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한계성을 넘어선 겨울 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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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1951년의 겨울은 몹시 추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입을 옷들이 없어서 여름에 입었던 옷들을 그대로 입고
피난을 가는데 나는 신발도 없어서 검정고무신을 신었습니다.
그때는 양말도 없어서 헝겁을 찢어 발싸게를 하고 고무신을 신었는데
몇발작만 걸으면 헐거워져 발싸게가 벗겨 집니다.
더구나 눈이 많이 와서 신발이 푹푹 빠지면 발이 꽁꽁 얼어버립니다.
나는 걷다가 큰 형의 등에 업혔다가 하면서 가고,
작은 형의 등에는 작은 담요와 냄비와 밥그릇같은 것들을 지고 갑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도 솜바지 저고리를 입고 가는데
우리들은 너무 춥습지다.
몇달 전의 여름 피난때 신작로에서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지, 망가진 전차와
트럭과 장갑차와 각종 포탄과 무기들이 길가와 길 밑에는 많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어느 탱크는 포신이 갈기길기 몇가닥으로 찢어져 있는데, 우리 용감한 군인들이
포신에 수류탄을 넣어서 터졌다고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밤이 오면 인근 동네로 들어가 잠을 자는데,
농가의 방은 작은데다가 20~30명이 들어가서 눕지도 못하고 발만 뻗고
밤을 지새웁니다.
그나마 동작이 빠른 사람들이나 방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같은 소년들은 잘 곳이 없어 부엌이나 헛간에서 잠을 잡니다.
나는 헛간의 볏짚을 쌓아둔 곳에 들어가서 선채로 잠을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꽁꽁 얼었던 발과 손이 언채로 그냥 있습니다.
형이 마당에 나무를 갖다가 불을 피우면 나는 손과 발을 녹입니다.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여름피난때 어머니가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것이 남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보은의 피발령고개를 넘는데 맨 위에는 한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칼날같은 능선이
나오고, 사람들이 눈을 반들반들 다져놓아 꼭 유리 같이 반짝입니다.
큰 형이 칙덩굴을 끊어서 나의 고무신발에 감아주고 자기도 발에 감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능선을 지나는데, 너무 미끄러워 왼쪽 발이 미끌어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또 한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
나를 잡아 안전하게 세워 주었고, 나는 그곳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만일 그 낭떨어지로 떨어지면 찾지도 못하고 찾는다 해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수가 줄어드는데 그것은 시골에서 아예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산을 넘고 내를 건느고 동네를 지나 또 여름에 엄마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을
가면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짓습니다.
영동의 금강까지와서는 꽁꽁 언 강을 건느는데, 지난 여름 피난때 어머니가 나를
업고 건느다가 하마터면 같이 죽을 뻔 했잖은가?
그런데 지금은 단단하게 얼은 얼음위로 강을 무사히 건늡니다.
그리고 산길로 또 어느 동네를 지날때 여름에 포탄이 떨어지던 장소와,
어머니가 돼지고기에 체해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던 장소에서,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영동군 용산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산비탈과 신작로 밑의 논과 밭에는 볼록 볼록하게 눈에 덮힌
가무덤이 끝도 없이 보입니다.
동네사람들 이야기로는 자기들도 피난 갔다가 돌아와 보니, 죽은 시체가 너무 많고
가족들이 찾아올것을 생각하고, 동네사람들이 삽을 가지고 흙을 떠서 시체를
덮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눈이 많이 쌓이니 바로 눈무덤이 사방에 볼록볼록 합니다.
우리는 동네로 들어가서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세근아 너는 방에 있거라, 우리는 동네 어른들을 만나보고, 내일 어머니 시신을
발굴하는 작업을 도와달라고 해 볼려고 한다"
하며 밖으로 나갑니다.
나는 방안에서 오돌오돌 덜면서 형이 둘어오기를 기다립니다.
밤중에 형들이 돌아와서
"내일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는구나,"
하며 형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합니다.
다음날 무척 춥습니다.
"세근아 너는 집에 있거라"
하며 두명의 형은 동네사람들을 따라서, 어머니의 시신을 찾으러 갑니다.
시신을 찾으면 앞산에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장호원의 아버지 묘소에 옮길
생각입니다.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형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름피난때 총 맞은 팔에는 아직고 완전히 아물어붙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어서, 딱찌가 지고, 나는 그 딱지를 그냥두면 또 좋은데, 자꾸만 떼어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가 지나 날이저물어 지는데도 형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참 후 어둑아둑해 질 때 형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형들의 몰골은 말이 아닙니다.
무엇에 크게 놀란듯 얼굴이 변해 마치 딴 사람같이 보입니다.
"좌근아, 네가 아궁이에 불을 때거라"
그리고 큰 형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얘 세근아"
"응"
"어머니가 분명히 신작로 위에 산비탈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느냐?"
"응"
"그런데 거기에는 무덤이 3개나 있는데, 무덤을 다 파 봐도 어머니가 없었단다."
"어?"
"너 어머니가 입었던 옷이 무슨 색깔인지 아니?"
"푸른색에 무슨 작은 무늬가 있는 치마야"
"맞아 ,시체들이 다 썩어서 옷자락이 아니면 전혀 알수가 없단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우리들은 신작로 밑으로 내려와서 그 수많은 무덤들을 파헤치는데,
거기에 어머니가 있더라"
"어? 어머니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지?"
"그건 나도 모른다.그래서 동네사람 3명과 함께 그 새까맣게 썩은 어머니의 뼈들을
하나하나 떼어서 가마니에 담는데 시간이 하루 종일 갔단다."
