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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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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18건 조회 3,838회 작성일 11-09-15 09: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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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Mary - EL GRECO.

1594-1604.Oil on canvas, 52 x 41 cm.Museo del Prado, Madrid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Feast of Our Lady of Sorrows

Beata Vergine Maria Addolorata
Maria = amata da Dio, dall'egiziano; signora, dall'ebraico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인 오늘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세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아드님과 함께 수난하시는" 어머니를 기념하는 날로,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에 마리아의 고통을 기념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사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므온의 예언에서부터, 이집트 피난, 12세의 아들 예수를 잃고 3일을 근심 속에서 찾아 헤매던 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숨진 아들을 안고 통곡하는 등 일생을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며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셨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의 이러한 삶을 "정신적 순교"의 삶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오늘도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 받으시는 어머니의 고통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축일을 제정하였다.

 

이 기념일은 그 기원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11년 독일 파다본(Paderborn) 부근의 십자가 곁에 계시는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 발견된다.

고통받은 동정녀께 대한 신심은 12,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 전통에서 발견된다.

이어서 두 가지 축제가 통고의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생겨났다.

하나는 마리아의 시종회에서 9월 셋째 주에 거행하였다. 이것은 교황 비오 7세(1814)에 의해 모든 교회에 보급되었다.

비오 10세는 주님의 십자가 현양 다음날인 9월 15일로 날짜를 확정하였다.

또 다른 축제는 쾰른 시노드에서 제정된 것이다(1423).

십자가와 그분의 어머니에 대한 성화를 못마땅하게 여긴 성당 파괴자 우씨티(Ussiti)들로부터 당한 신성모독 행위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세워진 것이다.

 

축제는 1727년 모든 교회에 퍼졌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시종회원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 축제는 성지주일 전 금요일에 거행되었으며, 1969년 로마 전례 개혁은 두 가지 축일을 하나로 합쳤다.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음을 드러낸다.

즉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깊이 참여하였음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결정적 사건을 재확인하게 한다.

 

*원죄없으신 성모기사회에서 http://www.mi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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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Lady of the Seven Sorrows-ISENBRANT, Adriaen.

1518-35.Panel.O.L.Vrouwekerk,Bruges

 

성모님의 고통-성모칠고

 

1. 우리들의 삶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언뜻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내를 들여야 보면 나름대로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멍에입니다.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고, 자신의 고통이 다른 누구의 고통보다도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2. 성모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고통의 삶을 사셨습니다.

 

성모님이라 해서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예외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서에도 예수님으로 인해 받았던 성모님의 고통이 여러 장면 등장하는데, 이중 일곱 가지 장면을 모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 부르고 있습니다.

 

① 에집트로 피신하심(마태2,14) - 그 밤으로... 에집트로 가서... 거기서 살았다.

② 시메온의 예언(루가2,35) -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③ 성전에서 삼일 동안 예수를 잃으심(루가2,48) -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④ 예수, 골고타 갈바리아로 오르심(요한19,17) -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와 만나심

⑤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심(요한19,25) -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가 서 있었다.

⑥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심(요한19,40)

⑦ 예수, 무덤에 묻히심(요한19,42)

 

*성모 칠고 묵주기도:

3. 그런데 성모님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당신이 겪으셨기에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까지도 지켜보신 분입니다.

불효중의 불효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고, 고통중의 고통은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아들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셨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성모님이 이 같은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도 모두 이해해주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이 모든 고통을 이겨 내셨기에 우리의 고통도 이겨내도록 도와주십니다.

 

4. 그러니 삶에서 고통을 느낄 때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당신께서 겪으셨던 그 고통을 이제 나도 겪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께서도 이미 겪으셨으니 제발 나를 위로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이 고통의 폭풍 속에서 건져달라고 애원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리아동산에서 http://www.maria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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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 Dolorosa(with clasped hands)-TIZIANO Vecellio.

1550.Oil on canvas,68 x 61cm.Museo del Prado,Madrid

 

십자가 현양(9월14일)을 기리는 다음난 통고의 성모란 뜻을 지닌 돌로로사를 기념한다.

십자가 밑에서 아드님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에 특이하게 참여 하신것 처럼

그 수난에도 그렇게 참여하셔서 자신의 승천 때보다는 더 어머니시였다.

 

칼날이 그 마음을 찌른 것도 예수님의 찔린 옆구리에서 신비체의 모든 지체에 모성이 끼어든 것도 십자가 밑에서였다.

