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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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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7건 조회 3,565회 작성일 12-01-31 11: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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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St. John Bosco, Priest Founder (RM)

St. Joannes Don Bosco, C

(Don Bosco; Giovanni Bosco; Giovanni Melchior Bosco; John Melchoir Bosco)

San Giovanni Bosco Sacerdote

1815 at Becchi, Castelnuovo d’Asti, Piedmont, Italy

- 1888 at Turin, Italy

Canonized :1934 by Pope Pius XI

Name Meaning :God is gracious (= John)

Founder: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Societa’di san Francisco Sales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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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8월 15일, 베키에서 태어난 요한 보스코는 일찌기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위고

가난한 홀어머니 말가리다 오키에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른 두 형제들과 함께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요한 보스코가 아홉살 때 한 꿈을 꾸게되는데 그 꿈은 그의 일생을 계시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꿈을 계기로 요한 보스코는 사제성소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지만,

가난한 과부의 아들로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남의 집 머슴살이나 상점의 점원 또는 직공 등을 하면서 신부가 되는데 필요한 공부을 길을 찾는다.

 

자연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천부적인 명석함을 지닌 그는 신학교를 다 마치고 마침내 1841년 토리노 교구의 사제로 서품된다.

사제가 된 요한 보스코 신부(일반적으로 ‘돈보스코’라 부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는 청소년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공업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청소년들로 인한 많은 혼란들이 있었다.

도시에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시골 출신의 젊은이들은 쉽게 범죄의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고, 교도소는 항상 넘쳐나고 있었다.

 

보스코 신부는 버림받은 청소년들이 그들을 돌보아주고 곁에 있어주고

정직한 주인 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면 정직한 시민과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간파한다.

그리하여 보살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소년들을 위하여 ‘오라또리오’라 부르는 기숙사를 세워

이들의 의식주를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공부를 가르쳐주는 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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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보살핌을 받는 소년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보스코 신부는 많은 평신도들을 영입하여 자신의 일을 돕게 한다.

특히 보살핌을 받고 있는 소년들 가운데서 보다 성숙한 젊은이들이 보스코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수도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보스코 신부는 마음을 매혹시키는 독특한 방법으로 청소년들을 사랑했다.

 

초창기 오라또리오의 600명이 넘는 소년들은 모두가 제각기 자신이 보스코 신부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으며,

자신들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보스코 신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느껴지는 각별한 사랑의 친밀감으로 인하여 소년들은 보스코 신부를 ‘돈보스코’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삶을 의지하였다.

 

그래서, 처음 수도회 설립의 뜻을 젊은이들에게 밝혔을 때, 많은 젊은이들은 수도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파악하지도 않고 단지 돈보스코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일생을 바칠 수 있다고 하면서 참여하였던 것이고,

이렇게 해서 1854년 살레시오 수도회는 탄생되어 1869년 교황청의 정식 승인을 받는다.

보스코 신부는 살레시오 수도회에 이어 ‘살레시오 수녀회’와

평신도 단체인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설하여 남여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청소년들 특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기숙사, 기술학교, 주일학교, 야간학교 등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한 요한 보스코 신부는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놀랄만한 작가이고,

사회변혁의 순간에 교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호교론자이며,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교회안에 심은 대영성가이기도 하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라는 확신처럼

돈보스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청소년 특히 보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다 내어주고 1888년 1월 31일에 선종한다.

그리고 1934년 부활절,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으로 반포되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는다.(살레시오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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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보스코의 교육 이론은 오늘날에도 학교에서 잘 활용될 수 있다.

그것은 신체적 처벌을 지양하고 학생들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학생들의 행동을 선도하는 예방 조치이다.

그는 고해 성사를 자주 받고 영성체를 자주 하도록 권한다.

그는 학생들의 일과 공부 그리고 놀이에 영적 생활을 연결시키려 애쓰면서 교리 교육과 어버이의 훈육을 결합시켰다.

 

젊은 시절에 청소년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사제가 되라는 권고를 받은 요한은 1841년에 토리노에서 서품을 받았다.

젊은이들에 대한 그의 봉사활동은 그가 가난한 고아 소년을 만나 첫영성체 준비를 시킬 때 시작되었다.

그때 그는 젊은 견습공들을 모아서 교리를 가르쳤다.

