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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진리 - 개혁파의 일신이체(一身二體) -2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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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뱃사공
댓글 14건 조회 2,218회 작성일 12-06-11 21:22

본문

 

제 3 장

개혁파 - 일신이체(一身二體) ............두번째

통치자인 교황께서 재가하신 총 공회의의 포괄적 형태의 교의 및 윤리에 관한 가르침은 캐톨릭 교회의 설명으로서 언제나 자격이 있다.

그러나 반역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서를 사실대로 믿는 곧이 곧 대로의 감명을 받지 못했다.

 이 말은 공의회 참석자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영감(靈感)에 지배 당했다 할 것이다.

.......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관련성에 관한 에페소 공의회(431)의 가르침은 20년 뒤 칼케돈 공의회에 의해 확고해졌고 명확해져야만했다.

대략 일백년 후(551년) 콘스탄트노플 2차 공의회에 나타난 전형적인 일원론의 존재는 서방제국에 오해와 반발을 부추겼고 이탈리아 북부 유럽에서 대략 세기를 지속하는 분리주의로 이끌게 된 측면이  있다. .....(중략)

 교회는 어떤 유명한 신학자들의 사상은 취하고 다른 사람의 것은 거부함으로서 나중에 궤도를 이탈하고 마는 신학자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학자의 사상이 진리로 다가올 때, 교회는 근원에 대해 까다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교회는 떼르똘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 및 데오도르 등 교부들의 저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비록 떼르똘리아누스가 새 예루살렘의 즉각적인 재림을 믿는 분파인 몬타니스트와 결합하려고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반면에 오리게네스와 데오도르는 교회에 남아있었고, 일부 사상은 그들의 사후(死後)에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했었다.

3세기 중반 노바시안(엄격주의)은 분리주의로 가기 전에 처음으로 삼위일체에 관해 완전한 논증을 서방교회에 선사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당신의 서한 “Veritatis Splendor"를 예증(例證)하시기 위해 한 구절을 인용하신 바도 있다. 우리들 시대가 점점 더 다가오면서 교회는 로스미니 신부가 교회에 제시한 두개의 새 종교지침들 중 철학적 제안의 많은 부분을 비판했고,(주석3)

 

*주석 3 : 요한 바오로 2세는 직전 교황보다 로스미니의 철학적 사상에 더욱 우호적이셨기 때문에 아마도 로스미니 신부가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은 (교회에 의해) 단죄된 사상을 내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역주. 1 몬타니즘 분파는 종말론적 이단운동으로, 5-6세기 거의 사라짐. 원시교회 복귀와 선민의식을 부르짖고 캐톨릭들을 동물적 존재로 호칭하며, 재혼금지와 엄한 금욕, 성령의 과도한 기대와 황홀경과 방언, 탈혼적 예언 등을 성령의 작용으로 믿는 것이 특징이다. 어딘가 요즘 성령운동과 비슷한 요소가 많다. 172년 하느님 나라의 시방 도래를 주장했고, 터틀리안이 동조했다,

 

 2. 노바시안 분파. 3세기 극심한 박해 때 배교한 신자들을 엄격히 심사해 받아줄 것을 요구하며 모든 삶에서 엄격함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신앙임을 강조하는 분파로서 노바시안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교황으로 추대되어 배척 되었으나 교회는 그들이 정통신앙임을 인정하였고 다만 엄격운동을 포기하고 돌아올 것을 호소함,

 

 3. 트리엔트 공의회 당시 성서문제에 한해,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유일성”의 주장에 반대하며 교회는 “성서와 성전(聖傳)을 함께” 라고 확실히 규정했다.

 

그리고 원죄없는 잉태 교리를 정의하는 교황교서 Ineffabilis Deus(1854년) 에 관한 작업을 수행한 파싸글리아 신부는 후일 투린 정부와의 투쟁의 와중에 교황 반대편의 대열에 합류했다.

개혁파와 신(新) 신학파의 혼합성분은 왜 개혁과 반역이 너무나 황당하게 분란을 야기했는지, 뿐 아니라 왜 반역자들은 공의회와 더불어 동시에 반역을 천명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첫째이며 주요한 이유이자 어떤 의미에서 시작이요 끝이다.

부가적인 문제가 있다.

