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성 금요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bullet03_glitter.gif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성 금요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서 당신의 지상 사명을 완성하신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산 골고타로 오르셨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오후 3시.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죄 많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시다 돌아가신 바로 그 시간, 예수님의 그 처절한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율리아 자매님이 동산에 올라오며 십자가의 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자매님은 고통을 숨기시는 데도 세상의 온갖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비틀거리는 발걸음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부축을 받아 성혈조배실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던 자매님이 급히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혈변과 혈뇨가 장기들이 썩어가는 육신의 치유를 위한 고통에 가깝다면 이 설사는 위선으로 가득 차 영혼이 썩어 문드러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받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축을 받아 두 번째 화장실을 다녀오시던 자매님이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쓰러져 기어서 자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때 이마 중앙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자 순례자들이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옆에 계시던 신부님, 수녀님들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헤치고 확인을 할 때 오른쪽 관자놀이 쪽에서 다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갑자기 가시관 고통을 받으시며
이마에서 가운데에 피가 흘러내리는 율리아 자매님

자매님의 머릿속은 온통 가시관에 찔린 듯 수십여 군데에서 크고 작은 피가 몽글몽글 솟아나왔고 순례자들의 메아리치는 통곡은 성모님 동산의 앞산과 뒷산을 울리고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어 성혈조배실을 통하여 하느님 대전에 바쳐졌습니다.

2009. 4. 10 성 금요일 자관 고통을 받으시는 율리아 자매님

극도의 가시관 고통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율리아 자매님이 이윽고 십자가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1처를 오를 때 이제는 왼 쪽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턱 밑에 맺혀 미국에서 순례단을 이끌고 오신 폴 신부님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시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는 십자가의 길 기도에 더욱 깊이 동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2처에서 율리아 자매님이 구슬픈 목소리로 애절하게 영가를 부를 때 어디선가 휘몰아친 바람에 하얀 벚꽃이 우수수 흩날리는 쓸쓸한 모습은 가없는 은총을 받고도 줏대 없이 흔들려 떠나간 수많은 자녀들을 연상시켜 더욱 슬퍼보였습니다.

3처를 향해 올라가던 자매님은 발걸음이 조금은 어지러워지며 어깨를 움찔움찔하였는데 4처와 7처에서도 그랬습니다. 9처에서는 “으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이는 우리 죄인들이 주님께 가하는 모욕과 편태와 돌팔매질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자매님의 입술은 부르트고 푸르스름하게 변했는데 군중들이 던진 돌팔매에 맞았기 때문이며 그로인해 입안도 다 헐어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 9처, 예수님께서 세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하실 때 예수님이 당하신 편태 고통을 받으시어 심하게 쓰러지심

 

낙태 보속 고통도 받으시는 율리아 자매님

자매님은 주님께서 돌아가신 12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시며 흘린 땀과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습니다. 그러나 흰 손수건에 묻어나온 것은 땀과 눈물이 아니라 빨간 피였습니다. 이 세상 누가 피땀과 피눈물로 주님과 성모님의 찢긴 성심을 위로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율리아 자매님이 12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시며 흘린 땀과 눈물을 닦았는데 빨간 피가 묻어나온 손수건

그것은 바로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면서 율리아 자매님의 삶과 영성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작은 영혼들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피눈물과 피땀을 흘릴 수는 없을지라도 자매님와 일치하여 기도하고 희생하며 봉헌된 삶을 삶으로써 갈기갈기 찢기신 성심을 위로하며 기워드리는 것입니다.

이날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기에 15처 기도는 없었습니다.

갈바리아 동산 큰 십자가 고상 아래에서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는 신부님들이나 순례자들에게 모두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으며 늘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율리아 자매님을 지켜 보는 사제들도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릴 때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순례자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가 갈바리아에서 내려와 수난 감실 앞에서 조배를 드릴 때 율리아 자매님의 윗옷 칼라에 성혈이 내려와 마치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흡족하신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였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윗옷 칼라와 상의에 내려주신 성혈

이날의 가시관 고통은 여태까지 받아왔던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되는 머리뼈가 바수어지고 골수가 으깨어지는 더욱 극심한 가시관 고통이었으나 십자가의 길이 모두 끝나자 가시관 고통이 조금 사그라졌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성전의 대기실로 가서 기진한 몸을 누였습니다.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리와 온몸이 쓰리고 아파왔습니다. 치마를 걷어 올리니 속내의에서 피가 배어나와 살과 달라붙어있었습니다. 기적수를 묻혀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속바지와 상의를 벗으니 종아리와 허벅지, 어깨와 앞가슴, 목 뒤까지도 편태로 만신창이가 되고 시꺼멓게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피가 옷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성수를 뿌렸음

다리가 멍이 다 들었음

편태자국이 없는 곳에 멍이 다 들었음

 

 

율리아 자매님의 팔에도 멍이 들었음

그 처참한 모습은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불하신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실감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자매님의 발걸음이 흔들리고 어깨가 움찔거린 것은 비정한 쇠채찍이 연약한 살을 파고드는 처참하온 편태고통이었음을.

