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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과 반역 내막- 아주 중요하니 필독 권유합니다.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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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뱃사공
댓글 22건 조회 4,815회 작성일 12-06-19 05:34

본문

제 3 장

개혁파 - 일신이체(一身二體) 의 마지막 편

꼼뮤니오의 설립은 개혁운동 내부 진영에 의견불일치가 있는 중대한 요소가 있음을 드러내는 제일 처음의 공개적 표시였고, 그러므로 나는, 그 때문에 이 날은 중요한 날이고 또 공의회 이래로 교회 역사의 전환점으로 보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칼 라너 신부와 비교하여 “신학적 비중과 해박함”에서 대등한 라이벌로 쌍벽(雙璧)을 이루는 폰 발다사르 신부는 개혁파에서 정통 진영의 추종자들을 위해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해 서둘러 주요한 해석자의 위치로 운신했다.

그러나 1980년쯤 그는 대체로 정통교리에 대해 칼라너와 같은 부류의 사상으로 변해갔다.

꼰칠리움과 꼼뮤니오가 상호 양 극단지점으로 치달으면서 신자들의 머리 위에는 신학자들 간의 별들의 전쟁이 벌어졌고,

 나머지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사상과 연관하여 캐톨릭 신앙과 비캐톨릭 신앙의 개념에 대해 자연력(自然力)이 이끄는 데로 끌려갔다.

비록 꼰칠리움에서 쏘아대는 수많은 대공포화에 맞고 게다가 다른 악영향으로 인하여 끌려 간 신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혁파와 새 신학의 혼합된 본성이 신자들 사이에 혼란을 초래한 주된 원인이었다면, 부가적 사유는 공의회 당시에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과, 신 프로테스탄트 신학 및 프랑스의 개인주의적 인본주의의 전문용어를 차용하여 새로 만들어 사용한 전문용어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신자들은 이미 죄, 은총, 성화, 구원에 관하여 듣지 못하거나 또는 들어도 아주 희귀할 정도이다.

강론들은 헌신, 만남, 공동체, 다원론(多元論), 대화, 화해, 신앙의 경험(또는 체험. experience)과 같은 말로 넘쳐난다.

 영혼을 생각하는 장소에서 사람들은 “오직 사람”에 관해서만 생각하도록 가르쳐졌다.

신적 계시를 말하는 대신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관해서 들었다.

 더 이상 신앙에 대한 가르침이나 강론도 없이 오직 너저분한 설교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죽으심에 이은 부활은 “그리스도 사건”정도로 언급되었다.

 

_ 현재의 한국교회 대부분의 사제들의 가르침의 현주소를 설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역주-

 

교회에 저 따위 전문용어를 도입한 사연은 후에 살펴 볼 것인데, 비록 새 전문용어가 캐톨릭적 의미를 완벽하게 살리고 있다 하지만 꼰칠리움 가르침과 함께 낯선 말(새 전문 용어)로 하는 설교와 이단사상을 동시에 들었으니,,

이것으로 실망했든지 기뻐했든지 간에 많은 신자들은 공의회는 실제로 교회 가르침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그렇다고 해서 별로 놀랄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혼란이 야기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유는 공의회 작업이 가지는 특성에 있었다.

우리가 말했다시피 신앙의 중심점을 변동했고, 동시에 새 교리를 전개할 수 있는 단초를 도입했다.

허지만 실로 이런 일들은 교리를 정의하고 오류를 정확히 나타내는 것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렵다. (이전의 거의 모든 공의회에서도 그랬다.)

 

설명해보도록 하자.

어떤 선생이 어떤 주제를 놓고 한 부분에서 다른 쪽으로 변동해갈 때 실제로 그가 움직이려 하는 것은 청중의 관심 초점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가 움직이려는 내용에 청중들이 중점적으로 집중하기를 바란다.

헌데 우리는 지금까지로 봐서는 한 방면으로 너무 많이 갔었지 않았나 하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더불어 시작해야할 것은 반대편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여러분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만 한다면, 그 운동력을 여러분이 원하는 정지선에 정확하게 이르게 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에 따르려 하는 그러한 경향이 있는데 마치 사람들의 물리적 집단이 독특한 운동력을 가진 것처럼, 유리한 입장에 있던 신학적 혁신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운동력이 부가적으로 중대하게 작용했다.

예를 들면, 만약 여러분들이 시종일관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반면에 하느님의 거룩함과 정의(正義)에 관해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청중들은, 자신들은 거의 무죄하며 그러므로 구원은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신자들은 사제만큼 중요하다고 자주, 필요 이상으로 말한다면 결과적으로 신자들도 미사를 집전하고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어떤 정도로 마음에 그려볼 것이다.

