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03_glitter.gif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사랑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모든 가족 여러분께 은총 가득했던 1월 2일 첫 토요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나주 성모님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분들은 이미 2009년 12월 31일 송년기도회와 대망의 2010년 1월 1일 신년 행사에 모두 참석하시고 1월 2일의 첫 토요일 철야 기도회까지 계속 참여하였습니다.

한파가 몰아닥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나주 성모님 동산의 첫 토요일 오후는 영상 7도로 포근하여 햇빛이 잘 비치는 곳은 눈이 녹아 질척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 올라간 순례자들에게는 그 장소가 더욱 차가워 뼛속까지 한기가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2010년 1월 2일 십자가의 길 기도

 

그러나 어떤 장애물과 역경도 주님과 성모님을 향한 사랑과 희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주 순례자들에게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희생을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율리아 자매님의 영성이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흘리신 성혈과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이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 구석구석에 다 내려져있기에 맨발로 그 위를 걸어올라 가는 것은 주님과 성모님을 직접 접촉하는 셈이 되기에 맨발의 기도는 고통이 아니라 큰 영광과 축복이기도 합니다.

철야기도회가 시작되어 성모님을 모시고 입장하신 율리아 자매님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례자들의 기쁨을 앗아가지 않으시려고 고통을 숨기며 천근처럼 무거운 몸으로 순례자로부터 초와 꽃을 받아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 옆에서는 정 신부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새해에는 주님, 성모님 사랑 안에 은총 많이 받으세요.”하는 영적 덕담과 함께 초와 꽃을 받아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신부님의 그 모습에 새해 첫 토요일 기도회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고,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사랑이 더 불타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주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내 아들아! 어서 전하여라. 주님이 실존해 계시는 성체의 신비와 내 불타는 성심의 사랑을 모든 이에게 전하여 내가 택한 작은 영혼을 도와다오.

그를 도와주는 것은 곧바로 나를 도와주는 것임을 명심하고 나를 따를 때 주님과 나의 불타는 성심의 숭고하고도 강한 사랑의 불꽃 도장을 너희에게 찍어 주리니 결국 썩어 없어질 육체의 욕망과 체면과 이목 때문에 천상의 이 어머니를 외면하거나 주춤하지 말아라.” (1997년 6월 12일 성모님)

1997년 6월 12일 성모님께서 주신 이 말씀은 주교님이나 신부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 모든 자녀들에게 주신 성모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인 계산과 생각만으로 자신의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 도와줘야 할 작은 영혼의 절규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그 사랑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것은 작은 영혼 안에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무한히 슬프게 해드림과 동시에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을 꺼 버리는 참혹한 일인 것입니다.

초와 꽃 봉헌 예식이 끝나자 바로 율리아 자매님의 말씀 시간이 되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연말연시에 당신이 받은 극심한 낙태보속고통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고통을 “부적절한 남녀관계와 낙태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봉헌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바리아를 오르실 때 단순히 십자가만 지고 오르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편태를 당하셔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시고, 가시관을 꾹꾹 눌러서 피가 흘러 눈도 떠지지 않으셨어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그 사랑을 묵상하며 봉헌했기에 1월 1일 신음소리가 새나오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며 성모님 동산 갈바리아에 올라 순례자들을 만나고 기도해 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2002년 1월 1일 갈바리아 십자가상의 예수님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에서
방울져 있던 성혈이 율리아 자매님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관통하여
성체로 변화되어 모셔졌음을 묵상하고 찬미하는 순례자들

예수님의 발을 만지며 경배하는 순례자들에게 기도해 주시는 율리아 자매님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실 때 성령의 열기가 성전 안을 가득 채워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선풍기를 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 역시 뜨거운 성령의 열기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자매님께서는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사랑도 중요하고 용서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데 기쁨이 없이 어찌 사랑할 수 있으며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기쁘면 모두가 사랑스럽고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바오로 사도의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아주 쉽게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예언의 실체와 그 허황된 영성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나주 순례자들이 가예언과 가예언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 할 것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2009년 12월 첫 토요일부터 시작된 가예언에 대한 말씀이 2010년 새해 첫 토요일까지 계속되는 것은 암세포와 같은 가예언의 폐해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 줍니다.

