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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 주간 토요일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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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7건 조회 3,058회 작성일 15-01-17 10: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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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George and Anthony Abbot-PISANELLO

mid 1400s. Panel. National Gallery, London

 

 

축일:1월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Sant’ Antonio Abate

Saint ANTHONY the Abbot

Anthony of Egypt; Anthony the Great; Father of Cenobites;

Father of Western Monasticism

251 at Heracleus, Egypt -

356 at Mount Colzim of natural causes; relics near Vienne

Antonio = nato prima, o che fa fronte ai suoi avversari, dal greco

Name Meaning :inestim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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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Anthony Abbot and Saint Bernardino of Siena,-Jacopo Bellini

1459/1460. Partial Gift of an Anonymous Donor,

in Honor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National Gallery of Art

 

성 안토니오는 수도 생활의 창시자로 공경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서 다소 산만한 형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들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독하고 한적한 독수 생활을 오랫 동안 계속하였다.

 

그는 20세 때부터 남부 에집트의 고향 근처 산을 찾아다니면서 고독한 생활을 즐겨하면서, 기도와 연구 및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그는 맹렬한 영적 육적인 유혹으로 한 동안 고생하였으나, 끝내 이를 극족한 뒤에, 그 주위에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고 전한다.

 

312년에 그는 좀더 멀리 갔는데, 콜짐 산의 동굴에 거처하였다고 한다.

이 산은 홍해의 북서해안에 있는데, 이곳이 그의 여생을 보낸 장소였다.

여러가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성 안토니오를 찾아와서 충고를 청하고, 또 어떻게 사는지를 살피러 왔다.

 

말년에 그는 아리우스파의 반대를 촉구하기 위하여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가 사망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100세가 넘었다.

성 안토니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아타나시오가 기록한 전기가 전하여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환상이나 혹은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학문이 뛰어났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시에나의 성베르나르디노 사제 축일:5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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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는 생전이나 사후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공경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성 안토니오는 "사막의 교부"로도 불린다.

그의 휘장으로 묘사되는 그림은 돼지와 종이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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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and Child with Saint Anthony Abbot and Saint Sigismund-Neroccio de’ Landi

c. 1495.Samuel H. Kress Collection

 

안토니오의 생애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매우 비슷하다.

20세에 그는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복음의 메시지에 깊이 감동되어

자기가 상속받은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가 프란치스코와 다른 점은 생애의 대부분을 광야에서 보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세상이 완전히 유혹에 덮인 것을 보고 세상과 교회에 광야의 은수 생활을 통해 크나큰 자기 희생과 기도의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어떠한 성인도 반사회적인 인물은 없듯이 안토니오도 영적 치유와 인도로써 많은 사람을 자기에게 끌어들였다.

그는 54세에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은수자들의 거처를 바탕으로 일종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311년에 다시 시작된 로마 박해 때 순교하고 싶은 열망에서 두려움 없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 도움을 베풀었다.

그는 88세에 수세기가 지나서야 교회가 그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커다란 비극인 아리우스 이단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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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는 예술에서 T형의 십자가, 돼지 그리고 책으로 표현된다.

돼지와 십자가는 마귀의 무서운 투쟁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계속해서 악령을 제어하는 힘을 주는 방법이고, 돼지는 마귀의 상징이다.

 

책은 ?인쇄된 말마디보다는 ’정신의 책’을 더 좋아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안토니오는 105세에 광야에서 죽었다.

우리는 안토니오의 놀라운 극기 생활에 잘못 인도되지 않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의미와 결과를 강조하고자 한 안토니오 성인전을 쓴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 것이다.

 

"초면인데도 그의 얼굴에 나타난 기쁨을 보고 제자들 가운데서 그를 알아보았다."

위대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까지도 그에게 기도를 청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안토니오는 그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황제가 나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해서 놀라지 말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글을 써 보내셨고,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에 놀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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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Anthony the Abbot Tempted by a Lump of Gold-ANGELICO, Fra

c. 1436. Tempera on panel, 19.7 x 28 cm.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수도 생활의 탁월한 사부인 안또니오는 250년경 에집트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세상을 떠난 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으로 들어가 회개 생활을 시작했고 많은 제자들을 얻었다.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시 신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고,

아리우스 이단자들을 거슬러 싸우던 성 아타나시오를 후원해 주면서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356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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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tation of St. Anthony-Giovanni Girolamo Savoldo

1515-20 (?)oil on panel 27-3/8 x 47 in.

