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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분은 누구일까? (1981년 5월 1일)


광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북동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는 시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계속 묵주기도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버스터미널 가려면 어디서 갈아타야 되나요?" 했더니 어느 분이 "여기서 내리세요" 하기에 빨리 내리려고 하니 내가 늦게 나왔다고 화가 난 안내양이 사정없이 밀쳐 버리는 바람에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 때는 승용차가 별로 없을 때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시내버스 안은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문이 하나만 있어서 먼저 내린 다음에야 올라타야 되는 복잡한 때였다.

내가 내린 정류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세차게 밀쳐져서 꼬꾸라지듯 엎어진 나는 땅바닥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겨우 일어나서 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내 밑에 거지인 듯 싶어 보이는 한 노인이 철지난 두꺼운 헤어진 가죽 잠바를 입고 엎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그분을 만져 보았더니 맥도 뛰지 않았고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주위에 둘러 서있는 많은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십자성호를 크게 긋고 기도를 했다.

"예수님, 저는 죄인의 몸입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 하나만을 위하여 수고를 해오시고 저의 시댁을 위해서도 희생해 오신 저의 친정 어머니를 다치게 한 시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지금 너무 급하니 이 죄인의 손을 축복해 주시어서, 아니 죄인인 제 손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어 이분이 살아나게 해 주세요. 네?" 하고 그분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싸늘했던 몸이 따뜻해지더니 맥이 뛰기 시작했는데 이윽고 눈을 뜨고 부시시(부스스)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 죄인의 기도를 들어 주셨군요' 하고 감사를 드리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에 기쁜 마음으로 또다시 감사를 드리면서 저쪽에 내팽개쳐져 있던 그분의 지팡이를 주워드리고 여기저기 묻은 먼지를 털어 드렸더니 "됐어, 됐어, 이제 됐어" 하시면서 나의 왼쪽 어깨를 세 번 툭툭 치셨다. 그 바람에 내 어깨에는 흙먼지가 많이 묻게 되었는데 내 손에도 흙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기에 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분에게 물었다. "집이 있으세요?" "응" "집에 가는 시내버스 있어요?" "응" "몇 번인데요?" "33번" 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한 뒤 곧바로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