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성모님 메시지와 징표들의 교리적 및
신학적 내용들
만일 어떤 계시가 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따라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의 일부라면, 이러한 계시는 교회의 공적 가르침에
전혀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잘 실천할 수 있도록 긍정적이면서도 보조적인 공헌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830년에 성모님께서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발현하시어 주신 메시지와 기적의 패는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 이 계시를 통하여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무염 시태에 관한 신덕 도리가 1854에 발표되기 전에 이 도리의 진실성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또, 무염 시태
교리가 발표된 후인 1858년에 루르드에 오셔서 다시금 확인을 해 주신 것 역시 성모님의 참된 발현, 메시지, 징표들이 얼마나 교회의 가르침과
잘 부합되며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빛나게 하여 주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주에서 주시는 메시지와 징표들에는 교리적이며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풍부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주로
(1) 삼위
일체 도리에 관련된 것과, (2) 천주 성자의 강생 및 성체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의 계속, 또 교회를 통하여 계속되는 당신의 구속
사업에 대한 것과, (3) 교회의 구성원들이 세상 구원을 위한 구세주의 고통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과, (4) 인류 구원 역사에
있어서의 성모님의 필수적인 역할들에 관한 것입니다.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인 것처럼 너희 모두도 하나가 되어라"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피눈물을 흘리시던 1986년 10월 19일에 주신 메시지)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위의 메시지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 주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시작하시기 바로 전에 바치신 기도의 내용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또한 아버지 안에 있음과 같이 ...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한 복음 17장 20-22절)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창세기 1장 26- 27절).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처럼 영혼이
있어서 지성과 자유 의지를 구사할 수 있으므로,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선택하고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죄로 인해 우리의 인간성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성과 자유 의지를 사용하는 능력이 완전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의 무질서한 충동들에 대해 나약하며, 또 외부로부터 오는 마귀와 세속의 유혹에 대해서도 약합니다.
우리의 본성이 나약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지성과 자유 의지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우리 일생을 통하여 우리가 마음 속으로, 말로, 행동으로 내리는 모든 결정과
선택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본성의 나약함과 제한성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성 은혜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은혜로 인하여 비로소 우리가 초자연적인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개념의 일부만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계실 뿐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신데, 세 분이 하나로 일치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 분이 하나의 위격으로 합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세 위격으로 계시나, 무한하신 사랑 때문에 세 분이 완전하신
하나의 신성(神性)을 공유하심으로써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들 사이의 사랑과 신의가 얼마나 참되고
깊은가에 따라서 그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위격 간의 사랑과 거리에는 역(逆)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한할 때에는 거리도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성부와 성자 사이의 무한하신 사랑 때문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며, 두 분 사이의 무한하신 사랑이 또 한 분의 위격을 이루어서 성령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외로이
정적(靜的)으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세 분 사이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과, 생명력과, 사랑으로 영원하고도 무한히 강력한 상호 작용 중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을 본받아, 외톨이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 살게끔 창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사랑과 화목과 봉사와 신의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 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또 가정 외에도 각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공동체들, 즉 학교, 직장, 수도회, 사회 단체, 정치 단체, 국가, 세계 등의 일원으로서 살며, 그 공동체들 안에서 사랑과 화합을 향해
노력하도록 뜻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다른 나라들과 다른 인종들 사이의 일치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모두의 어머니이다. 국가와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손잡고 나에게 가까이 오너라." (1992년 12월 14일)
"이 세상 나의 모든 자녀들이 국경과 민족과 분파를 초월하여 서로 화합하고 일치하도록 너희 모두가 사랑의 힘을 발휘한다면 교회가 쇄신되고
빛나는 새로운 성령 강림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 세상은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다." (1994년 9월 24일)
인간의 사회성의 궁극적인 실현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속하여 생활하고 성장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 즉 교회의 일원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우리 인간 본연의 잠재성을 가장 충만히 현실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지성과 자유 의지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성삼위 안의 무한하신 사랑과 화합의 원리를 우리들이
지상에서 살면서 최선을 다해 본받아야 할 목표로, 우리들 사회 생활의 원리로 설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랑과 화합의 원리가 자동적으로 우리 생활 안에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리를 실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 나가야 할 인생의 길이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또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메시지와 징표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여하신 이 지극히 아름답고 고귀한 원리와 사명을 깨우쳐 주고
계시며, 우리가 서로에게 애덕과 포용과 겸손과 용서와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일치를 이루어 나가도록 거듭해서 간청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형제 자매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과 전교 활동을 하는 것 역시 가장 고귀한 애덕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자기 영혼에 해를 입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오 복음 16장 26절 참조).
