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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이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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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님함께
댓글 23건 조회 2,926회 작성일 15-07-01 04:21

본문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형들이 생전에 어머니의 썩은 시신을 수습하는 엄청난 경험은

형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피난 길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주 놀라고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형들은 자주 다투다가

 종내는 작은 형이 집을 나감으로써, 큰형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주었습니다.


큰 형도 고등학교를 졸업을 한 후 조금씩 앓기 시작하더니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에서 2개월간 모자란 6학년의 공부를 해야하는데,

아침 8시 30분 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을 합니다.


나는 공부하면서 나의 정신은 앓아 누운 큰 형에게 가 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3.1절 독립선언문을 내일 모레까지 외워 올것"

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나는 밤에 공부가 끝나면 기차역으로 가서, 신주머니에 석탄을 훔쳐 가지고

집에 가는게 일입니다.

그러다가 기차역에서 역무원에게 잡혀 석탄을 다 빼앗기고 혼이 나기도 합니다.


형의 병은 더욱 학화되어 이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아침에 형의 밥을 해서 형의 머리밭에 차려두고 나는 학교에 갑니다.


밤10의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방안에 불도 켜지 않아 깜깜한데,

내가 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니 ,내가 해 놓은 밥은 그냥 있고 ,

방안은 냉장고 처럼 몹시 춥습니다.

큰 형은 힘없는 소리로


"너 왔니?"


합니다.형의 몰골은 점점 살이 여위어갔고 나중에는 내가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하는데

학교갔다오면 형이 똥 오줌을 싼 채 그냥 있어서, 내가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야 합니다.


이럴경우 내가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여 형을 돌보는 것이 옳지만,

미처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만큼 나는 바보 같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외우라는 3.1절 독립선언문은 한줄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자! 3.1절 독립선언문은 다 외웠겠지?"

"예"

"먼저 외운사람이 집에 간다"


아이들은 그 어렵고 긴 독립선언문을 잘도 외우고 잡에 갑니다.

나는  한줄이라도 외우려고 책을 펴고 읽기시작합니다.


오동은 자에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밝히며 차로서 자손만대에 고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위케하노라...


맞는지 안 맞는지모르지만, 나는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에 씩씩하게 잘 외우면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식으로 바로 집으로

보냅니다.


그리하여 나도 첫줄만 외우려고 온갖 정성을  다해 드디어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거의 다 빠져나가고 6명만 남았습니다.

나는 일어나 선생님 앞으로 갔습니다.

".................."

"해봐"

".................  "

내가 우물쭈물하자 선생님의 억양이 높아집니다.

"해보라니까"


"오오오오....도도동은 자자자의 아 조조조선의 도도도도......"

내가 갑자기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하자, 선생님의 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차마 보다못해


"가 가"

라고 합니다.


나는 깜깜한 교정을 나오면서

"이 바보 명청이야, 그것도 못해 ..."

내 자신을 마구 저주하면서 엉엉울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나의자존심이  처참하게 구겨져 나는 죽고만 싶은것입니다.


집에 이르자 오늘도 형은 내가 차려놓은 밥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엌으로 가 방에 불을 때면서 형이 너무 불상하여 마구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청주 교동 국민학교 제19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내가 졸업장을 가지고 집으로 오자 큰형이 나의 졸업장을 보고 쓸쓸히 웃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이 나에게는 슬픔으로 보입니다.

형이 너무 비쩍 말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낮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무 쪼가리를 줏어오고, 들에 나가서 마른 풀대를 

꺾어 집으로 가져 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형의 모습이 이상합니다.신음소리를 내며 호홉하는 소리가

이제가지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이기에, 형을 바라보니 눈빛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 눈빛은 어머니의 눈빛과 똑 같았습니다.


나는 형이 죽어간다고 생각하고 ,청주 도립병원에서 소사로 일 하는 작은 형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작은 형은 야간고등학교에 갔다고 하여 나는 또 학교도 달려갔습니다.


"형 큰 형이 죽어가"


그러자 작은 형이 나를 자전거뒤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집을 향하여 달리는데

집 근처에 와서는 무엇에 걸려 우리둘이 나가 떨어져 어딘가에 쑤셔박힙니다.


