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주고 계시는 성모님

 

bullet03_glitter.gif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사랑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가족들께 7월 셋째 목요성시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올해는 마른장마가 오리라던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형성된 장마전선이 소멸되기는커녕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하며 전국이 게릴라성 집중호우에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마리아의 구원방주 제 2회 피정에서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시며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현천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일지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바꾸어 우리 영혼육신을 치유하여 주실 것입니다.”고 말씀하셨는데 7월 셋째 목요 성시간에는 평소보다 좀 더 많은 순례자들이 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오후 3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는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을 올라갈 때 당신의 슬픔조차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시며 온몸을 떨던 성모님을 묵상하게 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이 함께 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

 

 

 부활하신 예수님 상 앞에서 예수님과 신부님께 강복을 받는 순례자들

율리아 자매님은 순례자들과 함께 하고 싶으셨지만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성모님 동산에 올라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순례자들은 수녀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모님께 꽃과 초를 봉헌하였고 비가 계속 내렸기에 묵주기도는 성전 안에서 신부님들을 중심으로 촛불을 들고 큰 원을 그리며 전심을 다해 양팔 묵주를 바쳤습니다.

 예수님의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한 목요 성시간에 양팔을 들고 함께 바치는 묵주 기도

거룩한 미사는 두 분의 사제께서 공동으로 집전하였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 요약>

거룩한 미사 중 성찬의 전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11,28)

인간의 삶은 고통의 바다에서 떠다니는 일엽편주 그래서 어떤 현자는 인생을 고해(苦海)에 비유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결국 죽음에 이르러야만 하고, 그 삶의 과정도 험난하니 인생을 고통의 바다에 비유함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고생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니 이를 가엾이 보시고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고통 중에 있다는 예수님의 인간관은 우리를 그 분께 한 걸음 더 바짝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 신앙인의 진실된 고백이기도합니다.

고통(苦痛 ; 라, dolor 영, suffering)은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말 그대로 우리가 몸으로 겪는 모든 괴로움과 아픔들을 이르며, 정신적인 고통은 걱정이나 두려움 등과 같은 감정적인 것과 실의에 빠졌을 때처럼 의지적인 것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느끼는 영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며 그 궁극적인 원인은 원죄에 있다고 합니다. 고통은 개인이나(출애 21;12) 국가가(신명8;28) 저지른 죄에 대하여 하느님이 내리시는 징벌이었습니다. 인류의 연대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의 죄 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죄로 인해서도 고통을 당합니다.(여호 7;10-15) 고통은 또 치유의 목적도 함께 지닙니다. 하느님이 고통을 허락 하시는 이유는 그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레위 26:40-45) 한편 고통에는 인간의 덕행과 하느님께 대한 성실성을 시험하는 측면도 있으며(집회 2;4, 지혜 3;5), 타인의 죄를 대신 보속하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이사 42:1-4, 49:1-7)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는 고통을 위한 고통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였고(요한 14;31), 고통이 인류의 구원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마르 8:31-33)

그리스도 교인들은 “신랑을 빼앗겨 버리고”(마태 9;15) 단식하는 자들이며, 이런 단식과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자들인 것이다.”(골로 1;24)

그리스도교적 전통은 자발적인 고통의 감수와 고신 극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방하는 수단의 하나로 간주해왔다.

“누가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놓을 자 없느냐?”(89.1.29)라고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향하여 외치셨지만 가까이 오는 사람만 몇 명 있을 뿐 아무도 예수님을 내려놓지는 못하였다고 사랑의 메시지는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짐은 가볍다”(마태 11,29-30)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수께 다가서 보겠지만... 사랑의 메시지에서 전해 듣는 그 분의 초대는 우리를 아연실색케 합니다.

아니 2천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십자가 상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가상칠언이 아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지금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고통을 제헌하고 계시다는 말이 아닌가? 만일 내가 직접 주님의 그런 말씀을 들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혼비백산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치지는 않았을까? 그러기에 십자가 밑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그리고 애제자 요한 만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메시지 말씀에는 “가까이 오는 사람 몇 명만 있었을 뿐”이었고 그리고 “아무도 예수님을 내려놓지는 못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율리아 자매의 단순한 환시나 현시 체험이었을까요? 그랬다면 자매님이 그 당시 겪었던 가시관과 십자가의 고통, 창에 찔리는 고통, 성심이 불타는 고통, 김대건 신부님의 치명 고통은 또 다 뭐였을까요?