2. 교회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구속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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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느님을 거역한 인간들의 죄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역시 무한히 높으시고 엄위로우신 분의 보속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고 인간들에 대한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로 인하여 천주 성부께서는 당신의 독생 성자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셨습니다. 천주 성자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은 지극한 겸손의 표양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는 인간성을 취하시면서 천주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그 분은 영원히 인간이시자 천주님이십니다.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인간의 세계에 오심으로써, 그리스도께 서는 인간들을
비참으로부터 구출해 주시고 그들을 하느님의 참 자녀이며 참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초성 생명 즉 상존 성총을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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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시켜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은총으로 인하여 비로소 인간들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며, 하느님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하느님과 사랑 안에서
교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수난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어 천주 성부 오른 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나, 지상에
남은 당신의 제자들을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며 천주 성신께서 교회를 인도하게 하셔서, 당신의 현존 과 구속 사업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연장(延長)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통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모든 이들과 항상 실제로 함께 계실 수 있으며, 7 성사를 통하여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계시된 진리들을 당신 자신의
신적(神的)인 권위로써 오류 없이 보존하고 가르치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이 교회는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구성원들이 증가되고 성화되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것과 같은 길, 즉 애덕과 겸손과 자아 포기와 보속의 길을 걸어야 하며, 이를 자신들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생명력을 받아서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고 성화되면서,
보다 많은 인간들을 하느님 나라의 참된 시민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세상 끝날까지 수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계획입니다. 또, 이것이 왜 교회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하는 이유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계속되고 있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현존과
구속 사업의 이 막중한 현실에 대해 우리들이 눈을 뜨도록 많은 메시지와 성체 기적 등의 징표들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아들 예수는 하늘에 계시지만, 지상에서는 엄위와 인성을 감추시고, 그의 몸, 그의 피, 그의 영혼, 그의 신성으로 현존하시니, 성체
안의 예수는 너희를 기도의 절정에 도달케 할 것이다." (1996년 1월 7일)
"신자들은 교황과 추기경, 주교, 모든 사제들에게 순명하기 바란다. 그들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들이며, 죄로 더러워진 무수한 영혼들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하여 내 아들 예수의 능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내 아들 예수도 그들에게 순종하여 하늘에서 부터 세상에 내려온다."
(1987년 6월 29일)
"너희가 온전히 맡기고 나를 따를 때 강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일치가 성체의 신비에서 계속되고 또 계속될 것이며 이 일치야말로 유래
없는 사실이어서 그 누구도 묘사할 수 없단다." (1995년 7월 2일)
주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의 대리자인 교황을 비롯하여 모든 추기경, 주교,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리고 끊임없이 희생하고 보속하여 그들이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도록 더 많이 봉헌하여라. 극기와 청빈으로 나를 따르기 바란다. 나의 모든 것을 이미 그들에게 맡겼으니 그들이 하는 예식이 바로 내가 하는
예식이니라." (1988년 6월 5일)
3. 십자가를 통한 구원
그리스도께서 남겨 주신 가르침들은 얼른 보면 역설적(逆說的)인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끊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루가 복음 9장 23절).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 이는 잃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잃으면 찾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6장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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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첫째가 되려고 하면 말째가 될
것이며, 말째가 되려고 하면 첫째가 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9장 34절).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 5장 44절).
그리고, 우리를 천국의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십자가의 교훈과
표양은 세상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주로 원하고 경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들의 가치를 이 교훈과 표양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에 와서는 성인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성인들은 세속적인 업적들로 인해서가
아니라 겸손과 자아 부정과 애덕의 실천을 통하여서 높은 성덕에 이른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가 시대에 따라서 변질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편리를 위해서 뜯어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도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고, 희생과 자아 부정은 아직도
참된 사랑의 유일한 징표입니다.
보속을 위한 고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주에서 주시는 메시지와 징표 전반에 걸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당신의 한없는 사랑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계속하여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리는 데 대한 슬픔과 고통 때문에 나주에서
700일 간 눈물과 피눈물의 징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주님과 성모님께서 받으시는
고통에 동참할 것을 간청하고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나주에서 계시되고 있는 깊은 슬픔과 고통의 징표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리스도를 잘 따르다가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겁을 먹고 달아나버린 수많은 이들 때문에 주님께서는 더욱 심한
고통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의 수난을 만류할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까? (마태오 복음 17장
21-23절 참조)
주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와 보속의 삶으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대는 되도록이면 십자가가 없는 구원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보속이 없는 평화와 기쁨을, 희생이 없는 사랑을 추구하려는 것
같습니다.
미사 성제(聖祭)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그냥 즐거운 축하 예절로만 생각하려는 것 같습니다. 오랫 동안 고해
성사를 보지 않은 채 영성체에 임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며, 성인들의 전구(轉求)를 구하며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속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신심도 약해졌습니다.
