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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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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2건 조회 2,113회 작성일 13-08-20 09:0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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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Embracing St Bernard-RIBALTA, Francisco

Oil on canvas, 158 x 133 cm.Museo del Prado,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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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St. Bernardus, D. E
San Bernardo di Chiaravalle Abate e dottore della Chiesa

SAINT BERNARD OF CLAIRVAUX ABBOT, DOCTOR OF THE CHURCH
(Mellifluous Doctor of the Church; Last of the Fathers of the Holy Church )
Born :1090 at Fontaines-les-Dijon, Burgundy, France
Died :20 August 1153 at Clairvaux
Canonized :1170 by Pope Alexander III
Bernardo = ardito come orso, dal tedesco



부르군디의 디죵 교외에 있는 가족 성(城) 폰텐느 레 디죵에서 태어난 베르나르도(1090-1153년)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영화를 물리치고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경건한 교육을 받아 1111년 시토 수도회에 입회했고 조금 후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생활과 모범으로써 수도자들을 덕행으로 훌륭히 이끌었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창설자가 아니라 그 회원으로 입회하지만,
이 수도회의 개혁과 제2의 창설에 미친 지대한 공로 때문에 창설자 못지 않는 영광을 입었다.
학덕과 성덕이 뛰어났던 그는 곧이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했는데,
제국의 왕들과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여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알비파 이단을 척결하는 설교자로서 그리고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는 특사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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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발생하고 있던 분열을 막으려고 유럽 각지에 여행하면서 평화의 일치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신학과 영성 생활을 다루는 여러 저서들을 남겼다

또한 그는 아르마그의 성 말라기의 생애와 "신애론" 등의 유명한 저서를 비롯하여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집 "아가"와 편지 등을 남겼는데,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다.


이리하여 성 베르나르도는 "꿀처럼 단 박사"(Mellifluous Doctor of the Church)

라는 칭호와 더불어 교황 비오 8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1153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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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Appears to St Bernard - LIPPI, Fra Filippo.

1447.Wood, 69 x 105 cm.National Gallery, London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83,4-6: Opera omnia, Edit. Cisterc. 2[1958], 300-302)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줍니다.

사랑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닌 그 자체로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공로도 되고 상급도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말고는 다른 이유나 열매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되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과 같은 정도로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통하여 같은 방법으로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실 때 그 보답으로 사랑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하실 때 사랑을 받으시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으십니다.

신랑의 사랑은, 즉 사랑이신 신랑은 보답으로 다만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신부는 자신의 모든 여타의 정을 포기해 버리고 자신의 전존재로 사랑에게만 헌신합니다.

신부는 보답으로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 안에 자신의 전존재를 쏟아 낸다 해도

이것은 영원한 사랑의 원천에서 흘러 나오는 그 분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자체이신 분,

영혼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신부와 신랑, 피조물과 창조주,
그리고 목마른 사람과 샘에서 흘로 나오는 사랑은 그 풍요성에서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일하지 않다 해서, 즉 경주에 있어서 거인과, 단맛에 있어서

꿀과,온유함에 있어서 어린 양과, 순결에 있어 백합화와, 광채에 있어 태양과,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사랑 자체이신 분과 겨루지 못한다 해서

혼인하는 이의 욕망과 애통하는 이의 갈망과 사랑하는 이의 열정과
간청하는 이의 희망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더 작아서 그분보다덜 사랑한다 해도

힘을 다해 사랑한다면 부족함이 없고 있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하는 이는 주님과 혼인했습니다.

이 정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혼인이란 양 배우자가 서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먼저 또 더 위대하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0820San%20Bernardo%20di%20Chiaravalle%20Abate5.jpg 성베르나르도(흑백2).jpg

세기의 위인, 그는 오늘날 ’세기의 골키퍼’ , ’세기의 화해자’
이제는 더 이상 어떤 편에서도 충격을 가하지 않는 ’세기의 정당한 공격수’등

너무도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12세기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심도 논쟁도 없다.
이 위대한 인물은 바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이다.

교황의 조언자, 제2십자군의 설교자, 신앙의 옹호자, 분열의 치료자, 수도원의 개혁자,
성서 학자, 신학자이며 웅변적인 설교자,어떤 명칭에서도 그는 보통 사람과는 구별이 된다.
이 모든 자질이 있었음에도 베르나르도는

젊어서부터 은둔하는수도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1111년, 그의 나이 20세에 베르나르도는 시토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의 다섯 형제와 두 명의 삼촌과 30명의 젊은 친구들이 그를 따라 수도원에 들어갔다.
쇠퇴해 가던 공동체가 4년 안에 베르나르도 아빠스와 더블어

’윔우드’골짜기 근처에 새집을 짓기에 충분할 정도로 생기를 되찾았다.