티없는 잉태와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때와 같이 예수와 함께 수난하신 고통에 있어서도 마리아는 교회의 상징이시다.

 

세기를 통해서 이세상 어디서나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계속되기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면 그분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도록 불린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쁘게 져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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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의 고통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슬픔과 고통을 말합니다.

성모 통고는 예수님의 구세사적인 수난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성모 통고에 대한 신심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또한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갔을 때 예언자 시메온이 성모님의 마음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듯 괴로움을 받게 되리라는 예언에도 근거합니다.

 

성모통고에 대한 신심은 6세기에 동방에서 먼저 발달되어,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이를 표현 해 왔습니다.

서방에서는 12세기에 시작되어 이 신심을 목적으로한 성모 마리아의 시녀회가 창립(1233년)되면서 이 신심이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성모 통고의 숫자는 처음에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성모 칠락과 연관되어 칠고로 고정되었는데 이는 쿠덴베르크의 사제였던 요한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聖母七樂:

1. 領報 2. 엘리사벳방문 3. 예수탄생 4. 예수공현 5.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으심 6. 예수부활 7. 성모승천

*성모칠락 묵주기도:

 

성모고통의 기념일은 16세기 세르비트회가 주창한 성모통고 신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9월 셋째주일에 미사와 행렬을 하는 것이 1600년 경에는 대중화 되어,

166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축일로 인가 되었습니다.

1814년 교황 비오 7세가 이 축일을 전교회로 확장시켰으며,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가 축일의 등급을 높였으며 1913년 부터는 9월 15일로 고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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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 Sorrows of the Virgin-DURER, Albrecht.

c.1496. Oil on panel,Alte Pinakothek,Munchen and Gemaldegalerie, Dresden

 

부속가

11. 주예수님 높이달린, 십자곁에 성모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12. 섧고슬픈 성모성심, 수난칼에 깊이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13. 여인중에 복된성모, 독생성자 수난하니, 그고통이 크시네.

14. 아들수난 보는성모, 맘을에는 비통중에, 하염없이 우시네.

15. 예수모친 이런통고, 받으심을 보는우리, 누가울지 않으리?

16. 십자가상 아들함께, 고통받는 성모보고, 누가통곡 않으리?

17. 아들예수 우리죄로, 채찍모욕 당하심을, 애처로이 보시네.

18. 기진하여 버려진채, 죽어가는 아들보고, 성모슬피 우시네.

19. 사랑의샘 성모시여, 저에게도 슬픔나눠, 함께울게 하소서.

10. 제마음에 주예수님, 사랑하는 불을놓아, 타오르게 하소서.

11.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12. 저를위해 상처입고, 수난하신 주님통고, 제게나눠 주소서.

13. 사는동안 주님함께, 십자고통 아파하며, 참아받게 하소서.

14. 성모따라 십자곁에, 저도서서 한맘으로, 슬피울게 하소서.

15. 동정중의 동정이여, 괴롬슬픔 나누시어, 저도울게 하소서.

16. 예수님의 죽음수난, 깊은상처 마음새겨, 우러르게 하소서.

17. 아들상처 저도입고, 십자가위 흘린피로, 흠뻑젖게 하소서.

18. 정결하신 동정성모, 심판날에 저를지켜, 영벌면케 하소서.

19. 그리스도 수난공로, 은총으로 돌보시고, 저를길러 주소서.

20. 제가죽어 세상뜰때, 천국영광 주예수님, 만나뵙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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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 UNKNOWN MASTER,German.c.1400.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in dom. infra oct. Assumptionis, 14-15: Opera omnia, Edit. Cisterc. 5[1968], 273-274)

 

당신의 어머니께서 십자가 곁에 서 계셨다.

 

동정 마리아의 순교가 시므온의 예언과 주님의 수난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아기 예수께 대해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고

마리아께는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복되신 성모여,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름 없이는 당신 아드님의 육신을 꿰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것이지만 특별히 당신의 것인 아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후, 그 잔혹한 창은 그분의 영혼에 가 닿을 수 없었습니다.

