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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신앙교리성과 약속을 깬 "광주대교구는 즉시 유보된 나주 현상을 재조사 하세오." --진리방 사람들 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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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죤폴
댓글 23건 조회 3,082회 작성일 13-09-18 10:42

본문

나주기적의 평가 미스터리(7-3)

 

들어나는 광주대교구 공지문의 숨겨진 진상

 

광주대교구장님 나주 기적의 인준을 위해 빌어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나주 기적의 인준을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나주 윤 홍선 율리아 씨의 소유 성모상이 눈물 흘리신 지도 28주년을 넘겼습니다.

시리즈 문건 글을 접을까(끝마칠까) 하다가 광주대교구 인터넷 ‘참여마당 사랑방 홈 페이지’에 쓴 어떤 분의 글을 보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 글이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근 3년 동안 무려 86편을 써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글의 내용은 나주 기적의 주인공 격인 윤 홍선 율리아 자매의 소유 성모상을 통해 일어난 기적과 그녀를 통해 일어난 성체, 성혈 등의 기적을 믿는 사제, 수녀 그리고 핵심 평신도들을 율라아 자매와 함께 싸잡아 상상치도 못할 욕설로 도배하다시피 한 글이었습니다.

<진리 방 사람들>인 필자는 우연히 그 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다룬 곳이 광주대교구 인터넷 홈 페이지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고 또 이 글을 본 분들처럼 그 험악한 욕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리 방 사람들>인 필자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욕설의 명분과 빌미를 준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우리들(순례자)도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이 욕설을 쓴 독설가의 5번째 글에 뜻밖에도 광주대교구의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신 김 계홍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님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글은 “이상한 ‘성모상’에서 ‘나주 성모님’ 까지” 라는 제호로 2009년 5월호 경향잡지에 실린 것입니다. 필자는 이 글 중에서 문제가 된 핵심 부분을 여기에 싣겠습니다. <진리 방 사람들>인 필자의 의도는 이 김 계홍 신부님이 쓰신 글 안에 깜짝 놀라운 사실과 사건들이 실려 있어서였습니다. 앞으로 필자는 이 부분들을 밝혀 분석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필자는 또 이 중차대(重且大)한 내용을 재작년 2011년 5월 1일부로 수원교구에서 주보 간지에 발표한 전 신앙교리성 장관 월리암 레바다 추기경님의 광주대교구 김 희중 대주교님께 발송한 것으로 되어 있는 서한과 같이 실어, 이를 비교 분석하여 ‘공지문(公知文)에 숨겨진 내막을 밝혀 보겠습니다. 너무나 엉뚱하고 놀라운 내용들이 담겨져 있어서 읽으시는 분들도 놀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말미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성체의 기적과 깊은 연관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성체 기적과 나주의 기적들을 다 같이 인준해 주시게 될 찌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기원하며 기대를 갖는 것이 우리들 모두이고 또 <진리 방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또 수 주 전에 가톨릭 언론에 발표한 고 교항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니 이 점을 감안하여 나주 문제에 대한 선, 현 교황님들의 서로 얽힌 기막힌 사연들도 상세히 살펴보겠으니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은 주교님, 신부님들 뿐 아니라 우리 평신도들께도 같이 읽히기를 바라는 글이므로 전국 사제님들께 결례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용서하시기 빕니다.

숨겨진 사실(事實)의 진상 -교구장님 신앙교리성 장관을 만나다-

다시 본 글로 돌아가겠습니다. 문제의 글은 김 계홍 신부님께서 “이상한 ‘성모상’에서 ‘나주 성모님’까지”의 제목으로 경향잡지 2009년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 글의 내용에 대단히 중요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김 계홍 신부님의 글에서 발췌한 글들입니다.

[...... 광주대교구장은 1992년 5월 (기적의) 진위(眞僞) 여부를 가릴 조사위원들을 선정합니다. 이즈음 자매는 주변 동조자들과 함께 해외(海外)로 나가 자신의 체험을 전파하여 동조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였고, 몇몇 방문지에서 성체 이변(聖體 異變)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유사한 주장도 이어졌는데, 성모상과 성체가 나란히 찍혔으며, 1994년에는 몇몇 성직자들이 경당(經堂)을 찾았을 때 성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교구장은 1994년 12월(약칭)‘나주 조사위원회’를 공문으로 통지하여 본격적인 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위원회’와 교구장 공지문

‘조사위원회’는 1995년부터 1996년 초까지 조사 활동을 합니다. 자매는 이 기간 중에도 성체 이변(聖體 異變)을 주장하는데 1995년 10월 교황 방문 미사에서 성체 이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광주대교구장은 1996년 2월에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신으로 전달하고 3월에는 신앙교리성 장관(현 교황 베네딕도 16세)과 만납니다. 교구장은 이 만남에서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확인합니다.

교구장은 1997년 6월 ‘조사위원회’의 종합 의견서를 신앙교리성에 전달하고 1998년 1월 1일에 1차 ‘공지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 ]

이상이 경향잡지에서 발췌한 김 계홍 신부의 글입니다. 1992년 5월 공식 조사 활동도 아니지만 첩보 활동 정도의 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여지는 조사위원이 선정되고, 이 기간 동안 윤 홍선 율리아 자매의 해외(海外) 활동이 소개됩니다.

다음은 레바다 추기경님의 서신에서 문제의 부분을 발췌해 싣고, 또 김 계홍 신부께서 이미 경향잡지에 실린 글과 함께 이 두 글을 비교,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서신 자체가 혼란스러운 -자기 모순(自己矛盾)에 빠진- 이상한 편지

[신앙교리성 문서 번호 : 112/1993-35015

존경하는 김 희중 대주교님.

--이하 서신(書信)에서 문제된 부분의 발췌문(拔萃文)--

.... 김 대주교님의 요청에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2008년 4월 23일자로 대주교님의 선임자이시며 광주대교구장이셨던 최 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께 보내드렸던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이하는 서신 내용입니다.)

“최 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의 전임자이신 공경하올 윤 공히 빅토리노 대주교님께서는 나주 문제에 대해 신앙교리성과 충분한 의견을 나눈 후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확실치 않다(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 라고 공지(1998. 1. 1)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는 신앙교리성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합의를 거쳐 내린 결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윤 공희 대주교님께서 내리신 결정과 후임자이신 최 창무 대주교님께서 취하신 조치에 대해 신앙교리성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계속해서 받아드릴 것입니다. ..... ]

이상 혼란스러운 서신의 분석 고찰

이상이 전 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님의 문제가 되고 그 자체로도 모순, 혼란스러운 부분을 발췌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분석 고찰해 보겠습니다.

