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죠? 이제까지 남을 미워하고 내 탓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네 탓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내 탓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회개하고 “주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한다면 우리는 회개의 그 눈물로써 선의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악의 나무에 열렸던 열매가 와르르 떨어져서 선행의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고 했죠?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잘한다고 했으면서도 잘 못했던 것들이 있어서 악의 나무에 혹시라도 열매가 열린 것이 있다면 오늘 회개로서 악의 나무에 열렸던 열매가 떨어져 선의 나무의 열매로 주렁주렁 열릴 수 있도록 회개의 은총을 받도록 합시다.
회개의 은총은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되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반대하시는 분들 여기에 오셔가지고 꼬투리 잡으려고 오셨다가 회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경우들도 있어요. 아주 굉장히 열렬히 반대하다가 오셔서 회개합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합니다. 진주에 사시는 분이 척추결핵에다가 온갖 병이 다 들어서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이야기를 듣고 1985년도에 미용실에서 성모님을 모시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시는 이야기를 듣고 겨우 찾아오긴 왔는데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그분이 회개를 하고 치유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분은 사람들을 나주에 데려오기 시작 했는데요 그냥 나주가 어떻더라. 눈물 흘리시니까 한번 가보자 가 아니라 “일단 한번 가보자.”하셨지 “나, 이렇게 병이 나았다” 안하셨어요. 일단 가보자고 오셨던 분들이 성모님 앞에 오셔서 눈물 흘리시는 것 보시고 피눈물 흘리시는 것 보시고 그리고 나서 회개를 하고 모두가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공지문 이전까지 순례자들을 많이 모시고 왔습니다. 그런데 공지문 한 장으로 심한 압력에 의해 못 오게 되셨어요. 얼마나 마음 아픈 일입니까. 그분은 그렇게 새 생명을 얻었기에 많은 영혼들이 나주 성모님께 오면 회개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한번 가보자 그렇게 데리고만 오면 치유를 받고 회개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제가 여기 나오기 전에 율리오씨한테 “율리오씨, 내가 그동안에 잘 못했던 것들 다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새로 시작합시다. 우리 서로 건강을 지켜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삽시다.” 그랬더니 율리오씨가 “아니야, 내가 잘 못한 것이 더 많아.” 그리고 우리 악수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웃 형제의 손을 잡고 악수합시다. 내가 가장 미워했던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랑합니다.” 해보세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주님과 성모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정말 회개로써 “주님 잘 못했습니다.” 하며 용서를 청하고 달아들 때 너무너무 많이 사랑하십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큰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닦아 드렸습니다.
향유로도 발을 닦아드렸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눈물로 발을 닦아드린 사랑과 정성입니다. 향유로 닦아드린 것은 이미 장례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오늘밤 회개로써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주님과 성모님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온전히 바쳐드립시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회개하고 달아들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정말 아주 잘못된 정말 주님과 성모님께 아픔을 드렸다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 노력하는 마음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 회개하고 노력하는 마음을 보신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너무너무 기쁘셔서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축복을 덤으로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 이제까지 용서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부산에 사시는 아가다 자매님은 자기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위해 차 운전을 했습니다. 아들이 돈을 벌어다주면 엄마랑 동생이랑 생활을 꾸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차치기한테 17군데나 찔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범인을 어머니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죽으면 어머니 가슴에 무덤이 된다고 했습니다. 병이 걸려서 죽었어도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강도한테 칼로 17군데나 찔려서 죽었는데 얼른 용서가 되겠습니까?
자식이 정말 깡패처럼 살았다할지라도 그 자식이 죽으면 너 잘 죽었다 할 부모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장 노릇하던 착한 아들이 차치기에게 17군데나 찔려 처참하게 죽었으니 그 어머니는 어떻겠습니까. 정말 이 세상이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위로해주는 친척들까지도 너무너무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분이 “나주 성모님 집에 한번 가보자. 성모님이 피눈물을 흘리신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그 자매님이 “동고상에서 어떻게 피를 흘릴 수가 있느냐?” 했지만 이제는 의지할 곳도 없고 너무너무 마음이 괴로우니까 그럼 한번 가보기나하자 하고는 따라오셨어요.
