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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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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3건 조회 4,469회 작성일 14-08-20 14:0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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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Embracing St Bernard-RIBALTA, Francisco

Oil on canvas, 158 x 133 cm.Museo del Prado,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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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St. Bernardus, D. E
San Bernardo di Chiaravalle Abate e dottore della Chiesa

SAINT BERNARD OF CLAIRVAUX ABBOT, DOCTOR OF THE CHURCH
(Mellifluous Doctor of the Church; Last of the Fathers of the Holy Church )
Born :1090 at Fontaines-les-Dijon, Burgundy, France
Died :20 August 1153 at Clairvaux
Canonized :1170 by Pope Alexander III
Bernardo = ardito come orso, dal tedesco



부르군디의 디죵 교외에 있는 가족 성(城) 폰텐느 레 디죵에서 태어난 베르나르도(1090-1153년)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영화를 물리치고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경건한 교육을 받아 1111년 시토 수도회에 입회했고 조금 후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생활과 모범으로써 수도자들을 덕행으로 훌륭히 이끌었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창설자가 아니라 그 회원으로 입회하지만,
이 수도회의 개혁과 제2의 창설에 미친 지대한 공로 때문에 창설자 못지 않는 영광을 입었다.
학덕과 성덕이 뛰어났던 그는 곧이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했는데,
제국의 왕들과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여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알비파 이단을 척결하는 설교자로서 그리고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는 특사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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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발생하고 있던 분열을 막으려고 유럽 각지에 여행하면서 평화의 일치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신학과 영성 생활을 다루는 여러 저서들을 남겼다

또한 그는 아르마그의 성 말라기의 생애와 "신애론" 등의 유명한 저서를 비롯하여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집 "아가"와 편지 등을 남겼는데,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다.


이리하여 성 베르나르도는 "꿀처럼 단 박사"(Mellifluous Doctor of the Church)

라는 칭호와 더불어 교황 비오 8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1153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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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Appears to St Bernard - LIPPI, Fra Filippo.

1447.Wood, 69 x 105 cm.National Gallery, London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83,4-6: Opera omnia, Edit. Cisterc. 2[1958], 300-302)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줍니다.

사랑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닌 그 자체로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공로도 되고 상급도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말고는 다른 이유나 열매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되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과 같은 정도로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통하여 같은 방법으로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실 때 그 보답으로 사랑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하실 때 사랑을 받으시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으십니다.

신랑의 사랑은, 즉 사랑이신 신랑은 보답으로 다만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신부는 자신의 모든 여타의 정을 포기해 버리고 자신의 전존재로 사랑에게만 헌신합니다.

신부는 보답으로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 안에 자신의 전존재를 쏟아 낸다 해도

이것은 영원한 사랑의 원천에서 흘러 나오는 그 분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자체이신 분,

영혼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신부와 신랑, 피조물과 창조주,
그리고 목마른 사람과 샘에서 흘로 나오는 사랑은 그 풍요성에서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일하지 않다 해서, 즉 경주에 있어서 거인과, 단맛에 있어서

꿀과,온유함에 있어서 어린 양과, 순결에 있어 백합화와, 광채에 있어 태양과,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사랑 자체이신 분과 겨루지 못한다 해서

혼인하는 이의 욕망과 애통하는 이의 갈망과 사랑하는 이의 열정과
간청하는 이의 희망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더 작아서 그분보다덜 사랑한다 해도

힘을 다해 사랑한다면 부족함이 없고 있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하는 이는 주님과 혼인했습니다.

이 정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혼인이란 양 배우자가 서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먼저 또 더 위대하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0820San%20Bernardo%20di%20Chiaravalle%20Abate5.jpg 성베르나르도(흑백2).jpg

세기의 위인, 그는 오늘날 ’세기의 골키퍼’ , ’세기의 화해자’
이제는 더 이상 어떤 편에서도 충격을 가하지 않는 ’세기의 정당한 공격수’등

너무도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12세기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심도 논쟁도 없다.
이 위대한 인물은 바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이다.

교황의 조언자, 제2십자군의 설교자, 신앙의 옹호자, 분열의 치료자, 수도원의 개혁자,
성서 학자, 신학자이며 웅변적인 설교자,어떤 명칭에서도 그는 보통 사람과는 구별이 된다.
이 모든 자질이 있었음에도 베르나르도는

젊어서부터 은둔하는수도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1111년, 그의 나이 20세에 베르나르도는 시토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의 다섯 형제와 두 명의 삼촌과 30명의 젊은 친구들이 그를 따라 수도원에 들어갔다.
쇠퇴해 가던 공동체가 4년 안에 베르나르도 아빠스와 더블어

 ’윔우드’골짜기 근처에 새집을 짓기에 충분할 정도로 생기를 되찾았다.



