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의 진실

공지문의 문제점들

가톨릭 신앙의 보물들

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나주 공지문에 대한 의견  —  1998년 3월 7일

"나주 문제를 생각해 본다',를 비판하며"를 읽고서  —  1998년 3월 28일

한국 주교회의 의장 정진석 니꼴라오 주교님 귀하  —  1998년 5월 11일

진리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  —  1998년 8월 16일

나주의 성체기적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  1998년 11월

성체성사에 대한 소고 (小考)  —  1999년 9월 8일
 

† 나주의 성체 기적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서 수많은 초자연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추정되는 사건들만 교회의 정식 검사의 대상이 되었다.  더러는 인정되었으며, 더러는 부정되었다.  교회에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릴 때에는 대개 "검사해보았으나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한국 나주의 경우는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광주 대교구의 조사 위원회에서는 나주에서의 사건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제대로 조사다운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결론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주 관련 공지문이 발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의 어느 몬씨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데, 번거롭게 조사하느라고 수고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어떤 사안이 참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날 경우에는 그 일이 교회 안에 발붙일 곳은 없다. 왜냐 하면, 교회가 수행해야 할 至上 과제는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진리의 가르치심을 오류없이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당국에서 어떤 메시지나, 발현이나, 기적이나, 신학적 이론이나, 주장이나, 예절 또는 신심 행사가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대개 그 사안들의 교회 안에서의 생명은 끝장났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현재 한국 교회 내에서의 나주에 관한 분위기는 심각하다.  대다수의 한국 신자들은 나주를 방문해도 안되고, 선전해도 안되며, 연구하거나, 토론을 해도 안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나주에 가는 신자들은 돌아와서 고해 성사를 보라고 말하는 신부님들도 계신다.  나주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는 것은 신앙과 순명에 위배되는 죄라고 주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할 질문은 한 지역 교회의 교도권이 전체 교회와의 일치가 결여되고 또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부합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행사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광주 대교구에서는 왜 나주와 관련된 성체 기적들을 친히 목격하신 교황 성하와 다섯 분의 주교님*들의 의견을 들어봄도 없이, 그리고 나주에서의 수많은 징표들을 경험한 신부님들과 평신도들 대다수를 인터뷰함도 없이 서둘러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던가?  그리고, 한 지역 교회의 교도권이 전체 교회와는 별도로 그 지역 교회만을 위한 독자적인 진리의 선언과 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인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백성이 빗나가거나 믿음이 쇠약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올바른 신앙을 오류없이 고백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890)

주교들의 권한은 교황의 지도 아래 전체 교회의 친교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895)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 (#86)

(註:  나주에서 또는 나주와 관련하여 성체 기적을 목격하신 주교님들은 전 교황 대사 죠반니 불라이티스 대주교님, 캐나다의 로만 대닐랙 주교님, 제주 교구의 김 창렬 주교님, 말레이지아 시부 교구의 수 도미니끄 주교님, 그리고 교황청에서 오신 데르꼴레 주교님 이렇게 다섯 분이시다.  그리고 1991년 1월에 나주에 오셨던 원주 교구의 지 학순 주교님께서는 성모님의 피눈물과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하시고 "나는 확실히 보았고 굳이 믿습니다,"라는 증언을 쓰셨다.)
 

교회의 정통 교리와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 상의 설명과의 상이점(相異点)

(1) 광주 대교구의 나주 관련 공지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윤 율리아 씨가 입에 모신 성체가 입 안에서 살덩어리와 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도,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실체 변화"한 후에도 그 형상은 여전히 빵과 포도주여야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하에 이루어지는 성체 성사에 대한 믿음에 도움이 되는 표시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적인 혼란을 야기시키는 표징들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공지문 1.2. (3))

