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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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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님함께
댓글 33건 조회 2,376회 작성일 13-07-22 03:50

본문

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69%가 지금부터 63년 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게 아니고, 남한이 북한을 침공 했다라고 알고 있다는 것을 보고 경악을 할 정

도로 놀랍니다.

 

어떻게 북한이 먼저 남한을 침공한 것을 그렇게 알도록 교육을 시켰는가에 대하여 매

우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실시하였고,수상한 사람을 보면 당국에 신고까지 하도록

하였는데 민주당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이 제도를 다 없애 버렸습니

다.

 

북한의 고위 정치인중에 황장엽씨가 남한으로 귀순하였을 때, 그는 남한의 공산주의자

들의 실태를 환하게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말 하길 한국의 정치,경

제, 사회, 교육, 종교에 이르기 까지 북한 간첩들이 가득히 깔려 있다라고 말 하였고,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하여 모두 놀랍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써 그들의 목표가 전세계의 공산화입니다.

이미 유럽의 절반, 아시아의 절반, 아프리카의 절반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고 스탈린

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사주하여 남한을 침공하도록 하며 무기를 대주고 탱크를 보내

주었을 때, 한국군에는 탱크 한 대도 없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악의 세력입니다.

그들에게는 정의와 평화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여 불과 2개월만에 대구와 부산지역만 빼놓고

잔라도는 물론이며 전국이 간단히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그렇게 되도록 이미 북

한은 한국 남한에 공산주의자들을 심어 놓았던 것이고 빨찌산들을 또한 양성해 놓았습

니다.

 

나는 그때가 14살이었기에 마치 어제일처럼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나는 피난 중에 왼쪽 팔의 어깨밑에 총상을 입었고 어머니는 머리에 총을 맞아 돌아가

셨습니다.

 

만일 총알이 1mm만 더 안으로 치고 들어왔더라면 나의 팔을 부러졌을 것입니다.

나는 동맥 핏줄이 끊어져 피가 솟구치는 것을 봤고 뼈가 하얗게 들어난 것을 봤습니다.

그날이 바로 7월 24일 오전 10시경이었습니다.

 

구름, 바람이 한점없는 가장 더운 여름이었는데,그날 나는 반드시 죽을 사람이었습니

다.

 

미군들이 나를 발견하고 수혈을 하는동안 나는 의식을 잃었습니다.의식이 깨어났을 때

는 뜨거운 풀밭에 누워있던 나를 미군이 들어서 소나무 그늘 아래에 옮겨 주었고, 한

미군이 두명의 갖난 아기를 안고 내 옆에 뉘였는데 아기가 햇볕에 익어서 아주 샛빨갛

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오만상을 찌프리며 마구 울지만, 목이 쉐어 울음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

았습니다. 한 미군 병사가 캔에 든 우유를 따서 먹이지만 아기가 다 토해 버립니다.

 

그곳은 우리나라 전사에 격전지로 기록이 되어 있는 충북 영동군 용산리 전투였습니다.

우리 피난민 일행 50여명이 모두 죽은 곳입니다.

내가 갖난 아기들을 쳐다보다가 다시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내가 의식을 차렸을 때는 미군이 나를 찦차에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릴

때, 내가 잠깐 정신이 들었는데, 나를 안고 있던 미군 병사가 기뻐서 운전사와 뭐라고

마구 지껄일 때 입니다. 나는 또 의식을 잃었습니다.

 

내가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깜깜한 밤중이었고,미군의 야전병원인 천막 안에서 수술을

할 때였는데, 전등빛이 어두워 미군들이 손전등을 들고 나를 빙 둘러서서 나를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나는 바로 또 의식을 잃었습니다.

 

내가 의식이 돌아온 것은 어느 초가집 마당이었고 램프가 하나 켜 있었고 나는 당가에

누워 있었습니다.나는 그때부터 처음으로 팔의 아픔을 느낍니다.내가 총을 맞아 피를

다 흘린지 13시간이 지난 후 처음으로 팔이 떨어져나가는 아픔과 마치 소금에 절이는

것 같은 쓰라림을 느꼈는데, 그런 느낌이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하

느님의 소리였던 것임을 나중에서 알게 됩니다.

