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내 교회의 가장 큰 보배는 지극히 거룩하신 내어머니 마리아다. 내 어머니는 우주의 여왕이시며 천상의 모후로서 너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어머니 마리아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를 사랑하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은총으로 하실 수
있단다." 라는 말씀으로 성모님께서는 은총의 중재자 이시며 주님께오는 지름길임을 모든 자녀들이 알도록하셨으나 세상 자녀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성모님의 은총을 외면하기에 1992년12월 8일에는 "오늘도 수많은 고통을 받으시며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시는 내 어머니는 나의 사랑을
전하고자 목이 터져라고 외쳐 주시건만 대축일을 맞는 오늘도 지상의자녀들로부터 공경받지 못하고 계시니 나의 마음이 몹시 아프단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땅히 공경 받으셔야만 될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 세상 자녀들로부터 공경받지 못하고 계심을 슬퍼하셨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죄에서 벗어나 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내 성심의 고통과 합하여 눈물과 피눈물을흘리시며 끊임없이
기도 하시는 내 어머니만이 너희의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의 노여움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 라는 말씀으로 세상 모든 자녀들, 특히 교회의
모든 자녀들은 세상을 구원 하시고자 외치시는 나주 성모님의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며 이 급박한 시대에 성모님을 따르는 길이 곧 은총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분노의 잔을 축복의 잔으로 바꿀수 있는 길임을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자녀들이
나주성모님의 호소를 외면한채 그들의 신앙을 고집하여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예수 성심과 성모성심의 문 밖에서 서성이기에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피땀과 피눈물을 흘리고 계신 것 입니다.
그러나 항구한 믿음과 신뢰로써 "내 어머니 마리아의 승리의 때가 다가온다. 어서
회개하여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타도록 하여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달아드는 자녀들이 있기에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위로를 받으십니다.
이러한 주님과 성모님의 애타는 호소에 응답하여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기념하고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순례온 자녀들을 비롯하여 많은 자녀들이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습니다.
순례온 형제 자매들은 나주
성모님 집에 모셔져계신 눈물과 피눈물, 그리고 온몸을 다짜내어 향유를 흘려주신 나주성모님께 감사와 찬미의 인사를 드린 뒤 성모님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성모님께서 마련해주신 은총의 물을 먹고 바르고 씻으면서 많은 자녀들이 치유되어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음을 감사드리면서
육신의 치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치유를 기원했는데 물에서 강하게 나는짙은 장미향기를 맡으면서 성모님의 사랑과 현존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면서 초와 꽃을 봉헌했으며 오후3시가 되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 위하여
모여들었고 한 순례자의 인도로 시작 기도를 드린 뒤 선창자의 뒤를 따라서 정성과 사랑으로 함께 마음을 모아서 기도를 드리면서 올라갔는데 초겨울
추위와는 달리 따사로운 햇빛이 모든 사람들을 감싸안았고 주님과 성모성심의 빛을 향하여 걷는 희망의 발걸음이었습니다. 한편 성모님
동산에서의 순례를 위하여 각 지방에서 오신 순례자들의 고마운 차량 봉사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윽고 철야기도회가
시작되자 성모찬가와 가톨릭 성가를 부르면서 주님과 성모님과 함께 할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였고 대구에서 순례오신 김재석 베드로 형제님의
진행으로 가톨릭 기도서에 나와 있는 기도와 묵주의 기도를 드렸는데 '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하고 성가를 부를 때에는 두팔을 성모님께 향하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지금도 고통받고 계시는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모두들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며어떤 자매님은 목울움을 끝내 참지 못하고 울움을
터트렸으며 여기 저기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눈물인들 안 나랴!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 세상 자녀들의 죄로 인하여
공경받기는커녕 고통을받고 계시니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울부짖는다 하여도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어찌다 보답할수 있겠는가?
묵주의
기도가 끝나고 율동봉사자들의 율동을 따라서 찬미를 부르면서 성모님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위로를 드리고 찬미를 드렸다. 성모님의
가난한 요람인 이곳에서 만큼은 칠십 팔십 노인이라 할지라도 어린아이가 되었고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체면과 이목을 따지지 않고 어린
아이가 되었다.