즉, 사제가 축성한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외양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교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율리아 씨의 입 속에서 성체의 외양이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이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가르침인가?  사제의 성체 축성이 끝난 이후에도 성체의 외양, 즉 빵과 포도주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한다고 교회에서 가르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이 성체를 모신 후 성체가 우리 몸 속에서 변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가?  또 성체를 감실 안에 매우 오랜 세월 동안 모셔둔다면, 서서히 외양이 변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 또한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교회 역사 상에 일어났던 수많은 성체 기적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 중 다수가 이미 교회의 인정을 받았고,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성지를 방문하신 교황님들도 계신다.  (예를 들면, 1976년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1263년에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이태리의 볼세나를 방문하시고 성체에서 성혈이 흘렀던 제대에서 미사를 거행하셨다 (성체 기적들, 죠앤 캐롤 크구즈 저, 미국 Tan Books 출판사)

성체 축성에 관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 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남아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빵과 포도주의 외형만 그대로 남아있고, 빵의 실체가 완전히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의 실체가 완전히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절하게 "실체 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 공의회, DS 1652)

이 교리에서 "빵과 포도주의 외형만 그대로 남아있고"라는 부분의 뜻은 사제가 성체 축성을 할 때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의 실체로 변하게 하는 효과만 있고, 빵과 포도주의 외형을 변하게 하는 효과는 없다라는 것이다.  외형 변화가 없는 것은 이 엄청나게 고귀한 성사를 우리가 모시기 전에 신앙과 사랑의 마음 자세를 재확인할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과 사랑이 결핍되어 의심하고 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성사를 받지 말고 먼저 자기 성찰과 통회를 해야 할 것이며 필요하면 고해 성사까지 받음으로써 성체를 받아모실 바른 자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체 축성이 끝난 후에 하느님의 특별하신 개입으로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변화된다면, 이는 교회의 가르치심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8세기에 이태리의 란치아노에서는 성체 도리를 의심하면서 미사를 드리던 사제가 성체 축성문을 외우자 말자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살과 피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 기적이 교회의 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기적을 인정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듯이 이러한 기적들은 기만이 아니라 성체 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참으로 계신다고 하는 진리를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신학 대전, Part III, Question 76, Article 8).

광주 대교구의 나주 관련 공지문 상의 문제점은 (i) 성체 성사 관련 교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의미, 즉 사제에 의한 축성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외형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어야 된다고 하는 새로운 뜻을 첨가시킴으로써, 마치 성체 축성이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변화시키고 그 외형은 변하지 못하게 계속 붙들고 있는, 말하자면, 두 가지의 효력이 있는 듯한 주장을 한 것이며, (ii) 성체 축성의 효과가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교리를 성체 축성 이후에 성체의 외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에까지 연장 적용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성체 축성 이후에 성체의 외형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교리를 선언한 일이 없다. 따라서 교회는 성체 축성 후에 성체의 외양이 변하는 기적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가르침을 편 일이 없다.

(2) 광주의 공지문에는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윤 율리아 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성체의 기적이라고 함부로 주장하고 있는 현상들도 유효하게 서품 받은 사제의 축성에 의해서만 성체가 이루어질 수 있고 ...라는 교회의 성체에 대한 믿을 교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공지문 1.2.(1))

제 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는 일반적인 사제직을 주장하는 왈덴시안 이단에 대항해서 유효하게 서품받은 사제만이 성체 축성을 할 수 있다라고 선포하였다 (DS 802).  역시 평신도의 사제직을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에 대항하여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교회 안에는 특정한 사제직이 설정되어 있음과 사제들만이 성체 축성권이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DS 1764).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들의 참 뜻은 유효하게 사제직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성체 축성을 할 수도 없고 또 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하느님께서도 개입하실 수 없다라는 뜻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성체가 무엇인가?  성체는 어떤 특수한 물건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신성과 인성을 완전히 가지시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주님이시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체는 동일하시다.  단지 지상에서의 성체에는 주님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엄위로움과 권능이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체는 예수님의 현존을 담고 있는 물체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신 것이다.  최후의 만찬 때, 주님께서는 "이 빵 안에는 나의 몸이 들어있다,"라든가, "이 포도주는 나의 피를 담고 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는 나의 몸이다," "이는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나의 피이다,"라고 하셨다 (마테오 26:26, 28).  성체가 사제의 축성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체가 주님 당신이시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며, 주님의 실재하심과 전능하심을 사제직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제직이 주님과 주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는 직분이며, 사제직의 모든 거룩한 권능이 주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임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51).   

