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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러 신앙교리성 장관님의 글: "상대주의자들의 불관용에 대한 반론"(1)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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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상바오로
댓글 23건 조회 2,220회 작성일 12-10-30 21:10

본문

†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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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쓰는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든 이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소서. 아멘!

 

11월 3일 첫 토 기도회에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나주에서 현존하시면서 인류구원을 위하여 눈물, 피눈물을 흘려주시고, 성심을 열어 피를 흘려주시고, 온몸을 짜내시는 고통 속에서 향유를 흘려주시는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성모님께 아주 작은 위안이 될까 하여 뮬러(Gerhard Ludwig Müller) 현 신앙교리성 장관께서 독일 뮨헨대학교 가톨릭 신학대학 교리신학 담당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님)이 주도하여 발표하신 회칙 "주 예수님(Dominus Jesus)"에 대한 상대주의에 물든 독일 신학계와 언론계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하여 쓴 반론으로 2000년 9월 9일 독일 가톨릭 신문인 Die Tagespost" 3면에 실린 글을 번역한 글을 몇차례 나누어 게재합니다. 나주 성모님 인준 문제를 다루실 현 신앙교리성 장관님의 신앙세계를 우리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일부 오역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글을 번역하면서 교리논쟁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전개되는 독일의 신학계나 교회는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톨릭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부 신부들의 글에 대해서는 침묵 속에 방임 내지 동조하고 나주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특별계시를 믿고 따르는 평신도들을 교회법에 반해 박해만 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과학적 조사도 하지 않고 있고, 일부 신부 내지 신학자들의 이단적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많은 평신도들이 읽는 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에 실을 수도 없는 우리 교회는 성전이 비어간다는 독일 교회보다 더 심각하게 병들고 있다는 우려를 품게 되었습니다.

 

.......................................................................................................................................................

 

상대주의자들의 불관용에 대한 반론

- 신앙교리성의 회칙 “주 예수님(Dominus Jesus)”에 대한 비난과 관련하여 -

 

Gerhard Ludwig Müller

 

초기 교회 때부터 이미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당당히 외치자 초기교회의 적대자들은 스테파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초기 교회의 적대자들은 하느님 백성을 위한 구원의 길이 나사렛 예수임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스테파노의 증언에 격분하였다(사도행전 7, 55-56).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 31-32).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따르리라! 담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대중매체는 믿는 이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저 적대자들의 격분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

 

초기 교회 시대부터 유대인 최고회의 원로들은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요 구원의 중재자라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조금도 관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최고회의 원로들은,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행전 4장 12절)는 초기교회의 신앙고백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형벌과 박해로 위협하였다. 오늘날까지 저들의 반응의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언론시장의 최고회의 원로들은 예수님을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디모테오 전서 2장 5절)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신앙 그리고 교회의 통일성과 유일성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선언에 격분하여 들고 일어나고 있다.

 

