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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 )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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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25건 조회 2,971회 작성일 14-04-25 09:0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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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r Evangelists-GOZZOLI, Benozzo
1464-65 Fresco Apsidal chapel, Sant’Agostino, San Gimignano


축일: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St. Marcus
St. Mark the Evangelist
San Marco Evangelista

Died:martyred 25 April 68 at Alexandria; relics at Venice, Italy
Marco = nato in marzo, sacro a Marte, dal latino
= been born in March, sacred to Mars, from the La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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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라틴어 Marcus.영어 Mark
복음사가(福音史家). 그의 이름을 딴 마르코 복음서가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130년경 별세)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고 한다(에우세비오, 교회사 3, 39,15).

신약성서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이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 그리스도 교인들이 모이곤 하였다(사도 12:12).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45-49년경의 1차 전교여행을 함께 했는데(사도 13:5) 키프로스까지 동행한 후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3).

이에 바울로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교여행 때 동행하기를 거부하자
마르코는 사촌인(골로 4:10)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섬으로 가 전교하였다(사도 15:37-39).

그러나 53-58년경의 3차 전교여행 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울로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골로 4:10, 필레 1:24).
한편 바울로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을 때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다(2디모 4:11).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나의 아들’(1베드 5:13)이라 여겨질 정도로 친근한 동료였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 마르코는 대개 복음서를 지니고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사자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르 1:3)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는데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의 울음으로 비유하였다.
날개는 네 개 달린 ’생물체’에 관한 에제키엘의 환시를 네 복음사가에 적용시켜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역임하였고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축일은 4월 25일이며 9세기이래 지내오고 있다.(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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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의 조카였다.
사도 성 바울로의 첫번째 선교 여행에 동행했고 나중에 그를 따라 로마에 갔다.
성 베드로의 제자로서 자신의 복음서에다 그의 가르침을 반영시켰다.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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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 주교의 저서 [이단자를 거슬러] 에서
(Lib. 1,10,1-3: PG 7,550-554)

진리의 전파

땅 극변에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교회가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신 성령에 관한 신앙입니다.
성령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드러내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사랑하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림하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며, 수난받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며, 육신으로 승천하시고,
또한 하늘로부터 성부의 영광속에 다시 오시며, 만물을 일치시키시고 모든 인간 육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이시요 하느님이시며
우리 구세주이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은 모든 이 위에 정의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어받은 이 가르침과 이 신앙을 충실히 간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만 같은 한 집안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온 교회는 마치 한 영혼과 한 마음만을 지니고 있듯 이것을 믿고,
또한 흡사 하나의 입만을 가지고 있듯 일치된 목소리로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또 전수해 줍니다.
세상의 언어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신앙을 전달하는 전승의 활력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독일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이 믿고 또 전수하는 것과 스페인이나 켈트 지방이나 동방의 교회들이나
에집트나 리비아의 교회들이나 세계 중심의 교회들이 믿고 전수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태양이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처럼 진리의 선포도
세상 어디에서나 빛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웅변을 지닌 사람도 이것과 다른 어떤 것을 말해서는 안되고
(누구도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전승의 효력을 감소시켜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불리지 말아야 하고 또 이야기를 적게 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것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가톨릭홈에서)

