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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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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5건 조회 2,786회 작성일 16-08-11 10:0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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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십시오.  -성녀 클라라-

 

성녀 클라라께 드리는 기도

 

주님의 영광을 비추시는 성녀 클라라여

당신은 가난하게 구유에 누워계셨고

겸손하게 인류구원을 위해 수고와 고통을 참아 받으셨으며

사랑때문에 십자가상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관상하고 흠숭함으로써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놀라운 사랑의 은총으로

그분과 하나되는 탁월한 길을 보여 주셨나이다.

 

주님의 정배시며 사부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이신 클라라여

저희도 당신을 본받아

기도와 사랑으로 주님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시고

그분과 영원히 결합되는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녀 클라라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클라라초상(2003년 8월 11일.서거 750주년)

 

2003년 8월 11일은 성녀 클라라 서거 750주년 안에서 지내게 될 성녀 클라라 축일입니다.

다음의 내용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녀 클라라 탄생 800주년에 쓰신 서한내용의 일부입니다:

 

“두 분 성인(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은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프란치스칸 본래의 이상을 증거하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성녀 클라라와 자매들은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보속의 관상생활로

복음을 생활화함으로써 서로를 보완하였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듯이 성 프란치스코 안에서 자신을 보고 스스로 성인을 반사한 성녀였지만,

성녀에 대한 생각과 그 기도에 대한 확신이 성인에게 용기를 주었듯이

같은 영으로 결합된 성녀의 가난과 순결의 빛은

아시시의 가난뱅이의 얼굴을 더 밝고 따뜻하게 비추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와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서로의 복음적 소명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성녀 클라라를 새로이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피합니다.

이는 교회의 삶과 생존에서 아주 중대한 안건입니다.”

 

프란치스칸 운동의 공동 창설자로고 일컬어지는 성녀 클라라는

프란치스칸 생활양식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권고12. 누가 주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가

1) 하느님의 종이 주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

2) 주님이 그를 통하여 어떤 선을 행하실 때 그의 육신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3) 인간의 육신은 항상 모든 선을 거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천한 자로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작은 자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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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성녀 클라라

 

1212년 3월 18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은 클라라가 자기 집을 몰래 도망쳐 나와

포르치운쿨라에서 프란치스코에게 순종서약을 한 날입니다.

클라라가 성 프란치스코에게 순종을 서약한 것에 대해서 전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이제 그 어떤 외적인 것과도 인연을 끊고 온전히 하느님의 일만을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로부터 영원히 그녀를 세속과 멀어지게 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곧바로 참되고 영원한 행복의 언약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누이요 정배이며 어머니가 되어

마치 이른 봄날 대자연이 터뜨리는 환호성마냥,

한 영혼을 온전히 소유하신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으로 그분만이 주실 수 있고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새로운 기쁨을 옷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동정녀 - 성녀 클라라, 66쪽)

 

 

축일: 8월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Santa Chiara Vergine
Saint CLARE of Assisi
(Assisi, 1193/1194 - Assisi, 11 agosto 1253)
Born:16 July 1194 at Assisi, Italy
Died :11 August 1253 of natural causes
Canonized:26 September 1255 by Pope Alexander IV
Chiara = trasparente, illustre, dal latino
Name Meaning :bright; brilliant

 

 

세상을 비출 빛이여!

아씨시의 聖女 글라라

 

☆Chiara di Favarone

이탈리아 아씨시의 귀족 파바로네(Favarone)와 오르똘 라나(Ortolana)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빛’이라는 의미를 지닌 글라라의 이름은

어머니가 기도중에 온세상을 밝게 비출 빛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은데서 비롯되었다.

과연 그녀는 열심한 기도와 착한 행실로 주위를 밝게 비추며,

늘 하느님의 은밀한 부르심에 귀 기울였다.

 

☆수도자의 길로!