 

그날밤 우리 환자들은 미군 트럭에 태워져 김천도립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김천도 이미

 피난을 간 상태라서 군인들만 가득했고 병원도 깜깜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다시 기차에 실려 대구 도립병원으로 옮겨 졌습니다.남한의 인구

가 모두 대구로 몰린듯 대구시내는 흰옷입은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대구 도립병원에는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였기에 얼마나 시끄럽고

선풍기 하나 없는 병실이 용광로 같았는데, 의사가 부족하고 약품이 부족하여 우리는 3

일에 한번씩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이 시체썩는 냄새로 가득하여 나는 마구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낙동강에 진을 친 북한 인민군들이 마지막 대구와 부산을 칠 계획을 꾸밉니다. 우선 대

구에 가득한 피난민들을 흐틀어지게 해야 전투가 가능하기에 그날이 8월 며칠인지 생

각이 나지 않지만 초순이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나는 새벽 4시에 잠을 깨고 있었는데,

"뾰오......"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그때는 통금이 실시되던 때라서 새벽4시면 아주 조용할 때입

니다만 나는 그 소리를 피난중에 많이 들었고, 뾰오 하는 소리는 포탄이 높게 떠 간다

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꽝"

하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4발의 포탄이 터지는 소리

를 들었는데, 마지막 포탄이 날라가는 소리는 뾰오가 아니라

"슈슈슈...."

하고 바람이 갈라지는 아주 낮게 떠가는 포탄 소리였는데 금방 터지는 소리를 들었습

니다.

 

그러자 잠잠하던 대구시내가 마치 벌집을 건드린듯이 왕왕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우

리는 아침에 트럭에 실려 기차역으로 가는데 차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

입니다.군인 하나가 와서 몽둥이로 휘두르자 찻길이 열려 우리는 간신히 역으로 와서

기차에 실립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금 송전탑 사건으로 소문이 무성한 밀양입니다.

처음엔 밀양 국민학교의 제7육군병원에서 낙동강에서 부상당한 군인들 틈바구니에서

치료 받다가 다시 밀양의 일반 수용소로 옮겨졌는데, 정부의 곡식을 쌓아두는 양철집의

창고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파상풍에 전염된 환자들이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것을 여러

명을 보고, 약품과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한 그 시절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나중에서 깨닫게 됩니다.

 

추운 11월 중순에 퇴원하여 화물열차를 타고 청주 집으로 왔지만, 어머니가 없는 집이

온전할리가 있는가.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는데 곧 1월 4일의 겨울 피난 명령이

떨어집니다.

 

나는 여름 홋바지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형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는데, 그해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이 와서 나의 검정 고무신은 낮아서 늘 눈속에 파묻힙니다.

우리가 여름에 어머니와 함께 피난하던 용산에 까지 왔을 때, 수많은 가무덤들이 눈에

파묻혀 볼록볼록한것이 수십개인지 수백개인지 모를 정도 입니다.

 

이곳 동네 사람들이 피난에서 돌아와 보니 논이고 밭이고 맨 시체더미라서, 주인이 찾

아올것 같아 삽으로 흙을 퍼서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춥고 다리가 아파서 이곳 동네의 어느 방에 누워 있는동안, 두명의 형은 동

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시신을 발굴하여 이미 다 썩은 뼈들을 추려 앞산에 가

매장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정부에서는 이제 피난 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계속 됩니다.형이 병들어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갈 곳이

없어 처음에는 이모네 집에서, 삼촌의 집으로 해서, 외삼촌의 집으로 해서, 또 어느 누

나의 집으로 해서 옮겨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1955년에 청주에 하나밖에 없는 북문로 성당에서 미국 메리놀 신부님 밑에서

성당 일을 하게 됩니다.

 

나는 1947년때부터 국민학교에서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가는도중에 성당에 들러, 한

국 구 신부님으로부터 교리를 배웠고 노래를 배웠습니다.그때는 수녀님이 없었기에 신

부님에게서 배운 교리에 흠뿍 빠지게 됩니다.나의 신앙이 자라게 된 초창기였지만, 후

에 미국 신부님들로부터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지내놓고보니 다 은총이었습니다.

