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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1986년 5월 22일)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 제막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필리핀 마닐라 롤롬보이에 도착했는데 환영식에 나오신 형제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오기선 신부님을 향하여

"아니 이 자매님은 어떻게 한국 나주에서 울고 계시는 성모님 모습과 이렇게도 똑 같데요?" 하자 신부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응 이 자매가 바로 그 성모님 상을 모시고 있는 자매야" 하시어 나는 너무나 놀랐다.

성모님께서 우신 지 11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외국에 계신 분들이 알고 계시다니…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율리아, 내일 가장 예쁜 한복을 차려 입고 나와, 주교님께 선물을 증정해야 되는데 그 일을 율리아가 하도록 준비했으니깐, 알았지?"  

"신부님! 저는 너무 부족해요. 그러니 다른 자매님을 시키면 안될까요?"

"율리아보다 더 나은 사람이 어디 있냐? 순명해, 알았지?"

나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알았어요. 신부님" 하고 대답했다.

그 다음날 제막식 때 신부님의 말씀대로 색동저고리와 빨간색 치마를 곱게 입고 나갔다. 제막식이 시작되자 나는 간절히 부르짖었다.

"김대건 성인이시여! 한 말씀하소서. 부족하온 이 죄녀, 신부님을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나이다. 하오니 불타오르는 제 영혼 안에 고결하온 당신의 그 순교의 얼을 심어 주소서.

부족한 이 죄녀가 7월 5일(84년) 바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날 도초 공소에 가서 당신을 전했을 때 당신께서는 주님과 함께 저를 많이 도와주시어 얼음장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섬사람들의 마음을 봄눈 녹듯 녹여 주셨지요. 김대건 신부님 사랑해요."

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싸 매두었던 천이 끌러져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굳어진 것이 아니라 지극히 깊은 황홀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동상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동상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계신 모습으로 김대건 신부님께서 마귀 쫓는 빨마가지를 들고 계셨는데 그 곁에는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대건 성인께서 아주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특은 받은 복된 딸이여!

오류로 물든 이 세상이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여 환난과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항상 지름길로 인도하시는 천상의 엄마를 따라서 순교의 정신으로 똑바로 나아갈 때 내세에서는 나와 같이 영원한 천상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리니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이 비록 어렵고 고통스럽고 고독하고 비좁은 험한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순교로써 주님 위하여 바치도록 어서 나의 손을 잡기 바라오.

나도 천상의 엄마와 함께 그대를 도울 것이오"

하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내미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재빠르게 성인의 손을 잡았는데 뜨거웠다.

손을 통하여 전달된 그 뜨거운 기운은 내 온몸 전체로 구석구석 퍼지고 있었고 나는 환희에 벅차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인은 천사들과 함께 사라지셨고 그곳엔 성인의 동상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때 오 신부님께서 "율리아, 빨리 나와서 주교님께 선물을 증정해야지" 하셔서 손과 발 온몸이 떨렸지만 준비된 선물을 증정하고 들어왔다.

"오, 주님, 나의 님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제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여 따르던 성인의 뜨거운 손을 잡았으니 이제 순교를 약속하겠나이다" 하고 굳게 다짐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난 뒤 오 신부님께 그 일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더니 "그래, 잘했다. 그러나 시기질투가 너무 많아서 네가 다칠까 걱정이니 비밀로 했으면 좋겠다" 하시어

나는 그 이후로 이 일에 관하여 굳게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5월 28일에 성모님께 순교를 약속드렸다.

"주님! 사랑하는 나의 님이시여!

부족한 이 죄녀 오로지 당신의 것이나이다.

오로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