성베르나르도(십자가들%20든).jpg

열성적인 이 젊은이는 타인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많은 요구를 했다.
쇠약해진 몸이 그를 더욱 더 끈기 있고 이해심 있게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얼마 후 클레르보 즉 빛의 골짜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재자로서, 상담자로서 그의 능력은 널리 알려지게되었다.
그는 수도원 문제에서부터 오래된 분쟁의 해결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에 마음을 쏟았다.
그는 로마의 몇몇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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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는 교황의 수위권을 옹호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로마로부터 온 걱정스러운 편지에 답하며
로마에 있는 훌륭한 사제들로도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만일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어떤 일이 생겼다면 베르나르도가 제일 먼저 그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 후 베르나르도는 무수한 분열을 진압하고 대립 교황주의와 맞서 로마 교황에게 유리하도록 해결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베르나르도에게 전유럽의 제 2 십자군들에게 설교하도록 설득했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열광적이어서 대부대가 모였고, 마치 십자군의 승리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군인과 그들 지도자들의 이상은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이상과는 달랐으므로
십자군 계획은 완전한 군사적 파멸과 윤리적 타락으로 끝이 났다.
베르나르도는 십자군의 타락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책임을 느꼈다.
이 무거운 부담이 그의 죽음을 재촉하여 그는 1153년 8월20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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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arition of The Virgin to St Bernard - LIPPI, Filippino.

1486.Oil on panel, 210 x 195 cm.Church of Badia, Florence.

교회 안에서 베르나르도의 활동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더 적극적인 것이었다.
그의 노력은 원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활동들은
그에게 힘과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져다 준 오랜 시간의 기도와 명상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일생은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에 의한 것이었다.
성모님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서들은 아직도 마리아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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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의심과 어려움에서 성모님을 생각하고 성모님을 부르시오.
그분의 이름을 계속 부르시오. 결코 당신 마음을 비우는 것을 괴로워 마시오.
그리고 당신은 성모님의 기도의 도움을 더욱 명백히 얻기 위하여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오.


성모님의 안내를 받으면, 당신을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당신 마음 속에 계신 한, 당신은 현혹되지 않으며

그분이 당신 손을 잡아 주시는 한 당신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보호를 받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로 걸어오신다면, 당신은 권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 호의를 보이신다면 당신은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성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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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덕생활의 원리는
"사랑은 정신적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그러니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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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ion of St. Bernard -Fra Bartolommeo.
c.1504. Oil on wood.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지금도 클레르보-명랑한 골짜기라는 수도원의 성당 안의

동정 성모 마리아 제단 앞에 묻혀 계신 성 베르나르도는
시토회의 둘째 창설자로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ifluus)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의 탁월한 설교는 수도자들의 성무 일도에 많이 채택되어 있으며, 시시로 많은 감명을 주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의 ’성모 찬송가’는 너무나 유명해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실제 과거 10세기 동안 이 아름다운 기도문으로 형언키 어려운 위로를 느끼며

새로운 용기를 얻은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훌륭한 기도문을 작성하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성모께 대한 신심을 가르치며 열심을 일깨운 베르나르도는
이 공로 하나만으로써도 충분히 교회 학자의 칭호를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것은 그의 풍부하고도 깊은 신심에 관한 저작 중 극히 일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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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쉘린 소렐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트의 아들로 태어난 위대한 학자 베르나르도는
1091년에 부르군디의 디죵 근교의 가족 성(城)인 폰텐느 레디죵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가의 고관으로서 늘 국사에 분주했으므로,
그의 교육은 자연 신앙이 유난히 두터웠던 어머니의 책임미 되었고

베르타르도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상의 행복이었다.


그는 샤틸롱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 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느 어머니를 여의었어도 그 존귀한 여러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잠시도 잊은 때가 없었다.