 

여직공들의 기숙사에서 지도 신부로 일하면서 그는 소년들을 위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기도원을 개설했다.

몇몇 부유하고 권세 있는 후원자들이 물질적 도움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소년들을 위한 두 개의 작업장을 마련하여 구두 만드는 일과 옷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다.

1856년 이르러 이 단체는 인원이 150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종교 관계 팜플렛과 교리 교육 팜플렛을 찍어 내는 인쇄소까지 차렸다.

 

직업 교육과 출판업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가 젊은 견습공들의 수호 성인이며, 가톨릭 출판업자들의 수호자로서 잘 맞는 것이다.

요한의 가르침에 대한 명성은 널리 퍼졌고

1850년에는 젊은 신부들을 보조자로 두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협력자들을 훈련시키게 되었다.

 

1854년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우선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이름하에 서로 결속했다.

교황 비오9세의 격려를 받고 요한은 1859년에 17명으로 살레시오회를 창설했다.

 

 

그들의 활동은 교육과 선교 활동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나중에는 소녀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살레시오 수녀회도 조직했다.

그는 1888년 1월 31일에 세상을 떠났고 1934년 비오11세께서 시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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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보스코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인간성 그 전체를 교육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즉,  일, 공부, 놀이 등 모든 것에 가득히 스며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요한 보스코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정도로서가 아니라 전적인 노력을 경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온전히 밑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요한 보스코는 재능과 능력을 살리는 직업 훈련과 자신감 그리고 긍지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그는 장사하는 기술에 관해서도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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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육은 하나의 철학을 가르친다.

그것이 독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제안이나 암시 또는 분위기로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의 각 분야는 다른 모든 분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만일에 그것이 어떤 인생관을 갖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교육이 아니다.(G,K 체스터턴)

-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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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사제로 서품된 뒤 가난한 젊은이들의 직업 교육에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전문적인 능력과 기술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그들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 가난한 젊은이들의 모임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 [살레시오회] 의 모체가 되었으며

1874년에는 마리아 동정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요한 보스코는 자신의 구제 사업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수도원을 창설하여 [살레시오 성 프란치 스꼬의 신심회] 라 이름지었습니다.

따라서 돈 보스코를 근대 사제의 이상형으로,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손꼽습니다.

 

그는 정치적 문제에 까지 탁월한 조언을 했으며

교육 부문에 1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정도로 문필가로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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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의 소년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는 돈보스코 (1861년)

 

1815년 토리노 교구의 카스텔누오보 근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사제가 되어 젊은이들의 교육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고

젊은 이들에게 기술 교육과 그리스도인 생활을 가르치는 살레시오회를 창립했다.

 

신앙을 옹호하는 몇 개의 소품들을 남겼다. 1888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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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의 소년들과 어울려 있는

돈보스코 (1861)

 

성 요한 보스꼬 사제의 편지에서

(Epistolario, Torino, 1959, 4,201-203)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생도들의 참된 행복을 찾고 그들이 생활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도록 인도해 주고 싶다면,

우리는 이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부모를 대리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노력하고 또 사제 직분을 이행해 왔습니다.

비단 나만이 아니고 살레시오회의 회원 전체가 그렇게 했습니다.

 

자녀들이여, 나는 나의 긴 생활을 통해서 이 위대한 진리에 대해 얼마나 자주 확신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참는 것보다 화를 내는 것은 더 쉽고 젊은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설득시키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겠습니다.

즉, 참아 내지 못하고 오만한 성격을 지닌 우리에게 있어서, 반항하는 생도들을 참아 주면서

엄중하게 그리고 온유하게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것보다 벌을 주는 것이 더 용이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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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로가 초심자들에 대해 지녔던 그 사랑을 나는 여러분에게 천거합니다.

바올로 사도는 그들이 잘 순종하지 않고 자신이 베푸는 사랑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보았을 때

그 사랑은 바울로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들에게 권고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주체 못하는 분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벌을 줄때 우리가 권위를 주장하거나 또는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필요하게 되는 그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한 힘든 일입니다.

 

우리 권하에 있는 이들을 우리 자녀로써 바라보도록 합시다.