성모님께서 "천국의 문은 작기 때문에 작은 영혼들만이 들어올수 있으니 어린 아이가 되어라" 라고 하신 말씀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히 짐작케한다.
휴식시간이 되자 마련된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이면서 서로 준비한 간식을 권하면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 할지라도 서슴없이 음식을 건네면서 반가히 인사를 한다. 서로 바라기 보다는 서로에게 주는 모습, 이기심이 만연한 이
시대에 서로 양보하면서 자신의 불편을 봉헌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성모님의 말씀이 실천되고 있다.
그리고 휴식 시간 내내 경당 안에서는
1997년 8월 27일 성체가 내려 오신 자리에서 지금까지 풍기는 짙은 장미 향기를 맡기 위하여 줄을 이어서 순서를 기다렸고 또 더 가까운
곳에서 눈물과 피눈물, 그리고 향유를 흘려주신 성모님 상의성모님을 보기 위하여 질서 있게 나왔다. 경당안에 짙게 풍기는 장미 향기를
맡으면서 기도하는 행복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수 없는 오직 나주 성모님과 함께할 때 느낄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율동에 맞추어 찬미를 부르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기도회를 시작했고 이어서 경건한 마음 가짐으로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 자기 자신과
가족모두와, 그리고 세상 모든이들을 봉헌했다.
요셉 형제는 이곳은 주님께서 현존하시고 성모님께서 현존하시며 도구로 선택된 율리아 자매님의 희생과 고통이 봉헌되는 곳이기에 은총의
장소이며 지속적으로 향기를 주시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할수 있기에 또한 은총의 장소라고 말하면서 성모님께서 말씀하신데로 '가난한
요람' 이라 일컬은 이곳에서 세 속의 눈으로 볼때는 비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곳 같이 보일 지라도 이곳을 통하여 성모님의 사랑과 승리가
온세상에 퍼져 나갈 것임을 확신하며 또한 "이곳이 바로 내아들 예수의 영광에 완전히 참여할수 있게 하기 위하여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제단 바닥에 놓여져 있는 아름다운 크리스탈로 장식된
촟불을 가리키면서 "이 자리가 1997년 7월 13일 교황님의 총비서이신 몬시뇰 죠반니 데니꼴레가 나주 성모님집을 방문
하셨을 때 성체가 내려오신 자리로써 1997년 8월 27일 성체가 내려오신 자리에서 나는 장미 향기와 똑같은 장미향기가 풍기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차요셉 형제가 제단 한쪽 구석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일한적이 있었는데 일을 모두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양말을
벋는 순간 양말에서 아주 강하게 장미 향기가 났으며 장미 향기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제단에 함부로올라가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경우는 마음속으로 주님과 성모님께 '잠시 올라가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린 뒤 제단에 오른다고 하면서
순례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몰랐다고 할지라도 앞으로는 제단위에 함부로 올라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두분의 말씀이
끝나고 주님과 성모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달아드는 자비의 기도 시간이 되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내려주시는 성심의 빛과 성모님의
성심에서 내려주시는 자비의 물줄기를 흡족하게 받게 되어 굳어지고 무디어진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회개와 통회의 눈물로 주님과 성모님께 가가이
다가갔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치유 받게 되었다.
특히 오늘은 달라고만 하던 자녀들이 지금도 무관심속에
외면당한채 고통받고 계시는 성모님께 달아들면서 자신들의 고통들을 오히려 성모님께 드리면서 위로 받으시기를 원하였고 뜨거운 통회의 눈물로써
어머니의 성심의 고통과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면서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을 마음으로 닦아드렸다.
나주 성모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지 15년이 지난 지금은 수많은 은총과 기적을 체험한 자녀들보다도 기적과 징표를 체험하지 못한 자녀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달라고만 청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드리고 성모님의 고통에 함께 하고자 찾아오고 있다. 이는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순례자들의 주님과 성모님으로 부터 받은 은총을 나누는 체험담 시간이되었다.