이러한 글라라가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는데 성 프란치스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마침내

1212년 3월 18일 성지주일에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보속의 수도복’으로 착복되고 순명을 서약하였다

아직 형제회에 여자 수도원이 없어서 근방의 베네딕도 수녀원에 머물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글라라를 집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녀는 축성의 표시인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며 자신의 뜻을 단호히 밝혀 부모의 애원을 뿌리쳤다.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

얼마후 동생 아녜스마저 언니 뒤를 따르자 친지들은 아녜스를 강제로라도 집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글라라의 간절한 기도로 12명의 무장한 장정들에게서 동생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자매를 얻은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도움을 받아,

성녀 글라라는 친동생 아녜스를 비롯한 몇몇 자매들 과 함께

성 글라라 수도회의 모태가 된 성다미아노 수도원의 봉쇄 안에서

복음적 가난과 사랑의 공동체 생활로 ’하느님의 구원 성업을 거드는 짝이며

성교회의 심장으로서 그 연약한 지체를 떠받치는 받침대’가 되는 프란치스칸적 관상의 삶을 시작하였다.

 

☆’산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 를 모방하는 기도생활

글라라는 다정한 자매요 어진 어머니로서 자매들의 모든 기쁨과 아픔에 함께 하였고

수도원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자매들의 비천한 여종이 되어 겸손하게 수하자매들을 섬겼다.

또한 그녀는 분별력있고 지혜로운 수도원장으로서 자매들의 의견에 늘 귀 기울이며

그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 애썼다.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주님의 가난을 육화한 ’가난한 동정녀’로 살았던 글라라에게

성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작은형제들은 물론이요 교황과 추기경 및 왕과 귀족들까지 기도를 부탁하며

자문을 구하러 왔다.

프란치스칸 관상생활의 첫 터전이었던 아씨시 근교의 성 다미아노 수도원은

글라라가 수도가족 뿐 아니라 세상 모든이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눈 삶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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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시에 사라센 대군이 쳐들어 왔을 당시 글라라는 자매들의 부축없이는

자신의 몸조차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지만

무방비 상태에 놓인 수도가족과 아씨시 시민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오로지 성체께 의탁하고 기도하여 이미 봉쇄구역안까지 밀어닥친 적군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복음의 약속에 대한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작은 빵 하나를 50여명의 수녀들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불어나게 하였으며,

간절한 이웃 사랑에서 우러난 그녀의 기도와 강복으로 무수한 중환자가 완쾌 되었다.

 

또 1252년 성탄밤, 중병으로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그녀가 아기예수를 경배하고 싶은 큰 열망으로,

병실을 떠나지 않고도 2Km나 떨어진 성 프란치스코대 성당의 자정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 기적은 1958년 교황 비오 12세가 성녀를 텔레비젼의 주보로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42년간의 수도생활중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면서도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신비는

삶 자체로 드러나는 그녀의 기도에 있었다.

글라라에게 있어 기도는 자신의 존재 전부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함이었고,

수도원의 봉쇄는 주님과 단둘이 누리는 자유의 공간이었으며,

가난은 그리스도를 관상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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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글라라

모든 사람과 사물안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고 찬미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글라라는

1253년 8월 11일, 세상에서의 마지막 찬가를 부르면서 찬란한 빛이신 하느님께 옮겨갔다:

 

"저를 지어내시어 이 삶으로 부르셨으니 주님, 찬미 받으옵소서."(시성자료집)

글라라는 1255년 시성되었으며, 성녀의 삶이 배어있는

성 다미아노 수도원-성당과 유해가 모셔진 아씨시 성 글라라 대성당(S.Chiara)은

오늘날까지도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녀의 삶은 자신을’창조하시어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 으로 충만케 하셨으며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와도 같이 사랑해주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오롯한 응답이었다.

특히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기쁨’ 가운데

’하느님과 이웃을 온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 성녀의 삶은

그녀의 이름처럼 오늘날 감각적 사랑과 물질만능주의에 빠 져가는 이 세상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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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말씀

 

가난한 동정녀로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관상하시오.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리시오.