첫째, 눈에 띠는 점은 서신의 문맥이 뒤엉킨 점입니다. 레바다 추기경께서 전임 신앙교리성 장관이셨던 라칭거 추기경님과 전임 광주대교구장 윤 공희 대주교님께서 분명히 충분한 의견을 나누신 후에 내린 결론이 -나주의 현상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에도 확실치 않다(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고, 공지(1998. 1. 1)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이변(異變-奇蹟)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더 두고 보아야 할 현상으로 유보(留保)의 결정으로 처리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내린 문제의 합의 사항들은 신앙교리성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 입니다, 라고 엄중히 그리고 강력하게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레바다 추기경님이 김 희중 대주교님께 보내신 서신에는 나주 문제를 ‘공지문’ 등에서 (위 남색 그리고 붉은 색 부분)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판정을 내리신 윤 공희 대주교님의 결정과 이 결정을 따라 취하신 최 창무 대주교님의 조치에 대해, 그러니까 유보(留保) 첫 번째 내린 결정에 따르지 아니한 두 대주교님의 처사를 신앙교리성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계속해서 받아드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 이러한 객관적인 모순(矛盾)과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 괴리(乖離)의 서신이나 글 또는 사건의 처리가 신앙교리성 자체 내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해괴(駭怪)하기 이를 데 없는 글입니다.

이상의 것이 서신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라면 광주대교구의 과오(過誤)를 광주대교구가 전혀 면책(免責)될 수 없는 사항입니다.

반대로 이런 서신이 바티칸에서 발송된 것이라면 레바다 추기경님의 의식과 사고(思考)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他)의 조작(造作)이라면 흔히 이야기하는 마쏘네나 푸리메이슨의 장난의 손길을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서신에 레바다 추기경님의 사인(自筆)이 실제로 서명되지 않은 것을 탓잡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서신에는 실제로 레바다 추기경님의 싸인(自筆)이 없습니다).

둘째, 다음에는 ‘.... 확실치 않다.’ 라고 공지(1998. 1. 1.)괄호 속에 적혀 있는 라틴어에 이어 나오는 “공지(1998. 1. 1)하셨습니다” 라는 괄호 속 날짜가 눈에 띨 것입니다. 이 숫자는 분명히 1998년 1월 1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 교리성 자체에서는 1998년 1월 1일에 나주의 기적을 부정적인 기적으로 발표한 광주대교구와는 달리 신앙교리성 독자적으로 신앙교리성과 광주대교구가 합의한 나주의 기적을 유보 상태(留保 常態)로 발표했다는 시실을 표명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한 가지의 기적 사실을 가지고 신앙교리성과 지방교회가 각기 상반되는 다른 발표를 해 버린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같은 기적 사건을 가지고 광주대교구와 신앙교리성이 이렇게 서로 다르게 발표랄 수 있는 것입니까?

다만 발표 양식이 광주대교구는 <교구장 공지문>을 통해서 발표했고, 신앙교리성은 자체 내의 문서를 통해 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1998년 1월 1일, 이 날은 지방교회인 광주대교구에서도 신앙교리성과 합의 결정한 기적의 유보 상태(留保 狀態)를 ‘1차 공지문’에 발표하게끔 되어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한 약속한 ‘1차 공지문’은 모두 아시다시피 나주의 이변(異變)이 기적(奇蹟))이 아니라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광주대교구의 일종의 반란입니다.

광주대교구는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무엇이라 이름 지어야 할런지요?

분명 광주대교구의 상급 기관인 바티칸의 신앙 교리성에의 처사에 대한 무시(無視)와 묵살(黙殺)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판단이 나려질진대 이는 분명히 상급 기관에 대한 불 순명(不順命)으로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이 이제까지 광주대교구에서는 공공연히 공식적으로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고도 관할 지역까지 뛰어넘는 성직자나 평신도들에게까지도 대주교님께 나주 기적과 같은 일로 불순명한다고 교회법에도 없는 자동 파문의 명을 내리셨으니 이에 해당되는 당사자들은 망연지탄(茫然之歎)할 수박에 없습니다.

또 교회법상 이런 항목이 어데 있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신앙교리성에서 2011년 3월 30일 김 희중 대주교님께발송한 서신에 따르면 ‘1차 공지문’이 유보로 합의된 사항이 아직까지도 신앙교리성 문서에는 그대로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가 하는 추론을 허용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레바다 추기경님의 서신에서 유보로 결정된 사실을 발표하기로 한 날이 왜 광주대교구가 ‘공지문’을 발표한 날자인 1998년 1월 1일(괄호 속의 날자)로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분명히 광주대교구에서 신앙교리성과 합의 결정된 기적의 유보를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했어야 하는 날입니다.

이것을 광주대교구에서는 어겼습니다.

이상의 이상스러운 두 문장만 가지고도 이 서신은 정상적인 서신은 아니다 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셋째, 광주대교구의 김 희중 대주교님과 전임 두 주교님들께서도 모두 나주 문제를 교황청에 문의했습니다.

그러나 김 희중 대주교님의 전임자 두 대주교님이 발표하신 공지문이나 교령 지침서 등에는 교황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김 계홍 신부님의 경향잡지 글에서는 윤 공희 대주교님께서 1996년 2월에 ‘나주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같은 해 3월에는 윤 대주교님께서 신앙교리성 장관(현 교황 베네딕도 16세)과 직접 만나신 것으로도 나옵니다.

모두 나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주대교구에서 이런 사실을 공적으로 발표한 사실은 없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모두 비밀에 붙여 두고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최 창무 대주교님께서도 신앙교리성과 교신이 있지 아니 했는가하는 추측이 나옵니다.



그것은 레바다 추기경께서 김 희중 대주교님께 보낸 서신에서 실마리가 잡힙니다.

레바다 추기경님의 서신에는 2008년 4월 23일자로 최 창무 대주교님께 추기경님의 서신이 발송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교리성에서 최 대주교님이 요청하지 아니 한 서신을 보낼 까닭이 있을까요?

내용은 모르지만 분명히 최 대주교님께서 신앙교리성에 답신을 의뢰하는 서신을 보내셨을 것이 확실시 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기적 등의 신앙문제를 다룰 때 1차 조사와 판별권은 기적이 일어난 교구에서 가지고 있지만 그 최종 판별권은 신앙교리성에서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황청 기구에 신앙 교리성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신앙교리성에서 최 창무 대주교님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이런 문제는 신앙 교리성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협의를 거쳐 내린 결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강조한 뜻이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광주대교구에서 윤 공희 대주교님과 최 창무 대주교님의 ‘공지문’이나 교령, 지침서 등에서 바티칸 신앙교리성과의 내적인 교신이든가 방문 등이 있었지만 외형상으로 신앙교리성과의 교신 언급을 못한 이유는 신앙교리성과의 협의한 결정을 이행치 안한 데, 아니 못한 데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혹(苛酷)하게 평하면 하급 기관인 광주대교구가 상급 기관인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불순명(不順命)이 되는 것이고 이러면 이것이 교황청에도 항거(抗拒)하는 것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교황청과도 갈등을 빚고 있는(순명치 않고 있는) 대교구장님이 이런(기적 사건 등) 일로 평신도에게 강압적인 순명을 강요할 수가 있고, 이에 평신도가 순명치 않을 때 이것을 자동 파문(自動破門)이라는 엄벌(嚴罰)로 다스린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주 기적을 놓고 이 기적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광주대교구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입니다.

‘공지문’에 숨겨진 사건의 순별(順.別) 기록(김 계홍 신부님 글에서)

여기서는 김 계홍 신부님의 글에 발표한 사건의 기록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기록된 사건의 순별(順別)분석 고찰을 하고 이에 따른 비판적 해설을 첨가하겠습니다.

①, 교구장은 1994년 12월에 ‘(약칭)나주 조사위원회’를 공문으로 공지하여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합니다.