왜냐하면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몸으로, 즉 당신의 고통으로 그 사실을 느끼고 아시기 때문이며 자매님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자매님의 몸과 입을 빌려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들은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의 가슴 저린 슬픔과 사랑의 염려를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의 치유기도와 영가 시간에는 회개의 통곡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진주보다 영롱한 그 아름다운 일치와 회개의 눈물은 성모님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 바쳐졌으며 자매님의 말씀이 끝난 뒤 순례자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나며 지극히 평화로웠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은총 증언시간이 되었습니다. 증언하실 분들이 줄을 지어 계셨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다 못하시고 여섯 분만 발표를 하셨습니다.

<은총 증언요약>

1) 미국에서 LA에서 온 헬레나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 집 처음 방문했습니다. 제가 원래 참 많이 아팠는데, 두 달 전부터 하혈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제까지 진짜 말짱하다가 하루아침에 소리 소문 없이 하혈이 갑자기 퍽 쏟아지는 거예요. 남자 분들 계신데 좀 민망하지만, 그래서 나이트용 패드를 한 시간에 하나씩 바꿀 정도로 펑펑 쏟아져 미국에서도 유명한 LA 구싸마니탄이라는 병원 응급실에까지 갔어요.

그리고 어느 수녀님을 통해서 여기 나주 성모님 집을 알게 돼 나주를 왔는데 일주일도 채 안 돼 하혈이 멈췄어요. 율리아 자매님께서 보속을 많이 해 주셔서 하혈을 멈춘 것 같아요. 아니 같아요가 아니고 멈췄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 친정엄마가 간경화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치유를 위해서 28년 전부터 일본 종교 남묘호랑계교를 믿기 시작했어요.

저도 옛날에 열다섯 살 때 영세 받고 스무 살 때 냉담을 해 가지고 거의 근 십년을 대순진리교에 빠졌었어요. 그 두 종교는 너무너무 사악해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LA서 묵주기도를 할 때마다 소름끼치는 우리 엄마 기도소리가 들려 항상 성모님께 빌었어요, 우리 엄마 제발 하느님 아버지 품에 꼭 안겨 주시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하혈이 시작돼서 작년에 수술도 했었지만 낫지도 않고 너무 아팠어요.

오죽하면 제가 남편 붙들고 울면서 나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니까 이혼하자고 그랬었는데, 남편이 나 없으면 못산다고 그래서 남편 봐서라도 건강해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나주에 왔어요. 그런데 비행기 타기 전날 배는 막 쥐어짜고 하혈은 쏟아지고 너무 아파고 괴로워서 막 미치겠어요. 그래서 LA 신모니카 자매님이 주신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그냥 아까워서 한 방울 한 방울 물에 섞어서 먹었더니 통증이 가라앉아 올 수 있었어요.

제가 원래는 12월 8일 날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그 비행기로 오면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 기도회에 참석을 못하겠어서 돈을 더 주고 날짜를 앞당겨 와서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바로 여기 뛰어온 거예요. 저는 며칠 뒤 친정 남동생 결혼식에 참석해 엄마에게 무조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랑 성당 가자고 그랬더니 엄마가 성당 꼭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서 기도 잘 하고 오라는 거예요.

전 이 남묘화랑계교가 얼마나 사악한지 영세를 받고나서 온 몸으로 체험을 했어요. 첫 영세를 받고 옆방에서 우리 할머니가 막 그 기도를 하시면 막 머리가 깨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아, 이 종교는 아주 사람을 괴롭히는 종교구나. 나한테 암만 해봐라 내가 넘어가나.’ 마음먹고는 우리 엄마가 아무리 꼬시고 해도 넘어 간 적이 없는데 대순진리교에 넘어간 거예요.