당시 자매님은 자관고통이 너무 심하여 편태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편태를 크게 당할 때만 몸이 반응하여 움찔거렸던 것이니 이 작은영혼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과연 얼마나 큰 것일까요?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을 다 태우고 하늘항구까지 도달시켜줄 성모님의 품인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채워드릴 만큼의 크기일 것입니다.

성금요일의 금육과 단식재를 지키기 위해 순례자들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에 대한 영상을 보며 죄악과 보속에 대한 묵상을 깊이 하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찢어 죽이는 비정한 살인인 낙태와, 태아들이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당하는 끔찍한 고통을 3시간 동안 받는 율리아 자매님의 보속고통에 인종과 남녀를 초월하여 모든 순례자들이 안타가운 탄식과 한숨을 연신 쏟아내며 눈물지었습니다.

수난 감실 앞에서 묵주의 기도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 비디오를 보는 순례자들

9시경 주님 수난 예식을 했는데 말씀의 전례 때 신부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추모하시는 강론에서 십자가 위에 높이 쳐들려 자신을 희생으로 아름답게 봉헌하는 영혼은 바로 “다니엘처럼 늘 하느님의 의를 구하고, 율리아 자매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영혼”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 신부님 강론 말씀 요약 >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려고 오신 우리의 주님께서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조물주이신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십자가에 매달려 무력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조금 후에 우리는 십자가에 경배할 것인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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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수난 예식 십자가 경배

십자가는 원래 기원 전 6세기경부터 서기 4세기까지 중죄인들을 처참하게 죽이기 위한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과 부활로 십자가는 대속의 상징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한 구원의 상징이며 승리의 표지가 된 것이죠.

신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언자는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는 예언자적 죽음이며,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려고 대신 죽으셨다는 대속적 죽음이고, 하느님과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사랑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의 의미를 조명한 이 세 가지 관점은 서로 상반된 내용이 아닙니다. 이를 잘 묵상해보면 십자가의 고통이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봐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메시지가 사랑에 근거를 둔 사랑의 메시지이듯이 율리아 자매님이 봉헌하시는 그 극심한 고통들도 모두 사랑에 근거했기에 사지를 뒤틀고, 생살점을 떼어내는 그 무서운 고통들을 기쁘고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모님께서는 1991년 5월 8일 꽃과 행실보다도 사랑과 정성이 담긴 마음을 보고 기뻐하신다며 극히 사소한 일일지라도 사랑으로 하는 것이면 우리에게는 큰 공로가 되며 성모님께는 큰 위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 1996년 7월 9일 “믿음은 저 높은 산을 옮길 수 있지만 그러나 깊은 사랑은 세상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단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율리아 자매님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에 합일하여 동참하는 고통이야말로 이 시대에 당신들의 구원사업에 필수불가결한 사랑과 정성이 담긴 마음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아무리 큰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사랑 없이 했다면 별로 큰 공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리아 자매님이 무슨 일이 나에게 닥쳤을 때, 참고 인내만 할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봉헌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것입니다. 참고 인내만 하는 것은 분노로 이어질 수도 있고 자포자기로 몸과 마음을 황폐화 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봉헌을 한다는 것은 성모님의 깊은 겸손을 모체로 해서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길을 겸손하게 따라 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율리아 자매님의 삶은 봉헌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십자가에 친구하시는 율리아 자매님

그런데 우리들의 십자가는 어떤 것이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봉헌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그에 대해 성모님께서는 1991년 9월 17일 “십자가 위에 높이 쳐들려 자신을 희생으로 아름답게 봉헌하는 영혼은 바로 주님을 현양하는 영혼이며 나의 가장 가까운 작은 영혼이다. 모든 자녀들이 온전히 작아져서 아기 예수처럼 나의 사랑의 품에 꼭 안기기 바란다. 내 모성의 짙은 향기를 만방에 풍기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에 높이 쳐들려 자신을 희생으로 아름답게 봉헌하는 영혼”이란 어떤 영혼입니까? 저처럼 성직자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저쪽에 계신 수녀님을 말씀하신 걸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교회에서 직책이 높은 평신도 대표를 두고 하신 말씀일까요?