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님에 대한 관상은 우리의 휴식이고 님의 어지심은 우리의 만족입니다.

관상을 통하여 전존재를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변화시키시오.

저를 창조하신 주님, 찬미받으소서.

 

 

성 글라라 대성당의 있는 성녀의 생애를 보여주는 판넬화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www.ofmcon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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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년3월18일뽀르지웅꼴라에서 프란치스코 앞에서 착복식을 하고 순종을 서약함.

 

1212년 성지주일에 아시시의 공작 스티피가(家)의 저택 뒷문으로 신부(新婦)같이 단장을 한 어떤 귀부인이

시종으로 보이는 여인과 더불어 포르찌웅콜라 소성당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성당 앞까지 왔을 때, 성당 안에서는 수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나와

그들을 영접하며 그 귀부인을 제대 앞까지 인도했다.

곧 엄숙한 기도와 성가가 교대로 온 장내를 울리었고, 다시 조용해지자

그 부인은 삭발을 하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소복으로 온 몸을 두르고

노끈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서는 제대 앞에 엎드렸다. 도대체 이는 무슨 일이며 그 귀부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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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 전, 같은 동네의 대부호안 베드로 벨라도네라는 한 상인의 아들인 프란치스코가

뜻한 바가 있어 집을 떠나 예전과는 달리 모든 사치를 버리고 청빈한 생활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를 정신 이상자로 간주했으나,

그의 철저한 금욕과 극기의 생활로 모범을 주며 입으로 가르친 그 복음적 생활은 그들을 감동시켰고,

마침내는 그를 예수께서 다시 오신 것처럼 공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스티피 공작의 장녀 클라라도 끼어 있었다.

 

 

성녀클라라의 흰드레스와 성프란치스코와 성녀클라라의 수도복

 

성 프란치스코가 클라라의 의견을 듣고 그 사람됨을 살펴본 결과

하느님께 대한 비범한 그녀의 사랑이며 복음적 생활 실천에 관한 열망과, 넘치는 그녀의 희생과,

기도의 정신이 있음을 알고 즉시 수도 생활을 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말한 귀부인은 바로 클라라였고, 포르찌웅콜라 소성당에서 거행된 예식은

클라라가 부모 형제를 끊고 프란치스코의 영적 자녀로서 청빈의 생활로 발을 옮겨 놓은 착복식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최초의 여자 제자이며

소위 프란치스코 제 2회 즉 클라라회의 창립자로 어머니가 되었다.

클라라가 집을 나간 것을 안 스티피가의 가족은 조사한 결과

그녀가 수녀로서 서약을 했다는 것을 알고 일가중의 여러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오려고 했다.

세속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그들을 그녀의 청빈의 생활을 가장 수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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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

 

그녀의 친척들이 클라라를 찾으러 갔을 때 그녀는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클라라를 데리고 가려고 하자 그녀는 제대를 꼭 붙들고

자기의 삭발한 머리를 내보이며, 일단 도를 닦기 위해 결심한 것이니 돌아 갈 수 없다고 하며

단호히 거절했으므로,하는 수 없이 그들은 그냥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클라라의 동생 아녜스도 언니의 수도 정신에 대단히 감탄하여

자기 언니와 같이 수도 생활을 하고자 몰래 집을 나와버렸다.

이렇게 연거푸 일어나는 사고에 스티피 가족은 격분한 나머지 부하를 보내어

아녜스를 끌어내게 하여 발로 차며 밟아서 매우 혼을 내게 하고, 마구 끌면서 집에 데려가려고 했다.

이런 봉변을 당하는 동생을 위해 클라라는 하느님께 그 보호하심을 구하였더니,

신기하게도 그녀의 체중이 천근이나 되어 너무 무거워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급변의 사실을 본 사람들은 물론 놀랐고, 이는 하느님의 안배하심이라하여

마침내 아녜스에게도 수도 생활을 허락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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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미아노 성당의 옛 가대

 

성 프란치스코는 성녀 클라라와 그 동료들에게 성 다미아노 성당을 본거지로 주었다.