만일 우리가 개혁파의 좌우익 사이, 즉, 정통멤버들 덕분에 모든 이익을 달성했고, 또 이단교리의 탓으로 모든 결함이 발생했다는 데 명확한 분리선을 그을 수 있다면 당연히 간단한 문제일터이다.

그렇지만 이단교리는 꼰칠리움의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그들 사상 모두가 해로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설령 너무 동떨어진 것을 들여왔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라너 신부는 교회의 개념을 19세기 독일 신학자의 사상에서 취한 개념인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추진하도록 도와주었다.

그 반면에 정통교리에 의해 제안한 모든 것은 해(害)가 없다고 증명된 것은 아니다.

교회는 조금도 그들의 관점 모두를 인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종 교회를 무시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계속하여 밀어붙였다.(주석4)

 

*주석 4. 이런 점에서 보다 복잡해지고 논쟁 요소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예를 보자; Chenu 신부는 복종(순명)을 “이류(二流)의” 선(善)이라고 즐겨 말했다. 복종은 어리석고 잘못된 생각이며 설혹 경우에 따라 생각은 했을지라도 “순명하고 있습니다.” 고 나타내는 것은 실제로 겁쟁이들이나 책임 회피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말이 공개적 반란 상태에 있던 대부분 인텔리 층들에게 적극적으로 비소를 공급하는 치명적 역할을 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순명 상태를 지속했다.

 

만일 개혁자들이 공의회는 하느님의 것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보통의 연약한 마음을 지녔었다면, 무능력한 것으로 간주될 터였다.

 비록 개혁파들은 새로운 진로지침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그 중요한 대리인들이었고,

그들의 많은 사상들은 다만 전혀 다른 특징의 심지어 (공포 중의 공포) “보수주의” 사람들인 주교와 신학자들에 의해 잘라내고 제단하고 두들겨 모양새를 갖춘 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라너는 그들 스스로를 배제하고 흉중(胸中)에 다른 연장을 품고 있었다.

 

그 반면에 새 신학의 수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및 별로 하느님 마음의 진실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혼합물로 간주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든 반면,

 의심할 여지없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셨는데, 제한을 고려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 위에 순수하게 인간 장애물과 같은 것을 놓는 것임으로, 하느님의 의지에 반(反)하는 것은 그 다음 총회와 교황께서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느 날 제거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그 상황을 그려보는 최상의 길은 공의회를 하나의 거르는 체로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에 체는 흔들려지고 있었고(꼰칠리움에 의한 토론과 투표) 그 중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다소 걸러졌다.

 내가 “다소(多少), more or less"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확한 상태를 유추하기 위하여서인데,

일단의 새 신학자들이 그물 망 여기저기 생각지 못한 구멍을 뚫고 있는 그림을 그려 보아야 하기 때문이며,

그랬기 때문에 어떤 본질 이상의, 그리고 충분치 않은 다른 것들도 체를 통과했고, 결과적으로 만사가 이와 같이 섞인 혼합물로 인해 완전하게 균형을 잡지 못했다.

 꼰칠리움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은 그때 쓰레기 더미에 던져 넣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부모들이 곱고 미운 자식 가릴 것 없이 모든 자식을 사랑하는 것 같은 그런 경향이 있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로 달려가 내다버린 자신들의 제안물을 구출했고,

교회가 수용한 것과 또 다시 조합시킨 다음, 자신들의 책과 강론 여행을 통해 꼰칠리움의 가르침인 것처럼 통째로 신자들에게까지 이 상품을 선사했다.

서구 전역에 걸쳐 대부분 신자들이 지난 20여년 간 꼰칠리움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었던 현대주의는 꼰칠리움 정화과정을 거치기 이전에는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너무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새 신학의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 그 많은 정통의 개혁자들은 일단 그들의 일시적 협력자들이 궤도를 이탈하는 것을 알고서도 그토록 늦게 반발하게 되었는가?

부분적으로 나는 동일한 이유 때문에 교도권도 반응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즉 설명을 마련하는 데 따른 어려움 때문이다.

 신자들의 안목에서 볼 때 공의회 전체를 불신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혹자들은 꼰칠리움 문서 초안 작성에 영향을 준 일단의 사람들이 당시 그들끼리 타협한 문서가 없이도 근본교리를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지?(주석5) 

*주석 5. 사실상 일부 자문가(교황자문기구)의 활동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공의회 종료 직전에 이미 꽤 상당히 널리 알려져있었다. Westerminster'의 히난 추기경의 타임지 논평은 유명하다. 

