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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모니카 기념일 ☆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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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17건 조회 2,917회 작성일 11-08-27 10:4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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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on the pillar)-GOZZOLI, Benozzo

1464-65.Fresco.Apsidal chapel, Sant’Agostino, San Gimignano

 

축일:8월27일

성녀 모니카  

St. Monica of Carthage

Santa Monica Madre di S. Agostino
(Tagaste, attuale Song-Ahras, Algeria, c. 331 - Ostia, Roma, 27 agosto 387 )
Born : 322 at Tagaste (Souk Ahrus), Algeria
Died : 387 at Ostia, Italy
Canonized : Pre-Congregation
Monica = la solitaria, dal greco = the solitary one, from the Greek

어머니의 주보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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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니카(331-387년)는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크리스찬 부모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으나

외교인 남편 파트리치우스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는데,

아우구스티노와 니비지우스 그리고 페르페투아가 곧 그들이다.

모니카는 370년경에 남편과 사별하고, 맏아들의 개종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던 중에 마니교에 심취 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띠노의 회개를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했다.

기도 생활로 자신의 신앙을 돈독히 하고 덕행으로 그것을 빛나게 함으로써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로마까지 쫓아갔고, 386년에는 밀라노까지 갔는데,

거기서 아우구스티노가 크리스찬 진리를 수용함으로써 그녀의 한을 풀었던 것이다.

성녀 모니카는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크리스찬 어머니상의 모델이요,

기혼 부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387년 오스티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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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아우구스티노는 젊었을 적에 마니교를 믿었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모니카는 그런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으나 아우구스티노는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 때문에 늘 애태우며 노심초사하는 모니카에게 성 암브로시오가 했던

"어머니가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한 자녀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아주 유명하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축일:12월7일,인창동성당게시판790번,1509번.

 

아우구스티노는 회개하기까지 어머니의 속을 무척 썩였는데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한번은 그가 고향인 북아프리카에서 로마로 가면서 어머니를 따돌리려고 출항 시간을 거짓말로 알려 주었다.

그러자 모니카는 다른 배를 잡아타고 그를 쫓아왔다.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노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 귀찮을 정도로 아들을 따라 다녔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를 따돌리고 자기만의 원을 그렸지만,

그때마다 모니카는 더 큰 사랑의 원으로 아들을 품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www.ofmcon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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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고백록)에서

(Lib. 9,10-11: CSEL 33,215-219)

 

영원한 지혜를 찾읍시다.

 

그녀가 이승을 하직할 날 - 우리는 모르는 채 당신만이 아시던 그날 - 이 가까워 왔을 때,

정녕코 그것은 당신의 그윽한 손길로 마련된 줄 아옵니다만 우연히도

그와 나는 단 둘이서 창문에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우리 맞은 쪽에 집안의 정원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곳은 오스티아 티베리나! 지루하고 고달프던 여행 끝에 속간을 멀리한 우리는

거기서 배를 타려고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둘이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잊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하고

우리는 진리이신 당신의 어전에서 더듬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성자들의 영생, "눈에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르지 않은"

그 미래의 생활을 우리는 차라리 마음의 입을 벌리고 당신께 있는 생명의 샘,

그 샘물의 하늘스런 흐름을 목말라했사옵니다.

 

꼭 이 말 이대로는 아닐망정,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오나 주여, 당신은 아시나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던 그날,

말하는 동안 이 세상은 그 온 가지 쾌락과 더불어 하찮게만 보여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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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인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

그랬더니 천주께선 과람하게 나한테 베풀어 주셨다.

네가 세속의 행복을 끊고 그분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니, 그럼 내 할 일이 또 무엇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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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런 지 닷새가 다 못 가서 아니, 더래야 얼마 못되어서 그는 열병으로 눕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앓던 어느 날, 실신하여서 잠시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바삐 가서 보니 이내 정신을 회복하고는 나와 내 형이 곁에 있는 것을 익히 보더니

무엇을 묻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었더라?" 그는 다시 눈을 들어 슬픔에 당황하는 우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어미를 여기다 묻어 다오."나는 말문이 막히고,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내 형은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차라리 고향에서 돌아가셔야 마음이 편하지, 남의 땅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찌푸린 얼굴로 나무란 다음, 나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보아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어서 또 우리 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뚱이사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 다오."