실상 그분이 죽임당하신 후 불능의 상태에서마저 마냥 두지 않은 그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펼쳐 놓았을 때,

그분께 고통을 줄 수 없었지만 당신께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창은 당신의 영혼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더 이상 거기에 계시지 않았으나 당신의 영혼은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고통의 창으로 찔리었기에 우리는 당신이 순교자들을 능가하시는 분이라고 마땅히 일컫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수난에 참여함은 그 강렬함에서 순교의 모든 육체적 고통을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그때 그 말씀은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찌르고 당신의 영혼과 마음을 갈라놓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오, 놀라운 교환이여! 당신은 예수님 대신에 요한을, 주인 대신에 종을, 스승 대신에 제자를,

하느님의 아들 대신 제베대오의 아들을, 참 하느님 대신에 일개 인간을 받으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할 때 돌이나 쇠보다 더 굳은 우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는데, 하물며 그 말씀은 당신의 섬세한 영혼을 찌르지 않았겠습니까?

 

형제들이여, 마리아께서 영신의 순교자가 되셨다는 말을 들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듣고서 이방인이 지닌 최대의 결점 중에 하나는 동정심이 없는 점이라고 사도 바울로가 지적한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만이 놀랄 것입니다.

마리아께는 물론 그런 결점이 없었고 또 마리아를 섬기는 이들에게도 그런 결점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이 죽으셔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하고 물어 볼지 모르겠습니다.

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드님께서 즉시 부활하시리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물론 갖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마리아는 슬픔을 느끼셨겠는가?"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형제여,

마리아의 아드님이 느끼신 슬픔 자체에 대해서보다 그 수난에 참여하신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더 놀라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판단을 가지고 있길래 놀랍니까?

아드님께서 육신으로 죽으실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는 영신으로 그 죽음에 참여할 수 없으셨겠습니까?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는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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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 Dolorosa - QUELLIN, Artus I.1650.Polychrome wood.Sint-Jacobskerk, Antwerp

 

성모 통고

 

교회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 다음 날에 성모 통고 축일(9월 15일)을 지낸다.

이렇게 마리아 어머니의 고통을 지내는 신심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복음서에 근거하고 있고, 또 이 축일은 풍성한 영신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다.

 

1. 복음서의 근거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가 서 있었다"(요한19,25).

마리아 어머니가 갈바리아에서 함께 자리하신 것은,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성령이 시메온으로 하여금 예언하게 한 그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었다.

그때 시메온은 이렇게 예언하였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가2,35).

 

복음서를 보면 우리는 마리아의 다른 고통들도 익히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낳을 때 큰 불편을 겪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2,7).

베들레헴의 아기 학살 사건이 있었다(마태2,16-18). 3일 동안이나 예수를 걱정하며 찾아다녔다(루가2,41-50).

나자렛 주민들이 아들 예수를 들고 일어나 동네밖으로 끌어냈고,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 하였다(루가4,28-30).

그 후 예루살렘의 율법 학자들로부터도 같은 곤욕을 치루셨다(루가11,53-54, 19,47-48 등등). 그 외에도 수난 기사들이 있다.

 

바오로 6세는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신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시며, 야훼의 고난받는 종의 어머니로서 고통을 당하셨다"고

마리아의 고통을 이사야 53장을 암시하면서 설명하셨다(마리알리스 꿀뚜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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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리아의 연민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밑에 서 있으려는 것이 옛 신자들의 기도이자, 기도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4-5세기에 걸쳐서 살았던 "사막의 교부" 포에멘 원장은 오랜 탈혼에서 깨어난 뒤에 이렇게 혼자말을 하였다:

"내 영혼은 구세주의 십자가 밑에서 울고 계시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나 역시 마리아 어머니와 함께 흐느껴 울고팠습니다."(APOTHEGMA 144).

 

4세기의 성 에프렘 시리아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밑에 서 계신 마리아의 애가를 썼는데, 이 마리아 애가는 성 토요일 저년 기도에서 지금도 불려지고 있다(시리아 전례).

500년경의 성 로마노 작곡가는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마리아 찬가"를 썼는데,

이 찬미가 속에는 예수께서 당신 모친에게 고개를 돌려 십자가의 신비를 설명하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서방 교회의 대성인들도 마리아의 고통을 묵상하고 가르쳤는데, 그들 중에서도 성 암브로시오와 안셀모 그리고 베르나르도가 가장 돋보이는 인물들이다.

이 영성의 주제(통고)는 13세기에 이르러 아주 보편적이고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는데, 특히 프란치스코회 설교자들과 성모의 종 수도회들의 공로가 가장 크다.

이 시대의 성모 통고 신심을 알려 주는 좋은 시는 야꼬뽀네 다 또디(+1306)가 강렬한 슬픔을 표현한 "마돈나의 비애"가 있다:

 

오 아들아, 네 영혼이 널 떠났구나,

오 아들아, 기가 죽었구나,

오 아들아, 멀어져 가는구나,

오 아들아, 힘이 쇠하였구나!