나의 신앙이 굳게 다져지는 시기였기에, 그 후 성당을 나와 10여년을 방황할 때도 나의

신앙은 나를 버텨주는 힘이 되었고 나쁜길로 빠져들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서울 생활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 나이 50살 노총각이되어 서울을 떠나 강원도 깊은 산골 오지마을로 들어갑니

다.그리고 그곳에서 심한 텃세에 시달려 나는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고 그곳을 떠나려

할 때,

 

4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된 한 처녀가, 강원도의 나의 집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그냥 같이 살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삼척 사직성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는 혼배미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나는 두 아들을 이미 태중에서부터 하느님께 봉헌을 하였고 후에 사제가 되기를 바랬

습니다.

 

내가 노동력이 떨어져 일을 하기 어렵게 되자 생활자체가 어려워 집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현대문명의 이기인 컴퓨터를 배우게 해 주셨고,

컴퓨터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여러징표를 주신다는 나주 를 알게 됩니다.

 

지체 높으신 성모님이 한국을 찾아오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그때부터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성모님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내 아내와 두 아들을 다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나,지금은 나만이 나주 성모님을 사

랑하게 됨으로써 상처를 받으며, 나의 부족함을 절감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갑니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두 아들과 아내가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잘난 체 이곳에서 수다를 떨듯이 하지만, 가족 하나 이끌지 못하는 부족함

속에 사실 여러분들을 뵐 염치가 없습니다.

 

제 부족함을 너무 탓하지 마시고 저와 가족을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

면서 제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아멘.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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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님의 댓글

집으로 작성일

625 때 전국의 피난민들이 대구에 모여들었기에 그 열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이곳 대구의 여름은 작난이 아임니이드어 .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은
휴가다 뭐다 바다로 산으로 가지만 덥고 배고픈 저는 집안에서 더위와 씨름을 합니다 . 미리 이 세상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 셈 치면 됨니드어  ^^

작은 아드님은 영광의 전역을 하셨나요 ? 아마도 그 자제분이 일을 낼끼라예 코 앞에 있는 학교를 놔두고 멀리 타향으로 공불하러 갈 필욘 없지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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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들이님의 댓글

빛나들이 작성일

주님함께님
일생기를 잘 읽었습니다.
마치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듯 눈앞에 선하고
눈물과 고통속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느껴집니다.
오래 오래 건겅하시며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제가 몰랐던것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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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찬미예수,마리아~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나주를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마세요
나주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이 이상한겁니다. ㅎ

물론, 가족들을 나주성모님께로 인도해서, 성모님품에서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해줘야 하지만, 노력을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탓이지요, 무지하고 완고한,,

저는 이제 더욱 당당해지렵니다, 왜냐면, 저희들은
옳은길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더 믿음안에 확고히 서서, 좋은표양으로써,
노력한다면, 지향하던 가족들 모두, 나주성모님께로
인도 되리라 믿어요,  아멘,

은총글 잘 읽었습니다, 늘 곁에 계시어,주님함께님을
지켜주시며, 사랑해주신, 주님.성모님께 항상, 늘, 매일
감사와 찬미와 사랑을 드려요.. 아멘. 아멘. 아멘.
당당하게 사랑하는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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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저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나주를 순례하면서 저의 식구 모두를
나주로 순례오지 못함에 맘이 아팠습니다.

모두 저의 부족함이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더 잘해 주고 나주 영성을 더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과 각오를 했습니다.

우리들의 받은 은총이 컸기에 더욱더 그 사랑과
은총을 가족들에게까지 흘러들어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주님과 성모님께서  아시고 언젠가는

도와주시리라 믿어요.
더운날씨 건강 조심하시구요. 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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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사랑하는 주님함께님!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늘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려요~

언젠가는 때가 꼭 올거예요~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도드려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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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사랑님의 댓글

성심사랑 작성일

내가 노동력이 떨어져 일을 하기 어렵게 되자 생활자체가 어려워 집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현대문명의 이기인 컴퓨터를 배우게 해 주셨고,
컴퓨터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여러 징표를 주신다는 나주를 알게 됩니다.