이 성당은 너무 오래되어서 모두 부서졌었는데,

수년 전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독자적으로 수리한 실로 유서 깊은 성당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가끔 "얼마 안된 이곳에는 경건한 부인들이 모여서 살 것이며,

그들은 완덕의 생활로써 하느님 아버지께와 교회에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자처럼 말했다.

과연 이 말씀은 실현되어, 그로부터 42년간 클라라와 그 제자들이 복음적 완덕의 생활을 했다.

 

성녀의 자기 육신을 다스리는 극기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아시시의 주교와 성 프란치스코가

그녀의 건강을 염려해 극기의 생활을 완화하고

육신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더 깊은 희생을 하라고 엄명했을 정도였다.

클라라의 수도 정신은 남달리 강했지만 몸은 약한 편이어서 그런 엄격한 고행의 생활은

곧 그녀의 건강을 헤치게 되어 여러 해 동안 병석에 눕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을 감심으로 참으며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하며

그러한 병고에도 틈틈이 제복을 위한 바느질을 하고 아름다운 자수를 놓아서

이를 움브리아 지방의 가난한 교회에 보내기도 했다.

 

 

클라라는 모든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극히 엄격하면서도

아래 수녀들에 대해서는 자비로운 어머니와 같이 인자했다.

그래서 그녀의 덕을 사모하여 그 지도를 바라며 각지에서 그녀의 산하에 모여드는 소녀들이 날로 증가했으며

그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었다.

클라라의 어머니 오르톨라나디도 남편의 사망 후 그 수도원에 와서 딸 밑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회칙에 의하여 그 회는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많은 수녀를 데리고 수도원을 이끌어나가야 되는 클라라는 하느님의 안배하심만을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굳은 신뢰심으로 극히 궁핍할 때에는 가끔 기적도 일어났다.

예컨대, 빵 한개로써 많은 수녀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많아진 기적이며,

혹은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비어 있던 기름단지에 기름이 가득 채워진 기적이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 당선된 당시의 추기경 후고리노가 그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식사때에 클라라는 추기경의 강복을 청했으나 오히려 추기경이 클라라에게 강복하기를 명하므로

겸손한 그녀는 곧 그 명대로 한 십자가를 그으며 식탁을 강복하자

갑자기 그 위에 놓여 있는 빵마다 조그마한 십자가 표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녀의 강복으로 중환자가 기적적으로 완쾌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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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Clare with the Scene of the Siege of Assisi-CESARI, Giuseppe

Oil on panel, 37 x 45 cm.The Hermitage, St. Petersburg

 

1240년 독일의 황제 프리데리코 2세와 동행한 사라센 대군잉 움브리아 지방의 스포레트와

각 도시, 마을을 점령하고 아시시에까지 침입했을 때,

클라라 수녀원도 위험한 처지에 놓여졌다. 그때 그녀는 성당에 들어가 제대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동정녀들을 보호할 힘이 없습니다.

하오니 당신이 직접 그 전능하신 힘으로 그들을 보호하시어 적의 손에 넘기지 말게 해 주십시오"하며

뜨거운 기도를 바치고 일어나서 성광을 모시고 천천히 적군들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 손에 쥐여진 성광에서 기이한 빛이 발사되어 이교도인 적들은 눈이 부셔서 겁을 집어먹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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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클라라는 교황 및 성 프란치스코의 엄명에 의해 수도원 총장이 되었으나,

그녀의 겸손은 감소됨이 없었다.

하루는 그녀가 다른 수녀원에서 온 수녀의 발을 씻겨주고,그 발을 친구하려고 했다.

