기의 영성적 사명에 따라 세속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의 전망으로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대의 어려움은 세속적 이며 동시에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시대의 아픔이 곧 교회의 아픔이라고 천명했다. <사목헌장>
1장은 이렇게 밝힌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도들의 심금이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도들의 단체가 인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 확산되는 교회의 보수주의 그런데 개방과 쇄신을 교회성의 상실과 교회의 세속화로 보고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강경한 보수의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그것도 공의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쇄신과 개방과 대화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가르침과 다르다하여 남을 이단으로 '단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가
경고 당하고, 프랑스의 가이오 주교가 교구장직을 박탈당하는 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이런 보수화 현상은 공의회가
개최되는 동안에 이미 예고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방과 대화와 쇄신의 의지를 보이며 기쁨과 희망을 던져준 만큼, 보수주의자들의 이
공의회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세상과의 대화(개방)는 그들에게 교회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공의회가 끝나면서 등장한 현 교황 바오로 2세는
다시 중앙집권화를 강화하며 제재를 가했고, 주교형제단 (Collegialitas espiscoporum)을 무력화하고 사라졌던 충성서약을
부활시켰다. 수많은 제동장치들이 돌연 다시 나타났고, 지난날의 교의나 제도를 끄집어 내어 '하느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교리와 금지령을 강요하며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신학자들에게 반격을 가하였다. 공의회 이후 칼 라너가 신앙교리성 위원회에서 탈퇴하고, 양항력 있는
공의회 신학자들의 이름이 명단에서 지워지기 시작앴다.(B. 헤링, '교회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 <교회 안의 새로운 사귐을
위하여>, 분도출판사 1997, 78쪽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권력에 종말을 고하고 대화와 자기 쇄신을 내세웠지만, 요즘의 현실은 '좋았던 옛 질서'를 그리워하면서 기존질서에 대한 순명만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과 타종교에 대해 입으로는 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안으로는 완고하게 방어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고, 교회 일치와 종교간의 대화를 가톨릭성의
상실로 보려 한다. 개신교 신학자 판넨베르크가 1994년에 나온 <가톨릭교리서>에 대하여 왜 그토록 불만을 표시하였는지 지금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반성해 봄직하다. 교회의 복고주의적 태도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여성사제를 금하면서 역사와 교의의 발전을 막은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주교형제단'을 강조하면서 지역교회 주교들의 위치를 찾아주고 막중한 책임을 넘겨주었으나 그것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역교회의
주교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기보다는 로마의 목소리에만 귀기울리고 있다. 그들은 로마의 귀가 온 세상을 다 듣는 것처럼 믿고 있지만, 현지에
있는 그들도 듣지 못하는 음성을 어찌 로마가 들을 수 있겠는가? 주교 임명권의 문제로 유럽의 교회가 잠잠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헤링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에 로마의 교구들을 돌보고 교황으로서의 과제뿐 아니라 로마 주변과 이탈리아의
대주교들과 서방과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 대주교들의 과제를 한손에 효과적으로 규합할 수 있을까? 어떻게 거의 5천명이나 되는 주교들을 임명하고
수많은 신학교 교수들의 승인을 감독할 수 있을까?"(헤링, 70쪽)
약간만 진보적인 견해를 보여도
-사실은 진보가 아닌 경우에도 - 경고를 하는 바티칸의 강경한 입장은 윤리와 교의에 대해서도 나타나지만, 로마와 제3세계의 관계에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힘없는 제3세계 교회는 교황의 우선적인 감찰 대상이 되곤 한다. 로마와 지역교회의 관계, 여성 사제, 사제 독신제 그리고
토착화의 주제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지역교회에서나 늘상 다루어져 온 문제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제기가 제3세계에서 나오면, 유독 문제를
삼으려 든다. '우리'에게 내려진 이번의 경고는 한국 천주교회가 제3세계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찌 갈릴래아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제3세계의 주교들은 그들이 영원한 로마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갈릴래아인 자기 교회의 입장을 모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역교회를 강조함으로써 제3세계 교회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나름대로 그들의 긍지를 갖게 해주었지만 그들은 이를 외면한다. 우리는 언제 한국인으로서
가톨릭인일 수 있을까?