 

성 아타나시오 주교가 쓴 [성 안또니오의 생애]에서

(Cap. 2-4: PG 26,842-846)

 

성 안또니오의 소명

 

양친이 세상을 떠나자 안또니오는 나이 어린 여동생과 함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여덟 내지 스무살 정도였고 가사와 여동생의 양육을 책임 맡게 되었다.

 

양친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도 채 못되어, 늘 하던 대로 주일 날 한번은 성당에 가던 길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즉, 무엇 때문에 사도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구세주를 따랐는가?

또 사도행전이 말해 주는 대로 무엇 때문에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나온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사도들의 처분에 맡겼는가?

그는 또 이런 생각도 했다. 그들이 하늘나라에서 얻으리라고 희망한 상급은 얼마나 크고 위대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성당에 들어갔다. 그때 막 다음의 복음 말씀이 봉독되고 있었고, 그는 주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듣게 되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안또니오는 마치 성인들이 한 것을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상기시켜 주시고 또 그 성서 구절이 특별히 자기를 위해 봉독된 듯,

즉시 성당에서 나와 자기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소유지가 자기 자신과 여동생에게 근심거리가 되지 않도록 그 전부를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버렸다.

그는 약 37만평 정도의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었다.

또한 동산 전부를 처분하여, 거기에서 받은 액수에서 약간만 여동생을 위해 남겨 두고, 상당한 액수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 번 성당에 갔을 때, 복음서에 나오는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더 견디지 못하고 성당에서 나와 남겨 둔 재산까지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 버렸다.

자기 여동생을 잘 알고 있던 믿을 만한 동정녀들의 보호에 맡기고 그들의 집에 들여보내어 교육받도록 했다.

그리고는 자기 집 근처에서 고행 생활을 하였다. 그는 몸바쳐 반성하는 가운데 엄격한 생활을 인내로이 해나갔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성서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는 손수 노동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번 수입 중에서 약간은 식량을 구입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그는 또 "은밀히 기도하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에 따라 기도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성서를 너무도 열심히 읽었으므로 읽는 것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외우다시피했다. 그래서 훗날 자기가 암기 한 것이 책 노릇을 해주었다.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과 그가 전에 사귀었던 좋은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의 벗"이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를 아들처럼, 또 어떤 이들은 형제처럼 사랑해 주었다.(가톨릭홈에서)

 

*성 아타나시오 주교 축일: 5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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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 Paul the Hermit and Anthony Abbot-VELA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y

c. 1642. Oil on canvas, 257 x 188 cm. Museo del Prado, Madrid

 

이미 말한 성 바오로 은수자와 같이 로마 제국의 박해 시대에 광야로 피신해 홀로 고독히 하느님과 같이 은수 생활을 한 사람은 여럿 있으나,

그러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서 공동으로 수도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는 성 안토니오 은수자였다.

그러므로 이 성인을 공동체 수도 생활의 스승 혹은 시조(始祖)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 바오로 은수자 축일:1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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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는 251년 이집트의 고만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해 입신 출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은 그는

예수의 "당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당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오"(마태 19, 21)하신 말씀을 글자그대로 실행하려고 결심했다.

 

양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유산의 절반을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주고 그녀를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나서,

자신은 사막(沙漠)에 들어가 어떤 노수사의 지도하에 완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얼마동안 덕을 닦고 난 뒤 안토니오는 더욱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은사의 슬하를 떠나 더욱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무덤과 같은 굴에 살면서 오로지 노동과 기도로써 경건히 날을 보냈다.

 

그러나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 8)하신 말슴과 같이 악마는 열심한 안토니오를 그냥 두지 않았다.