--(해설)-광주대교구는 1985년 6월 30일 나주 윤 율리아 자매 소유 성모상에서 첫 눈물을 흘리시고 이어 성모님 메시지가 율리아 자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으며 또 피눈물까지 흘리시기 시작한 지 거의 만 10년 되는 해에 ‘나주 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 발족도 1994년 10월 24일 당시 주한 교황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께서 나주 성모의 집을 사적으로(공적 방문을 원했으나 당시 사무처장 장 용주 알베르토 신부의 집요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구 성모당 강론에서자신이 밝혔다) 방문했을 때 허공에서 성체가 내리시는 기적을 체험하시자 이 기적 사건도 교황청에 보고될 것을 예측하고 광주대교구는 서둘러 ‘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 때 교황 대사의 기적의 체험은 즉시 교황청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②, 자매는 이 기간 중에도 성체 이변(聖體 異變)을 주장하는데 1995년 10월 31일에는 율리아 자매의 교황청 교황 방문 미사 때에도 성체 이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해설)-‘조사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1995년도에 나주의 기적도 가장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나주 조사위원회’가 발족되어 1996년도 1년간에 ‘공지문’ 발표까지 3년간이지만 실제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것은 1995년도 1년간에 불과했음이 들어납니다.

그런데 발맞추듯 이 해 기적도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다음은 월별로 일어난 기적을 알아보겠습니다.

1995. 06. 30. ; 나주 천주교회에서 눈물 흘리신 10주년 기념 미사 때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었습니다.

카나다 루이 보스만스 신부님 외 여러 나라 신부들과 마사 참례 교우들이 목격하였습니다.

1995. 07. 01. ; 눈물 10주년 기념 철야기도회 때 나주 경당에 모셔 논 십자고상에서 일곱 개의 작은 성체가 내려오셨습니다. 괌의 피터 마르시알 신부 외에 여러 나라 신부들과 많은 교우들이 목격하였습니다.

1995. 07. 02. ; 일곱 개의 성체 중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 되었습니다. 프란시스 수 신부와 피트 마르시알 신부 외 다수 교우들이 목격합니다.

1995. 08. 24. ; 성모님 동산 미사에서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수 주교님과 수 신부님, 참석한 여러 교우들이 목격하였습니다.

1995. 09. 22. ; 성모님 동산 미사에서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 되었습니다. 로만 다닐락 주교님과 핀 베드로 신부, 장 신부 등이 목격 합니다.

1995. 10. 31. ; 교황청 미사 때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벼화 되었습니다. 교황님, 비서 신부와 한국 주교회의 사무총장 백 요한 몬시뇰 등이 목격하였습니다.

나주에서 본격적인 ‘나주 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이 있던 1995년도 율리아 자매를 통해 일어나는 성체 변화의 기적이 여섯 차례나 일어났습니다. 20여 년간에 걸쳐 33회가 일어난 성체의 기적이 1년 사이에 여섯 차례입니다.

여섯 차례 중 마지막 기적은 한국 주교회의 사무총장이셨던 백 요한 몬시뇰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율리아 자매의 교황청 방문 시 교황님 알현 때 교황님 미사에서 성체변화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95년 10월 교황청 방문 미사에서 성체 이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고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을 방문한 사실을 광주대교구 측 인사가 말이나 기록을 통해 한 사실은 김 계홍 신부님이 처음이신 것 같습니다.

필자는 광주대교구에 꼭꼭 숨겨져 있어 벙끗도 하지 않던 사실이 김 계홍 신부님을 통해 발표되는 것을 참으로 신기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광주대교구 안에 숨겨졌던 사실이 하나하나 풀려가고 있습니다.

 

윤 공희 교구장 교리성 장관을 만나다.

 

김 계홍 신부님 글을 여기 인용하겠습니다.

광주대교구장은 1996년 2월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하고, 3월에는 신앙교리성 장관(전 교황 베네딕도 16세)과 만나십니다.

 

--(해설)- 이상으로 이상하다, 어떻게 ‘1차 공지문’에서 교황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을까? 하는 뜻있는 분들의 의혹이 풀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 문제 등의(기적과 같은 문제) 주교님 ‘공지문’도 교황청 언급이 없이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일반적으로는 그렀습니다).

 

광주대주교님의 ‘공지문’이 그러했으니까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그렇지 아니한 데 말입니다. 그러나 나주 문제에 대해 광주대교구에서 교황청하고의 충분한 의견교환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교라성과 합의한 내용을 어겼으므로 이를 언급할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이런 내막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광주대교구라 할지라도 이런 신앙문제를 다룰 때에 발표하는 '공지문' 등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과의 협약이 있었다면 반드시 이 협약을 언급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주대교구 ‘공지문’에는 그런 발표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언급을 못한 내용이 수원교구에서 발표한 전 신앙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께서 광주대교구장 김 희중 대주교님께 발송했다는 서신 속에 명명 백백하게 적혀 나옵니다.

 

그 내용을 다시 보겠습니다. “최 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의 전임자이신 공경하올 윤 공희 빅토라노 대주교님께서는 나주 문제에 대해 신앙교리성과 충분한 의견을 나누신 후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확실치 않다(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라고 공지(1998. 1. 1)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신앙교리성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협의를 거쳐 내린 결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레바다 추기경님의 서신에 상세히, 명백하게 언급되어져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나주의 기적이나 성모님 발현과 같은 사적 게시 문제를 판정할 때는 세가지 유형으로판정을 내립니다.

 

1, 초자연적 현상으로 확정한다 :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2,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한다 : constat de non s upernaturalitte

3, 초자연적인 것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기적의 판정은 이상의 세 종류로 내리는데 3 번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확정되지 않는 경우는 유럽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와 한국의 나주가 이에 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과 같이 3번에 속하게 되면 다음 두 가지로 처리됩니다.

 

① 초자연 현상이 일어난 지역의 1차 판정 권을 갖고 있는 관할 교구라 할지라도 조사 상에 명백한 문제가 있으면 교구든가 신앙교리성에서 재조사를 합니다.

②, 아직도 초자연적인 현상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경우에도 역시 기적을 유보(留保) 판정합니다. 이 경우에는 기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가 현재의 상황만으로 재조사를 실시하든가 합니다.

3, 3번째의 경우가 이상에서 말했듯이 유럽 보스니아의 메쥬고리에와 한국의 나주의 기적 등입니다. 그리고 3번째의 경우, 개인적으로 참배도 가능하고 공식적인 것이 아닌 미사나 예절 등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논하는 미국 위스콘신주의 성모님 발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당황했고 난처했을 교황청 신앙교리성

 

--(계속되는 해설)- 광주대교구장은 1996년 2월 ‘조사위원회’의 활동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했다고 김 계홍 신부님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말에 발족한 소위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이미 1996년 2월에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실제로 조사 활동을 벌인 기간은 1995년 단 1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사실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그 조사 기간은 6개월도 채 못 됩니다. 왜냐하면 광주대교구의 ‘나주 조사위원회’가 그 해 6월에 조사위원장 김 재영 신부님의 명의로 공지문과 거의 유사한 중간 보고서를 세상에 발표했으니 이렇다면 그 때까지는 이미 조사가 끝났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실제 조사를 한 기간은 6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입니다.

