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기적의 샘물 주시기로 약속하신 날 (1990년 1월 18일)
1989년도 추운 겨울,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님께서
"딸꾹질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딸꾹질이 계속 나오니 율리아가 와서 기도 좀 해 주어야
되겠다" 고 하시어
고통 중이었지만 곧바로 주교님이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갔다.
내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로지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의탁하며 기도를 드렸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 지 주교님 친히 부르시어 대리자로 택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한마디 말씀으로 홍해를 말리시고 깊은 바다를 마른땅으로 만드셨던 그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오늘 우리 주교님께도 내리시어 오로지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하여 주소서" 하며 기도했는데 바로 그 순간 주교님의 딸꾹질이 치유되었다.
그런데 1990년 1월 9일 주교님께서 "딸꾹질이 또 계속해서 나오니 율리아가 와서 기도를 좀 해
주어야겠다"며 전화를 하셨다.
그 당시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나주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라
주교님께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나를 기다리다 못해 지 주교님께서 직접 나주에 내려오시어 우시는 성모님을 모셨던 수강아파트
301호에 머무르셨다.
나는 매일 같이 병원 외출증을 끊어 주교님께서 집전하신 미사에 참례한 뒤 함께 기도를 했는데 주교님의
딸꾹질이 다시 치유되었다.
주교님께서는 그 후에도 계속 머물고 계셨는데 주교님을 뵙기 위하여 매일같이 외출증을 끊어서 나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예 퇴원을 하였다.
주교님께서 좋은 물(약수)을 잡수시길 원하셨으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여러 곳에 알아본 결과 대구의 비슬산 약수가 좋다고 하여 나는 1월 18일 12살 된 막내아들, 루비노 회장님과 그의
13살된 딸, 박 안드레아 형제 이렇게 다섯이서 대구 비슬산을 찾아갔다.
막상 비슬산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도 날씨려니와 비슬산은 높고 험준한 산이었기에
같이 간 일행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될 나와 함께 그 높은 곳에 가서 물을 길어 가지고 내려온다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산밑의 마을을 찾아가서 남자 분들에게
"물을 지게로 좀 길어다 주면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겠다" 고 했더니 "에이 여보시오, 그 길이 얼마나
험하고 높은데 물을 한 통씩이나 길어 온단 말이요. 그것도 이 엄동설한에… 돈 좀 벌려다가 병신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한답디까? 우린 그런 일
못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몇 사람을 붙들고 사정해 보았지만 결국 아무도 나서 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아니 내가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주님께서 택하신 주교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주저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비록 나는 지금 병원에서 허리디스크에다 5번 척추는 아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판정을 받은 몸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우리 주교님 위하여 물을 길어 가지고 내려오다 죽는다해도 그 물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여 주교님께서 건강해지셔서
주님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실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주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갈바리아를 오르신 것처럼 나는 오늘 남자 일꾼도 못한다는 일을
함으로써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자' 하는 생각이 번득 떠올라 물통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춥기도 했지만 험하디 험한 산길을 두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라가자니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 올라가고 엎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 올라가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온 힘을
다한 끝에 드디어 약수가 나온다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한말들이 물통에 물을 하나 가득 담으면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신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기적으로 이 물을
주님께서 흘려주신 오상의 성혈과 일곱상처의 보혈로 변화시켜 주시고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과 젖으로 변화시켜 주시어 주교님께서 이 물을 마시고
씻으심으로써 영혼 육신이 온전히 치유 받아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찬미가 되며 우리 모두는 감사가 마르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기도했다.
이윽고 한말들이 물통을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위험했다.
내려오는 길에 물통을 머리에 인 채로 수십 번 넘어질 뻔했지만 물통을 양손으로 꽉 움켜잡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내려오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사랑 자체이신 우리 주님께 희생을 바쳐 드릴 수 있다는 기쁨만이 충만했다.
한 발짝, 한 발짝 내 딛을 때마다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주교님의 영육간 건강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자녀들이 주님께서 가신 갈바리아의 그 길을 따라 봉헌된 삶을 영위하고 천국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힘든 발걸음을 바쳐 드리니 어찌 기쁨이 충만하지 않으리.
그 날 가슴이 터질 듯이 고통스러웠던 나는 물을 이고 오느라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고 목과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파 다리마저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때 내가 만끽한 참으로 행복했던 그 마음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할 수
있으리.
드디어 물을 이고 산 아래까지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아! 이제 우리 차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힘을 내자' 하며 힘겨운 발걸음이었지만 조심조심 내딛었다.
평지에 다다르니 걷기도 훨씬 수월했고 앞도 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발을 땅에 딱 붙이고 감각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걸었는데 갑자기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무엇엔가
발이 걸리는 바람에 물통과 함께 사정없이 앞으로 엎어졌다.(걸려 넘어질 만한 물체가 아무것도 없었음)
꽁꽁 언 몸으로 땅에 그대로 나동그라졌으니 굉장히 아팠지만 아프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서 머리에 이고 온 한 말들이 물통이 풍비박산이 나 있었고 물은 모두 다 쏟아져
온 신작로를 다 적시고 있었는데 날씨가 얼마나 추웠던지 이내 얼어붙기 시작했다.
고통 중의 몸으로 1월의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에 떨면서 그 험한 산을 내려왔는데 물까지 뒤집어 쓴
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엎어져 큰소리로 외쳤다.
"오, 사랑하올 나의 주님,
당신은 이 죄녀를 그리도
사랑하시나이까.
그 많은 고통과 순교하는 마음으로 가져온 이 물을 살을 에이는
듯한 북풍으로 움츠려 들은 육신 위에 쏟아주심은 제 영혼의 추한 때를 씻어주시기 위함인가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이미 이 물을 축복해
주셨사오니 이 물의 효과가 주교님에게 전달되게 해 주옵소서.