몸이 아프지만 지금 그것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집으로 달려오자 큰 형의 숨이 아직 붙어 있는데 의식이 없습니다.


작은 형이 마구 소리내어 웁니다.

"형 형 내다 잘못했어 형형"

작은 형이 무슨 책임감을 느끼나봅니다.


"내 이모님집에 갔다올께"

하며 작은 형은 바로 집을 나갑니다.

이모님집에 간다던 형은 날이 어두워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큰형의 마지막 숨이 멈추는 것을 봅니다.

나는 마구 울었습니다.


그러자 옆집 아저씨가 들어와서 형의 모습을 바라보고 두 눈을 감겨 줍니다.

그리고 이불을 들춰보면서

"형을 닦아주고 새옷으로 갈아입혀라"

고 하며 나갑니다.


나는 물로 형의 몸을 닦아주고 새옷을 갈아 입히고, 피똥을 싼 형의 옷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불에 태웠는데 이가 하얗게 기어나옵니다.


나는 죽은 형의 모습이 점점 무서워 집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더욱 무서워 방에 같이 있을 수가 없어서

부엌으로 가서 방에 불을 때고 부엌애서 잠을 잡니다.


나중에 작은 형과 이모부가 함께와서 형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리는데, 나는 이제 큰 형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에 놀라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네 형은 성금요일에 죽었으니 천국에 갔을꺼다"

라고 이모부가 말씀 하십니다.


"세근아 !"

"예"

"너는 오늘부터 우리집에 와 있거라'

그리하여 나는 운천동에 사는 이모님네 집으로 갔습니다.

이모님은 바로 나의 어머니의 언니입니다.


그 집에는 할머니, 두 아들,다섯명의 딸들,그리고 이모부부,하여 10식구가 사는데

내가 오니 이모님이 너무 힘들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모부 혼자 버는 돈으로 그 많은 식구들이 먹기도 힘이든데

나까지 왔으니 더욱 힘들어 합니다.


어느날 이모님이

"얘 세근아 !"

"예"


"무극에 가면 너의 삼촌이 있잖으냐? 거기로 가거라"

고 하십니다.


내가 그곳을 찾아가는데 청주에서 무극까지가 130리 입니다.

나는 돈도 없어 차도 타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시골길로 찾아갑니다.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곳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나는 어느 동네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자 동네의 청년들이 나를 붙잡고

'너 간첩의 끄나풀이 아니냐?"

라고 문초하듯이 다그칩니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웬 낯모르는 아이가 이곳저곳을 살피는게 수상하다고

본 것닙니다.


청년들과 사람들이 모여들고 점점 험악져가는데,

이때 한 풍채좋으신 노인 한분이 나를 지켜보다가

"따라오너라"

고 하십니다.


그러자 청년들과 동네사람들은 꿈쩍도 못하고 바라봅니다.


다른 집은 다 초가 집이나 할아버지 집은 기와집인걸 보면 나는 이 동네의 존경받는

양반 어른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내가 누구냐고 묻기에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저녁을 먹는데 나와 겸상을 해 주십니다.

그 무렵에는 양반과 나같은 사람들은 어른과 겸상이 어려울 때입니다.


그리고 저녁을 물리자 어르신 바로 옆에 깨끗한 요와 이불을 펴주며 자라고 합니다.

나는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들었지만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날밤을 아주 편하게 잘 잤습니다.


아침이 되자 또 할아버지와 겸상을 차려주어 아침을 맛있게 먹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는 지금 그때의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대단히 사려깊으신 어른이란걸 알고,


`내가 왜 진작에 그분을 찾아뵙지 못했는가?`

후회를 하지만,나는 지금 그곳이 어디인지도 지리도 잊어버렸고 ,지금 살아있다면

120살도 더 되었을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 지금부터 60년전의 그 인자하시고 사랑 가득하신 할아버지가

지금은 아마 천국에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만,


그에게 더욱 영광스러운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제가 몹시 그리워하고 고마워 하는 마음도 전해 주소서"


라고 기도 드립니다.

내가 삼촌에 집에 가자 그집에도 많은 식구가 있고 생활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느날 숙모가

"예 세근아"

"예 작은어머니"


"여기서 30리 가면 네 고향인 장호원이지 않느냐?"