성베르나르도(십자가들%20든).jpg

열성적인 이 젊은이는 타인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많은 요구를 했다.
쇠약해진 몸이 그를 더욱 더 끈기 있고 이해심 있게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얼마 후 클레르보 즉 빛의 골짜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재자로서, 상담자로서 그의 능력은 널리 알려지게되었다.
그는 수도원 문제에서부터 오래된 분쟁의 해결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에 마음을 쏟았다.
그는 로마의 몇몇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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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는 교황의 수위권을 옹호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로마로부터 온 걱정스러운 편지에 답하며
로마에 있는 훌륭한 사제들로도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만일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어떤 일이 생겼다면 베르나르도가 제일 먼저 그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 후 베르나르도는 무수한 분열을 진압하고 대립 교황주의와 맞서 로마 교황에게 유리하도록 해결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베르나르도에게 전유럽의 제 2 십자군들에게 설교하도록 설득했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열광적이어서 대부대가 모였고, 마치 십자군의 승리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군인과 그들 지도자들의 이상은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이상과는 달랐으므로
십자군 계획은 완전한 군사적 파멸과 윤리적 타락으로 끝이 났다.
베르나르도는 십자군의 타락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책임을 느꼈다.
이 무거운 부담이 그의 죽음을 재촉하여 그는 1153년 8월20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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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arition of The Virgin to St Bernard - LIPPI, Filippino.

1486.Oil on panel, 210 x 195 cm.Church of Badia, Florence.

교회 안에서 베르나르도의 활동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더 적극적인 것이었다.
그의 노력은 원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활동들은
그에게 힘과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져다 준 오랜 시간의 기도와 명상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일생은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에 의한 것이었다.
성모님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서들은 아직도 마리아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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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의심과 어려움에서 성모님을 생각하고 성모님을 부르시오.
그분의 이름을 계속 부르시오. 결코 당신 마음을 비우는 것을 괴로워 마시오.
그리고 당신은 성모님의 기도의 도움을 더욱 명백히 얻기 위하여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오.


성모님의 안내를 받으면, 당신을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당신 마음 속에 계신 한, 당신은 현혹되지 않으며

그분이 당신 손을 잡아 주시는 한 당신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보호를 받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로 걸어오신다면, 당신은 권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 호의를 보이신다면 당신은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성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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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덕생활의 원리는
"사랑은 정신적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그러니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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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ion of St. Bernard -Fra Bartolommeo.
c.1504. Oil on wood.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지금도 클레르보-명랑한 골짜기라는 수도원의 성당 안의

동정 성모 마리아 제단 앞에 묻혀 계신 성 베르나르도는
시토회의 둘째 창설자로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ifluus)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의 탁월한 설교는 수도자들의 성무 일도에 많이 채택되어 있으며, 시시로 많은 감명을 주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의 ’성모 찬송가’는 너무나 유명해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실제 과거 10세기 동안 이 아름다운 기도문으로 형언키 어려운 위로를 느끼며

새로운 용기를 얻은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훌륭한 기도문을 작성하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성모께 대한 신심을 가르치며 열심을 일깨운 베르나르도는
이 공로 하나만으로써도 충분히 교회 학자의 칭호를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것은 그의 풍부하고도 깊은 신심에 관한 저작 중 극히 일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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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쉘린 소렐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트의 아들로 태어난 위대한 학자 베르나르도는
1091년에 부르군디의 디죵 근교의 가족 성(城)인 폰텐느 레디죵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가의 고관으로서 늘 국사에 분주했으므로,
그의 교육은 자연 신앙이 유난히 두터웠던 어머니의 책임미 되었고

베르타르도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상의 행복이었다.


그는 샤틸롱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 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느 어머니를 여의었어도 그 존귀한 여러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잠시도 잊은 때가 없었다.

그가 21세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불고뉴의 군영에 입대중인 형들을 방문하는 도중,
어느 길가에 있는 한 성당에 들어가서 잠깐 기도를 바치다가
불현듯 어머니의 말씀을 생각하고, 세속을 떠나 수도 생활을 할 각오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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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래 시토회의 창설자 3명 가운데의 한 명이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창설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3년인데,
그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해 모두 31명의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해 1098년에 창설된 시토회로 들어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이 성을 떠날 때 아버지의 슬하에 남게 된 막내동생 니발도를 보고
"우리는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므로

이 성이나 영토나 모든 아버지의 재산은 모조리 너의 것이 되는 거야"라고 말하니까,
니발도는 "형님들은 천국의 재산의 상속자가 되는데,
나는 다만 이세상의 재산의 상속자 밖에 못되니 생각할수록 분한 노릇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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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와 엄률시토회의 세 창립자.