 

공지문에서도 표현했듯이 근 10년간 성모상으로부터 오는 이변(기적)과, 율리아자매를 통해 일어난 현란하고 다양한 그리고 그 수많은 성체와 성혈의 이변(異變-奇蹟) 등을 고위 성직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보고 체험하도록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 다양하고 수많은 이변(異變-奇蹟)들을 단 1년 동안에, 아니 6개월도 채 되지 못하는 짧은 기간에 광주대교구의 ‘나주 조사위원회’가 어떻게 조사를 했다는 말입니까? 도무지 그 단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조사를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사 활동은 이미 조사위원들이 기적의 부정적인 유언비어(流言蜚語)에 휩싸여 그 조사 보고서 역시 부정적인 시각으로 작성했을 때 가능합니다.

그 것은 조사위원들의 한 두부의 기적의 발상지 나주를 한 번쯤 방문했을까 말까하는 정도였고, 대주교님은 한 번도 현장을 방문하시지도 아니 하셨다는 사실에서도 뒷받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현장 자료들을 광주대교구는 ‘공지문’에서 면밀하게 조사 활동을 다 했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른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조사활동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보고서가 작성되어 신앙교리성에 전달되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럴진대 이런 부실한 엉터리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을 누가 진단 말입니까? 이쯤 되면 이 나주의 보고서는 너무나 무서운 참 현실과의 괴리(乖離) 현상으로 곤두박질 쳐 흉하게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겨우 6개월도 채 안되게 벌인 조사 활동 보고서이고 보니 그 내용이 오죽하겠습니까.

 

이런 경우 작성될 수 있는 보고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것을 부정적 시각으로 일괄 결론을 유도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모든 나주에서 일어난 이변(기적)은 기적이 아니다 라는 부정적인 악성 유언비어에 휘말린 보고서가 작성되었음은 불을 보듯 빤한 사실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실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물증(物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조사위원회’ 위원 중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1차 공지문’ 초안도 기안한 것으로 추측되는 기초 신학박사이신 어떤 신부님이 계십니다.

 

이 신부님이 ‘나주 조시위원’으로 계시면서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계실 때 쓰신 녹지 않는 소금이라는 저서(著書)를 ‘공지문’이 발표되던 1998년도 6월에 출판하셨습니다. 이 저서의 8절 ‘사적(私的) 계시의 신학적 의미와 그에 대한 태도’ 라는 항목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나주의 율리아 측근은 최근에 소위 성체기적을 조작하여 이를 사진에 담아 율리아의 편지와 함께 전국에 배포하였다....”라는 우리가 보기에 무섭고도 섬뜩한 그러면서도 사실 가당치도 않은 글을 쓰셨습니다.

 

성체 이변(기적)을 조작했다니? 어떻게 조작을 했다는 말입니까! 조작 경위와, 양식과, 기술(技術)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이 학자라는 명성만 가지고 오만하게 이런 가당치도 않는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이 분께서는 모든 자신의 독자들은 저자의 권위에 무조건 승복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갔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글을 썼지 어떻게 씁니까? 어쨌든 이 어떤 신부님은 이런 상식적으로도 불합리한 거짓을 자기 저서에 당당하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더구나 이번 일과 같이 이변(奇蹟)이 일어나는 당사자인 율리아 자매가 조작(造作)하는 것도 아니고, 율리아 자매의 측근이라는 제3자가 부리는 조작행위다 라고 당당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적의 당사자인 율리아 자신의 입 안에서 일어나는 성체 변화의 이변(기적)을 제 3자인 외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남의 입 안에다 당사자도 모르게 조작한다는 말입니까?

 

학자라는 분들은 자신의 권위만을 믿고 이런 거짓말을 자신의 저서에 물을 마시듯 마구 해도 되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기(氣)가 막혀서 말문이 모두 옥으려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심스러운 것은 이를 읽는 독자들이 이런 문제를 아무 이의 없이 받아드린다는 것입니다.

 

또 사진에 담았다니 사진을 합성 조작하여 위조를 했다는 말인데 그녀의 측근 제 3자들의 인적 사항, 즉 어떠한 사람들이였다 라는 것을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분노 맞아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자님이신 이 어떤 신부님은 마치 어느 첩보 기관의 책임자인양 자신의 부하들이 수집해 온 첩보 정도의 정보(流言蜚語)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 무능(無能)하고 불성실(不誠實)한 책임자 같은 사람임을 스스로 들어 내 보이고 또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신부님이요, 더구나 가톨릭 신학대학교의 학위(學位)까지 소지한 교수님이시라는 데에는 벌어진 입이 닫혀 지지가 않습니다.

 

또 신앙교리성에 전달한 보고서라는 것이 ‘조사위’가 단 6개월만에 활동하여 수집한 활동 보고서입니다.

더구나 상기 언급한 사제가 ‘조사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니, 교구장이 신앙교리성에 전달했다는 그 보고서 자체도 그 사제가 초안을 작성했을 것으로 추측까지 갑니다. 이런 기막힌 사연이 있는 보고서를 전달 받은 신앙교리성의 난처하셨을 입장이 환하게 잡힙니다. 왜냐고요?

 

 신앙교리성에는 나주의 이변(기적)이 근 10년간 다른 경로를 통해 연이어 다양하게 보고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광주대교구로부터는 공식적인 보고가 한 건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해당 대교구가 근 10년간 공식 ‘조사위원회’를 늦장을 부려 설치도 아니 했으니 공적으로 보고할 건(件)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변(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는(나주) 교구청에 조사를 탄원해도 무시당하고, 애원을 해도 받아드릴 기구조차 없었기에 부득이 자체 경로를 찾아 로마 교화청에 보고하려고 노력했을 것은 뻔한 시실입니다. 더구나 주한 교황청 대사가 개인적인 자격으로라도 나주를 방문하여 성체 이변(기적)의 체험을 하시고, 이를 공식으로 교황청에 보고했을 것이 확실해 지니까 광주대교구는 그제서야 서둘러 1994년도도 다 차서야 “나주의 기적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이런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또한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에 방문 했을 때 교황님 스스로 성체 번화의 기적에 대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이 기적을 아무리 교황께서 보안을 위해 잠정 비밀에 붙였다 해도 교황청에서 일어난 기적을 주무부서인 신앙교리성에서 모르고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그때 마다 나주에서는 어떤 경로를 탔던지 계속 기적의 보고를 신앙교리성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나주 측에서 로마 교황청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광주대교구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대와 같은 세상에 통신망이나 인적 자원이 부실하고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게을러서 인지 무시해서인지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라도 나주의 이변(기적) 보고는 신앙교리성에 올라가 근 10년 동안 접수되고 있는데도 광주대교구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광주대교구에서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보고하려고 해도 아무런 자료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식 조시 기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신란하게 꼬집으면 광주대교구의 직무유기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어서야 겨우 신앙교리성에 전달된 광주대교구의 허구에 찬 공식 보고서가 처음 나왔습니다.