우리는 십자가에서 겪으신 그 분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형용할 수 가 없습니다. 그 고통에 동참하신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불만을 일삼는 소인배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마저 내려놓으려는 비겁한 자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바치는 이 성시간의 기도는 몸소 음식이 되시기까지 온 인류를 사랑하여 너희에게 오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무관심과 모독 그리고 능욕을 기워 갚고 게쎄마니에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의 고통과 제자들에게 버림받은 슬픔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하느님의 엄위를 촉범한 죄악과 배은망덕을 배상하는 것이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성시간에 바쳐진 기도와 희생과 봉헌은 다른 영혼들의 죄악까지도 보상하는 제물이 되어 하느님의 정의에 바쳐지고 있다.(1993.02.18 성모님) 라는 성모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는 오늘 이렇게 다시 모였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과 사랑의 메시지 말씀은 분명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하소연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서 오히려 어떤 평화로움을 체감할 수 있음은 모순일까요? 복음과 메시지의 예수님의 말씀은 다 같이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저 깊은 사랑에서 발원하는 말씀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저 고개 숙일 뿐입니다. 그 분은 고난을 겪으셨지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지금도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것입니다. 아니 죄 많은 우리들 때문에 차라리 돌아가실 수도 없음은 아니실까요? 마지막 한 명의 죄인이 회개할 때 까지 차라리 계속되는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던지시는 그 분의 한 말씀을 함께 기억합시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짐은 가볍다.” (마태 11:30)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채 파스카 희생 제물이 되셨건만 교만한 인간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촉범하며 능욕하고 있기에 그 능욕을 기워 갚고자 성시간에 모인 나주 순례자들은 초저녁부터 고해소 앞에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미사가 끝난 후 경당으로 이동하여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시며 온 세상의 모든 자녀들의 추한 때를 씻어주시고자 향유를 흘리시는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성모님 옆에 모셔진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체께 조배 드렸습니다.

그리고 6월 30일에 쏟아주신 성혈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고는 찬미와 율동을 봉헌 하였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 기쁨과 위로를 드리기 위한 찬미와 율동

그동안에도 율리아 자매님은 이 순례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영웅적인 사랑의 힘으로 죽음과도 같은 죽음의 고통을 기쁘고 아름답게 봉헌하고 계셨습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가련한 나의 딸아!
부패될 대로 부패된 지금 이 시대는 항해하는 배의 선장 역할을 해야 할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영적으로 눈멀고 귀멀고 절름발이가 되어서 스스로 벌을 자초하며 멸망의 길로 향해 가고 있으니 내 아들 예수와 내가 펼치는 구원 경륜을 훼사훼언하며 교만과 탐욕으로 판단하는 영혼들이 교오한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너의 고통을 통하여 그 영혼들이 내게 바쳐지기를 바란다.(2007년 7월 7일 예수님 사랑의 메시지)

자정이 좀 지나서 위로의 어머니 찬미와 함께 율리아 자매님이 부석부석한 얼굴로 경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순례자들 앞에 나오기 전에는 순례자들을 봉헌하시며 늘 생활의 기도로 몸을 씻고 화장을 하시는 율리아 자매님께서 화장도 하지 못하시고 그냥 나오신 것은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님은 고통을 숨기시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순례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여러분 더우시죠? 죄송합니다. 시원하게 에어컨 좀 틀어 드려야 하는데 (시원해요!) 아멘! 여러분 마음이 따뜻해서 시원하십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시원한 성령의 바람을 여러분 안에 불어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비가 많이 오고 나주에 홍수 경보까지 났는데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하여, 그리고 성모님께서 흘리시는 눈물과 피눈물을 닦아 드리기 위하여 그 폭우 속을 달려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주님과 성모님의 너무너무 소중한 아들딸들이십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든지 드리고 싶은데 무엇을 좀 드릴까요? 제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특별히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함과 성모님께서 흘리시는 눈물과 피눈물과 피땀을 닦아드리기 위해서 사랑이신 주님과 성모님의 옥좌 앞에 모이셨으니 여러분이 얼마나 예쁘실까요? 너무 너무 예쁘실 겁니다.

그 전에 고통을 달라고 청한 뒤 광주교구 성령 봉사자들과 피정을 간 적이 있는데 처음 갈 때는 묵주기도를 바치고 기도 조금 하고는 서로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저는 항상 버스 맨 뒤에 안전벨트도 없는 자리를 차지해서 항상 기도하고 다녔어요.

그랬는데 막 배도 아프고 머리에서부터 다 아파 몸부림을 했더니 성령 쇄신봉사 회장님이 느닷없이 “아니 000옆에 앉고 싶어서 그러면 000옆에 앉고 싶다고 그러지.” 그러시면서 싫다는 저를 기어이 그 옆에 앉혀 놓더라구요.

그런데 그분이 “날파리가 많이 날아다닌다.” “각 사람들에게 앉는다.” “율리아야 네 앞에도 날파리들이 몽땅 온다.” 면서 주님을 전한다고 앞장서서 일하시는 분이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니까 제가 고통이 너무 너무 심하게 오면서 쓰러져 차에서 뒹굴뒹굴 굴렀어요. 어떤 사람이 우황청심환을 줬지만 그 분과 봉사자들의 회개를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얼른 먹은척하고 손에 쥐고 있다가 호주머니에 넣었어요.