깜짝 놀란 그 수녀가 발을 웅크리다가 잘못하여 클라라의 얼굴을 차서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조금도 안색을 변하지 않고 미소를 띤 채 그녀는 다시 그녀의 발을 잡아

부드러운 친구를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겸손지덕인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를 영적 아버지로, 또 자기는 그의 작은 싹으로 생각하고

항상 그를 존경했으며 그의 높은 덕을 볼때마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또 프란치스코도 클라라의 뛰어난 종교적 소질을 보고 이를 열심껏 지도했으며,

기회 있는대로 좋은 훈계를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그런데도 그들이 만나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임종시에 클라라와 그 수녀들에게 사후에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은 곧 이루어졌다.

믈라라와 그 수녀들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수녀원으로 모시고 온 성인의 유해를 앞에 놓고

뜨거운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서 충실히 프란치스코의 덕행을 따른 클라라의 서거도 그와 비슷했다.

 

 

자매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클라라, 성녀의 유해

 

즉 성인이 제자들에게 한 것과 같이 클라라회 수녀들에게 일일이 사랑의 축복을 해 주며

1253년 8월 11일 아침에 잠들 듯이 조용히 이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는 성녀라고 불리던 클라라는 사후 2년만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에 의해 정식으로

성인품에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다.

성녀는 텔레비젼의 주보성인이며,문장은 성체 현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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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글라라가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Edit. I. Omaechevarria, Escritos de Santa Clara, Madrid 1970, pp.339-341)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과 사랑을 생각 하십시오.

 

전심으로 그리스도께 매달려 그 거룩한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상의 군대들이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불을 놓습니다.

 

그분에 대한 관상은 우리의 휴식이고 그분의 자비는 우리의 만족입니다.

 

그분의 감미로움은 우리를 가득 채워 넘쳐흐르게 하고 그분에 대한 기억을 감미로운 빛으로 빛나게 하며

그분의 향기는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분을 직접 보는 영광스러운 천상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에게 행복을 줄 것 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영광의 광채요 영원한 빛의 반사이며 티없는 거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여, 왕후이신 자매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 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보고 안팎으로 단장하고 여러 색깔의 꽃들로 치장하여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의 딸과 정결한 정배에게 있어야 하는 온갖 덕행의 옷을 입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거울 전체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 거울에는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먼저 거울의 맨 밑에서부터 본다면 말 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신 분의 가난을 볼 것입니다.

놀라운 겸손이여! 비할 수 없는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께서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다음으로 거울의 중간을 본다면

그 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통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신 겸손과 복된 가난을 볼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거울의 맨 위를 본다면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 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신

그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신 이 거울께서 십자가 나무 위에 매달려 계실 때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아, 나를 바라보라. 내가 겪던 고생 같은 고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외치고 울고 있는 그분께 한마음 한 목소리로 대답합시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내 마음 괴로워하겠나이다."

 

천상 임금의 왕후이신 아녜스여, 당신이 그렇게 하신다면 당신 안에 이 사랑의 불이 더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임금님의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부요와 끝없는 영예를 바라보시고

열렬한 갈망과 마음의 사랑으로 그것을 그리워하고 그분께 이렇게 외치십시오.

"오, 천상의 신랑이시여, 날 이끌어 당신을 뒤따르게 해주소서.

싱그럽기 그지없는 당신의 방향으로 줄달음쳐 가리이다."

"당신께서 나를, 술방으로 이 몸을 데리고 가실 때까지,

당신께서 왼손으로 내 머리 받치시고 당신 바른손으로 기쁘게 이 몸 안아 주시며

당신의 그 입술로 나에게 입맞춰 주실 때까지, 나는 지치지 않고 달려 가리이다."

 

사랑하는 아녜스여,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할 때 이 가련한 어머니를 잊지 마십시오.

당신에 대한 기억은 내 마음 안에 굳게 새겨져 있고, 나는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 축일:3월2일(3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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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탄생함.

1206-1211 프란치스코의 회개과정을 목격하고

1210년 그의 사순절 설교에 감동되어 몇 차례 프란치스코를 만나 자기 뜻을 밝힘.