그때가 10월 19일 용서의 은총을 많이 내려주신 날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10월 19일만 되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용서의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그날 처음 순례를 오셨는데 제가 전하는 제 신앙체험에서 제가 어떤 사람들 어떻게 용서하게 됐다고 전하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 그분이 ‘아, 율리아 자매님은 모든 사람들을 용서했는데 내가 왜 그 사람을 용서 못하겠는가!’ 깨닫고 그 자매님은 아들을 죽인 그 차치기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기도회가 끝나고 나서 앞에 나와서 증언을 하셨는데 “저는 나주 성모님의 이름으로 그 차치기를 용서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그를 제 아들처럼 돌봐 줄 것입니다.”
사실 차치기가 자매님의 아들을 17군데 찔러 죽인 것보다 더 미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를 용서합시다. 용서가 잘 안된다면 주님과 성모님께 더욱더 맡기고 의탁합시다. 그 자매님께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그때 거기에 모인 모두가 다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정말 이 사순절을 맞아서 모두를 용서하고 용서가 잘 안 돼도 용서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구하면서 예수님께 간구해주시라고 간절히 부탁합시다.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우리가 온전히 맡겨드릴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분명히 해주실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자비의 물줄기를 내려주셨고 성심의 빛을 폭포수처럼 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많은 은총을 내려주셨는데 느끼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느낀다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가 사랑을 해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느낄 때 불치병들이 치유가 됩니다.
어떤 자매님이 의사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의사인 남편을 사랑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의사들의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 전에는 의사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에 많이 못 들어오고 의사들이 쉴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계속 환자 진료를 하다보면 아내와 함께하며 따뜻하게 해주기가 힘들었습니다. 병원에 진료가 끝나서 집에 들어오면 지쳐서 잠자고 그러니까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냥 불만 투성이었습니다.
자매님이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들이 잘해주고 같이 영화도 보러 다니고 같이 놀러도 다니는데 자기 남편은 못해주잖아요. 그래서 남편을 미워하다가 결국에는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혼하자 우리.” 그러니까 아내에게 계속해서 바가지 긁히던 남편도 “그러면 이혼하자” 그랬는데 이혼하기 전에 자매님의 몸이 이상해졌어요. 그래서 그 자매님이 다른데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자기 남편도 산부인과 의사인데 다른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자궁암이 걸렸습니다. 자궁암 초기가 아니라 이미 수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이혼해서 뭐합니까. 그래서 묵상하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그 자매님이 계속 기도 하고 묵상하면서 죽음을 앞두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결혼해서부터 생각해보니까 남편이 잘 해줬던 것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했을 때에는 남편이 잘해준 것이 생각납니다. 회개 못했을 때에는 나는 잘 해줬는데 남편이 이렇게 못해줬다 그것밖에 생각이 안나요. 여러분 맞지 않아요? (맞아요)
회개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나면 땅에서 매어있던 것이 용서로 풀리게 되고 그 사랑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요. 그러니 회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이 자매님이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그동안에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잘 해줬는데 이제까지 당신이 잘 못 해준 것만 생각해가지고 당신을 괴롭혔어. 미안해. 이제 내가 죽더라도 다른 부인 만나서 그전에 나에게 해준 것처럼 그렇게 잘해줘요.” 그랬어요. 남편이 얼마나 놀라요. 그동안에 바가지만 박박 긁던 부인에게 갑자기 너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남편이 “당신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했더니 “나는 자궁암에 걸려서 죽게 됐다. 당신이 그동안에 잘 못 해준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보니 당신이 잘해준 것들만 생각이 나더라. 내가 죽더라도 당신이 다른 부인 만나서 그전에 나에게 잘 해준 것처럼 잘 해줘라.”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렇죠? 우리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남편하고 부인하고는 이제는 정말 좋은 사이가 됐잖아요. 사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했기 때문에 느낀 것입니다. 회개하지 못한다면 느끼지 못해요. 그런데 진즉에 이런 사이가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가만 두시겠습니까?