어느 날 암환자 방문을 가려는데 루비노 회장님이 오셔서 함께 가다가 갑자기 호주머니로 손이 들어갔는데 뭐가 손에 잡혀 보니까 우황청심환 껍질이 꼬깃꼬깃 구겨져 있더라고요. 그때서야 바지에 우황청심환이 있었는데 꺼내지 않고 그대로 빨아버린 것이 생각이 난거예요.

그래서 얼른 “오, 주님! 이 우황청심환은 이미 물속에서 사라졌지만 그 약효만은 꼭 필요한 영혼에게 보내주시어 주님의 사랑과 합하여 치유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우리 생활 전체를 전심전력을 다해 생활의 기도로 봉헌한다면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는 큰 위로가 되며 우리에게는 공로가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생활의 기도를 하시면서 ‘이렇게 하는 것을 정말 예수님께서 해주실까?’ 설거지나 수저를 닦으면서 “예수님! 남편의 마음을 깨끗이 닦아주시고 영적으로 성화되게 해주십시오.” 기도하고 나서 ‘이것 좀 한다고 예수님께서 들어주실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들어줄까? 말까?” 하실 수 있지만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전심전력을 다해 생활의 기도로 봉헌한다면 “예수님 해 주십시오.” 하면 해 주십니다.

제가 루비노 회장님하고 가면서 소리를 내서 생활의 기도를 했더니 갑자기 회장님이 어떻게 알았느냐?며 소화 성녀 데레사의 영성을 닮았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율리아와 함께 있으면 성인 성녀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야.” 라고 하여 “아이고, 하늘에서 성인 성녀들이 그 소리 듣고 가소롭다고 웃겠네요.” 그러면서 같이 막 웃었어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너는 예쁘게 자라나 아름답게 피어난 향기로운 나의 작은 꽃이란다. 이제는 그 꽃향기를 만방에 풍기도록 나와 내 어머니의 성심 안에 너를 온전히 용해시킬 것이니 늘 깨어 내 안에 머물러라.”라고 하셨어요.

여러분, 이 말씀은 저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신 것이고,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하시면 여러분 모두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시고 은총을 주십니다.

여러분들 “님 향한 사랑의 길” 보시면서 ‘율리아 자매님이 이렇게 사셨구나.’ 생각만 하지 마시고 ‘아! 나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결심하셔야 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제가 살아온 삶과 생활, 그리고 제가 지켜온 가정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님 향한 사랑의 길”은 제 일생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 알고 나서 예수님과의 대화예요. “일생기 2부” 라고 하는데 일생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렇게 생활의 기도로 아름답게 바치면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꼭 들어주시고 우리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작은 꽃이 되어 온 세상에 빛을 전하는 도구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들아, 너희는 내 작은 영혼이다, 나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작은 꽃이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정말 아름답고 예쁜 꽃으로 다가가서 주님과 성모님 품에 꼭 안깁시다.

여기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실제로 살아서 나오셨고 성모님상 성모님께서도 실제로 살아계신 성모님으로 오셨으니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함과 성모님께서 흘리신 눈물과 피눈물을 닦아드리기 위하여 오신 여러분들에게 내어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믿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혹시라도 잘 안됐을 때에는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을까?’ 또 치유를 주시거나 큰 은총을 내려주시면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이렇게 큰 은총을 내려주시겠는가?’ 하고 매일 매순간 감사가 마르지 않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무지무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을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성모님을 통해서 주님께 달아든다면 여러분 모두에게 이고 지고도 못갈 그런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장애인인 어떤 분이 휠체어를 타고 나주에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본당 신부님이 못 가게하고 텃밭을 매게 했는데 나주를 와서 저한테 물어봐서 “형제님, 그러면 그 텃밭을 맸어야지요.” 그랬더니 “걷지도 못하는 제가 이 몸을 가지고 어떻게 매요.” “엎어 질 수 있어요? 없어요?” 물어보니 엎어질 수 있대요. “그러면 순명하는 마음으로 엎어져서 매는 시늉이라도 해야지요.” 그랬더니 못한대요.

“그러면 오늘 저랑 가서 그 밭을 맵시다. 저도 형제님과 함께 엎어져서 땅을 매겠습니다.” 하니까 “매버렸어요.” “어떻게 맸어요?” 그랬더니 삯꾼을 사서 매어버렸대요. 저는 나주 성당 주임 신부님께서 주님과 성모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거짓말 이었다고 거짓증언 하라고 하니까 그것은 하느님을 저버리라는 말씀이었기에 순명 할 수 없었지만 그 신부님께서 형제님에게 지시하신 것은 신앙이나 도덕적으로 전혀 어긋난 일이 아니었으니 순명을 했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님이 정말 나주성모님을 사랑해서 오신다면 신부님의 그 명을 받들어서 엎어져서 매다가 매다가 못 매겠으면 “신부님 제가 엎어져서 매다가 다 못 맸습니다.” 그러면 신부님께서도 그 모습을 보시고 나주에 가라고 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그분이 거기서 깨달았어요.