그 대순진리교가 얼마나 지독하냐면 내 이름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재를 올려요. 그게 얼마나 나쁜지 아마 여러분 상상도 못 할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 빼달라고 했더니 안 빼준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나주 왔더니 빼준다고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는 아까 율리아 자매님께서 치유기도해 주실 때 안 울었어요. 왜 안 울었냐면 기억은 못하지만 제가 생후 8개월 때 연탄불에 얼굴 화상을 입었었고 신생아 때는 배꼽에서 피가 막 철철 흘러나와서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두 번 넘겼어요. 그래서 제 배꼽은 안 이쁜데 저는 시집가기 전까지 정말 가슴의 상처들 때문에 짓눌려서 진짜 죽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넘게 들었었거든요. 왜냐면 그것은 수술도 안 되고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진짜 그것을 가슴에 안고 살았는데, 제가 여기 오면서 확실히 그것들을 어떻게 봉헌을 해야 될지 확실하게 배웠어요. 31일 송년기도회를 밤새하고 어제 1월 1일 날 아침에는 다 힘들었잖아요. 근데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몰랐던 상처들과 그동안 살아오면서 받아왔던 상처들을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해서 봉헌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이 탁 생기면서 갑자기 막 전율이 왔어요.

저는요 사람들한테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제 남편도 안 믿고 엄마도 안 믿고 아무도 안 믿어요. 근데 나주는 모든 것이 다 믿음이 가고 편안해 ‘아 이걸 해야 되겠다. 그래야 내가 새로 부활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어제 1월 1일 날 너무 아팠지만 이를 악 물고 봉헌을 했어요.

또 제가 희망을 하나 가졌던 것이 율리아 자매님께서 미용실을 하신 것처럼 저는 메이크업을 했어요, 왜냐하면 제 얼굴에 대한 상처가 너무 심해서 내가 남의 얼굴을 메이크업을 해 주면 내 상처가 치유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시작을 했거든요. 근데 점점 신앙을 갖게 되면서 내가 화장해 줄 때마다 ‘내가 이렇게 해 주면 이 사람이 더 잘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여기 와 갖고 너무너무 좋은 생활의 기도를 배웠어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 화장을 해 줄 때 진짜 그 봉헌하는 마음과 율리아 자매님께서 그동안 하셨던 생활의 기도들을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조금이나마 회개가 된다면 정말 이거는 너무나 큰 은총을 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은총 많이 받으십시오.

2) 이상수 베드로

이상수 베드로라고 합니다. 제가 신앙을 갖기 전과 갖고 난 뒤의 변화와 봉헌을 한 가지 함으로써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내려가겠습니다. 저는 신앙을 갖기 전에는 성당, 교회를 가장 싫어했던 사람으로 제가 결혼할 여자가 거기에 발만 들여도 엑스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다 싫어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내 고집으로 살다가 마지막 마지노선까지 내려갔을 때 사람의 뜻으로 사는 게 아니다 라고 느끼고 성당을 찾아가 세례까지 받았는데요. 세례를 받고 집사람한테 당신 성당 가겠느냐고 하니까 첫 마디에 오케이 했습니다. 제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구요.

그리고 한 가지 봉헌이라는 것은 술입니다. 제가 얼마만큼 술을 좋아하냐면 잠자는 시간 외에는 술을 먹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늘 술이 취한 상태로 성당 가서 교리를 가르치는 신부님과 수녀님에게 “저 술탄이 왔습니다.”하고는 예비자 교리를 받고 2007년도 8월 15일 세례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구에서 나주를 열심히 다니는 동생 따라 2000년도에 한 번 나주를 왔다 세례를 받고나서 진실을 알고 싶어서 2008년 9월 달부터 다시 왔지만 나주에 오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벗어나질 않았어요. 그러다 한 번은 나주에 와 성모님한테 “술을 봉헌하겠습니다.”하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왜냐면은 술로 인해 제 인생을 망친다고 느껴지게 되었고, 또 통풍 때문이었습니다.