이 정점에는 개별 교리들에 관한 의견 불일치를 초월하는 공유목적과 이해의 유대가 있었다.

상방의 의견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정통파와 이단파의 사고(思考)는 여전히 동일한 동인(動因)을 가졌다.

 즉 교회 관습과 가르침을 나타내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동일한 최종 목표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현대인을 목표로 하는 사도직을 어떻게든 정의했어야했다.

 또한 현대인의 삶과 생각의 양태는 “성세(聖洗)”될 수 있고, 또한 “성세” 되어야 한다는데 대규모로 일치했다.

그들을 분열시킨 질문은 이러한 세속문화로부터 차용은 정확히 교회의 신학에 합치되는 때 시도하려 한 것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들의 우호성과 유사성이 강력한 인상을 줌에 따라 개혁과 쇄신은 그들이 봉사하고자 했던 신앙과 교회보다도 거의 더 소중하고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 인상을 지니게 되었다.

설혹 미심쩍어 하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사실을 의심하는 표시를 나타냈다고 할지라도 개혁과 aggiornamento 편이라고 주장하면 누구든지 자동적으로 동지로 간주된 반면, 어떤 사람이 어떤 지혜에 관해 꼰칠리움이 주도권을 행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것조차도 유보를 표시한다면, 그가 아무리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을지라도 반대자로 분류했다.........(중략)

당시 바오로 교황님은 .......그들이  갈망하는 양피지에 도장만 찍으면 교황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이단으로 도망간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다. 대개의 교황보다도 19세기 예민한 감수성의 시인 이상의 교황의 비범하신 심리는 그들을 점점 더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마치 레오파르디가 당통과 로베스 피에르와 전투를 벌이고, 홉킨스가 레닌과 전투를 치르려고 소집된 것 같았다.

......................(중략) 

신학 계간지 “꼰칠리움”은 본래 개혁파의 오르간으로 간주 되었다.

왜냐하면 1970년도 초까지 개혁을 주도하는 모든 사람들의 개혁에 대한 기사가 이곳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잡지 설립자들인 네델란드 사업가 안통 반 덴 부가드 씨, 네델란드 출판업자 폴 브랜드 씨와 에드워드 스킬러벡 신부는 실상 칼 라너 신부가 도착할 대합실을 마련하는 일을 했고, 이로서 라너와 그의 동맹군들은 시종일관 압도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1972년까지 잡지의 정책은 너무나 파괴적인 내용을 시종일관 일목요연하게 실었고,

너무나 많은 의심스러운 내용들 때문에

그들과 함께 했던 폰 발다사르 신부, 라칭거 신부(현 교황 성하)와 앙리 드 뤼박 신부는

그들과 자신들을 분리함과 동시에 라이벌 국제 신학 계간지 “꼼뮤니오” 조직을 설립했고, 교황청에 여전히 충성을 보내는 개혁파의 다른 멤버들이 곧 합류했다.

이 일로 새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걍팍한 성격인 콩가르 신부는 꼰칠리움을 대변해서 유감스러움을 발표했다. 그는 꼰칠리움이 기선제압을 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1980년도에 들어와 편집진에 잔류했다.(주석6)

 

*주석 6. 타블렛 지 1991년 6월 8일자의 기사. : “엄청난 자금 조달자”인 반 덴 부가드씨는1981년에 꼰칠리움이 주관한 케임브리지 신학 포럼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완성하거나 지속하는 줄 알고 감명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국내 캐톨릭 리포터 지와 영국 타블렛 지는 영어권 평신도들에게 꼰칠리움의 신학과 관점을 보도하는 주 통로 역할을 한다.

콩가르 신부의 친구는 “그는 꼰칠리움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역할을 위해 편집진에 잔류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폰 파펜이 “나는 히틀러를 말릴 수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니지메켄(스킬러벡 신부의 대학)의 네델란드 대학 도시에 있는 꼰칠리움의 편집실은 현대주의 국제 신경망 센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서 (반 캐톨릭의) 현대주의를 세계에 선사하고 로마에 적대적인  대부분의 선동이 합주(合奏)되었다.(주석7)

 

주석 7. 예를 들면 90년 초에 어떤 나라의 신학자는 기명(記名)으로 연제한 기사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과 정책을 연달아 반대하며 이의를 제기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다른 나라들에서 “우리가 교회다”는 운동은 현대주의 평신도 부산물로서 교회 가르침과 유럽 중산층들의 새로운 삶의 형태가 상호  충돌하는 부분을 개조하라고 성직자 제도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운동이다.

