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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주교회의 연설문, 2차에 걸쳐 누락되다(교황청 원본 대조)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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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뱃사공
댓글 29건 조회 5,095회 작성일 14-08-25 15:48

본문

예수님 성모님 제가 쓰는 글자 하나하나 저의 악습을 없애 주시고 글자 수만큼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 주

소서. 또한 한국교회를 둘러산 오류의 검은 물결이 하루빨리 사라지게 해주시어 한국 교회가 부디 영적으로 다

시 태어나게 해주소서.   

 

 *원문과 대조하면서 누락된 부분을 다시 살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APOSTOLIC JOURNEY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TO THE REPUBLIC OF KOREA ON THE OCCASION OF THE 6th ASIAN YOUTH DAY(13-18 AUGUST 2014)

 

                         MEETING WITH THE BISHOPS OF KOREA

                      ADDRESS OF POPE FRANCIS

Korean Episcopal Conference (Seoul)Thursday, 14 August 2014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 여러분,

I thank Bishop Peter U-il Kang for his words of fraternal welcome on your behalf. It is a blessing for me to be here and to witness at first hand the vibrant life of the Church in Korea.

여러분 모두에게 큰 사랑으로 인사 드립니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으로 해 주신 형제적인 환영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교회의 활기찬 삶을 직접 보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복입니다.

As pastors, you are responsible for guarding the Lord’s flock. You are guardians of the wondrous works which he accomplishes in his people. Guarding is one of the tasks specifically entrusted to the bishop: looking after God’s people.

목자로서 여러분은 주님의 양 떼를 지키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지키는 것은 특별히 주교에게 맡겨진 임무의 하나로, 곧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Today I would like to reflect with you as a brother bishop on two central aspects of the task of guarding God’s people in this country: to be guardians of memory and to be guardians of hope.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교직을 받은 형제로서, 이 나라에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임무의 두 가지 중심 측면을 성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To be guardians of memory. The beatification of Paul Yun Ji-chung and his companions is an occasion for us to thank the Lord, who from the seeds sown by the martyrs has brought forth an abundant harvest of grace in this land.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의 시복은 순교자들이뿌린 씨앗으로 이 땅에서 은총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입니다. 

You are the children of the martyrs, heirs to their heroic witness of faith in Christ. You are also heirs to an impressive tradition which began, and largely grew, through the fidelity, perseverance and work of generations of lay persons.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그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They were not tempted by clericalism: they were laity and they moved ahead on their own. It is significant that the history of the Church in Korea began with a direct encounter with the word of God.

한국 교회는 ( 번역 누락. 교도권의 보호하에 이끌려진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It was the intrinsic beauty and integrity of the Christian message – the Gospel and its summons to conversion, interior renewal and a life of charity – that spoke to Yi Byeok and the noble elders of the first generation; and it is to that message, in its purity, that the Church in Korea looks, as if in a mirror, to find her truest self.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李檗]과 첫 세대의 양반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합니다. 

The fruitfulness of the Gospel on Korean soil, and the great legacy handed down from your forefathers in the faith, can be seen today in the flowering of active parishes and ecclesial movements, in solid programs of catechesis and outreach to young people, and in the Catholic schools, seminaries and universities.

복음이 뿌려진 한국 땅이 얼마나 비옥했고 신앙의 선조들이 전해 준 유산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는, 오늘날 활기찬 본당 사목구와 교회 단체들의 번창에서, 탄탄한 교리교육 과정에서, 젊은이들과 가톨릭 학교, 신학교와 대학교에 대한 사목적 관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e Church in Korea is esteemed for its role in the spiritual and cultural life of the nation and its strong missionary impulse. From being a land of mission, yours has now become a land of missionaries; and the universal Church continues to benefit from the many priests and religious whom you have sent forth.  

한국 교회는 국가의 정신적 문화적 생활에 대한 역할과 선교에 관한 힘찬 열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나라가되었습니다. 보편 교회는 여러분이 세계에 파견한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을통해 계속해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Being guardians of memory means more than remembering and treasuring the graces of the past; it also means drawing from them the spiritual resources to confront with vision and determination the hopes, the promise and the challenges of the future.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이 간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기억으로부터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As you yourselves have noted,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 in Korea are not ultimately measured in external, quantitative and institutional terms; rather, they must be judged in the clear light of the Gospel and its call to conversion to the person of Jesus Christ. 

