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사랑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가족 여러분께 은총 넘쳤던 마리아의 구원 방주 제 2회 피정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7월 7일 311mm와 시간 당 최대 1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휩쓸고 간 나주 전역은 물난리로 막대한 피해와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도 성모님 동산이 위치한 신광리는 공식적인 발표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고 산 물까지 한꺼번에 내려와 비닐 성전과 주방이 물에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피정을 치를 수 없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모든 봉사자들이 사랑으로 일치하여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복구 작업에 들어갔고 주님과 성모님의 도우심과 전국의 기도회원들의 관심과 기도 속에 아쉬운 대로 피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서로 기뻐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피정 참가자 중 일찍 도착한 100여명의 순례자들은 경당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성모님 동산을 가는 길에 있는 신광리 마을 자연 체험학습장을 둘러 옥수수를 끊고 방울토마토를 따며 행복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농약을 치지 않은 싱싱한 방울토마토는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이렇게 맛이 있는 토마토는 난생처음이라는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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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리 마을 유기농장을 견학한 후 성모님 동산으로 향해가는 피정 참석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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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리 마을 유기농으로 재배한 토마토를 직접
따서 시식하는 피정 참석자들 |
이번 2박
3일간의 마리아의 구원방주 제 2회 피정의 주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누구든지 쉽게 천국에 오를 수 있도록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알려주신 “생활의 기도”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심화하여 작은 영혼으로 불림 받은 나주 순례자들의 삶과 영성을 더욱 성화 시킨다는 취지였습니다. 봉사자들은 섬기러 오신 주님처럼 온전히 낮아져 피정참석자들이 더 풍성한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오전에 먼저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성공적인 피정을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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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들의 마지막 점검 및 오리엔테이션 |
오후 들어 200명 가까운 피정자들이 성모님 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은 아름답고 그윽해야 할 성모님 동산이 일부 패이고 황폐한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70여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복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60~70 대의 나이 많은 순례자들도 성모님을 사랑하고 성모님 동산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은 30~50 대와 똑같아 땀을 흘리며 노익장을 과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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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첫째날, 피정에 참석하기 위하여 접수하는 각 지부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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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뽑으며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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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폭우로로 손실된 십자가의 길을 복구하면서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는 피정 참가자들 |
이날 피정 참가자들은 많은 노동을 하였지만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며 하였기에 그 자체가 온유한 봉헌이요 숭고한 기도였으니 천배 만 배의 공로로 쌓여 주님과 성모님의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을 것이며 천상교회의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날은 또 일본에 거주하는 필리핀 순례자 여섯 분이 순례 왔습니다. 그들은 경당 안의 여러 징표를 살펴보고 성모님 앞에서 기도드리며 굵은 회개의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은총을 듬뿍 받은 그들은 예약한 서울행 기차시간을 연장하여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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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오신
필리핀
순례자들을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율리아
자매님 |
성경에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셨으니 이 필리핀 순례자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인간적 계획이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과 성모님의 부르심에 늘 아멘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피정 순례자들은 모두가 영혼의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야 오리엔테이션을 가졌습니다. 지도 신부님과 율리오 회장님의 격려사가 이어졌고 피정 개회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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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동산에서의 저녁 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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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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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참석자들에게 환영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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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신부님의 격려사를 듣고 있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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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오신
필리핀
순례자들을
박수로
환영하는
모습 |
신부님께서는 “생활의 기도”
에 대한 강의를 곁들여 강론을 해 주셨는데 영성체 후 여러 분들이 흐느끼며 통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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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개회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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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기도란 무엇이며, 생활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할까요?
인류는 최초부터 종교를 가졌듯이 차음부터 기도를 해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속한 행위입니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이며 내적이고 심오한 행위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과 자연을 초월하여 무한으로 향하고자
합니다.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도는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여 절대자에게 자신을 여는 인격적인 교류 행위입니다.
이 기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시키고 성장시키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도가 아훼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즉 야훼는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셨으며 현재에는 그들의 번영을 축복하시고, 미래에 가서 완성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야훼의 계약을 어겼으며 그래서 재난과 패전 등의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신음하고 슬퍼하며 야훼께 외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간의 생생한 교류는 시편과 지혜문학서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왕과 예언자가 백성들을 위해 야훼께 기도하고 제물을 바쳤으며, 예언자는 야훼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여 회개를 권고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립 후 사제들이 기도를 주관하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성전은 ‘기도하는 장소’(이사 56;7)가 되었습니다. 기도가 전례로서 규정되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경입니다. 전례적인 기도는 야훼의 존엄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야훼와 백성간의 친교는 차차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기도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는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은 기도의 사람이셨으며 기도는 그분의 전존재 전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르 14:32-36, 루가 3:21, 6;12-13, 9:28-29). 기도는 예수께 호흡과 같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하느님을 ‘Abba'(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마르14:36). 예수의 기도는 이 ’아빠‘와의 끊임없는 대화, 자녀다운 친교, 그리고 깊은 일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고 그 열매인 성령을 받았을 때 성령에 의해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새 창조 및 새 탄생이 이루어졌음을 확증해 주신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라 4;6, 로마 8;15) 기도의 정의는 -하느님께 영혼을 올리는 것이다.
(성 요한 다마세노) -하느님과의 대화.(성 에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과의 친교.(성 금구 요한) -하느님과의 친밀함.(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기도의 내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오리제네스는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그 분과 대화하고 그 분을 바라보는 것”이라 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도는 애정을 다하여 하느님을 쳐다보는 행위” 또는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애정으로 가득찬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구도(口禱)와 염도(念禱)로 구분됩니다.
구도는 염경기도(라, oratio vocalis)라고도 하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 속의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어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일정한 기도문 또는 문귀를 외는 기도이며, 이는 다시 전례기도와 비전례기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례기도는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 즉,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전례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의 지도에 따라 교회가 인준하는 경문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에는 최고의 기도인 미사와 그 밖의 성사, 성무일도, 말씀의 전례 등이 있습니다. 비전례기도 이 기도는 전례가 아닌 모든 구도이며, 공동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바칩니다. 아침, 저녁기도,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 여러 호칭기도 및 자유로운 형태의 기도와 개인적인 비전례기도인 화살기도가 이에 속합니다. 염도는 묵도(라, oratio mentalis ; 영, silent prayer)라고도 하며 이는 기도문이나 문귀를 쓰지 않고 내심에서 하는 기도, 소리내지 않고, 명상하거나 깊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에는 일반적으로 묵상 염도, 감동적인 염도, 단순한 염도(수득적 관상), 신비적인 염도(주부적 관상)로 구분됩니다. 말없이 기도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묵도는 묵상 또는 묵상신공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엄격히 말해서 묵도는 “소리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 올리는 기도”이며, 묵상은 ‘고찰적인 기도’라고 구별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의 전통은 묵상을 그리스도 교인의 영적인 생활의 극치로 간주해 왔는데, 이는 염도의 한 형태로서, 지성(知性)이 하느님의 임재(臨在) 앞에서, 신과 신에 관련이 있는 사항에 대하여 생각함을 지칭하므로 ‘추리적인 염도’라고도 부릅니다. 기도를 이와 같이 학자들이 편의상 분류를 해놓았지만 이 분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가령 염경기도로 분류되는 로사리오 기도의 경우 이를 개인적으로 각 단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침묵 중에 바친다면 이럴 경우에는 염경기도가 아니라 훌륭한 묵상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길을 기존하는 기도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바친다면 이 기도 또한 염경기도가 아니라 묵상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묵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묵상(?想 ; 라. meditatio, 영, meditation)이란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하여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하느님과 관계된 모든 일에 관해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묵상은 ‘생각만으로 드리는 기도’ ‘정신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지적인 행위와 의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묵상의 주제로는 신앙의 신비들, 신앙의 진리, 예수의 일생, 교회의 가르침, 성서의 내용, 성인들의 생애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바를 깨닫게 되어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묵상에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려는 열망과 의지 결심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묵상은 관상(觀想)과는 구분됩니다. 관상(觀想 ; 라, contemplatio 영, contemplation)이란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삶의 주체요 내용이며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릅니다. 관상은 개인의 노력으로써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능동적 관상인 수득적(修得的) 관상과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수동적 관상인 주부적(注賦的) 관상이 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탐구하는 무아정적의 경지에 몰입하는 불교의 선은 수득적 관상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비그리스도교 선언문 2). 일상생활 가운데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느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는 주부적 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 있어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활의 기도화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또 어떤 기도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이 강조하시는 생활의 기도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십자가의 수난 공로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 주신 그 대가로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바라신 것은 바로 진정한 회개로써 생활이 변화되어, 온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양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과 성모님을 안다고 하는 대다수의 택함 받은 자녀들까지도 진정한 회개와 사랑과 정성된 마음 없이 형식적이며 율법적인 기도를 바치면서 생활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으니 입으로는 하느님을 찬양하지만 결국 주님께 기쁨을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기시어 한국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알파요, 오메가이신 주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인 생활의 기도를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알려 주신 것이며 지금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전 세계 모든 자녀들에게 생활의 기도를 전하도록 하셨는데,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설사 너희의 생각이 불완전할 지라도 더욱더 작은 자로서 너희의 생활전체를 내 어머니를 통하여 온전히 나에게 바치는 것이 바로 생활의 기도이며 봉헌이란다.” (2000. 6. 13) 라고 하셨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사소하고 하찮은 작은 것 한 가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봉헌하며 기도하자고 외치던 너의 그 생활의 기도가 불타는 내 성심과 내 어머니 마리아의 성심 안에 온전히 용해되어 하나를 이루는 격이니 세상 자녀들이 촉범함으로 나에게 박아준 못 하나하나를 빼내 주는 것이며 내 어머니 마리아의 눈물과 피눈물을 닦아 주는 위로의 기도가 되기 때문이란다.” (2000. 11. 12) 하셨고 “전심을 다해 사랑으로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어떠한 마귀라도 물리칠 수 있는 사랑과 겸손과 덕행의 무기이며 성덕을 태동시켜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단다.” (2002. 8. 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도와 생활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염경기도이던 묵상기도이던 어떠한 형태의 기도이던 간에 이러한 기도를 위해서는 따로 마련된 장소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어려움도 기도란 특별히 예를 갖추어서 거룩한 장소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돈 벌기도 바쁘고 아이 키우고 시부모 모시기에도 바쁘고... 공부하느라 바쁘고... 현대인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의식주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피땀 나는 노동을 해야 하고 그래서 기도란 우리와는 별개의 사람들이나 드리는 것이라 치부합니다. 한마디로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일리가 있는 듯이 들리는 하소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공에 제약을 받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아주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새롭게 전해 주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사소하고 하찮은 작은 것 한 가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봉헌하며 기도하는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인간들의 보잘 것 없음과 하느님의 위대하심 사이에 놓인 심연을 채울 수 있는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 동산에서의 거룩한 미사가 끝나고 필리핀 순례자들이 막차를 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때 율리아 자매님이 그들을 위하여 만남과 기념 촬영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피정 참석자들은 성모님 사랑 안에 떠나는 필리핀의 형제자매들을 우렁찬 박수로 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기쁨과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6월 12일로 예정되었던 2차 피정이 연기된 피치 못할 사정을 설명하시며 고통으로 점철된 당신의 삶과 인생역정은 오히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었다며 우리도 고통들을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에 나주에 집중호우가 와서 성모님 동산도 좀 피해가 있었는데 봉사자들도 고생 했지만 피정 받으러 오신 여러분들도 주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오늘 너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지난 7월 첫 토요일 날 저 아프게 보였어요? 전혀 아니었지요? 제가 여기 나와서 그렇게 웃고 큰 소리로 여러분하고 같이 사랑을 나눠도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고통 안 받을 때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베드로 회장님은 그렇게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받는다고 여러분들에게 말했는데 제가 나와서 전혀 고통 받지 않은 사람처럼 얘기하니까 누가 알겠느냐고 자기를 거짓말쟁이 만든다고 그러잖아요. 6월 첫 토요일 날 신부님들과 수녀님, 협력자들이 모여 준비 기도를 했는데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어떤 기도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아무 기억을 못할 정도였어요. 첫 토요일 철야 기도를 하기 위하여 동산에 올라 왔는데도 숨이 너무너무 차오르고 심장을 완전히 창으로 찌르고 칼로 오려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기가 오면 손발에 힘이 다 빠져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못 잡을 정도로 꼼짝을 못하겠고 가슴은 목까지 차올라 뜨거운 기가 계속 나오는데 목구멍까지 뜨겁고 쓰리고 뭐라 표현을 못할 정도로 아파요. 그렇지만 제가 고통을 받음으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쁘게 봉헌할 수 있었어요. 제 시간이 되어 오는데도 도저히 나올 수가 없어서 진통제 제일 강한 것을 맞아도 안돼서 한 시간 후에 또 맞았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서 여기 나왔는데 여러분을 보니까 힘이 났기에 말씀을 전하고 만남도 유난히 힘껏 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고통은 일요일까지 아니, 월요일까지 계속되어 숨도 잘 못 쉬고 완전히 죽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심장병이 이렇게 오느냐?’ 하고 아는 간호사 둘에게 물었더니 심장병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하여 한국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이 모두 깨끗하게 나왔어요. 그래서 ‘그럼 괜찮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내과 과장님이 제 상태를 보면서
심전도 상에서 아무 이상이 없어도 크게 이상이 있는 사람이 2~30%나 된다고 소견서를 써주면서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으며 지금 당장 앰뷸런스 불러줄 테니까 산소 호흡기 끼고 빨리 전대병원 가래요. 제가 “가더라도 집에 들러서 갈게요.” 했더니 오늘 넘기면 절대로 안 된다며 “아주머니 상태는 밤을 넘기면 순간적으로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그러셔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소견서를 팩스로 보내어 다른 데 또 알아봤더니 거기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심장병이 최고 심하면 그렇게 올 수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광주가 아닌 제가 다니던 대학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도 이상 증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올 2월에 한 초음파 검사보다 더 깨끗하대요. 근데 제 증상이 너무 심하니까 응급실을 통해 입원해서 3일간을 2시간에 한 번 정도 피를 뽑아가며 계속 검사를 해보니까 심장에 피와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길게 거의 다 막히고 머리카락만큼만 남아 있었답니다. 신부님들은 제가 고통을 계속 받다보니까 고통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시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해주실 수도 있지만 모든 순례자들의 영적 육적 치유를 위하여 봉헌하면서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부분 마취를 하니까 정신이 말짱해서 제 살을 째고 혈관으로 관이 들어갈 때는 죄가 큰 영혼을 봉헌하고 수술을 하고 관이 나올 때는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상처로 굳어진 심장이 깨끗이 치유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수술해 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면서 봉헌을 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생활의 기도가 좋지요? (네!)
