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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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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5건 조회 2,981회 작성일 18-01-24 1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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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Saint Francis de Sales

St. Franciscus de Sales, E. et D

San Francesco di Sales Vescovo e dottore della Chiesa

1567 at Chateau of Thorens, Savoy -

28 December 1622 at Lyons; buried at Annecy

Beatified:8 January 1662 by Pope Alexander VII

Canonized:19 April 1665 by Pope Alexander 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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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대한 주교는 토랑에 있는 가족 성(城)인 샤토 드 살에서 태어나 파리의 아네시와 클레르몽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파두아 대학교에서는 법률과 신학을 전공하여, 불과 24세의 약관에 법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이사직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도생활을 위하여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15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카블레 지방의 선교사로서 5년 동안 활동하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군사력으로 가톨릭을 억누르는 사보이 공작의 노력에 피나는 항쟁을 하고 있었다.

 

암살자와 칼빈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599년, 그는 제네바 주교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가, 1602년에 완전히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는 곧 반개혁자의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이며, 해박한 신학지식과 이해심은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예비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1604년, 그는 프란치스까 드 상탈을 만나 그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그녀와 함께 방문회를 세웠다(1610년)

 

그는 프랑스 리용에서 운명하였는데,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1. 신심생활 입문(1609년), 2. 신애론(1616년)이다.

그는 사망한 해에 시복되었는데, 성 베드로 성당에서 거행한 첫번째 공식 시복식으로 기록되었고, 1665년에 시성되었다.

또 1877년에는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으며, 1923년에는 가톨릭 언론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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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축일: 12월12일(8월12일)게시판796번,1519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31일.게시판1187번,1792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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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드 살은 부친의 뜻을 받들어 변호사가 되고, 나중에는 프랑스 사부아 지역의 상원 의원이었던 부친의 후계자가 되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는 법률을 공부하러 파도바로 갔다.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적당한 시기에 부모에게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부친은 완강하게 반대를 했지만, 착한 프란치스코의 꾸준하고 열심한 설득에 결국은 허락하고 말았다.

프란치스코는 사제로 서품되어 얼마 뒤에는 칼뱅교의 중심지였던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사무관으로 선출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칼뱅과 이단자들을 회개시키기로 결심하고, 특히 샤빌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진정한 가톨릭 교리를 설명하는 자그마한 팜플렛을 만들어 배부하고 설교도 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35세에 제네바의 주교가 된 프란치스코는 교구의 사목 행정을 담당하면서도 설교를 하고 고해성사를 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의 부드러운 성격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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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숟가락의 꿀은 한 통의 식초보다 더 많은 파리를 끌어들인다."는 자신의 좌우명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널리 알려진 [신심 생활의 입문]과 [신애론] 외에도 수많은 소책자를 쓰고 광범한 분야에 걸쳐서 편지 왕래를 했다.

그의 이러한 문필 생활로 인해 그는 가톨릭 신문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그는 비교적 짧고도 바쁜 일생을 보냈지만 ’방문 수녀회’를 창설하는 일에서 또 다른 성녀인 잔 프랑스아 드 샹탈과 협력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이 수녀원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데서 모범을 보인 덕행, 즉 겸손과 신심 그리고 상호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여인들에 의해서 이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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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드 살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교적 온화함을 지닌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변호해 줄 자세가 되어 獵?

그의 착한 마음은 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태도에서 나타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큰 애덕과 기쁨의 빛을 비추는 관점을 제공한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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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사보이아에서 태어났다. 사제로 서품된 후 자기나라에서 가톨릭 교회의 재건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제네바의 주교로 선임되어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참다운 목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만사에서 모범이 되고 저서로써 모든 이에게 신앙을 가르쳐주었다.

1622년 12월 28일 리옹에서 세상을 떠나, 1623년 1월24일 안네시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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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주교의 [신심 생활 입문]에서

(Pars, 1, cap. 3)

 

신심 생활은 모든 소명과 직업에 가하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를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또한 그 교회의 생활한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설명하신다.