명령하러 오시지 않고 순종하러 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지배한다는 그런 인상 마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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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사도들을 대하신 방법도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들은 무지하고 예의를 모르고 불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참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죄인들도 자비와 애정 어린 지극한 친밀성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을 본어떤 이들에겐 놀라움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겐 걸림돌이 되었지만

한편 다른 이들은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보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생도들이 진정 우리의 자녀라면 그들의 잘못을 고쳐 줄때,

우리는 온갖 분노를 재거해 버리거나 분노를 완전히 제어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가라앉혀야 합니다.

우리는 분노로 마음의 평화를 잃거나 멸시의 눈초리를 보여 주거나 또는 마음 상하는 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오히려 잘못을 고쳐 주고 다 잘되게 해주는 참된 부무들처럼 지금은 자비를 베풀고 미래에는 희망을 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중대한 문제들이 있는 경우에는

절조 없이 말을 뇌까리는 것보다는 겸손과 항구심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절조 없이 말을 뇌까릴 때 그말을 듣는 사람에게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겐 유익한 것을 하나도 주지 못합니다.(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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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피에드몬트, 베치에서 가난한 부모 사이에 태어난 요한은 2살 때 부친을 잃고,

16세 때 치에티의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또리노에서 학업을 계속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요셉 카파쏘 신부의 격려로 토리노에서 고아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다가,

1844년 그곳에 세워진 소녀들을 위한 성녀 필로메나 고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자,

그 부지 내에 소년들을 위한 집도 마련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들이 너무나 규율을 어기고 불량배들처럼 되어가자, 한 때 그는 원장직으로부터 사임을 권고받기도 하였다.

 

마침내, 그는 그 직책을 사임하고, 어머니와 함게 버림받은 소년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는 그 소년들을 위한 집과 학교를 세웠고, 교육을 실시하다가,

1856년에는 150명으로 불어나자, 10명의 사제들과 함께 5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다른 보금자리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의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는 엄격한 규율이나 훈련을 피하고, 사랑으로 대하였으며,

각자의 발전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하여 대응하였고, 그들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여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길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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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이 날로 확대되자, 그는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 사랑을 설교하러 다녔으며, 유명한 저서를 저술하였다.

수많은 도움을 베풀기 위하여 그는 살레시오회를 세워야 하였다.

이 회는 1859년, 비오 9세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나, 1884년까지는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하고 활동하였다.

 

그의 임종시에는 64개의 살레시오 수도회가 있었고, 유럽과 아메리카로 확대되었으며, 약 800명의 살레시안 사제들이 활동하였다.

1872년, 그는 크리스챤의 도움이신 성모 수녀회를 창설하여 가난한 삶들과 버림받은 소녀들을 돌보게 하였고,

살레시안 협력자들이라 부르는 3회가 뒤따랐다.

 

그는 1888년 1월 31일, 토리노에서 운명하였고, 1934년에 시성되었다. 그는 편집과 교정자의 수호성인이다. (부산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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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토리노에는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기록된 한 무덤이 있다.

비명(碑銘)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그 밑에 묻혀 계시는 분이야말로 무수한 고아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는 성 요한 보스코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는 이는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교회의 내외에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어느 성인을 보내셔서 그 위험을 선처하시고

아무리 반대자가 주님의 계획을 파괴하려고 해도 결국 실현케 하시는 것이 상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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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북 이탈리아의 토리노 교구의 카스텔누오보 근처의 작은 마을 베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란치스코 루이지라는 분으로 근면하고 조심성 있는 독실한 신자였고,

어머니는 마르가리타로서 역시 모든 선덕을 구비한 신심 깊은 부인이었다.

 

그런데 이 가정은 물질적 면으로는 겨우 그날의 생활을 이어나갈 정도였지만,

정신적 면으로는 극히 혜택을 받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뜻밖에 감기로 급성폐렴에 걸려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남편이 임종시에 유언한

’자녀들을 부탁하오. 특히 어린 요한을..."이라는 말을 언제든지 잊지 않고

요한을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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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교육에 대한 열성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마르가리타만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어머니들의 모범이다."하며 늘 칭찬하는 정도였다.

몇 해 후에 요한 보스코가 아동 교육에 성공을 한 것도 본래는 훌륭한 어머니의 감화가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를 잘 선도한 힘은 물로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그는 후에 하느님께 특별한 사명을 위탁받으리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기이한 일로 예측되어 있었다.