그 당시 프랑스에는 유명한 수도원이 둘 있었다. 클리뉴이회와 시토회다.
그중에서 시토회는 성 노르베르토가 창립한 트라피스트회에 속하며,
생활의 엄격함으로써 유명하여 음식은 언제나 빵과 채소만으로, 절대로 육식을 하지 않고,
6시간의 기도와 6시간의 수면 외에는 심한 노동에 종사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란 본래 편안한 것을 찾는지라,

이 수도원을 지원하는 자는 평소에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게다가 수도원 내에 전염병이 만연해 수사 중에도 쓰러지는 이가 허다했으므로
세상사람은 점차 공포감을 느껴 시토회의 입회 지원자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때의 시토회 수도원장은 스테파노 하르딩이라는 규율 엄정한 영국인이었으나,
이런 일을 무척 유감스러이 생각하며 평소부터 좋은 지원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뜻밖에 베르나르도가 여러 동료들과 더불어 입회를 원하자 날뛰듯이 기뻐하며 즉시 그들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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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는 트라피스트회의 엄중하기 짝이 없는 모든 규율을 충실히 지킬 뿐 아니라

자진하여 다른 고행도 많이 행했다.


그리고 언제나

"베르나르도야, 너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Ac quid venisti)?"는

글씨를 앞에 놓고 자신을 격려했다.


Every morning Bernard would ask himself,
"Why have I come here?",

and then remind himself of his main duty - lead a holy life.

이 같은 베르나르도의 수도에 대한 열심이 눈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1115년에 그는 랑그레에 시토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과 엄격성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했으나

그의 성덕이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이 수도원의 이름을 바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명랑한 골짜기)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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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그는 38세때 트로아에서 개최된 성직자 회의에 참석하고,
신전기사(神殿騎士)수도원의 규율을 혁신할 것을 위탁받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베르나르도가 그리스도교를 위해 공공연히 활동을 시작한 시초로서,
그후로는 주교의 선거나 또한 여러 교리 및 사목 논쟁에 대한 화해 조정 등
중대한 교회의 문제를 그가 관계치 않은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럽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대립 교황인 안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해 1130년의 인노첸시오 2세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했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드인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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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해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부탁을 받아 강론을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듣는 것보다도 성인이라는 소문이 있는 그를 접하고, 그의 기적을 보며,
그의 축복을 받으려는 열정으로 수십리 되는 먼 거리를 무릅쓰고 모여오곤 했고

이로써 그는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베르나르도는 초청을 받고 이에 응할 수 없는 경우에는

종종 그 교회에 서한을 보내어 훈계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은 서한 중 지금까지 보존해 내려온 것이 500여 통에 달하고 있는데,
어느것을 보더라도 경건과 신심이 충만해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에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공로 중 가장 뛰어난 일은 무엇보다도 성지 팔레티나를

회교도의 수중에서 탈환하는 십자군을 위한 설교일 것이다.
이것은 전에 클레르보의 수도자였던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명에 의한 것으로
그는 전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일반 시민들에게 성스러운 전쟁에 가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참가한 각국 장병들은 모두 인간들이라 결국 저들간에 질투와 시기심으로 싸움이 일어나

마침내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는 베르나르도에 있어서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교회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또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성심성의로 기도하며 보속으로 극심한 고신 극기를 감행했다.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서 로마 쿠리아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교황 에우제니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랑그독에 파견해 알비파 이단을 대항해 설교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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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명령받은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늘 마치 그리운 고향에 가는 것처럼

클레르보에 부지런히 돌아와서 사랑하는 수도 생활에 골몰했다.


그리고 그가 수도원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새로운 지원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하여 클레르보의 수도자 수는 점차 증가되어 그의 임종시에는 약7백명이란 다수에 달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격하던 그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봄날처럼 온순히 대하며,
자신의 깊은 신비적 체험에서 베풀어지는 건강한 지도는 누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서한과 아르마그의 성 말라키의 생애 그리거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모든점에서 수도자들에게 명상적 생활을 하도록 권고했다.
그는 밤에도 기도했는데 그의 동료 수사들도 밤에 깨어 함께 기도했다.
그는 수도원을 지혜롭게 잘 다스렸으며, 특히 수도원 규칙을 엄중히 보전해 나가려고 무진 애썼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은 그 수도원에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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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년 베르나르도는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마침 메츠시의 귀족과 시민들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자,
주교는 베르나르도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이 조정을 절실히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쇠약한 몸을 두 수도자에게 부축 받아 그 시에 가서 알선에 노력한 결과