통풍을 앓아 보신 분들은 그 고통이 얼마만큼 하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봉헌약속을 하고 그 뒤에 또 술을 마셨는데 아프지도 않고 더 잘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 참 봉헌 잘 들어주시는구나.’하고 좋아했는데 어느 날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데 고통은 그렇게 없었지만 기간이 자꾸 길어져요. 그러면서 ‘나 하나 죽는 게 문제가 아니고 가족 전체에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오겠다!’라는 예감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성모님 다시는 술 안 마시겠습니다.”라고 두 번째 봉헌을 하고는 진짜 그 뒤부터 술 안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변화됐냐면 가정이 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사람과 19년 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정적 행복이나 물질적인 풍요를 전혀 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술 마시고 화가 나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제가 스스로 풀지 않으면 집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못 풀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점이 없게 됐습니다.

또 저는 술집에 가면 집에 안 들어가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끝을 보는데 이제는 술집 근방은 가지도 않고, 술을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저희 가정에도 행복이 찾아와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가 세례 받고, 성모님 집 다니면서 짧은 기간에 변화되니까 집사람도, 어머니 도, 큰 아들까지 세례 받고 둘째가 지금 교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에 완전하진 않지만 지금은 고통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오늘 제 아들 둘과 전 가족이 다 같이 왔는데 오제 아들 둘한테 진실로 하느님 앞에 다가가는 자녀가 되어 주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산 지부 지부장님 부지부장님 감사합니다. 저를 여기에 데리고 오기 위해서 얼마만큼 노력한지 제가 알거든요.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3) 인천서 올라온 박 로렌시아라고 합니다. 마이크 앞에 선 거는 난생처음이니 말을 잘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증언하고 싶은 것은 우리 남편에 대한 일입니다. 우리 남편은 건강한 체격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떼굴떼굴 구르면서 아파 죽는다는 거예요. 저는 다급해서 119를 불러 성모병원으로 가게 됐는데 병원 가는 도중에 119 대원이 우리 아저씨를 죽는 사람으로 처리해 버리고 의사들도 죽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아들딸들 다 불러들이는 거예요.

그런데 의사들이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의 치아, 신발, 속옷까지 완전히 다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무슨 일 있으면 연락줄 테니 나보고 자꾸 집으로 가라고 어거지로 쫓아냈습니다. 전 할 수 없이 나는 집에 와 나주 성모님께 “저는 우리 아저씨 아니면 세상에 의지 할 데가 없어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아저씨 꼭 살려 주세요.”하고 울면서 밤새도록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병원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주고 그 이튿날에는 퇴원을 시켜주면서 의사가 “참 운이 좋습니다.”하는 말을 세 번을 해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심근경색에서 살아나는 사람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남편을 나주로 모시고 왔는데 두어 번 오시고 나서는 안 오신다고 막 완강히 버텨서 억지로 모시고 왔는데 2번 째 다시 오시고 성혈까지 받았습니다.

의사는 12월 7일 재검사를 해서 혈관이 살아나지 않으면 수술해야 된다고 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정밀검사를 해 보더니 혈관이 살아났대요. 예수님과 성모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 우리 아저씨가 여기 와서 직접 증언을 하셔야 하는데 제가 대신 나와서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을 예수님과 성모님께 돌리겠습니다.

율리아 자매님 : 저도 심근경색을 앓아 봐서 너무 좋아서 나왔어요. 심근경색은 쓰러지면 죽어요. 제가 심근경색으로 혈관이 다 막히고 머리카락만큼 가늘게 남았다고 그랬어요. 근데 6월 첫 토요일 철야기도회 때 그 많은 사람들 다 만남 하고, 기도해주고 나서 월요일에야 병원을 갔습니다. 병원을 갔는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응급실 간호사가 먼저 심장이 아니라 폐암일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거기 원장이 제 얘기를 자세히 듣고는 깜짝 놀라 당장에 심전도검사를 했는데 심전도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거예요. 근데 심전도에 아무 이상이 없어도 큰일 날 수가 있다고 앰뷸런스 불러줄 테니까 산소호스 꼽고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심장은 1분 1초 시간을 다툰다고 그래요.