잘 아시듯이, 한국 교회의 삶과 사명은 궁극적으로 외적, 양적, 제도적인 잣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복음의 빛과 그 부르심에 비추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합니다. 

To be guardians of memory means realizing that while the growth is from God (cf. 1 Cor 3:6), it is also the fruit of quiet and persevering labor, past and present.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란, 성장시켜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1코린 3,6 참조) 깨닫고, 동시에 성장은 과거처럼 현재에도 고난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일하는 그러한 노고의 열매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Our memory of the martyrs and past generations of Christians must be one that is realistic, not idealized and not “triumphalistic”.

순교자들과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Looking to the past without hearing God’s call to conversion in thepresent will not help us move forward; instead, it will only hold us back and even halt our spiritual progress.

지금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과거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길을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적 진전을 가로막거나 실제로 멈추게 하고 말 것입니다.

In addition to being guardians of memory, dear brothers, you are also called to be guardians of hope: the hope held out by the Gospel of God’s grace and mercy in Jesus Christ, the hope which inspired the martyrs.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을 넘어서, 여러분은 또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복음이 가져다 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시킨 그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It is this hope which we are challenged to proclaim to a world that, for all its material prosperity, is seeking something more, something greater, something authentic and fulfilling.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번영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이 희망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You and your brother priests offer this hope by your ministry of sanctification, which not only leads the faithful to the sources of grace in the liturgy and the sacraments, but also constantly urges them to press forward in response to the upward call of God (cf. Phil 3:14).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은 여러분의 성화 직무를 통하여 이 희망을제시하십시오. 이 성화 직무는 신자들을 전례와 성사 안에 있는 은총의 샘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는(필리 3,14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You guard this hope by keeping alive the flame of holiness, fraternal charity and missionary zeal within the Church’s communion.  

여러분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덕의 불꽃, 형제적 사랑의 불꽃, 선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게 함으로써 이 희망을 지킵니다.

For this reason, I ask you to remain ever close to your priests, encouraging them in their daily labors, their pursuit of sanctity and their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salvation. I ask you to convey to them my affectionate greeting and my gratitude for their dedicated service to God’s people.

이러한 까닭에, 저는 여러분이 날마다 일하고 성덕을 추구하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언제나 머물며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고, 저의 사랑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 계속되는 문장에서 일차 누락된 부분.

I urge you to remain close to your priests. Close, so that they can see their bishop often. This closeness of the bishop is not only fraternal but also paternal: as they carry our their pastoral ministry, priests often need it. Bishops must not be distant from their priests, or worse, unapproachable.

사제들이 자신의 주교들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가까이 계시기를 권고합니다. 형제적이며 자부적 관계인 사제들과 주교들의 친밀감은 사제들이 자주 필요한 사목업무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교들은 사제들과 거리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쁜 것은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I say this with a heavy heart.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말을 합니다.

Where I come from, some priests would tell me: “I’ve called the bishop, I’ve asked to meet him; yet three months have gone by and I have still not received an answer”.

저가 있든 곳에서 몇몇 사제들이 저에게 “주교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으나, 삼 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연락이 없습니다.” 고 얘기합니다.

Brothers, if a priest phones you today and asks to see you, call him back immediately, today or tomorrow. If you don’t have time to see him, tell him: “I can’t meet you because of this, that and or the other thing, but I wanted to call you and I am here for you”. But let them hear their father’s response, as quickly as possible. Please, do not be distant from your priests.

형제들이여! 어떤 사제가 주교를 면담하고자 오늘 전화가 온다면 오늘 내일 중 즉시 그를 부르십시오. 만약 만날 시간이 없다면 여러 사정상 만남이 어려움을 설명하고, 내가 당신께 연락할 것이며, 나는 당신을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하고 말해주십시오. 그러고도 자부적 정신으로 가능한 한 빨리 응답을 해주십시오. 부디 여러분의 사제와 거리를 두지 마십시오. 여기까지 누락됨. 해석 뱃사공>

If we accept the challenge of being a missionary Church, a Church which constantly goes forth to the world and, especially, to the peripheries of contemporary society, we will need to foster that “spiritual taste” which enables us to embrace and identify with each member of Christ’s body (cf. Evangelii Gaudium, 268).