오 아들아, 붉고 흰 피로 목욕하였구나.

오 아들아, 비할 데 없구나,

오 아들아, 난 누구에게 가야 하리?

오 아들아, 너는 날 떠났구나!

 

이러한 분위기는 중세기 성모 신심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었는데,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성자 곁에서 그 모친 마리아도 함께 수난하였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성시이다.

이어서 나온 시가 저 유명한 "십자가길의 성모"(STABAT MATER)이다. 그리고 11세기에 나온 "그리스도의 생애 묵상"이란 책에서 보편화되어 알려진,

소위 "성모님의 발작설"은 서서히 사라졌고 또 교황과 신학자들도 이를 인정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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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리아의 통고

마리아 통고 신심은 14세기 초에 나타났다. 이런 신심을 크게 보급시킨 분은 아마도 헨리코 수소(1295-1366) 성인인 듯 하며,

이 밖에도 도미니코회 라인강 주변의 신비가들의 공로가 크다고 한다. 갈바리아의 중심 장면에서부터 수난 전체로 묵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즉 예수님의 체포에서부터 장례 때까지를 묵상하던 중에 이 신심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신비가들은 먼저 "마리아의 다섯 가지 기쁨"을 대중적인 신심으로 보급시킨 뒤, 성모님의 다섯 가지 고통 신심을 전파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성모 칠고로 발전되었다. 성모 칠고 묵상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마리아의 통고 내용은 예수님의 수난 내용과 같다. 예수의 수난이 곧 마리아의 수난이었다.

1. 예수, 체포되시고 매맞으으심을 묵상합시다.

2. 예수, 빌라도에게 끌려가 재판받으심을 묵상합시다.

3.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4.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5. 예수, 숨을 거두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6.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움을 묵상합시다.

7. 예수, 베로 감아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를 보아서 예수의 어린 시절이 포함된 "성모 칠고"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시메온의 예언.

2.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과 에집트 피신.

3. 예수,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리심.

4. 예수, 체포되시고 재판 받으심.

5.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심.

6.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움.

7. 예수, 베로 감아 무덤에 묻히심.

 

이 신심의 또다른 변형은 당신 아들이 생활하시고 활동하시다가 사형당하신 곳을 찾아보시는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이다.

이 신심은 야고보 데 보라지네의 "황금 전설’에 따른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성모 칠고" 신심은 14세기에서 보편화되었고, 또 수많은 묵상과 기도를 그리고 시들이 쏟아져 나와 이 신심을 더욱 고취 시켰다.

물론 성모 칠고를 그린 회화와 성상들도 제작되었는데 저 유명한 "피에타"는 곧 이 신심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1464년초, 도미니꼬 회원인 앙렝이 "동정 마리아의 새로운 시편"(매일 성모송 150번 바치는 기도)을 전파하고 다닐 때,

그는 성모성 50번마다 우리 주님의 수난과 당신 모친의 통고 그리고 최후의 만찬부터 장례까지를 묵상의 주제로 추천하였다.

1475년에 쾰른에서 처음 생겨난 로사리오회는 "다섯 가지 통고"가 포함되어있는 15가지 신비 목록을 만들어 묵상토록 하였다.

위의 "다섯 가지 통고"는 게쎄마니의 비애, 매맞으심, 가시관을 쓰심, 십자가 지고 가심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다.

 

1482년, 플란델의 교구 사제인 요한 드 쿠당베르그는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성모 칠고를 묵상하도록 가르쳤다:

1. 시메온의 예언(루가2,34-35).

2. 에집트로 피신하심(마태2,13-21)

3. 삼일 동안 예수를 잃으심(루가2,41-50).

4. 갈바리아로 오르심(요한19,17).

5. 예수, 십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심(요한19,18-30).

6.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심(요한19,39-40).

7. 예수, 무덤에 묻히심(요한19,40-42).

