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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4 주간 금요일 (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 기념일 )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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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1건 조회 3,731회 작성일 13-03-15 09: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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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3월15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

St. Clemens Hofbauer, C

St. CLEMENT MARY HOFBAUER

San Clemente Maria Hofbauer

26 December 1751 at Tasswitz, Moravia as John Dvorak
- 15 March 1820 at Vienna, Austria of natural causes
Beatified:29 January 1888 by Pope Leo XIII
Canonized:1909 by Pope Pius X
Patronage:Vienna Austria (named by Pope Pius X in 1914)
Clemente =indulgente, gen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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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마리아 홉바우어는 1751년 12월 26일 모라비아의 타스비츠에서 태어났다.

그는 빵공장에서 일하였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껴 가능한 한 한 많은 시간을 내어 학업을 계속하였다.

로마에서 구속주회에 입회하였고 사제로 서품된 후 바르샤바로 갔다.

거기에서 폴란드 내의 첫 번째 구속주회 공동체인 ’성 베노’를 열고 매우 풍성한 사도적 결실을 거두었다.

후에 많은 이들의 박해로 비엔나로 옮겼고 거기에서 20여년을 일하고 1820년 3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전구를 통해서 기적적인 은총을 받았으며 1909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구속주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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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비아의 타쓰비츠 태생인 체코 사람으로 그의 본명은 얀 드르략인데 독일 이름인 흡바우어로 개명하였다.

그는 푸주간의 아홉째 아들인데, 어려서 부터 빵굽는 기술을 배웠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항상 은수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동안은 로마와 비엔나 사이를 오가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브룩크에서 프레콩트레 수도원의

빵굽는 데서 일하였으며, 마침내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 2세 황제가 은수소들을 폐쇄하였을 때, 그는 비엔나로 돌아와서 빵굽는 사람이 되었으나,

친구인 베드로 쿤즈만과 함께 티볼리의 주교 키아라몬띠의 승락을 받고 재차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비엔나와 로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속죄회에 입회하여, 178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비엔나로 파견되었으나 황제가 많은 수도회를 축출하였기 때문에

속죄회 수도원 건립이 불가능하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옛 친구인 쿤즈만을 만나 평수사로 입회시켰다.

그러나 교황 대사의 요청에 따라, 그들은 바르사바로 갔으며,

그곳에서 2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클레멘스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나폴레옹이 수도회를 탄압할 때, 그와 그의 동료 속죄회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각기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는 끝내 비엔나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그곳의 이탈리아 구역에서 일하였으며,

울술라회의 지도신부로도 활약하면서 부터는, 그의 설교와 성덕, 그리고 지혜와

고해신부로서의 이해심 등이 높은 명성을 얻게 하였다.

그는 비엔나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하였고, 독일 지역의 수도생활 재생을 위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클레멘스는 요셉주의자들의 그릇된 사상과 대치하여 힘찬 싸움을 하였다. 그는 1909년에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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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주의 Josephinism

오스트리아 황제 요셉 2세(재위: 1741∼1790)의 종교정책으로,

그에 따르면 국가는 교회에 대한 간섭권, 우위권을 갖는다고 한다.

황제는 교회의 재산 대부분을 몰수하고,

교회에 바쳐지는 모든 기금을 종교기금 (Religions fund)에 통합시켜 공공의 종교활동비에 충당하려 하였다.

목적달성을 위해 황제는 모든 수도원을 해산시켰고, 이를 세속용으로 불하하였다.

양초에 관한 규칙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간섭한 요셉 2세는 `제의실의 황제’라고 불렸다.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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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레멘스 호프바우어는 20세기에 새로 성인품에 오른 분으로서

1909년 5월 20일 비오 10세 교황에게 시성되고,1914년 빈의 사도인 동시에 수호 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의 수도명은 클레멘스이고 세례명은 요한이었다.

그는 1751년 오스트리아(Austria)의 빈도보나(Vindobona)에서 태어났다.

열두 형제 중 아홉째의 아들이고, 가정은 가난한 고기 파는 직업이었으나 양친은 모두

신심면에 열심한 분들이었다.

그가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어머니는 그를 십자가 앞에 데리고 가서 손으로 가리키며

’보아라, 이제부터 네 아버지는 하느님이시다"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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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형제들 중 일곱까지 일찍 다 죽었으므로 요한은 아직 소년의 몸으로 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도하고 또 일하라"(Ora, et labora)함은 유명한 트라피스트(Trappisst)의 표어지만

당시 요한의 생활을 나타낸 말이기도 했다.

거기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손님이 와서 어머니와 대화 중 권태(倦怠)란 말을 여러 번 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 뜻을 전혀 알지 못했다.

조금 뒤 그는 어머니에게 그 뜻의 설명을 들었지만 "하는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생각은

그가 이제까지 조금도 알지 못했던 관계로 대단히 놀라며

"엄마, 그러한 때에는 기도를 바치면 좋을텐데.."하고 태연히 말했다고 한다.