"예"

"장호원에는 큰 다리가 하나 있어서, 다리를 건느기 전 동네를

충북 음성 장호원이라고 하고,


다리를 건느면 경기도 이천 장호원이라고 한단다.

그 이천 장호워 읍장이 너의 외삼촌이고 굉장한 부자란다. 그리로 가거라"

고 하십니다.


나는 숙모의 말씀대로 또 30리를 걸어서 장호원으로 갔습니다.

장호원에 가면 옛날 프랑스 신부님이신 임신부님이 지으신 고틱식의 성당이,

매산 중턱에 높이 솟아 있어 장호원 읍내를 굽어 봅니다.


내가 바로 그 임신부님에게서 보례영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다리를 건너 이천 장호원으로 가자,

다른 집들은 거의 초가 집이나 외삼촌 민씨의 집은 솟을 대문의 큰 기와집입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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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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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그 후 나의 말 더듬이는 더욱 심해져 남과 말을 못할 정도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기피하고 말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후 내가 30대가 되면서부터 말 더듬이가 조금씩 나아졌지만
2004년 10월 19일이 성모님의 피눈물 흘리신지 18주년에 완전히 치유받았습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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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님의 댓글

집으로 작성일

낼 모레면 엄마집에 가는날 !  룰루랄라 ~!  ^^  동산에서 주님함께님을 뵈옵겠습니다 .  아마도 밤 11경이라야 ...매번 파장엘 갈려니 뭔가 찜찜하네예~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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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엄마집에 가는날 룰루랄라 !
11시? 저는 미사가 끝나면 돌아가려고하는데 미사는 아마 새벽에 끝나겠지요 하하하
사랑하는 집으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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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님의 댓글

루치아 작성일

모든 감사가 마르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모든 기쁨과 환희와 희열의 삶에로 그것이 물적이든 영적이든 육적인 건강에로 오늘도 현재도 미래에도 매일 매순간 매초마다 바꾸어주시옵소서!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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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루치아님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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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어린 나이에 고생고생 이집저집을 전전하며!!
그래도 성모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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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비오님의 댓글

세인트비오 작성일

고생 고생 ㅡ끝에 나주 성모님께 치유받으셨으니
너무 다행입니다 ㅡ늘 행복하세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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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돌아님의 댓글

돌아돌아 작성일

늘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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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

아멘, 샬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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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전쟁이 모든걸 앗아간 어려운 고통들 속에서의 삶의 이야기..
감사드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님함께님처럼 꿋꿋이
주님과 성모님께서 일러주신 메세지 말씀에 따라 5대영성으로
무장하여 봉헌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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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어린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겪으셨고
슬픔과 아픔들이 너무나 많았던 그때 그 시절

이제는 상처도 치유되시어 너그럽고 넉넉함이
함께하시는 주님함께님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빌며 주님 성모님의 크신 은총 가득 받으셔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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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읽을수록 마음이 아파오는 삶이네요..
그 어려움을 이겨내신 주님함께님
이제는 모진 세월을 잊으시고 항상
행복많이 가득하셨으면 합니다..

아멘~~!!
주님 성모님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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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님의 댓글

성체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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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라기님의 댓글

별바라기 작성일

상상할수도 없는 전쟁의 비참함!!
이땅에 다시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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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빛님의 댓글

구원의빛 작성일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정말 참혹한 전쟁의 상황들을 올려주시어
읽으며 우리의 영적전쟁터 또한 이렇게 치열하고 급박하구나..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전쟁을 겪어보신 분은 이제 점점 줄어들고
더 이상 전쟁이라는 것이 남의 일 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분명 필요한 기록이고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금 염려되는 것은
분명 이 글들이 좋은 자료이기는 하나
과거의 기록과 주님함께님의 자서전과 같은 이 글의 방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시작된 글을 읽어보아도 제가 못찾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연재글의 취지가 보이지 않고...
전에도 간혹 예전 일들을 올려주셨으나
이번에는 더욱 상세하고 길게 연재되는 것 같아서
이 글의 방향이 게시판에 맞게 좀 더 조정이 되면 어떨까...
글을 읽으며 좀 더 영적인 것을 묵상하고
나주의 5대 영성을 떠올릴 수 있으면 글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메시지를 덧붙여 봅니다.