이 신심은 오늘날 "성모 통고회"가 보전하고 있고, 또 교황의 승인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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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성

구세주 예수의 수난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동참은 성서 신학이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어 준 마리아 영성의 중요한 일면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를 "죄에 떨어진 원조에게 약속된 뱀에 대한 승리 속에 이미 예언적으로 그 여인의 모습이 암시되어 있는"(교회 55) 여인,

그리고 "시온의 훌륭한 딸"(교회 55)로 부르고 있으며, 바오로 6세께서는 주의 봉헌을 언급하시면서, 마리아를 "옛 이스라엘의 사명을 완수하신 분이자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모델"(마리알리스 꿀뚜스 7)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갈바리아의 마리아는 "하느님의 일을 완수하신"(참조. 요한 19,30) 성자의 수난으로 그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팠던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스라엘과 교회 모두를 위해 "해산의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울고 있었다"(묵시 12,2).

 

성서적인 이런 입장에서 보면, 마리아의 기쁨과 고통(신적 모성과 십자가의 고통)은 마리아와 교회에 대해 불가분의 성격을 띄는 것이다.

그러므로 9월 15일, 성모 통고의 전례는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신심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5).

 

그리고 성모 통고 축일의 본기도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그 모친 마리아도 함께 수난하게 하신 천주여,

당신 교회로 하여금 성모와 함께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눔으로써 그 부활에도 참여케 하소서. 성부와..."

 

-성바오로수도회에서 http://www.paol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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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 Dolorosa - MEMLING, Hans.

1480s.Oil on wood, 55 x 33 cm.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라는 존엄한 지위에 계시니, 그 마음은 항상 환희에 가득 차 계실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는 큰 오해이다.

참으로 그녀는 비애의 어머니라고 불릴만큼 여러 가지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이는 원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저지른 이래 모든 인류의 죄악을 수난으로써 속죄하는 구세주의 대업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어머니로서

또는 모든 여성의 대표로서 협조하시고 고통을 나누시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모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1년에 두 차례의 기념일을 정했다.

즉 사순절 중 성지 주일 후 금요일과 9월 15일이 그때인 것이다.

각 교회에 열심한 신자의 실정이나 교회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많은 신자들은 성모의 고통을 특별히 공경하고 위로해 드렸다.

이런 의미에서 봉헌된 무수한 성당이며 또는 화가, 조각가, 시인들의 걸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누구나가 일단 부모의 입장이 되면 그 자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까닭에 슬퍼함은 면치 못하는 것으로

우리 모두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잘 공경하며 그 훌륭한 모양을 잘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슬퍼하시는 성모를 가리켜 "정신적 순교자"라 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께서 악인들에게 매질을 당하시고 요구를 당하시고 조소를 받으시고 멸시를 받으시는 이 모든 것이 직접 당신이

당하시는 것보다 오히려 더 뼈아프게 느꼈고,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도 당신이 친히 죽는 것보다 더 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실제의 정신적 순교이다.

그러므로 성모께서 지금 천국에서 ’순교자의 모후’라는 존칭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야코포네 더 토디의 작품인 성모 통고사 중에서 그 한 구절을 배우며 애통하시는 성모님의 희생심을 따르기로 하자.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신 그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고통을 기념하는 신심은 대중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6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 때 축일로 제정되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배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날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로 정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결하여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아버지께 순종하며 받아들이신 분이시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우리도 그분께 순종하며 우리 삶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때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된다(제1독서). 십자가 곁에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계신다.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곁에’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겪고 계심을 나타낸다. 아들 예수님의 죽음의 고통은 그대로 어머니의 고통이 된다(복음).
제1독서
  •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또는 루카 2,33-35> 그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장애인 바르나바 형제가 큰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는 마흔이 다 되도록 말 한 번 시원하게 못해 보고 제 힘으로 밥을 먹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수술 후 그는 호흡기 장애를 일으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최악의 고통을 안으로만 삭이고 있었습니다. 통증을 호소하며 소리라도 지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그가 고통 속에서 그저 버둥거리기만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남들의 마음이 이럴진대 평생을 아들과 한 몸처럼 지냈던 바르나바 형제의 어머니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바르나바 형제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신부님, 하느님 나라가 분명히 있지요? 아들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니까 이제 그만 놓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놓는다고 놓아지겠습니까? 자식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보다 못해 던진 질문입니다. 차마 겉으로 말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혼자 대답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가야 할 하느님 나라는 꼭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알려 주신 것이 결국 하느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 희망이 없다면, 죄 없는 이의 억울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어떤 고통도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십자가 곁에 성모님께서 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감당하시고 있는 이 기구한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부활과 인류 구원의 역사가 숨어 있었지요. 지금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날에는 그 모든 것의 의미가 환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그 너머에 더 이상 눈물이 없는 눈부신 부활의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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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는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아멘.