 

예컨데 9세 때 그는 처음으로 주 예수의 발현을 보고 성모 마리아를 지도자로 주신다는 고마운 말씀을 들었는데,

실제로 후일 예상한 것 이상으로 대성공을 하고, 또 그가 창립한 살레시오회의 경탄할 만한 신속한 발전을 생각할때에

성모의 도움이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요한 보스코 자신이 고백하고 있다.

 

요한 보스코는 성모께 무한한 신뢰를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은총의 인도로 몸을 수련하고 덕행의 길로 매진했다.

그는 극기 금욕의 생활을 즐겁게 하면서도 항상 쾌활하고 사람으 즐겁게 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끔 아이들을 위하여

스스로 줄넘기나 장난을 해 주는 때도 있으나 사람들의 영혼을 점점 더 귀중히 생각하며 소년 시대부터 사제가 되려고 굳게 결심한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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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의 악대. 돈보스코는

"음악없는 오라토리오는 영혼 없는 육신이다." 라고 말했다(1870)

 

 

가정이 구차하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할 수가 없어서

어느 신부에게 라틴어를 배우게 되었으나 이것조차 여러 가지 사정으로 종종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12세부터 14세까지의 2년간을 숙부의 집안에서 일을 도우며 지낸 것도 그 한 예이다.

숙부는 요한의 경건한 마음과 그의 뜻을 깨닫고 돈 가로소라는 성인같은 한 사제에게 위탁하고 그를 공부시키게 했다.

그러나 가로소 신부는 오래지 않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요한은 그때 돌연한 그의 죽음에 아무 유언을 들을 사이도 없이

다만 스승한테 받게 된 것은 한 개의 손금고(手金庫)와 그의 열쇠 뿐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주려는 의사였을 것인가?  적어도 가로소 신부의 조카되는 사람은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요한 보스코는 ’나에게는 현세의 보배는 필요없습니다.

천국만을 잃지 않으며 그것으로 만족합니다"하며 끝끝내 그것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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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부터 그는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서야 그는 천부적 재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뛰어난 좋은 성적을 올리고,

1835년에 신학교에 입학해 전부터 절실히 원하던 것을 실현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신학교에서 6년간 철학과 신학을 연마하는 동안 그는 얼마나 덕행의 길에 힘썼는지!

그러나 겸손한 그는 될수 있는대로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힘썼다.

 

요한이 바야흐로 사제 서품을 받게 된 것은 1841년 4월 5일이었다.

세라핌적 사랑으로 첫 미사를 봉헌한 그는 점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높아질 뿐이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그의 미사에 참여하려고 먼길을 무릅쓰고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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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미사때,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한 즐거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훈계했다.

 

"너도 오늘부터 하느님의 것이 되었지만 사제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라.

지금은 이 말을 깨닫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오늘 부터는 내 일은 염려하지 말고 너는 다만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일해라.

나는 네가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제는 만족이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이 후에 성인으로 공경을 받게된 것도 생각하면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에게는 토리노에 성 요셉 카파소,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는 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그의 사명을 재빨리 알아채고 박애 사업에 일생을 바치라고 권고했다.

 

요한은 그 충고에 순응해 즉시 가련한 고아들을 모아 아버지가 되어 교리를 가르쳐주고, 혹은 기술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아직 고아원도 없어서 그들은 요한과 그의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토리노의 사람들에게 "요한 보스코의 왈패자식들"이라고 불렸지만

덕망이 많은 성인의 감화를 받고서 모두 온순한 아이들이 되었다.

요한 보스코는 또한 토리노에 있는 양로원이나 자혜병원,

형무소까지도 방문하고 거기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했다.

 

1864년에 고아원이 건설된 후부터 수용한 아이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요한 보스코는 아이들에게 대하여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신기한 힘을 가진 것처럼

아무리 왈패인 아이라도 자유롭게 통솔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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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전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과 같이 사제의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다.

정직한 그는 악인의 원한을 사게 되어 전후 일곱 번이나 살해될 뻔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어디선가 사나운 개가 나타나서 악인에게 달려드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나서 환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요한 보스코는 그 사업의 계속되는 발전을 위한 한 수도원을 창설해

’살레시오 성 프란치스코의 신심회’하고 이름지어

1859년 12월 18일 제자 몇명을 데리고 교황 비오 9세를 알현하고 그 인가를 청했다.