쇄신을 거부하는 세력, 오푸스
데이(Opus Dei)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대두된 교회 안의 대표적인 보수 집단이다.(M. Walsh, : 오푸스 데이의 비밀
세계>, 기 춘역, 분도출판사 1995, 31쪽 이하 참조, 이하 괄호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 표시임.> 오푸스 데이는 스페인 사람
에스크리바(1902∼1975) 가 1930년에 창립하여, 막강한 정치력과 재력을 가지고 수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로마 교황청 관료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도 큰 조직이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오푸스 데이를 속인교구(屬人敎區)로 인가하면서 5대륙 어디에나 국제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고(1989∼1993), 한국에서도 고위성직자를 포함한 성직자와 평신도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오푸스
데이는 스스로는 평신도 단체라고 주장하지만 철저히 성직자 중심의 초보수적인 일종의 비밀조직이다.(16∼19쪽)
오푸스 데이는 무엇보다도
'쇄신'이라는 말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진다. 종교적 관용, 교회와 세계의 관계 재정립, 교회의 구조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쇄신을 꾀하고,
평신도 역할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론에 대하여 가장 큰 실망감을 표시한 단체가 바로 오프스 데이다.(139쪽) 이들은 개방과 대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며 남에게 '개종'을 권유한다. 회원들끼리는 우애 있고 '가족적' 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포섭'과 적대의 대상일 뿐 동료는
될 수 없다. 이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이다. 개방과 대화를 거부하고 개종과 충실만을 강조하는 그들은 가톨릭의
이름만을 빌렸을 뿐 '비밀'이 많은 신흥종교와 다를바 없다.(196쪽 이하; 209쪽이하 참조) 한때 오푸스 데이의 회원이었으나 나중에 탈퇴한
신학자 파니카가 오푸스 데이의 '반(反)문화 운동'을 경고한 것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34쪽)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사람들의 문화 속에
들어가지 않고 입교자들에게 자기들이 익혀온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모델을 주입시키는 것을 과제로 생각한다.(213쪽 이하) 이 세력이 지금 우리나라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주교가 자기 관할 지역의 어떤 수도원에 오푸스 데이 회헌을 관철시키려다가, 그 과정에서 여러
명의 수녀들이 성소를 잃게 한 일도 그 한 예이다.
공의회 정신에 대한 모욕
1998넌 1월 25일자
평화신문에 실린 전남대학교 정종휴 교수의 글 일부를 인용한다. 여기서 이 글을 인용하는 것은 유가 부수 10만이 넘는 평화신문의 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쇄신'이란 이름으로 교회 세속화가 가속화된다며 안타까와하고 있다.
<< 공의회 정신의
악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네덜란드 가톨릭 교회다. 1960년대 후반부터 네덜란드에서 전개된 교회 '쇄신'운동은 말끝마다 공의회의
정신을 거론하였다. '열린 교회', '평신도 교회'를 지향하는 이 쇄신 운동은 지금까지의 교회는 사회에 대하여 닫힌 교회요, 사제 중심, 하느님
중심의 교회였다고 치부한다. 그대신 저들은 '사회를 규범으로 하고, 사회와 함께 걷는 인간 중심의 교회'를 구호로 내세웠다. 그런 …(중략)…
가운데 공통의 교의와 계명으로 통일된 교회, 교도권을 존중하는 교회, 신앙의 유산을 소중히 보존하는 교회는 타도의 대상이 되고 만다. '반계층의
기초 공동체, 대의 민주제'라는 이데올로기에 교계 제도가 설 자리를 잃었다. 한마디로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온 가톨릭
교회는 붕괴되고, 교회는 분열과 세속성과 민족성과 유토피아적 성향을 특징으로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런한 쇄신은 한낱 정신 운동이 아니라
일정한 틀을 갖추어 점점 제도화되어 갔다. 네덜란드에서는 '교리'의 대대적인 개정, 교리 교육의 쇄신, 신학교의 정리 정돈과 교육 내용의
'쇄신', 전례의 '쇄신'이 뒤따랐다. 그 모습은 흡사 쇄신이라는 이름의 세속화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던 <화란교리서>는 바로
이 시기의 산물이다. …(중략)… 네덜란드 가톨릭 교회가 공의회의 '정신'과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서의 '쇄신'을 목청 높여 외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가톨릭 교회의 여지없는 파괴, 가톨릭 교회의 세속화, 프로테스탄트화이다. 이것이 공의회 정신의 발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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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오푸스 데이에서 볼 수
