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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목욕을 봉헌하고 내 삶을 봉헌하였다. (1981년 5월 13일)

 
우리 미용실 바로 옆 건물에 목욕탕이 있었다.

그 당시 목욕 비는 250원 이었는데 나는 목욕탕에 간 「셈치고」 그 돈을 저축하여 불우 이웃을 돕기로 작정하고 목욕을 할 때는 연탄불과 석유 곤로에 목욕물을 데운 뒤 찬 바람이 많이 새어 드는 부엌에서 문을 가리고 목욕을 했다.

그리고 연탄 값과 석유 값으로 50원을 공제하고 남은 200원씩을 애긍함에 저축을 하여 모아진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쓸 때마다 너무나도 기뻤다.

추운 겨울에 찬바람이 들어오는 부엌에서 목욕을 할 때면 몸은 비록 추웠지만 조그만 희생이라도 주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봉헌한다 생각하니 마음만은 따스하고 흐뭇했다.

일류 미용 기술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머리 커트 하나만 해도 그 당시 1,500-2,000원을 받았으며 파마를 해주면 7,000-13,000원을 받았기에 그렇게 번 돈으로 구태여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남을 도울 수도 있었지만 어찌 희생을 바쳐가면서 모은 돈으로 남을 도울 때 느끼는 기쁨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비단 목욕뿐만이 아니라 택시 타야될 때 버스 타고 남은 돈을 애긍함에 넣고, 쇠고기 사고 싶을 때 쇠고기 사먹은 「셈치고」 돼지고기를 사 먹으면서 나머지 돈은 애긍함에 넣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다.

돈이 없는 시골 할머니는 머리해준 값을 받은 「셈치고」 맛있는 것 사 잡수시라고 몰래 손에 쥐어 드렸다.

광주에 이 바오로 회장님께서 가끔 전화로 불쌍한 사람 도와줄 일이 있다고 하면 곧바로 애긍함을 털어 드리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남들 모르게 숨어서 했기에 이 회장님은 내가 돈을 잘 버니까 그냥 그렇게 번 돈으로 주는 줄로만 아셨을 것이다.

고용하고 있던 미용사들에게는 40,000원짜리 블라우스를 맞춰주고 나는 미용실이 쉬는 매달 1일 날이면 광주 양동시장에 가서 1,000원짜리 싸구려 블라우스나 바지를 사 입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머, 예쁜 옷 사 입었네, 얼마짜리야?" 하고 물으면 나는 그냥 농담으로 "응, 30,000원 줬어" 했는데도 "어머 싸다. 내가 30,000원 줄께 그 옷 나 줘" 하는 것이었다.

단돈 만 원짜리 코트도 그냥 농담으로 맞추었다고 하면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옷이 잘 나왔더라" 하는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좋은 옷 사 입은 「셈치고」 양장점에서 좋은 옷 맞추어 입은 「셈치고」 이렇게 싸구려 옷을 사 입었지만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다.

신발도 맞춤대신 싸구려 신발을 사 신고 나머지는 애긍함에 넣어 그 돈으로 불우 이웃을 돕고 사랑 실천을 하니 기뻤다.

그래서 애긍함은 늘 부자가 되었고 나의 생활은 좋은 것, 먹고 싶은 것, 세상 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고 내 마음과 영혼은 주님께 향한 사랑으로만 깊어지니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용실에 손님들이 와서 보통 3-4시간을 기다려야만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기에 돈을 많이 벌면서도 그렇게 하니 이 보람된 기쁨을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오, 주님! 부족한 이 죄녀의 조그만 희생이 많은 영혼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 내 작은 아기야!

온갖 희생과 봉헌을 통하여 내 사랑의 감미로움을 발견하고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너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