다시 1875년 8월 5일에는 살레시오 수녀원도 창설했다.

 

이 두 수도원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베풀어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고 또 직업을 줌으로써 현세의 행복까지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수도원이 얼마나 사회에 유익이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는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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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3세가 요한 보스코를 향해

’전 세계 교회는 당신을, 당신의 사업을,

당신의 수도원을 우러러보며 다만 탄복할 따름입니다"하고 말한 것도 결코 과분한 칭찬이 아니다.

 

성인은 1888년 1월 31일 아침 삼종소리가 날 때 교요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많은 공적은 영원히 빛날 것이고, 오늘날도 그 위대한 사업은 그의 애제자인

살레시오 회원의 손으로 훌륭히 계속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수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다.(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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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예언적인 꿈은 우리가 보통 꾸는 꿈과는 달리 미래의 방향을 알려 주고 우리의 희망과 열정과 목표를 보여 준다.

요한 보스코는 예언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그는 9살 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가난한 소년들을 도와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꿈을 꾸었다.

꿈은 줄곧 그의 일생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는 꿈을 통해서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소년들의 영혼 상태를 식별하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과 선교에 관한 전망을 얻기도 하였다.

요한 보스코에게는 언제나 자금이 충분치 않았지만

하느님이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재원이 마련되곤 했다.

 

하느님은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베푸셨다.

요한 보스코의 꿈처럼 예언적이지는 않더라도 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준다.

 

관심을 갖고 꿈을 잘 살펴보면 잠재되어 있는 깊은 열망이나 포부를 알아낼 수도 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암시해 주기도 하며,

숨은 잠재력을 깨워 주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별히 예언적인 꿈을 꾸어 본 적이 있는가?

꿈은 때로 잠재 의식을 반영한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

(이) Societa’ di san Francisco Salesio

(영) 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축일:1월24일,

 

  •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토리노 교구의 카스텔누오보 근처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41년 사제가 되어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 교육과 그리스도교 생활을 가르치려고 살레시오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성인은 1888년 1월 31일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부하들과 싸우다 결국 죽게 된다. 다윗은 아들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파수꾼에게 듣는다(제1독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고 믿었고, 과연 그 믿음대로 되었다. 회당장인 야이로의 죽은 딸도 아버지의 간곡한 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신다. 믿음 안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복음).
제1독서
  •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8,9-10.14ㄴ.24-25ㄱ.30ㅡ19,3 그 무렵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소녀야,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우리 주변에는 선천성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이의 장애 사실을 아는 순간 견디기 힘든 충격을 받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쁨과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행한 운명에 분노하거나 장애 사실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무엇보다도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불투명한 미래에 깊은 한숨을 짓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은 정신 지체뿐 아니라 시각 장애, 간질 등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처음에는 다른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심한 좌절과 분노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한 뒤 일상생활 대부분을 아들과 함께 지내며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소설의 주제는 장애를 중심으로 한 인간성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작품으로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회와 세계, 이를 초월하는 세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모두 아들과 함께하는 삶에 기반을 두었으며 그의 삶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의 존재는 내 삶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둡고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밝혀 주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 닥칠 때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이처럼 고통과 시련은 삶의 의미를 묻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려 주십니다. 자식이 아프면 더 아픈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자식의 아픔을 통해서 부모가 성숙하게 변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야이로의 절망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희망과 기쁨으로 바뀝니다. 우리도 야이로처럼 아이를 살려 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통해 자신이 변화되고 삶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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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아멘!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하심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마다 다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오늘도 영육간의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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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기님의 댓글

엄마아기 작성일

아멘!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모든 기도지향이 이루어지시길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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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1님의 댓글

은총이1 작성일

우리 권하에 있는 이들을 우리 자녀로써 바라보도록 합시다.

명령하러 오시지 않고 순종하러 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지배한다는 그런 인상 마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맙시다.  아멘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불쌍한이들을 섬기듯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우리주변에있는 소외되고 부족한이들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립니다.

돈보스코 성인이시여! 

어려움중에 있는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빛이 되는 나주가 속히 인준이되어

많은 이들이 올바른 길을 걸으며 사랑의삶을 살도록 빌어주셔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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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정원님의 댓글

천상정원 작성일

"너도 오늘부터 하느님의 것이 되었지만 사제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라.