선교하는 교회,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교회, 특히 이 시대 사회의 변두리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라는 도전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를 받아들이고 그 지체 하나 하나와 동화되는 데에 “영적인 맛”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68항 참조).

.Here particular care and concern needs to be shown for the children and the elderly in our communities. How can we be guardians of hope if we neglect the memory, the wisdom and the experience of the elderly, and the aspirations of our young?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인들의 기억과 지혜와 경험,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망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지킴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In this regard, I would ask you to be concerned in a special way for the education of children, supporting the indispensable mission not only of the universities, important as they are, but also Catholic schools at every level, beginning with elementary schools, where young minds and hearts are shaped in love for the Lord and his Church, in the good, the true and the beautiful, and where children learn to be good Christians and upright citizens.

이를 위하여 어린이들의 교육을 특별히 배려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대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모든 단계의 가톨릭 학교가 지닌 근본 사명의 수행을 뒷받침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젊은이들의 정신과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또 좋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안에서 자라나서, 그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정직한 시민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Being guardians of hope also entails ensuring that the prophetic witness of the Church in Korea remains evident in its concern for the poor and in its programs of outreach, particularly to refugees and migrants and those living on the margins of society.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This concern should be seen not only in concrete charitable initiatives, which are necessary, but also in the ongoing work of social, occupational and educational promotion.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 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지만 ―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We can risk reducing our work with those in need to its institutional dimension alone, while overlooking each individual’s need to grow as a person – their right to grow as a person – and to express in a worthy manner his or her own personality, creativity and culture.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Solidarity with the poor is at the heart of the Gospel; it has to be seen as an essential element of the Christian life; through preaching and catechesis grounded in the rich patrimony of the Church’s social teaching, it must penetrate the hearts and minds of the faithful and be reflected in every aspect of ecclesial life.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The apostolic ideal of a Church of and for the poor, a poor Church for the poor, found eloquent expression in the first Christian communities of your nation. I pray that this ideal will continue to shape the pilgrim path of the Church in Korea as she looks to the future.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I am convinced that if the face of the Church is first and foremost a face of love, more and more young people will be drawn to the heart of Jesus ever aflame with divine love in the communion of his mystical body.

교회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얼굴일 때에, 그분의 신비체의 친교 안에서 언제나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에 늘 더 많은젊은이들이 이끌려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계속되는 문장에서 2차 누락 부분.

I have said that the poor are at the heart of the Gospel; they are present there from beginning to end. In the synagogue at Nazareth, Jesus made this clear at the outset of his ministry. 저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자렛의 회당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직무를 처음 시작하는 자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And when in Matthew 25 he speaks of the latter days, and reveals the criterion by which we will all be judged, there too we find the poor.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장차 올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심판을 받을지 드러내 밝히실 때, 여기에서도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봅니다.

There is a danger, a temptation which arises in times of prosperity: it is the danger that the Christian community becomes just another “part of society”,

losing its mystical dimension, losing its ability to celebrate the Mystery and instead becoming a spiritual organization, Christian and with Christian values, but lacking the leaven of prophecy.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When this happens, the poor no longer have their proper role in the Church. This is a temptation from which particular Churches, Christian communities, have suffered greatly over the centuries; in some cases they become so middle class that the poor even feel ashamed to be a part of them.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에 특정 교회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크게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어떤 사례들에서 이런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되어서 그런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It is the temptation of spiritual “prosperity”, pastoral prosperity. No longer is it a poor Church for the poor but rather a rich Church for the rich, or a middle class Church for the well-to-do.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Nor is this anything new: the temptation was there from the beginning. Paul had to rebuke the Corinthians in his First Letter (11:17),

그리고 이는 낯선 일도 아닙니다. 이 유혹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코린토 신자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1코린 11,17)

while the Apostle James was even more severe and explicit (2:1-7): he had to rebuke these affluent communities, affluent Churches for affluent people.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이 문제를 더욱 강하고 명확하게 제기했습니다. (야고2,1-7) 그는 이들 부요한 공동체들, 부요한 사람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들을질책해야만 했습니다. 