지극한 사랑을 받고 보호받던 나라들까지도 치러야 할 엄청난 지옥 형벌의 시간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완고하게 하느님을 배척하고 있으며 세상은 날로 부정과 부패가 늘어나
폭력의 위협이 팽배하여 전쟁이 빈발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지금 부패와 타락으로 찌들어가고 있구나. 먹구름  속에서 위협당하고 있는 인류,
무서운 암처럼 퍼져나가는 죄악들, 이미 폭풍은 거칠어져가고 있다.
이 폭풍에 휩쓸려 크나큰 위험에 놓인 세상,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천상의 어머니인  나의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폭력과 전쟁과 파괴의 위협에 대한 큰 시련들 앞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나를 따르라.
(1989년 1월 29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나의 모성적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실천한다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새롭고 무서운 전쟁의 위협 앞에서 내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하여 전 세계에 사랑과 평화가 올 것이다.
크나큰 어둠 속에서도 내 말을 따르는 모든 영혼들에게
빛나는 나의 망토를 펼쳐 성심의 안전한 피난처에 숨겨 구원해 주리라. 아멘!!!  (1991년 1월 29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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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구원의 빛님
염려되시지요? 하하하
제가 글을 쓰는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3차전쟁을 예고하셨는데 그것은 사실 매우 위급한 상황입니다
.북한만이 아니고 아람국가에서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국과 일본한국 북한이 개입이 될 위험도 있지요.
저번에 경당이 탈때 많은 분들이 제가 광주와 내통하고 있을 지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가 분명히 알려드리고 싶어 제가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이야기하는 중이며
또한 신앙생활이란 것이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평생 걸리며 어떻게 형성이되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복잡한 문재들이 있습니다.
나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모님 메시지에만 매달리는 것도 좀 문제 입니다.
우리는 따로 마이아의 구원방주가 아니고, 천주교라는 한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아야 하는데
일반신자들과 성직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새로운 종교로 생각을 합니다.그러기에 내가 어떻게 천주교를 사랑하는 가를
보여드리고, 또한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아하는가도 보여드려, 쓸데없는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인간이 다양하듯 나주 순례자들도 다양하다는 사실이고 여기에 올려지는 글도 어느 획일적이 아닌 천주교내의 여러분야의
내용을 담는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천주교가 전세계의 공번된교회이듯 나주 또한 그렇게 발전시켜나가야 할것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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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ma님의 댓글

nima 작성일

7월을 찬미합니다.

7월을 축복하여 주소서!


오늘도 좋은 내용과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올려지는 모든 이를

주님과 성모님의 품안에

사랑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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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모진 세월속에 어려움을 이겨내신 사랑하는 주님함께님! 나주성모님의 풍성한 은총속에 항상 가내 두루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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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아멘!!!
주님함께님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으세요.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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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사랑님의 댓글

달빛사랑 작성일

신앙과 믿음은 어느한 순간에 똑딱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올바른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깨우치고 깨닫기 까지는 전생애 에 걸쳐서 하느님의 섭리가 있는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율리아 자매님이 아니신가요 ?..... 또한 주님함께님도 그런분이시지요
저도 십년 가까운 고난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알게 되었지요 그 시간들이 보속의 시간들이고 고통이 은총이라고 .....
저는 훗날 ...그렇게 나주로 연결되더군요
 주님함께님의 글은 신앙적으로 본다면 좋은 참고서 같은 글이며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이 그시대의 사람들을 ...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험한 분들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전쟁의 고통과 함께 신앙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는 주님함께님의 글에  별 무리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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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사랑하는 달빛사랑님 !
저에 대한 과찬이십니다.
그러나 마치 백만대군을 맞난것 처럼 든든합니다. 하하하
하느님께서 달빛사라님의 글을 보시고 조용히 미소짓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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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나님의 댓글

마리안나 작성일

어린 나이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아픈 마음 다 내려 놓으시고
주님 성모님 사랑 안에 평안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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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주님함께님~
영육간에 늘 건강하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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