1212년3월18일

밤에 글라라는 자기집을 몰래 떠나 뽀르지웅꼴라에서 프란치스코 앞에서

그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착복식을 하고 순종을 서약함.

임시로 바스띠아의 성 바오로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녀원에서 머물다가

얼마 후 수바시오 산 아래 성 안젤로 베네딕토회 수녀원으로 자리를 옮김.

글라라의 동생 아녜스가 여기서 입회하여 언니와 같은 생활을 시작함.

1212-1213

글라라는 아녜스와 동료 몇 명과 함께 자기들을 위하여 프란치스코가 마련한

성 다미아노 수녀원으로 이주하여 이곳을 ‘가난한 자매들의 회’ 모원으로 삼음.

프란치스코는 자매들을 위하여 ‘생활양식’을 써줌.

1215 성 다미아노 공동체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베네딕토회 회칙을 따르게 됨.

이에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명에 따라‘원장’이라는 명칭으로 원장직을 맡음.

1216 글라라는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가난의 특전’을 얻음.

1218 시토회 출신인 암브로시오가 성 다미아노 수도원의 순시자로 임명됨.

1218-1219

프란치스코와 작은 형제들의 정신에 따라 성 다미아노 공동체와 같은 공동체들이 여러 곳에서 발생함.

이 자매들은 처음에 ‘다미아니떼’라고 부름.

1219

우고리노 추기경이 성 다미아노 수녀원이나 다른 다미아니떼 공동체들을 위하여 고유한 회칙을 씀.

이에 따라 자매들은 1219년부터 1247년까지 우고리노의 회칙을 따라야 했고

법적으로 베네딕토회의 회칙을 써야 했다.

1227 우고리노 추기경이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되어 순시나 기타 제2회를 돌볼 책임을 작은 형제회에 맡김.

1228 프란치스코의 시성식 관계로 아시시로 간 그레고리오 9세가 글라라를 만나 그녀의 요청을 받고

9월 17일자로 “가난의 특전”을 재확인함.

1230 글라라는 친동생 아녜스를 피렌체에 있는 몬티첼리 수녀원의 원장으로 파견함.

1247

인노첸시오 4세 교황이 제2회 자매들을 위하여 새 회칙을 작성하여 인준함.

내용은 우고리노 회칙과 큰 차이가 없지만, 회칙 안에서 베네딕토 회칙의 법적인 효력을 폐지시키고

프란치스코의 회칙을 서약할 것을 결정함.

따라서 교회법상 제2회 자매들이 처음으로 프란치스칸들이 되었음.

또한 교황은 자매들을 작은 형제회에 직속시켰음.

1248 6월 17일에 라이날도 추기경이 글라라회의 “보호자 추기경”으로 임명됨.

1252 글라라가 인준 받은 프란치스코의 회칙을 관상생활에 적용하여 자매들을 위하여

직접 고유한 회칙을 씀. 라이날도 추기경이 교황의 이름으로 9월 16일에 이 회칙을 인준함.

1253

글라라는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넷째 편지를 보냄. 글라라가 유언을 씀.

8월 9일에 인노첸시오 4세가 글라라가 쓴 회칙을 인준함.

8월 11일에 글라라가 회칙을 가슴에 안고 세상을 하직함. 그의 유해는 성 제오르지오 성당에 안치됨.

1255 교황 알렉산드로 4세가 아시시 대성당에서 글라라를 성녀품에 올림.

1255-1256 토마스 첼라노가 글라라의 전기를 저술함.

1260 10월 3일에 글라라의 유해는 성녀를 위하여 건축된 글라라 성당에 안치됨.

1850 글라라의 시신이 상하지 않은 채로 발견됨.

1893 글라라의 회칙의 원본이 성녀의 수도복 속에서 우연히 발견됨.