*성 바르나바 사도 축일:6월11일.
*성 이네네오 주교 순교자 축일:6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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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rk the Evangelist-GHIRLANDAIO, Domenico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네 복음서를 집필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작품만 내놓았습니다.
요즘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작품의 내용이 중요했지 지은 자신의 이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사실과는 다른 수많은 복음서들이 생겨나자 가짜 복음서들을 배격하고 참 복음서들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과
복음서들을 서로 구별할 필요성이 생겨서 비로소 누가 복음서들을 지었는지, 곧 복음서의 필자들을 거론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복음서를 집필하였는지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소아시아 지방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였습니다.
그는 130년 경에 사망했는데, 평소에 요한 원로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했습니다.
즉,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느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 마르코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성서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 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곤 하였습니다.(사도 12, 12)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를 안티오키아로 데려갔다가(사도 12, 25) 45-49년경의 바오로의 1차 전도여행을 함께 했는데(사도 13, 5)
마르코는 도중에 전도를 그만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사도 13, 13)
이에 바오로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도 여행 때에는 함께 가지 않자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가 전도를 하게 됩니다.(사도 15, 37-39)
그러나 53-58년 경 3차 전도 여행,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오로 곁에 있었습니다.(필레 24; 골로 4, 10)
그런가 하면 바오로가 순교한 다음 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쓴 디모테오서 4장 11절에서는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끝으로 60년대 초 로마에서 집필된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 5장 13절에는 마르코가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증언과 파피아스의 말을 근거로 하면 바오로의 협조자며 베드로의 통역이었던 마르코가 마르코복음을 집필했다는 통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필자는 바오로나 베드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듯합니다.
왜냐하면 마르코 복음서에는 바오로 특유의 낱말 소재 사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또 마르코 복음서에 수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50년대 아니면 60년대에 편찬된 예수 어록의 말씀보다 많이 변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마르코가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마르코 복음서에 수록된 치유와 구마의 기적 이야기나 논쟁 혹은 담화의 이야기 역시 목격자 베드로가 전한 이야기라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사화들은 대부분 그리이스의 이야기 양식을 따라 역어져 있는데 이는 오랜 전승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마르코가 마르코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누가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밝힐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거룩한 전승에 따라 마르코가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기존의 여러 그리스도교 전승을 충실히 수집하고 통합하여
복음서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안한 탁월한 신학사상가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진정한 면모를 모든 사람들 특히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준
사도 바오로의 뒤를 이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축일은 축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르코’라는 한 인물에 대한 축일이 아니라,
마르코복음을 저술한 복음사가의 업적과 덕을 기리는 축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꼭 글로써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달란트를 이용하여 삶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여야 하겠습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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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는 ’비추이다’란 뜻이다.
마르코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신약 성서에 직접 의거한 것이다.
그는 보통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나오는 마르코와 동일시된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는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첫번째 전교 여행에 그를 데리고 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르코 혼자 예루살메으로 돌아왔다.
바오로가 바르나바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의 전교 여행에 마르코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마르코가 바오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중에 바오로는 마르코에게 감옥으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청했다. 따라서 그들의 불화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은 것 같다.

4복음서 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짧은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파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음을 강조한다.
아마도 로마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을 위해 기원 60년과 70년사이, 베드로와 바오로가 죽은 다음에 씌어졌다.
이 복음서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베드로는 마르코를 ’나의 아들’이라 불렀다) 고유한 인물이고
다른 등장 인물은 대부분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들)와 안티오키아 교회 (대부분이 이방인들)사람들이다.

마르코는 다른 복음 사가인 루가처럼 12사도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체포를 이야기 할 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르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첫번째 주교였다고 한다.
성마르코 광장으로 유명한 베니스는 마르코가 그곳의 수호 성인이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웅장한 대성당은 그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 진다.

날개 달린 사자는 마르코의 상징이다.
사자는 마르코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르1,3)로 세례자 요한을 묘사한 데서 나왔다.
예술가들이 이 소리를 포효하는 사자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날개는 에제키엘이 날개 달린 네 마리 생물을 환시로 본 것을 복음 사가들에게 적용시킨데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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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는 일생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소명,
즉 구원의 원천인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특별히 마르코의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이나 연극,시 또는 가족들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침으로써 복음을 선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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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에는 다른 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은 별로 없다.
고유한 구절이 넷 있는데 그 구절 가운데 하나는 다음의 것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마르 4,26-29)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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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with the Four Evangelists-BARTOLOMEO, Fra
Wood.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요한 마르코라고도 불리우는(사도 12,12.25;15,37) 마르코 사가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 예루살렘의 가정 출신인데,
그는 초대교인들에게 자신의 집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 장본인이다(사도2,12-16).