 

그런데 광주대교구에서 보낸 서신 보고서보다 먼저 나주 측에서 신앙교리성에 보낸 보고서는 모두 실증된 참다운 기적(奇蹟)의 사례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뒤늦게 광주대교구에서 보낸 보고서에서는 그와는 전혀 정반대의, 즉 나주의 이변(異變)들이 기적(奇蹟)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보고로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광주대교구 서신을 받은 신앙교리성이 당황했을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도 광주대교구는 정식으로 설치한 ‘조사위’에서 조사했다는 보고서이니 신앙교리성에서 인들 어찌하겠습니까.

 

이 보고서에는 성모상의 이변은 기적이 아니라고 한 것도 자연의 이치(理致)에 어긋나는 초능력(超能力)의 논리(論理)로 부정을 했고, 성체의 기적은 가톨릭의 전통 교리와도 어긋나는 이상한 주장(主張)을 한 그런 것이었으니 그 자체 만으로도 정통교리에 어긋나는 이단설(異端說)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정통 지방교회인 광주대교구가 이런 천만부당 이단적(異端的)인 부정적(否定的) 보고를 한 것에 당황했을 것은 신앙교리성 자체였습니다. 이와 같이 광주대교구의 조사 보고서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 뒤틀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조사였기에 그런지 이제부터 상고(詳考)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나주의 기적이 유보(유보-留保-non constat de supernatularitate) 된 사연

 

신앙교리성에서는 비공식으로 나주의 이변(기적)에 대한 보고를 이미 접수하고 광주대교구로부터 공식적인 조사 보고가 올라오면 이를 검토하여 나주기적의 인준을 교황성하에 품신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96년 2월에 광주대교구장께서 신앙교리성에 서신을 통해 전달한 보고서는 나주의 이변(기적)을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한 보서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공지문’에서 발표한 것과 동일하였으리라 예상됩니다. 이 보고서를 전달받은 신앙교리성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한 달 후인 1996년 3월에 광주교구장께서 신앙교리성 장관을 만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만남이 나주 문제 때문에 이를 처리하기 위한 신앙교리성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 또는 교구장 자신이 교리성 장관을 만나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루어 진 것인지는 모릅니다. 또 다른 일로 윤 대주교님께서 교황청을 방문하실 일이 있으셔서 이 기회를 잡으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이 만남에서 주요 의제는 나주 이변(異變)의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광주대교구장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만남에서 논의된 나주 문제의 핵심과 그 범위가 어디까지 였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1996년 2월에 신앙교리성에 전달된 광주대교구의 서신 내용은 이미 교리성에서 입수한 긍정적인 나주 사태와는 정반대의 것이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제까지 나주 사태에 대해 광주대교구에서 발표된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주교구장께서 교리성 장관과 논의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의제 내용도 광주교구에서 보냈다는 서신 내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만남에서 논의된 나주문제의 핵심 의제는 신앙교리성에서 입수한 내용과 광주대교구에서 서신으로 전달된 부정적인 보고가 전부였을 것입니다.

 

신앙교리성 장관과 광주대교구장님의 만남에서 이 극도로 상충(相衝)되는 나주 문제를 논의했을 때, 양보할 수 없는 광주대교구장님의 견해(양보하려고 해도 양보할 자료가 없다)를 접한 신앙교리성의 입장이 전에도 몇 번씩 언급한 대로 극히 난처했을 것입니다.

 

또한 광주대교구장께서도 나주의 성체 이변(기적) 등에서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한 것 이상의 것을 말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윤 대교구장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통 교리 상으로도 받아 드릴 수 없는 광주대교구의 나주 이변(기적)의 주장을 교리성에서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다 아시다시피 광주대교구는 1차 조사권이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지방교회입니다.

그리고 공식으로 지방교회에서 서신으로 전달되어 접수된 보고서 내용도 나주의 이변이(기적)을 모두 부정(否定) 일변도로 처리된 보고서입니다.

 

그래서 싱앙교리성에서 내려질 판단은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e, 즉 초자연 현상이지만 확실치 않다 라는 유보(留保)적인 절충안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교리성에서 나주의 이변(異變)인 초자연 현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교리상 문제들은 광주교구에서 시간을 가지고 더 검토하여 시정하라는 넉넉한 유예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광주대교구는 신앙교리성의 이런 성의 있는 배려(配慮)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알면서도 무시(無視)했거나 묵살(黙殺)한 것이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이런 유보 결정 자체를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토록 촉구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충안 조차도 받아드리지 않은 것이 광주대교구입니다. 그리고 교구장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다는 그 말씀은 09년 경향잡지 5월호에도( 이 만남에서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확인합니다. ) 라고 발표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런 말씀까지 직접 해 놓으시고 교황청의 배려를 저버린 채 1998년 1월 1일에 세상이 놀란 1차 ‘공지문’을 발표하였습니다.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의 의미

전에도 제시한 대로 로마 교황청은 사적 계시 문제를 판정할 때 세 가지의 유형으로 판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이 항목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1,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확정한다.-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트갈의 파티마의 경우.

 

2, constat de non supernaturalitate :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 한다.-미국의 베이사이드의 경우.

 

3,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확정되지 않았 다.-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 한국의 나주의 경우.

 

이상은 가톨릭교회에서 기적(奇蹟) 등 기이한 이변(異變) 발생했을 때에 판정하는 경우고, 이런 이변이(異變)이 일어나면 해당 교구에서 1차 면밀한 조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보고를 하면 신앙교리성에서는 그 기적의 판정을 최종적으로 내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1차 교구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 교황청에 보고를 하기 때문에 신앙교리성은 교구의 조사대로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교구 발표에서는 바티칸의 언급이 당연한 것으로 처리하여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주의 경우와 같이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던가 또는 전통 교리 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교구든가 신앙교리성에서 재조사를 하여 그 결론을 상기에 밝힌 대로 신앙교리성에서 세 가지 유형으로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보스니아 메주고리예의 경우 교구에서의 조사과정에서 무슨 하자가 있는지 교구 주교님이 인준을 하지 아니하셔서 최종 인준이 유보된 상태입니다.

메주고리예는 그러나 그 주교님께서 교황청의 재조사를 의뢰하여 지금 한국 나주와 같이 싱앙교리성에서 재조사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150년 만에 기적 승인도

 

신앙교리성의 재조사가 없이 교구에서 인준이 유보되어 있는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이적(異蹟)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를 들면 미국 위스콘신 성모발현 같은 것은 150년만에 교구 승인을 받고 전 세계에 공포되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 교구장 데이비스 리켄 주교님은 1859년 10월 에이델 브리스라는 28살 난 처녀가 보았다는 성모 발현과 관련한 특별 교령을 발표, “발현과 발현 장소들이 초자연적 성격을 들어내고 있다.”며. “이 발현 사건들이 믿을 만 하다는 것을 승인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리켄 주교의 참피언 성모 발현(위스콘신 성모 발현) 승인은 지난 해 1월 교구 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공식 조사하기 시작한 지 2년만에 나온 것입니다.

 

이 발현 이후 브리스의 아버지 램버트는 발현 장소에 작은 경당을 지었습니다. 브리스는 성모님 말씀대로 어린이들의 교육에 일생을 바치다가 1896년 7월 5일에 선종했고, 경당 부근 작은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현재 참피언 성지(위스콘신 성모 발현)에 있는 착한 도움의 성모 성당은 1942년에 성모님께 봉헌되었습니다.