귀족과 직공, 왕족과 노복, 과부와 주부, 소녀들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신심은 각각 달라야 한다.

 

또 한층 이것을 개인의 능력, 일, 직무에 맞추어야 한다.

필로테아여, 주교가 샤르트르 수도회의 수사처럼 관상적 독수자가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가정을 가진 자들이 카푸친회수사들처럼 금전을 소홀히 여기거나, 또는 직공이 수도자처럼 종일 성당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든지,

또는 수사가 주교처럼 언제나 타인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닌다면,

이런 신심은 참으로 우습고 질서를 뒤집으며 또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고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착오는 극히 많다.

따라서 세속은 참된 신심과 그릇된 신심을 구별치 않고 또는 구별하려고도 않으며 신심을 배척하고 이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과 배척은 위에 말한 그릇된 신심에 한해서만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 필로테아여, 진정한 신심은 아무것도 손상치 않고 오히려 만사를 완성시킨다.

자기의 정당한 직무를 거스르는 자의 신심은 확실히 그릇된 신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꿀벌은 꿀을 마실 때 조금도 꽃을 상하지 않게 하며 꽃은 이전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참된 신심은 이보다 더 어떠한 직무나 처지도 손상치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를 아름답게 꾸민다.

보석을 꿀에 담그면 그 성질에 따라 광채를 더한다고 한다.

그와 같이 어떤 사람도 그의 경우를 신심과 합치시켜면 그의 경우는 일층 더 아름다워진다.

가정의 평화는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며, 임금께 대한 충성은 두터워지고 각자가 맡은 일은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신심 생활의 군인들의 병영, 직공들의 공장, 제왕의 궁정, 결혼한 자들의 가정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유설이며 이단의 교설이다.

필로테아여, 관상적인 신심이나 수도원식 또는 수도자적 신심이 이런 이에게 전연 맞지 않을 것은 말할 여지도 없지만,

위에 말한 세 가지 신심 외에 세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완덕으로 인도하는 신심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완덕의 생활을 구할 수 있고 이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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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가 여기저기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속여 넘길 것입니다.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마태 24, 11).

 

주 예수의 이 예언 말씀은 16세기에 놀랄 정도록 맞아 들어갔다.

즉 루터를 위시해 쯔빙글리나 칼빈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각각 이단을 주장하고 프로테스탄트를 세우므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여러 지방의 인심을 현혹케 했다.

 

그러나 자비 깊으신 하느님께서는 가련한 양(羊)인 신자들이 포악한 사람인 이단자들에게 현혹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인의 유명한 인물을 보내셔서 교회를 개혁케 하셨다.

그들은 즉 독일에 있어서는 성 베드로 가니시오,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성 가롤로 보로메오,

그리고 프랑스에 있어서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이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 사제 축일: 12월21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축일: 11월4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축일: 5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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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1567년 8월 21일에 토랑에 있는 가족 성(城)인 사토 드 살에서 후작가(候爵家)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양친은 모두 경건하고 독실한 신자였고, 특별히 신앙심이 두터웠던 어머니 프란치스카는 아들의 교육을 세심한 주의로 시행하는 동시에

그 순진한 어린 마음에 신앙과 덕행의 씨를 뿌리며 이를 양성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첫째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파리에 있는 예수회의 대학에 입학하고 오래지 않아 그 지혜와 성실한 점으로 단연 출중한 성적을 올려

교사들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신앙 도덕을 위협하는 많은 위험 중에서는 자숙하여 기도와 고행에 힘쓰고

그러한 십자가의 길로써 무사히 백합화와 같은 마음을 끝까지 보존할 수가 있었다.

그가 가장 정덕에 대해 노력한 것은 그때에 비로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렸을 때 성 마리아 제대 앞에 엎드려 일평생 동정을 지킬 서원을 발한 때부터였던 것이다.

 

그 후 그는 파리에서 파도바 대학으로 가서 신학과 법학 박사의 학위를 획득하고 대 성공리에 졸업했지만, 옛 고향인 사보아에 금의환향(金衣還鄕)하기 전에

먼저 성도(聖都) 로마를 방문하고 세상에서 출세해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사제가 되어 희생의 생활을 하려고 결심했다.