그가 21세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불고뉴의 군영에 입대중인 형들을 방문하는 도중,
어느 길가에 있는 한 성당에 들어가서 잠깐 기도를 바치다가
불현듯 어머니의 말씀을 생각하고, 세속을 떠나 수도 생활을 할 각오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시토회(빛).jpg

그는 원래 시토회의 창설자 3명 가운데의 한 명이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창설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3년인데,
그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해 모두 31명의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해 1098년에 창설된 시토회로 들어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이 성을 떠날 때 아버지의 슬하에 남게 된 막내동생 니발도를 보고
"우리는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므로

이 성이나 영토나 모든 아버지의 재산은 모조리 너의 것이 되는 거야"라고 말하니까,
니발도는 "형님들은 천국의 재산의 상속자가 되는데,
나는 다만 이세상의 재산의 상속자 밖에 못되니 생각할수록 분한 노릇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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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와 엄률시토회의 세 창립자.

그 당시 프랑스에는 유명한 수도원이 둘 있었다. 클리뉴이회와 시토회다.
그중에서 시토회는 성 노르베르토가 창립한 트라피스트회에 속하며,
생활의 엄격함으로써 유명하여 음식은 언제나 빵과 채소만으로, 절대로 육식을 하지 않고,
6시간의 기도와 6시간의 수면 외에는 심한 노동에 종사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란 본래 편안한 것을 찾는지라,

이 수도원을 지원하는 자는 평소에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게다가 수도원 내에 전염병이 만연해 수사 중에도 쓰러지는 이가 허다했으므로
세상사람은 점차 공포감을 느껴 시토회의 입회 지원자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때의 시토회 수도원장은 스테파노 하르딩이라는 규율 엄정한 영국인이었으나,
이런 일을 무척 유감스러이 생각하며 평소부터 좋은 지원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뜻밖에 베르나르도가 여러 동료들과 더불어 입회를 원하자 날뛰듯이 기뻐하며 즉시 그들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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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는 트라피스트회의 엄중하기 짝이 없는 모든 규율을 충실히 지킬 뿐 아니라

자진하여 다른 고행도 많이 행했다.


그리고 언제나

"베르나르도야, 너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Ac quid venisti)?"는

글씨를 앞에 놓고 자신을 격려했다.


Every morning Bernard would ask himself,
"Why have I come here?",

and then remind himself of his main duty - lead a holy life.

이 같은 베르나르도의 수도에 대한 열심이 눈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1115년에 그는 랑그레에 시토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과 엄격성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했으나

그의 성덕이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이 수도원의 이름을 바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명랑한 골짜기)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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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그는 38세때 트로아에서 개최된 성직자 회의에 참석하고,
신전기사(神殿騎士)수도원의 규율을 혁신할 것을 위탁받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베르나르도가 그리스도교를 위해 공공연히 활동을 시작한 시초로서,
그후로는 주교의 선거나 또한 여러 교리 및 사목 논쟁에 대한 화해 조정 등
중대한 교회의 문제를 그가 관계치 않은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럽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대립 교황인 안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해 1130년의 인노첸시오 2세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했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드인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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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해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부탁을 받아 강론을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듣는 것보다도 성인이라는 소문이 있는 그를 접하고, 그의 기적을 보며,
그의 축복을 받으려는 열정으로 수십리 되는 먼 거리를 무릅쓰고 모여오곤 했고

이로써 그는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베르나르도는 초청을 받고 이에 응할 수 없는 경우에는

종종 그 교회에 서한을 보내어 훈계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은 서한 중 지금까지 보존해 내려온 것이 500여 통에 달하고 있는데,
어느것을 보더라도 경건과 신심이 충만해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에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공로 중 가장 뛰어난 일은 무엇보다도 성지 팔레티나를

회교도의 수중에서 탈환하는 십자군을 위한 설교일 것이다.
이것은 전에 클레르보의 수도자였던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명에 의한 것으로
그는 전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일반 시민들에게 성스러운 전쟁에 가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참가한 각국 장병들은 모두 인간들이라 결국 저들간에 질투와 시기심으로 싸움이 일어나

마침내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는 베르나르도에 있어서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교회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또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성심성의로 기도하며 보속으로 극심한 고신 극기를 감행했다.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서 로마 쿠리아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교황 에우제니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랑그독에 파견해 알비파 이단을 대항해 설교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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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명령받은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늘 마치 그리운 고향에 가는 것처럼

클레르보에 부지런히 돌아와서 사랑하는 수도 생활에 골몰했다.