또, 교회의 모든 가르침들을 순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풍조 역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편리를 위하여 하느님께로부터의 가르침들을 희석(稀釋), 중화(中和)시켜 놓고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이 점에 대하여 매우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죄인의 회개를 위한 고통에 동참하라고
하시는 성모님의 호소가 나주 성모님 메시지 전반에 걸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이러한 성모님의 말씀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역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는 꼭 같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보속(輔贖)의 짐을 지고 있노라. 그러니 너는 다른 영혼을 위하여 짐을 져다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이 너무 많다. 배은 망덕하는 무수한 영혼들의 죄를 배상하기 위해서 보속하고 기도할 때 구원될 것이다." (1987년 6월 29일)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 함께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기도와 희생으로 보속하여 성부의 의노(義怒)를 풀어드려야 해요. (前 나주
본당 주임 박 요한 신부님께." (1987년 10월 19일)
"십자가 위에 높이 쳐들려 자신을 희생으로 아름답게 봉헌하는 영혼은 바로 주님을 현양(顯揚)하는 영혼이며, 나의 가장 가까운 작은 영혼이다."
(1991년 9월 17일)
4. 인류 구원을 위한 성모님의 역할
인류의 첫 조상이 범죄할 때의 상황과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때의 상황과의 사이에 는 상당히 의미깊은 상사점(相似點)이 발견됩니다.
인류의 첫 범죄 때에는, 먼저 악한 천사인 사탄이 여인, 즉 하와에게 접근하여 불복종의 죄에로 유혹하였습니다. 유혹에 빠진 여인은 곧
아담을 설득하여 같은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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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의 경우에는, 좋은 천사, 즉 성 가브리엘 대천사가 먼저 여인, 즉 마리아께
접근하여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렸을 때, 마리아는 겸손하고 사랑에 찬 순명으로 하느님의 성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께서는 천주 성령에 의해 구세주를 잉태하였으며, 이로써 구세주께서 천주 성부의 뜻에 완전히 순명하여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실 수 있도록
문을 열으셨습니다. 구세주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에 찬 보조 역할은 천주 성자의 강생의 첫 단계, 즉 잉태와 탄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구세주의 지상 생활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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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즉 잉태에서, 탄생, 성장을 거쳐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하시고 협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보살펴 주셨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며 성령 강림을 맞으셨습니다.
(사도 행전 1장 14절).
이 성령 강림은 가톨릭 교회의
정식 출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그리스도의 참되고 살아 있는 연장(延長)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구성원 즉 지체(肢體)로 삼고
있으며, 천주 성령으로 호흡하고, 또 마치 포도 나무 줄기에 가지들이 연결되어 줄기와 가지에 같은 생명이 흐르듯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있는 단체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와 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또한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께서 2천년 전에 아기 예수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것처럼 지금도 우리의 참된
영적인 어머니로서 교회의 구성원들을 영적으로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시고 계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 대하여 성모님께서 참으로 영적인
어머니가 되심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 복음 19장 26-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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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정에서든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이 자녀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듯이 성모님의 손길은 교회, 즉 하느님의 가정에 속한 우리
모두의 영적인 성장과 안전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점들이 성모 신심의 약화와 동시에 발생해 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천상 어머니를 멀리할 때마다, 천주님의 강생 도리와 이 강생과 구속 사업이 교회 안에서 엄연히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는 강생하신 천주 성자의 진정한 보호자시며 그릇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의 모든 은총이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흠숭하고 따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실 뿐 아니라,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분께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내리신 최대의
선물이십니다.
5.
성모님께 관한 신덕 도리들
교회 역사의 초기에도 많은 이단들이 발생하여 신자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해
갖가지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었는데, 더러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인정하되 신성(神性)은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더러는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인성을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항하여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으로
인간이시며,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한 분의 위격(位格), 즉 천주 성자의 위격 안에 완전히 합하여 계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계시된 진리들을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마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세주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을 흐려놓는 데 첨가하여 성모님께 대한 개념에까지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사람들의 구원을 방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는 즉시 그들의 천주 강생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성모님을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천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없다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되며, 천주 성자께서 이 세상에 강생하셨다고 하는 신덕 도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성모님께 관한 이러한 이단들에
대해서, 교회는 성모님께서 천주의 모친이 되심을 엄숙히 선언하였으며(에페소 공의회, 431년), 이어서 성모님께서 평생 동정이심을 확인하였고
(라테란 공의회, 649년), 성모님의 무염 시태, 즉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교황 비오 9세, 1854년), 그리고 성모님의 몽소 승천
도리를 확인 발표하였습니다(비오12세, 1950년).