수술 후에 꼼짝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서 받은 모든 고통들을 피정을 받을 여러분들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바쳤습니다. 제가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나 여러분 앞에 서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고 빨리 나주 성모님 인준 받아서 온 세상 자녀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계획하심입니다. 왜냐면 저를 학회에 연구발표까지 한다고 사인을 받아 갔답니다. 이제까지 그런 환자가 없었답니다. 제가 받는 고통도 제가 받은 고통이 아니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받으시고 여러분 치유 받으실 수 있도록 고통을 봉헌합니다. 고통이 와도 감사, 또 건강해도 여러분과 함께해서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나누니까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기적이나 징표는 남들이 볼 때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데 세상 어디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전대미문의 수많은 징표들을 보여준 이 성스러운 장소에서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함께 하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낙태보속고통을 자주 받다보니까 자궁과 장이 유착이 돼서 자궁을 떼어내 지금도 자궁이 없는데 임산부들은 10개월 간 배가 서서히 불러오지만 저는 낙태보속고통을 받으면 배가 한꺼번에 팍 부릅니다. 89년도에 경기도에 초청받아 갔는데 그 곳에 체중계가 있어서 올라갔더니 56키로가 나갔어요. 근데 바로 낙태 보속고통으로 배가 부르니까 다시 한 번 더 재보면 좋겠다고 해서 재 보았더니 8키로가 더 불어나 64키로가 되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받는 고통은 그냥 영적으로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받아요. 금방 괜찮을 때도 있지만 전에 폐병환자 기도해주고 실제로 제가 2주간을 심한 기침으로 피가 넘어오고 밤에도 잠 한숨을 못자 밤이 무서울 정도였고 미용실을 하면서 손님 머리 하다가도 뛰어나가 엎드린 채 가슴을 쥐어 잡고 각혈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손님들의 머리를 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생활의 기도를 봉헌을 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심하게 기침한 것은 봉헌 할 수가 있었지만 어느 날 보다 못한 손님들이나 장부가 안타까워 병원에 가보라고 하여 손님들에게 미안하여 일을 끝낸 뒤 장부와 함께 내과를 찾았는데 원장님이 “지금 상태로는 응급조치도 할 수 없으니 빨리 광주 기독병원 응급실로 가보세요” 하는 거예요 (그 병원은 당시 광주, 전남에서 폐병을 가장 잘 고치는 병원이었음.) 장부가 깜짝 놀라 의사의 말대로 하자고 했으나 집에 와서 깊은 기도를 하고 괜찮아졌는데 몇 달이 지난 뒤 미용실 하는 사람들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기에 찍었더니 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치료된 후에 찍은 사진처럼 폐에 구멍이 뻥 뚫린 흉터가 생겨 의사가 언제 폐병 알았느냐고 물어본 경우도 있었잖아요. 저는 고통을 하도 많이 받다보니 주위에 계신 분들도 의례 고통이려니 생각하시는데 한번은 목이 많이 아팠어요. 목이 너무 아프면 봉헌하기가 힘들어요. 목은 완전히 부어버리니까 말도 못하고 온몸이 완전히 다 부어버리거든요. 그때는 나주에 이비인후과도 없어 나주병원 내과를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목을 만져보다 “아주머니 누워보세요” 하더니 배를 만져보고는 “아주머니 산부인과 일인자가 우리나라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분은 서울대 병원에 계시고 또 한분은 다른 곳에 계시는데 제가 그분을 알려 드릴 테니 당장 가보세요. 지금 목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 해서 다음날 그 산부인과를 가 봤어요. 그 병원 원장님은 “아주머니 배가 걸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당장에 수술합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가 고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수술을 안했어요. 그렇게 2~3년이 지난 다음 나주 병원 내과에 갈 일이 있어서 그 말씀을 드렸더니 내과 의사가 “그분은 겸손해서 절대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바로 수술해야 됩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뒤 계속 아파지니까 다른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도 똑같이 수술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신부님들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그 당시 성체를 매일 영하지 않으면 제가 영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기에 미사도 할 수 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부산 메리놀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검사를 해보니 자궁이 장하고 유착이 됐는데 이것은 고통으로 온 것이니 수술을 하지 말고 어떻게든 약으로 해보자고 말씀을 드렸더니 열흘 동안 계속 금식시키고 계속 피 뽑아가고 하루에 항생제를 10번 이상을 투약했어요.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먹는데도 변이 피고름처럼 나오는데 견디기 어려웠으나 그 고통들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해 봉헌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봉헌했어요. 그런데 산부인과 과장님이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수술해야만 된다고 하셔서 신부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수술을 해야지”하시어 수술 하기로 결정하고 수술하러갈 때 율리오씨에게 “율리오씨 걱정하지 마시고 기도하세요. 나 잘 하고 올게요. 알았죠?”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전화 좀 걸어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여 수술대에 누워서 전화로 “율리오씨, 나 정말 괜찮아요. 제가 수술하는 동안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성직자와 수도자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아름답게 잘 봉헌해 주세요. 저 너무너무 기쁘게 수술대에 올라 기도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관계자들이 이제까지 수술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빠이빠이 하면서 건강한 사람을 걱정 하는 것은 처음 봤대요.
그렇게 자궁 절제 수술을 했는데 담당 과장님이 “아기 낳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라고 묻기에 “10년 넘었는데요.” 했더니 “에끼, 여보시오 자궁이 그렇게 크던데 무슨 10년이 넘어요.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아, 낙태 보속 고통 받을 때 자궁도 실질적으로 커져 낙태 보속 고통 받을 때마다 몸무게가 7-8kg 정도 더 나갔었구나.’ 즉시 직감하고는 측량할 길 없는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에 소리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주님께서 다정하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받아왔던 그 극심한 고통들이 온 몸이 저려 오도록 그렇게도 기쁘단 말이냐? 온 세상의 수많은 자녀들이 멸망을 향해 맹진하고 있지만 너와 같이 매사에 감사하는 작은 영혼이 있기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진노의 잔을 늦추고 계시며 나와 내 어머니도 위로를 받는단다. 네가 받아내는 희생과 보속의 고통을 통하여 백배가 아닌 천 배 만 배의 소출을 낼 것인데 그것은 바로 메마른 나무에 단비가 되어 시들었던 영혼이 생기 돋아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그것은 바로 저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너무 너무 감사해서 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어찌 사랑을 안 나눌 수 있겠어요? 사랑을 안 나누고 있으면 못 견디겠죠?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정말 어린아이들 너무 이쁘면 꼭 깨물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저는 옛날부터 잘 배우고 못 배우고, 높은 사람이고 낮은 사람이고 그런 것 절대 따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옛날에는 오히려 행려자들, 거지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하고 친했지 정말 높고 잘난 사람들하고는 친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 높고 낮음이 없이 똑같죠?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높아지지 않을 거죠? 아무튼 이 가슴이 언제나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프고 심지어는 숨을 쉬기만 해도 아팠는데 수술하니까 안 아파요. 근데 여러분들 위해서 봉헌 할 때 여러분들의 심장병이나 깊은 상처들이 치유될 때는 말할 수 없이 또 아프지만 제게는 그 고통들이 오히려 기쁨이에요. 제가 병원에 갔을 때가 새벽 1시가 넘었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수술하기 전에 아직 주치의도 저를 안 봤을 때인데 아침 7시에 너무 너무 잘 생기신 의사 선생님이 제 병실에 들어오셔서 “아니, 어떻게 그 몸으로 4시간이나 차를 타고 올수가 있었는가? 위험했다. 너무 너무 위험했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이제 됐다.”하시는데 너무 놀라 이름표를 봤더니 이름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지개 색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어요.” 하고 나가셨는데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분은 나가셨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찾아봐도 의사 중에 그런 분이 안 계셨어요. 아마 예수님께서 직접 치유 해 주실 수도 있으셨으나 희생을 치르고 보속할 수 있도록 하시면서도 걱정이 되셔서 계속 함께 하시며 의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신 것 같아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거지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볼품없는 모습으로도 오시지만 의사의 모습으로도 오시어 병원의사가 수술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 곁에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모르니 우리는 누구에게나 잘해야 되겠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직접 하실 수 있지만 어떨 때는 또 희생이 필요해서 의사한테 보여서 수술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의사의 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실 수 있죠? 그 고통을 봉헌할 수 있도록 희생을 치를 영혼도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자궁을 들어냈을 때 율리오씨가 “여보, 여보, 이제 자궁을 떼냈으니까 더 이상 배 안 부를까?”하셔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모르죠.” 하고는 퇴원하기 전에 성당에를 갔는데 미사 끝나고 나서 배가 또 불러오는 거예요. 그 성당 보좌신부님은 제가 자궁 절제수술을 하고 하루도 지나기 전에 저를 찾아오셔서 뭘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하고 기도해 달라고 하셔서 신부님과 함께 기도를 했는데 제가 땀을 얼마나 뻘뻘 흘렸는지 몰라요. 그 모습을 보신 신부님께서는 “아, 이제까지 사제 생활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신다는 것을 이해를 못했는데 자매님께서 그렇게 기도해 주실 때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면서 기도하신 그 모습을 봤습니다.” 고 하셨어요. 그 신부님이 그때부터 강론도 잘 하시고 신자들한테 너무너무 잘하셨대요.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면 체험 한 거하고 안 한 거하고 다르잖아요. 또 제가 하느님을 모를 때 전남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을 했는데 입원한지 이틀 후에 산부인과와 내과의 검사결과 병명은 “자궁뼈 골반염” “열병” “자궁외 임신” “맹장염”이라고 나왔는데 산부인과와 외과가 급성환자인 저를 방치하고 서로 미루어 저는 계속되는 진통 속에서 아이와 함께 울었어요. 아이는 배가 고파서 울고, 나는 많이 아파도 아이 때문에 제대로 몸부림칠 수도 없어 너무 고통이 되어 울면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어요. 그러다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이 왔기에 기어서 외과를 찾아갔더니 너무 놀라 “아니 이럴 수가! 산부인과에서 아직도 수술을 안 시켰어요?” 하고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대변이 마려운 저를 기어이 대변을 보게 해주지 않은 채 수술실로 옮겼어요. 수술대 위에 누워서 보니까 산부인과와 외과에서 나온 의사와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들 15명가량이 저를 빙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아마 저를 실습대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들이 맹장을 떼어내고 자궁을 들어내려고 제 배를 열었는데 30년 넘게 자궁을 봤어도 그렇게 깨끗한 자궁은 처음 봤대요. 자궁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진단은 “자궁뼈 골반염” “자궁외 임신”이라고 나왔으니 마귀들이 그 때부터 저를 괴롭힌 거 같아요. 의사들은 맹장만 떼어내고 그냥 봉합을 했는데 그로인해 저는 말할 수 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 하지만 급성 맹장염을 사흘간을 방치했는데도 복막염으로 악화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지켜주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느냐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고통들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셨을까?’ 를 우리가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받은 고통 또 아내에게 받은 고통, 자녀들로부터 받은 고통, 부모로부터 받은 고통 그리고 시어머니께 받은 고통, 며느리한테 받은 고통, 그 외 다른 모든 고통들도 주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느끼고 그 모든 것들을 지금부터라도 생활의 기도로 바치면서 아름답게 봉헌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은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하시는가 보세요. 저는 맹장 수술했으니까 일주일 후에 퇴원하면 된다고 그랬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대변 나오려고 해서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안 나와요. 수술하기 전에 대변을 보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에서 가스가 생기는데도 대변도 안 나오고 가스도 안 나오니까 배가 터질 듯이 아프면서 장이 꼬이는 것 같았어요. 3일이 지나도 가스가 나오지 않아 온몸이 뒤틀리고 움직일 수도 없이 고통을 겪는데 소변 한 번 보는 것이 얼마나 따갑고 아픈지 아기 날 때보다도 훨씬 고통이 심했어요. 간호사가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물건 다루듯이 하면서 걸어 보라고 해도 전혀 걸을 수가 없어 엉거주춤하고 있으니까 엄살 부린다고 발로 차고 무릎으로 차면서 손으로 등을 막 때리더라고요. 그런데 사흘이 지나 적게나마 가스 소리가 나니까 함께 있던 자궁암 수술환자가 “엄마야!” 하고 반갑게 큰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 환자는 수술 후 일어나지도 못했지만 내가 몸부림치고 있을 때면 “아이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면서 함께 울어주다 가스가 나오니까 너무 기뻐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거예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듯이 배가 고파본 사람만이 배고픈 고통의 심정을 알아주죠. 그때 저는 먹지 못해 몸이 더 쇠약했는데 아무리 먹어 보려고 해봐도 음식을 먹으면 모두 토하고 심지어 수박즙을 내어 먹어도 토하니까 자궁암 환자가 가장 마음 아파했어요. 하지만 간호사는 걷지 못해 기어 다니는 저만 보면 엄살이 심하다고 볼 때마다 발로 차는데 제가 나가떨어질 정도로 세게 차서 뼈까지 아프더라고요. 그때는 그것이 하느님 사랑인지 몰랐는데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도구로 쓰시고자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도 도구로 쓰시려면 여러 가지 고통들이 있으실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해가지고 집에 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별것 별것을 다 해주셔도 못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골에 계신 시할머니께서 개 한 마리를 통째로 고를 내서 가지고 오셨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시어머니는 고기를 2000원 어치 사서 해오시면 딸 남편 먹으라고 한 그릇 덜어내고 갖고 오시면서도 2500원씩을 받아가셨는데 시할머니께서는 제 몸에 좋다고 개 한 마리를 몽땅 해주셨으니 먹지 못했지만 지금도 저는 그 사랑을 못 잊어요. 못 먹고 버렸을망정 시할머니의 사랑은 저를 감동시켰는데 하느님을 알고 보니까 시어머님이 제게 그토록 심하게 대하셨던 것도 사랑이었더라구요. (아멘!) 그런데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얼마 후 문제가 생겼어요. 배꼽 밑으로 열 바늘을 꿰맸는데 세 번째 꿰맨 데가 곪은 거예요. 율리오씨는 직장 충신이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불우 청소년들 가르치느라고 집에를 안 들어왔어요. 계속 먹지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우리 어머니가 수발해 주시고 학교에서 효행상을 탄 4학년짜리 큰딸이 많이 도와줬는데 곪은 데를 화장지로 잡아당겨보았더니 피고름과 함께 뭐가 길게 계속 쭈욱 나오는 거예요. 큰딸이 너무 놀라 “엄마! 그만해, 창자가 나오나 봐” 하며 소리 내어 막 우는데 저 또한 ‘나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이 어린것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수술 한 곳에서 거즈가 터져 나왔어요. 세상에 거즈가 뱃속에 들어 있었으니 어떻게 먹을 수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시골 병원 다녔는데 계속 다녀도 속에 피고름이 고여 있으니까 나을 수가 없었고 아파서 걷지도 못하고 나중에는 기어 다녔어요. 그래도 시어머니는 월급 때만 되면 오셔서 돈 달라 하시고 친정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낫게 해주려고 갖은 애를 다 쓰셨는데 상처가 안 아물어요. 상처에 소독만 하고 거즈만 붙이니까 안 낫는 거죠. 석 달을 계속 하다가 안 되니까 결국 어머니가 얘들 넷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서 거즈가 나왔다고 그랬더니 다시 수술하자고 그래요. 그 상황에서 다시 수술할 수가 없어 수술을 하지 않도록 간청을 했더니 어디를 소독해주고 싱을 넣어 주고는 다음에 혹시라도 아프면 바로 수술하자고 했는데 수술 안 해서 암이 걸린 거예요. 우리 시어머니는 막둥이 낳은 지 이레도 가지 않았는데 영암 군서라는 그 시골까지 오셔서 쌀 팔아달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옆에 마트들도 많고 전화만 하면 금방 갖다 주지만 옛날이라 방앗간에 직접 찾아갔더니 쌀이 없어서 다른 방앗간에 갔어요.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시골 정미소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한 십리쯤 걸어 다니며 쌀 한가마니를 팔아 드리고 나니 출혈이 시작되어 피가 신발에까지 내려와 걸음을 걷기가 힘들었죠. 출혈이 문제가 아니라 온 다리가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은 너무 뜨거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몇 달 가량을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면서도 남편에게 숨기면서 혼자 몰래 몸부림 했어요. 친정어머님은 딸 고생시키지 않고 병 낫게 해주시려고 밤낮으로 애쓰시며 시골집으로 쌀 가지러 가시던 날 시어머님은 쌀 팔아 달라고 오신 이 모든 일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예비하신 일들이었어요. 셋째아이 날 때도 완전히 11개월 만에 낳았는데 아이를 가진지 9개월째 되었을 때부터 1-2분 간격으로 진통이 와 한약을 달여서 먹으려고만 하면 진통이 멎었는데 아이는 나오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고문과도 같았어요. 저는 그때까지 한약 두 첩씩 먹고 아이 둘을 낳았는데 이렇게 1개월쯤 고통을 겪다가 산부인과를 갔더니 병원장이 “세상에, 이런 상태로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느냐?”며 “큰일 나기 전에 어서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도록 합시다.” 하고 율리오씨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시어머님께 허락을 받기 위해 시댁으로 갔어요. 우리 시아버님은 서울서 경성대 나오시고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 나와서 대학원 다니셨는데 시어머니는 거기서 율리오씨 낳았을 때 건강하셨어도 한 달간을 입원하셨던 인텔리셨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님은 격분하여 “애기들은 누구나 시와 때를 맞추어 나오는 것인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림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내려가서 애기가 저절로 나오기를 기다려라”하시는 거예요. 시어머님 말씀대로 유도분만을 포기하고 집에 왔는데 또 보름동안을 2~3분 간격으로 진통은 하면서도 애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제가 죽어가니까 친정어머님은 용하다는 한의원에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당시 그 곳에는 병원이 없었으니 모두가 가니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였죠. 원장님은 저를 진맥하고 진찰 하더니 일주일 이내에 나올 것 같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또 보름이 지나가도 애기가 나올 생각을 않자 친정어머니께서는 다시 한의원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진맥과 진찰을 하시던 원장님은 “이거 큰일 났네. 아예 나오지 못 하겠는데요. 어서 병원에 가보세요” 하자 시어머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했기에 갈수 없으니 우리 친정어머니는 원장님을 붙들고 “여보시오. 어떤 방법이라도 좀 써 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하고 울면서 통사정을 하셨어요.
