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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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주님 사랑 안에서의 충고는 참사랑인 것을…  (1982년 9월 17일)

 

성령쇄신 세미나를 3박 4일 일정으로 해남에서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지도신부님이신 남 신부님과 이 바오로 회장님을 포함한 7명의 봉사자가 참석하게 되었다.

첫 강의를 신부님이 하시게 되었는데 봉사자들이

"신부님 강론은 참 좋은데 소리가 너무 적어서 뒤에서는 들을 수가 없어" 하며 수군거리기에 내가 "신부님께 말씀드립시다"

했더니 모두들 정색을 하며 "어디 감히 신부님께 그런 말씀을 드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나 이웃의 실수나 잘못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랑으로 말해 주는 것이 바로 주님 안에 한 형제요, 참 사랑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뒤에서는 불평을 하면서도 정작 신부님 앞에서는 강론이 너무 좋았노라고 칭찬만 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주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성령세미나에 어렵게 참석한 사람들인데 알아듣지 못하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죠?" 하며 속으로 나의 생각을 주님께 여쭈었다. 바로 그때

"사랑하는 내 작은 아기야!
지금 너의 그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기도 하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사랑으로 말해주렴"

하고 말씀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나는 안심하고 신부님께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제 1강론은 바오로 회장님이 하셨는데 신부님과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로 하셨기에 모두들 잘 알아들었고 박수도 우렁찼다.

오전 강론이 끝나고 모두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주최측에서 마련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진수성찬으로 마련된 음식들이 가득했다.

봉사한지 3년이나 되었지만 이렇게 값비싼 음식을 차린 곳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주최측 회장님은 "죄송합니다. 차린 음식이 너무 없어서요" 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회장님! 음식을 너무 많이 차리셨어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섬김 받으러 오시지 않으셨음과 같이 우리도 대접받으러 온 것이 아닌데… 우리가 봉사하면서 이렇게 대접 받아버린다면 주님께 무슨 공로를 드릴 수가 있겠어요" 하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옆의 봉사자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 내가 잘못했나?' 기존 봉사자들과 신부님도 계신 자리에서 '너무나 외람된 말들을 겸손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하고 반성하면서
"주님 어떻게 해요. 제가 잘못했지요?" 했더니

 

"아니다. 네가 지니고 있는 생각이나 말들이 모두 맞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단다. 그러나 그들이 체면과 이목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네가 두려움 없이 하니까 자존심이 상한 그들은 너의 너그러운 사랑까지도 비웃으며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가야! 너는 아무것도 주저하지 말고 똑바로 나를 따라오너라"

 

"예 주님!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똑바로 따라가겠나이다."

「신부님 강론은 좋은데 말소리가 적어서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먼저 주님께 기도 드리고 나서

"신부님!" "예?" "신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신부님 강론이 너무 좋은데요." "그런데?" "조금만 더 목소리를 높여 주신다면 더욱 좋겠어요." "내 목소리가 적었구나"

"신부님! 강론 말씀이 너무 좋은데 소리가 적으니 뒤에서는 귀를 쫑긋하고 들어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 좋은 말씀을 모두가 다 들어야 되는데 너무 아까워서요. 신부님 제가 잘못 말씀드려 맘 상했다면 용서해 주세요" "아니야, 율리아! 너무 고마워. 이따 강론 때 맨 뒷자리에 앉아서 내 목소리가 적으면 손을 들고 일어나 줘."

나는 주님께 감사 드렸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매순간 필요하실 때마다 부족한 이 죄녀를 잠시 잠깐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윽고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신부님께서는 오전 강론과는 달리 맨 뒤에 앉아서 듣는 내 귀에도 아주 잘 들릴 정도로 강론하셨기에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좋다는 표시를 해 드리니 웃으시며 좋은 강론을 끝마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