어미는 간신히 이런 말로 그 뜻을 전하다가 뚝 그치고,

치열해 오는 증세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축일:8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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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Monica - VERROCCHIO, Andrea del.Panel. S. Spirito, Florence

 

성녀 모니카의 평소 환경은 잔소리가 심한 아내,모진 며느리,절망적인 부모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같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리스도이었던 그녀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 있는

그녀 집에서 함께 살던 이교도인 파트리치오와 결혼을 시켰다.

 

파트리치오는 격렬한 성격에 방탕하기까지 했으나 자신을 반성할줄 아는 사람었다.

그는 아내의 자비심과 동정심을 비난했으나 항상 그녀를 존경했다.

모니카는 심술 궂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모니카의 기도와 모범은 마침내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그리스도교에 귀의시켰다.

그녀의 남편은 영세한 지 1년 후인 37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모니카에게는 유년기를 넘긴 세 자녀가 있었다.

그 중 맏이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유명하다.

파트리치오가 운명한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17세였으며, 카르타고의 수사학 학생이었다.

모니카는 자기 아들이 마니교도가 되어 비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슬퍼했다.

얼마 동안 아들이 집에서 먹고 잠자는 것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아들이 신앙을 되찾는 확실한 환상을 보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아들 가까이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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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원하는 것보다 휠씬 가까이에 머물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9세에 로마로 수사학을 공부하려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도 함께 가기로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머니에게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러 선창에 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로마로 가는 배를 탔다.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계교를 알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로마에 도칙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밀라노를 향해 떠났음을 알았다.

비록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니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로 갔다.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니카의 영적 지도자였던 성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모든 일에 있어 그의 충고를 따랐고

그녀의 제2 본성이 되어 있던 몇 가지 행동을 포기하는 겸손을 가졌다.

 

모니카는 타가스테에 있었을 때와 같이 밀라노에서 신심 깊은 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육을 받고있는 동안 끊임없이 아우구티누스를 위해 기도했다.

387년 부활절에 성암브로시오는 아우구티누스와 그의 친구 몇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얼마 후 아우구티누스와 모니카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비록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모니카는 자신의 삶이 곧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아우구티누스에게 "얘야,이 세상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지금내게 남겨진 일이 무엇이며, 왜 내가 아직도 이 지상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졌다." 고 말하였다.

그녀는 곧 병이 들었고, 죽기 전 9일 동안은 심하게 고통을 받았다.

우리가 모니카에 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아우구티누스가 쓴 고백록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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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 즉석 요리와 즉석 치료와 즉석 신용 등의 시대에 살면서

시간을 요구하는 일에는 인내심이 거의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대답을 원한다.

모니카는 인내의 상징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그녀의 기도는 강인하고 잘닦인 그녀의 성격과 어울려

그녀의 격정적인 남편과 심술 궂은 시어머니,

뛰어났지만 제멋대로인 아들 아우구티누스를 개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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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가 북아프리카에서 밀라노로 갔을 때,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보았다.

그것은 토요일의 단식처럼 그녀가 평소에 지켜 왔던 관습중의 몇 가지가 밀라노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켜 온 관습에 대해 암브로시오 성인에게 물었다.

암브로시오 성인의 대답은 "나는 여기 있을 때는토요일에 단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로마에 있다면 나는 단식합니다.

당신이 특별한 곳에서 발견하고 관찰한 대로 교회의 관습과 규율을 따르고 항상

그들과 똑같이 행하십시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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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of St Monica (scene 13, south wall)-GOZZOLI, Benozzo

1464-65,Fresco, 220 x 230 cm,Apsidal chapel, Sant’Agostino, San Gimignano

 

어느 날 신앙심이 깊은 과부 요안나 샹탈이 품행이 방정치 않은 아들의 영혼의 구원을 염려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제8편을 읽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을 듣고 읽어보니 거기에는 역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청년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몇 년 동안이나 기도를 계속한 끝에 그녀의 소원이 풀어져 자식이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수덕에 힘써 매우 위대한 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요안나는 이에 탄복하고 노력에 노력을 하며 성녀 모니카를 본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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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건한 자모의 거울인 성녀 모니카는 332년 아프리카 북쪽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명문 출신이었으나 집안은 매우 가난했다.