어떤 때는 세상의 쾌락에 대한 상상이나 동경심(憧憬心)을 일으켜 주고, 어떤 때는 이런 은수 생활은 자기를 돌보지 않은 무모한 짓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으니 빨리 세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등 온갖 유혹으로써 그의 거룩한 이상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안토니오가 맹렬한 유혹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도를 더 할수록, 마귀는 더욱 그의 마음을 산란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의 추악한 모양을 그의 눈앞에 그려내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그를 때려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그는 밤이나 낮이나 항구히 마귀와 싸워 결코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는 때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에게 성스러운 평화가 찾아오고 다시 주예수의 형상이 나타났을 때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 안토니오는

"주님, 저 무서운 유혹을 당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돌보지 않았습니까?" 하고 공손히 원망 비슷하게 말하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한다.

"안토니오야, 나는 네가 유혹을 당하는 동안 잠시도 네 옆을 떠나지 않고, 네 노력의 여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안심하라. 마귀는 이후 절대로 네게 유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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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를 위해 생활을 보살펴 준 이는 그의 친한 친구였다.

그는 안토니오가 만든 성물들을 시장에 가서 팔아 그 돈으로 필요한 양식을 사고 나?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필연코 이 친구로 인해 전해졌겠지만 오래지 않아 성 안토니오의 감탄할 만한 일상 생활이 사방에 퍼지자,

수도(修道)생활에 희망을 품은 청년들이 계속 찾아와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

안토니오는 혼자서 운수 생활을 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더 적합하리라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이번에는 관리나 상인이나 그밖에 여러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완덕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은 안토니오 산이라고 부르게 된 고르팀 산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과 더불어 수덕에 전심전력했다.

 

성 안토니오 임종 시에는 이와 같은 살마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찾아와서 영성상에 관한 지도를 받거나 안토니오 및 제자들의 기도를 청햇다.

그 중에는 콘스탄타노 대제와 두 황태자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도 대제(大帝)는 사막까지 가지 못할 경우에는 편지로써 안토니오의 기도와 회답을 청했고,

성 안토니오는 이에 대해서 올바른 정치를 행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해야 될 것을 권면했다고 한다.

 

성 안토니오는 104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오를 위해서 일반 민중의 청원을 듣고,

그 읍에 가서 아리우스파의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설교를 했는데,

그 고결한 풍채에 접하고 그 이치 있는 말씀에 감동되어 진리의 길로 돌아선 이는 참으로 많았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마친 성인은 세 번째 정이 든 사막에 돌아가서 오래지 않아 거룩한 일생을 마친 것이다.

그때 그는 105세였었고 유해는 제자들로 하여금 정성되이 매장되었다.

성 안토니오는 "사막의 교부"로도 불린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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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주의 
[라틴어]Arianismus 
[영어]Arianism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4세기경의 이단사상.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로부터 발단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신 안에 있는 세 개의 위격은 모든 면에서 대등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부만이 그러하다.
성자는 모든 피조물들과 같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을 뿐이며, 신으로 불려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지 피조물과 신의 중계역할을 하고 세상을 구원하도록 신에 의해 선택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은총과 선택에 의해 하느님의 양자가 되었으며 그가 죄를 지을 수도 있었으나 짓지 않는 것을 보시자
신은 그의 덕을 예견하고 선택하였 다. 즉 그는 신이 아니라 덕을 갖춘 뛰어난 반신이며 이점에서 성부와 닮았다.
이러한 반 삼위 일체주의적 아리아니즘이 강생의 신비를 단지 수사학적인 문제로 돌림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가 해체될 위험에 처하자, 교회는 325년 니체아 공의회를 소집, 아리아니즘을 단죄하였다.
또한 니체아 신경을 발표, 삼위가 모두 성부로부터 났으며
각기 그 자체로서 완전한 신이라는 삼위일체설을 고백하였다.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다시금 고개를 든 아리 아니즘을 단죄하고 니체아 신경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후계자들에 의해 북부 게르만 민족들에게 전파되었던 아리아니즘은
게르만족의 로마 진입과 더불어 로마제국 전역에 퍼졌다.
교회는 7세기에 이르러서야 아리아니즘을 몰아내고 정동 교리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삼위일체 대축일(성령강림대축일후 첫번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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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아공의회 
[라틴어]Concilium Nicaenum 
[영어]Councils of Nicaea 

 

①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 제 1차 공의회).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에 의해 소집되어 니체아에서 열렸다.