신앙교리성의 회칙은 그리스도교를 뿌리 채 파괴하려는 시도와 다름없는 이른바 종교다원론에 대한 반론이다. 종교다원론자들은 종교들 사이의 평화는 어느 종교나 창조된 세계의 근거이신(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동일한 보편적 체험의 등등한 가치가 있는 표현임을 서로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종교들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열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신앙의 본질,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고백, 영원하신 말씀께서 나사렛 예수님으로 육화되어 강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고 보편적인 구원중재자지위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여야 한다. 종교다원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 종교성향을 토대로 특별히 서양적 색채의 종교를 창립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예수님을 종교적 천재의 하나로 끌어내리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계시가 종교 소통합,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하는 것은 물론이요, 종교 대통합, 즉 전 세계의 모든 종교인들을 단일의 세계종교로 통합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종교다원론자들이 가톨릭교도들에 비하여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종교 내지 교회 다원론자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토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가톨릭 교회의 우월성 주장이 개인의 양심을 침해하고 선교적 제국주의를 초래하는 광신적인 것인 반면 종교다원론은 관용이라는 차원 높은 가치를 수호한다고 표방한다.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는 사람들에 비하여 영적으로도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부정의 신학(신의 속성이 아닌 것을 식별해 냄으로써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신학; negative Theologie, Apophatic theology)이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전통을 (부당하게) 끌고 와서 주장하는 것처럼 하느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존재라면, 하느님과 관련한 인간의 주장은 어떤 것도 유일한 진리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하느님에 관한 인간의 주장들은 (그것들이 완전히 반대되는 것인 경우조차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결합하여 주는 무한한 빛을 부분적으로 밖에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하나의 위격이나 셋 또는 그보다 많은 수의 위격으로 표상하든 또는 모든 인격성을 뛰어 넘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원적 근거로 표상하든 상관없이) 인간은 원칙적으로 창조주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되는 내용들의 진리성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적정한 태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렛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 그의 작품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에서 사용해서 매우 유명해진 “반지의 비유”는 비의로 가득한 복음을 빗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왕은 세 아들 중 물려줄 반지를 받을 아들 하나를 뽑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떤 방법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진품과 똑같은 반지 두 개를 복제하여 세 아들에게 반지 하나 씩 물려주었다. 자신이 물려받은 반지가 진품이라는 세 아들의 주장은 은폐된 이기주의요 부당한 우월성 주장이라는 것임이 드러난다. 종국에는 세 개의 반지가 모두 위작이고 진품은 분실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용의 “찬가”는 사실 인식론적으로 진리문제에 대한 상대주의로 표현되는 회의주의의 천명이다. 이 이론은 종교의 기능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처방이나 피안에 대한 신기한 체험을 위한 곳으로 격하시키거나 종교비판, 궁극적으로는 공격적 무신론으로 귀결되고 만다. 렛싱이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상대주의에 인식론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을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저 반지의 비유가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더 나아가 세계의 시원적 근거에 대한 모든 다른 종교적 확신들은 진리문제에서 (단지 표면적으로만) 서로 대립하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이 겸손한 자세로 하늘에 계신 영원한 아버지만이 진리의 길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렛싱의 비유는 피조물의 기만적인 겸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렛싱, 따라서 상대주의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을 계시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단호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서로 관용할 수 있는 전제로 제시되는 상대주의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진리와 생명이신 하느님께 굳건히 의탁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오만한 태도를 회칠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상대주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정의로운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각 개인의 이성과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는 진리와 사랑에 대한 동경심을 채워주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이 되어 강생하시기까지 하심으로써 우리 사람과 함께 인생행로를 걸으시기도 하시는 하느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 반지의 비유를 듣는 사람에게 관용의 회칠 밑으로 전체주의적인 종교교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그 비유를 따르는 사람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은밀하게 지켜보는 증인이고, 그렇기에 하느님의 관점에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진리주장이 모두 자기기만임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렛싱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진리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렛싱이 비밀스런 계시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사람들 사이의 관용은 하느님에 대한 극도의 불관용이라는 너무도 큰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낸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상대주의적 자유주의자들보다 더 반교회적 광기적 폭력을 통해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한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고 꾸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인간적인 하느님의 계명과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는 미명하에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백 만 명을 박해하고 살해한 20세기 무신론만큼 인간에 대하여 적대적인 운동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주의는 하느님에 대한 불관용에 토대를 두고 있다. 관용이라는 말은 참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를 갖는 라틴어 톨레라레(tolerare)에서 유래한다. 자유주의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에 달려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관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 우리를 향하여 손을 내미시며 온전하게 영적․도덕적인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관용하는 사람, 즉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참아내는 사람은 이웃과 반목하고 이웃에 불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인의 진리는 그가 개인적으로 좌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인은 하느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목숨을 희생하여서라도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지갑에 들어있는 품질보증서처럼 영원한 구원보증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스도교인은 그 구원사업의 도상에서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큰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많이 받은 자들은 그만큼 많이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고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하여 선교활동을 한다. 그리스도교인은 성부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파견하신 것처럼 자신도 하느님에 의해 사람들에게 파견되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교인은 진리의 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심부름꾼일 뿐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이와 같은 화해의 복음을 사람들이 모두 다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하신 말씀과 진리를 로마의 아우구수투스와 티베리우수 황제치하의 팔레스티나에서 사셨던 너무도 구체적인 개인(즉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하셨다는 것 그리고 이 예수님이라는 작은 문을 통해서만 종교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광대무변의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면 스테파노처럼 사람들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거나 바오로사도처럼 광장에서 조롱을 받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역사적인 진리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영원한 진리를 관용하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상대주의자들의 불관용도 감내할 것이고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인간의 불성실과 거부보다 하느님의 성실이 위대하다는 사실의 증인으로서 그와 같은 불관용을 이해할 것이다.