원장님은 “혹시 용약을 먹으면 애기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면서 한약을 일곱 첩 지어 줘서 그 한약을 먹고 11개월 만에 딸을 낳았는데 세상에 아이를 낳으면서 얼마나 출혈을 많이 했는지 어머니께서 손으로 훔쳐 담은 피가 요강으로 하나, 세숫대야로 거의 하나였답니다. 그 후 저는 6개월이 지나서도 다른 방에서 선풍기를 켜기만 해도 숨이 차오고 멎는 듯하여 헐떡거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이 하나를 더 낳고 몸조리를 잘하면 된다고 해서 막둥이를 낳았는데 시어머니께서 쌀을 팔아달라고 그 먼 데까지 오셔서 방앗간을 두 군데 돌아다니다 출혈을 하고나서 산후풍이 와버렸어요. 그런데 아이 낳은 지 4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에 걸려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오히려 몸이 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시어머니께서 우리가 아파트를 한 채 사줘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시동생 가르치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하고 셋방살이 집주인에게 모진 학대를 받으면서도 시댁의 도움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불을 둘러쓰고 밤새 일을 해가지고 그 시동생을 법대에 보내 공부시켰는데 아파트 사줄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또 제가 세 번째 아기를 가졌을 때 4개월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죽지도 않은 아기가 죽었다며 제 자궁을 가리켜 가면서 율리오씨에게 “당신 마누라는 지금 자궁이 썩어가고 있다”고 협박을 했어요. “아이는 죽지 않았다고 하는 저에게 아이가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며 장부에게 “당신 마누라 죽이고 싶어요? 살리고 싶어요?”하면서 설득해서 저를 붙들어 수술대에 눕혀 놓고 손발 다 묶어 계속 마취주사를 놔도 안 되고 팔에다 마취제를 놔도 안 되고 입에다 둘러 씌워도 안 되는데도 강제로 살아 있는 아이를 긁어냈어요. 저는 마취가 되지 않아 그걸 다 볼 수 있었는데 주님께서 다 보여주신 거예요. 의사는 강제 낙태를 계속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했는데 몇 분이면 끝난다는 수술이 두 시간이 걸리고 피를 흘리면서 1시간을 계속 진통을 해도 그냥 놔둬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이모님이 오셔가지고 막 야단했어요. 그랬더니 그때서야 주사를 한대 놓더라고요. 입원하려고 했는데 입원 안 해도 된대요. 피가 퐁퐁 나와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 당시 2백 원짜리 솜 2개를 속에다 넣으라고 주더라고요. 그렇게 넣고 왔는데 일주일 만에 재수술하고 8일 만에 죽었다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서 살아났으나 13일 만에 태가 나왔어요. 이 모든 고통들이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었어요. 저에게 큰 고통을 주셨던 시어머님이 저한테는 은인이셨어요. 저를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잖아요. 주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허락하셨어요.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주어진 고통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름답게 봉헌하면서 오늘 이 시간부터 또 새로 시작합시다. 여러분, 우리를 괴롭혔던 사람을 이제부터 사랑합시다. 세속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 사람들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성당을 다녀도 이런 고통들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 괴롭히거나 자기를 조금만 아프게 한 사람도 다 미워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하고 별거를 했지만 성당에는 서로 내색하지 않고 가니까 사람들은 성가정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잘 때 잠꼬대 한 것처럼 발로 부인의 기도를 누르고 경동맥을 눌러 죽이려 해도 안 죽어요. 그러면서 매일 미사를 다니는데 이튿날 미사 가서 둘이 나란히 나가다가 발뒤꿈치로 발을 짓이겨 밟아
버린대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도 모르게 “악” 소리 나오는데 태연하게 “왜 그래?” 그렇게 계속 했대요. 교회법은 이혼은 안 된다고 하니까 어떻게든지 죽이려고 별짓을 다 하면서도 성체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성체를 영합니다. 그런데 나주 와서 회개를 하고 재결합 했어요.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그렇게 순례 다닌 사람들이 아니고 나주 성모님께서 특별히 알곡으로 뽑으신 분들입니다.
처음에는 검불과 알곡을 고른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쭉정이와 알곡을 고르신다고 하셨으니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정말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사랑으로 특은 받으신 분들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나의 찢어진 가슴을 기워줘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셨는데 바로 생활의 기도는 매순간 순간을 깨어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많이 해야 되지만 할 일이 있는데도 일은 다 놔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묵주만 계속 돌린다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묵주의 기도는 단 한단을 할지라도 정성을 다하여 바쳐야 됩니다. 그래야만 싱싱한 장미꽃을 성모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 전에 저는 살림하면서 놀러를 안다녔거든요. 주님 성모님 알고는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말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하는데 그 전에는 입을 딱 다물고 있으니까 이웃 사람들이 새댁은 입에서 냄새도 안 나냐? 고 그랬어요. 저는 33세에 주님 자녀가 됐는데 주님께서 그때 19세 소녀로 바꿔 주셨지만 그 전에도 어려 보이니까 제가 시집올 때 어린 아이들도 다 커서 “언니! 우리들은 어쩌라고 언니는 안 늙어?” 그랬는데 지금도 여러분만 보면 좋아가지고 힘이 펄펄 나고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아까 목이 쉬어가지고 말 많이 못 할 거라고 그랬는데 그냥 좋아가지고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더 잘 살 수 있는가?하고 말이 더 잘 나와요.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한 가정을 택하기도 어려웠다고 하시며 제가 살아온 삶과 제 가정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가정과 삶을 전하다보니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어머니도 도구로 사용되신 거예요. 제가 주님 일을 하려고 할 때 자꾸만 어떤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마귀가 그 사람을 시켜서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여기 오시기 전에 마귀들이 은총 못 받게 하려고 아마 방해받은 일이 많이 있으실 거예요. 이번에 여러분 은총 얼마나 많이 받게 하시려고 그때도 연기하셔가지고 이번에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엄청 많이 와가지고 여기 비닐 성전이 물이 다 찼었어요. 그래서 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에 여기를 말리고 하기 위해서 수녀님들이랑 협력자들이 모두 함께 다했어요. 그러면 그냥 했겠습니까? 이번에 피정 받으실 여러분들의 영혼 육신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봉사자들에게 “모두 닦아내고 말리느라 너무 고생하고 수고했다” 했더니 “아니에요. 천국에 갔다 왔어요.” 그러고 베드로 회장님도 피정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했는데 우리 마리아의 구원방주 식구들 보니까 힘이 딱 나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 봉사자들이 얼마나 신경들 썼는지 몰라요. 여러분들 밥 못해주게 하려고 주방에도 물이 다 들어와 엉망진창이 되었으나 피정자들과 가족들까지도 은총 많이 받으시도록 희생과 보속으로 바쳤습니다. 여러분! 좀 초라하고 누추하여 힘들지라도 아름답게 봉헌하십시다. 그럼 주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 꼭꼭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여러분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주셔서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해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밤 예수님과 성모님 품안에서 푹 주무시고 내일 만납시다.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은 너무도 크고 가엾어 듣고 또 들어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에도 꺾이지 않은 자매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잉태할 수 있었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축복하며 용서할 수 있는 은총으로 다가왔고 만남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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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첫째날 참가자의 옷에 내려주신 성혈 |
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피정 첫날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둘째 날 이른 새벽, 피정자들은 2시가 돼서야 피곤한 눈을 붙였는데 뜨거운 열정으로 기상시간인 새벽 6시 보다 더 일찍 일어나 성혈 조배실과 십자가의 길을 돌며 기도하면서 여명을 맞았습니다. 사랑스런 자녀들의 이런 열의와 사랑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고귀하온 성혈로 축복하시어 아침부터 성혈 받으신 분들이 속출하였습니다. 모든 피정 참석자들은 기쁨에 차 경건한 마음으로 삼종기도를 바치며 거룩한 미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잠을 충분히 못잔 상태였지만 모두의 얼굴에서는 피곤함보다 밝은 빛이 느껴졌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랑하는 순례자들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점을 배려하여 강론을 아주 짧게 하셨지만 온유한 봉헌이며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나주의 순례자들은 모두 성인성녀의 길로 초대 받았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 요약>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잘들 주무셨습니까? 저도 율리아 자매님을 닮아 가는지 여러분들을 보면 막 즐겁고 기뻐지네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죠? 이번 피정은 우리가 생활의 기도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서로 나누는 데 주안점이 있다고 보는데 피곤하실 테니 강론을 짧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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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성모님 동산 성전에서 드리는 미사 |
대부분의 경우 신앙심이 깊고 영성이 뛰어난 분들도 기도는 시간을 따로 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등 다른 모든 종교인들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저도 율리아 자매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바빠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 삶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희생과 보속을 바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하고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하거나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과 육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 인간의 한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와 세속에서의 생활은 서로 양립하기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무한히 자비하시며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불가능한 삶을 요구하셨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해답을 주셨는데 여러분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죠? (네!) 무엇입니까? (생활의 기도요!) 역시 나주 성모님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은 다른 분들과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가끔가다 어떤 분들은 옛 성인성녀들도 이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셨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성인성녀들이 늘 기도하고 희생하면서 성덕으로 가신 것은 맞지만 이 생활의 기도는 잘 모르셨습니다. 성인성녀들이 이 생활의 기도를 아셨더라면 더 큰 완덕에 도달하셨을 겁니다. 생활의 기도가 세상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것은 1980년 8월 27일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한 자매님이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하려고 미용실에 왔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정성스럽게 머리를 해주며 하나하나 기도로 봉헌 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 그 기도가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기도인 생활의 기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혼을 결심했던 그녀는 남편을 용서하고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그때부터 당신의 모든 생활에 더욱 생활의 기도를 접목하고 실천하시면서 주위 사람들을 일깨우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6월 29일 광주교구의 열심한 봉사자 중에 한 사람이 율리아 자매님으로부터 생활의 기도를 배우고는 “그런 것까지 기도 하냐?”며 깜짝 놀라 “율리아와 3일만 함께 살면 성녀 되겠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성령의 감도를 받아서 한 예언적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 모두는 율리아 자매님이 목이 터져라 외치시는 생활의 기도와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성인성녀의 길로 초대 받은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네!) 그러면 우리 이제부터 우리의 모든 생활이 기도화가 되도록 다시 새롭게 시작합시다.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생활의 기도화를 외치니까 “기도가 생활화” 되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비슷한 것 같지만 이것은 아주 다른 말입니다. “생활의 기도화”는 일하고, 말하고, 방귀 뀌고, 닦고, 쓸고 하는 삶의 모든 행위를 일하면서 기도로써 봉헌하는 아주 뛰어난 영성으로 심한 분심 중에도 상대방을 축복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생활화”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면서 오류에 대항할 수 있는 성령의 분별력과 성령의 지혜와 성령의 지식을 간구해야 하는 겁니다. 생활의 기도를 처음에는 외어서 시작해야겠지만 생활의 기도는 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맛을 느낀다면 숨 쉬는 것처럼 하루에 천 번도 더 봉헌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이 깨는 그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생활이 기도화가 됩시다. 아멘? (아멘!)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생활의 기도에 대한 말씀들을 좀 정리했는데 미사가 끝나고 한 부씩 받아 가셔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메시지에서 생활의 기도만큼 많이 말씀하신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을 가는데 생활의 기도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여러분들을 사제가 아닌 똑같은 순례자로서 영원히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멘! 미사 중에 피정 참가자들은 모두 생활의 기도에 대해 주신 메시지 말씀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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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성모님 메시지가 든 상본을 뽑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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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성모님 메시지가 든 카드를 뽑는 피정 참가자들 |
아침은 간단하게 충무 김밥과 감자, 따뜻한 콩나물 국,과일 등으로 때우고 긴장된 몸과 근육들을 풀어주기 위해 대구의 김 바오로 형제가 나와 재미있는 스트레칭 체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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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전 기도를 드리는 피정 참가자들 |
다음은 미사 때 뽑은 생활의 기도에 대한 메시지 말씀을 필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모님께 장미송이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내려가며 생활의 기도를 바치는 모습들은 진지했고 그로인해 영성이 주님과 성모님께 더 가까이 다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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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메시지를 필사하는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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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한 메시지에서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말씀 사탕을 만드는 참가자들 |
순례자들은 오후에 이어질 파스카 예식과 물의 예식을 위하여 이른 점심식사를 재빨리 마치고 쏟아지는 비를 뚫고 성혈 조배실 앞에 모였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비정한 로마 병사의 채찍인양 순례자들의 몸에 퍼부어질 때 순례자들은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받으셨을 가혹한 편태를 묵상하며 찢기신 성심을 기워 갚기 위하여 기도에 더 몰입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이 차가운 빗물보다 더 뜨거운 통곡의 눈물로 추위에 떠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녹여 드릴 때 주님께서는 현천 같은 빗줄기를 비폭징류 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바꿔주시고 성모님께서는 맹렬한 빗줄기를 뚫고 짙은 장미향기로 축복하셨습니다. 12처에서는 뜨거운 불의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네 탓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내 탓으로 바뀌어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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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맨발로 성혈 조배실 앞에 모여있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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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자갈길을 맨발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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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보속하는 마음으로 자갈길을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피정 참가자들 |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갈바리아 동산 십자가 아래에 이르러 하늘을 향해 양팔을 들고 십자가에 제헌되신 예수님의 성혈의 무한하신 공로로 성모성심의 승리를 하루빨리 이루어 주시도록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나주에서 행하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위대한 업적을 판단하고 훼사훼언하는 이들도 용서해주시도록 간청하였습니다. 눈물이 강을 이루며 각 조별로 십자가를 빙 둘러싸고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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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리아동산 예수님상 앞에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눈물로 회개의 은총을 청하며 간절히 기도드리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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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0일 갈바리아 동산 예수님 십자가상 아래 내려주신 성혈을 묵상하며 각 팀별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들의 영혼, 육신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치유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리는 피정 참가자들 |