이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제공되어 최후의 만찬이 이 집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마르코는 성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 동반했었는데(사도 12,25;13,5) 바오로 사도의 정열적인 활동에 별로 합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오는데(사도 13,13)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마르코에 대한 의견차로 격심한 토론을 하였다(사도 15,39-40).
마르코는 후에 베드로를 로마에 동반하여 베드로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를 돌보았으며(골로 4,10)
후에는 또 다시 바오로를 섬기며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그의 뒷바라지를 하였다(2디모 4,11).

마르코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
오늘날 세상에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데 그 질문이란 "그는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마르코에 의한 복음은 아주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쓰여진 것이다.
병자를 치유하며(1,31), 용서를 베풀고(2,10), 악령들을 쫓아내시던 당당한 모습(1,24-11.23;5,7)과
사람들이 그분을 조롱하며 (5,40;6,2;15,29-32)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하는(3,6;12,13;14,1) 아주 대조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이러한 대립은 제자들 사이에서도(4,13) 예수님의 가정 안에서도 있었음을(3,20-35)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는 이러한 대립들을 부활의 신비로써(16장)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며 (8,31;9,31;10,33),
이런 대립은 모든 크리스찬에게 또 다시 반복됨을 역설한다(8,34;9,35;10,24-39).
수치를 당하고 증오를 받았으며, 고통받다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메시아를 보여주는 이 복음은
결국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는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가능케 한다.

마르코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에 대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복음 사가이다.
그리스도를 팔아버리는 것과 형제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들의 최후의 만찬인 성체성사 후에 우리도 수없이 범하게 되는 배반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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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ngelist Mark-DONATELLO
1428-43.Polychrome stucco, diameter:215cm.
Old Sacristy,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사도행전 (12, 6-18)에 의하면 헤로데 아그리파 왕의 박해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성 베드로는
어느 날 밤 두 천사의 힘으로 기묘하게 옥에서 구출된 후 마르코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머무르다가 원수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로마로 출발했다.
여기서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은 복음 사가(史家)로서 유명한 성 마르코이다.
성 베드로, 성 바오로가 각각 시몬과 사울이라는 유다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마르코도 유다식으로 요한이라고 불렸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성서에 예루살렘의 예비 신자들이 주로 그녀의 집에 모여
기도와 마사 참여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앙심이 깊은 신자로 아마 넓은 저택을 갖고 있던 부유한 과부였던 것 같다.
그런 그녀의 아들인 요한 마르코는 어머니의 훌륭한 표양과 훈육을 받아 경건하고도 독실한 청년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 강림날에 성 베드로에게 영세한 3천명의 신자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베드로는 마르코를 유난히 아꼈다.
이는 대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끈머리에 그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마르코는 사도적 정신의 열정으로 보아도 성 베드로의 아들이라 불리울 가치가 있었다.
처음 그는 성 바르나바와 같이 성 바오로를 따라 제1차 전도 여행을 떠났으나, 도중에 어떤 사정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곧 다시 바르나바와 같이 키프로스 섬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

그 후 마르코는 로마에 가서 성 베드로를 도와 교회의 발전에 진력했다.
그가 신자들의 희망에 의해 성 베드로의 설교를 자료 삼아 간단 명료하고 강력한 필치로써 복음서를 저술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주님의 공생활 3년동안 밤낮으로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친히 거룩한 감화와 교육을 받은 성 베드로가
사랑하는 주님을 사모하는 줄거리는 마르코의 소박한 필적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복음서야말로 세상 끝나는 날까지 불멸의 빛을 발하는 대 금자탑의 하나로서 필자 마르코의 공적도 영구히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양위 사도가 순교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그곳의 주교로서
은사 성 베드로의 정신을 따라 사람들을 인도하며 교회를 상당히 발전시키던 중에 그도 동양에서 자기 피로써 성스러운 신앙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부임한지 불과 10년도 못되어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 의인들은 그를 체포하여 목에 줄을 매어 읍내를 돌게 하고 마침내 참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순교의 최후에도 성 베드로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지금 두 성인은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계실 것이다.
성 마르코의 유해는 후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옮겨져, 유명한 성 마르코 대 성당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서양 각국에서는 성 마르코 축일에 풍년 기원제를 행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오래된 행사로
그의 시초는 이교인들이 서리(霜)의 신에게 오곡 성숙을 기원하는 제사에 대항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적 행사이다.
그 뒤 잠시 중지되었으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치하에 부활되었고 날이 갈수록 발전되어 오늘에 이른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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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극복한 마르코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가 아들과 같이 아끼는 제자였다.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식 이름과 희랍어 이름을 동시에 갖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열심한 믿음을 지녔던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베드로 사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또한 마르코는 희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의 통역사로 전교의 일선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 사도가 청중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에 관해 자연스럽게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주님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내용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였다.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산실이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예배모임의 장소로 기꺼이 봉헌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신도들이 모임의 장소, 즉 교회로 사용할 수 있게 했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이런 신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영향을 받은 마르코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신심을 본받았을 것이다.