모니카가 어렸을 대에 주로 그녀의 교육을 담당한 것은 독실한 노부인으로서

다소 엄격했지만 매우 충실한 여자였다.

어린 모니카는 선량한 성격을 지닌 재미있고 온순한 아이로서 기도나 성당에 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이 남달랐고 특히 병중에 있는 빈민에게는

따뜻한 동정의 손을 펴 가끔 자기의 음식물까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때도 있었다.

또한 그녀는 용감스런 순교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가족 중에서

누가 순교자의 이야기만 하면 언제나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이와 같은 성격으로 보아 동정으로 일평생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야말로

모니카에게 적합한 성소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양친은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결정했으므로 그녀는 온순히 부모의 뜻에 따랐다.

상대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파트리치오라 하는 이교인이었다.

 

그는 가난한데다 나이도 모니카의 배 이상이나 되는 사람으로 난폭하고 걷잡을 수 없는 한량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젊은 아내를 사랑했던 것 같았으나 후에 마음이 변해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만으로도 모니카에게는 큰 고통이었는데 게다가

시어머니마저 까다로운 성격으로 매사에 모니카를 괴롭혔던 것이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자신의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최후에는 승리를 얻어

남편과 시어머니를 회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었다.

이리해서 우선 그녀의 아름다운 태도에 감복하여 신앙을 갖게 된것은 시어머니였다.

그 후 남편 파트리치오도 모니카의 일상 생활에 감명을 받아 행동을 고치며

종교 이야기에도 점차 귀를 기울이게 되어 마침내 세례를 받고 신앙심이 깊은 신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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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는 세 자녀를 낳았다.

그 중 두 자녀인 나비지오라는 남아와 페르페투아라는 여아는 어머니를 닮아 탄복할만한 아이였으나

다만 장남인 아우구스티노는 오랬동안 그녀를 괴롭힌 불효자였다.

 

그의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성질은 이미 소년 시대부터 나타났다.

그는 카르타고의 학교에 있을 때에 신앙을 져버리고 못된 향락에 빠졌으며,

또 오래지 않아 마니교에 들어갔다.

 

이런 일이 안 어머니 모니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아들의 학교 성적이 우수하다는 점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이대로만 나간다면 아들의 앞길에는 멸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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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남편 파트리치오도 죽어 모니카는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의 품행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를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도리어 부드러운 태도로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남몰래 눈물을 끊임엇이 흘리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는 아들의 죄의 보속으로 고신 극기를 행하고, 가난함 중에서도 될 수 있는 한

자비를 베푸는 사랑스런 마음가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의 일이다. 아들을 생각하다 참지 못하게 된 모니카는

타가스테의 주교를 방문하고 자기 고민을 털어 놓았다.

주교께서는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말하는 모니카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안심하십시오. 그런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될 수 없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씀을 천상으로부터 받은 대답으로 생각하고 더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아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갔다. 카르타고에도 갔다가 이탈리아의 밀라노에도 갔다.

그녀는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으로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로 있었던 성 암브로시오의 강론을 아우구스티노는 가끔 들으러 갔다.

그러는 동안에 성스러운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의 효험이 겨우 나타나게 되어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아들 위에 내리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직접 암브로시오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두뇌가 명철했던 주교는 즉시 이 청년의 영혼 상태를 간파하고

온화한 태도로 일일이 확증을 들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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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의 마음은 대단히 감동되었으나 아직 자기 거취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을 때

거룩한 이집트의 은수자들의 전기를 읽게 되고 그 고행의 생활에 매우 감동되어

"이 사람들이 한 것을 어찌 난들 못할 것이냐!"하고 부르짖었다.

그의 마음은 이제야 안정되어 즉시 교회의 품으로 들어왔다.

