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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톨릭의 반역자들..2(혼란과 진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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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뱃사공
댓글 14건 조회 2,247회 작성일 12-06-01 11:32

본문

2장. 반역(의 계속)

캐톨릭과 모더니스트는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내시는 두 가지 관점, 즉 흔히 연역적 해석과 귀납적 해석의 접근방식에서 서술하고 대비(對比)된다.

연역법이란 우리가 정해진 사실과 지식으로부터 어떤 함축적 의미 또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변동하는 것에 의한 내지적(內知的)과정이다.

이 방식은 신학자들이 신적 계시의 더욱 불가사의한 모습을 설명하려 할 때 사용한다.

그리스도교는 연역적 사고(思考)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을 직접 인식하는데 더 훌륭한 결론에 도달하자 그 후로 쭉 연역적 사고(思考)를 하고 있다.

우리는 만지고 볼 수 있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여 사물의 기저에 놓여있는 원인과 법과 첫 원리의 지식에 도달하는 귀납적인 사고(思考)를 한다.

 유교나 불교와 같은 자연 종교는 귀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은 사물의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에 독자적으로 의존한다.

현대주의는 귀납적 접근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자연종교의 위치로 후퇴시키고 있다.

현대주의의 이론은 1880년도와 1907년도 사이에 캐톨릭 교회에 처음 출현하였는데, 당시 성 비오 10세의 서한 “pascendi”에 의해서 운동이 정지되었거나  그때에 정지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상들은 공의회에 때맞추어 명백히 여전히 강력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동시에 그들은 당시 세속사상의 영향 하에 신 모더니즘이라는 타이틀을 정당화 하는 어떤 중요한 것을 추가로 접수시켰다.

1950년이 되어 그리스도교는 대부분의 서방나라에서 대다수의 종교라는 신분을 마감했다.

대부분의 서방세계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 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종교는 인간행복을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로 세상의 영속적 진보와 지상의 삶에 천국을 실현하고,

 자유, 평등 및 박애와 그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민주체제 등에 유일한 의미를 지니는 그러한 일종의 믿음이었다.

네오 모더니즘(신 현대주의)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서라는 초기 모더니스트들의 계시이론에 이 개념들을 집어넣은 합작품이다.

만약 계시가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결과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믿게 하고 행하게 하는 마지막 결정자들인 셈이다.

그에 따른다면 교회정부는 현대의 대중 민주주의 노선을 따라서 더욱 개조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을 교환한 후 합의에 이르고, 일반적으로 충분히 수용하였을 때 주교가 승인하고, 그 합의는 한 동안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그 주교는 다만 사람들의 대리인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 이론을 더 근접 조망하면 계시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주교들이 아니고 신학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그들 고유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완전히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만 신학자들의 조력에 의해 하느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다. 신학자들은 대중 경험의 산파들이라고 주장한다.(주석3)

 

* 주석 3. 예를 들어 예수회 버나드 로너건의 “신학의 방법”의 내용 중 특히 5장을 살펴보자. 신학의 출발점은 신적 계시가 아니어야 하며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라야 하고, 교리는 최상의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권고될지 방해될지에 따라서 가치가 명백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또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하느님이 헤겔의 이론 율(律)에 예속되는 것과 같다.

(헤겔의 이론. 진리란 다만 - 명제. 반명제. 통합명제 - 토론을 거쳐서 도달될 뿐이다.)

신학자들의 새 사상은 교회의 역사에서 어떤 특정한 순간에 믿음 공동체에 존재하는 가장 빼어난 경고요원(警告要員)으로서의 경험과 통찰력을 대표하며, 그리고 그로인한 신적존재의 가장 최근의 사고(思考)와 안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동적으로 주교들의 저항을 불러 올 것이다.

본래 보수적인 주교들은 비록 대부분 지나간 삶의 상황이며 생기 없는 경험을 반영하는 것일지라도 현재의 가르침을 고수하기를 바랄 것이다.

거기에는 의견에 불일치하는 신학자들과 단죄로 위협하는 주교들과 더불어 “창조적 충돌”이 뒤따른다.

결국 주교들은 새로운 사상에 항복하고  자신들의 도장을 찍어준다.

그러나 또 다시 그들은 그들이 인가한 사상이 영원히 공적 가르침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은 판단의 잘못이라고 추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의 생활 상태와 경험이 한 번 더 변화할 때 미래의 창조적 충돌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그리고 기타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상의 과정이 현대주의가 교리의 전개를 인식시키는 방식이었다. 추정하건데 비록 그 이론이 민주적 토대일 법 할지라도 실제로는 신학자들이 주교가 되고 주교들은 심부름꾼으로 바뀐 격이다.

뿐만 아니라 신 현대주의는 구원의 개념도 다음처럼 변화시킨다.

; 구원은 현세에서의 죄로부터 해방되어 내세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현세의 육체적 영적 비참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세계는 전환하고”있기 때문에 복음전파와 인간의 성화(聖化)를 교회의 핵심임무로 대치하자.

내세의 구원은 다소 확실함으로.

우리가  핵심 모더니스트 원칙을 의식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캐톨릭들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영향은 본당 수준으로 바로 내려가 널리 펼쳐진다.

 그 주요한 효과는 수도회 소속인 유명한 사람이 시사한  “아무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다. 