그랬는데 저는 세상에 밤늦게 천천히 대구까지 갔어요. 딴 때는 만날 제가 산소통을 달고 살았거든요.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는 고통 안 받는 것처럼 웃고 다 해 드리지만 제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그랬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의사 가운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참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다. 어떻게 이 먼 곳을 차를 타고 왔냐.”고 그러셨잖아요.

이 심근경색은 쓰러지면 죽는데 저는 예수님께서 해주셨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매님 남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살아나신 것은 자매님께서 열심히 나주 성모님께 다니면서 기도하시고 공로를 쌓으셨기 때문에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조수불급할지라도 질풍경초처럼 세워 주리라.”고 하신 메시지 말씀처럼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입니다.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4) 인천 이 스테파니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새해 주님 성모님 축복과 은총 사랑 풍성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까 박 로렌시아 자매님은 사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전해 오신 분인데 중요한 것을 빠트리셔서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작년에 율리아 자매님께서 심근경색과 심장병 보속고통을 굉장히 많이 받으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님 보속고통을 통해 남편을 살려주셨으니 남편도 인제 오셔야 된다고 그래서 오셨어요. 근데 그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막 심장병 보속고통 받으셨는데 남편께서 머리가 욱신거린다고 그래서 제가 치유 받을 거라고 그랬는데 정말 나중에 머리가 괜찮아지셨거든요. 바로 그때 치유를 받으셨더라구요.

사실 저희 친정엄마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 도중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요번에 정밀검사를 했는데 깨끗해지셨다고 해서 주님과 성모님께서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증언하시라고 했어요. 남편분이 처음에 나주를 반대할 때도 기적수는 좋아하셔서 저 자매님께서 저 몸으로 기적수를 두통을 가지고 날라 남편은 지금도 그 물만 드신대요.

그래서 급성심근경색에서 살아난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보속고통과 주님과 성모님 사랑으로 저렇게 깨끗하게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신 이 안나 자매님은 너무 떨려서 못 나오시겠다고 해서 제가 모시고 나왔습니다. 이제 말씀 해보세요.

이 안나 자매님 : 예수님 찬미 영광, 성모님 찬미!

저는 마귀가 들려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나왔는데 제가 사는 동네 누가 나주에 갔다 오면 나을 거라고 그랬지만 ‘성당에만 잘 나가면 되지’ 하고 의심을 했어요. 근데 마귀가 머릿속에서 맨날 역사를 하는 거예요. 여기 와서도 그랬는데 어저께 묵주기도를 할 때 컴컴한 곳을 성모님께서 환히 비추어보여주셨어요.

그래가지고 머릿속에 마귀가 싹 달아나 지금 머리가 깨끗하고 약도 안 먹어도 돼요. 나 여기 와서 치유 받았어요. 그리고 몸에서 열이 나고 막 뜨거워 땀이 줄줄 나고 그래요. 여기 와서 은총을 너무 많이 받아 너무 너무 감사한데 말주변이 없어서 말을 못해요. 마귀가 떠나갔어요. 머릿속에 있는 마귀가요. 약을 맨날 먹었는데 약도 안 먹어도 되고 어저께 잠도 잘 잤어요. 너무 감사해요. 나주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저, 신문에 날 정도예요.

이 스테파니아 자매님 : 사실은 이분이 어떤 정도였냐면 정신병원에 갑자기 들어가셨다가 퇴원을 하셨지만 치유가 된 것이 아니라 방법이 없어 그냥 나온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나주 오셨는데 성령이 불같이 내려오시는 모습을 몇 번을 계속 보셨대요. 여기 성전 안에서도 그렇고, 또 묵주기도 바치러 갈 때도 그랬는데 그 때 성모님께서 요렇게 내려다보시더래요. 그러면서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워져 땀을 비오듯 흘려 옷이 다 흠뻑 젖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너무 기쁘고 평화롭대요. 그래서 증언하러 나가셔야 되는데 너무 떨려서 못 나간대서 저와 같이 나온 거예요.