있듯이, '쇄신'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며, 가톨릭 교회가 쇄신의 이름으로 파괴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여기서 파괴되는 '가톨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더군다나 마지막 문장은 개신교에 대한 모욕이며, 공의회의 교회일치운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말이다. 정 교수는 1998년 2월 8일자
평화신문에서도 같은 논조로 네덜란드 교회가 공의회 정신을 등에 업고 쇄신의 칼을 휘둘렀다며 공박하고 있다. 그 예로 소신학교가 폐지되고,
대신학교에 사제지원자 아닌 평신도가 입학하고, 그 평신도 가운데 4할 이상이 여학생이며, 사제 독신제에 대해 반대하는 학생도 있고,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교수 점유율이 부쩍 늘고(그러면서도 그 자신은 서두에서 신학교에서 가르친 것을 행복한 경험이라고 밝히고 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여성교수가 있는가 하면 신심 깊은 교수는 줄어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반교회적 경향'이라고 단정한다.
정 교수에 의하면 "반교회적
경향이란 제도, 교의, 윤리, 전통, 성모신심, 로마 교도권에 대한 비판"이라는 뜻이다. 정 교수는 계속해서 "정통신앙을 배울 기회는 없어지고,
수업은 모조리 의문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략)… 정통신앙이나 신심수련을 추구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하여 경멸과 바보 취급을 받았다. 학습은 최소한, 전례도 최소한이라는 '최소한주의'가 원칙이 되었다.
…(중략) …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 미사참례하지 않아도 그만, 식사는 어디서 해결하건 자유이며, 외박도 자유, 고해성사도 자유.
뭐든지 자유다. 정통신앙 이외에 뭐든지 자유인 신학교에는 전체적으로 이교적인 분위기가 감돈다"고쓰고 있다.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수학한 일이 없는데도 마치 네덜란드 교회를 몸소 체험란 것처럼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배후가 누군지 알고 싶다. 그는 어느
근본주의자가 써놓은 글을 자기 체험인양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1998년 3월 8일자는 더욱
노골적이다. "공의회의 정신이라는 이름하에 밑으로부터의 교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의회의 '교회헌장'을
무시하거나 읽지 않는다. 헌장의 '정신'만 따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언은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포한 '교회'와 그 근본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되찾아준 공의회의 업적을 오히려 공의회를 '무시하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의 소치로 돌린다.
평화신문은 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 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는 상술적인 말로 책임을 모두 면할 것인가? 신문사 측에서는 다양한 찬반론의 글을
존중하는 것이 신문의 사명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이는 진리를 옹호해야 할 신문의 사명을 잊은 직무유기다. 더군다나 이 글이 일회로 끝나지 않고
연재로 실린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위의 경우는 한 예에 불과하다.
나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들
보수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신문에 버젓이 나타나는 것처럼, 공의회 정신을 부정하는 세력은
우리 교회 깊숙이에 여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며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이다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세상만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종교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난 역사가 보여 주었던 획일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그야말로 '세상과 인간을 위한 종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당면한 과제다. 세속화된 사회에 종교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계몽주의 이전, 세속화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일 수 는 없다. 종교성(영성)의 회복은 사회성과 종교성의 상호
침투적 일치를 실현하는 데서 가능하다.