십자가의 길과 갈바리아 동산에서의 빠스카 예식이 끝나고 물의 예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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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하시어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드리며 기적의
샘물로
씻는 물의
예식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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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성모님께서 영혼의 목욕탕이라고 말씀하신 성모님 동산 은총의 샘물 샤워장에서 영혼육신을 깨끗하게 씻은 후 성전으로 돌아와 성모님께 새로운 다짐을 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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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카 예식후 새로운 삶의 실천을 다짐하며 성모님께 편지를 쓰고 있는 참가자들 |
그리고 생활의 기도를 통해 받은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각 팀별로 나눔을 하여 생활의 기도를 잘 바칠 수 있는 지혜를 함께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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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생활의 기도에 관한 나눔을 하고 있는 모습 |
이어서 한사람씩 하루의 사랑과 정성을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즉, 메시지 말씀 필사한 것과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와 장미 한 송이씩을 제단 옆에 마련한 자리에 생활의 기도로 가지런히 놓으며 정성스럽게 봉헌하고 나니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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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성모님께 필사한 메시지와 성모님 메시지 말씀 사탕과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 한 송이의 장미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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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성모님께 필사한 메시지와 성모님 메시지 말씀 사탕과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 한 송이의 장미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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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성모님께 봉헌한 필사한 메시지, 사랑의 메시지 말씀 사탕,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와 장미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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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 봉헌한 필사한 사랑의 메시지와 말씀 사탕 |
저녁 식사가 끝날 즈음 율리아 자매님이 예고 없이 그 자리에 나타나시자 모두가 기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순례자들이 섭취한 모든 음식들을 예수님의 고귀하온 성혈로 변화시켜 영혼육신을 치유하는 신약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셨는데 그와 동시에 밥을 담은 접시위로 성혈을 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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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후
식당에서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는 율리아 자매님과 기쁨에 찬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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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때 밥그릇에 내려주신 성혈 |
그 밥 접시는 이번 피정에 참석한 지인을 찾아온 개신교 신자가 먹을 밥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징표에 모두가 놀라 탄성을 질렀는데 당사자인 개신교 자매는 할 말을 잊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을 부르시고 계시니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회개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달아든다면 죄를 묻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 징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이 자매는 후에 봉사자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하였습니다. 양팔 묵주 기도는 모두가 성전에서 초를 들고 바쳤습니다. 기도를 바치는 중에 모두가 각자의 초를 성모님 앞에 봉헌하였는데 커다란 하트 모양의 봉헌대에 사랑과 정성이 담긴 작은 촛불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성모 성심의 원의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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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께 초를 봉헌하는 피정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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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안에 하나임을 약속하며 손에 손을 잡고 연결고리로 희생과 보속하는 마음으로 양팔을 들고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피정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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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참석자들이 성모님께 봉헌한 촛불 |
“내 아들 예수와 내 티 없는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너희의 피나는 희생과 보속과 사랑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니 어서 서둘러 기도하고 나의 원의에 따라주기 바란다. 어둠이 짙어지고 죄악이 모든 것을 뒤덮을지라도 너희가 나의 사랑의 메시지를 실천한다면 나의 불타는 성심은 더욱 밝은 빛을 비추어줄 것이며 너희는 은총 중에 구원을 받아 천국을 얻게 될 것이다.” (1996년 1월 6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묵주기도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성시간
성체강복을
정성을
다하여
해주셨습니다.
성령
충만해진
참석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찬미와
율동을
하였고
이날
영명축일과
생일을 맞이한
분들을
위하여
간단한
축하식을
하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손수 꽃다발을
증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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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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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충만하여 율동으로 찬미를 드리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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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기간 중 영명축일과 생일을 맞이한 분들을 위한 축하 |
밤이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율리아 자매님과 사랑을 나누며 하늘나라의 신비를 들으며 그 사랑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첫 토요일과는 달리 검정색 스웨터를 입고 만면에 활짝 미소를 띠고 걸어오시는 율리아 자매님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사랑과 평화로 꼭꼭 채워주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특별히 고백성사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 하시며 주님께서 보여주신 실례를 직접 들어서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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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둘째날 극심한 고통에도 (낙태보속고통도 함께 받고 계심) 밝은 미소와 웃음으로 피정 참가자들과 함께 하시는 율리아 자매님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아주 편하게 앉으세요. 여기는 여러분 모두의 집입니다. ‘
여기는 거룩한 주님 성모님 성전인데 내가 어떻게 편하게 앉느냐?’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안방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앉으세요.
지금 여기에는 성혈을 엄청나게 내려주셨는데 오늘도 여러분에게 성혈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헐벗고 굶주린 사람만 찾아다니면서 더 사랑을 했는데 영세를 하고도 맨날 병든 사람들, 거지들 데리고 다니면서 밥 사주고 데리고 다니니까 00수녀님이 저더러 늘 “제발 그러지 마라. 율리아하고 함께 다니기가 더럽고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고, 상대하기가 어려워.” 하면서 거지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그러면 저는 “수녀님, 예수님께서 새 계명인 사랑을 주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야 됩니까? 지위가 높은 그런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까? 하느님께서는 가장 미소한 자를 사랑하시는데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제가 어떻게 미소한 자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거지들에게 밥 사주고 목욕시키고 옷 사다 입히고 사랑 나누는 것을 못하게 하신다면 하느님을 알고 새로 태어난 저로서는 그 말씀을 들어 드리는 것이 좀 어려울 거 같아요. 수녀님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시면 좋겠어요.” 했더니 수녀님은 “정말 못 말려.”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이튿날 저를 찾아오셔서는 “율리아, 율리아!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다. 율리아를 따라갈 수밖에!” “왜요?” 그랬더니 그날 저녁에 수녀님의 꿈에 다 보여주셨대요. 어떤 꿈을 꿨냐면 제가 목욕탕에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사람들, 그것도 종기 나고 병을 옮길 수 있는 그런 환자들까지 다 넣고 제가 목욕탕에 함께 들어가서 목욕을 시키더래요.
그래서 “율리아! 율리아! 어서 나와! 병들어. 전염돼. 빨리 나와!” 했더니 “수녀님, 아니에요. 제가 전염되더라도 같이 동참하렵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을 놔두고 어딜 나갑니까? 이 사람들의 영혼 육신을 씻어주고 목숨을 아껴주는 위로자가 되어주고 통역자가 되겠습니다.” 고 하더라면서 “주님께서 그렇게까지 꿈에서라도 보여주시는데 내가 어찌 율리아의 뜻을 저버리고 도망가겠느냐?”하시면서 그때부터 암환자나 어려운 환자들 집에 저를 데려다 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고통을 청하여 봉헌하면서부터 가족 전체가 다 고통을 받기 시작했어요. 누구보다 성실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진급이 예정돼 그 쪽에서 전화까지 왔던 율리오씨가 그때부터 진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번도 가르치지 않고 봉사 활동 나갈 때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전하러 가고 있으니 주님께서 제가 돌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의 아빠, 엄마가 되어주시어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돌봐주셔요.”했는데 셋째 아이는 올 백점에 올수를 받아오다가 제가 고통을 봉헌 한
뒤 성적도 떨어졌어요. 거기다가 교회와 신부님과 수녀님과 아이들로부터 모진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았어요. 사실 막둥이 필립보는 예수님과 5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었고, 때로는 그 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그러셨거든요. 그 애도 마귀도 보고 다 봤어요. 몸이 석회질화 되면서 굳어져 죽어가는 병을 앓는 아이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필립보에게 “오늘 찾아오는 그 아이를 기도해 줘라.” 그러셔서 그 아이를 기도해 줬더니 치유되었어요.
그렇게 기쁘게 봉헌하면서 맹인 봉안드레아 할아버지를 항상 도와 드리고 커서 오기선 신부님처럼 훌륭한 신부님이 되겠다고 했는데 성당에 가도 “너희 집 성모님 상에다 돼지 피 발랐다며?” 학교를 가도 “너희 집 성모님 케첩 발랐다며?” 하면서 손가락질 하니까 완전히 왕따가 되어 버린 거예요. 필립보는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로 해서 내려오셔서 강복해 주시며 “너는 훌륭한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하셔서 사제가 되겠다고 예수님께 약속을 했던 아이인데 그 어린 것이 어느 신부님과 수녀님으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서나 학생들로부터도 손가락질 당할 때 저는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뒤 교회로부터 공지문이 나니까 딸은
수녀원에 보내고
아들은 신부의 길을 가게 하고자했던 엄마의 꿈은 사라졌기에 지금 주어진 삶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름답게 봉헌하고 있어요. 그러나 율리오씨와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하죠. 제가 고통을 청했을 때는 저만의 고통이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달라고 하진 않았기 때문이에요. 공지 이전에 부산에서 대형 버스 두 대가 왔었어요. 그때는 철야기도가 없었으나 몇 차씩 순례와서 철야기도를 하겠다고하면 우리가 함께했는데 루비노 회장님이 1부를 하시고 저는 2부에 나갔습니다. 그날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신부님들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신부님들은 예수님의 대리자이시니 우리는 신부님들께 순명하고, 존경하며, 특히 우리
여자들이 잘 지켜드려야 됩니다. 신부님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드립시다.” 등등...막 사제님들에 대해 말이 나오는 거예요. ‘아니 왜 이렇게 사제님들 얘기가 나오지?’ 하면서 안하려고 해도 또 사제님들 이야기가 나오고 안 하려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다보면 어느새 사제님들 이야기 또 하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끝까지 사제님들 이야기 했어요.
그랬더니 다 끝나고 나서 어떤 자매님이 아주 좋지 않게 “자매님, 한 가지 여쭤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그랬더니 “우리들이 신부님한테 돌멩이 던지고 욕한 것 누가 자매님한테 먼저 이야기 했죠?” “아니, 안했는데요.” “그러면 누가 전화로라도 말했지요?” “아니에요. 저는 부산에 아는 분도 아무도 없어요.(그 당시에는 없었음) 저 아무도 만나지도 않았고, 전화 받은 적도 없고, 저 지금 나왔는데요.” 그랬더니 “정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우리 루비노 회장님한테 물어보세요.” “회장님, 정말이에요?” 루비노 회장님이 정말이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깜짝 놀라 자기들이 신부님에게 잘못했음을 고백하면서 이제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는데 그 뒤로 그 자매님은 사람들을 데리고 꾸준히 성모님께 순례를 왔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은 꼭 이 말씀은 해야지.’ 하고 생각을 해도 제 뜻대로 못해요. 오늘도 아까 그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막 나왔는데 우리가 받은 여러 가지 고통들을 더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을 그쪽으로 이끌어 가신 것 같아요.
이제 고해성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니겠지만 많은 분들이 고해성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셔요. 즉 누구하고 싸웠는데 화해하지 않고 성사는 봐야 되고, 그래서 고해성사 볼 때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고 “누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고해성사가 아니라 누구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설사 내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있었기에 그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 하면서 ‘내가 있음으로 그가 죄를 지을 수 있었으니 내 탓인데 내가 봉헌을 못 했구나.’ 진심으로 내 탓으로 돌리면서 “제가 있음으로 상대방이 죄를 짓게 되었는데 아름답게 봉헌하지 못했음을 용서 청합니다.” 하고 다툰 사람한테 “내가 더 잘 봉헌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 때문에 분심 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서로 화해하고 성사를 본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예쁘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성사를
잘 보시겠지만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 정말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성모님을 잘 아는 우리들만이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올바른 고해 성사 보는 방법을 이야기 해드려야겠지요? 고해성사를 보러 들어가서는 자기 잘못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한 시간 동안 보시는 분도 있어요. 면담하시려면 신부님들한테 연락을 먼저 하시고 신부님들 가능한 시간에 만나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면담 성사를 보실 수 있지만 여기 오셔서는 내가 봉헌하지 못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성사를 보는 거예요. 고해성사는 남을 고발하는 장소가 아닌데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내 잘못을 알아야 됩니다. 저는 세례 받기 전부터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 안에 어떤 병이 얼마만큼 진전되고 그런 것까지 다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들이 지금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시는가 그것까지 보여주시니까 너무 너무 괴로워서 저는 계속 울면서 기도하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기가 막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어요.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요. 그전에 제가 예비자 때 봉사하시는 분들 보면 그렇게 부럽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그랬는데 막상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아래 내려가서 까만 연탄을 태워주는 그런 겸손한 봉사가 아니라 시꺼먼 연탄을 밑에다 놓고 위에서 군림하고 있으니 언제 그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굉장히 잘 따르는 할머니가 언제 한번 “율리아, 율리아, 판공성사를 봐야 되는데 나는 무엇을 보지?” 그래서 “마리아 자매님, 언제 성사 보셨어요?” 그랬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그 전에 판공성사 때 봤지.” 그래요. 그래서 정말 제가 얼마나 자지러지게 놀랐어요. 저는 성사를 하루에 세 번도 본 적이 있는데
그전에 장 신부님하고 율리오씨와 함께 캐나다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 때 나주성모님 대회를 했었지요. 나주 성모님 대회가 끝나고 생방송 하러 들어갔습니다.