5) 마산지부 이 로사입니다.

전 작년 3월초에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파문을 당해 미사참례를 할 수가 없어 고민이었지만 가장 큰 걱정은 철야기도를 버틸 수 있는 건강이었습니다. 그래서 굳어진 간을 완치시켜주시길 청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음 기도봉헌란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어떤 확신이 와 4월에는 나주를 연속 3번 가면서 갈 때마다 “간암이 치유됩니다”라는 율리아님의 말씀에 무조건 큰소리로 아멘! 아멘 ! 아멘 !했습니다. 하지만 체력의 한계가 오기 시작해 어느 날부터 힘이 없고 비실비실거려 나주에는 가야겠기에 할 수 없이 한의원에 권하는 녹용이 들어간 비싼 한약을 데려왔습니다.

데려온 한약을 먹으려고 첫 봉지를 따다가 연초 남편의 실직과 어려운 내 처지가 떠올라 갑자기 왈칵 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저축 한 푼 못하고 지금까지 가난한 이유는 오직 너무나 많은 돈을 간 하나 지키려고 다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이 한약을 당신의 성혈로 변화시키시어 제가 두 번 다시는 이런 비싼 약 먹지 않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치유하여 주십시오.”하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면서 한약을 컵에 붓는데 풍덩하고 웬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저는 의아했지만 “예수님의 성혈로~~~”하면서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다가 ‘예수님의 성혈 덩어리가 떨어진 것이로구나’하고 느끼고 “예수님 만세! 나는 이제 살았다. 나는 완전히 완치다”하고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약을 모두 예수님 성혈이라고 믿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서 먹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오른쪽 옆구리 간 쪽에서 툭툭 무엇인가 펴지는 기분 좋은 느낌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완치로 믿고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지 않았는데 6월 2박 3일간의 피정 소식을 듣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 피정을 포기했는데 그때부터 점점 기운이 없어지더니 급기야 간이 나빠지면 나타나는 증상이 왔습니다. 피로가 오면서 옆구리의 묵직한 통증이 저를 괴롭혀 장부와 함께 저를 오래도록 치료한 병원 의사에게 가서 오만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모두 정상이었고 작년 수술할 때 간이 울퉁불퉁 많이 굳어진 것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주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자 꽉 막힌 장부가 “당신이 맨날 울면서 기도하고, 나주 열심히 다니더니 성모님이 낫아 줬어.”해서 저는 즉시 아멘하고 “식이 아빠! 나 나주 피정 갈 테니 말리지 말어! 성모님께서 피정오라고 치유해주시고 확인 시켜준 거야.”하고 장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간이 95% 완치 판정을 받고 간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증상들도 치유가 되며 덩달아 뭉친 근육도 풀렸습니다. 이외에도 나주 갈 때마다 특별한 은총이 내립니다. 어려운 형편에 검사를 하느라 돈은 좀 썼지만 이제는 불필요한 지출도 다 막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살아가는 기분입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6) 안녕하세요? 대전교구 류 엘리사벳입니다.

저는 지난 12월 첫 토요일에 이어 오늘 또 가예언에 대한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근데 제가 11월 중순 정도 꿈을 꾸었습니다. 자갈이 아주 많은 어떤 산이었는데 율리아 자매님도 계셨고, 얼굴은 모르지만 그 가예언자라는 사람도 있었고 여러분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가예언자가 자꾸 자기주장만을 해도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계속 듣고 계시다 그 자매의 손을 잡고 기도하자며 자갈 산 위에 나가셔서 기도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제가 그 꿈을 꾸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리아 자매님 꿈은 제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꾸면 자매님께서 도와주시는 그 꿈들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가예언자 꿈은 도대체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래서 지부장님께 그 다음날 전화 드렸더니 율리아 자매님께서 가예언 때문에 고통을 받으신 다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근데 저는 넷째를 마흔 셋에 임신을 했는데 개업을 한 지 한 2주 만이었습니다. 입덧을 심하게 하니까 원장실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고 장부도 저랑 같이 일을 해야 되니깐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소파에 누워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며 너무 고달프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날 밤에 율리아 자매님 꿈을 꾸었습니다.