요한은 어려서부터 항상 사제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동안은 로마와 빈 사이를 오가는 방랑 생활을

하다가 부룩크에서 프레몽트레 수도원의 빵 굽는 데서 일하면서 라틴어 문법을 배웠다.

그 뒤 그는 로마에 가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참배하고 일심으로 기도하고 돌아오는 도중 이탈리라의

티볼리 부근에 초막을 마련하여 잠시 은수자의 생활을 해 보았지만, 본래 사제를 지망하는 그는

이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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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그 생각에는 그 나라의 서울인 빈에 가면 어떻게든지 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막상 가 보니 쉽사리 마음대로 안 되고, 우선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없이 와이리히라는 빵집에

취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신심이 깊었던 선량한 주인 부부는 성실한 요한이 한결같이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으려고 했으므로

요한은 이를 알자 자못 놀라며 기회있는대로 도망을 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여전히 근방에 있는 스테파노 대성당에서 미사 참여하러가서

복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려고 하니 때마침 큰 비가 쏟아졌다.

현관에서는 세 귀부인도 야단난 것처럼 서있었다. 친절한 요한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비오는 가운데 뛰어가서 마차를 불러왔다.

귀부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거듭 사례하며 "그대도 함께 탑시다"라고

자꾸 권하므로 사양할 수 없어 같이 탔던 것이다.

가는 도중 요한은 그들이 묻는 대로 자기는 사제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학비가 없어서 될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평소에 그의 열심하고 경건함에 탄복하고 있던 그들 세 사람은 극히 동정하며

"그만한 비용이라면 어떻게든지 장만해 드리겠습니다"하고 생각지도 않던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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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의외로 학비의 혜택을 받게 된 요한은 그 당시 30세라는 나이에

젊은 학생들과 똑같이 어학부터 철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배웠다.

그런데 그 당시의 빈 대학에 있어서의 신학의 경향에는 매우 좋지 못한 점이 있어서,

지금까지순수한 가톨릭 교육만을 받아온 요한은 얼마나 마음으로 그것을 우려했는지 모른다.

하루는 어느 교수의 합지주의설에 대한 강의를 듣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 그렇다면 참된 가톨릭교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항의했다.

그래서 그는 순수한 가톨릭의 학설을 배우러 로마에 가려고 결심하고 휴부르라는 친구와 함께 제일 먼 성도

(聖都)로마를 방문해 그 날 밤은 여인숙에서 머물고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종이 울려온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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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근방에 있는 구속주 수도원에 속하는 성 율리아노의 성당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는 기묘한 것으로서 오래지 않아 이 두사람은 그 곳의 수도자가 되어

요한은 클레멘스라고 개명하여 35세때 비로소 오랜 세월 갈망하던 사제가 되었던 것이다.

수사 신부인 클레멘스는 총장으로부터 북쪽 유럽에 구속주회를 발전시키라는 분부를 받고

러시아의 독일 이민부(移民附) 사제에 임명되었으나 그가 가는 도중 휴부르와 같이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당도하니 로마 교황청의 대사 사르쯔오는 그들을 동시에 머루르게 하고

성 벤노에게 봉헌된 성당을 내주며 그 시에 살고있는 독일인 신자들을 맡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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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회는 황폐하기 짝이 없어 클레멘스는 우선 손질과 청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게다가 때는 마침 프랑스 대혁명의 시초였고, 그의 영향은 바르샤바까지 미치게 되어,

시민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교회의 중요 신앙 조목조차도 모르고도 수치로 여기지 않던 상태였으므로

클레멘스는 신앙의 부흥을 위해 다음 세대의 국민인 아이들에게 교리를 철저히 가르칠 필요성을 통감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빈민이나 고아들의 구호 사업에 착수하고, 자신은 빈궁을 감내하면서도

그들에게는 부자유를 주지 않으려고 힘껏 일하며 그것 때문에 친히 구걸하러 다니고,

때로는 박해나 수치를 당해도 조금은 언짢은 기색이 없었다.

한 예를 들자면 어느날 그가 요리점에 가서 구걸을 애원하니까 손님 중의 하나가 욕성르 퍼부으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래도 그는 동요하는 기색이 없이 천천히 그것을 씻고 나서

"지금 것은 나에게 주신 것이고, 이번에는 불쌍한 고아들에게도 아무것이나 베풀어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정중히 말해 상대자도 매우 부끄러워하고 또한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대단히 감동하여

각기 응분의 희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같이 구걸하면서도 부족할 때에는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도우신 때도 종종 있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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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벤노 교회 사제의 감탄할 만한 활동 상태는 오래지 않아 그 부근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자 동정하는 이도 증가되어 기부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성당을 보살펴 주는 이도 있었다.

교회는 날로 새로워져서 자유로 장엄한 예식도 거행할 수가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성 벤노 교회는 신심의 보금자리(오아시스)"라고 불리기까지 되었다.