 현세의 선함과 최상의 선을 달성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만 역설한다면, 거의,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관한 것은 잊어버리고, 천국을 획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애물도 무시할 것이다.

캐톨릭들과 그리스도인들 또 다른 종교들도 공통점들이 있다고만 말해도, 사람들은 각각의 종교에 특이한 요소도 결과적으로 볼 때 그 의미는 전혀 없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달리 말해, 여러분들이 공의회가 특정하게 목적하고자 한 방면은 고려하지 못하고 주로 가르치는 요점이 오로지 사람에게 더 위대함을 부여하려 했던 것이구나 하고 여겼다면, 껍데기만 충성을 표하면서 다른 종교를 생산할 것이다.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과 같았다.

 공의회는 어떤 압박감을 느끼는 신학적 문제((t서구 유럽에서 증가하는 -역주) 불신자의 구원과 하느님 설계 안에서 문명화와 진보의 역할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만 알고 엄밀한 한계를 정하지 않은 채 많은 해결방안의 도입을 허용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또 상이(相異)한 사람들이 모인 것에 관한 다른 저자의 말을 빌리면 공의회는 “해결책” 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들어오게 된 “열린 문”이 되었다고 할 수 있.

이 모든 것은 교황 요한 23세께서 결정하신, 공의회는 “사목적”이라야 한다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열린 문”은 환영객뿐 아니라 불청객도 더 용이하게 들어오게 한다.

 이 길을 통하여 공의회 이전에 존재했든 것보다 더욱 커다랗고 위험한 불균형이 일시에 생겨났다.

 

한번 진행 중인 양면 과정을 통제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아마도 공상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여섯 명이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연료가 바닥난 차를 밀어 가고 있다.

그 중 세 사람은 차에 올라 앉아 20야드만 밀어서 대피소에 가도록 했다.

도와 준 다른 세 사람은 50야드를 밀어라는 줄 인식하고 차 주인과 친구 두 명이 탄 차를 도로측면의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일단 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설사 절벽 끄트머리는 아니라할지라도 아마 출발점에서 20야드 보다 더 나아가 정지할 듯하다.

이제 우리는 가까운 언덕에서 저 일련의 과정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정해보자.

처음 그들은 그 여섯 명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때 사람들은 뒤의 세 사람이 차에서 손을 떼는 것을 보았고, 아마 앞으로 달려가서 차를 세우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해자는 어느 쪽인가?

지금에 와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그 과정을 진행 시켰다.

이와 같은 꼰칠리움의 가르침이 개혁과 더불어 발생했다.

교황청과 정력적인 주교들이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거나 견제하려고 진력했을 때마다, 혁신자들은 그럴듯한 외관을 총동원해 그들이 공의회 작업을 뒤집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믿는 많은 신자들에게 호소하기만 하면 되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건드린다는 것은 공의회와 개혁을 동시에 간섭하는 것이오.”

 

* 역주.

.종교적 다원론 ; 모든 종교의 내용은 동일하다는 의미 내에서 종교혼합주의나 범신주의 등에서와 같이 다수의 절대자를 인정하는 다신교(多神敎)를 종교적인 다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만캐톨릭으로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며 만약 이를 허용한다면 캐톨릭은 성서의 믿음과 유일신의 신앙을 포기해야 한다. 키엘 케고르, 칸트, 하이덱거, 데카르트 등 현대철학자들의 명제, 반명제와 중간명제, 그리고 주체, 객체, 중간존재 등의 인식론적 다원론은 종교적 다원론의 문호를 활짝 열어 주었고, 오늘날 캐톨릭의 반역자들인 현대주의자들이 종교적 다원론을 교회에 보급하는 것도 계시종교를 부정하는 현대철학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서공석 신부와 같이 교회의 민주화 운운하면서 교황과 고위성직자들의 임기를 제한하고 선거로 뽑자는 것이나, 정양모 신부의 신앙파괴적 성서 주해 및 이제민 신부의 "케톨릭은 믿음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들 모두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장의 마지막 내용은 작금 한국 교회에 만연한 현대주의를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정으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올립니다.

저가 편집한 "에수 그리스도 부정되시다"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내막과 성서의 부정에 대한 부분은 "혼란과 진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특히 "혼란과 진리"는 역사적으로 교회를 살피면서 현대주의가 태동하여 교회에 접목되어 오늘날의 혼란을 초래하기 까지 수많은 연결고리들의 정확한 발자취와 작금의 정확한 교회의 현주소를 아시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http://blog.naver.com/nwfs6530 에 실어 두었음으로 필히 보시기 바랍니다.

정식 출판을 제외하고 복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시는데 어떤 이용도 무방합니다.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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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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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아멘.