“이제까지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분을 찾아가 상담하고 했어도 답을 얻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자매님한테 이고 지고도 못갈 그 은총을 받고 갑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받은 은총을 잘 관리 해야 돼요. 그 분이 “제 영적 지도자는 자매님입니다.” 그랬는데 그 뒤로 가서 안 와버렸어요. 그전에도 그 분이 너무 불쌍해서 제가 서울 가다가도 거기 들러서 기도해주고 가고 그랬는데 안 와 버려요.

그런데 어느 날 1985년부터 진주에서 순례 다니시던 자매님이 전화를 했어요. 그 분은 척추 뼈까지 다 암이 와서 병원에서도 이미 내놓은 상태이기에 요위에도 누울 수 없고 맨 바닥에만 누워야 된다고 했는데 나주에 오셔가지고 다 치유를 받으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데리고 오시는데 거기 가면 낫는다 하고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한번 가보기만 합시다. 가보고 그곳이 갈 곳이 못된다면 나중에 안 가면 됩니다.” 그렇게만 한대요. 그런데 데리고 오신 분마다 다 치유 받았어요.

근데 그분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가 집에 가서 보라고 작은 책을 돌려 성모님의 집에서 준 것인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보니까 다른 메시지라면서 전화를 한 거예요. 그 책을 한번 보내주라고 해서 딱 펼쳤더니 뭐가 나왔냐면 “사제를 죄짓게 하면 3대를 멸할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나오는 거예요.

하느님은 그렇게 벌주시는 분 아니시거든요. 잘못했을 때 회개하면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도 돌로 쳐 죽임을 당할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부활하신 뒤에도 마리아 막달레나한테 제일 먼저 발현하셨잖아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냐면 1988년 6월 5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피를 줄줄 흘리시는데 그 피가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쁜 성작에, 예쁜 성반에 떨어져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팔을 펼치시면서 “자, 오너라.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희생제물이 되어 너희를 기다린다. 천상의 식탁에 모두 모여 함께 사랑을 나누자. 마음을 활짝 열고 나에게 돌아온다면 너희의 과거를 묻지 않고 내 너희에게 축복의 잔을 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는 벌을 내리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제를 죄짓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거든요. 사제님을 욕을 해도, 사제를 비판해도, 이간질해도 다 죄짓게 하는 거예요.

그러나 회개해서 다시 새 삶을 찾아간다면 주님은 그 사람을 무한히 축복해주시는데 사제를 죄짓게 하면 3대를 멸한다는 말이 딱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근데 가예언 하는 분들도 다 지도신부님 있어요. 이 형제님도 제가 아는 신부님께서 그 책자를 만들게 하시고 지도를 하셨다고 그래서 더 놀랐어요.

그 책에는 다리와 발이 장애자인 그 형제님의 손과 발에서 피가 나오는 모습을 찍어 오상을 받았다고 수록했는데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분별을 못하고 막 몰려간다고 해서 ‘세상에 어떻게 무한하신 주님의 사랑을 이토록 능욕할 수 있다는 말인가?’하고 제 마음이 너무 슬펐어요.

여러분들이 조심하실 것이 있어요. 요즘은 모르겠지만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는 율리아 자매님 곁에 있는 사람이다.” 하면서 금품을 요구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한 부부가 찾아와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해서 뒷방을 쓰게 해주고 하루는 부부싸움을 한 그 분들을 화해시키느라고 음식까지 준비하여 안집으로 데려다가 파티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제 한번 우리 이모님이 뒷집에서 보리밥을 맛있게 한다며 한 그릇 얻어먹고 오겠다고 갖다 오시더니 3천 원씩 밥장사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밥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어요. 자기들이 여기 올 때 56만원을 가지고 왔는데 순례자들 밥을 해주다보니 돈을 다 써서 돈이 하나도 없다니까 사람들이 돈도 주고 쌀도 사다주면 쌀은 되팔아 돈을 챙기는 거예요.

그 형제님은 늘 제 다락방을 쳐다봤는데 어느 날 제가 거기 계시지 말고 기도하시라고 했더니 무릎을 꿇고 “자매님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소원입니까?” “자매님, 저하고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근데 한복 한번만 입고 사진 찍어주세요.” 하는 거예요. 불쌍히 여긴 제가 바보 같이 한복을 입고 나와 하자는 대로 사진을 다 찍어줬어요.