They were not excluding the poor, but the way they were living made the poor reluctant to enter, they did not feel at home. This is the temptation of prosperity.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누리는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그들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꺼리게끔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번영의 유혹입니다. 

I am not admonishing you because I know that you are doing good work. As a brother, however, who has the duty to confirm his brethren in the faith, I am telling you:  

저는 여러분 주교들께서 좋은 일들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여러분을 훈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확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한형제로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be careful, because yours is a Church which is prospering, a great missionary Church, a great Church.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The devil must not be allowed to sow these weeds, this temptation to remove the poor from very prophetic structure of the Church and to make you become an affluent Church for the affluent, a Church of the well-to do – perhaps not to the point of developing a “theology of prosperity” – but a Church of mediocrity.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하거나 여러분이 부요한 이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그렇게 된다면) 그 교회는 아마도 “번영의 신학”을 펼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별 쓸모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누락됨. 해석.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Dear brothers, a prophetic witness to the Gospel presents particular challenges to the Church in Korea, since she carries out her life and ministry amid a prosperous, yet increasingly secularized and materialistic society.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In such circumstances it is tempting for pastoral ministers to adopt not only effective models of management, planning and organization drawn from the business world, but also a lifestyle and mentality guided more by worldly criteria of success, and indeed power, than by the criteria which Jesus sets out in the Gospel. Woe to us if the cross is emptied of its power to judge the wisdom of this world (cf. 1 Cor 1:17)!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 우선하여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1,17 참조)

I urge you and your brother priests to reject this temptation in all its forms. May we be saved from that spiritual and pastoral worldliness which stifles the Spirit, replaces conversion by complacency, and, in the process, dissipates all missionary fervor (cf. Evangelii Gaudium, 93-97)!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93-97항 참조).

Dear brother Bishops, thank you for all that you do. Thank you! With these reflections on your role as guardians of memory and of hope, I want to encourage you in your efforts to build up the faithful in Korea in unity, holiness and zeal.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여러분의 사명에 관한 이러한 묵상으로, 저는 한국 신자들의 일치와 성덕과 열정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Memory and hope inspire us and guide us toward the future. I remember all of you in my prayers and I urge you constantly to trust in the power of God’s grace. Never forget: “The Lord is faithful”. We are not, but he is. “He will strengthen you and guard you from the evil one” (2 Thess 3:3).

기억과 희망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를 향해 이끌어 갑니다. 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은총의 힘에 의지하십시오. “주님은 신실(信實)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3,3).

May the prayers of Mary, Mother of the Church, bring to full flower in this land the seeds planted by the martyrs, watered by generations of faithful Catholics, and handed down to you as a pledge for the future of your country and of our world.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To you, and to all entrusted to your pastoral care and keeping, I cordially impart my blessing and I ask you, please, to pray for me. Thank you.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사목과 보호에 맡겨진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강복을 드리며 부디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체 해석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참고 - 영어판 교황 연설 원문 (바티칸):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speeches/2014/august/documents/papa-francesco_20140814_corea-incontro-vescovi.html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에 비해 위의 말씀의 전문을 볼 적에 교황님은 확고한 정통신앙안에서 베드로 사도의 좌를 유지 계승하시고 있음과 나주 성모님의 인준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희망찬 생각이 우러납니다. 교황청에서 보내는 다른 문서들이 정확히 알려짐으로서 한국교회를 오류로 이끌지 않기를 바라며 금번의 누락도 그렇지 않기를 부디 바랍니다.

 

 교황연설 누락부분(이하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이 연설문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그날 교황방한위원회에서 각 언론에 배포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 연설문에서 한 문단이 통째로 빠진 것을 확인했다. (저의 확인결과 초반 부분에서도 누락되었음.)

해당 문단은 교황이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상황을 예로 들며 한국 교회가 악마의 꼬드김으로 부유한 이를 위한 부유한 교회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대신에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이 빠진 이유에 대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18일 오후 주교회의에 질의했다.