1. 뉴질랜드에서 순례오신 서정수 젤마노 형제님의 체험담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정수 젤마노입니다. 먼저 이 은총의
장소에 앉아있는 자체 만으로도 주님과 성모님께로 부터 크나큰 은총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계신 모든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현재 머나먼 남쪽나라에 위치한 뉴질랜드에 살고 있으며 10년전에 이민한 이민 1세대입니다. 10년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하여 살게되었지만 사실은 이곳 나주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입니다.
저는 광주에 있는 사례지오 소신학교에
입학하여신부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주의 성모님을 알게된 것은 불과 몇 개월전인 바로 10월
25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느날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허리를 다쳤는데 몹시 다쳐 이웃에 사는 분이 침을 잘 놓은 아주 유명한 분을 소개해
주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집은 조선 침으로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 아픈 침을
1일주일 정도 맞기 시작했는데 마침 원장이 아주 신심이 두터운 세실리아라는 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는데어느 날 저에게 나주 성모님의 대한 작은
소책자가 담겨져 있는 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나주 성모님이 무엇을 어쨋다는 얘기야' 하는 생각으로 슬그머니첫장을 넘기는
순간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나주가 고향인 내가 나주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하면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밀려들었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겨서 나주에서 나오는 메시지들과 모든 것을 전부 요청했습니다.
그분은 나주에 대한 소식지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나주에도 두 번이상 다녀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건네준
소식지들을 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모두 다 읽어 보았습니다. 그중에 "은총은 강물처럼"을 읽으면서 '아! 나주를 반드시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저의 마음을 재촉질 했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묵주를 만져보지도 않고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을
살았던 제가 나주 성모님을 알게된 그순간부터 묵주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묵주의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계속 묵주만 들고 있다보니까 하루에 60단 70단 80단 100단 120단 이렇게 자꾸 늘어났고
기도를 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에 살아왔던 많은 일들이 부끄러움과 함께 죄스러움이 다가오면서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왔던 죄책감으로 괴로운 나머지 한없이울다가 지쳐서 어느 날은 참 힘들었던 시간도 있지만 옆에 있던 저의 아내 유스티나도 저를
위로하면서 저와 함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인물에 6월 30일, 8월 15일, 10월 19일, 11월 24일, 12월 8일이
성모님의 큰 기념일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중 10월 19일이 가장 가까운 날이었고 또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는 기념일 이라고 하여 저의 집사람과
함께 10월 19일날에 한국 나주에 가기 위하여 묵주의 9일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묵주의 기도를 해나가다가 너무 놀난 것은
묵주의 9일 기도가 끝나는 날인 54일째 되는 날이 바로 10월 19일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날짜를 19일에 끝날 수 있도록 맞춘 것이
아니었기에 이것은 바로 성모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반드시 나주에 가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굳혀지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오기
일주일전 나주에 전화를 해서 "길을 안내해 주십시오" 했더니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어서 18일날 와서 미리 예약도하고 숙소도 정하여 성모님을 만날
준비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서 그동안 나주 성모님을 찾아 오게끔하기 위하여 준비를 시키셨는데 9일 기도뿐아니라
뉴질랜드에는 ME 교육이 거의 없는데 마침 한국 대표자로 파견되어 그 기간동안 ME 교육도 부인과 함께 할수있었으며 정말로 나주 성모님을 뵙고는
아내와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너무나도 잘 못살아왔음을 성모님께서 매순간 깨닫게 해주셨기에 정말로 너무 많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사랑에 흠뻑빠진 저는 10월 19일날 나주에 와서 12월 8일 현재까지 뉴질랜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주를 맴돌고
있습니다. 성모님께 받은 은총이 너무도 많지만 일일이 다 자랑을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선 것 자체만으로도 저로서는 또한
엄청난 은총이기에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 두번째로 나온 중계동에서온 최안나 자매님은 불교
집안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뒤 시집 식구들과 남편과 끊임없는 가정 불화로 신자가된지 13년이나 되었지만 용서가 되지 않아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았는데 나주에 와서야 비로소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상처도 치유가 되었으며 이제는 며느리를 포함하여 온집안 식구들이
성화되는 은총을 받았다 한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 기념일에 율리아 자매님이 혀로 무수히 죄짓는 많은 사람들과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대신
하여 불의 고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와서 메시지를 읽다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할때마다 입에서 구더기가 솓아져 나오며
이 구더기는 발로 짓밟거나 불로 태워도 없어지지 않으며 남까지 함께 죄짓게 만드는데 반면에 사랑의 말을 할 때 타지 않던 구더기들이녹아버린다는
메시지를 읽고 그동안 남을 비판하고 판단해왔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되어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친구의 딸이 시집을 간지
3년이 되어도 아이를 못가져서 애를 태우기에 작년 11월과 12월 두번 걸쳐 기적수를 가져다 먹였는데기적수를 가져다 준지 딱 두 번만인 12월에
아이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 한다.