그랬더니 사진 딱 찍고 나서는 가버렸는데 그 뒤에 알고 보니까 사방천지가 외상값이고,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는 순례자들 다 알아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피해가 일어난 거예요.

여러분들 서로 아시는 분들 아니고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 절대 주소, 성명 써주거나 전화번호 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피해 받은 사람들 많아요. 자주 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기는 성모님 집이니까!’ 하고 가방이나 물품을 그냥 놔두지는 마십시오. 여기도 그렇고 저기도 그렇고 가짜 신자들이 금품을 훔쳐 가려고 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돼요.

어느 날 전주교구 어떤 신부님이 만든 메시지 책이란 것이 왔어요. 딱 펴 보니까 ‘수원 어느 성당, 어느 수도원은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말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 신부님은 어떤 돌멩이를 삶아 먹으면 암이 낫고, 마귀가 나가고 만병통치약이라고 그랬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속한 성당이나 수도원은 다 벌을 받을 것이라고 그 메시지 책에 쓴 거예요.

저는 그 신부님한테 그것은 틀린 말씀이라고 계속 말씀 드려도 안 들으시고 당신이 계획하는 것에 계속해서 저를 끌어들이려고 했어요. 2005년 봄에도 메시지 받는다는 자매님을 데리고 저를 만나려고 경당에 왔었지만 제가 안 만났어요.

그 신부님은 이제 곧 암흑이 오고 벌이 내리는데 그 예표로 몇 월 며칟날 일본과 한국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온다고 하셨어요. 틀린 예언이죠. 저는 그 신부님을 만나지도 않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신부님은 율리아가 했다고 그러니까 그 말씀을 들으신 다른 신부님들은 알아보지도 않으시고 “그렇다면 율리아가 잘못된 거다.”하시고 저를 아주 이상하게 보고 그랬습니다.

또 한 번은 파 신부님께 갔더니 “율리아가 십 몇 년 받은 메시지를 어떤 자매님은 6개월 만에 받았다.”고 그래서 “신부님, 그 메시지 좀 보여주세요.”하고는 딱 떠들어 보니까 또 그것도 오류예요. 저는 전에 여러 번 볼 필요도 없이 딱 떠들면 주님께서 단번에 아니란 것을 보여주세요.

그래서 오류를 지적하면서 “신부님 이것은 아니에요.” 그랬더니 “아, 진짜 그러네요! 주교님께 보고 하겠어요.” 하시더라고요. 신부님들도 진짜인지, 아닌지 분별을 잘 못하실 때가 많아요. 여기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시는 분들은 분별 하시지요? (예!) 여러분들은 정말 귀하신 분들입니다. 우리 분별을 잘해야 돼요.

언젠가 글라라라는 자매 언니의 애기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낫지를 않는다고 해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개신교 신자인 그는 애기를 업고 기도를 받았는데 어느 순간에 제가 그 엄마 앞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아니 내가 왜 이 자매를 기도하고 있지?’ 그런데 엄마의 잘못으로 아기가 아플 수가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회개하면 아기가 나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엄마가 회개해서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애기가 딱 나으니까 이 언니가 천주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근데 목사랑 사모랑, 장로까지 계속 찾아와 “개신교에 다녀야 될 네가 천주교로 갔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이 철퇴로 막 때리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남편이 직장에서 잘릴 것이고, 집에 불이 날 수도 있고, 애기도 잘못될 것이고, 올해에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길 것이다.” 그러니까 무서워서 벌벌 떠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동생이 거기 가면 큰일 난다고 가예언자들이라고 했는데, 거긴 가예언자도 아니고 거짓말 하는 거예요. 거기는 이 부부가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많이 타서 꼬박꼬박 십일조를 계속 했는데 이 신자를 놓치면 교회 살림에 펑크가 나니까 죽자 사자 매달린 거예요. 그러니까 못 할 말이 없어요.

제가 그 언니를 오라고 해서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다 말해주고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인데 천주교로 갔다고 예수님이 철퇴로 내려쳐 죽일 분이냐? 오히려 집에 왔다고 반겨주실 분이다. 그러니까 그 말 믿지 말고 천주교를 다녀라.” 했는데 그때부터 무슨 말을 해도 천주교를 다닌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말한 것이 하나도 안 이루어 진거예요. 이뤄질 리가 없죠. 우리들이 들으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지요? 그런데 곤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해요. 그래서 여러분들 주위에 그런 사람들 있으면 잘 이끌어 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오늘 제가 가예언자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계속 가예언자 얘기 나오는 것이 주님과 성모님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필요하신 이야기니까 해주신 것 같아요. 그죠?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나의 찢어진 가슴을 기워줘야 될 것이 아니냐.” 하셨는데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찢긴 성심을 기워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이 원하시는 것 무엇을 안 해주시겠어요. 또 성모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놓지 않으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과 성모님께 가까이 나아갑시다. 우리가 늘 용서한다고 해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미운 사람들 있지요? 보지 않을 때는 “내가 사랑해야지.” 했는데도 무슨 이야기 하면 또 미워져요. 그것이 인간인데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니시죠?