참으로 그녀는 비애의 어머니라고 불릴만큼 여러 가지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아멘.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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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님의 댓글

거북이 작성일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이 고통의 폭풍 속에서 건져달라고 애원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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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모님의 고통! 십자가 아래서 아들이 죽어감을 보는 그 마음!! 어디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그 고통을!!
오늘은 어머니의그 고통을 묵상하며
마음을 경건하게
모든 것을 봉헌하는 자녀로 살아가렵니다!!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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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는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신 주님! 성모님! 사랑합니다. 아멘! 

성체사랑님!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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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저는 성모님을 비방하는 계신교 신자들에게 들려주는 성서 귀절을

찾던중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 복음 예수님 십자가 밑에 계신 성모님

성서 말씀을  암송하여 그들에게 들려주지만  도통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요

어떤 계신교 신자는 성모님께서 예수님 십자가 고난을 받을때 도망갔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더군요  그런 말도 되지않는 말을 목사들이 가르치고 있다는것에

비애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죽을때 가장 중요한 유언을 남기는것이 모든사람에 생각이라고

봅니다 성모님께서 다른 자식이라도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지

않았을테지요 홀로 남은신 성모님을 염려하여 성모님을 사도요한에  어머니로 삼아 주셨지요

사도 요한에 어머니는 곧 저희들에 어머니기도 하고요 사도 요한은 다른 제자에 비해 오래 사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성모님을 에페서에서 모시고 살았기에 하느님께서 요한만은 순교를 허락하시지

않으셨지요  더 중요한 중책을 주시기 위해 성체 사랑님 오늘도 주님 사랑안에서 평화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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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님의 댓글

감사 작성일

성모님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그러니 삶에서 고통을 느낄 때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아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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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사랑님의 댓글

어머니사랑 작성일

고통의 성모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으로 저희를 감싸 안아주시어

저희를 용서 하여 주시고 자비를  이땅에 내려 주시어
저희와 온세상 죄인들이 회개 하게 해주시어

온 세상과 저희가 회개하여  오신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이 승리 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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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뜻대로님의 댓글

주님뜻대로 작성일

고통의 성모 어머니
한 생을 주님위해 바치셨으며
아드님을 잃은 고통 중에서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눈물로 밤을 새워 기도하신 어머니.

어머니의 뜻에 따라 모여 기도하는 저희들의 기도를 들으시어
하루 빨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이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시고
모든 기도지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구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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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느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 
아멘.

고통의 성모 마리아님,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안전과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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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님의 댓글

신비 작성일

고통의 성모마리아님!!!
불쌍한 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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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모님의 고통! 십자가 아래서 아들이 죽어감을 보는
그 마음!! 어디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그 고통을!!
오늘은 어머니의그 고통을 묵상하며 마음을 경건하게
모든 것을 봉헌하는 자녀로 살아가렵니다!!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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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저를위해 상처입고, 수난하신 주님통고, 제게나눠 주소서.
사는동안 주님함께, 십자고통 아파하며, 참아받게 하소서.

성모따라 십자곁에, 저도서서 한맘으로, 슬피울게 하소서.
동정중의 동정이여, 괴롬슬픔 나누시어, 저도울게 하소서.
예수님의 죽음수난, 깊은상처 마음새겨, 우러르게 하소서.

아들상처 저도입고, 십자가위 흘린피로, 흠뻑젖게 하소서.
정결하신 동정성모, 심판날에 저를지켜, 영벌면케 하소서.
그리스도 수난공로, 은총으로 돌보시고, 저를길러 주소서.
제가죽어 세상뜰때, 천국영광 주예수님, 만나뵙게 하소서.

성모님의 통고,
성모님의 온생애가 통고이지만 믿음으로 순명하신
고귀하온 삶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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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의 댓글

아기 작성일

아멘 !

고통의 어머니 !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고통의 어머니 ! 율리아 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아멘 !!!

성체사랑 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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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님의 댓글

피난처 작성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성자 곁에서 그 모친 마리아도 함께 수난하였다"

성모님 저희 죄인들에게 자비 베풀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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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고통의 어머니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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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통고의 어머니 시여 어서 빨리 인준 되시어서 온세상 자녀들로 부터 찬미 감사를  받으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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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들이님의 댓글

빛나들이 작성일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사진과 은총글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제자에게 ' 네 어머니시다' 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성체사랑님
답글이 늦었지만
더욱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언제나 기쁘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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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통고의 어머니시여~
하루 빨리 승리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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