나주에서 성체가 내려오신 기적들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i) 미사로부터, 또는 감실로부터 천사가 성체를 모셔왔다.  1994년 11월 24일, 당시 교황 대사님께서 나주를 방문하셨을 때, 기도 중에 갑자기 율리아 씨의 손가락들 사이에 큰 성체가 반쪽 씩 두 손에 쥐어졌는데, 잠시 후 성모님께서는 메시지를 통하여 성 미카엘 대천사로 하여금 미사로부터 성체를 모셔오게 하셨다고 확인해주셨다.

(ii) 주님께서 직접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하셨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至高하시고 영원하신 사제이시며, 성체 성사를 설립하신 분이시니 이러한 일을 하시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실 것이다.  

(iii) 천국에 계신 주님께서 직접 성체의 외양을 취하여 오셨다.  이 경우에는 실체의 변화가 있은 것이 아니고 외양의 변화만 있는 것이므로, 사제의 축성이 필요치 않다. 예를 들어, 1995년 7월 1일, 율리아 씨는 십자고상의 주님께서 살아계신 모습으로 변하심을 보았고, 곧 일곱 상처에서 성혈이 흐름도 보았다. 그리고 그 성혈이 일곱 개의 성체로 변하여 밑으로 내려왔다. 이 때 성체가 내려오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많았고, 일곱 개의 성체가 성모님 상 앞에 세차게 내려와 닿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도 많았다.  다음 날 대주교님의 명에 의해서 일곱 개의 성체가 영해졌는데, 맨 마지막 성체를 영한 율리아 씨의 입속에서 성체의 외양이 살과 피의 외양으로 변하였다. 말레지아에서 오신 수 프란시스 신부님께서 손가락으로 성혈을 찍어내어 흰 수건에 닦았다. 이 수건은 지금 과천의 파 신부님 계시는 곳의 소성당에 모셔져 있으며, 그 수건에 묻은 피의 일부가 서울 대학교 법의학과 실험실에서 DNA 검사를 받았는데 사람의 피임이 판명되었다.  

나주에서 내려오신 성체들이 축성되지 않은 보통 면병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정당한 근거 위에 서있지 않으며, 오로지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섭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추측과 의심 위에 서있을 뿐이다.  성체가 보통 면병으로 간주된다면 독성(瀆聖)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나주에 내려오신 성체들이 성체가 아니라 보통 면병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나주에서 면병이 내려오도록 인간들이 조작했음을 밝혀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작이 있었다는 하등의 근거가 없으며, 마침 1997년 8월 27일에는 성체가 내려오시는 모습이 비디오에 명확하게 찍혔으며, 또 그 내려오는 모습을 확실히 목격한 증인들도 많으므로, 하등의 인간적인 개입이 없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위원들 중에는 그 광경이 비디오에 찍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그것이 조작의 증거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신부님들도 계시지만 (녹지 않는 소금, 리 제민 신부 저), 나주의 경당에는 천정 양쪽에 두 개의 비디오 카메라가 항상 장치되어 있어서 기도회 시간에 경당 밖에 있는 이들도 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귀중한 손님이 오시면, 기적이 있든 없든 그 방문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것이 常例이다.  그러므로, 조작된 기적을 찍기 위하여 일부러 비디오 카메라를 준비해두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억측이며 중상(中傷)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직접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하는 사실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 상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 우리는 그분을 환영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 역사 상 기적적으로 성체를 영하게 된 예는 매우 많이 있었다.  그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성체 기적들, 죠앤 캐롤 크구즈 저).