그런 것들을 우리 오늘 잘 봉헌합시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녀들만 예뻐하실까요? 아니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극악무도한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마음이 아프시고 성모님도 그러신데, 이 세상과 인간들의 마음이 황폐해져가고 하느님을 촉범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오른 손이 높이 쳐들려서 지금 벌을 내리려고 하고 계세요.

지금 이렇게 홍수가 나 집들이 침수가 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경고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1991년 3월 10일 “지금 이 시기는 온 인류에게 아주 중대하다. 그 많은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만이라도 깨어서 기도해야 되겠지요? 아까 제가 버려질 우황청심환을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실 수 있지요? 우황청심환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어떤 것 단 한 가지도 빠짐없이 생활의 기도를 봉헌해야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한글 프로그램에서 오류가 떠서 그것을 금방 없애면 또 나타나고 몇 자 쓰면 또 나타나고 할 때 짜증 날수도 있지만 바로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면서 기도한다면 얼마나 좋아요. 생활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됩니까.

오늘도 컴퓨터에 그런 오류가 떠서 하나하나 지울 때마다 “예수님! 오늘 순례 와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그리고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자녀들 마음 안에 나쁜 악이 들어있다면 다 물리쳐 주십시오.”하면서 구마경을 합니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면서 하니까 생활의 기도가 너무 너무 잘 돼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런 이야기는 지저분하게도 들릴 수도 있겠지만 눈이 가렵거나 혹시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눈곱이 있다면 눈곱을 떼면서도 “예수님, 우리 영혼 육신의 필요 없는 것 다 떼어 내보내주세요.”하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 합니다. 코딱지를 파면서도 “오, 예수님!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악습들 다 뜯어내 주시고 뽑아내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면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 생활의 기도책에 나오는 기도는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생활의 기도는 이렇게 한다.’ 그것만 맛보기로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하나하나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신발 한번 신을 때도, 벗을 때도 그리고 같이 걸어가면서 발을 맞출 때도 서로 엇갈리지 않고 일치를 위하여 봉헌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죠? (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예쁘고 아름답게 우리가 생활의 기도를 봉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담배 피다가 딱 던져버리잖아요. 그러면 내려가서 주울 수는 없고 “주님, 제가 지금 저 꽁초를 주을 수는 없지만 줍는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아주시고 우리의 악습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시어 주님 영광 위하여 일하는 순직한 작은 영혼 되게 하여주소서.”하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합니다.

그리고 휴지를 탁 버리면 그것도 생활의 기도로 봉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버리잖아요. 그냥 지나치셨다면 지금 기도해도 됩니다. 다른 기도들이 따라올 수 없는 생활의 기도 장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나간 것도 생각나면 바로 바로 봉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까지 조금이라도 못했던 것 늘 생각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 저녁에 잠자기 전에 묵상을 해보면 오늘 생활의 기도 무엇을 빼 먹었는가를 찾아내 그때라도 봉헌합니다. 화장실에 세 번 갔는데 두 번은 했지만 한 번 안 했으면 그 한번 못한 것도 그 때 기도하면 되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하나도 안 빼먹고 생활의 기도를 다 잘 한대요. 저도 어쩔 때는 잊어버렸다가 금세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아침에 딱 일어나서 촛불 봉헌하고 기도하면서 “오늘 하는 모든 일 다 생활의 기도로 바칩니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해야 될 생활의 기도를 한대요.

그건 아니죠. 깨어있는 기도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때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는 겁니다. 지나가면서 쓰레기 하나 주우면서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악습들 다 빼내주시라고 하고 또 누구누구 기억나는 사람들을 봉헌하는 거예요.

이제까지는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몰랐을 때는 성당에 다니면서도 성체의 중요성을 모르니까 부부간에 실컷 싸우고, 둘이 다 화해하기는 싫고 미사는 가야겠는데 서로 성체 모실 때 같이 안 나가려고 하나는 아침미사 가고 하나는 교중 미사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전에 어떤 자매들이 싸워서 원수가 졌는데 풀려고 생각 안하고 고해성사를 보면서 “누가 이래서 이랬습니다.”고 했어요. 그건 고해성사가 아니죠. 나주 영성은 더더구나 아니죠. 내가 잘못 안했다 하더라도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죄를 지었구나.”한다면 내가 먼저 가서 “마음 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 탓입니다. 서로 잘합시다.” 화해하고 성사 보면서