 

(계속)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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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폴님의 댓글

죤폴 작성일

교리논쟁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전개되는 독일의 신학계나 교회는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톨릭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부 신부들의 글에 대해서는 침묵 속에 방임 내지 동조하고 나주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특별계시를 믿고 따르는 평신도들을 교회법에 반해 박해만 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과학적 조사도 하지 않고 있고, 일부 신부 내지 신학자들의 이단적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많은 평신도들이 읽는 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에 실을 수도 없는 우리 교회는 성전이 비어간다는 독일 교회보다 더 심각하게 병들고 있다는 우려를 품게 되었습니다.아멘,
소중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을 잃어가고있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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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님의 댓글

박하사탕 작성일

주제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작금의 우리 천주교회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은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본당의 신부님들을 보노라면 예전의 그 거룩한 주님의 종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들고 본당을 잘 운영하기 위한 숙련된
전문 매니저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 저만 갖는 착각이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세속과 잘 타협하여 두루뭉실하게 잘 넘어 가느냐가 능력과 무능력으로 비춰지는 교회 풍토로 고착화된 지금
그 원인의 정점에는 안일무사주의와 현대신학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버린 교회의 장상들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 집니다.

왜냐하면 나주의 진실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누구 한분도 나서서 진실을 외치지 않고 죄로봣 우로봣 하고 계시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니까요.  그러니 불쌍한 저희 양떼들은 나주 성모님 메세지 말씀에 따라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수 밖에
현재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평신도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한국교회 풍토에서 저희가 뭐 어쩌겠습니까? 또 성직자, 수도자 앞에만 가면 무릅팍 딱 붙이고
손바닥 살살 비비며 굽신거리는데만 익숙하고 길들여진 저희 습성이 고쳐지지 않고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교회의 쇄신은
어려울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을 걸고 있는 메세지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끝 맺을 것이다 라고 하신 주님의 그 말씀에 저는 제 평생에 아니 조만간 이루어지길 목 매달고 있는 형편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의 시기에 거세게 출렁거리는 대해에 띄워진 일엽편주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승선한 승객으로서의 뿌듯함과 자부심으로
어께에 후까시(죄송?) 좀 넣을려구요. 허허

그러나 그 이전에 율리아 엄마의 고통이 끝나고 남은 생애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저와 나주 순례자 모두의 간절한
소망 때문에 어서 빨리 나주 성모님이 승리하시길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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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독일 사람들은 그래도 그 민족성이 탐구정신과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게 훌륭한 삶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여 집니다.
대단한 합리성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그런 사고가 통하지 않을 만큼 어리석고 ,교만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뭐가 하나 삐집고 들어갈 틈 조차 거부 합니다.