그런 줄도 모르던 아버지는 벌써부터 그를 사보아에서 변호사 개업을 시킬 예정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관계로 아들의 희망을 듣고 나서

즉시 승낙하게 되어 프란치스코는 마침내 수도 생활을 위해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15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교황에게 아네시 주교의 참사원(參事員)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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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단에서 처음으로 미사 성제를 드린 것은 1593년 12월 초순경이 었다.

그 후 그는 뜨거운 신앙심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하며 사제로서의 성무를 완전히 이행했고,

아네시 주교는 그의 수완을 인정하여 특히 중대하고 어려운 사명을 그에게 맡기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보아의 남부에서 세력을 부리고 있던 칼빈파 이단에 떨어진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개종시키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지만 일단 착수해보니 그 사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교회의 이단자들에게 쫓겨 깊은 산으로 피신한 때도 있었고,

초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위험하게도 생명을 빼앗길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성인은 영웅적인 인내와 온순과 겸손으로 취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후 비로소 크리스마스 밤 미사를 이단의 중심지에서 봉헌하고 8백 명의 개종자에게 성체를 영해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칼빈파의 지반은 점차 붕괴하여 연거푸 개종자들이 증가해, 1597년에는 프란치스코의 노력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7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참으로 사보아의 남부에 있던 칼빈파의 이단이 전멸된 것은 오로지 성인의 감탄할 만한 기도와 희생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네시 주교는 자기의 후계자로서는 이 젊은 사도 프란치스코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교황에게 추천했으므로,

그는 1599년에는 제네바 주교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1602년에는 완전히 계승하여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항상 겸손하며 자기가 맡은 영혼을 돌보는데도 각별한 열의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는 자기 교구에 있어서 성직 지원자의 전형(銓衡)을 엄격히 하고, 참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을 뽑고,

모든 이에게 모범을 보이는 완덕의 생활과 그의 스승다운 깊은 학문 등을 그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은 주교직에 있으면서도 주일에는 신자들에게 도리를 설명해 주?성사를 주는 등 보농 사제들과 같이 영혼의 지도에 노력햇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사도적 활동이 세상에 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유명한 명성은 프랑스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국왕은 파리나 리용의 대도시에 아직 남아있는 칼빈파 이단을 전멸하기 위해 프란치스코를 초빙했다.

그래서 그는 그 도시에서 강론과 기타 모든 방법으로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덕이 높고 학식이 많은 성인에게 영적 지도를 청하는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그들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기에는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지만,

끝까지 친절하고 온순한 주교는 서간으로써 각자에게 적당한 권고와 교훈을 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들의 희망을 채워주려고 했다.

또 그의 유명한 저작 필로테아라는 신심생활의 입문서도 그의 지도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청으로 저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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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개인적 지도로 가장 훌륭하게 된 이는 한 수녀원을 창설한 샹탈의 백작(伯爵)부인 성녀 프란치스카였다.

성인은 1604년 사순절의 강론때에 처음 프란치스카를 만나 즉시 그녀가 하느님께 간선된 부인이라 이미 1610년 6월 6일

두 동료와 같이 하느님의 전선을 찬미하여 유화(柔和), 소박(素朴), 자비(慈悲)의 정신을 세상 사람에게 알려주는 새 수도회(방문회)를 세웠다.

 

그 이상(理想)에 대해서 성 주교 자신의 얼마나 열렬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가는 그가 프란치스카에게 말한 다음의 말로써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우리는 언제 참된 사랑과 온순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나는 온전히 자기를 끊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모든 사람들의 희망대로 하고 그를 위해 진력하고 싶다!"

이와 같이 사랑이 대단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만큼 아무리 완고한 이단자라 해도 그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전후 20년간 주교직에 있으면서 모든 이에게 성덕의 감화를 주며 제네바에 있는 600여개의 교회 신자들에게

신앙심을 북돋아 주고 교리를 모르면 그들에게 잘 깨닫게 해 주었다.