-계속-

 

* 저의 개인 사정으로 3장의 남은 부분만 한번 더 올리고 부득이 중단하겠습니다.

최근 블로그 만드는 법을 배워서 http://blog.naver.com/nwfs6530  에 전문을 올려 두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정식 출판을 위한 인쇄는 제외하고 단순 복사하여 이용하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번역이 신통치 않은 점은 양해바랍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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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뱃사공님 그동안 수고
하셨어요.^^

가족모두 예수님 성모님 사랑속에서
기쁨 가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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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의 글은
거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제게는
 이해가 힘이 들지만 차근차근 다시
읽어 보며 이해하려 노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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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율리아님의 댓글

존경율리아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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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님의 댓글

탕자 작성일

저는 개인적으로 부족하여 잘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손수 세원주신 카톨릭 정통교회를 오류에 결코 물듬없이

그대로 유지하고픈 뱃사공님의 주님과 교회를 향한 그 사랑과 정성과 열의에 박수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더 많은 지혜와 사랑의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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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저도 부족함이 많기에 잘 모르지만 ~뱃사공님께서
노력하시는 그 뜻은 잘 알지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알게모르게 많은것을 배우며~교회의 흐름을 알게
되어 깨어있는 작은 영혼되기를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소서 아멘!!!

성모님의 승리와 세분신부님 수녀님 생활의기도모임 지원자님들
그리고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을 기도지향이 꼭 이루어
지기를 뱃사공님의 정성과 사랑 저희의 작은 정성 합하여 바쳐드립니다 아멘!!!

사랑해요 뱃사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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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뱃사공님이 그동안 올리신 글의 글자 수만큼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회개와 영적성화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뱃사공님~
영육간에 늘 건강하세요.^^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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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님의 글이 좀 어렵고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수고해 주신 님 정성
감사드려요.

또한 잘못된 우리 교회에 침투한 맛쏘네 공격들로
정통교회가 그들로 자유분방하여 제멋 대로임을 숱하게 느낍니다.

성체성혈 대축일에도
성혈은 없습니다.

성 3일
예수 수난 감실 조배는
여자들이 밤길 조심해야 ...

그래서 조배가 없어진 성당도 있구요.
때론 성체를 신자들이 마구 집어
성혈에 찍어 모시고

신부님은 제대 위에 떡 앉아
구경하고 있구요.

미사보를 쓰는 자매님들은 별로
안보이고요.

나주를 몰랐다면 모두 다 아멘, 오케이하면서
다 받아 들였겠지요.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뱃사공님께 감사드리며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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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뱃사공님의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그마음

성교회를 사랑하시는 ㅡ 마음
진리를 사랑하시는 그마음

주님과 성모님께서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나주에 오신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 가득 받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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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좋은 글 함께 나누어주시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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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뱃사공님 올린신글은 학문적 소양과 이해력이 필요하신분들이 읽어야 할
난해한 글임에도 부족한 제가 감히 댓글을 통해 글로 인사드립니다
저희 교회사에서 항상 하느님을 대적한 이단 사상들이 하느님에 성전을
더렵혀 왔지만 결코 그들은 하느님에 성전 문턱 까지 넘어  와 한순간에
하느님 성전을 무너뜨릴듯  위협 했지만 결코 그들은 성공 하지 못했습니다
뱃사공님께서 지적한 현대 주의 신학도 앞서 만행을 일으킨 이단 사상과 함께
궤멸 할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들에 영광은 결코 하느님 성령님앞에서
더 이상 빛을  잃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뱃사공님에 하느님 사랑 열정이  그들에
이단 사상을 그냥 넘겨 적당히 타협으로 이끌리지 않으시는 정통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분별력을 저희들에게 깨우침을 주신것이라고  저도 받아 들이고 더욱 하느님
사랑과 나주 성모님 사랑 하는데 매진하여 하느님과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충실한 자녀되길을 노력 하면살아 가렵니다 뱃사공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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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수고많으셨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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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뱃사공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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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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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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