"흑, 엄마 엉엉..."
나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래서 두개의 가마니에 가득 담아서 앞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단다.
나중에 다시 파서 장호원의 성당 매산의 아버지 묘지에 옮길 생각이다."
형들이 가마솥의 물을 퍼서 손과 얼굴과 발을 닦고,저녁을 해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데 형들이 둘 다 갑자기 벌떡 벌떡 일어나 앉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또 자다가 일어나 울고 몇번이나 하기도하고, 우두커니 어둠속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다음날, 주인 어른이 와서
"지금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민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뉴스가
나왔으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라고 하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일을 끝내자 다음날 돌아가라고 할 줄 누가 알았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어렵습니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눈길입니다.
날이 저물면 어디에서 잠을 자야하나 그것도 큰 문제 입니다.
나는 형의 등에 업혀서
"형 저 집으로가"
라고 나도모르게 그 집을 가리키면 형은 그 집으로 가고 거기서 머물게 됩니다.
머문다고 하여 따듯한 방에서 자는게 아니고, 부엌이나 헛간에서 자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렇게 매번 그러니 큰 형이
"세근아 ! 너는 호수천신이구나 !"
라고 합니다.
지금은 `수호천사`라고 하지만, 그때는 `호수천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고생고생 하면서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 글이 너무 길어져 속도를 내는 중인데, 피난중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다 쓸 수는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이승만 대통령이 미안했던지,
동회에서 배급을 주는데, 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그러나 반찬을 살 돈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 제가 어떻게 모진 겨울을 동상 한번 걸리지 않고 견디게
해 주셨나요?
제가 만일 얼어죽었다고 한다면 여러번이나 얼어죽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는 그 후 또 어렵게 살아올때 `왜 하느님은 그때 저를 데려가시지 않았습니까? `
라고 원망을 수도 없이 했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그러하오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통지가 나왔는데 6학년의 하다말은 공부를 2개월 더 해야 졸업장을
받는 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또 학교에 다니는데, 아침 8시 30분 부터 밤10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큰 형과 작은 형이 전에 없이 더욱 날카로워져
자주 다투고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작은 형이 종내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 벌어져 큰 형은 충격을 받습니다.
(계속)
^)*
댓글목록
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는 순간 순간들...
주님함께님께서 어느집을 가르킬 때
마다 필요했기에 그곳에서 머물 수
있었던...
그리고 얼마나 춥고 배고팠을까요?
양말이며 옷도 변변치 않았을 그 때
주님함께님을 지켜주신 주님 성모님
감사드려요.아멘
루치아님의 댓글
루치아 작성일자비로우신 하느님 무한히 영원히 감사합니다.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세인트비오님의 댓글
세인트비오 작성일
참으로 인고의 세월을 살며 하느님과 함께 하셨군요ㅡ
요즘사람들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네요ㅡ
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주님함께님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성모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nima님의 댓글
nima 작성일
찬미 예수님!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던지
주님 저희와 함께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아멘!
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아이고
정말 참극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따뜻하신 손길이
없어셨으면
여러번 돌아가실 상황이였습니다
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형님의 고생도 너무 참혹 했군요
요즘 그런 형제 애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재산 더 가질려고
하고 싸우는 모습
서로 화병이 나서
술 퍼마시고
행패 부리는 뉴스뿐
소설 같은 주님함께님의
실화 이라 참
전쟁은 이렇게 죄없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불행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드릴수 잇구나
새삼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기 일년 십개월전에는
전쟁의 상처가 우리나라
여기 저기
아물지 않고 회복되지 않아
가엾고 또 가엾습니다
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율리아님 도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으셨지요
한많은 전쟁이였습니디ㅡ
다시는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될려면
나주 성모님이 인준만 나면
그렇게 평화로운 세상이 될것인데
이남이북의 묶인 철사줄도
끊어지고....
자비의샘님의 댓글
자비의샘 작성일아멘, 샬롬 @@!!
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그 수많은 무덤들을 파헤치는데,
거기에 어머니가 있더라."
ㅠㅠ 그냥 돌아가시기만해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참으로 시리건만,
전쟁터에서의 이별?은 그 얼마나........
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나는 조심스럽게 능선을 지나는데, 너무 미끄러워 왼쪽 발이 미끌어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또 한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
나를 잡아 안전하게 세워 주었고, 나는 그곳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아멘~*
주님! 성모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멘~*
ㅠㅠ
마리안나님의 댓글
마리안나 작성일
아멘~~!!!
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주님함께님을 보호해 주시고
어머니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네요~
주님 성모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평화로운 날 되세요^^
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모진 칼바람의 겨울을 여름옷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억만길을 걸어나왔는데도 동상도 걸리지 않고
몸 이 성한것이 참 신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길이였나봅니다
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나는 조심스럽게 능선을 지나는데, 너무 미끄러워 왼쪽 발이 미끌어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또 한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
나를 잡아 안전하게 세워 주었고, 나는 그곳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아멘!!!
주님함께님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움이 언제나 함께 하시고
남은 인생길에도 언제나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아멘!!!~~~
사랑의단비님의 댓글
사랑의단비 작성일
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주님함께님을 보호해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드립니다.
아멘*
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그 모든 어려움 성모님의 안배하심..
힘겨움을 잘이겨내신 주님함께님
사랑합니다..
아멘~~!!
성체님의 댓글
성체 작성일주님함께님의 댓글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아유 성체님
어느카페에서 제글을 보셨길래 그러세요 하하하
저는 부족하지만 늘 정직하게 써왔어요하하하
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말로 표현이 다 안되겠지요!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아멘아멘
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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