끝내 쌍방을 화해 시키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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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그들은 불행하다고 질타한다. 양 떼를 먹이는 임무를 잊고 자기들만 양을 잡아 배불리 먹으며 양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과 대적하시어 당신의 양 떼를 구해 내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선한 포도밭 주인에 비유하신다. 주인은 각기 다른 시간에 일꾼들을 모아 일을 시킨 뒤 늦게 온 사람이든 일찍 온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품삯을 준다. 이에 일찍부터 일한 사람이 불평하자 주인은 그에게 반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교회는 오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기념합니다. 시토회 수도자였던 그는 중세의 사랑의 신비 신학의 정점을 이룹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그의 업적과 위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베르나르도는 수도회 신학을 최고 수준으로 고양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의 개별성과 존엄성, 자기 성찰과 풍부한 감수성 등 12세기적 심성의 여러 요소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명상과 기도를 뒷받침하는 계기로 정립하였다”(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에서). 특히 구약 성경의 ‘아가’에 대한 그의 해석과 통찰은 큰 중요성을 지닙니다. 그는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초기 교부들의 우의적이면서도 신비적인 해석을 이어받아 꽃을 피웠고, 후대의 위대한 신비가들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이 열렬히 추구해야 하는 신적 사랑과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다시 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신랑의 사랑은, 곧 사랑이신 신랑은 그 보답으로 단지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으시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 사랑의 원천으로 향하고, 그 사랑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사명임을 베르나르도 성인과 함께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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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사랑은 정신적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오. 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나주를 꼭 기억해주시길 청하며
나주성모님 눈물흘리신기념 30주년의 성공을 위하여
나주를 전파하는 모든분들과 전파의 활성화를 위하여,
율리아님의 건강회복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을 위하여
죄인들의 회개와 한국 교회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하여
냉담자들, 잠자고 있는 영혼들, 모두 깨어주시기를 청하며
모든 가정, 자녀들의 성화와 보호를 위하여
나주를 반대하고 박해하는 이들의 회개를 위하여~
저희순례자들의 영적성화와 나주의5대영성 실천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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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

아멘, 샬롬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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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위험과 의심과 어려움에서 성모님을 생각하고 성모님을 부르시오.
그분의 이름을 계속 부르시오. 결코 당신 마음을 비우는 것을 괴로워 마시오.

그리고 당신은 성모님의 기도의 도움을 더욱 명백히 얻기 위하여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오.

성모님의 안내를 받으면, 당신을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당신 마음 속에 계신 한, 당신은 현혹되지 않으며
그분이 당신 손을 잡아 주시는 한 당신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보호를 받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로 걸어오신다면, 당신은 권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 호의를 보이신다면 당신은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안전,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이루어지록 빌어주소서.아멘!

성체사랑님 수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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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님의 댓글

마라나타 작성일

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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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세계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복음 말씀을 보면서...자기가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되겠다. 싶어요... 

성체사랑님, 수고하셨습니다.
생기 돋아나는 은혜로운 날 되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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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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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성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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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이시여~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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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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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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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것님의 댓글

님의것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안전과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록 빌어주소서.아멘~!

성직자,수도자들의, 영적 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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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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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염둥이님의 댓글

귀염둥이 작성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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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마리아님의 댓글

아베마리아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시여~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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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님의 댓글

루치아 작성일

하늘의 모든천사들과 모든순교 성인 성녀님들과 지극히 거룩하신 보배로우신 성혈이시여! 저희를 구하시고 세상을구하시어 평화와 진정한아버지의 사랑을 추구하게 하소서!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이시여! 복되신 나주의 성모마리아님 인준이 앞당겨지도록 믿음을 보내주시어 어서 시간 낭비 공간 낭비때를 낭비 하지말아주시옵시고 인간적인 모든지식들이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순수하지못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똑똑해서 인간적인 지식을 초월하여 아버지의 사랑으로 부족한 저희들을 채워주시옵시고 분열의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성미카엘 대천사의능력과 함께 세속 육신 마귀를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과 성흔과 거룩하신얼굴이신 성면께 영원히 저희의 모든 갈증들을풀어주시옵시고 저희의 희망과 행복 기쁨 저희의 영혼과 마음의 평화와 무한한 영원한모든감사와 모든 소망을 치유은총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이 악하디 악한 세상에서 저희의모든 물적 영적 육적 모든 원수들을 영원히 물리쳐주시옵소서!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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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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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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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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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비님의 댓글

장미꽃비 작성일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성모님과  함께라면
두려울것이  없어라...
어떻한  위험과...의심과...어려움속에  성모님과  함께라면  나.행복하리..
모든성인들은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하셨는지. 

힘들거나.
괴로울때.
고통이 있을때  " 성모찬가"  를 조용히 기도해보면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되는지몰라요..

베르나도 성인님..감사해요.
너무도 성인님이 좋아요..

오늘도 많은것을 배우게 해주신 성체사랑님.
주님의 축복  가득받으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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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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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우리의 훌륭하신 베르나르도 성인을 찬미합니다.
우리의 교부이신 베르나르도여 !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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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학자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수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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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베르나르도아빠스 시여!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시여!율리아님의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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