아니죠. 다니엘처럼 늘 하느님의 의를 구하고, 율리아 자매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분들이 바로 주님을 현양하는 영혼입니다. 사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사랑의 메시지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고자 하시는데 그 사랑의 실천적 삶의 모델은 바로 율리아 자매님이 살아온 삶이고, 율리아 자매님이 지켜낸 가정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잘 안 될지 몰라도 “님 향한 사랑의 길” 책과 율리아 자매님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율리아 자매님의 삶과 사랑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실천해 나가면, 우리도 하느님을 현양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볍게 해드리는 작은 영혼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로 인해 마지막 날 모두가 구원 받게 될 것인데 우리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영혼들까지 우리가 보이는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배워 함께 구원의 길로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나주에 발현하신 참다운 의미라고 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오늘,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과 사랑의 삶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면서 기쁜 부활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아멘.

< 미국에서 순례오신 폴 신부님 말씀 요약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미국에서 같이 오신 분들과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신부님들과 나주에 계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하시는 폴 신부님

우리 순례단이 부활주간에 나주 성모님께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이끄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많은 기적적인 것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성주간에 많은 것을 직접 보고 체험했습니다.

오늘 십자가의 길을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걸으며 기도할 때 저는 그분의 고통과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병사들이 쇠채찍으로 예수님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편태고통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오늘 보니까 자관고통으로 피를 흘리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예수님이 고통을 느끼는 것만큼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사제로서 겪는 고통까지 대신 겪는 거 아닙니까?” 하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받으신 세상의 형언할 수 없는 그러한 고통을 받았다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 때 옆에 계신 두 신부님들 또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그분들도 저와 마찬가지 생각인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율리아 자매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었는데 자매님이 제 옆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말은 안 통했지만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눈을 통해서 저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느꼈냐면 “저는 신부님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이 깨끗해지라고 고통을 기쁘게 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구절을 생각해보니 이천년 전에 제자들의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순례팀과 함께 오신 폴 신부님
(4월 10일 성금요일, 갈바리아 언덕에서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기도하시는 모습)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현상들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가난한 자를 위한 고통이며 아주 의미 있고 이유 있는 고통임을 저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처럼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예수님께서 아무 고통과 아픔이 없이 하늘로 가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으셨던 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니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팔다리와 어깨와 목 등등 온몸에 난 처참한 편태자국에 뽀뽀를 하면서 예수님께 많은 성직자들을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제게 고통을 허락하시고 십자가를 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바라는데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과 아픔이야 말로 대단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당신의 고통들을 행복한 고통이라고 표현하신 다는데 어떻게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만끽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에서 선혈이 흐르는 것을 보았고, 갈바리아에서 기도하며 땀과 눈물을 닦았을 때 하얀 손수건에 묻어나오는 핏자국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 모습을 보여주셨는지를.

우리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 의미를 알고 믿음을 키워간다면 우리는 율리아 자매님께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왜냐면 수많은 세월동안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도구로 사용하여 저희들한테 모범을 보여주시며 우리를 당신 사랑 안에 불러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고통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하느님께 얼마나 중요한 분들인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오늘 나주에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을 남은 여생동안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전파를 하겠습니다.

바로 이곳 성 금요일에 나주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알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성모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을 경배합시다. 아멘!

말씀의 전례에 이은 2부 십자가 경배 예절에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하였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진행되었기에 예정 시간을 많이 초과하였으나, 3부 영성체 예식은 신부님들이 여러분이 계셔서 금방 끝날 수 있었습니다.

곧바로 율리아 자매님이 나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매님은 자관고통으로 머리에서 얼굴에 흘러내린 피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나오셨는데 이는 주님의 수난공로와 자매님의 희생보속고통의 은총이 모든 순례자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풍성하게 흘러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오늘 십자가의 길 하기 전에 집에서부터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는데 차를 타고 오면서부터는 얼마나 아팠는지 이제까지 받아왔던 자관고통 중에서 가장 극심했던 것 같습니다. 오기 전에도 청했지만 온 머리가 다 으깨져 나가는 것 같은 그 고통을 가장 먼저 여러분들을 위해서 봉헌했습니다.