필자는서두에서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인가?"하고 물었다. 답변은 "온갖 어려움에도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이다",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이 어야 한다"이다. 가톨릭성은
종교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톨릭 교회를 있게한 것도 사실은 이 가톨릭성 때문이다. 겉으로는 제도 교회,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온 것 같아도 -만일 그것이 교회의 전부였다면 이미 벌써 오래전에 교회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교회는 성령의 교회로서 가톨릭
교회였기에 오늘날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다. 가톨릭은 지금 우리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제다.
가톨릭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설립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하신 말씀의 원음(原音)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백성을 불러 모으신 행위와 부활하시어 베드로에게 '사목권'을 주신 행위를 한 맥락에서 생각할 때 옳게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베드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황과 주교, 성직자만이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온 하느님 백성이 사목의 과제를 실행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공의회가 그 폐막의
시간(1965) 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다시 제도로서의 교회만이 강조되고 있다. 베드로를 인격적으로 보지 못하고 제도적으로만 이해하고자 하고,
하느님 백성과 베드로를 다시 분리시켰다.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 그중에서도 주교, 교황, 바티칸과만 동일시 되고 있으며, 이들을 하느님 백성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보고자 한다. 이 위압적인 교회 이해 때문에 평산도들은 자신을 교회적 존재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자신을
교회로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로서 베드로적이고,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하느님 백성적이다.(이제민, '사목-교회생활의 토착화, 교회 생활의 근본',<신학전망>120호,
20∼22쪽)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교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교회 자체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며 참아내지 못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들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에 대해 공세적이고 불쾌하게 생각하기 전에 "자신은 지금 교회인가?" 스스로 물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판을 가하는 그들의 사제들도,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평신도들도 모두 그대로 교회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공의회의 정신이다. 권위는
이 경청에서도 나온다. 우리 '아래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교회를 읽듯이 그들도 우리 사제들을, 그리고 평신도들을 교회 대하듯 해야 한다.
베드로의 교회가 하느님 백성적이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가 베드로적이다. 베드로는 우리 모두이다. 당신들이 교회이듯이 사제도 교회이며
평신도들도 교회이다.
나도
교회다.
이 글을 막 끝냈을 때, 필자의
어머니께서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듣고 아셨는지 필자가 교회에 대해 무슨 큰 반역죄를 저지른 듯이 걱정을 하시면서 전화를 걸어 오셨다. 사실 필자는
이 때문에 이번 일을 어머니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칠순 중반에 들어섰는데 자신의 아들이 신부인 것을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참례하 고, 성무일도와 묵주신공 바치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계신다. 레지오 등 신심 활동도 지칠 줄 모르고 하신다. 어머니에게
교회는 전부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고 교회 때문에 자기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런 내가
반(反)교회적이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아내예요"라고만 말씀드렸다.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사실 그것은 다만 바티칸과
주교들의 민감한 반응일 뿐이다. 필자는 이 '어머니의 교회'를 사랑한다. 어머니 때문에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이 교회를 반역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평신도)의 교회는 필자(성직자)의 교회이고, 그것은 가톨릭 교회다. 그것은 결코 '그들'만의 것일 수 없다. 주교가 교회이듯이, 나도
나의 어머니도 교회다.
이 글을 쓰면서 두려운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티칸과 우리 주교들의 경고 때문이 아니라 필자가 지적한 교회, 성령의 교회를 나 스스로도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때문이다.
나는 진정 '교회의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가? 세인들로부터 "저 사람은 정말 '교회의 사람'으로 잘 살고 있구나"하는 평가를 받을 만하게 살고
있는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런 자책과 죄스러움 때문에 자신이 한 말과 글들이 무게를 잃을까
두렵다. 스스로는 교회를 잘 살고 있지 못하면서 남에게 교회적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 "주님 제 행동은 오류투성이고 당신과 제
친구들을 실망시켰지만, 제가 당신과 교회에 대해서 한 말은 옳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웃음거리인가? 때문에 기도한다. "주님, 당신의
교회에 누가 되지 않게, 교회적으로 살게 하소서. 착하고 거짓없이 살게 해주소서."
교회에 대한 비판은 곧 '나'에
대한 비판이다. 비판받아 마땅한 나도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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