삼각형의 산이었는데 가운데가 비포장도로로 한 2차선 정도 되게 뚫려 있었고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가 거기로 가야된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그 길은 차가 전복이 될 거 같았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못 갈 거 같다고 우리 가족이 다 차를 타고 거기를 갔습니다. 근데 올라가서 보니까 ‘아 여기가 옛날에 내가 살았던 곳인데 아주 많이 발전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저희가 우여곡절 끝에 학원을 옮기게 됐는데 옛날 살던 동네로 옮기게 됐어요. 나중에 옮기고 나서 아 그랬구나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것 다 정리되고 너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2007년 4월 3일 날 태어났는데 3월 24일 날 꿈에 또 율리아 자매님이 나타나셔서 저한테 “고생이 많았지? 네가 가진 아이를 남들은 다 아들이라 그러지만 그 아이는 너를 닮았단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면서 “너희 가정에 악을 쫓는 아이가 될 것이다.” 하시고 안아 주시고 제가 꿈을 깼는데 정말 그 애는 계집아이였고, 마흔 넷의 노산임에도 자연분만을 했어요.

또 한 번은 꿈에 율리아 자매님이 나타나셔서 저한테 무슨 합격증을 주셨어요. 어디 직장합격증 같았어요. 그래서 그 직장에 배치를 받으려고 운동장 같은 곳에 가서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주 쉬운 곳으로 줬어요. 꿈을 깨고 ‘아, 이거 직장을 주시려나’하고 다른 직장을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 보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저희에게 120만원씩 장학금을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 장학금을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저한테 율리아님의 꿈은 그냥 꿈이 아니고 항상 성모님으로 생각됐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그런 꿈을 꾸고 제가 너무 가슴이 아파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정말 가예언자가 율리아 자매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주를 쓰러뜨리려고 해서 저도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성모님께서 미리 그것을 보여주신 이유는 제가 혹시 분심 들까봐 보여주시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분심 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라며 제 꿈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마리아의 구원방주 호를 타고 함께 가기 때문에 서로서로 기도해 주고 잘 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외부하고의 싸움도 어려운데 가예언에 빠져 우리 배 안에서의 싸움은 너무 가슴 아프지 않습니까. 그죠? 그리고 다른 데에다가 에너지를 쏟을 시간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단점이 있는 거니까 서로서로 단점이 있으면 기도해주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총 증언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묵주기도를 봉헌하였습니다.

 촛불 묵주기도

고통으로 인하여 늦게 출발하신 율리아 자매님은 순례자들이 추운 데서 기다리고 있다며 당신의 몸 상태는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성혈조배실을 향하여 뛰다시피 올라가셨습니다.

자매님을 양쪽에서 부축해 주던 봉사자들은 너무 안타까워 “고통 중에 그렇게 무리를 하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부축 받아 천천히 가도 1~2분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고 간청했지만 나주 순례자들을 위하여 늘 최선을 다하시는 자매님의 영성은 1분이 아니라 1분 1초라도 아끼고 아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주려고 노력하십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이러한 사랑의 결과는 묵주기도가 시작하자마자 나타났습니다. 선두에서 걸어가시며 양팔을 들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자매님은 묵주기도 1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쓰러지셨습니다. 순례자들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고, 자매님은 양쪽에서 부축을 받아 간신히 걸어오시다 급기야 엎드려서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시며 성혈조배실로 들어가셨습니다.

 단말마의 고통으로  완전 탈진상태였으나 성모 성심의 승리와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화를 위해 기어이 묵주기도에 참여 하시었는데
무릎으로 기어 갈 힘 조차 없어서 들려서 끌다시피 기어가시며 기도를 바치시는 모습.