또 오늘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편태 고통을 천만분지의 일이라도 받게 됐는데 쇠 채찍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때리냐면 빙빙 돌려가지고 쫙 내려치는 겁니다. 그리고 성난 군중들이 돌멩이를 막 던졌어요. 그래서 지금 제 온몸은 상처로 찢기고 멍이 들었는데 입 속도 다 부르터 있습니다.

그 고통들 또한 여러분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없이 해주시라고 봉헌했습니다. 저는 극심한 고통을 받을 때마다 하루라도 빠른 인준을 위해서 봉헌했는데 오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바쳤어요. 여러분 모두가 오늘 모든 고통을 다 내려놓으시고 새롭게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행복하다고 그래도 또한 불행한 것들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고통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통 없는 분 손들어 보세요. 그렇습니다. 고통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말고 다른 사람들은 두통이나 타박상이나 찰과상 같은 적은 것들까지도 원망하기에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는 올가미를 놓아서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기를 원합니다.

이제까지 그 고통들을 온전히 봉헌하시면 여러분들은 오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더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마귀는 더 올가미를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넘어가지 않으면 마귀는 반드시 쓰러집니다. 주님께서 오늘 수난을 받으셨지요? 그러면 주님께서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모님도 함께 그 고통을 받으신 거예요.

성모님은 어머니이시면서도 어찌하지 못했던 그 아픔들을 봉헌하시면서 얼마나 고통을 겪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도 주님과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한다면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는 출분하여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고통은 더 큰 아픔입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예수님께서도 가장 사랑하는 제자 중에 한사람이 배반을 하였기 때문에 더 많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우리를 박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시어머니, 내 어머니, 내 친정 처가의 가족들이 박해한다면 더 마음이 아프지요.

그렇듯이 마귀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끊어 놓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아, 누구를 통해서 나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끊어 놓기 위해서 마귀들이 공작을 꾸민 거구나’ 하고 빨리 빨리 깨닫게 되면 마귀는 반드시 쓰러지게 돼있습니다.

1994년 1월 21일 날 성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박해와 고통을 겪을지라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며 끝까지 성모님의 생각을 관철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게 우리 곁에서 악마로부터 지켜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많은 영혼을 성모님의 성심에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로 데려가는 것이니 성모 성심께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화관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계획을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셨으니 우리의 사명을 완수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순교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우리 노력합시다.

인준의 때는 곧 다가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전 체나꿀룸에 모였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순교로써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기 성모님 동산 체나꿀룸에 모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경우니 유다의 자리를 차지하지 맙시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와 유다는 똑같은 제자였습니다. 유다는 주님을 배반하였지만 회개했으면 구원을 받았을 텐데 회개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못 받게 됐습니다. 돈에 욕심이 많던 유다는 예수님께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 십자가에 못을 박아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것이다.’ 하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자마자 유다는 자결을 하고 말았습니다. 성모님께서 그러지 말라고 붙드셨는 데도 그는 기어코 도망가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선다면 반드시 용서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하지 못해 후회하다 자결하므로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유다의 자리에 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유다스의 자리에 절대로 서지 맙시다.

주님 제자 베드로는 어쨌습니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절대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냥 부인만 했습니까? “천벌을 받을지라도 나는 그를 모르오.” 맹세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너무 고통스러우신데 저쪽에 불을 쬐고 앉아서 “나는 그를 모르오. 천벌을 받을지라도 나는 그를 모르오.” 하고 맹세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 아픔이셨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자마자 베드로는 슬피 통곡을 하며 회개를 하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는 예수님처럼 반듯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못하고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똑같이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예수님께 달아들 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해주시는데 회개하지 못하고 달아나서 자결한다면 어쩔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자녀들이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탔는데 뛰쳐나가요.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잡으려고 하시는데 그래도 기어이 뿌리치고 뛰쳐나가면 어쩔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유다스도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일어나서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돌아온다면 반드시 용서해 주십니다.

여러분, 희망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은 희망이십니다. 그리고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오,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시고자 하신 절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신성과 인성을 같이 가지셨기 때문에 아픔도 느끼시고 괴롭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나약한 우리 인간이 얼마나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그러한 모든 것을 잘 봉헌하고 반드시 깨어나서 주님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셧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습니다. 제가 고통을 달라고 했지만 저도 인간성을 지녔기 때문에 너무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정말 그 고통에서 해방 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원래 저는 숨어 살기를 원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을 모르고 세속에 살면서도 남하고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가 항상 남의 흉보고 그런 것들 때문에 정말 혼자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알고 주님과 성모님을 안다고 하는 자녀들이 서로 화합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해 서로 미워하고 불목할 때 제 마음도 너무 아픕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래서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나의 찢어진 가슴을 기워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만이라도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고통들을 아름답게 봉헌한다면 주님과 성모님께 위로의 꽃이 될 것입니다.