뱃사공님, 감사드립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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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종교적 다원론 ; 모든 종교의 내용은 동일하다는 의미 내에서 종교혼합주의나 범신주의 등에서와 같이 다수의 절대자를 인정하는 다신교(多神敎)를 종교적인 다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만캐톨릭으로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며 만약 이를 허용한다면 캐톨릭은 성서의 믿음과 유일신의 신앙을 포기해야 한다. 키엘 케고르, 칸트, 하이덱거, 데카르트 등 현대철학자들의 명제, 반명제와 중간명제, 그리고 주체, 객체, 중간존재 등의 인식론적 다원론은 종교적 다원론의 문호를 활짝 열어 주었고, 오늘날 캐톨릭의 반역자들인 현대주의자들이 종교적 다원론을 교회에 보급하는 것도 계시종교를 부정하는 현대철학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서공석 신부와 같이 교회의 민주화 운운하면서 교황과 고위성직자들의 임기를 제한하고 선거로 뽑자는 것이나, 정양모 신부의 신앙파괴적 성서 주해 및 이제민 신부의 "케톨릭은 믿음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들 모두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님의열정과 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또한 너무 고맙습니다.
영육간에 건강을 빌며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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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사랑하올 뱃사공님
진리를 목말라 하시고 정의를  부르짖는
님의 목소리 우리 모두에게 울려 공감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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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님의 댓글

탕자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아 - 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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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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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루님의 댓글

베드루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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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백합님의 댓글

맑은백합 작성일

"주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교황에게 순명으로
완전히 일치해야 될 성직자들 중 많은 수가
순명하고 일치하기는 커녕 현대신학과 오류에 물들어
세상과 타협하면서 교오하게도 진리를 가장하여
교도권의 이름으로 악성 유언비어까지 유포하고 있기에
그는 늘 외롭게 갈바리아의 고통을 겪고 있단다."
(2002년 1월 6일 성모님)

현대신학에 관해 나주 성모님께서 메시지에서도
통탄을 하고 계시네요

우리 교회의 아버지이신 교황님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 바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님 이하 성직자 수도자분들이 정말
효성스런 자녀적 순명을 다하실 수 있기를 또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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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 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 고 믿습니다...아멘...

뱃사공님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 성모님 사랑 가득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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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아멘!!!아멘!!!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지원자님들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뱃사공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마음도 합하여 바쳐
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뱃사공님...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다함께 기도의 힘 모아드려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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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아멘.
뱃사공님~감사드려요^^*
주님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안에서 기쁨과 사랑 평화 가득한
행복한 삶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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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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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젖님의 댓글

성모님젖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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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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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정말 오늘날의 신자들은 죄 은총 성화 구원등등에 대하여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조차 없습니다.
사제가 그것들을 가르치며 생활하도록 했어야 함에도불구하고
 사제들은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지요.
정말 지금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입니다.지금은 신앙보다
세속적인 일에 더 바쁘답니다.
나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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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감사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봉헌합니다!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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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혼란한 이세상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아버지의 뚯대로 이루어지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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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뱃사공님 제가 한동안은 신부님 강론에 아주 온 정성을 다하여 듣고 마음에 새기고
강논 시간이 짧으며 불평 할정도로 열심히 들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도
모루게 신부님 강론이 저에 마음속에서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분이 하느님 믿고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신부님인지 경계가 모호 해지기 시작한것이였지요 물론 모든
신부님이 다 그러신것 아니고 휼륭하신 신부님도 많히 계셨지만 저의 본당에서 만나신
신부님이 거의가 하느님 보다 다신론적 신앙을 선호하시는지 마음이 너무 넓어 우상 신들까지
사랑에 빠져 그러셨는지 저 알수는 없었지만 분명한것은 신부님 강론들이 저희 정통 교회에
벗어난 강론으로 일관한 강론이였다는것 밖에 저에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다 해서 그신부님들에 어떻한 불쾌한 감정보다 안타까운 마음만 있었을 뿐이지요
저는 매일 세상 모든 신부님들에 영육간 건강과 성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드려오고 있는 시간이
수년이 지나 오고 있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존경하고 저희 평신도들이 신부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저에
신념에서 이러한것이지요 뱃사공님 저는 모든 신부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뱃사공이님 덕분에 더많은
하느님 사랑하는 법과  참 하느님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게 하여 주신데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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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주님! 성모엄마!
어서 빨리 승리하시어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교회의 쇄신을 이루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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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밥님의 댓글

잡곡밥 작성일

감사합니다~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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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승리님의 댓글

사랑의승리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사랑하는 교회를 쇄신하러 오신 나주의 성모님 어서 인준 이루어 주소서!!!
뱃사공님의 열정과 사랑에 저의  마음을 모아드리며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해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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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정원님의 댓글

하늘정원 작성일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원천이 현대주의에 있으며,  성모님은 이 괴상한 신앙 상황을 개선하시려고 나주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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