그 뿐 아니라 중부 프랑스, 동부 프랑스의 사람들도 이 성스러운 주교를 만나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인을 초대하고 교훈을 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성무와 영혼의 지도에 진력한 결과, 과로하게 되어 아직 노년이라 할 수 없는 55세 때인 1622년 12월 28일,

리용에서 병석에 눕게 되어 모인 사람들이 병자를 위한 기도문을 외울때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신심 생활 입문(1609년)과 ’신애론(1616년)이다.

그는 사망한 해에 시복되었는데, 성 베드로 성당에서 거행한 첫 번째 공식 시복식으로 기록되었고, 1655년에 시성되었다.

또 1877년에는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으며, 1923년에는 가톨릭 언론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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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

 

청소년들의 스승이요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요한 보스코(St. John Bosco, 1815~1888) 에 의해 1854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창립된 살레시오 수도회는 청소년 교육을 주목적으로 한다.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성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 사제 축일:1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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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두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 나탄은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며 주님의 환시를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고는, 둘레에 있던 제자들과 열두 제자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뜻을 알려 주신다(복음).
제1독서
  •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4-17 그 무렵 4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농경 사회였던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이 익숙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뿌려진 씨앗들이 떨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을 익숙하게 본 농부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자라나는 환경입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으로 표현되는 마음 밭은 하느님의 말씀인 씨앗이 자라나는 우리의 다양한 상황들과 비슷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아예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 말씀을 들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좋은 땅에서 말씀의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꼭 집어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내 안에서도 얄팍하게 네 가지 부류를 넘나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나는 ……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편견에 가두려는 모든 시도는 헛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약속하신 땅을 후손에게 주시며, 다윗 임금에게 축복을 내리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이 지닌 창조와 해방의 힘을 여전히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삶에 지쳐서, 시간이 없어서,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외면하고 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말씀의 씨앗을 우리에게 뿌려 주십니다. 교회의 전례에서, 성경 읽기에서, 양심의 소리로, 때로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동료들의 삶을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마음만 열면 언제든지 우리를 품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기쁨과 사랑과 평화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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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홍수님의 댓글

사랑의홍수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시여 !!!
나주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주소서.
아 ~~~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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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성심님의 댓글

사랑의성심 작성일

아멘!
성체사랑님, 은총 억만 배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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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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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샘터님의 댓글

기적의샘터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엄마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제가 지향하는 기도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전구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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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지향하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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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빠른 건강 회복을 위하여,
주님과성모님께 받으신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도록  전구 해 주소서.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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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작은꽃님의 댓글

엄마작은꽃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여 율리아 엄마를 지켜주시고 저희가 엄마의 양육을 온전히 따르는 예쁜 자녀되게 간구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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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죄인님의 댓글

비천한죄인 작성일

성체 사랑 님
주님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
가득 받으시길 기도드려요~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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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님의 댓글

들국화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시여~~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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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닮은아기님의 댓글

엄마닮은아기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모든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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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님의 댓글

믿음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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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필리에버님의 댓글

해필리에버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빠른 회복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시고,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이들의 성화와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함께 전구하여 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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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전력님의 댓글

전심전력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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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아~멘~ 아~멘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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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지향하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빌어주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님의 정성과 수고에 늘 감사합니다.
주님, 성모님 사랑과 은총 가득히 받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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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되길 바라는 맘으로 아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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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33주년 기도회에 전세계 자녀들이
구름 떼처럼 성모님께 찾아오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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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시여!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세계평화 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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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마음만 열면 언제든지 우리를 품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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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님의 댓글

미소 작성일

아멘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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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안전과 빠른 회복과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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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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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학자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 멘..
제가 지향하는 모든 이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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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빠른 건강 회복을 위하여 전구하여주소서.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전구하여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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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정신님의 댓글

순교정신 작성일

"한 숟가락의 꿀은 한 통의 식초보다 더 많은 파리를 끌어들인다"
아멘!
성체사랑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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