그렇게 회개하고 뉘우치고 정말 둘이 부둥켜안고 이제는 정말 잘 살 수 있는데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까 정말 절통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울고 났는데 배가 안 아파졌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니까 암이 없어졌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그런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986년 10월 19일부터 성모님께서 많은 피눈물을 흘리셨죠. 성모님께서 10월 21일 날 수도자들을 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그날부터 수도자들이 계속해서 많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씀하신 첫날 수도자들 50여명이 왔어요. 아파트에 성모님을 모시고 있을 때 그 적은 방에 50여명이 왔습니다. 그 다음에 100여명 정도, 그 다음에 150여명 정도,
그 다음에 200여명 정도 이렇게 계속 50여 명씩 계속 순례오시는 수도자 분들이 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수녀님들 때문에 방에서 걸어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방뿐만 아니라 안방, 거실, 부엌방 다 앉아 계셨어요. 그렇게 수녀님들이 성모님의 피눈물을 보시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정말 이제까지 잘못했던 모든 것들을 용서청하면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회 장상 수녀님께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이니라. 가지 말아라.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라. 어찌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실 수가 있겠느냐. 피눈물을 흘리실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이 이렇게 악해지고 있는데 성모님께서 어찌 피눈물을 안 흘리시겠느냐? 그래서 우리는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수녀님들이 계속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수녀님께서 ‘내가 한번 가서 보고 이 수녀님들을 가지 말라고 해야지.’ 하시고는 그 수녀님이 오셨습니다.
그 수녀님은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보다 나이가 더 많으셨는데 그 당시에는 대학교 다니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서울이나 부잣집 따님이나 대학교 다녔지 저희들은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중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잖아요. 그 당시만 해도 수녀님들 중에서 대학교까지 다 나오신 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랬는데 그 수녀님께서는 대학교까지 다 나오시고 장상 수녀님이 되셔서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성모님 앞에 오셔서 성모님 피눈물을 보자마자 통곡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오셔서 증언을 하셨어요. 증언 시간이 따로 있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수녀님들이랑 다 계신데서 “내가 한마디 하겠다”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디 소속 수녀 누구다 그런데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내가 성모님의 피눈물을 보지 않았어도 그렇게 말했는데 정작 와서 성모님의 피눈물을 보니까 이제까지 너무너무 내가 잘 못살아왔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성무일도도 매일 바쳤고 묵주기도도 열심히 바쳤고 그리고 수녀들 잘 가르쳤고 그동안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런데 수녀원에 돌아가셔서 잠을 한잠도 이룰 수 없어서 잠을 자지 못한 채 그 이튿날 나주 성모님한테 다시 오신 거예요. 그래서 성모님께 이제까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청하고 그리고 나서 수녀님들한테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내가 보지 않았을 때는 가보지 않고 믿고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진복자라고 말했는데 성모님 앞에 앉으니 이제까지 나의 죄가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계속 지나갔다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이제까지 성무일도를 바치다가도 연속극 할 시간이 되면 성무일도도 빨리빨리 바치고 가서 연속극보고 묵주기도를 바치다가도 연속극 할 시간이 되면 못 볼까봐서 막 빠르게 바쳤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정성과 사랑 없이 주님과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것을 깊이 뉘우치면서 나의 잘못이다 나의 가슴을 치면서 통회로써 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물로써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을 닦아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아무리 남의 눈에 수도생활을 열심히 한 것처럼 보여 선의 나무에 열매가 열렸다고 해도 조그만 열매가 열렸을 텐데 그렇게 많은 회개의 눈물로써 주님과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할 때 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 것입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해요.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시려면 광주교구 전체의 성모님상에서 똑같이 피눈물을 흘리시면 모두가 회개 할 텐데 왜 거기서만 피눈물을 흘리냐? 마귀 짓이다.” 이러셨대요. 우리 그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해드려야 되겠죠? 모르면 불쌍한 거잖아요. 모르고 하니까. 그래서 미운 것이 아니라 모르고 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드리니까 우리가 기도해드려야 되겠죠?