생방송 들어가기 전에 고해성사를 보고 들어갔더니 생방송에서 “자매님은 죄를 절대 안 지을 거 같은데 무슨 성사를 봤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 그거만이라도 혹시 주님께 누를 끼쳐 드렸으면 어쩔까 그런 생각에서 본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어떤 누를 얘기하는 겁니까?” 하고 꼬치꼬치 다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지금 생방송 나가는데 ‘내가 혹시라도 잘못하여 주님과 성모님께 누를 끼쳐드리면 어쩔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온전히 주님께 100% 맡겨드리지 못한 것이기에 성사를 본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천주교 신자가 아닌 그분은 “그것은 죄도 아닌데 그것까지 성사를 본다면 죄인이 하나도 없겠네요.” 그래서 “다는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봅니다.”라고 그랬어요. 제가 성당에 갔을 때
옷 입은 것까지 누가 한마디 툭 던지면 ‘저 사람한테 내가 죄를 짓게 했구나.’ 그러고 성사 보니까 제 목소리를 아시는 신부님이 “율리아 자매님, 그건 성사 볼일 아니에요. 왜 그런 것 갖고 계속 보세요.” “신부님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제 영혼에 흠도 티도 구김도 없이 주님께 나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러니까 신부님 허락해주세요.” “아, 정말 놀랍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몇 번이라도 보십시오.” 아까 마리아 자매님은 남편하고 둘이 사는데 요셉, 마리아의 영성을 본받고 싶어서 본명도 요셉과 마리아로 지었으면서 남편하고 대판 싸워가지고 남편은 자식들 5남매 집을 돌아다니면서 걸식 아닌 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나는 뭔 성사를 봐야 된당가?”하시니까 제가 너무 놀란 거예요. 하지만 “부부싸움하고 남편이 자식들 집에 계시잖아요.”라고 하면 마리아 자매님이 상처 받을까봐 부드럽게 돌려서 말을 했어요.
“마리아 자매님! 집에 빈방 있지요?” “그럼, 있지.” “그 방을 자녀들 올 때까지 그냥 빈 방으로 놔두죠?” “그럼, 빈 방으로 놔두지.” “그러면 그동안에 청소하세요?” “아니, 청소 안 해.” “ 그러면 먼지 안 앉던가요?” “아이고 말도 마소. 먼지가 뿌해가지고 청소를 몇 번을 해야 되네.” “그렇죠? 그러면 하얀 옷을 세탁해가지고 그냥 걸어놓으면 먼지 껴요? 안 껴요?” “먼지 끼지.” “우리가 아무리 쓸고, 닦고, 깨끗이 빨아놔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먼지가 끼고 더러워지는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자식들이 전화라도 안 하면 섭섭할 때 있고, 남편하고도 섭섭한 것이 있을 텐데 섭섭한 마음을 봉헌하지 못하고 고해성사를 봤을
때 주님께서 묻은 때를 깨끗이 씻어주실까요? 아니면
섭섭했던 그런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봉헌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내 탓으로 돌리면서 성사를 봤을
때 깨끗이 씻어주실까요?” 제 말을 들으시던 자매님이 무릎을 탁 치시면서 “아이고, 나 성사 볼 것이 있네. 나 요셉씨 때문에 성사 볼 것이 있네.” 하셔서 “설사 요셉 형제님이 잘못했더라도 우리는 내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남편이 화를 냈을 때 ‘여보, 그렇게 화 내지 말고 우리 잘 생각해서 하고 잘 봉헌합시다.’ 했는데도 남편이 화를 내실까요?” “요셉씨 하고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다툼이 없을 수는 없었잖아요.” 하니까 “그럼 많이 싸우지” 그러시더라구요. “그것 보세요. 그동안에 성사를 얼마나 제대로 보셨어요?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죄를 짓는다는 것을 제가 늘 말하잖아요.” “그렇지. 맞아! 맞아! 나 요셉씨 하고 빨리 화해하고 데려와야 되겠네. 나 때문에 지금 싸우고 나갔는데 내가 내 잘못으로 생각 못 했네. 자네 말 듣고 보니까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있기 때문에 우리 요셉씨가 잘못을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을 못했네. 아들집 딸집 돌아다녀도 내 탓이라고 생각 못하고 자기 잘못이라고만 생각했네.”하면서 판공성사 보고 데려온다고 하여 “그러지 마시고 먼저 모시고 와서 화해하고 나서 함께 성사 보시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아, 맞아. 그래야 되겠네.” 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법정에 갈 때도 그냥 가지 말고 화해하고 가라고 그랬는데 더더구나 우리는 성사 볼 때 법정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가는 것인데 화해하고 가야지요. 고해성사주실 때 신부님들이 주시지만 신부님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리자이신 신부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신부님들이 고해성사 보신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 하는 것은 예수님께 크게 잘못하는 것이기에 우리 신부님들은 절대 말씀 안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기서는 걱정하지 말고 보십시오. 그래서 그 자매님이 당장에 그날 딸네 집, 아들네 집 다 돌아다니면서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안하다” 자녀들하고 화해하고 남편한테 마지막 가서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용서청하고 모두에게 무릎 꿇고 용서 청했대요. 그러니까 남편이 너무 기뻐하셨고 서로 얼싸안고 눈물로 서로 잘못했노라고 화해를 했습니다. 두 부부는 집에 돌아와 고해 성사를 보시고 그때부터 새로워 지셨습니다.
그건 천상의 잔치죠? 눈물바다가 이뤄졌지만 그것은 주님과 성모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신 눈물입니까? 그래서 우리도 돌아가서 이제까지 생각나지 않았던 것들 우리가 기억해 내서 화해하고 고해성사 보면 됩니다. 우리도 새로워 져야 되겠지요? 그런데 형제님들이 보면 아내가 분명히 잘못했어요. 또 자매님들이 보면 남편이 분명히 잘못했어요. 그러면 세속 사람들은 그것을 다 따집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우리 신앙인들도 따지거든요. 그러나 세속의 법과 하느님의 법은 다릅니다. 그럴 때도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내 탓이라고 느끼고 내 가슴을 칠 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 신앙인은 많이 배웠으나 적게 배웠으나 주님과 성모님 앞에서는 동등합니다. 잘 배웠다고 해서 우대하는 것 아니고 못 배웠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미소한
자만 사랑하시는 것 아닙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영광을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는 사람, 주님과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희생하고 보속하고 매사를 아름답게 봉헌하면서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끊어놓으려고 하는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로부터 승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미소한 사람을 깔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 먹고 싶고 입고 싶고 어떤 것을 꼭 하고 싶을 때 그런 욕구들을 한 셈치고 봉헌 하는 사람, 주님과 성모님 사랑 안에서 가족과 이웃이 하나로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생활의 기도”로 매순간 깨어 기도하는 사람, 언제나 “내 탓”의 영성으로 주님과 성모님께 부족한 죄인이라고 달아드는 겸손한 그런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지 않으실까요?(아멘!) 여러분 너무 잘 아십니다. 여러분이 아멘 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아멘!) 제가 항상 하는 얘기 있죠? “내가 있으므로 상대방이 죄를 짓게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당연히 누리게 됩니다. 오늘부터 그렇게 하도록 새롭게 시작합시다. 여러분, 이제 집에 돌아가면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죠? (네) 그러면 상대방이 나에게 달아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그동안에 나로 인해서 섭섭한 것들이 있었다면 다 풀고, 내가 그동안에 잘못했던 것들 용서해 달라”고 해보세요. 우리에게는 이제 과거가 중요하지 않죠? (네) 그러면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자”면서 달아들도록 합시다. 그리고 서로 얼싸 안으십시오. (아멘!)
고해성사는 우리가 이제까지 주님과 성모님 뜻을 따라서 잘 살아 왔다고 생각되고, 내가 잘 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미워할 때 그것까지도 ‘내가 있음으로 그가 죄를 지었으니 모두 내 탓이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본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율리아 자매님은 어찌 들어보지도 않고 잘 알까? 혹시 신부님께서 말해주셨을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라도 계신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돼요. 그것은 판단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영혼 상태나 병들은 곳까지, 많은 것들을 다 보여주셔서 알아요. 왜 보여주셨을까요?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라고요. (아멘) 그 때 제가 어떤
사람이 높으신 분인데 영혼상태는 완전히 교만으로 오히려 주님과 성모님께 대못을 박는 모습을 보았다면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던 제가 어찌 울지 않겠어요. 저는 너무 너무 울면서 괴로웠습니다. 제가 ‘이제는 알았습니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그만 보여주십시오.’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안보여주시니까 여러분 걱정 안하셔도 돼요. 그리고 여러분들 고해성사 보는데 옆에까지 가지 마세요. 언제 한 번은 성사를 보려고 줄을 지어 서있는데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성사를 보니까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가 다 들은 거예요. 그는 “제가 누구하고 싸움을 했는데요. 누가 이래서 내가 이랬는데 누가 어떻게 했어요.”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진정 잘못한 것이 있는데 상대방만 막 고발해놓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는 하나도 없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사해 주세요.” 하면서 그 무거운 죄는 “이 밖에…”로 숨겨버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주시지만 그 무거운 죄는 고백하지 않고 숨겼기 때문에 용서 받지 못한 채 그냥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처럼 두드리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께서 알아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며, 구하지도 않고 떡먹고 싶어 할 때 “여기 떡 있다. 먹어라.” 하실 것이며, 자식이 지금 아파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너의 아들 아프니까 이 약 먹여라.” 하지 않으시잖아요. 신앙인들도 살면서 많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니시겠지만 어떤 잘못을 했는데 신부님이 아시면 부끄러워서 얼굴
못 볼 것 같으니까 조그만 잘못을 먼저
보고 큰 죄는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십시오.” 하면 “이 밖에…”로 들어갔으니까 어차피 고해성사를 봤다고 맘이 편하다고 그래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큰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신부님이 가벼운 보속을 주시잖아요. 가벼운 그 보속을 다 했다고 잠벌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녜요. 우리가 정말 큰 잘못을 했을 때 보속으로 신부님이 주신 주님의 기도나 성모송 한 번으로 어찌 그 죄를 다 갚겠습니까? 여기에서는 그런 보속으로 대처하지는 않으십니다. 고해성사 보시는 분들이 가끔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솔직한 고해성사로 죄는 사해지지만 잠벌들이 남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 잠벌을 보속하지 않으면 천국으로 오르기 전에 연옥에서 깨끗이 정화해야 되기 때문에 언제가
됐던지 다 보속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본인이 알고 하느님이 아시는데 “이 밖에…”로 대처해버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해성사를 보고나서 사랑 실천을 위해 남편 발을 닦아줘도 되고, 마누라 발을 씻어줘도 되고, 남들이 다 싫어하는 일을 희생으로 해도 보속이 되는데 이 모든 언행을 생활의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바치면 더 큰 보속이 되고 하늘나라에 공로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입니다. 전에 한번 얘기 했지만 여러분들도 빌린 것을 본의 아니게 못 갚은 것들 혹시 있을 수 있죠? 제가 세례 받기 훨씬 전인데 우리 어머니가 아시는 분이 광주에서 시계방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생각도 안 하셨는데 그분이 돈 벌어서 주라며 4천 원짜리 시계 하나를 줬어요. 그런데 몇 년 후에 그 집이 불이 나 가족까지 다 죽어버려 돈을 갚을 길이 없었어요. 제가 주님을 알고 생활의 기도를 알고 나서 우리 어머니한테 “어머니, 그것을 못 갚으면 나중에 연옥에서 보속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돈에 이자까지 쳐서 주님과 성모님한테 바쳐도 되고, 거지들이나 고아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써도 되고, 그분과 가족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려줘도 됩니다.” 해서 그렇게 쓰셨어요.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조그만 것 한 가지도 다 보속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의 집에서 감이 떨어졌는데 감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맛있게 생겨서 그냥 먹었는데 나중에 생각나면 그것 하나도 “그 사람에게 영양가를 보내주십시오.”하고 생활의 기도로 바칩니다. 그리고 나중에 더 생각나면 감 홍시를 사가지고 가서 “그때 너무 먹고 싶어서 말도 없이 떨어진 것 먹었습니다.” 하고 준다면 내가 해야 할 보속도 하고 천상에 공로를 쌓는 거예요. 우리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했으면서도 그냥 지나왔던 것들,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지나왔던 것들도 다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죄인으로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십시다. 또 혹시 옛날에 성추행을 당해 그것이 상처가 되어 용서가 안 됐다면 오늘 그 사람들도 용서하도록 청합시다. 용서할 수 있죠? 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죄 지었기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제가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탔는데 뭐가 푹 찔러요. 우산 꼭대기로 찌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보니까 남자가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놀래서 남자 거기를 딱 쳐 버렸더니 으악 하는 거예요. 하느님 모를 때니까 봉헌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봉헌합니다.”하고 성사 봤어요. 우리가 이제까지 쭈욱 반성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진정 아내를 사랑했을까? 진정 남편을 사랑했을까? 진정 시어머니를 사랑했을까? 진정 며느리를 사랑했을까? 이제까지 섭섭한 마음은 없었을까? 뉘우치면서 섭섭한 마음도 지금 이 순간에 봉헌합시다. 그리고 봉헌 안됐던 우리의 모든 삶을 가지고 십자가 밑으로 나갑시다.
자, 눈을 감으세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신 메시지 말씀을 묵상 하겠습니다. 2007년 9월 1일 예수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불림 받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매일 매순간 생활의 기도로써 너희에게 닥친 어려움들을 순교 정신을 가지고 아름답게 봉헌한다면, 영적 투쟁에서 승리를 얻게 될 것이며 많은 영혼을 구하게 될 것이다. 나의 원대한 구원계획을 위하여 너희를 택하였으니 지극히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을 보고 내려준 나와 내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이단으로 몰아가는 추악한 오류의 가면을 벗기고 진리에 순명하여 순교로써 그 사명을 완수할 때, 오류에 빠져 교활한 마귀의 꼼수에도 쉽게 넘어가 눈이 멀고 귀가 막힌 그들의 위세가 지금은 비록 온 세상을 점령하여 승리할 것처럼 보이나, 머지않아 그들의 행위가 배수차신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내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이 승리하여 온 세상에 기쁨과 사랑과 평화가 흘러넘칠 것이며, 마지막 날 내 나라 내 식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멘! 2006년 3월 4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불림 받은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인 이 어머니가 여기에 오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가족들을 예수 성심의 제단에 항상 봉헌하고 있으니, 이제 너희는 내 사랑과 결합하여 하나를 이루도록 너희 자신을 온전히 바쳐 내 성심 안에 용해되어, 성인들과 화합하는 기쁨 안에서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부활의 삶을 살도록 힘써 노력하여라. 이제 내 성심의 승리의 때가 가까이 다가온다.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더 이상 주춤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어서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의 열쇠인 사랑의 메시지를 실천하면서, 매일 매순간 생활의 기도로 무장된 삶을 통해 만건곤한 마귀로부터 승리하여, 마지막 날 아담과 하와가 잃었던 영원한 생명나무를 차지하기 바란다.”