그리고 그가 수도원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새로운 지원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하여 클레르보의 수도자 수는 점차 증가되어 그의 임종시에는 약7백명이란 다수에 달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격하던 그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봄날처럼 온순히 대하며,
자신의 깊은 신비적 체험에서 베풀어지는 건강한 지도는 누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서한과 아르마그의 성 말라키의 생애 그리거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모든점에서 수도자들에게 명상적 생활을 하도록 권고했다.
그는 밤에도 기도했는데 그의 동료 수사들도 밤에 깨어 함께 기도했다.
그는 수도원을 지혜롭게 잘 다스렸으며, 특히 수도원 규칙을 엄중히 보전해 나가려고 무진 애썼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은 그 수도원에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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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년 베르나르도는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마침 메츠시의 귀족과 시민들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자,
주교는 베르나르도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이 조정을 절실히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쇠약한 몸을 두 수도자에게 부축 받아 그 시에 가서 알선에 노력한 결과

끝내 쌍방을 화해 시키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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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병세는 더욱 심해졌다. 그가 교회를 위해 세운 수많은 공로와 또한 수도원에서
시시로 쌓은 덕행의 보수를 받기 위해 천국을 향해 떠난 것은 1153년 8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63세였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교황 비오 8세가 그를 1830년에 교회 박사로 선언했다.


그는 스콜라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Last of the Fathers of the Holy Church)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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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나르도 성인은 11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자신의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다니며 설교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기드온을 판관으로 부르신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나 집안, 혈통으로 보아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이끌 영도자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용기를 주시며 사명을 맡기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구원이 재물의 힘이나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복음).
제1독서
  • <기드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6,11-24ㄱ 그 무렵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라고? 아니야. 난 나를 믿어.” 어느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독일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디 이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교란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난 영역, 곧 초월적인 영역을 제시하고 안내하며 이끌어 주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존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 (『공동번역 성서』 인용). 사람의 힘, 그것이 권력이든 재력이든 사교술이든, 또는 인내력이나 기획력, 창의력 등 어떤 능력이든 그 힘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 능력들이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능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은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힘에 의지하며 사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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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그의 수덕생활의 원리는
"사랑은 정신적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오"입니다.아멘

성베드라르도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기도지향이
이루어 지시길 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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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마다 꼭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세계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알라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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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는 "꿀처럼 단 박사"(Mellifluous Doctor of the Church)
라는 칭호와 더불어 교황 비오 8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베르나르도야, 너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Ac quid venisti)?"는
글씨를 앞에 놓고 자신을 격려했다...

그의 수덕생활의 원리는
"사랑은 정신적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오" 입니다... 아멘.

성모님의 안내를 받으면, 당신을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당신 마음 속에 계신 한, 당신은 현혹되지 않으며
그분이 당신 손을 잡아 주시는 한 당신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실 때
그 보답으로 사랑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하실 때 사랑을 받으시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으십니다.

신랑의 사랑은, 즉 사랑이신 신랑은
보답으로 다만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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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승리와 인준, 전파를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죄인들의 회개와 냉담자들의회두를 위하여
 
나주를 반대하고 박해하는이들의 회개를 위해
잠자고 있는 영혼들을 깨워주시기를 청하며..

저희 순례자들의 영육의건강과 성화를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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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이시여~
    율리아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과 - 엄마가 기도 지향하는 모든 것들과 - 성직자.수도자들의 영적성장과 - 죄인들의 회개와 - 나주인준과 - 재판 승소
        저와 저희 가족들과 온 세상 사람들의 영.육이 건강할 수 있도록 - 영혼의 암덩이를 치유하여 주시어 -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 부활의 삶을 살수 있도록
            그리고 연옥영혼들과 - 림보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전구하여 주시고 꿀처럼 단 입술로 주님과 성모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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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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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여 !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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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나주성모님의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그리고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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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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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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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모든 지향이 속히 이루어 지시길
성직자들의 영적 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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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신,
이단자들의 망치인,
성 베르나도 아바스 학자시여,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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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절한사랑님의 댓글

열절한사랑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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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비님의 댓글

장미꽃비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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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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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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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시여!! 나주성모 님 인준을 위하여빌어주소서!! 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시여!!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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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가리님의 댓글

천국에가리 작성일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나주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
이루어 지도록
빌어 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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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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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성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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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뜻대로님의 댓글

주님뜻대로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 성화를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율리아 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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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님~
한국 나주에 친히 오신 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그리고 기도하시는 모든 지향이 그대로 이뤄지도록
간절히 빌어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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