나주에서 주시는 메시지에는 성모님의 우리 구원을 위한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필수적인 역할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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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모님께서 은총의 중개자이시라는 점,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고 탄원하시는 분이시라는 점, 그리고 인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도우시는 분, 즉 구속의 보조자 또는 공동 구속자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은 아직 교회의 신덕 도리로 반포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학 정설들입니다. 이미 멕시코 주교단의 선도 하에 전 세계의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위의 가르침들을 신덕 도리로 공식 발표해 주실 것을 교황청에 탄원하고 있습니다.
나주에서의 메시지와 징표들이 교회에 의해 공식 인정될
때, 그러한 신덕 도리 반포의 가능성 역시 향상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와 같은 성모님의 칭호들, 즉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시며,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시며,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협조자 즉 공동
구속자이시라 함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계획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시는가를 명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미 발표된 성모
도리들과 함께, 위의 내용들이 신덕 도리로서 공식화된다면, 이는 인류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맡기신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완숙되는 것이며, 또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계획이 영광스러운 극치와 성취에 이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위험에 빠진 이 시대에 너희를 구하고자 주님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나를 따를 때, 멀지 않아 너희의
진정한 어머니로, 또 이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협력자로서의 나의 역할이 분명해질 것이다." (1991년 8월 27일)
"내가 주님의 협력자로 간택된 것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함이고, 너희들도 또한 나의 협력자로 간택
받았음을 명심하고 나의 말 을 잘 받아들여 모두 함께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여라." (1991년 8월 27일)
"주님 안에 거룩해져 정성을 다하는 기도가 중요하다. 나는 우주의 여왕으로서 티없는 빛의 찬란함을 지니고 너희를 기르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1993년 2월 18일)
"지극히 사랑하여 불림 받은 아들 딸들아! 은총의 중개자이며 공동 구속자인 이 어머니가 내가 택한 작은 영혼을 통해 너희를 변화시켜줄 것이니
두려워 하지 말고 너희의 거처로 삼아라." (1995년 5월 9일)
"주교에게 알려서 나의 위치를 찾아다오. 그러면 내가 주는 메시지가 세상에 전파되어 생활 개선이 이루어지겠고 많은 자녀들이 지옥의 길에서
해방되어 회개함으로써 천국으로 향해 갈 때 천주 성부의 의노가 풀릴 것이다." (1988년 12월 8일)
"나는 내 자비와 사랑의 승리로 세상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너희가 신뢰심을 가지고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기도한다면 나의 성심은 승리할
것이다. 반드시 승리하리라." (1989년 1월 15일)
"그들(교황, 주교들, 사제들)을 위해 오늘도 나는 기도하고 대신 고통 받으며 봉헌하고 있다." (1989년 1월 15일)
주님께서도 나주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를 따르는 길, 그 길이 바로 지름길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라. 내 어머니 마리아의 승리의 때가 다가온다. 내
어머니는 나의 빛나고 영광스러운 계시에 이르는 천상의 예언녀로, 또 나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의 말을 따르라. 내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1991년 5월 16일)
"나의 어머니이며 천상의 너희 어머니께 온전히 신뢰하고 의탁하여라.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죄에서 벗어나 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내
성심의 고통과 합하여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시며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내 어머니만이 너희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의 노여움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11월 2일)
성모님께 대한 "공동 구속자(=Co-Redemptrix)"라는 칭호에 대해 다소의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칭호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동등하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 구속을 위한 모든 공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 원천으로 하여 홀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성모님을 포함하여)이 세우는 공로가 초자연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공로에 연결되어 있고 또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구성원들이 그 신비체의 머리이신 주님을 본받아 그분의 수난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루가 복음 9장 23절).
성
바오로께서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골로사이 1장 24절). 성 바오로께서 하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수난이 인류의 모든 죄를 보속하는 데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라,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바를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들도
성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세상의 회개를 위하여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여야 하며, 따라서 작은 공동 구속자(Co-Redeemer or Co-Redemptrix)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구속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도와 드리는 데에 있어서 성모님께서는 다른 모든 이들보다도 월등히 뛰어나시며, 따라서 성모님께서는 가장 진정한 의미로서의 공동
구속자이시며 구세주의 협력자이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어떠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신가 하는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깊어지고 따라서 교회 안에 성모 신심이
확립되는 것이 지금의 교회를 활성화하고 이 세상을 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성모님의 겸손하고 사랑에 찬 순명이 구세주의 강생과
구속 사업에 대한 문을 열었듯이, 성모님께 관련된 신덕 도리들이 완성되고 성모 신심이 교회 안에서 확실히 정착되고 생동화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서 통치하실 수 있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입니다.
성 루이 마리아 드 몽포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음같이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도래할 것입니다." (마리아께의
참된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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