제가 사순절 접어들면서 음란죄보속고통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방이 따뜻하지도 않는데 요위에서 자나 방바닥에서 자나 온몸과 잠옷은 물론이고 요까지 흠뻑 다 젖습니다. 하룻밤에도 얼마나 많이 옷을 갈아입어야 되는데 빨래해주신 분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옷을 말려서 다시 입고 또 다시 말려 입어요. 그래서 그렇게 옷을 말리고 갈아입다보면 잠을 제대로 못잡니다.

그리고 제가 혈변을 본지가 꽤 오래 됐습니다. 그 혈변을 보면서 그 피 한방울 한방울 그 방울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며 나주 순례자 모두의 고통이 줄어들고 회개의 은총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봉헌했습니다. 오늘도 그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다리도 펴지도 못하고 오므리지도 못해 앉아도 힘들고 누워도 힘들었지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은총을 넘치게 받을 수 있도록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저도 여러분들을 위하여 고통을 갈망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몸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혈변을 하루에 7번씩까지 보고 그 혈변이 그냥 변에만 섞여서만 나온 것이 아니고 변기통이 새빨갛게 됩니다. 냄새 하나도 안 났다가 어떤 때는 시궁창 냄새도 나고 또 선홍색 피가 나왔다가 검붉은 피가 나왔다가 그럽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그 정도라면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래요. 그래서 그 피를 검사해 봤더니 암이 걸렸어도 말기암 환자의 경우랍니다.

그 모든 고통들을 여러분들과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해서 그리고 죄인들의 회개와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 성화를 위해서 또 교황님과 교황청에 계시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봉헌했으니 예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어요? 예수님께서 그 은총을 다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받는 고통이 희망이 있는 행복한 고통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받았던 고통, 받아야 될 고통이 있다면 정말 행복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행복해 집니다. 고통스럽게 생각하면 한정 없이 고통스러워서 우울증까지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고통들을 정말 아름답게 봉헌하신다면 여러분들은 다 구원받으실 것입니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말고, 곁눈질도 하지 말고 주님과 성모님만을 따라갑시다! 그러면 우리 마지막 날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계신 천국으로 갑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을 묵상하실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묵상해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 7월 1일 예수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들아!
나는 너희를 위하여 온갖 조롱을 받으며 매질과 구타로 인해 피땀을 흘렸고 왕관 대신 가시관을 썼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나는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받아 성삼위 안에 하나 되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와 함께 하고자 피 흘리며 너희에게 온 것이다.

인간이었던 내 심장은 천주성과 함께 그리고 인간인 너희의 심장과 더불어 고동친다는 것을 안다면 나와 더욱 친밀해 질 것이다. 더욱 겸손하게 나의 상처를 깊이 묵상하고 나에게 침잠할 때 풍성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02년 3월 28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내가 받은 그 고통을 어찌 감히 너희가 짐작인들 할 수가 있겠느냐. 주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따라갈 심산이었던 사랑하는 제자들마저도 내 아들 예수를 외면했을 때의 그 뼈 저리는 아픔은 또 어떠했겠느냐? 그것은 바로 배반의 배은망덕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깊숙이 꽂히는 아픔이었다. 그리고 모진 편태로 인하여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온갖 조롱을 다 받으시며 걸으셨던 갈바리아의 참혹한 십자가의 길에서 기진하고 쇠진하신 내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와 함께 무참히 넘어지실 때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하던 이 엄마의 처절한 아픔, 그것은 바로 나의 온 몸이 찢겨나가고 모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의 망치소리는 내 온 몸을 망치로 때리는 아픔이었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늑방을 창으로 찌름은 바로 내 심장을 으깨며 찌르는 극도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참혹한 그 모습 앞에 어머니이면서도 어찌하지 못했던 나는 그날 이후 매일매일 주님께서 피 흘리며 걸으셨던 갈바리아의 그 길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걸으며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고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단다.

그러니 지극히 사랑하여 불림 받은 자녀들아!
주님과 나를 안다고 하는 너희들만이라도 최후만찬의 파스카 신비와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영속시켜 매순간 생활의 기도화로 깨어 기도하기 바란다.”