최근에 나는 3개의 가톨릭 사이트에서 신부님이 운영하는 곳에서 글을 써 왔는데 사제들이 하도 고압적으로 `내가 바로 가톨릭이다` 하는듯이 교만을 부리는 통에 그만 나는 탈퇴를 하고 말았습니다.그러나 일말의 희망은 있습니다.어떤 계기로 나주는 진실이다라고 주교님이 말씀 하실 때,(그런날이 반드시 올것) 모두 잠에서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기 위해 우리는 저 스테파노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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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참으로 저는 모든 교리 문제에서 아는것이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저에 의식속에

오직 한분 뿐이신 하느님께서 모든것을 관할 하시고 주관 하시는 하느님으로 믿고

살아 왔는데  저희들 마음씨 착한 일부 신부님들과 여러 신들에게 발을 걸친 사람들에

의해 하느님이 아닌 모든 신들과 동일한 한 사람에 종교 창시자로 생각 하는데

안타까울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 분들을 보면 저분들에 말에 의 하면 무순

이유로 교회에 나가 미사를 드려야 하는가 회의감이 들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 들인다 하면서  타 종교  신도 구원이 있으니 종교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전교 하지 마라고

감히 신부님께서 하느님에 거룩한 강단에서 선포 할수 있는지요  저는 그소리에 저에 가숨속에서

울컥 솟아오루는 격한 감정이 올라 왔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무식하니까 저 드넓은 포용력을 지닌신

분들을 이해 하지 못한 저에 소인배 생각이다 하면 저 자신을 늘렀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속에

일부 신부님들에 의해서 하느님에 강단이 위협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다시는 강단에서

선포 되지 않도록 저희들 기도가 필요한것 갖습니다  마치 다른 종교  신념을 빛대어 말하는것이

자신에 지성을 드러내듯이 뽐내는 사람들이 더이상 저희 교회안에서 득세 하지 못하도록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힘을 빌어 기도 드리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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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좋은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시련의 과정과 혼란을 거쳐  진실함을 밝히시려는 "알곡과 죽정이를 가르시려는" 하느님의 뜻은 혹시나 아닐런지요?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느님께서 지켜보시겠지요~ 인간의 우측에 천사와 좌측에 사탄의 싸움은 아닐런지요?

사랑합니다~ 하상바오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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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님의 댓글

집으로 작성일

좋은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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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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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님의 댓글

주연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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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향님의 댓글

장미향 작성일

아멘 노고에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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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나주 성모님 인준 문제를 다루실 현 신앙교리성 장관님의 신앙세계를
우리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번역
하여 올립니다 아멘!!!아멘!!!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지원자님들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꼭 이루어
지기를 하상바오로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정성 합하여 바쳐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하상바오로님...수고로 글 올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것을 알게됩니다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다 함께
기도로서 힘을 모으며~영육간에 건강을 빕니다 아멘!!!첫토요일
기도중에 뵈어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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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그리스도교인은 하느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목숨을 희생하여서라도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아 - 멘. 아 - 멘. 아 - 멘..
나주성모님이 인준되어야 성직자분들의 눈이 띄이고 귀가 열릴겁니다.
저 같은 하찮은 죄인도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제멋대로 오용,남용한 결과로
고위성직자(주교,,)분들의 오류와 또 세속화되어 감으로 신성한 교회의 깊숙한 조직까지도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슴이 훤히보이는데도.........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참으로 슬프고 마음이 안타까워 교황님과 고위성직자 분들을 위해 기도가 절실함을 느끼는데..................."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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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하상 바오로님
수고 많으십니다
성모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  감사합니다

은총 가득 받으세요  사랑해요 하상 바오로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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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나주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특별계시를

믿고 따르는 평신도들을
교회법에 반해 박해만 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과학적 조사도 하지 않고 있고,
일부 신부 내지 신학자들의 이단적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많은 평신도들이 읽는 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에

실을 수도 없는 우리 교회는
성전이 비어간다는 독일 교회보다

더 심각하게 병들고 있다는
우려를 품게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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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단비님의 댓글

사랑의단비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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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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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님의 댓글

신비 작성일

아멘^()^

앞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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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아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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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하상바오로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교리를 올려주시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신 그대로 감사!!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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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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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가리님의 댓글

천국에가리 작성일

+++
그리스도교인은 그 구원사업의
도상에서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큰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많이 받은 자들은
그만큼 많이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멘!

하상바오로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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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하느님 아버지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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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아멘~~~

하상바오로님 감사드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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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하상바오로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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