 

 

고귀하온 주님의 성혈이 모셔져있고 인자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항상 느낄 수 있는 성혈조배실에서 주님,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당신들 현존의 표시로 율리아 자매님이 앉아계시던 바로 앞에 반들반들한 짙은 향기의 향유를 듬뿍 내려주셨습니다. 그 향기는 생전처음 맡아보는 향기였는데 그 어느 향기보다 우리의 영혼 육신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극심한 고통중에
성혈조배실에서 기도 하실 때 앉은 자리 바로 앞에 내려주신 향유

시간이 빡빡하여 바로 거룩한 미사가 이어졌습니다.

모든 기도회 일정이 끝나고 율리아 자매님과 만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회장님은 1월 1일 갈바리아 동산에서 율리아 자매님을 모시고 내려갈 때의 상황을 얘기해줬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 계신 율리아 자매님께서 발에 마비가 오고 큰 통증으로 걸지 못하는 자신을 오히려 부축해 내려오셨다면서 자매님의 그 큰 사랑에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의 상태가 안 좋으니 만남 할 때 자매님을 막 끌어안거나 아픈 곳을 세세하게 다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자제 해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만남 중에 나누어 주신 개별증언을 요약하여 드립니다.

<개별증언 요약>

전주 지부의 최 실비아 자매님은 이날 율리아 자매님 말씀시간에 영성 퀴즈를 맞히고 상으로 받은 자매님의 손수건을 한복 저고리 가슴부분에 끼웠는데 늘 가래가 끼던 목에서 뭔가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 들더니 더 이상 가래가 안 끓고 목이 시원해졌다고 합니다.

마산에서 온 송 루치아 자매는 사춘기 학생인데 지난 11월 초에 시작된 하혈이 멈추지 않아 몸도 약해졌는데 12월 첫 토 때 율리아 자매님이 하혈고통을 받고 계시니 부인과 쪽으로 병이 있으신 분 치유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 “아멘”하여 그때 하혈이 멈추고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전주 지부 김 아녜스 자매님은 연차 총회 때 상으로 받은 율리아 자매님의 율신액 사진을 코에 대었더니 코를 풀면 혈관이 터지고 짙은 가래가 목으로 넘어가던 몇 년 된 비염이 완전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문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치루 2개에 율신액 사진을 대자 피가 고여 병원에 가서 고여 있던 그 피를 주사기로 9대 반을 쉽게 뽑아내고 치질도 완전히 치유되었답니다.

의정부 정 베노베파 형제님은 11월 첫 토요일 직전 트럭에서 떨어져 발목이 심하게 붓고 아파서 기브스를 했는데 11월 첫 토요일에 참례하여 율리아 자매님과 만남을 하고 내려오면서 붓기가 가라앉고 완전히 나아 즉시 깁스를 풀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홈 가족 여러분!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1월 한 달 잘 보내시고 2월 첫 토에 뵙겠습니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지금 이 시기는 온 인류에게 아주 중대하다. 그 많은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 너희의 하느님은 너희들의 행실을 보시고 벌써 심판하시려고 하시지만 계속 충실한 작은 영혼들의 희생과 보속을 통하여 아직은 용서하고 계시니 서둘러 회개하여라.

진정으로 회개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로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죄악의 정도가 극도에 달했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습과 타락에 빠진 세상, 질서가 흐트러지므로 혼란은 한층 증대되어 신비의 세계는 깨어져가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하느님의 진노를 더욱 사고 있구나.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더욱 작은 자 되어 겸손하게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나를 따르라. 내가 주는 사랑의 메시지에 응답하며 온전히 나를 따를 때 초토 위에서라도 새싹이 돋아날 것이며, 또 그 폐허 위에 내 사랑은 불타오를 것이고 하느님의 진노의 잔 대신에 축복의 잔이 내려지리라.”(1991년 3월 10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