“예수님, 제가 아름답게 봉헌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더 잘 봉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해 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예쁘시겠어요. 그런데 누가 어쨌다고 그러면 고발하는 것밖에 안되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봉헌해야 되는데 그 두 자매는 그것이 죄 인줄도 모르고 원수가 되어 둘이 서로 안 보려고 교중 미사에 다녔기 때문에 아침 미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둘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아침미사 온 거예요. 그 다음날은 매일 미사도 안다니고 주일 저녁 미사를 가야 되겠다 하고 저녁미사를 갔는데 둘이 똑같이 그 생각을 해서 저녁 미사에 또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맨날 만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성체 모시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무슨 성체예요? (모령성체요~) 너무 잘 아신다. 바로 그렀습니다. 모령성체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마음 안에 들어가서 고통을 겪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지 못하시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흘러버립니다. 그래서 이웃과 화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께 고통을 드리는 거예요.

주님과 성모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만이라도 예수님께 고통을 드리지 말고 이제부터 새로 시작합시다. 계속 잘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그래도 저와 함께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새로 시작합시다. 아멘!

눈을 감아보셔요. 그리고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미워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또 내가 정말 보기 싫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내서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리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무거운 우리 짐을 가볍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자 눈을 뜨십시오.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시겠습니다.

2008년 3월 1일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너희가 이곳에 와서 받았고 또 받고 있는 측량할 수도 없는 이 고귀한 은총들을 누리지 못하였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예쁘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나와 내 어머니를 위해 내 작은 영혼을 도와 일하는 너희에게야 말로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율법에 얽매인 걱정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진리를 가로막고 오류를 퍼뜨리는 자들은 마지막 날 반드시 가슴을 치며 울부짖게 될 것이나 나와 내 어머니가 주는 사랑의 메시지를 실천하면서 생활 전체를 생활의 기도로 무장하고 아름답게 봉헌한다면 너희는 내세에서의 영원한 행복뿐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2001년 9월 28일 성모님께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택함 받은 내 아들딸들아!
지금 이 시대는 암흑과 불과 피의 벌을 자초하고 있으나 주님과 나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너희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따라 새롭게 시작하여라.

그러면 너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사자 입을 막아 다니엘을 살리셨던 놀라운 사랑으로 이 마지막 시대에 닥칠 위험에서 나를 따르며 나를 위하여 일하는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니 천국을 누리게 될 것이다.

머뭇거리거나 주춤하지 말고 깨어나 너희가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분투노력하여 더욱 사랑의 힘을 발휘하면서 영웅적으로 충성을 다할 때 내 항상 너희의 동행자가 되어 주어 질풍경초처럼 세워줄 것이니 마지막 날 천상의 식탁에서 나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리라.”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자 눈을 감으십시오. 가슴에 손을 얹고 이제까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 주님께 드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성모님께 드린 것은 또한 무엇이었는지 반성합시다.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정화 받은 영혼들입니다.

사람들은 아까 원수진 사람들처럼 서로 등지고 원수졌으면서도 성체의 신비를 몰라서 한 성당에서 성체를 모시고 있었지만 그러나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나서는 화해하고 살아계신 성체 신비를 깨닫게 되어 다시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는 정말 주님과 성모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오신 작은 영혼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잘못 살았을지라도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면 주님과 성모님을 따르며 불타는 성심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들을 반드시 보호하여 질풍경초처럼 세워 천상낙원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우리 모두 속으로 피 흘리는 아픔까지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온전히 봉헌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죽음과 지옥과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시작하신일 주님께서 끝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부족한 저희들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다가 현세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권세와 특권을 가지고 한몫을 차지하게 해주실 것이니 감사 하나이다.

주님, 성모님, 저희들을 혹시라도 빗나갈 양이면 저희들 붙들어 주시고 손잡아 이끌어 주시는 동행자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저희들 뜻대로 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대로 저희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주관하시고 안배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시나이다. 이 자녀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몰아닥쳐도 항상 주님과 성모님께 달려왔사오니 제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모든 지향과 원을 들어 주시옵고 경제적으로도 지금 많이 어렵사오니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제부터 새롭게 태어나 희생과 보속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하시어 저희들이 연옥에서 받아야 될 그 보속들을 이 세상에서 다 바치고 천국에 오르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그래서 부족한 저희들로부터 주님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께서는 위로받으시고 저희 모두는 매일 매순간 감사가 마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 준다 해도
성심 안에 받으소서 불쌍한 이 죄인이
내 주님 성혈로써 모든 죄악 씻으소서
오오오 주님 오오오 주님 오오오 주님 오오오 주님
불쌍한 이 죄인 성심 안에 받으소서

박해받는 자녀들이 엄마 찾아 왔습니다
서럽고 고달픈 마음 위로받기 원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온전히 받아줘요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박해 받는 저희들 생명나무 차지하리

상처로 찌든 영혼 엄마 찾아 왔사오니
어머니여 성심안에 꼭꼭 안아 주옵소서
어머니 내 어머니 애타게 찾나이다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오오오 엄마
엄마 따른 이 자녀들 당신품에 안으소서. 아멘!