이에 대해 주교회의의 한 관계자는 “일부러 빠뜨린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처음 교황청에서 보내준 교황 연설문과는) 교황님께서 연설을 직접 하시는 자리에서 약간 달리 하셨다”며, “바티칸 측에서도 영구적인 기록을 위해 실제 하신 말씀과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실제로 교황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가 중요하므로 그에 따라 번역문을 교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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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뜻대로님의 댓글

주님뜻대로 작성일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사랑하는 뱃사공님,
의도하였든, 의도치 않았든 누락된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이고,
주교님들을 향한 교황님의 일침임은 분명합니다.

내용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주교회의에서는 20일(수)에 이미 위의 내용들이 누락된 것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였고
뱃사공님께서 올리신 것처럼 빠진 내용을 포함하여 다시 올렸습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주교회의 설명입니다.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10736

아래는 연설문입니다.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0686&page=2&key=&keyword=&cat=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여러가지로 애쓰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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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
주교희의에서 왜 중요한 부분을 감췄는지 알만 합니다.
신부님조차 주교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신자들이야 거의 불가능 하지요
교계제도가 이래서야 완전 독재아닌가?거기에 무슨 발전이 있고 소통이 있는가?
이는 한국 성직자들을 질타하시는 말씀으로 이해 합니다.
지독한 교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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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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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단비님의 댓글

사랑의단비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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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수고해주심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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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힘님의 댓글

용기와힘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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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님의 댓글

다같이 작성일

뱃사공님 저희 신앙에 선조들꼐서 지키고자 하셨던 오직 천주님께 대한 기억을 저도 지키고
 새로운 휘망에 지킴인 나주 성모님 사랑을 통해  하느님에 사랑에 실천하는
하느님에 자녀가 될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갈수 있도록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와 나주 성모님에
도우심에 힘 입어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 하렵니다 뱃사공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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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님의 댓글

사랑하기 작성일

아멘  참 으로  나주성모님 을 따르는 저희는  눈으로 볼수있고  귀로 들을수 있습니다  주님 성모님 께 감사와 찬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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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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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아멘!!!

올려주신 교황님의 주교회의 연설문 감사드려요.
뱃사공님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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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님의 댓글

환희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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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아멘!!!
뱃사공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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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한국 교회는 ( 교도권의 보호하에 이끌려진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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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의삶님의 댓글

봉헌의삶 작성일

사랑하는 뱃사공님 ..
뱃사공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비교하면서 까지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에 희망과 감사가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그저 발표내용만 알게 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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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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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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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 한자 한자가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널리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인데~ 교황님 말씀이 누락이라니~ 한심한 일들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일어났군요.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세계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주최측에서 몇번이나 점검하고 완벽하게 준비하였을텐데, 그러한 가장 중요한 실수가 일어 났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수가  없는 일이지요.  내용 자체도 성직자들에게 반성을 권고하는 말씀인데 빠졌다는 것은 누가봐도 석연치가 않군요.  SNS 시대를 망각한 행동들이지요!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는" 진실이 살아있는 뉴스전달 매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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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교황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한국교회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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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뱃사공님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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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처럼님의 댓글

천사처럼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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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님의 댓글

하늘나라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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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부인님의 댓글

공작새부인 작성일

"  교황님의," 말씀은  한국성직자들을 질타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지만
    신부님조차 주교님을 만나기어렵다면, 진리와 교도권를 잘 이끌어 나갈수있을까요???
    어린양들을 돌보아야되는데,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뱃사공님," 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주성모님을,"위하여 애쓰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성모님," 쓰러져가는 교회을  바로잡아주시고,
    사제들에게, 성령의감화를 부어주셔서 "순교자들의," 위대한 본을받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교회를 올바로 이끌어 나가게 해주십시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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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샘님의 댓글

은총의샘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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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향님의 댓글

장미향 작성일

뱃사공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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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뱃사공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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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님의 댓글

박하사탕 작성일

누락된 부분은 대체적으로 주교님들께서는 껄끄럽게 보일 수 있는 부분 같네요
그렇다고 해서 몇 단어가 아니고 그렇게 많은 내용을 포함한 문단이 쑤~욱 빠졌다는건
설명하기 곤란한 한국 천주교회의 어떤 일면이 보이는듯 합니다

나주 순례를 안했더라면 아마도 관심 밖의 일이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뱃사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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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나주 성모님께서 하루 빨리 인준 받으시어
교회의 쇄신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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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농부살바똘님의 댓글

유기농농부살바똘 작성일

뱃사공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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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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