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활동(마르코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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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설
1,1: 마르코 복음의 표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이 이 세상을 온전히 다스리기 시작하셨음을 복음으로 선포하신 분입니다(마르 1, 14-15). '복음' 이라는 말은 기원전 539년에 하느님이 키루스 황제의 해방 칙서를 통해 바빌론 유배지(기원전 586~539)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된다는 기쁜 소식을 시온에 전하라고 명하신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평화를 선언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고 구원을 선포하며 '너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 말하는 이의 저 발!" (이사 52, 7) 복음은 하느님이 그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가르킵니다(이사 61, 1). 이제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바빌론에서 억눌려 사는 이들의 정치적인 해방을 넘어 전 인류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하고 계십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의 표제를 제시한 뒤, 하느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을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통해 서술했습니다.
1, 2-3: "보라, 나는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낸다.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마르 1, 2). 하느님은 세례자 요한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 회개를 촉구하고 구원받도록 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는 예수 메시아의 길을 닦는 선구자입니다. 또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그들을 재촉한 광야의 소리였습니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 1, 3= 이사 40.3).세례자 요한이 광야로 간 까닭은 광야에 길을 닦으라는 명령을 실현하는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위 이사야의 예언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하여 이스라엘로 데려가기 위해 아랍 광야에 길을 닦으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이 유배에서의 해방으로 완성되지 않고 예수 메시아를 통해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광야에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마음의 길을 고르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1, 4-6: 세례자 요한이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있던 광야는 구약성경에서 정화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곳을 상징합니다(호세 2, 14; 9, 10; 40, 3-4; 41, 18-19).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시나이 광야를 건너가면서 열악한 생활조건 때문에 시련받고 정화되는 과정을 통해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조상들의 이러한 광야생활을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이상적인 시절로 여겼습니다( 예레 2, 2; 31,2; 호세 2,14; 9,10; 아모 5.25).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의미를 지닌 광야에서 하느님이 구원활동을 하시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예언자차럼 낙타 털옷을 입고 (즈카 13,4;히브 11,37) 가죽 띠를 두루고 (2열왕 1,8: 엘리야 예언자)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 활동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유다의 온 지역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 시민들과 함께 떼를 지어 몰려와 죄를 고백하고 그가 주는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루카 3,3). 그들이 떼지어 왔다는 과장된 표현은 세례자 요한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맞이하도록 하는 사명을 완수했다는 뜻입니다.
1, 7-8: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에 임하실 메시아가 자비보다 월등히 강한 분이고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음을 시인했습니다. 자신은 수세(水洗)를 줄 뿐이지만, 그분은 성령세례를 베푸시는 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정화를 상징하고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는 방법이지만 예수님이 주실 성령세례를 예고하고 준비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성령세례를 베풀어 하느님의 생명을 베푸십니다(사도 2장 참조).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수세만 받은 에폐소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 사도를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사도 19, 3-7). 또 성령세례는 그리스도교 세례의 기원과 모형이고 (사도 2,3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로 발전되었습니다(마태 28, 19).
세례자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당대 유다교에서는 관례를 찾아볼 수 없고 쿰란 공동체에서 실시한 침수예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세례는 하느님이 가까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회개하여 그분의 백성에 속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예절이었습니다.그는 죄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한 번 받도록 한 반면, 이 공동체는 이미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의롭게 사는 구성원들에게 단 한 번이 아니라 필요할 때 자주 침수예절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는 예비신자들이 유다교에 들어오기 위해 받는 세레와도 다릅니다. 그의 세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인격관계를 다시 다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베푼,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회개하는 이들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시는 것(시편 51, 7-9; 이사 4, 2-6; 에제 36, 25-26,33;37, 23; 예레 38,8)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용서받고 참된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세례자 요한이 주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생할적용
예수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시련과 정화의 장소인 광야를 마음속에 만들고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광야는 나주 성지로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율리아 자매님을 본받아 자신을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약점이 많고 인간적으로 무능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하느님께 의지해야 그분을 내 마음속뿐만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에 모실 수 있습니다. 내가 작아져야 메시이께서 내 마음속에 커지실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나주의 영성이 바로 이와같이 주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작은자의 영성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성모님께서도 누누히 강조하시는 것이 큰 영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영혼이 되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계십니다. 바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작은 영혼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문턱은 매우 낮아 큰 영혼이 들어갈 수 없고 작은 영혼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묵상