아멘! 자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 화해하지 못한 사람, 용서하지 못한 사람, 분노와 격정으로 내 자신을 봉헌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 미운 사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한 사람까지도 모두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실 것입니다. 가슴 안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우리의 한숨과 눈물 그런 모든 것 까지도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우리의 갈등과 고뇌와 고통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립시다. 여러분 고통스럽거나 괴롭거나 고뇌와 상처, 그리고
태중에서부터 받아왔던 상처로 인해서 우리의 가슴은 쓰리고 아플 때가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용서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돌아가신 분이라도 용서하지 못했다면 용서 하도록 합니다. 그 영혼들까지도 주님께 데려갑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아픔들을 주님께 다 드리실 것입니다. 어머니 품에 안기십시오. 어머니 품에 꼭 안기십시오. 우리가 작아져야만 어머니 품에 꼭 안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갓난아기처럼 빨가벗은 어린 아이가 되어서 어머니 품에 꼭 안깁시다. 어머니께서 큰 영혼은 안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보잘것없는 죄인이라고 주님께 고백할 때 우리는 가장 작은 영혼이 될 것이며, 위대한 주님의 사도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억하기도 싫은 우리의 깊은 상처를 오늘 씻어주실 수 있도록 온전히 내어드립시다. 이제까지 상대방이 미워서 내가 상대방에게 하지 않아야 될 행동을 했다면 그런 것들까지도 용서를 청합시다.
참으로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성모님, 부족한 저희들로부터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세세 영원히 받으시옵소서. 주님 홀로 흠숭 받으시고 성모님 위로받으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까지 받아왔던 모든 상처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것을 뚫어주십시오. 용서한다고 했지만 용서되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다면 그 찌꺼기까지 다 내 보내주십시오. 오, 주님이시여! 저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나갈 때도 있습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간절한데 용서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흘리신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로 또한 성모님께서 흘리신 눈물과 피눈물과 향유와 참젖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영혼 육신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곳을 뚫어주십시오. 우리가 버리지 못한 악습들도 뿌리째 뽑아 주십시오. 우리에게 교만이라는 나쁜 악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뿌리째 다 뽑아내 주십시오. 미움의 마귀,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 갈등, 고뇌, 이 모든 것들도 온전히 뿌리째 뽑아내 주십시오. 우리 마음 안에 돌멩이들이 있다면 다 뽑아내 주시고 잡초가 자라고 있다면 잡초도 다 뽑아내 주십시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이 실천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오니 우리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잡초, 교만의 뿌리와 돌멩이까지도 완전히 뽑아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주님의 성령을 가득가득 채워주십시오. 그래서 이제부터는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까지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잘못 행동해 온 것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고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놀라운 사랑의 은총 내려주시옵소서. (아멘) 예수님, 이제 예수님께서 뿌리신 그 한 알의 밀알이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썩는 밀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많은 영혼들에게 따 먹히는 당신의 사도들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나이다. 가족들에게 이제까지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더라도 지금부터 실천하면 주님께서 얼마나 예뻐하시겠습니까.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이제까지 잘못했을지라도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오뚝이가 넘어져도 바로 일어서듯이 우리도 넘어지더라도 실망과 낙담과 실의에 빠지지 말고 바로 일어나서 “주님 다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노력합시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할 수 있습니다.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선물을 우리에게 거두어가시지 않았습니다. 행여라도 교만해 질까봐서입니다. 그래서 나주에서 발현하셔서 우리에게 전대미문의 기적을 보여주시며 측량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달라져야 됩니다. 주님께서만이 가질 수 있는 권능의 손을 능력을 손을 펼치셔서 여기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머리에 손 얹어 무한히 강복하여 주시고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먹이시던 그 젖을 이 모든 자녀들 꼭꼭 안아서 젖을 먹여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세포하나도 빠짐없이 성령으로 수술하여 주십시오. 의사는 칼로 수술하지만 수술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오나 주님께서는 생각만 하셔도, 마음만 잡수셔도 못하실 수술이 없으시나이다. 하오니 우리의 생각까지도 주님의 생각으로 바꿔주시고 성모님의 겸손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겸손을 심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온전히 의탁하고 달아들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끈이신 성모님의 손을 꼭 붙들고 기도하고 희생하며 봉헌된 삶을 삶으로써 연옥에서 우리가 정화되면서 받아야할 보속들을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 보속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제 이곳에 와서 비로 휩쓸려 내려간 흙이나 돌이나 자갈이나 그 모든 것들을 바로 잡아줄 때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우리 모든 봉사자들에게도 무한한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때 바친 생활의 기도가 잘못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새롭게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겠사오니 우리 자신의 영혼 상태를 바로 잡아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알고 계시나이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셀 수 있으신 주님께서 무엇을 못하시오리까. 그 놀라운 능력으로 이 모든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리셔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계신 주님께서 그 원을 채워주십시오. 기복적인 신앙이 아니라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으로 우리가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 그 사랑을 실천하겠나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은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 뜻대로는 잘 할 수 없사오니 주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사랑의 은사를 내려주셔서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 없이 울리는 꽹과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받아 전해도 사랑이 없이 전하는 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하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랑으로 점철되어 그 사랑이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우리 입술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듣고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은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사랑 실천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오니 우리 가슴 안에 깊숙이 심어주셔서 사랑이 새롭게 새록새록 솟아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의 사도들이 되어 많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따먹히고 마지막 날 주님과 성모님의 잔칫상에서 재롱을 부리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성모님! 이 모든 자녀들 한 사람 한사람 손잡아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젖 먹여주시고 이 자녀들이 기도할 때마다 오냐! 오냐! 하고 들어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이오나 주님께서 위대한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어 저희가 위대한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어떠한 좋은 일을 하고 공로를 쌓았을지라도 “오로지 주님께서 저희들 안에 생활하시니 저희들은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하고 겸손하게 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자녀들 온전히 오늘 받아주셔서 태중에서부터 이제까지 받아왔던 모든 상처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곳을 뚫어주셨으니 무한히 감사를 드리오며 이제로부터 영혼무궁토록 이 모든 자녀들과 함께 가겠나이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신부님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사제들”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여기 모인 여러분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염둥이들아! 어서 나에게 와서 안겨라. 너희가 흡족하도록 젖을 먹여주마.” 하시며 성모님께서 젖을 먹여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 닮은 쌍둥이 동생들로써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목숨을 아껴주는 통역자가 되도록 합시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리고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향유를 부어드렸으니 가장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가장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자하오니 이 모든 자녀들 가장 많이 사랑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가 가장 미소한 자녀들이 되어서 정말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불쌍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겠사오니 우리 모두를 새롭게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부족한 이 죄인의 기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모든 자녀들이 새롭게 부활하기를 바라며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무지 무지 사랑합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안녕히 주무셔요.
율리아 자매님은 가슴과 심장이 죄어들며 너무 아프셨지만 순례자들이 받을 은총이 그만큼 큰 것을 기뻐하시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치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때 여러 명이 성혈을 받았고 내적 치유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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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둘째날 참가자가 입은 성모님 티셔츠에 내려주신 성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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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이불에 내려주신 성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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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양말에 내려주신 성혈 |
피정의 마지막 날인 이날은 성혈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얼굴에 내린 짙은 성혈을 발견한 놀란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이불, 성전 바닥, 성모님 티셔츠, 손목, 팔, 바지, 잠바에 크고 작은 성혈을 수도 없이 내려 주셨습니다. 사진 봉사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정신없이 불려 다니며 바삐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이날은 성혈뿐 아니라 참젖, 황금 향유도 함께 주시어 참으로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복합적 사랑을 아낌없이 내려주셨으니 이 측량할 길 없는 사랑의 신비를 체험한 자녀들이 어찌 주님을 배반하고 성모님의 성심에 비수를 꽂을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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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셋째날
참가자의
옷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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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가
덮은
이불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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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성모님
티셔츠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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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성모님
티셔츠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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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얼굴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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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손목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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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가 덮은
이불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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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성모님
티셔츠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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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바닥
깔판위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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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양말에
내려주신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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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성모님
티셔츠에
내려주신
황금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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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바지에
내려주신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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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올 성모님! 죄인들의 구원과 회개를 위하여 어머니께서 흘리신 눈물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매일 매순간 생활이 기도화로 나와 이웃을 항상 성모님의 성심께 아름답게 봉헌하겠사오니 찬미 영광 받으시고 부족한 우리는 감사가 마르지 않게 하소서! 다른 곳에서 3박 4일은 해야 할 일정을 2박 3일에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법도 한데 빛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피정 참석자들은 넘치는 은총 속에 더 활기차 보였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은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농촌 부부의 경건함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건함과 기쁨으로 삼종기도를 바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거룩한 미사 영성체 때 성체 예수님 안에 완전히 침잠하게 도와주어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과 일치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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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성모님 동산 성전에서 드리는 미사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전 세계 모든 자녀들에게 생활의 기도를 전하도록 하셨는데,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설사 너희의 생각이 불완전할 지라도 더욱더 작은 자로서 너희의 생활전체를 내 어머니를 통하여 온전히 나에게 바치는 것이 바로 생활의 기도이며 봉헌이란다.” (2000. 6. 13) 라고 하셨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사소하고 하찮은 작은 것 한 가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봉헌하며 기도하자고 외치던 너의 그 생활의 기도가 불타는 내 성심과 내 어머니 마리아의 성심 안에 온전히 용해되어 하나를 이루는 격이니 세상 자녀들이 촉범함으로 나에게 박아준 못 하나하나를 빼내 주는 것이며 내 어머니 마리아의 눈물과 피눈물을 닦아 주는 위로의 기도가 되기 때문이란다.” (2000. 11. 2)
하셨고 “전심을 다해 사랑으로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어떠한 마귀라도 물리칠 수 있는 사랑과 겸손과 덕행의 무기이며 성덕을 태동시켜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단다.”(2002. 8. 2)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도와 생활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설사 너희의 생각이 불완전할 지라도 더욱더 작은 자로서 너희의 생활전체를 내 어머니를 통하여 온전히 나에게 바치는 것이 바로 생활의 기도이며 봉헌이란다.” (2000. 6. 13) 2000년 6월 13일의 메시지는 생활의 기도를 이해함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생활의 기도는 봉헌과 상통하는 효력을 지닌다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봉헌이란 무엇일까요? 봉헌(奉獻 ;라, oblatio, offerenda 영, dedication, oblation)이란 일반적으로 웃어른에게 물건을 받들어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사 성제에서 제물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봉헌’은 두 가지 의미로 구별하여 사용됩니다. dedication 은
성스러운 용도를 위하여 따로 준비하는 것. 즉 사람, 물건 장소 등이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그 것의 자연적인 용도나 세속적인 용도로부터 따로 떨어져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숭배 드리기 위해 혹은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특별히 바쳐지는 것을 가르킵니다. oblation 은 미사 진행 중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기 위하여 바치는 일. 신자에 의한 봉납의 행렬과 사제에 의한 봉헌의 기도에 의해서 표명되는데 그밖의 선물들도 봉헌물이라고 합니다. 이 봉헌물은 고대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였으며, 교회가 스스로 이 축성 재료를 입수하게 되자, 천이나 초등을 대신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1100년경부터는 화폐의 봉헌이 보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봉헌의 동의어로는 ‘제헌(祭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종교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고 가치 있는 봉헌물로서는 쌀, 차, 등, 꽃과 같은 것이었으나 이것들은 화폐의 기능이 발전하기 전 물물 교환의 시장형태가 현존할 때 그 만한 화폐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봉헌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바치는 것이 바로 생활의 기도이며, 봉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신중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욕칠정과 희로애락과 애증의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의 삶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봉헌물은 거룩한 것이어야 하지만, 어떻게 우리의 불완전하고 상처 많은 삶, 생활을 봉헌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같은 날 메시지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겸손하게 작은 자의 사랑의 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활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바로 겸손함과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활의 기도란 주님의 메시지 말씀에 근거하여 삶의 매순간(불완전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구애받지 않고)마다 자신을 버리고(이기심과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작은 자(겸손함)가 바치는 사랑의 기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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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
하나임을
확인하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피정자들과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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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도는 언제 하는가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사소하고 하찮은 작은 것 한 가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봉헌하며 기도하자.”