그리고 그친구 아들도 역시 장가를 든지 3,4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어 그 집 엄마가 아이 들어서는데
좋다는 보약이란 보약을 다 먹여도 생기지 않아 성모님 물을 가져다 주면서 개신교에 다니는 그집 아들에게"성모님 물을 믿고 신뢰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지 만약에 의심을 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지 않는다면 성모님 물을 가져다 줄수 없다."고 하니 "가져다만 주면 믿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겠다"고 확답하여 10월달에 성모님 물 3병을 가져다 주면서 "성모님 이 가정에 자비를 베푸시어 가톨릭으로 개종도 하게 해주시고
아이도 갖도록 축복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면서 가져다 주었는데성모님 물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옆집에
사는 데레사란 자매도 허구한날 부부간 불화로 가정 파탄 직전에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주었더니 얼마 안있어 완전히 성가정으로 변화되었다
한다.
3. 서울 갈현동 성당에 노 도미니카 자매님의 증언입니다. 애를 낳은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많이나 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몸이 너무 안좋아 병원에 갔더니 약 부작용이 심해 해독을 시키려 했지만 그것도 어렵게 되어 우선 약부터 당장 끊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성모님께 "저 인제 딱 죽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아요?" 하고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저희 남편도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기에 나주
성모님 물을 가져다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에 난 두두러기를 성모님 물로 씻으면서 바르고 먹고 하면서 기도를 하였는데 약 한달만에 두드러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시가서 검사를 했더니 모든 것이 정상치수로 돌와 왔다면서 의사가 "아줌마 도대체
어떻게 된 입니까?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라고 하면서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후에 다시 산부인과 계통에 질병에 걸려서
무척 고생을 했고 약으로도 고칠수 없다고 병원에서 말하던 병이 '나주 성모님께서 그렇게 힘든 두드러기도 치유시켜주셨는데…' 하는 믿음으로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마셨는데 이번에도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주님 성모님 찬미와 영광받으소서
이외에도 많은분들이 체험담을 나누었으나 일일이 소개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지만… 이제는 모든 기도회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주님과 성모님께로 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를 드리면서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와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주모경을 바친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1월달 첫토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발걸음을재촉했다.
경당문을 나서면서 주교님께 순명하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성모님과 함께 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봉헌하면서 외로이 칩거하고 있는 다락방을 보면서 율리아 자매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손을
흔들어 주면서 용기와 힘을 잃지 않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 했던가? 한평남짓 작은 다락방에서 첫토요일이면 경당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와 찬미 소리를 들으면서 율리아 자매님도 순례자의 자격으로 어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인들 없겠는가? 하루 빨리 인준이
되어서모든이에게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해줄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외로이갈바리아를 오르고 있는 율리아 자매님을 위하여 우리 모두
기도하자고 청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1월 첫토요일 다시 만날뵐 것을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세상 모든
자녀들아! 내 어머니 마리아의 승리의 때가 다가온다. 어서잠에서 깨어나 눈물과 피눈물로 슬프게 호소하시는 내 어머니를 통하여 나에게로
달려 오너라. 내 어머니 마리아는 나에게로 오는 지름길이며 쇄신된 내 교회의 빛나는 새벽이며 새로운 계약의 궤익 때문이다." "아멘"
2001년 1월6일 우리 모두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함께 타고 첫토요 철야기도회를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