"강물은 사막을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사막은 그에게 바람을 타라고 권했습니다. 강물은 자기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사막의 제의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강물은 바람에 몸을 맡겨 증발되어 버렸습니다.바람은 사막 건너 언덕 밑에 강물을 놓아 주었습니다. 강물은 수증기와 비로 변해 다시 자기 본래의 모습인 강이 되어 흘러갔습니다. "
위 자연현상은 우리에게 자신을 버리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방법임을 가르쳐줍니다. 자존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해야 자기 실존을 실현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욕심으로 가득찬 마음속에는 하느님과 이웃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법입니다. 병 속에 가득 들어 있는 오물을 비워야 맑은 물을 넣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희생은 고통과 눈물겨운 시련의 연속이지만, 내 마음이 시련과 정화의 장소인 광야처럼 되어야 예수 메시아의 구원을 체험하고 (마태 24,26)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실망하고 삶의 무의미를 통감할 때마다 광야를 즐겨 찾습니다. 이런 광야에서 사랑과 우정과 제기의 힘을 다시 찾아내곤 합니다. 물이 없어 씨 뿌리지 못하던 내 인생의 사막시절, 황량하고 척박하며 아무런 돌파구가 없었던 시절에 하느님은 내 곁에 와서 내 어깨를 살며시 잡아주셨습니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부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예레 2,2). 광야는 황량한 가운데서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황량함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종교의 위안,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느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Helen Keller). 하느님,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스승, 제자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듭니다. 이렇게 인생을 풍요롭게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역경인 광야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나주 성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어려움과 역경과 고통과 희생을 감수 인내하시며 구원과 영생을 얻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시며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는 살아 있는 성녀인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
댓글목록
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아멘!
모든 어려움과 역경과 고통과 희생을 감수 인내하시며
구원과 영생을 얻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시며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는
살아 있는 성녀인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
위로의샘님, 사랑해요 ^^
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인생을 풍요롭게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역경인 광야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나주 성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멘!!~~
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살아 있는 성녀인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
아멘~~~
우린 참 행복하고 부유함에 어떤 박해나 모함들에 의연할 수 있음이
바로 율리아님의 사랑으로 가득함이 아닐까 생각해보게되어요.
늘 좋으신 말씀과 함께 생활적용과 묵상 모두 감사드리며
영육간에 건강을 빌며 늘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어머니사랑님의 댓글
어머니사랑 작성일
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주 성지는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늘 체험케 해주시니
에덴 동산 같이 느껴지기에 그 곳의 자갈 하나하나 까지 빛나는 보석보다 더
귀한 돌이 되어 제 마음을 환희로움으로 가득차 오르게 하곤 하지요...
나주에 불러주신
하느님께 깊히 찬미드립니다 아멘
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느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Helen Keller). 하느님,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스승, 제자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듭니다. 이렇게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역경인 광야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나주 성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멘!!!아멘!!!아멘!!!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 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겈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위로의샘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들의 작은 정성도 합하여 바쳐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위로의샘님....좋은 강론말씀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안에서 영육간에 건강
하소서 아멘!!!
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살아 있는 성녀인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아멘...
피난처님의 댓글
피난처 작성일
자존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해야
자기 실존을 실현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김리아님의 댓글
김리아 작성일
아멘
날마다 나를 버리는 작업... 정화의 작없을 해야
주님깨서 내 안에서 \활동하실것을 믿습니다 아멘
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감사 감사!!
사막에 물과 같은 존재!!
나주!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자녀되기!아멘아멘아멘
겸손과온유님의 댓글
겸손과온유 작성일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아멘, 감사 ㅎㅎㅎㅎㅎ.
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자존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해야
자기 실존을 실현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아멘!!!
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위로의샘님!
좋은 묵상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늘 건강하세요. 아멘!
^^
사랑해여~*
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하느님,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스승, 제자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듭니다. 이렇게 인생을 풍요롭게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역경인 광야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나주 성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어려움과 역경과 고통과 희생을 감수 인내하시며 구원과 영생을 얻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시며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는 살아 있는 성녀인 율리아 자매님이 계신 이곳 나주 성지가 바로 우리들에게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광야인 것 같습니다. "아멘 아멘~!!!
소중한 글 감사드립니다 나주성모님의 은총가운데 평화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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