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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사랑했기에 헤어져 있어야만 했던 수많은 날들  (1982년 9월 18일)

 

나는 젊은 새댁들로 구성된 팀을 맡게 되었는데, 그 중 화장을 화사하게 한 B자매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마음이 어두워 보였으며 육신의 병도 심한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그 자매를 따로 불러서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하는 순간 나는 기침을 심하게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기침이 얼마나 심하게 나왔던지 숨쉬기도 힘들었는데 그 자매는 어느 샌가 내 품에 안겨 울고 있었고 나는 내가 받는 고통을 통해서 그 자매가 폐병을 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도가 끝나자 그 자매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봉사자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왔으니 오로지 주님 이외에는 말씀드릴 사람도, 말씀드릴 이유도 없지요.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하세요" 했더니 그 자매는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 온 삶에 관하여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어렵게 했는데 결혼 직후에야 본인이 폐결핵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다.

안 그래도 반대하던 결혼이었기에 혹시라도 이 사실이 시댁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이혼을 시킬까봐 두려웠던 두 사람은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폐병을 낫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뒤 신혼 초에 닥친 뜻밖의 불행 앞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었다.

1년만 헤어져서 부지런히 약을 먹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병원 측의 말을 그대로 믿고 집에다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돈을 벌기 위하여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결혼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신혼부부가 생이별을 한단 말이냐" 하며 극구 말렸으나 남편은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외국으로 떠났다.

남편과 헤어져 있는 1년 동안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장부가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병마를 떨쳐 내기 위하여 부지런히, 그리고 끈질기게 약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한다.

그렇게 장부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며 기약했던

일년이 지난 뒤 장부는 돌아 왔지만 정작 폐병은 낫질 않아 남편은 또 일년을 기약하며 눈물로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또 다시 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폐병이 낫지 않아 남편은 다시 외국으로 떠났는데 아직도 폐결핵이라는 지독한 병마가 떠나지 않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죽고만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절박한 사정을 "어느 신부님이나 수녀님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속으로만 '끙끙' 대다보니 영혼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더 이상 남편을 희생시키며 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봉사자님을 만났으니 이번에는 꼭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꼭 치유되리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병든 영혼과 상처난 마음의 치유를 통하여

그 동안 용서하지 못해 남아있던 미움의 싹을 잘라내 버리니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