한국의 이런 신부님들이 몇 분 계신다고 해서 모든 신부님들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침묵만 지키고 계실뿐이지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기다리고 계신 신부님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승리의 때는 곧 다가옵니다. 멀지 않았습니다.(아멘!) 작은 영혼들의 기도소리가 하늘높이 치솟아 오를 때 즉, 여러분의 기도가 더 많이 상달 된다면 승리의 때가 더 가까운 시일 내에 올 것입니다. (아멘!)
옛날에 자식들이 많은 집에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곡식도 이어 나르고 막 일을 하다보면 빨리 늙고 허리도 굽고 그러죠? 우리 성모님이 그러셨어요. 우리 성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까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정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드렸는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드렸는가!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을 반성하도록 합시다.
이제까지 우리가 정말 주님을 위해서 성모님을 위해서 많은 공로를 쌓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었다고 느끼고 우리가 더 많이 사랑을 베푼다면 그리고 주님과 성모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다면 더 많은 축복을 여러분들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천국에도 자리가 다 있어요. 그러겠죠? 예수님과 성모님 곁에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시는 성모님을 통해서 그리고 갈바리아 동산에도 예수님께서 눈물도 흘리시고 진액도 흘리시고 진땀도 흘리시고 성혈을 내려주심으로서 그 성혈이 내려오시면서 제 입안에서 성체로 변화되었습니다.
2002년 1월 1일 날 성체가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갈바리아 예수님 발끝에 성혈이 맺혀있었는데 그 성혈이 떨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예수님의 발끝으로 손을 뻗었는데 손에도 성혈이 묻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그 성혈이 마스크까지 관통해서 성체로 모셔져 있었습니다.
2006년 10월 19일 날 예수님의 발을 만졌는데 성혈이 제 손과 팔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 직접 보지 못하셨더라도 비디오를 통해서도 보셨죠? (네!) 그것을 어떻게 조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발을 만지고 있는데 누가 피를 부어놓았습니까? 그런 조작은 어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2002년 6월 30일은 예수님께서 눈을 뜨시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예수님께서 눈을 감으시기도 하시고 눈을 뜨시기도 합니다.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주에는 정말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징표를 보여주시면서 전대미문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수많은 자녀들을 영적육적으로 치유해주셨습니까?
그런데 공지문이라는 족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 육적으로 치유 받고도 주님과 성모님을 외면했습니까? 1990년 5월 8일 날 성모님께서 진한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죠. “고통을 받을 때에만 구명대에 매달리듯이 나에게 매달리지만 그러나 구하던 은총을 받고나면 다시 비참한 생활로 되돌아가버리는 가련한 자녀들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다.”고 성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받은 은총에 감사하면서 오늘부터 우리 새로 시작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징표나 어떤 기적을 바라보고 오신 분들이 아니시죠? (네.)
우리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살아계시면서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 첫 토요일은 “죽음과 부활 사이를 통과하는 시각을 나타내는 날이기도 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날이기도 한 이 날을 기념하여 첫 토요일을 나와 함께 기도하자” 하신 성모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여러분은 ‘아멘!’으로 응답하고 오신 분들이죠? (네!) 그러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축복과 더 많은 은총을 덤으로 몇 천배 몇 만 배 내려주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립시다.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자녀들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표선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너무 마음이 아프시지만 여러분들과 같은 작은 영혼들이 모여서 기도하기 때문에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위로받으시며 우리에게 사랑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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