‘318명 사제들의 교회회의’라고 불려졌으나 50~220명의 사제들이 참석한 것으로 보이며

서방에서는 회의를 주재한 호시오(Hosius)를 비롯하여 2명의 교황사절과 5명의 주교만이 참석하였다.

주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를 다루었다.

황제는 이騈?몰아내고 정통 교리를 세우는 것 보다는 교회 내의 일치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였으므로

아리우스 이단의 문제는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공의회에서는 두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派)인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of Nicomedia)가 제출한 것은 폐기되었으며,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세례 신경을 기초로 하여 ‘동질’(同質, homoousios)이라는 용어를 보완한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of Caesarea)의 신경이 채택되어

이를 기준으로 니체아신경이 공포되었으며, 그 결과 4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되었다.

부제 아타나시오(Athanasius)도 참석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② 제 2차 니체아 공의회(787년, 제 7차 공의회).

성화상(聖畵像)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황제 이레네(Irene)가 소집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Hadrianus) 1세는 여왕의 공의회 초대에 대하여 성화상 파괴에 대한

히에리아 교회회의(753년)의 결정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두명의 사절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성화상 파괴주의자인 군인들의 폭력(786년)으로 공의회는 예정대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리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타라시오(Tarasius)의 주제 하에 니체아에서 열렸다.

공의회는 교황의 서한대로 성화상 숭배에 대한 교리를 채택하여 성화상에 바쳐지는 공경은 그 본체로

돌아가므로 절대적인 흠숭은 신에게만 바쳐지는 반면, 성화상은 상대적인 사랑에 의해 공경되어진다고 부연하였다.

이 교리를 공포하는 교령에는 참석한 전원의 서명이 첨가되었으며, 성상파괴주의자들은 파문되었다.

이 밖에도 22개의 교회법이 교칙에 관계되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세속권위에 의한 성직자의 선출은 무효이며 성직 매매는 단죄받아야 한다.

또한 주교의 허락 없이 사제가 자신의 교구를 떠나는 것,

주교 거주지 또는 남자 수도회에 여자가 머무르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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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 
[영어]creed 
[한자]信經 
[라틴어]credo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요체(要諦)를 간추려 적은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진술.

처음에는 입교 때 행하던 간단한 신앙고백에서 시작하여 4세기경에 마태 28:19을 따라 차츰 3단락의

단일한 형식으로 정비되면서 니체아신경과 콘스탄티노플신경, 사도신경(使徒信經) 등으로  발달하였으며,

서방에서는 오래 된 로마신경에서 나온 사도신경을, 동방에서는 니체아 공의회에서 인정된 니체아신경을

각각 세례신경으로 체택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말경부터 이미 성찬식 때 신경을 암송하기 시작했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1014년에 비로소 이것을 채택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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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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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itation with Sts Nicholas and Anthony - PIERO DI COSIMO

1489-90. Wood, 184 x 189.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의 중부 지방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다. 많은 사람이 안토니오를 따르자 그는 수도원을 세우고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다. 성인은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4세기 중엽 사막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 인간의 한계성이 강조되어 구원 불가론에 흔들리는 히브리인 공동체에 대한 메시지는 계속된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똑같은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다의 율법으로 볼 때 구원받을 가망도 없다고 단정된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많은 세리와 죄인의 식사 자리에도 참여하신다. 새롭고 놀라운 믿음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복음).
제1독서
  •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2-16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사람들은 친분과 사교에서 유유상종(類類相從)한다. 부유함에 사회적 지위까지 겸한 상류 사회는 주거와 소비의 향유 행태에서 특별한 사회를 구성한다. 가난한 이들이 그들 단체에 출입할 수도 없을뿐더러 곁으로 이사 오는 것도 용인되지 않는다. 재개발 지역에 들어선 호화 고층 아파트에 소형 평수의 임대 주택을 의무화했는데 이용하는 승강기를 따로 만들고 편의 시설 이용도 제약했다. 환경은 사람마다 다르게 되어 있으니 빈부 격차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대상일지 모르나, 사람의 인격이란 모두 같은 무게를 지녔기에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사회라야 진정으로 품격을 지닌 세상이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역 유지로, 또는 지식인으로, 저명인사나 상류층 인사로 대우받기를 전혀 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난하고 병고에 시달리며 소외에 우는 이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은 늘 무리를 이루며 그분을 따랐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교회가 사회적 하층민들의 차지가 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만약에 한국 사회의 상류층은 주로 어떤 종교를 가지고, 청년 실업자와 빈민,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교회로 몰린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축복의 징표가 될 수 있다. 세리까지도 제자로 부르시고 ‘나는 의인과 사귀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 삶과의 동시성에 충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야말로 유유상종의 공동체다. 사회적 지위나 계층,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예수님 제자의 삶을 공유하는 종말론적 구원 공동체의 형제자매로서 유유상종하는 것이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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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아멘~~~"