 

오늘 날 약 7천 3백여 평 부지에 조성되어 있는 이 성모 발현지에 해마다 수천 명이 순례하러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위스콘신 성모발현을 알려드리는 것은 현 나주와 비교해 보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나주의 이변(기적)은 신앙교리성에서 기적이 아닌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기적으로 확정짓기에는 문제가 있으며(해당 교구 반대로), 아직 진행 중인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보(留保 :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로 합의 결정을 지었습니다.

신앙교리성으로서는 몹시 곤혹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통교리에 문제가 전혀 없음이 분명한데도 한사코 광주대교구에서 나주의 문제는 기적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이것도 이상스러운 미스터리 중의 하나이겠습니다.

1차 공지문’에 나타난 광주대교구의 주장대로라면 당연히 나주의 기적은 기적일 수가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관할교구의 조사를 존중하는 신앙교리성은 광주대교구의 주장대로라면 나주의 이변(기적)이 기적일 수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판정을 내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교리성은 광주대교구의 주장을 구태여 반대하면서까지 왜 유보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까요?

 

이미 신앙교리성에서 확보하고 있는 나주의 사태(기적)는 기적을 확정지어도 남음이 있을 그런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 까요? 그 증거들이 다음에 나옵니다.

 

첫째, 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직접 체험하신 성체변화의 기적입니다.

그리고 몇 년을 비밀에 붙여 발표를 유예하다가 2001년 한국 주교들의 교황 앗 리미나가 있던 2001년에 제주교구장 김 창열 주교님과의 단독 접견한 후 로마의 TV방송에 교황께서 체험하신 율리아의 성체의 기적을 방영했으며, 또 이탈리아 남부 해안 로톤도에 있는 오상의 성 비오 신부 기념 성당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공인된 성체의 기적 사진들 속에 교황님께서 직접 목격하시고 체험하신 율리아의 성체기적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로마 주교로서 이 기적을 승인하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교황께서 나주 기적을 믿으시는 증표는 없을 것이며, 이런 기적 등 신앙 문제를 전문 취급하는 신앙교리성에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주한 교황 대사이셨던 죠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1994년도 나주를 방문하셨을 때 체험하신 성체의 내려오심의 기적을 바티칸에 보고하시어 신앙교리성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이러한 정보가 이미 교황청에 접수되어 있는데 광주대교구의 ‘나주 조사위원회’는 알고도 무시했는지 혹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여하튼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존재를 전혀 무시한 채 교리성과의 협약을 어기면서까지 ‘1차 공지문’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상급기관에 대한 노골적인 반항(反抗)이며 상급기관을 무시하는 작태라 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로마 교황청에 반기(反旗)를 든 반항(反抗)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면서 자기 하급 수하에는 대주교님의 판결이니 이에 순명하지 아니하면 자신의 관할 대교구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자동파문이라는 통고를 내리는 좀 머리가 이상해지지 아니 했나 하는 의혹까지 드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사실만으로도 광주대교구는 비밀이 많고 거의 모든 발표가 거짓이요 허구라는 것이 들어났습니다, 그러면 김 계홍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님의 글(경향잡지)과 전 신앙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님의 광주대교구장 김 희중 히지노 대주교님께 송달했다는 수원교구에서 발표한 서신에 나타난 것을 사항 별로 그리고 나주기적과 연관된 사건들을 보완하면서 사건 중심으로 분류 기록해 보겠습니다.

(흑색은 필자 편의 기록물, 청색은 광주대교구 편, 남색은 김 신부 경향잡지 편임)

1, 1885. 06. 30. 윤 율리아 소유 성모상, 첫 번째 눈물 흘리십니다.

2, 1985. 07. 18. 성모님께서 주시는 첫 번째 사랑의 메시를 율리아가 받습니 다.

3, 1986. 10. 19.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 합니다.

4, 1991. 05. 16, 나주 천주교회에서 윤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처음 변화됩니다. (필리핀 제리 오르보스 신부님 목격).

5, 1992. 05. -- 광주대교구장은 기적의 진위(眞僞) 여부를 가릴 조사위원들을 선 정합니다. (그러나 이 조사위원들은 공적 정식으로 임명된것도 아니고 조사활동도 없었 으며 유명무실한 것으로 판명됨).

6. 1952. 11. 24. 성모상에서 향유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파 레이몬드 신부님 목격).

7, 1994. 11. 24. 나주 성모님의 집, 성모상 제대 앞에서 성체를 두 번 내려주십니 다. (죠반니 블라이티스 교황 대사님과 비서 신부님 외 여러 신부님들 목격).

8, 1994. 12. 30. 광주대교구장은 “나주 본당윤 율리아와 그의 성모상에서 일어나 고 있는 현상들과 메시지에 대한 조사위원회”(나주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 활동에 들어갑니다.

9, ‘나주 조사위원회’는 조사활동 기간 중 15차례의 회의를 열어 조사를 점검합니 다.

10. 1995. 6. 16. ‘나주 조사위원회’ 위원장 김 재영 신부님의 명의로 나주 조사의 중간 발표를 합니다.(내용은 공지문과 거의 유사함.)

11. 1995. 10. 31. 윤 율리아 자매는 교황 방문 미사에서 성체 이변이 있었다고 주 장합니다. (한국 주교회의 사무처장 백 요한 몬시뇰의 주선으로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 티칸을 방문하여 교황 미사에 참석했는데 그 때 교황 미사에서 성체가 살괴 피로 변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12. 1996. 2. -- 광주대교구장은 ‘조사 위원회’의 활동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합니다.

13. 1996. 3. -- 광주대교구장은 신앙교리성 장관(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과 만나 십니다.

14. 1998. 1. 1. 광주대교구장 윤 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님은 나주 문제에 대한 ‘첫 공지문(公知文)’을 발표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나주 율리아 자매의 소유 성모상에서 첫 눈물을 흘리신 후 광주대교구장 윤 공회 대주교님의 ‘첫 공지문’ 발표까지의 사건을 김 계홍 신부님의 경향잡지 발표와 수원교구에서 발표한 전 신앙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님의 광주대교구 김 희중 대주교님께 발송한 것으로 되어 있는 서신을 중심으로 연도별, 사건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뜻있는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나주 문제에 대한 광주대교구의 첫 공지문”에서 로마 바티칸 당국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에 대한 의혹이 풀렸을 것입니다.

김 계홍 신부님이 경향잡지 2009년도 5월호에 실린 글이 모든 의혹을 풀어주었습니다. 즉,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한 나주문제 ‘첫 공지문’에 교황청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실제는 교황청 신앙교리성과의 신중한 협약이 있었고(김 계홍 신부님의 경향잡지 글), 또한 수원교구에서 발표한 전임 신앙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님의 김 희중 대주교님께 발송한 서신에서는 유보(留保)로 결정된 것을 광주대교구의 ‘공지문’에서 고의적으로 전혀 발표치 아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또 이 사실을 발표치 않은 것, 즉 왜곡(歪曲) 발표한 것은 무슨 뜻을 지니는 것일까요? 이쯤 되면 참으로 복잡 해 집니다.