가슴에 손을 얹으세요. 그리고 눈을 감으세요. 이제까지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을 안다고 했으면서 얼마나 주님과 성모님을 위해서 내 자신을 봉헌했는가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끝없이 끝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잘못했던 부분들, 잘 봉헌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뉘우치면서 주님께 온전히 용서받고 구원받도록 우리 자신을 다 내어놓도록 합시다.

저는 아까 십자가의 길을 할 때 성난 군중들이 던진 돌팔매질에 맞아 실제로 입술과 입 안이 다 여기저기 터지고 혀도 깨져 말할 때마다 터지고 깨진 곳이 다 씹힙니다. 제가 말하기도 힘들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함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한다면 여러분과 함께 오늘 밤새라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할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과 성모님께 내어놓읍시다. 성모님의 갈기갈기 찢긴 그 마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어머니이시면서도 어찌 하지 못했던 그 아픔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회개로써 주님께 다가가고 성모님께 다가갈 때 그 아픔들을 위로해 드리는 위로의 꽃이 될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어. 주님의 뜨거운 빛을 하늘에서 내리시어 이 모든 자녀들에게 머물게 하소서. 특별히 우리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무한한 축복으로 감싸주시고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영육간에 건강하여 주님의 영광과 성모 성심의 승리를 온 세상에 전하는 도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과 두고 온 가족들 그리고 이 시간에 함께 하고자 하여도 못 온 당신의 자녀들에게 무한히 축복으로 은총 내려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제까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용서합시다. 세상을 살다보면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의 짓이라면 우리는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왜 용서를 못했나
우리가 용서하면 하느님도 용서한다오
내 모든 고뇌 주님께 사정을 하여
용서받고 구원받아 참 평화를 영원 영원토록

사랑하는 형제자매 왜 통회를 잊었나
눈물의 통회는 기적을 부른다오
내 모든 갈등 주님께 온전히 맡겨서
치유 받고 은총 받아 영원생명 누리리라

메마른 가슴에 주님이 오시면
사랑의 불을 놓아 사랑안에 살아가리
내 모든 설움 주님께 하소연 하면
메마른 내 가슴을 주님이 채워주리

사랑 없는 가정을 그 누가 원하랴
메마른 가정에서 우리는 살아왔네
내 모든 슬픔 주님께 고백을 하여
사랑으로 살아가리 사랑으로 사랑으로

상처로 찌들은 불쌍한 영혼이
병들어 지쳐서 길 잃어 헤매여도
주님의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시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 심취되리

영혼의 추한 때 깨끗이 씻고자
성모님 성전에 우리 모두 모였으니
예수님 성모님 품안에 안으시어
병들은 영혼육신 치유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우리 모두 불림 받아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모님 동산에 모였으니
메마른 우리 영혼 회개로써 구원받게
불림 받은 자녀로서 메시지를 실천하세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성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예수님께 그 고통을 허락하셔서 우리 모두는 구원받게 되었나이다. 여기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단 한영혼도 빠짐없이 모두가 새로 태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나이다. 이렇게 행사에 참여한 당신의 자녀들 온전히 축복하여 주시고 주님 영광 드러내소서. 두고 온 가족들도 무한히 축복해주시고 저희들이 태중에서부터 받아왔던 이제까지의 모든 상처들 치유해주시옵소서. 온전히 맡기고 의탁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여기 모였사오니 이 모든 자녀들의 기도지향을 그대로 들어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각자 모두가 다 지향이 다를 것이오나이기적인 기도지향이 아니면 주님 다 들어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기적인 기도 아니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이 모든 자녀들 온전히 맡겨 드리오니 무한한 축복으로 강복해 주시고 우리 신부님과 수녀님들 모두가 마지막 날 성인 반열에 오르게 하시며 또한 여기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모두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해주십시오. 온갖 박해를 다 받으면서도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따르며 일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을 따르는 당신의 자녀들, 그리고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조수불급한 일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구해내어 질풍경초처럼 세워 주시겠다는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시옵소서. 이 자녀들 남은 시간 온전히 주님과 성모님 안에서 기쁨과 사랑과 평화 가득 누릴 수 있도록 새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나이다. 부족한 이 죄인의 기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율리아 자매님의 말씀이 끝나자 자정이 훌쩍 넘어 성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성 금요일, 수녀님의 베일에 황금향유를 내려주심

피곤하고 긴 하루였지만 순례자들은 국가별, 기도회 지부별로 삼삼오오 모여 그때부터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면서 부활계란을 성심성의껏 준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