(i)  서기 4 세기 안씨라의 주교였던 성 클레멘스는 감옥에서 순교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주님께로부터 직접 성체를 받아 영했다.
(ii)  13세기의 성 보나벤뚜라는 천사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셨다.
(iii) 14세기의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주님께로부터, 때로는 천사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셨다.
(iv) 16세기의 성 파스칼은 젊은 시절에 일 때문에 성당에 갈 수 없었을 때 여러 번 천사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셨다.
(v)  16-17세기의 빠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주님께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셨다.
(vi) 1917년 폴튜갈의 파띠마에서는 천사가 성체와 성작을 세 아이들에게 모시고 왔다.
(vii) 오상을 받았으며, 1962년에 선종한 테레사 노이만 수녀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기적적으로 혀 위에 나타난 성체를 모셨다.

위의 기적들은 1994년 11월 24일과 1996년 7월 1일에 율리아 씨가 기적적으로 입에 성체를 받았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 외에 나주에서 성체가 성모님 상 앞의 제대에 또는 마루 위에 내려오신 경우들은 역사 상 전례가 없는 매우 독특하고 특별히 중요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성체가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의 성체가 이미 영해졌지만, 1994년 11월 24일 교황 대사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큰 성체의 작은 두 조각과 같은 날 내려오신 작은 성체 전부는 지금 파 신부님께서 계신 곳의 소성당에 모셔져 있다.  1997년 6월 12일 김 창렬 주교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성체와, 1997년 8월 27일 파 신부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성체는 광주 대교구청으로 모셔져갔다.  

나주에 내려오신 성체가 그냥 면병이 아니라 참된 성체라고 믿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가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진실하시다라고 하는 진리이다.  나주의 경당에서 성체가 내려오셨을 때 경당 안에 있던 이들은 이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참 성체로밖에 볼 수 없었다. 만약, 그 때의 상황 하에서, 하느님께서 축성되지 않은 면병을 보내셨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혼란으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말이 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하느님께서 보통 면병을 보내실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무관한 징표를 보내실 리도 없고 우리를 혼란으로 이끄실 리도 없다.  나주에서 내려온 성체가 면병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속이실 수도 없고, 스스로 속으실 수도 없으시다 라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DS 3008).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교리 상의 문제점들은 사소한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가르치심이며 따라서 일체의 오류가 포함될 수 없다.  교회의 가르침은 구세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류의 암흑을 물리치기 위하여 주시는 진리의 빛이다.  빛과 암흑은 본질적으로 반대의 개념이며 서로 타협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 안에 진리가 오류없이 보존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교황 성하와 그리고 모든 주교님들께서 교황님과 함께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공식적인 가르침을 베푸실 때 무류지권(無謬之權)의 은사로써 보호하여 주신다.  개별 주교님들이나, 신부님들, 신학자들, 그 외의 어느 누구도 교회의 가르침을 정통 교리와 부합되지 않는 독자적인 뜻으로 제시하거나 해석할 권위가 없다. 광주의 공지문 상의 교리적 오류들은 시급히 그리고 하등의 모호함없이 설명되고 시정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교회의 교도권에 순명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교도권의 행사가 참된 진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주에서의 일들을 막고 있는 근원은 교회 안에 침투한 현대주의이다.

광주 가톨릭 대학교의 교의 신학 교수이시며 나주 조사 위원회의 총무이신 리 순성 신부님께서는 한국 주교단의 명의로 출판되는 司牧 지, 1998년 3월 호에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천주교 광주 대교구장의 공지에 나타난 '성체 성사의 실체 변화'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글을 내셨다.  이 글에서 리 신부님께서는 성체 성사에서의 주님의 진정한 살과 피를 통한 실제적인 현존을 부정하셨으며, 이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일치를 위하여 유익하다는 이유로 정당화하셨다.  리 신부님께서는 갈려진 형제들과의 일치 운동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상기하시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가톨릭 진리의 순수성을 해치고 그 진리의 참되고 확실한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거짓 평화 주의처럼 일치 운동의 정신으로부터 먼 것은 없을 것이다 (Unitatis Redintegratio)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발간하는 神學展望 지의 1998년 봄 호에서 리 순성 신부님께서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 성령의 해를 위한 小考라는 글을 발표하셔서 "교회는 성령께만 순종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라는 주장을 펴시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임을 부정하고 교회 안의 교계 제도와 교도권을 배척하셨다.  나주 조사 위원회는 교회의 교도권에 의지하여 나주의 일들을 막고 있다.  그러나, 그 위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시는 신부님들께서는 교회의 교도권을 배격하고 계신다.

