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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이스라엘 성지 순례 길에서 (1988년 3월 28일)

 

오기선 신부님께서 "율리아! 내 생애에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함께 가자. 돈은 내가 낼게" 하셨다.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신부님께서 너무 섭섭해하시기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23일간의 일정으로 성지 순례를 가게 되었다.

순례 경비 104만원이 마련되었지만 절반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돈 52만원을 가지고 떠났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라. 성경은 바로 살아 있는 나의 말이니라"

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나는 평소에도 성경을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으로 여기며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래서 목적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내 침대 베개 위에 성경을 모셔 놓은 뒤 "예수님 수고 하셨어요. 이제 좀 편히 쉬세요"

하고 말씀 드렸다.

나와 함께 방을 쓰게 된 분은 서울에 살고 있는 마리아 자매님이었는데 60세 정도 되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도 방을 같이 쓰는 사람들끼리 앉도록 했는데 그중 나이가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한 할머니는 백금녀와 오천평을 연상케 할 정도로 뚱뚱한 몸매를 가졌다.

다행히도 우리 일행 중 가장 홀쭉하고 작은 분이 그 할머니와 짝이 되었는데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함께 앉게된 분이 워낙 뚱뚱하였기에 자리가 비좁아서 힘들어 하셨고 결국은 하루만에 병이 나셨다.

그래서 다음날은 서울에서 오신 모 회장님께서 뚱뚱한 그 할머니를 도와드리게 되었는데 그분 또한 병이 나셔서 며칠 후에는 성지순례를 마치지도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한국으로 되돌아 오셨다.

그렇게 되자 모두가 그분을 피했다.

같은 짝꿍도 그분 옆에 앉아서 가기를 피하였으므로 3일째 되는 날부터 나는 죄인들의 회개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그리고 잘못 살아왔던 내 삶에 대한 보속으로 그분과 함께 앉기로 자청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호리호리 편이였으나 그분과 함께 앉으려니 늘 쪼그리고 앉아야만 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면 밤 11시-12시경이었고 씻고 나면 1-2시였는데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날의 일정준비와 그 할머니와 함께 다니기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워낙 몸이 뚱뚱하여 걸음을 잘 걷지 못하시고 뒤뚱뒤뚱한 걸음걸이로 간신히 걸으셨기에 그분을 부축하고 다니다보면 자연히 일행보다 늘 뒤쳐지게 되었는데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자매들까지 언제나 "율리아 왜 그리 늦어? 공동체 안에서 율리아가 언제나 늦으니까 모두가 늦어지잖아" 하며 나를 질책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는데도 자매들은

"죄송하면 다야? 행동을 잘해야지" 하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겸손하게 더 내려가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감사해 했다.

하루는 오기선 신부님께서 나에게 기도를 주관하라고 하시어 순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주관했더니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기도가 너무 좋다며 칭찬을 했다.

그때부터 시기 질투의 마귀들이 사람을 통하여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마귀의 짓인 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기분 나빠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기도를 주관하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넘겨주자 그런 일들이 없어졌다.

"주님, 나의 사랑이시여!

그들에게 더욱 크신 사랑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래서 사순절을 맞이하여 저희들이 하고 있는 성지순례가 그냥 여행이 아니라 주님과 성모님의 높고 깊고 넓은 사랑을 체험하고 돌아갈 수 있는 은혜로운 성지 순례가 되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 상태를 생각지 않고 현세적으로 부족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져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그들을 위하여 바쳐주는 너의 희생과 보속을 통하여 좀 먹고 있는 그들의 영혼에 생기 돋아나게 하리니 더욱 잘 봉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