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독 묻은 음란의 화살
(1987년 11월 29일)
광주 D자매님이 자기 집에 꼭 한 번만 들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여 광주 시댁에 다녀오는 길에 그 집에
갔다가 나주에 내려오려는데 그 자매님이 "밤은 위험하니까 나주까지 데려다 줄게"
하여 차를 탔더니 자매님이 아닌 형제님이 운전을 했다.
평상시에 그분들은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에게 무척이나 잘 해주시던
분들이었다.
그 형제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얼마쯤인가 갔을 때
"율리아 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하시기에 시계를 보았더니 밤 9시였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 이분에게는 9시가 어떤 특별한 추억이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그분의 손이 내 허벅지로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손을 치웠더니 이제는 가슴으로 오는 것이었다.
내가 손을 확 뿌리치면서 "도대체 이것이 무슨 짓이에요?"
하고 실랑이하는 바람에 1차선을 타고 가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갈지자로 왔다갔다했다. 그는 나를
꼼짝 못하게 할 심산으로 "네가 움직이면 사고난다"고 위협하면서 계속해서 나를 만지려고 하였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 내리려 했는데 바로 그 순간 하마터면 뒤에서 오는
차에 치일뻔 했다.
그는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오른쪽에 차를 세웠다.
그는 그 와중에도 차를 세우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또다시 나를 붙들고 입을 맞추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를 사정없이 밀쳐버리면서 곧바로 차에서 뛰어 내린 뒤 나주를 향하여 그대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그가 이내 나를 쫓아와서 붙들었다. "그 음란한 손 절대로 내게 대지 마세요" 하고
소리 쳤더니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사과하겠다. 미안하다. 나주까지 데려다 줄 테니 우선 차를
타거라" 하여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뒤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나주까지 걸어가다가 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믿었던 그분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황당한 나머지 화가 나려고도 했지만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 내가 이 자리에 있었음으로 인하여 그분이 이와 같은 죄를 지은 것이니 이 역시도 내 탓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런 일이 나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누구에게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고 생각했다.
평소에 믿었고 연세도 드신 분이었기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리라고 어찌 꿈엔들
생각했으랴.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실
주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 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분의 영혼 구령을 위하여 말씀드렸다.
"신부님께 찾아가서 고해성사 보십시오" 했더니
"나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런데 무슨 성사를 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아, 딸에게 뽀뽀도 못한다냐? 그것도 성사 봐야 되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보셔야지요. 그리고 설령 아버지라 하더라도 다 큰딸의 가슴을 만지려는 아버지가 과연
있을까요? 더구나 우리는 부녀지간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설사 저를 친딸로 생각했다 할지라도 오늘 일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음란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6계명을 거슬린 것이므로 간음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루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상으로 너무 늦었으니 내일 고해성사 보시고 새로운 분으로
태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성모님 사랑 안에 늘 화목한 성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말해
주었다.
그는 계면쩍은 웃음을 웃고 돌아갔고 그 이후로는 그를 만나는 일이 다시는 없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님이시여!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이 죄녀 오늘도 또 이웃이 죄지을 기회를
주고 말았어요.
그러나 새로운 결심으로 이 비천하고 보잘 것 없고 미약한 존재가
회개의 눈물로써 당신의 고귀한 사랑 앞에 고개 숙여 나아갑니다.
사랑으로 희생하고 보속하며 고신 극기로 새로워져,
깨끗한 영혼으로서 님을 따라 완덕을 향해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을
걸어 당신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렵니다.
하오니 저 때문에 독 묻은 욕정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 채 이리처럼
달려들려고 했던 불쌍한 그 영혼이 회개하여 당신 품에 안기는 축복을 받게 하시어 다시는 그런 죄악에 빠지지 않고 주님 영광 위하여 일하는 도구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힘이 들었겠지만
그러나 네가 나에 대한 완전한 신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의탁하여 열렬한 사랑과 희생과 보속으로써 봉헌하며 죄의
노예로 끌려 들어가게 하는 독 묻은 음란의 화살을 피하도록 그를 일깨워 주었으니 그는 이제 음란죄를 부추기는 마귀와의 합세에서 멀어질 것이다.
세상 많은 자녀들이 그런 추한 행위들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기에 매일같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흙을 뒤집어쓴 야수와도 같이 욕정의 늪에 빠져 가장
비루한 것들을 추구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에게 수반되는 모든 고통들을 온전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봉헌해 주기 바란다.
그러면 성난 파도같이 밀려드는 무분별 속에서도 많은 영혼들이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 소중한 내 작은 아기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네 작음으로 항상 내
품안에 꼭 안겨 예쁘게 자라나는 향기 나는 꽃이 되기 바란다."
"오, 오 나의 사랑, 나의 보배로운
빛이시여!
당신은 부족한 이 죄녀에게 사랑의 갑옷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더러우면 친히 벗겨 깨끗이 씻어 주시고 크신 사랑을 베푸시고 젖먹이처럼 달래시어 님의 품에 안아 주셨나이다.
이 몸 온전히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사용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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