역시 나주 조사 위원회의 위원이시며,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이셨던 리제민 신부님께서도 共同善 잡지 1998년 5/6월 호에서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적인가"라는 글을 쓰시어, 리 신부님을 포함하여 세 분의 한국 신부님들께 재차 경고문을 보내신 교황청에 반발하여 현대주의적인 주장들을 되풀이하고 계신다.  

한국 교회 안에 현대주의적인 경향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나라들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충실하고 교황 성하께 충성하는 많은 성직자들, 수도자들 및 평신도들이 계신다.  하지만, 이들은 교구 내 및 본당 내의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 너무나 자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들을 我田引水 격으로 잘못 해석하여 진보적인 개혁을 계속 밀고 나가려는 이들에 의하여 밀리고 있다.  교회 내의 현대 주의자들은 계속하여, 이미 교황 성하께서 확정적으로 거부하신 여성 사제직을 주장하고 있으며, 사제들의 독신제 폐지, 심지어는 교회의 토착화라는 구실 하에 토속적인 무속 행위들을 가톨릭 전례에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이미 교회를 세속에 적응시키고 타협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교회 안에 도입시켰으며, 신자들의 사고 방식과 신앙 행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현대주의적인 노력은 교회의 건축 양식, 성상들을 포함한 교회 미술의 현대화, 추상화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전례 및 신심 행사 상의 개혁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성당들 대부분으로부터 장궤틀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현대주의자들은 윤리 도덕이 주로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많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죄"와 "보속"의 개념들을 희석(稀釋)시켜 놓고 있다.  "죄"의 개념이 흐려지면, "聖性"의 개념 또한 흐려지며, 따라서 교희의 수많은 성인, 성녀들로부터 별로 배울 것이 없다라는 인식이 들게 한다.  교회의 계속적인 세속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나주란 하나의 골치아픈 방해 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나주에서의 메시지들과 징표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교회의 정통 교리들과 신심 행사들에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지역 교회들이 처해있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835), 동시에 지역 교회들의 전통이 사도 전래(使徒傳來)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부합되지 않고 이질적인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과 규율과 전례와 신심에 관한 "전승(傳承)들"은 사도 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형태들을 이루게 되는데, 거대한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된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도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3).

지상에서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성모님께서 이끄시는 군대와 악마가 이끄는 군대와의 사이에 끊임없는, 치열한 영적인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 전투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의 영원한 운명을 가름하는 지극히 중요한 전투이다.  그리고 이 영적 전쟁이 바야흐로 그 절정에 다다르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성모님의 승리에 참여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을 열심한 기도와 자아 부정과 오류없는 순수한 진리로써 무장하고, 주님과 성모님께 봉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해야 한다.  성모님께서 나주에서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1998년 10월 7일 메시지).

나주에서의 일들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 사이에서도 그 일들이 단지 개인 신심의 활성화를 위한 도움 정도로 인식하시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주에서의 초점은 개인들의 회개와 생활 개선 뿐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신앙과 도덕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  하느님께서는 나주의 일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의 구성원들과 전 세계인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심과 동시에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도 알려주고 계신다.  주님께서 13세기 성 프란치스꼬에게 "나의 교회를 재건하라,"고 하셨듯이 그와 꼭 같은 말씀을 지금 우리들에게 하고 계시는 것 같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2천년 전에 세우시고 이끌어 나오고 계시는 가톨릭 교회를 세속 주의로부터 정화하고 오로지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만 올 수 있는 진리와 거룩함의 광채를 교회 안에 회복시키라는 말씀이시다.  앞으로 무서운 징벌이 닥칠는지, 하느님의 넘치는 축복의 잔이 내릴는지는 우리들이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분도 드림
Mary's Touch By 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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