단도집입적(單刀直入的)으로 광주대교구가 로마 교황청에 불복(不服)했다, 다시 말하면 불순명(不順命), 또는 항거(抗拒)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광주대교구가 나주 사건을 부정(不定)하려는데 교황청의 시각은 광주대교구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의도적(意圖的)으로 항거한 것입니다.

이상의 사실이 위에서 살핀 대로 김 계홍 신부님의 글과 전 신앙교리성장관 레바다 추기경과의 서신에서 백일하(白日下)에 밝혀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광주대교구는 교구장 3대째를 이어오면서 한 치도 변함없이 이상의 불의(不義)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성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너무나 한심스럽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주대교구의 모든 처사가 떳떳하고 옳다면 지금처럼 교황청과의 교섭이나 협약 등을 숨기고 비밀에 붙일 일이 없을 것이 아닙니까. 무엇한 자가 제발 저리다는 격이 아닐런지요?

김 계홍 신부의 판단착오(判斷錯誤)

이제는 마지막 의심스러운 점이 하나가 남습니다. 김 계홍 신부께서 교구에서도 발표를 꺼리는 일을 무슨 마음으로 당당하게 교회 기관지에 실었을까요? 사실 그럴 만도 합니다. 이제까지 교회 언론계에서는 교회의 발표 이외에는 어느 기사도 사실대로 취재하여 언론에 계재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별 탈이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주 문제를 가톨릭 언론에서는 정확히 취재해 볼 대상으로 어느 언론사도 생각지를 아니 했을 것입니다. 결론으로 언론자유(言論自由)가 없다는 말도 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경향잡지에 실린 김 계홍 신부님의 글이 그간 광주교구의 숨겨졌던 엄청난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이 기사에 대해 왈가 왈가(曰可曰否) 논란이 벌어진 글이 3년이 지나도록 한 편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실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등대지기’라는 필명으로 광주대교구 인터넷 홈페이지 ‘참여마당 사랑방’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글에 경향잡지에 실린 김 계홍 신부님의 글을 <진리 방 사람들>이 발견하고 여기에 문제의 부분을 발췌하여 이렇게 논평을 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본 다른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여하튼 <진리 방 사람들>에게는 처음 보는 엄청난 글이었습니다.

그러니 가톨릭 언론계에 언론자유가 막혔다는 등 순탄치 않은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광주교구장의 심상치 않은 뒤 끝 말씀

김 계홍 신부님에 대한 마지막 의문입니다. 광주대교구에서 한사코 발표를 꺼리던 이런 문제를 김 계홍 신부님께서 경향잡지일망정 그렇게 당당하게 발표하신 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으실 것입니다. <진리 방 사람들>은 그 사유를 광주교구장께서 신앙교리성 장관을 만나시고 뒤 끝에 말씀하셨다는 말씀에서 <진리 방 사람들> 나름대로 찾고 있습니다.

즉 신부님께서는 “이 만남에서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확인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교구장님의 확인 말씀에 큰 무게를 두셨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가톨릭 언론계에서 셋 밖에 없는 대교구 중의 하나인 광주대교구를 경시하는 언론 매체는 없습니다.

언론계가 이런 추세이니 광주대교구의 모든 발표에 대해 드러내 놓고 반대할 교구는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김 계홍 신부님의 글에 나타난 광주대교구장님의 글에 비판의 꼬리를 달 자(者)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 계홍 신부님 역시 교구장님의 말씀, 즉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큰 비중을 두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이어 나오는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시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게가 없는 부수적인 것으로 김 계홍 신부님께서도 받아드렸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무게 있는 말씀인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교구장 스스로 언급하신 말씀은 뒷전으로 처진 것입니다. 그러니 김 계홍 신부님조차 이런 발표를 마음 놓고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류에 빠진 “ 첫 공지문 ”

여기에서 큰 오류가 생겨납니다. 즉 “...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광주대교구에서)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후 내려진 교리성) 결정을 (광주대교구에서는) 존중하겠다.”라는 말씀에서 광주대교구와 신앙교리성과의 마지막 교신이 있었음을 광주대교구 윤 공회 대주교님게서 스스로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윤 공회 대교구장께서는 이상의 언급을 하셨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이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은 광주대교구의 나주 문제에 대한 교황청에 항거(抗拒)까지 하는듯한 납득할 수 없는 이상스로운 ‘첫 공지문’이 발표되도 만 것입니다.

즉 나주의 모든 이적(異蹟-미스터리의 현상)들은 모두 바른 기적이 아닌 것으로 발표해 버렸습니다. 그 후 광주대교구의 기적의 평가는 대주교님이 두 번 바뀌고, 공지문과 유사한 교령 등을 네 번이나 발표했어도 광주대교구의 기적의 평가는 요지부동 변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주 문제의 현 주소입니다.

도대체 나주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나주의 관할 교구인 광주대교구는 세상에 발표하지 못할 어인 비밀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것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째, 공지문 발표 전 1996년 2월에 광주대교구에서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교구 ‘나주조사위’에서 조사 활동한 내용을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보고했으면서도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계홍 신부님께서 경향잡지에 발표치 아니했으면 세상은 전혀 모를 뻔 했습니다.

둘째, 광주대교구 교구장 윤 공회 대주교님께서 서신을 보내신 후 1개월 있다가 1996년 3월에 스스로 로마교황청을 방문하시어 신앙교리성 장관(전 교황 베네딕도 16세)을 만나십니다.

이것 또한 비밀에 붙여지고 있습니다. 이때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전부 알려져 있는지 않지만 나주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의견을 나누신 후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확실치 않다.”라고 기적의 유보(留保) 결정을 내리신 것만 보아도 나주가 첫째 현안 문제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전 신앙교리성 장과 레바다 추기경님의 김 희중 대주교님께 보낸 서신에서도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셋째, 윤 공희 대교구장께서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하셨다는 말씀, 즉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이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이 대교구장님의 말씀도 김 계홍 신부님이 아니셨으면 세상에 알려질 수도 없을 뻔 했습니다.

넷째, 광주대교구장님은 1997년 6월 ‘조사위원회’의 종합 의견서를 신앙교리성에 서신으로 전달했습니다.

다섯째, 광주대교구장께서는 1997년 6월 신앙교리성에 종합 의견서를 전달했고 또 신앙교리성에서 보내오는 회신이 있었다면 이 회신의 내용을 ‘공지문’에 반 드시 반영시켜야 되는데도 이 절차가 빠졌습니다.