성안토니오 아빠스시여~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건강회복과 안전과
기도지향을 위하여
교황님 필리핀방문중에 나주성모님의
사랑이 꼭 전달되기를 기도하며
30주년기념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인준의계기가 되는 소중한기회가 되도록
저희 기도지향을 위하여 전구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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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 주소서.아멘

30주년 성모님 눈물기념일 저희들 정성과 사랑이
함께하여 눈물닦아드리려 많은 자녀들이 올 수 있기
를 빌어 주소서.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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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모후님의 댓글

거룩하신모후 작성일

"안토니오야, 나는 네가 유혹을 당하는 동안 잠시도 네 옆을 떠나지 않고, 네 노력의 여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안심하라. 마귀는 이후 절대로 네게 유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죄를 짓지 않은 대사제인 예수님께서 신부님, 수녀님, 율리아님 옆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셔서

나주인준을 앞당겨 주시길 기도합니다.

성체사랑님 !  영적인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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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 주소서.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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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성직자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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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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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아멘!!
성체사랑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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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메나님의 댓글

필로메나 작성일

아멘~!!! 성체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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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아님의 댓글

김리아 작성일

아멘
감사드립니다.
은총가득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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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주님! 언제나 이 자녀에게도
의사가 되어 주세요. 네?
예수님! 성모님! 사랑해요~^^

성안토니오 아빠스이시여!

@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체사랑님, 수고하심에 감사드려요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 충만하게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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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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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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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님의 댓글

루치아 작성일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모든 순교 성인 성녀님들과 피눈물 흘리시는 복되신 나주의 성모마리아님의 특별한 사랑의 축복으로 축복해주시어복되신 원죄없으신 동정 성모마리아님의 인준되는 기쁨을 성 안토니오 아빠스 성인이시여! 부족한 저희들의 믿음을 누리게 하소서!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분열의 마귀로부터 승리할수 있도록  무한한 모든 감사의 승리를 이 현세에서 승리 얻게 하소서!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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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비님의 댓글

장미꽃비 작성일

안토니오 성인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너무 훌륭하신 성인이시라  감히 우러러 뵈야하지만
율리아님 말씀처럼
나자신을 고치고 또 고치어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체사랑님...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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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안토니오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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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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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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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혁님의 댓글

유민혁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시여 !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자매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모든 지향에 합쳐 함께 빌어주소서
하늘의 모든 천사와 성인과 순교자들이시여 함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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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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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님의 댓글

lily 작성일

성안토니오 아빠스이시여~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영육 건강과 안전과
기도지향을 위하여

교황님 필리핀 방문 중에
나주성모님의 뜻이 잘 전달되기를 기도하며

성모님 눈물 흘리신 30주년 기념 기도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인준의 계기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드리며

저희들의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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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위 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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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들이님의 댓글

빛나들이 작성일

성체사랑님
수고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30주년에는 꼭 뵈올수가 있겠지요?
성체사랑님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성모님의 은총이 가득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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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의 댓글

달님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님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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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바스님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율리아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30주년 성공과 순례를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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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님의 댓글

여명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이시여!


이 세상이 완전히 유혹에 덮인 것을 보고
세상과 교회에 광야의 은수 생활을 통해
크나큰 자기 희생과 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오류가 만연하고 있는 마지막 이 시대에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통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5대영성으로 무장하여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진노의 잔 대신에 축복의 잔이 내려질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 -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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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정신님의 댓글

순교정신 작성일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이시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할 수 있는 마음과 정신을
깨우쳐 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율리아님의 기도 지향을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많은 이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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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님!
한국 나주에 친히 와계시는 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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