(양평 성 클라라 수도원홈에서www.cla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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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dy of Saint Cl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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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미아노 대성당(성 클라라 대성당 Clare of Assisi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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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적 생활에 감명을 받은 그녀는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클라라 수도회를 세웠다. 수도 생활에 대한 집안의 반대도 심했으나, 오히려 동생 아녜스마저 언니의 뒤를 따라 수도자가 되었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철저하게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계속하였다. 1253년 선종한 그녀를 2년 뒤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 짐을 꾸려 떠나라고 이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시며 큰 빚을 탕감받고도 작은 빚을 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악한 종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1-12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3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유배 짐을 꾸려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행여 자기들이 반항의 집안임을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4 너는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5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뚫고 나가라. 6 너는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마라.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삼았다.” 7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하였다.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손으로 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8 이튿날 아침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9 “사람의 아들아, 저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신탁은 예루살렘에 있는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11 너는 또 말하여라.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유배를 당해 끌려갈 것입니다.’ 12 그들 가운데에 있는 수장은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이 그를 내보내려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매우 고약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왕에게 하소연하여 엄청난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자신의 동료에게는 모질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탕감받은 돈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액수를 빚진 동료를 매정하게 감옥에 가두었지요. 어쩌면 이런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다른 이에게는 모질게 대하는 경우가 없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은 늘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서도, 막상 다른 이가 조금만 서운하게 대하면 큰 모독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남에게 늘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이 조그만 상처라도 받으면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빚진 이들이 아닙니까? 비록 크건 작건 간에, 누구나 다 하느님께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누구나 완전한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부족하고 부끄러운 점이 있지만, 그 부족한 부분까지 내보이면서까지, 좀 더 하느님 뜻에 충실히 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끼리 결코 헐뜯고, 단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듯 자신의 동료를 감옥에 가둔 저 몹쓸 종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내가 몸담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서로 돕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더욱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기쁨과 사랑 평화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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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햇살님의 댓글

윤햇살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 이시여!
나주 성모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예수님께서 그 에게 대답 하셨다
내가 너 에게 말한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번 까지 라도 용서 해야한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 부터
용서 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 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것이다.

      아멘!!!
성체사랑님~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주님 성모님 사랑 속에서 건강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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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성심님의 댓글

사랑의성심 작성일

성녀 클라라이시여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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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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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전구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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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처럼님의 댓글

천사처럼 작성일

하느님과 이웃을 온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 성녀의 삶은
그녀의 이름처럼 오늘날 감각적 사랑과 물질만능주의에 빠 져가는 이 세상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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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님의 댓글

마라나타 작성일

아멘~~~!!
외적인 것을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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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아~~~멘
성녀 클라라 동정 이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웃에게 상처주지 말고, 서로돕고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많아지도록 빌어주소서

성체사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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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 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빠른 건강 회복을 위해,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이루어 지도록 전구해 주소서.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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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님의 댓글

미소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성녀시여나주성모님인준위하여기도해주세요.
성체사랑님.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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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성녀 글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지향하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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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녀 글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전구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지향하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시고
빠른 회복 전구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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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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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성녀 글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전구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과빠른 건강 회복과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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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혁님의 댓글

유민혁 작성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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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성녀 글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지향하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빌어주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님의 수고에 늘 감사합니다.
주님, 성모님 사랑과 은총 많이 받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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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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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천사님의 댓글

♥아기천사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 이시여!
나주 성모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
늘 수고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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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필리에버님의 댓글

해필리에버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빠른 건강 회복과 안전,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지향이 이루어지시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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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이님의 댓글

흰눈이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기도지향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구해주셔요.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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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빠른 회복과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전구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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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성녀 클라라 동정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 - 멘..
제가 지향하는 모든 이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 -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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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성녀 글라라 동정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세계평화 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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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정신님의 댓글

순교정신 작성일

기도와 사랑으로 주님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시고
그분과 영원히 결합되는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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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끌리나님의 댓글

마끌리나 작성일

+++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리시오.
++++

아멘~!!!

가난과 겸손의 성녀 클라라이시여~~~
나주의 인준과 율리아님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 가득가득 받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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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녀 글라라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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