아니 신앙교리성은 이 회신을 보내지 아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레바다 추기경님의 서신에서와 같이 그 문제는 윤 대주교님과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만남에서 나주 기적의 문제를 이미 유보(留保)로 합의 결정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재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대교구장께서 세상에 발표하시는 ‘공지문’이나 교령 또는 지침서에

하자가 있는 문서를 발표한다는 사실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광

주대교구에서와 같이 나주 문제와 같은 거짓이 뒤범벅이 된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런 일은 보편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광주대교구에서는 이런 일을 보란듯이 자

행해 버렸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 모두는, 아니 보편된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거짓말투성이의 ‘공지문’을 대교구장님이 발표했다고 해서 광주대교구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 그리고 사제들까지 이런 ‘공지문’의 명(命)에 무조건 순명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런 식이라면 왜 아직까지 교황청에서는 광주대교구의 판단을 받아드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광주대교구는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해 주시기 요망합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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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폴님의 댓글

죤폴 작성일

"주님께서 광주대교구를 지칭하시며 구제가 불가한 교구라고 메세지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교인이며 주님을 믿는 교회가 그만큼 죄를 짖는 일 즉 권모술수와 거짖말과 약속을 깨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메세지가 거짖입니까? 율리아님이 거짖말을 하여 세상을 속입니까?
나주 메리께 가셔서 직접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을 보시면 일언지하에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오시지도 않으면서 뒤에서 말로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거짖말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짖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몸 eucharist을 영하면 몸에서 변하는데 공지문은 변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기적을 부정하는 것은 거룩하신 성혈 대축일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97년 3월 로마 바티칸 신앙교리성에서 광주대교구 대교구장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인준권한은 본인 소관이지만 신앙교리성 견해를 제시하면 받아들여서 인준보류로 하겠다라고 하셨고 인준 유보 합의 하시고선 공지문에선 순례를 금지하고 미사를 못보게하시고 출판 배포를 못하게 하는 누를 해오고 있으며 더구나 재조사와 추가조사를 배격하는 것은 분명 불법입니다.
지금 상황이 이러하오니 지금이라도 성교회는 나주 인준에 관하여  공지문에의해  잘못 되었고 잘못되어지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셔서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성직자님들과 신앙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라는  요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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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죤폴님 감사합니다~
명절 잘보내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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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폴님의 댓글의 댓글

죤폴 작성일

엄마꺼님도 명절 잘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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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아멘!!!
감사해요~~
기쁘고 즐거운 명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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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항상 수고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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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나님의 댓글

마리안나 작성일

아멘~~
죤폴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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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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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아멘!

사랑하는 죤폴님, 수고하셨습니다.

주님과 성모님 축복 가득 받으시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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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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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폴님의 댓글의 댓글

죤폴 작성일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오타 수정이 안되네요.
도우미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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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저희들이 나주 영성을 실천하고 기도하여
오류에 물든 교회들과 거짖증언들로 일관된
광주교구를 위해

우리 더 노력하고 기도해요.
수고해주신 죤폴님 감사드리며 고맙습니다.
한가위 가족과 친지들 행복한 시간되시길
빕니다.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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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아멘~!

진실은 아무리 감추고 덮어도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거짓과 조작은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더구나 하느님의 심판은 피할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워 하시는 성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성모님께서 바라시는대로 한 영혼이라도 버려지지 않도록
더욱 기도해야겠습니다

죤폴님!감사드리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안에서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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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정말 겁이 없는 분들이군요~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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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이제까지의 사실만으로도 광주대교구는 비밀이 많고 거의 모든 발표가 거짓이요 허구라는 것이 들어났습니다, 그러면 김 계홍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님의 글(경향잡지)과 전 신앙교리성 장관 레바다 추기경님의 광주대교구장 김 희중 히지노 대주교님께 송달했다는 수원교구에서 발표한 서신에 나타난 것을 사항 별로 그리고 나주기적과 연관된 사건들을 보완하면서 사건 중심으로 분류 기록해 보겠습니다.

아멘!!!

광주교구가회개하지앟으면 강주교구는 구제불능의 교구가 돕니다.
아울러 그를 따르는 양들도 마찮가지입니다.
광주교구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교구입니다.
사탄의 영악하고 간교한 지혜는 인간의 힘을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주님의 힘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힘에 매달려야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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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님의 댓글

소피아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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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오직 주님께 의지하며!!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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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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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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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님의 댓글

지름길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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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가리님의 댓글

천국에가리 작성일

+++
아멘.

죤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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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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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 ... 광주대교구장은 1996년 2월에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신으로 전달하고 3월에는 신앙교리성 장관
      (현 교황 베네딕도 16세)과 만납니다. 교구장은 이 만남에서 “이 일에 대한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다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확인합니다. ... ] 

헉~  광주교구 바부탱이 ...  이렇게나 간접적으로 알아 듣게 얘기했구만 ...  안타깝게도 마귀한테 잘 속아 넘어 갔군요.

[  ... 그러기에 서신에 레바다 추기경님의 싸인(自筆)이 실제로 서명되지 않은 것을 탓잡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서신에는 실제로 레바다 추기경님의 싸인(自筆)이 없습니다). ... ] 

      모든 공문서는 싸인이나 직인이 필수인 것으로 아는데 ...  헐~

[ ... 이 발족도 1994년 10월 24일 당시 주한 교황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께서 나주 성모의 집을 사적으로
      (공적 방문을 원했으나 당시 사무처장 장 용주 알베르토 신부의 집요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구 성모당 강론에서자신이 밝혔다) ... ]

꼭 이것(마귀.사탄)들은 지네들이 속였다가 거꾸로 자기 스스로 속아 넘어가 들켰넹~  바부탱이~  헐~

[ ... “1995년 10월 교황청 방문 미사에서 성체 이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고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을 방문한 사실을
      광주대교구 측 인사가 말이나 기록을 통해 한 사실은 김 계홍 신부님이 처음이신 것 같습니다. 

      필자는 광주대교구에 꼭꼭 숨겨져 있어 벙끗도 하지 않던 사실이 김 계홍 신부님을 통해 발표되는 것을 참으로 신기
      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광주대교구 안에 숨겨졌던 사실이 하나하나 풀려가고 있습니다. ... ]

신기하고 고마울 것도 없는 것이 이것들은 인간을 갖고 노는 습성이니까요.  그러니까 진리는 감출수가 없다니깐용~

[ ... 그런데 이변(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는(나주) 교구청에 조사를 탄원해도 무시당하고, 애원을 해도 받아드릴
      기구조차 없었기에 부득이 자체 경로를 찾아 로마 교화청에 보고하려고 노력했을 것은 뻔한 시실입니다. ... ]

불쌍하고 안타까운 나주 ...  얼마나 힘드셨을까?

[ ... 더구나 주한 교황청 대사가 개인적인 자격으로라도 나주를 방문하여 성체 이변(기적)의 체험을 하시고, 이를 공식
      으로 교황청에 보고했을 것이 확실해 지니까 광주대교구는 그제서야 서둘러 1994년도도 다 차서야 “나주의
      기적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이런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또한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에 방문
      했을 때 교황님 스스로 성체 번화의 기적에 대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 ]

안타까운 울 주님과 성모님~ 힝~  광주교구가 너무 말을 듣지 않으니 이제는 하다 하다 교황님과 대사님께 진실을 표하셨군요~ 

[ ... 현대와 같은 세상에 통신망이나 인적 자원이 부실하고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게을러서 인지 무시해서인지 모를 일입니다. ... ]

이것들은 똑똑한척은 다해도 아킬레스인 허술한데가 꼭 있다니까용~  당연히 무지이죠.  ㅋㅋ

[ ... 그래서 싱앙교리성에서 내려질 판단은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e, 즉 초자연 현상이지만 확실치 않다 라는
      유보(留保)적인 절충안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 ]

하느님은 교황청을 통해 광주교구에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셨군요. 
고로 그래서 순명은 광주교구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하는 것이라 ...
저도 읽느라 눈이 시큼~ 시큼~  1시간이 훌쩍 ...  글 올리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죤폴님~  알라뷰~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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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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