바라고 갈망하던 것이 마침내 실현된 것을 본 어머니 모니카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는 세상에 바랄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고 이렇게까지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눈물과 더불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개종한 후 모니카는 아프리카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오스티아에서 중병에 걸려

급히 달려간 아우구스티노와 그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때는 387년 5월 4일이었고, 그녀의 나이 5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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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니카 성녀는 332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녀는 비신자인 남편과 혼인하여 세 남매를 두었다. 모니카 성녀는 기도와 희생으로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성인이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남다른 기도와 눈물이 있었다.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뒤인 387년, 성녀는 쉰넷의 나이로 로마 근교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리라는 열렬한 기대 때문에 신자들이 생계나 직업을 소홀히 한 채 무질서한 생활을 한다거나 남의 일에 참견이나 하고 지내지 않을까 염려하여 조용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라고 당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에서 각자가 받은 탈렌트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충실히 일했는지를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은 탈렌트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탈렌트로 얻은 삶의 결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다(복음).
제1독서
  •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9-11 형제 여러분, 형제애에 관해서는 누가 여러분에게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하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예수님 시대에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화폐 단위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산하면 노동자가 6천 일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아주 큰 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탈렌트(talent)는 바로 여기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탈렌트를 소질이나 재능으로만 이해하면 왠지 불공평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보듯이 누구는 다섯 탈렌트를 받았는데, 누구는 한 탈렌트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TV에 나오는 숱한 재주꾼들이나 주변의 재능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왠지 자신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복음 속에 나오는 탈렌트를 세상 것으로 이해하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며 불만스러워집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탈렌트는 세상의 허황된 것을 얻으라고 주는 재능과 다릅니다. 복음적 탈렌트의 본뜻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사랑의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탈렌트를 많이 받았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못 받았다고 불만스러워할 것도 없어집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희생해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받은 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다섯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두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모두에게 주님께서는 똑같이 칭찬을 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세상을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탈렌트는 노력한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 대가는 공평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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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봉헌님의 댓글

아름다운봉헌 작성일

성녀 모니카여,
나주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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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알래님의 댓글

조알래 작성일

성녀 모니카여~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건강과 안전을 위해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모든 기도지향이 하루바삐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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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성녀 모니카여 ~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 자매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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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폴님의 댓글

죤폴 작성일

아멘.
성체사랑님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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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저희들은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다른 사람에 지시를

받고 강제해야 겨우 따라 가는 사람들 보면 그들은 하느님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이는가 하고 생각할때가 있다 하느님은

질서를 원하신다 결코 무질서를 원하시지 않는다  교회에서나

어디에서나  그들이 잘나서 차별화하기 위해 질서를 무시한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법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하느님께서 세워놓은 질서를 따르지않으면서 하느님께 울고 불고  하면

하느님께서 그사람 탄원을 들어줄것인가  한번쯤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적극적 못하드라도 어디에서나 공동체에 속하여 있다면  그 공동체 규울에

맞게 따르는것이 곧 하느님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쪽 어떤 사람은

서쪽 에 있으면서 복만 청하면 하느님께서도 나는 너를 모른다 조금만한것에 소훌한 너를

내가 너를 어찌 알겠는냐 하시면 책망하실지도 모릅니다  저희들은 나주 율리아 자매 말씀

따라 진행되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서 세운질서를 따라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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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성 모니카여 !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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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녀 모니카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축일을 맞이하신분 모두 늦어지만 축하드리며~
님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소서 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분님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성체사랑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정성도 합하여 바쳐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성체사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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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녀 모니카 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녀 모니카 시여!! 율리아님의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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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녀 모니카 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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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님의 댓글

어린양 작성일

성녀 모니카시여! 나주 성모님의 하루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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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성녀 모니카 시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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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아멘.

성녀 모니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안전과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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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ogratias님의 댓글

Deogratias 작성일

성녀 모니카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기도하시는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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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아멘.’”

성녀 모니카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기도지향이
이루어지시길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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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사랑님의 댓글

어머니사랑 작성일

성녀 모니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기도지향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빌어주시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승리가 이루어질수 잇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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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님의 댓글

피난처 작성일

성녀 모니카!

나주성모님의 더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시고
율리아엄마의 건강과안전을 지켜주시오며
교황님의 모든 기도지향이 아루어질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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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어머니가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한 자녀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아멘!

성녀 모니카시여!
한국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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