이 칭찬의 언사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가 구속주 수도원이 형제들과 활동을 개시하던

첫 1년간 성체를 영한 신자수는 2천명이었지만

그로부터 14년후에는 10만여명에 달했다는 점으로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그런데 선행을 멸망시키려는 악마는 도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클레멘스는 사악(邪惡)한 사람의 모함을 당하여 나폴레옹이 수도회를 탄압할 때,

그와 그의 동료 구속주 회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각기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렇게 번성하던 성 벤노 교회도 하루 아침에 멸망의 운명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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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클레멘스는 사방을 헤매다가 1808년 빈에 돌아와서 그곳 우르술라회(Urusline convent) 수녀들의

지도 사제가 되어, 고해 성사도 주고, 강론도 하며 가난한 이의 아버지, 학생들의 좋은 지도자로서

바쁜 생활을 보내기를 13년간이나 했다.

일류의 학자나 정치가도 영적 문제에 대해서는 그에게 교훈을 청하고 또한 프러테스탄트 인으로서

그의 지도에 의해 개종한 이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는 빈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했고 독일 지역의 수도 생활 재생을 위해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요셉주의자들의 그릇된 사상과 대치하여 힘찬 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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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성자 클레멘스에게도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나 영혼의 고향인 천국에 개선할 날이 다가왔다.

뜻밖에 장티푸스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된 그는 1820년 3월 15일 정오,

요란히 들려오는 삼종소리를 들으며 "삼종소리가 들리니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장레식의 시각은 계원(係員)의 불찰로 발표를 잊고 있었으나 어떻게들 알았는지

정각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깊은 애도 속에 성인의 유해는 묘지까지 전송되었다.

"클레멘스 사제의 죽음은 나에게도, 국민에게도,

심지어 교회에 대해서도 다시 찾을 수 없는 손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유일한 교회의 기둥이었기 때문이다."라 함은

그의 죽음에 오스트리아의 프란트 황제가 발표한 애도사 중의 한 구절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 우르술라회(The Ursuline Sisters) 창설자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축일:1월27일.

*성녀 우르술라 동정 축일:10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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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 악인들이 의인을 죽일 음모를 꾸민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며 자신들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의인의 행동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지혜서의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유다인들이 호시탐탐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1ㄱ.12-22 악인들은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개구리 한 마리가 평생 홀로 우물 속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다른 개구리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습니다. “ 어디서 왔소?” 다른 개구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바다에서 왔습니다. 난 그곳에서 살고 있지요.” “바다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내 우물만큼이나 큽니까?” 바다에서 온 개구리가 폭소했습니다. “아예 비교할 수 없소.” 우물 개구리는 바다 개구리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척했으나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평생 만나 본 거짓말쟁이 중에서 이 개구리가 가장 대단한 거짓말쟁이구나.’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왔는지 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나자렛 출신으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고,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두고 그들이 자신하는 것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상의 논리입니다. 우물 안의 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에게서 왔는지 제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천상적인 분이시고, 천상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천상의 논리, 바다의 논리는 지상의 논리, 우물 안의 논리와 다릅니다. 자꾸 우리의 논리로 하느님을 재거나 판단하고,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식과 응답하실 때를 정하신다고 해서, 결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와 섭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이려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논리로 하느님을 가두려는 완고함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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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교황 대사의 요청에 따라,
그들은 바르사바로 갔으며,
그곳에서 20여 년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클레멘스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선생님, 그렇다면 참된 가톨릭교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항의했다.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 전파를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기도지향을 위하여
죄인들의 회개와  쉬는교우들의 회두를 위하여
성직자,수도자, 지도자들을 위하여
나주를 반대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여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시길 바라며
저희 순례자들의 메세지실천과 5대영성실천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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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기도 지향이
이루어 지시길 빌어주소서. 아멘

신부님,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장미가족님
영육간에 건강을 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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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글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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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글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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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한국 나주에 친히 오신 성모님의 하루 빠른 인준을 위하여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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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더 빠른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성직자,수도자, 생활의기도모임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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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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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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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님의 댓글

집으로 작성일

성 클라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아멘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과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꼭 이루워지도록 빌어주소서 .  아멘 ...!
성직자 ,수도자 ,생활의기도모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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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이시여!

@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마다 꼭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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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k님의 댓글

yurk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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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클라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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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님의 댓글

지름길 작성일

아멘.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이려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논리로 하느님을 가두려는
완고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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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루님의 댓글

베드루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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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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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님의 댓글

루치아 작성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감사 승리하는 셈치고 영원히 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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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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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성 글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건강과 기도 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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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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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 시여!!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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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부인님의 댓글

공작새부인 작성일

(성 클레멘스 마라아 흡바우시여)

      나주 인준을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건강과 안전과 기도지향을 꼭 이루워지게 도와주소서!!!

    이 죄인의 기도소리를 들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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