(2000.11.2) 2002년 11월 2일의 메시지는 우리가 생활을 개선하고 진정한 회개로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함께 승선하여 영적인 여정을 거쳐 하늘항구에 도달하라고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생활의 기도를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기 전에는 우리가 하던 일은 사소한 것이었고, 별 대단한 일도 아닌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고되기만 하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자식들 양육하고 그러다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나 여유나 한가로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한숨과 푸념 속에서 우리의 일생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삶이란 너나 할 것 없이 ‘하찮고 사소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어났으니 세수를 해야 하고, 밥을 먹었으니 설거지를 해야 하고, 먹었으니 화장실을 가야하고... 우리의 하루는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무의미한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무의미한 일상의 매순간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봉헌하게 된다면 그것이 주님과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냐고 물었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던 것처럼,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바로 생활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생활의 기도는 염경기도나 묵상기도처럼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생활의 기도는 모든 기도-염경기도 중의 전례기도 (성사나 준성사 성무일도, 말씀의 전례)와 비전례기도(아침저녁기도 로사리오, 십자가의 길, 자유로운 기도, 화살기도) 그리고 묵상과 관상기도를 바치기 전에 우리의 지향을 하느님께 아뢰고 기도를 한다면, 모든 기도는 광의의 의미에서 생활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생활의 기도를 사사롭게 바치는 화살 기도라고 이해합니다만, 급박한 지향을 가지고 부지불식간에 바치는 화살기도와 생활의 기도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살기도를 가르치시고자 했다면 주님께서는 아마도 그 화살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하셨겠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아니 생활의 매순간을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라 하셨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활의 기도는 잠에서 눈 뜨는 그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까지 언제 어느 때나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협의의 의미로는 우리의 일상의 세부적인 활동(가사일, 노동일을 포함)등을 거룩한 지향과 함께 봉헌함으로써,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먹든지 마시든지 일을 하든지 걷든지 앉든지- 우리의 시간과 땀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드리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주님께 바칠 쌀도 꽃도 차도 등도 없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주님께 우리가 바쳐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가는 우리들의 시간을 주님께 바쳐 드리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도는 완덕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름길입니다. “전심을 다해 사랑으로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어떠한 마귀라도 물리칠 수 있는 사랑과 겸손과 덕행의 무기이며 성덕을 태동시켜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단다.”(2002. 8. 2)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그의 능력과 지혜와 자비와 정의와 사랑에서 나타나고 그 역사적 표현은 구세사이고 그 구세사의 최고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표현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거룩함(聖性)을 구현하는 일이 바로 성덕(聖德 ; 라, sanctias 영, sanctity)인 것입니다.거룩함을 실현하는 일은 대인관계인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덕이란 단순한 윤리적 선행이 아니라 완덕(完德)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완덕(完德 ; 영, spiritual perfection) 이란 신자생활에 있어 애덕 즉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애덕에 이르는 초보적인 단계는 대죄를 피하는 단계이나 다음 단계는 완전히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인간애착에 비롯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단계입니다. 이 다음 단계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단계입니다. 2002년 8월 2일의 메시지는 얼핏 보고 듣기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메시지인 것 같지만,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뒤따르는 신자들이 거룩함을 구현 혹은 실현하여 완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자로서의 절대 절명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특별한 신학적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너 나 할 것이 완덕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완덕을 나아가기 위한 성덕을 바로 생활의 기도로써 쌓아갈 수 있다는 주님의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입니다. 생활의 기도의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합시다. 생활의 기도는 신자가 드리는 모든 기도와 깊은 연관이 있고 또한 우리의 모든 삶, 생활의 매순간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하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미사에서 시작하여 관상에 이르는 모든 기도가 생활의 기도에 일부라 볼 수 있고, 또 생활의 기도는 우리의 염경기도나 묵상기도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기도의 고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이 한 가지가 있음을 분명히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생활의 기도가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의 특별하고 권위 있는 가르침임은 분명하지만 기존하는 교회의 모든 기도보다 높은 위치를 점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활의 기도를 바치고 내가 하는 일을 거룩하게 봉헌했다고 해서 교회가 지속하고 있는 훌륭한 기도들을 괄시하거나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이 시대에 온갖 징표와 표징을 통하여 주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생활의 기도는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사소하고 하찮은 우리의 일상의 행동과 생각들 하나하나 까지도 거룩하게 봉헌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혹자는 생활의 기도가 교회의 다른 기도를 대체 할 수 있는 기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주님께서는 교회의 다른 기도 대신에 생활의 기도를 바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나주 성모님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나름데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기도가 형식적이다율법적이다라고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 앞에 생활의 기도를 알고 실천하는 우리들의 모범으로써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나주 성모님과 주님의 메시지를 전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의 기도는 교회의 모든 기도를 내포하면서도 또한 나주의 몇 가지 중요한 영성중에서도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기도란 오히려 남 앞에 드러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작은 자의 사랑의 기도임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기도는 30년 동안 사생활을 하셨던 예수께서 땀 흘리는 고된 노동과 일상 중에 바치셨던 기도이었으며,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양육하시고 72세에 승천하시기 전까지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께 바치셨던 기도일 것입니다. 생활의 기도를 봉헌했다고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 미사나 로사리오 기도나 십자가의 길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곳 나주에서는 다른 교회의 기도를 중요시 여기고 그 어느 곳보다 열심히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도를 생활화한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지상에 발을 딛고 하늘을 우러러 삶을 영위하는 생활인이기에 이 생활 중에 기도를 하기에, 우리는 생활을 기도화 하는 것입니다. 또한 완전한 사랑의 실천이 성령의 힘인 은총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로마 6;22) 우리들의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성덕을 태동시켜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성령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생활의 기도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처럼,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성령과 함께 하나 되어 바치는 기도임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나주에 와서 배운 생활의 기도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어쩌면 우리가 의식 없이 했던 지난 날의 모든 일들도 다시 기억하고 이를 지나간 일이라 치부하지 않고 다시 봉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리가 소홀히 하여 지나친 일들- 어쩌면 원망과 한탄 그리고 상처로 남아 있을 기억이나 사건들조차도 생활의 기도로 봉헌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르침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우리가 이해하고 실천하다면, 우리의 지난 시간들과 현재의 시간들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생활의 기도일 것입니다. 진정한 생활의 기도가 바로 회개의 삶이며 성덕을 통하여 완덕으로 나아가는 기도임을 인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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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평화와
축복을
빌어주며
기쁨을
나누는
평화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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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마치고 성전에 다시 모여 찬미 율동을 하였는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령의 기쁨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하나로 일치하여 큰 원을 만들어 돌며 율동으로 찬미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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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아침
식사
전
기도를
드리는
피정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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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율동을
하며
몸을
푸는
피정
참자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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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각 팀별로 3일 동안 체험한 은총을 큰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는 생활의 기도 결과물이며 피정 참석자들과 우리 마리아의 구원방주 가족들의 생활개선을 위한 지표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14개 팀별 발표 공통 내용과 요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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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나누기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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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나누기를
한
내용들을
발표하기
위하여
요약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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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내용>
1. 생활의 기도가 잘 실천되지 않아 집안 곳곳에 생활의 기도문을 써서 붙여놓고 노력했더니 생활이 기도화가 되면서 평화를 느끼고 본인부터 변화되어 회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과 가족들과의 갈등과 불화가 해소되어 성가정이 되었으며 나주를 다닌다고 핍박하던 배우자와 가족들이 변화되어 세례를 받고 함께 순례를 다니게 되었다. 2. 메시지 책과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자주 읽고 뜻을 새기며 실천하니까 생활의 기도를 잘 하게 되고 생활이 개선되었다. 3. 가족이나 어떤 사람들을 생활의 기도로 꾸준히 봉헌하며 기도했을 때 치유의 은총이 많이 일어났으며 자신의 고질병을 죄인들을 위해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는데 덤으로 그 병이 치유가 되었다. 4. 생활의 기도를 통해 악습을 절제하고 험담이나 판단을 하지 않게 되었다. 5.
생활의 기도는 지나가 버린 것까지 봉헌할 수 있다는 율리아 자매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여 실천하니 기쁨과 감사가 샘솟고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은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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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요약한
내용들
발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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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요약하여
발표한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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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삼향액> - 불교에서 개종한 한 자매님은 늘 괴롭히는 남편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였는데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고부터 머리에서부터 차츰 화가 내려가 온유한 마음이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겸손의 삶> - 화가 나거나 다툼이 있을 때 생활의 기도로 분열의 마귀를 물리친다. <질풍경초> - 생활의 기도를 매일 실천하면서 모든 것이 내 탓이 되고 기도가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져 만나는 사람마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친교를 이룰 수 있었다. <애인여기> - 생활의 기도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버릴 음식을 버려질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먹으니 음식 쓰레기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낭비가 없어졌다. - 내적 상처로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를 해도 오랜 세월 고쳐지지 않았던 분노와 화를 내는 악습이 생활의 기도로 두 달 만에 완전히 고쳐졌다. <생명나무> -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생활이 개선되고 영성이 달라지니 나주 다니는 줄 신부님이 아시면서도 묵인하신다. - 순례 때 자가용 이용 시 성수 뿌리며 생활의 기도를 바치니 큰 교통사고를 면하게 해 주셨다. - 율리아님의 보속 고통을 묵상하면서 생활의 기도를 바치니 육신의 나태함과 어려움 등을 이길 수 있었다. <제세경륜> -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전하니 잘 받아들였다. - 음식에 대한 탐식이 있었는데 “영적으로 배고프고 굶주린 영혼을 위해 작은 희생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했더니 음식에 대한 탐식이 없어졌다. - 대변, 소변 볼 때마다 생활의 기도 바쳤더니 장을 치유 받았다. <심열성복> - 나주 기적 성수로 바르면 얼굴이 촉촉해지는 은총을 보고는 믿지 않던 언니들도 기적수를 바르고 화장품 살 돈을 주며 성당에 봉헌하라고 했다. - 생활의 기도를 통해 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검소한 생활이 되었으며 장부의 교만과 고집스러움이 고쳐졌다. <대오철저> - 남편과 헤어지고 싶다고 할 만큼 힘들었던 개신교 신자가 쌀 씻을 때와 방 닦을 때 하는 단순한 생활의 기도를 배워 실천한 결과 위기를 극복하고 본인, 장부, 시어머니가 세례를 받게 되었다. - 직장 상사가 나주 다닌다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와 모욕을 주고 핍박을 했는데 1년 동안 모욕이 올 때마다 아름다운 말로 생활의 기도를 바쳤더니 상사가 변화되어 본인보다 더 열심해져 그의 장부까지 함께 순례를 온다. <자아포기> - 본인이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하고부터 부족함을 느껴 겸손하게 변화되었다. - 환자 방문하여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기적 성수를 뿌리면 환자가 빨리 회복하는 은총을 받는다. - 항암치료와 자궁 염증으로 가려움의 고통 속에도 생활의 기도를 꾸준히 바치며 기적수를 사용하여 치유가 되었다. 그래서 여자라면 한번쯤 입어보고 싶었던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영혼> - 남편의 심한 낭비로 가정생활이 힘들었는데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더니 남편이 변화되어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 바람, 구타, 술 등 여러 가지로 고통 주는 남편으로 인해 울화병이 극심했는데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자 뒷골과 울화병이 치유 되었다. - 가족을 봉헌하며 생활전체를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자 공격적이던 것이 사라지고 남편도 화를 덜 내고 자녀들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종시여일> - 진료소에 오는 환자를 위해 약 지을 때나 건강 상담할 때 생활의 기도를 했더니 환자들이 빨리 회복하고 행복해 하였다. - 생활의 기도를 코팅해서 나주 성모님을 전하였는데 생활의 기도로 방광암이 치유되고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여 생활이 변화되었다. - 생활의 기도를 통해 죽음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영적 성장> - 여태껏 막연하게 용서를 한 걸로 생각했는데 생활의 기도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용서하고 사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팀별 발표가 끝나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성모님 티셔츠를 입고 미소를 담뿍 담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보속 고통과 함께 낙태 보속 고통으로 성모님 티셔츠 위로 배가 불룩하게 불러있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지난 27년 간 수없이 많은 낙태보속고통을 봉헌하면서도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짓고 계셨지만 실제 이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파우스티나 성녀는 “동정”의 몸으로 낙태보속고통을 3번 받으셨다는데 성녀께서는 낙태보속고통 만큼은 다시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니 이 고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고통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은 낙태보속고통 정도는 웃으시며 받으시니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주님과 성모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의 사랑과 삶을 우리가 배워 실천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니 율리아 자매님이 전하시는 사랑의 메시지 말씀을 믿고 신뢰하여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성인성녀의 길을 걷게 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피정 마지막 날인만큼 율리아 자매님은 사랑하는 이 순례자들에게 무엇이든 더 주고 싶어서 영적인 퀴즈를 내어 맞힌 이들에게 당신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을 선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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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셋째날 극심한 고통에도 (낙태보속고통도
함께 받고 계심) 피정 참가자들과 함께 하시는 율리아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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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잠 안 오세요? (네~) 좋습니다. 제가 지금 낙태보속고통을 받고 있는데 낙태보속고통은 여자들 때문에만은 아녜요. 애기 가지려면 남자 없인 안 되는데 여자들이 임신한다고 맨 날 여자들한테만 뭐라고 하거든요. 여자가 임신했다고도 안
하고 모르게 혼자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해버린다면 남자한테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랑 같이 알고 낙태를 하게 되면 남자도 동반 살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니지만, 하느님 몰랐을 때 우리가 낙태한 일이 있다면 그걸 지금 뉘우치고 회개하면 됩니다. 낙태에 대해 보속하는 것은 그 지향으로 바로 다른 고아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잘 해주는 방법이 있는데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된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성모님께 사랑과 정성을 바치면서 보속을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서 낙태보속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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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보속고통도
함께 받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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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속 방법은 열심인 천주교 신자라도 잘 모르는데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쉬운 보속방법을 가르쳐 주시니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녀입니까. 낙태수술 딱 하고 와서 “저 낙태수술 했습니다.”하면 살인이라고 생각하신 신부님들도 계시지만 그러지 않는 신부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가벼운 보속을 주시니 낙태가 대죄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태는 살인인데 성모송이나 묵주의 기도 한 번 한다고 그것이 보속이 되겠습니까? 어제도 얘기했듯이 신부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보속은 했지만 받아야 될 잠벌은 남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기 위하여 연옥에서 보속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라도 생활의 기도로 보속하고 첫 토요일이나 행사 때 모여서 그 지향으로 주님과 성모님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것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기도드린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것을 아는 우리들은 다 할 수 있지요? 우리가 낙태를 해서 주님과 성모님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것과 과거에 우리가 잘못했던 것들을 지향을 두고 오늘 여기서 보속을 치르도록 합시다.
남들 다 잠자는 이 시간에 우리는 좀 더 희생하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1분 1초도 낭비하지 말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쁘게 온전히 봉헌 하십시다. 그러면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실까요. 지금 계속 비가 오지요? 성모님께서는 2007년 8월 4일 “너희의 구속주이신 주님께서는 현천처럼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라 할지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바꾸어 나의 부름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찾아온 자녀들의 영혼 육신을 치유해 주시리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오늘도 유효한 것입니다. 저는 혈압이 올랐다 내렸다 정신이 없을 정도에요. 180에 120 나갔다가 또 얼마 후에 재보면 110에 60 나가니까 70 차이가 금방 나버리고 가슴이 차오르면서 어지러워서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예요. 그러나 6월 30일이나 7월 첫 토요일에는 수술하기 전 만큼보다는 덜 아팠지만, 숨이 목까지 차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심장병 있는 사람들이 위급할 때 혀 밑에다가 넣는 약이 있는데 저는 그 약을 쓰지 안고 여러분을 위해 봉헌했어요.
저는 옛날에 갈색세포종이라는 희귀병으로 혈압이 갑자기 270까지도 올라가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치유해주셨어요. 갈색세포종은 콩팥에 딸린 부신에 생긴 종양이라는데 그게 있으면 오한이 들었다 열이 났다
하면서 머리가 너무너무 아프고 어지럽고 혈압도 갑자기 올랐다 금방 뚝 떨어졌다 그런다는데 제가 그랬거든요. 어디 가다가도 갑자기 그 증상이 오면 병원에 실려 가고 그랬는데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서 이것저것 다 검사하고 동위원소까지 해 본 결과 악성 갈색세포종이라며 수술을 하려면 한 달간 입원해 준비해야 된대요. 그래서 수술하기로 했는데 그분은 신장 수술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 잘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병실에 그분이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아주머니는 이 수술을 하게 되면 호르몬이 갑자기 끊겨 죽게 됩니다.”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주님께서 그 교수님의 입을 빌려 하신 예언적 말씀으로 받아들였어요. 왜냐면 그분은 그 분야 수술에 대해서는 세계 제일가는 의사이며 아주 겸손하신 분이신데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없거든요. 아마 그분은 지금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거예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퇴원했는데 그 뒤로 얼마 후에 혈압도 조정이 되고 치유가 되었어요. 그런데 신앙체험 들어보면 저처럼 희귀병이나 불치병들을 치유 받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외국 분들도 어쩌다 나주에 한번 왔다 가셨는데 집에 돌아가서 수술하기 위하여 열어보면 치유를 받아서 깨끗해진 경우가 많았어요. 여러분에게 이번에 은총을 얼마나 내려주시려고 비를 이렇게 많이 내려주신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이 빗물 한 방울 한 방울을 헛되지 안도록 우리 영혼 육신의 치유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향하는 모든 이들과 온 세상 자녀들의 회개를 위하여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어려움과 이 빗속에도 주님과 성모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오신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내려주실까요. 피정 얘기가 나오니까 생각나는데 1983년 6월 15일 광주 호남동 성당에서 푸른군대 피정이 있었어요. 그날 고통 중에 있던 저는 자리에 누운 체 꼼짝도 하지 못했지만 존경하던 신부님께서 강론 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루비노 회장님하고 아주 힘겹게 찾아갔어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저더러 봉사 좀 하라는 거예요. 고통이 극심했지만 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순명하는 마음으로 곧바로 봉사를 시작했어요. 참가자들 가슴에 리본을 달아주면서 “오늘 주님 사랑과 은총 많이 받으셔요.” 하고 활짝 활짝 웃으니까 “아이고 사랑으로 가득 찬 봉사자님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니 오늘 받을 은총이 크겠구먼.” 하고 다들 기뻐했어요.