지체 높으신 성모님이 한국을 찾아오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그때부터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성모님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함께님,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신앙은 삶에서 마주치는 어떠한 어려움도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합니다.
주님함께님이 그 표양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주시라고 나주의 성모님께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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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니 우리의 영성에 보탬이 되지요!! 감사!!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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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가족과 함께 늘 행복하소서^^

─╂──Φ▶★사랑해요★주님함께님★◀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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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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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아멘!!!아멘!!!아멘!!!
좋은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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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아멘.
파란만장합니다.
님의 가족 모두에게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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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오류는 정말 무서운 것이군요

주님 함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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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아멘!
주님함께님, 많은 수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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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

아멘,감사 샬롬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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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님의 댓글

주연 작성일

주님함께님

인생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낌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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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파님의 댓글

제파 작성일

주님함께님 글 잘  읽었습니다
꼭 가족이 님의 옆으로 돌아 올것입니다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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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G님의 댓글

ISAG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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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님의 댓글

지름길 작성일

아멘!!
밀양역 근처의 농산물 창고를  피난민 수용소(?)사용했던 그 때가
63년이 지났네요.밀양도 많이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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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님의 댓글

고요한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님의 가정에 항상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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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의 댓글

아기 작성일

피난 시절 이야기 읽으며 참으로 하느님께서 주님함께 님을 보호해 주셨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지금의 시간 들 모두 지나갈것이며 주님 성모님의 성심의 사랑으로 기도 지향 이루어 지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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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주님함께님~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가족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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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비님의 댓글

장미꽃비 작성일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언젠가는  온가족이  다  모여 살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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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지체 높으신 성모님이 한국을
찾아오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그때부터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성모님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됩니다...아멘...

주님함께 님 감사드립니다.
늘 영 육간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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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님의 댓글

믿음이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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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주님함께님~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가족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사랑해요~~~
언젠가는  온가족이  다  모여 살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늘 영 육간에 건강하세요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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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 ... 미군들이 나를 발견하고 수혈을 하는동안 나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뜨거운 풀밭에 누워있던 나를
      미군이 들어서 소나무 그늘 아래에 옮겨 주었고, 한 미군이 두명의 갖난 아기를 안고 내 옆에 뉘였는데
      아기가 햇볕에 익어서 아주 샛빨갛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오만상을 찌프리며 마구 울지만,
      목이 쉐어 울음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미군 병사가 캔에 든
      우유를 따서 먹이지만 아기가 다 토해 버립니다. ...

  ... 내가 의식을 차렸을 때는 미군이 나를 찦차에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릴 때, 내가 잠깐 정신이 들었는데
      나를 안고 있던 미군 병사가 기뻐서 운전사와 뭐라고 마구 지껄일 때 입니다. 나는 또 의식을 잃었습니다. ...

  ... 내가 의식이 돌아온 것은 어느 초가집 마당이었고 램프가 하나 켜 있었고 나는 당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처음으로 팔의 아픔을 느낍니다.내가 총을 맞아 피를 다 흘린지 13시간이 지난 후
      처음으로 팔이 떨어져나가는 아픔과 마치 소금에 절이는 것 같은 쓰라림을 느꼈는데,
      그런 느낌이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하느님의 소리였던
      것임을 나중에서 알게 됩니다. ...

  ... 나는 그곳에서 파상풍에 전염된 환자들이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것을 여러명을 보고, 약품과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한 그 시절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나중에서 깨닫게 됩니다. ... ]

처참한 전쟁 중에 미군의 호의가 참~ 감동적인데 신기하게도 그러한 열악한 아니 최악의 환경에서 환자가 많았을 터인데 ...
이 글을 읽으면 하느님께서 '주님함께'님께 특별한 보살핌과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살아 가면서
하느님을 믿든 믿지 않든간에 믿음과는 별개로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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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가리님의 댓글

천국에가리 작성일

+++
슬퍼할겨를도 없는 아픔과
추위속에
전쟁으로 잃어버린 가족...

하느님의어머니 보호속에
나주성모님께로
오시기까지
슬프고 고된 지난시간들이
복된사랑임을 알게 해주십니다.

주님함께님!
은총글 감사드립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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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은총의글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님의 글은 한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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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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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기도 지향이 모두 이루어 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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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라기님의 댓글

별바라기 작성일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는 인생이 없는 사람이 드문듯 싶습니다
특히 전쟁을 겪으셨으니 말로 못할 고생을 많이 하신것 같아요
저도 제 인생을 뒤돌아 보면 아찔한 순간이 여러번 있엇던것 같아요
주님함께님께 항상 영육간 건강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그리고 주님함께님 아내분은 마음이 변하신건가요?
나주 성모님 열렬히 사랑하시는줄 알앗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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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별바라기님 !
님의 그 이야기들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아내는 처음에는 나주를 열심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상처를 받고는 느슨해 지다가 점점 굳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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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주님함께님!
은총 글 감사드립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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