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할아버지인줄만 알았던 작은 예수님이 33살의
청년이라니. (1992년 3월 3일)
첫 토요일 철야기도회를 마친 뒤 오전 10시 본당 교중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오는데 본당 신부님
어머니께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셨다가 사제관으로 데리고 가셨다.
엉겁결에 따라갔더니 사목회 임원들에게 먹이기 위하여 음식을 준비했으니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나는 세상을 살면서 율리아같이 착한 사람은 처음 봤어.
율리아는 내 딸과도 같아, 아니 내 딸이야. 어서 먹어"
하시며 음식을 있는 대로 모두 다 내 놓으셨다.
나는 그 분의 사랑에 찬 권유에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 밥을 또 한 그릇 더
주시면서
"성모님 일 하려면 잘 먹어야 된다"며 권하시어 사랑으로 다 먹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원래 고통 중에 철야기도를 끝낸 뒤에는 잘 먹지 못하던 내가 넘치도록 먹을 수 있었으니 좋았고, 그
분 또한 나의 먹는 모습을 보시면서 그렇게도 기뻐하셨으니…
그리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자 택시 타고 가라며 2,000원을 주시기에 굳이 사양했더니 이번
한번만이라도 받으라고 하도 성화를 하셔서 계속 거절한다는 것 또한 애덕을 거스를 수 있기에 택시를 타면 1,000원 밖에 안 드니 1,000원씩
나누자고 하여 1,000원을 받아 가지고 나왔다. 그분은 본당에 오시기 전부터 방광이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소변이 마려워도 늘 잘 나오지를 않아 병원에도 가보시고 약도 드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주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서 그분의 방광을 완전히 치유시켜 주셨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나를 만난 지 불과 한달 남짓 밖에 안되었는데도 나를 무척 좋아
하셨다.
할머니의 손때 묻고 사랑이 듬뿍 담긴 그런 돈으로 택시를 타고 갈 수가 없어 '아마 이 돈이
누구에겐가 유용하게 쓰여질 거야'
하며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성당에서 20-3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작은 예수님이 돼지 비계 덩어리가 가득 담겨 있는
바구니와 더러운 보따리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누런 콧물이 떨어지지도 않고 대롱대롱 매달린 채 턱 밑에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내 입에서는 그
즉시
"오 주님 감사합니다. 또 작은 예수님을 보내주셨군요"
하고 할머니께서 주신 1,000원을 그에게 건네주며
"할아버지 일어나서 우리 집으로 가요" 하면서 손을 잡아끌었다.
비계 덩어리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와 보따리는 버리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슈퍼에 들러 그분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사서 먹인 뒤 집에 와서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커트
해 주고 보니 이게 웬일인가.
할아버지인 줄만 알았던 작은 예수님은 젊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사 가지고온 할아버지의 옷 대신 젊은이의 옷으로 바꿔 다 입혔더니 아주 건장한 체격을 지닌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를 보고 모두들 다 놀라워했다.
그러나 말을 전혀 못하니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몇 살인지를 알
수가 없어 전에 방지거씨에게 하던 방법으로 숫자로 알아보았더니
그도 33세였다.
혹시 무슨 병이라도 있으면 고쳐주기 위하여 조대병원에 가서 종합 진단을 받아 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날부터 계속해서 노래도 불러주면서 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서서히 엄마, 아빠와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나아져 갔는데 이름을 모르기에 그냥 요한이라고 불렀다. 주님께서 주신 이 사랑과 기쁨을
어찌 다 표현하리요.
요한이는 하루종일 웃고 다니며 내 볼을 만지고 부비고 안기고 하면서 마냥 좋아하였다.
10일쯤 지나서 요한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과 입고 싶어하는 옷을 사주기 위하여 광주 양동 시장에
데리고 가서 옷을 고르고 있는데 요한이가 없어졌다. 줄곧 내 손을 잡고 따라 다녔는데 그만 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뛰어 다니면서 사방을 두루 찾아다니던 중 어느 옷집 앞에서 큰소리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달려가 보니 젊은 청년이 고추를 내놓고 소변을 보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놀란 그들에게 그는 정상인이 아니라고 말하며 머리 숙여 죄송하다고 깊이 사과를 구한 뒤
지린내가 나는 그 점포 앞을 물 청소 해주고 다시 요한이를 데리고 옷 집으로 들어가서 필요한 옷들을 고르도록 했더니 자기 맘에 드는 옷을 여러
벌 골랐기에 모두 다 사주었다.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요한이는 매일 같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약 한 달쯤 지나자 거의 정상인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많이 흘리셨는데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있던 요한이가 깜짝 놀라며
구석의 먼지를 닦았던 걸레를 가져다가 성모님의 피눈물을 "쓱" 하고 닦아 버렸다 한다.
그 말을 듣고 경당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요한이는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 앞에 엎드린 채 큰 소리로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어머니 성모님, 잘못했어요. 이제 잘 할게 울지 마시고 피눈물도 흘리지 마세요" 하며 다시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를 듣고 경당 안에 있던 여러 명의 순례자들과 나도 그만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성모님 앞으로 가서 보았더니 피눈물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오른쪽 코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코와 같이
뻥 뚫려 있었고 코피를 많이 흘리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이는 거의 정상인으로 회복한 후부터 점차 많은 순례자들에게 「율리아씨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돈도 받아 냈을 뿐만 아니라 순례자들을 인솔까지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가 그러지 않도록 말렸지만 나만 보이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기에 때로는
순례자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하여 내가 요한이와 24시간을 같이 지낼 수도 없고 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이런 사정을 아시는 몇몇 신부님들께서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나겠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를 율리아씨의
친아들로 생각하고 오해들을 하고 있으니 차제에 나주 성모님을 잘 받아들이시고 지지해 주시는 평화의 마을 오 수영 신부님께 맡겨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셨다.
그래서 장 신부님께서 오 신부님께 전화로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받아 주시겠다고 하시어 마음이 매우
아프기는 했지만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내린 결정이니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이를 오 신부님께 맡기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불우한 이웃 형제인 작은 예수님들과 함께 지내고 싶지만 내 환경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음에 가슴이 몹시
쓰라리고 헤집는 아픔이었다.
지금도 젖먹이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 주님 내 사랑이시여!
저의 이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계시나이까.
님께서 지고 가시는 십자가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진대 이렇게도 아프고 또 아프나이다.
이제는 요한이를 당신께 맡겨드리오니 당신께서 예쁘게 기르시어 당신
영광 위하여 일하는 도구 되게 하소서.
그래서 요한이가 영적 전쟁에 승리하여 당신께 온전히 향유가 되길
바라옵나이다."
"그래, 그래,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최선을 다하여 불쌍한 네 이웃에게 사랑과 관용을 베풀었기에
그는 정상인이 되어 네 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란다.
딸아! 한 영혼이라도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귀여운 내 작은
영혼아!
너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나와 일치되어 있기에 보이지 않는 내
사랑의 진리가 너를 기쁘게 해 줄 것이니 모든 것을 나와 내 어머니께 온전히 맡기기 바란다.
그러면 나의 진리 안에서 풍성한 자유를 누리면서 성덕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모든 일에 기쁨과 사랑과 평화로 생기 돋아나게 될 것이다."
"오, 나의 주님!
당신은 부족한 이 죄녀의 님이시자
의사이시나이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고쳐주시고 수리하여 주시 오며
어루만져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어 온전히 치유해 주시므로 다시 부활의 잔을 받아들고 주님 영광과 알렐루야를 노래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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