마르코의 집에서 주님의 제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임과 예배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마르코는 자연히 사도들과도 잘 알게 되었고, 세례를 베푼 베드로 사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단적인 예로 헤로데에 의해 감옥에 붙잡힌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제일 먼저 찾은 집이 바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베드로가 마르코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여종이 나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 반가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베드로 사도께서 문 앞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신도들은 여종의 말을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 하니? 야, 너 미쳤구나!”

그러나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다. 정말 베드로 사도가 거짓말처럼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베드로 사도는 “쉿, 조용히들 하시오.
내가 감옥에서 천사들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게 된 경위를 다 말하리라. 어서들 들어가십시다.”하면서 그간의 경위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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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어머니의 집은 대문을 지키는 여종이 있었던 재산이 많은 큰 주택이었던 것 같다.
또한 남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과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르코는 유명한 바르나바 사도와는 사촌지간이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 유대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예루살렘에 구호를 위해 바르나바 사도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올라온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사도 바오로는 마르코를 만나게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대뜸 마르코의 됨됨이와 능력을 보고 자신들과 함께 같이 일할 것을 권고했다.

“마르코, 우리 같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이 떠나세”
“저는 모든 게 아직 부족한 사람인데요.…”
“이 사람 겸손하기는 아무 말 말고 함께 떠나세.”

두 사도는 예루살렘을 떠날 때 마르코를 데리고 갔다.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함께 얼마동안 동고동락하며 전도 활동을 했다.
바오로 일행이 바포에서 배를 타고 밤필리아 지방 베르게로 건너갔을 때였다. 마르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선생님, 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제 전도여행이 시작인데…”

마르코는 만류하는 바오로 사도와 헤어져 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오로 사도는 몹시 실망했다. 그만큼 마르코에게 기대가 컸던 탓이었다.
부유한 생활을 했던 마르코가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따라 따라나섰지만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베르게에서 시작되는 전도여행 앞에는 홍수 등 자연적인 재해, 유대인의 박해, 풍토병, 강도의 위험 등이 바오로 사도 일행을 괴롭혔다.
결국 두려움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 마르코는 일행에서 혼자 빠져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마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용기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참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마르코는 얼마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주님의 복음 전파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베드로 사도의 통역을 맡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마르코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마침내 초대교회에서 전승을 모아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해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귀한 복음을 전해주었다.
마르코에게 있어서 신앙의 길은 좌절과 낙담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후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인 것이다.
(허영엽 신부.평화신문 65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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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의 서두에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함께
그리스도의 품위와 장중함을 강조했으므로 사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서 제일 먼저 쓰여진 것으로, 공관복음서의 모체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행적을 위주로 한 이 책은
세련되지 못한 문장과 어휘로 짜임새가 허술해 보이나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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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독자
마르코 복음서는 베드로의 통역관인 요한 마르코가 기술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마르코는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사도행전 12, 12),
바오로의 1차 전도여행의 동반자로 키프로스섬에 함께 가서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고, 바오로가 에페소 감옥에 갇혔을 때 돌보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르코는 유다인들의 풍습을 잘 알고 있으며,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해외 문물을 익힌 유다계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고,
또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난 이방인과 온 인류의 구원을 주장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르코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두둔하는 입장으로 복음서를 집필했기 때문에 이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이방인에 대한 필자의 특별한 관심이 나타납니다.