지금은 이 말을 깨닫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오늘 부터는 내 일은 염려하지 말고 너는 다만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일해라.

나는 네가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제는 만족이다..."


어머니의 기도
자녀들을 바른길로 이끄시는 힘의 원천인가봅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에대하여 알게 해주시고 성인의 되시기까지
 하느님의 이끄심을 알게 해 주신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매일의 수고에 주님 성모님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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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젖님의 댓글

성모님젖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
나주성모님의 빠른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그리고 지향하는 기도고 속히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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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님의 댓글

마리아노 작성일

길잃은 청소년들을 바르게 인도하신
돈 보스코 성인이시여,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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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사제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기도지향이 이루어 지시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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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혁님의 댓글

유민혁 작성일

아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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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딸님의 댓글

엄마딸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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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님의 댓글

어린양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시여! 나주 성모님의 하루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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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ogratias님의 댓글

Deogratias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하루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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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
나주성모님의 빠른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그리고 지향하는 기도가 어서 빨리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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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요한보스코 성인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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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성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41년 사제가 되어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 교육과
그리스도교 생활을 가르치려고 살레시오회를 설립하였다..아멘!

성 요한 보스코 성인이시여~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의 건강과 안전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저희 순례자들의 나주의5대영성 실천을 위해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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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
나주성모님의 빠른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그리고 지향하는 기도가 어서 빨리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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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요한보스코 성인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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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소녀야, 일어나라 아멘!!!아멘!!!아멘!!!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과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지원자님들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성체사랑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정성도 합하여 바쳐
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성체사랑님...축일을 맞이하신분 모두들 축하드리며~
수고해주신 님에게도 감사해요  영육간에 건강을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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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안전과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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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요한 보스코 성인이시여!! 님의 본명을 가진 모든 이를 주님의길로 바로 이끌어주소서!!
요한 보스코 성인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요한 보스코 성인이시여!!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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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자녀님의 댓글

복된자녀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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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자녀님의 댓글

복된자녀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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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성인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시고

나주 성모님 사랑하시는 나주 순례자 형제 자매님 모두를 위하여도 빌어

주소서 새속에 권력은 부자간에 연도 갈라 놓는다는것을 오늘 일독서에서

저희들에게 보여 줍니다 바로 하느님을 떠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출세 제일

주의지요 저희 나라 역사안에서도 있어온 사실에 역사입니다 많은  현대 지식을

지닌 석 박사 문인 저명한 지식인들이 하느님 없이도 지상에 최고에 인간에 삶을

누릴수 있다고 글과 말로서 하느님을 배척하도록 유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세계는

그들 말로 하느님 없이도 정말로 인간에 최고에 삶을 이르면 살수 있을까요 한때

최고에 복지를 누리며 하느님 없는 세상을 살고자 노력을 하였던 서방세계가 일백년도

되지 않아 지금 아우성 치고 있습니다 그들에 부는 서서히 바닥을 항해 가고 있고

더 이상 부를 창출할수 있는여력도 상실하여 가고 있지요 그들은 인간에 이성에 위대함을

외치던 그들에서 부터 위대한 이성은 없고 바로 저주에 울부짓음만히 전 세계를 강타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복지가 앞으로 더 무너지며 분명 그들은 야수가 되어 날뛰게 되겠지요

그들에 손에 쥐어 졌던 풀레이 보이 외설스러운 잡지보다 앞으로는 굳은 살이 밖히도록 괭이를

들지 않으며 생존에 위험을 느끼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없는 세상은 어려움이 닥치며 폭력화

되지만 하느님이 계신 세상은 어려움이 닥치며 서로 협력하며 어려움을 이겨 냅니다 바로 하느님 있는

세상과 하느님 없는 세상에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하느님을 믿고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나주 성모님 도움받아 이겨낼수 있어 하느님에 축복받은 나누 성모님에 진정한 자녀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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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기님의 댓글

엄마아기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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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과 기도지향이
이루어 지시길 빌어주소서. 아멘

신부님,수녀님,생활의기도모임님,장미가족님
영육간에 건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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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요한보스코 성인 사제이시여!

나주 서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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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님의 댓글

새롭게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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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시여!
한국 나주에 친히 오신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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