당신께서 돌아가실 때 흘리신 피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쏟아져 내린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나이까.
그래서 당신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어 극복하심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승리를 가르쳐 주셨기에 이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 있나이다.
오! 내 사랑, 나의 님이시여!
당신은 슬픔도 기쁨으로 승화시키시는 나의
보배이시나이다.
심오한 진리이신 당신 안에 숨쉬며 활동할 수 있는 가녀린 이
죄녀, 뼈가 다 부서지고 으스러진다 한들 어찌 아프오리이까.
고통이어도 기쁨인 당신,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구하여 주시는
당신께 오직 감사를 드리나이다."
"오! 오, 사랑하는 내 귀염둥이,
작음 안에 더욱 낮아지는 내 작은
영혼아!
나는 오늘도 너의 아름다운 봉헌으로 큰 기쁨과 위안을 받는다.
마귀는 언제나 나와 일치되어 있는 너를 공격하여 쓰러뜨리려고 온갖
기승을 부리지만 오늘도 너는 불평하거나 원망치 아니하고 내게 영광을 돌리며 마귀로부터 승리했구나.
나는 네가 구하는 은총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현존으로 특별한
사랑을 내려주겠다.
순수하고 단순한 너의 그 열렬하고도 지고한 사랑을 그 누가
흉내인들 낼 수가 있겠느냐.
나 항상 너와 함께 할 것이니 그대로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면 내가 네게 주는 사랑과 축복은 실로 헤아릴 길 없으니 너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이 아니더냐.
네 항상 순교 정신을 가지고 나를 따를 때 언제나 영적 투쟁에서
승리를 얻게 될 것이며 많은 영혼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함께 간 일행들이 물을 뒤집어 쓴 채 언 땅에 엎어져서 주님께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나에게 울면서 다가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모두들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갑시다"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포기하고
갈 수는 없으니 다시 물을 길러 올라가야겠다" 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아이고, 그 몸으로 어떻게 그 험준한 산을 다시 올라가.
더군다나 조금 있으면 해가 질텐데 제발 고집 부리지 말고 그냥 돌아갑시다" 하고
만류했지만
나는 끝내 시내에 나가서 물통을 다시 사왔다.
아이들은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젖은 옷이 얼고 있었지만 또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젖은 몸을
파고드는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도 바람이려니와 꽁꽁 언 발을 내딛을 때 돌부리와 나무에라도 부딪치면 마치 망치로 엄지발가락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가시밭길만 하랴' 하는 생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우리 주님의 2000년전 그 시간으로 돌아가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에 함께 동참하면서 내딛는 발걸음 걸음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봉헌하니 내가 가는 이 길은 고난의 길이 아니라 행복의 길이요, 기쁨의
길이요,
환희와 감격의 길이었다.
이윽고 한말들이 물 한 통을 머리에 이고 보름이 아닌데도 환하게 비춰주시는 달빛을 따라 산길을
내려오니 이내 캄캄한 밤이 되었다.
"오, 주님! 나의 사랑, 나의 전부이시여!
부족한 이 죄인, 오늘이 있기까지는 온전히 가치 있는 당신의
사랑의 힘이었나이다. 많은 정성과 사랑을 바쳤다해도 그것 또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돌보셨음이나이다.
부족한 이 죄녀를 당신께서 이토록 극진히 사랑하셨음같이 저도 가장
미소한 영혼들에게 많은 사랑 베풀게요."
"그래, 내 사랑하는 딸, 내 작은
영혼아!
내 사랑을 느끼는 그 마음 안에서 나는 사랑의 기적을 행할
것이다.
너는 어려서부터 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이웃에게 사랑과 관용을
베풀면서 살아왔다. 물론 예비된 길이었지만 네가 자유의지로 뿌리쳤다면 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너는 고통중일 때에도 네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이웃의 유익만을
생각하여 좋은 물을 길어다 주기 위해 루르드에서도,
또 이곳에서도 전심을 다하여 순교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랑과 희생이
동반된 고통을 나의 십자가의 고통에 일치시켰으니 내 어찌 보고만 있겠느냐.
그래서 나는 내 어머니를 통하여 머지 않은 장래에 네 가까운 곳에
사랑과 은총이 흘러 넘치고 영혼 육신이 치유될 수 있는 기적의 샘물을 줄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이 죄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래, 바로 그것이다. 너는 매순간 모든 영광을 나에게 돌리기에
내가 너의 그 마음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란다.
나에게 향한 너의 열절한 사랑의 말들은 내 영광과 알렐루야를
노래하기 위하여 작곡한 천상의 노래보다도 훨씬 더 감미로워 세상 죄악으로 인해 상처난 내 성심은 많은 위로를 받고 기쁨이 차
오른단다.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언제 어디에서나 나의 화관이 되고자 열망하는 내 작은
아기야!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은
너는, 내 어머니와 나의 곁에 서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건곤한 마귀들은 너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온갖 계책을 다
사용할 것이니 언제나 깨어서 나와 함께 생활하자꾸나."
"오! 사랑하는 나의 님, 나의 운명, 나의 생명이신
주여!
오늘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베풀어주신 이 놀라운 사랑을
영원히 내 가슴 속 깊이 새기고 간직하며 따르리니 나를 온전히 소유하시고 당신의 뜻대로만 사용하소서.
해와 달과 별과 온 우주와 당신이 지어내신 지상 모든 피조물과
함께 영원히 당신만을 찬미하며 흠숭하리니 온 세상에 당신의 진노가 아닌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은총만이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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