신부님 강론 시간이 되니까 봉사자들도 강론 들으러 다 들어가고 저 혼자 텐트도 없는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책과 성물을 팔고 안내를 하는데 루비노 회장님이 “햇볕이 뜨겁지 않느냐?”라고 물으셔서 “저도 지금 강론을 듣고 싶지만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연옥불 속에서 단련 받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제가 받는 고통과 땀 한 방울이라도 헛되지 않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쁘게 바치고 있습니다.”라며 생활의 기도로 기쁘게 봉헌하고 있다고 했어요.
루비노 회장님은 “율리아 자매님은 그 고통 중에도 내색 않고 봉사하는데 몸도 건강한 내가 보고만 있었으니 부끄럽구먼.” 하셔서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하고 위로해 드렸어요. 여러분도 생활의 기도로 봉헌 잘하시지만 이번에 더 확실히 아셨죠? 사실 그때 저는 뙤약볕 속에서 제 고통을 봉헌하면서 푸른 군대 피정에 참석한 이들만이라도 주님과 성모님께 깊은 통회와 진정한 회개의 눈물로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 세속의 모든 유혹과 죄로부터 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거든요. 저는 그날 피정이 끝나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화목 제물이 되어 오신 주님께 “주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포기하고 모세가 왕권을 포기한 그런 사랑은 아닐지라도 제가 듣고 싶은 강론을 포기한 것은 바로 주님께 향한 저의 열렬한 사랑이었는데 사랑의 주님께서는 덤으로 더 많은 은총을 내려 주시니 주님과 성모님을 찬미 찬양하며 기뻐하나이다.”하고 감사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나를 무수히 촉범하지만 매순간 포기로 엮어진 잔 꽃송이를 기쁘게 바쳐주며 행복해 하는 너에게 내가 내어주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너와 같이 지극한 사랑과 정성된 마음으로 봉헌할 때 기뻐하며 받아준다는 사실과 형식적인 것들은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모두에게 알리기 바란다.” 라고요. 저는 그 당시 예수님과 감실에서 성심의 빛이 팍팍 나오는 것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예수님밖에 모르고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때부터 성모님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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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보속고통을
받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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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01년 김대건 신부님 축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 6시에 십자가의 길을 시작해서 9시까지 했어요. 제가 잠자는 시간은 6시에서 9시까지인데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밤새 고통을 받고
나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 그 시간을 봉헌한 거죠. 그러니까 하루 종일 하나도 안 잔 건데 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1년을 결정하고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제가 처녀 적부터 저를 많이 도와주신 이모님이 아프신 분을 모시고 제게 기도 받으려고 오신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을 안만나고 도망치듯 그냥 돌아왔어요. 그 정도로 어떤 누가 와도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원하시고 부르심이 있으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2002년 봄 일
거예요. 기도를 하고 갈바리아 동산을 내려오는데 까만 잠바를 입은 사람이 물을 먹고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만나주고 싶어요. 제가 다가가 물을 떠서 “물 한잔 더 드세요.” 그랬더니 “저 물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한잔 더 드세요.”하고 물을 주고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시죠?” 그래서 “아닌데요.”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분 맞아요.” 그러더라고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까 신자는 아니고 서울대학 나와서 대학원을 거쳐 대학교수를 하는 경제학 박사인데 고환암이 걸린 거예요. 초기에 발견해서 나을 수 있었대요. 그래서 서울대 병원에서 잘 아는 선배한테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수술하고 나서 계속 더 아프다고 아프다고 호소를 해도 병원에서는 수술은 다 잘 됐다고 그러더래요. 제가 이번에 중환자실에서 보니까 저한테도 “수술이 잘됐습니다.” 그랬는데 모든 환자에게 수술이 다 잘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형제님도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이 잘됐다고 하니까 그냥 있다가 거의 죽음 상태가 되어 검사를 다시 해봤더니 고환 하나만 딱 들어내면 되는데 고환을 들어내면서 암 덩어리가 떨어져 버린 걸 모르고 봉합을 한 거예요. 그때는 암이 완전히 퍼져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거예요. 죽음을 앞두고 인터넷을 찾아보다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어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죽을 목숨인데 마지막으로 성모님 동산이나 한번 갔다 와서 죽자.’ 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왔대요. 그런데 저를 만난 거예요. 근데 어떻게 됐게요? 치유됐어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은총을 받으면 관리를 잘해야 돼요. 마귀는 은총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든 하느님 사랑에서 떼어내 쓰러
뜨리려고 분투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마귀들은 그 은총을 뺏어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은총 받으면 증언도하고 받은 은총을 뺏기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돼요. 그전에 안성에서 사는 말가리다 자매님은 유방암에 걸렸는데 1차, 2차 수술까지 하고 또 다시 재발하면 이제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그랬는데 3번째 또 와버려 온몸이 탈수기로 짜는 것 같이 아팠대요. 거기다가 모든 기능이 저하되니까 자궁에서도 계속 출혈까지 한 거예요. 근데 남편은 공소에 돌아다니면서 봉사활동 하다 부인이 하혈한
지 두 달 만에 집에 왔는데 본능이니까 부부관계를 하려다 출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인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남편은 수술을 하려고 서울 병원에 6월 1일로 예약을 했는데 부인은 남편한테 암이 재발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수술 해봤자 어차피 죽을 테니까요. 그때 나주에 차 대절해가지고 오시는 베로니카 자매님이 나주를 가자고 하니까 병원에 가기 위하여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남편한테도 연락을 안 하고 그냥 나주로 왔어요. 그리고 성모님 앞에서 계속 기도를 하는
데 얼마나 뜨거운지 못 견디겠더래요.
중요한 것이 뭐냐면 그냥 육신만 치유해주시면 관리를 잘 못해 은총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자매님은 그동안에 잘못한 것을 몰랐는데 성모님 집에 와서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느끼고 얼마나 울고 또 울면서 엄청나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제가 눈물은 은총이라고 그랬지요? 맺힌 한 때문에 울어도 치유를 받는 것이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도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옆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많이 울 때 “좀 울지 마. 분심 들어!” 하지 마세요. 성령께서 해주시는 겁니다. 근데 6월 1일이니까 그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말가리다 자매님이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 옆에 사람이 뜨거워서 같이 앉지를 못했대요. 자기 집에 돌아온 자매님은 다라이에 시원한 물을 받아서 찬물을 온몸에 끼얹고 또 끼얹어도 그 이튿날까지 얼마나 뜨겁더래요. 그러고 나서 암뿐만이 아니라 출혈까지 싹 치유 받았어요. 그런데 차량봉사자가 증언을 하라고 하니까 자기가 전에 잘못 살았던 것을 다 얘기하려니 부끄러워서 증언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다시 출혈이 시작되고 몸이 아파 “주님, 성모님 잘못했습니다. 숨김없이 증언하겠습니다.”하니 출혈이 멎더랍니다. 그래서 바로 증언을 하고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를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총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총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튼 저는 주님과 성모님이 찢긴 성심을 기워드리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계속 십자가의 길을 바쳤는데 마귀들은 십자가의 길에서도 저를 죽이려고 했고 성모님께서는 그때마다 저를 구해주셨어요. 그런데 하루는 너무 기진해서 10처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앉아 있었는데 알비노 형제가 “어, 저게 뭐지? 아, 피다!” 그래서 보니까 성혈을 흘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날 치유 받았는데 연락을 받은 봉사자들이 다 올라와 살펴봤더니 3처에서 15처까지 3000군데가 넘는 돌과 나뭇잎에 성혈을 흘려주셨더라고요. 그 날짜가 언제 입니까? (2001년 11월 9일 이요.) 맞았습니다.
그리고 12월 27일과 2002년 1월 18일에도 십자가의 길에서 성혈을 쏟아주셨어요. 그러니까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다시 순례를 오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2002년 6월 11일과 8월 15일 성혈조배실에 성혈을 엄청나게 쏟아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현천처럼 내리는 빗줄기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변화시켜 은총을 주셨는데 오늘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시니 이 모든 빗방울이 다 자비의 물줄기로 내려주시어 병든 우리 모두의 영혼육신 깨끗이 치유 해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으니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이번에는 집중호우로 성모님 동산이 피해를 입어 어수선한 가운데 피정을 하게 됐는데 다음에는 더 알차게 합시다. 다 손을 잡으세요. 우리 일치 위해 전부 손을 잡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이듯이 우리 모두도 하나가 됩시다.
참으로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우리를 늘 참젖을 먹여 양육하고 계신 성모님 부족한 저희들이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과 성모님의 옥좌 앞에 모여 기도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능력으로 이 모든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손 얹어 강복해 주시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들 늘 부족하지만 그러나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영혼들이 되고자 함께 모였으니 아직 작아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생활의 기도로써 우리 모두가 더욱 더욱 겸손하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영혼이 되어서 주님 성모님 품에 꼭 안기길 바라나이다. 우리가 포기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아포기로써 주님과 성모님 곁에서 늘 기쁨과 사랑과 평화 누릴 수 있도록 만건곤한 마귀로부터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저희들 특별히 오늘 삼일 전에부터 이렇게 불러서 함께 기도하게 하셨나이다. 하오니 주님 성모님, 주님께서 흘리신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과 성모님께서 흘리신 눈물과 피눈물과 향유와 참젖으로 저희들을 오늘 다시 새롭게 깨끗이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곳을 뚫어주시옵소서. 이제까지 우리가 잘못했던 모든 부분들, 생활의 기도로써 온전히 바쳐지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마지막 날 온전히 정화되어서 천국으로 바로 오를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며 보속하고 희생과 봉헌으로 점철된 사랑을 행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과 성모님께서 저희들을 알곡으로 뽑아 불러주셨사오니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갖은 발악을 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빨리 깨닫고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이 모든 자녀들에게 성령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제부터 영원무궁토록 주님과 성모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항상 기쁨과 사랑과 평화 누리며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는 반드시 출분하고 말 것이니 우리 모두가 늘 깨어있는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무한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시작하는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현천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라 할지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우리의 더러워진 영혼 육신을 온전히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곳을 뚫어주셔서 영혼육신을 치유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을 굳이 믿습니다. 이 모든 자녀들 단 한 영혼도 빠짐없이 우리가 받은 은총을 잘 관리하고 주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성모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뽑힌 영혼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겸손한 낮은 자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듯이 우리 모두도 이제는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밑에서 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시어 예수님을 보는 마음으로 성모님을 보는 마음으로 내 아내를 내 남편을 내 시어머니를 내 며느리를 내 부모를 내 자녀를 우리가 섬길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과 성모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저희를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예수님의 성심의 잔 안에 우리를 봉헌해 주셨사오니 절대로 마귀와 합세하지 않고 주님과 성모님 안에서 기쁨과 사랑과 평화 가득 누릴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도 무한히 축복해 주시고 우리가 지향하는 모든 기도를 들어주셔서 주님 영광 드러내 주시옵소서. 부족한 이 죄인의 기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또다시 새롭게 부활할 수 있도록 간절히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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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 주고 싶으셔서 다 주시고 양말까지도 주시는
율리아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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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까지도 주시고 맨발로
말씀을
전하시고
찬미하시는
율리아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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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아침에도 사랑 한낮에도 사랑 사랑 사랑 저녁에도 사랑 알렐루야 알렐루야 나도 이겼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모두 이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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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사 아침도 감사 한낮에도 감사 감사 감사 저녁에도 감사 알렐루야 알렐루야 나도 이겼네 알렐루야 우리 모두 이겼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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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자매님의 피를 토하는 듯한 치유기도와 가슴살을 떼어 먹여 새끼를 키운다는 펠리칸 새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영가에 성전은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주님께서 피정 참석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어루만져 치유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청하셨으니 주님과 성모님은 그 청원을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집중호우로 손상된 성모님 동산을 복구하고자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열악한 시설과 상황에서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봉헌한 자녀들에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지고이고 갈 수 없을 만큼 큰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이제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만남은 신부님의 안수와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는데 율리아 자매님은 당신에게 특별히 내려주신 징표를 가지고 피정자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며 기도해주자 대부분이 성령안식으로 팍팍 쓰러졌습니다.
형제님들도 쓰러져 눈물을 흘렸으며 어떤 분은 쓰러져 성전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며 오랫동안 몸부림치기도 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과 봉사자들은 그런 분들이 은총 받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쓰러져 있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모두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피정의 마지막 식사인 점심은 쌈과 삶은 돼지고기가 푸짐하게 나왔고 후식으로는 잘 익은 바나나와 수박이 나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한 피정자들은 세상에 파견되는 성심의 사도가 되어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습니다. 성모성심의 승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우리 나주의 작은 영혼들이 세상 구원을 위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주기를 원하시니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곧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가 있지만 성모성심의 승리가 목전에 와 있는 지금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지금 작은 것을 봉헌하는 것이 주님과 성모님께 더 큰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니 성경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 썩지 않을 하늘나라의 보물창고에 불멸의 공로를 쌓도록 더욱 노력합시다. 불림 받아 아멘으로 응답한 우리는 알곡으로 뽑힌 자녀들입니다. “불림받아 아멘으로 응답한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나를 위하여 내가 간택한 내 작은 영혼을 도와 일하다가 박해를 받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친히 너희를 성령의 갑옷을 입혀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보내어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복음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게 할 것인데 믿고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나를 배척하고 성령을 모독 한다면 단죄를 받을 것이다. 나와 내 어머니를 따르며 전하는 너희 모두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랑으로 일치하여 일하도록 파견된 사도들이기에 내 작은 영혼을 도와 나를 전하다가 백척간두에서 고립무원의 위험에 처할지라도 안전하게 구해내어 천상정원에서 나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할 것이니 어서 힘을 모아 새롭게 시작하여라.”(2007년 11월 24일 예수님 사랑의 메시지 ) 은총 넘치는 마리아의 구원 방주 제 2회 피정은 이렇게 기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봉사자와 피정 참가자, 특히 기쁨으로 굳은 일을 도맡은 젊은 성소자들에게 감사드리며 8월 첫 토요일에 다시 만나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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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충만하여 율동으로 찬미를 드리는 남성 피정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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