부족한 이 죄인의 기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모두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주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 많이 내려주셨어요.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그대로 됩니다. 성혈도 내려주시고, 자비의 물줄기도 내려주셨고, 성령의 불길로 여러분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저 뒤에 성혈이 내렸어요. 말씀 도중에 7처 앞에 일곱 방울의 성혈이 내렸습니다.)

 경당 십자가의 길 7처 앞, 바닥에 내려주신 성혈

여러분, 그것만 봐도 여러분에게 얼마나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사랑하시는 줄 알겠지요? 받은 은총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은총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의 기도 실천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면 먼저 집에 가서 상처 준 남편을, 상처 준 아내를, 상처 준 시어머니를, 상처 준 며느리를 그리고 자녀와 부모를 우리가 먼저 사랑하고 사랑 실천을 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하면 마귀는 저 멀리 출분해 버릴 것입니다.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를 처단하고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유익한 말씀이 거의 끝나갈 무렵 경당 뒤편 십자가의 길 제 7처 쪽에 선홍색의 성혈이 일곱 방울이나 내려오셨습니다. 주변에 있던 순례자들은 순간적으로 내려오신 성혈에 깜짝 놀라 술렁거렸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의 말씀이 끝나고 치유기도를 하시는 중에 출입문 앞쪽에 또 다시 다섯 방울의 성혈이 내려 순례자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개의 삶과 생활의 기도로 주님과 성모님의 찢긴 성심을 기워드리는 사랑의 재봉사가 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중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한 자매님은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으셨는지 대성통곡을 하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였으며 율리아 자매님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회개의 은총으로 순례자들의 영혼육신을 다 씻어주시고자 성혈을 내려주신 것은 이날 율리아 자매님께서 봉헌하신 고통이 그렇게 피흘리는 고통이었음을 알려주시는 징표였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200명 가까이 모인 피정이 끝난 지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고 전국이 장마권에 들어 비까지 오는 가운데 순례자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오신 것에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남 때 당신의 고통을 잊은 채 더 큰 사랑으로 순례자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며 뽀뽀를 하고 순례자들과 그 가족들이 측량할 길 없는 주님과 성모님의 가없는 사랑과 은총을 받기를 바라며 기도하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하신 주님께서는 만남의 시간 중에도 출입문 근처 순례자들이 앉았던 곳에 2방울의 성혈을 더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이 다 떠난 뒤에 보니 경당 중앙과 진열장에도 성혈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경당 십자가의 길 4처 앞, 바닥에 내려주신 성혈

 경당 십자가의 길 7처 앞, 바닥에 내려주신 성혈

경당 바닥에 내려주신 성혈

잠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내려주신 성혈

수녀님의 양말에 내려주신 성혈

 수녀님의 방석에 내려주신 성혈

순례자의 양말에 내려주신 성혈

 순례자의 옷에 내려주신 황금향유

 순례자의 바지에 내려주신 젖

나주를 통해 온 세상 자녀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의 정성과 사랑에 감동하여 전대미문의 기적과 징표는 물론 단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는 성혈조차 이토록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모두도 율리아 자매님을 닮은 쌍둥이 작은 영혼들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주춤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교활한 사탄의 횡포는 나주에서 주신 성체의 기적까지도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부정하는 성직자들을 통해 열심한 영혼들까지 나를 배척하게끔 오류를 퍼뜨리고 이단으로 변질시켜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양떼들을 지옥의 길로 끌고 가고 있는 위험한 이 때 주춤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어서 외쳐라. 판단하고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은 덕이 될 모든 행동을 마비시키며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믿음을 소멸시킨다고 말했건만 많은 목자들까지도 영적으로 눈멀고 귀멀어 분별하지 못한 채 책인즉명하며 무가치한 세속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요미걸련하니 그들을 따르는 영혼들에게 끼치는 해악은 너무도 심각하기에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이 된 이 엄마의 마음에 깊이 침잠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불타는 내 성심의 사랑을 힘 있게 그리고 용감하게 전하여라.

그러면 특별히 불림 받은 내 딸을 도와 일하는 너희는 마지막 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권세와 특권을 가지고 내 곁에 서게 되어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주님 영광과 알렐루야를 노래하게 될 것이다.” (2007년 7월 7일 예수님 사랑의 메시지)

사랑하는 마리아의 구원 방주 가족 여러분 연이는 나주 기도회 소식과 신부님들의 강론 말씀 그리고 하느님의 작은 영혼 율리아 자매님의 사랑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8월 첫 토요일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