 핵심 모더니즘을 관습으로 들여놓으려는  가장 철저한 시도가 지금까지 홀랜드에서 그리고 자유신학(해방신학)에 감명 받은 남아메리카 “기초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주석4)

 

주석 4. 라칭거 추기경의 말씀. “내가 엄격하게 서술한 그러한 모든 결과들의 부정(否定)적 개념은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해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 운동은 분명하며 그들은 자신들을 독자적 신학 왕국에 묶어두지 않는다.” (1992-3년도 겨울 유럽 신학 위원회 의장 연설문 중에서) 추기경께서는 이어서, 실제로 그들은 설교와 교리 가르침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신학적 문학보다 더 많은 발언조차 하고 있다.”개탄 하셨다.

 

그들이 항상 믿었던 것에 대한 총체적 전복계획을 통하여 캐톨릭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려드는 시도는 다만 혁명(쿠데타)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을 뿐이며, 실제로 그 지지자들과 동조자들도 총체적 전복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물론 이것은 주로 사상의 혁명이며, 그러므로 기분 나쁘고 깜짝 놀랄만한 물리적 결과는 없다.

폭탄도 없고 총을 쏘아대는 단위부대도 없다. 교구와 본당 생활의 수레바퀴가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그들 자신도 혁명군으로 변하며, 지금 그들의 거대한 동조자들이 대부분의 서방 교회 기관에 고위관료로 참호를 단단히 굳혔고,

이제는 존경받는 직업인이 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친근한 미소와 유쾌한 매너로,

그리고 가장 고상한 뜻을 가진 사람들로 보이고,

종교적 언어를 즐겨 말하고,

다이너마이트 대신 켓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이론을 들먹인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처음의 충격과 흥분은 사라지고,

많은 캐톨릭들은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 아주 쉽다는 사실을 알고,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고 해도 전혀 아무것도 아니며 만약 있었다고 해봤자 뭐든지 상황 끝이다.

그러나 어떤 혁명 또는 시도된 혁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신자들의 마음과 심장이 인식할 수 없는 곳에서 수행되고 있기에 설혹 그 실체변환이 혁명이라는 것을 깨닫지는 못할지라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주석5)

 

*주석 5. 1982 - 83년 겨울 영국 런던에 소재한 유명한 캐톨릭 주간지 “타블렛”은 “이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미에 관해 ”바티칸의 2차 혁명“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실었다.

필자가 편집장에게, 혁명(쿠데타)이란 대체로 기존의 것을 어떤 상이한 것으로 대치(代置)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의회의 목적은 이런 언어적 의미가 아니다 고 제안하자, 편집장은 계속하여 ”혁명“은 공의회의 과업 자체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라고 고집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혁명의 정의를 이렇게 말한다. 쿠데타. ; 완전한 변화, 뒤엎음, 상태의 대 역전, 근본적 재구성, 특히 새 통치자와 정책 주체(主體)로 기존의 것을 강제적으로 대치(代置)하는 것.

 

내가 서술한 중대한 모반(謀叛)은 신학자들에서부터 사제들(힘을 행사하여 교회가 사제의 독신제도를 변경하도록 강행할 작정이라는 기대로 인하여 이끌린 사제가 한둘이 아니다.) 에게 확산되고,

당연히 보다 일찍이 주목한 사제들부터 평신도들에게까지 확산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큰 측면에서 또한 주교들도 결국 다만 약간 늦거나 좀더 천천히 일뿐 (반역에) 합세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지금 현재 한국 천주교의 대부분 주교들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뱃사공)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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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사랑하올  뱃사공님
가톨릭의 반역자들이  어서 회개 하여
오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눈물로 뜨겁게 통회하며  열렬한 사랑으로 응답하며
달려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희의 회개와  이세상 죄인들의 회개와  성교회의 주교 사제님들의
회개를 허락하시어 이세상에 주님의 뜻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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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현실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깨어있는 작은 영혼되어 주님과 성모님의 크신 사랑이
승리하기를 함께 마음모아 기도드리며~주님의 뜻이 꼭
이루어 지기를 봉헌합니다 아멘!!!
가족함께 영육간에 건강하소서 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지원자님들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뱃사공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정성 합하여 바쳐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뱃사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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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

아멘, 나주의 메세지대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매달리며 살면 좋겠읍니다,넘,똑똑하니,바벨탑쌓기 바쁘고 구원에도 장애가 될수있기에,그,어느때보다 나주메세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사,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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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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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오늘날 다른 종교 사당에 찾아 다니면서 예를 드린 주교님들과 다른 종교

에 종사하는 종교의 그럴싸한 종교에 지도자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 가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이 글속에 속한 분들인것 같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저희들을 이 세상에 있게 하신분 하느님을 믿는것이 깨달음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믿기만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면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진데 여러 잡다한 수사학적

허망한 철학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 하니 바로 하느님 사랑보다 미신적 정서에 따라

하느님 사랑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뱃사공님 나주 성모님 사랑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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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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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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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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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내노라 하는 학자들은 자기의 현명함을 들어내 놓고 싶어 하나봐요.
남이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와 이론을 말 함으로써 훌륭해 보이게 하니
나중에 주님게 혼줄 날에 어떻게 처신 할지 걱정 입니다.
사랑하는 뱃사공님 ,늘 좋은 자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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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뱃사공님~
수고해주심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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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핵심 모더니즘을 관습으로 들여놓으려는  가장 철저한 시도가 지금까지 홀랜드에서 그리고 자유신학(해방신학)에 감명 받은 남아메리카 “기초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주석4)

사랑하는 뱃공님 좋은 말씀 올려 주셔서 감사와 사랑을 드리며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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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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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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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감사감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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