집필 장소 및 연대
마르코 복음서의 집필 연대와 장소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되 일반적으로 그 장소는 로마로 여기나, 오늘날 신학계에서 팔레스티나 밖으로도 보고 있으며,
집필연대는 필자가 예루살렘 함락(주 후 70 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70 년 경에 집필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신학적 특징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는, 1 장 1 절의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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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바오로의 선교 여행과 관련하여 여러 번 성서에 등장한 성 마르코는 오랫동안 마르코 복음의 저자로도 여겨졌지만,
역사비평학자들은 그가 마르코 복음사가와 동일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예수님이 가르치시던 당시에는 아마 10대 소년이었을 것이다.
성서에 쓰인 이야기들은 너무 옛날 일이어서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의 행적이 몇 천년 동안 전달되어 왔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10여 년이 흐른 뒤인 46년경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첫 번째 선교 여행에 동행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코는 바오로와 다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마르코와 바오로는 그 후로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2차 선교 여행부터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르코와 바오로는 화해를 했던 것 같다.
마르코는 왜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까?
바오로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화를 냈을까?
이런 질문들도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화해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누가 먼저 화해를 청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화해하도록 만들었을까?
누군가와 반목하고 있다면 성 마르코와 성 바오로의 경우를 기억하자.
진정 화해를 원한다면 누가 먼저 화해를 청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용서하는 것이 어려운가, 용서를 청하는 것이 어려운가?
용서받기 바라는 만큼 기꺼이 남을 용서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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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다가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두 사도는 최고 의회에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다.'며 담대하게 증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의 일곱 제자에게 다시 나타나신다. 고기를 잡지 못해 애태우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그물을 던져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게 되자 주님이심을 알아보았다(복음).
제1독서
  •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안에 친히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행하시어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복음
  •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말씀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족한 제 영혼을 다스리시어
        매순간 말씀 안에서 살아 숨쉬며
        복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들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신한 채 절망 속에 슬피 우는 베드로의 모습(마태 26,69-75 참조)이 아직 생생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무덤이 비었으며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인의 말에 어리둥절한 채 달려가 조심스레 무덤 속을 살펴보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았습니다(요한 20,2-10 참조). 아직 그에게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변화의 표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활 팔일 축제 동안 우리가 듣는 「사도행전」의 장면들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완전히 변모된 사람입니다. 그의 오순절 설교나 성전에서 가진 설교의 열정과 확신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부활의 빛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성령에 가득 찬 사도의 모습이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그의 설교의 결과를 성경은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믿었다고 보고하면서(사도 4,4 참조), 이것이 사람의 언변만의 힘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 보듯이, 최고 의회에서조차 성령에 가득 차 확신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그의 모습은 대사제와 사두가이들 같은 최고위층 사람들마저도 놀라게 합니다. 그는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으며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지금 그는 사람에게서 올 수 없는 '담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담대함'이라는 말은 참으로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만이 지니고 있는 거침없음과 자유로움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한나스와 카야파 대사제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 '무식하고 평범한' 이에게서 위대한 예언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영의 힘을 감지하면서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사도 4,13 참조).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모습은 그의 이러한 극적인 변모에 어떤 과정이 숨어 있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베드로는 배 위에서 예수님을 알아 뵙고는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습니다. 이를 우리는 정화와 치유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허약함이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 속에서 정화되고 치유될 때 인간적으로는 죄 많고 약점투성이인 우리도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의 놀라운 도구로 변모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늘도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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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서 제일 먼저 쓰여진 것으로,
공관복음서의 모체가 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성마르코 복음사가이시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교황님 한국방문때 나주에 꼭 방문해주시길 청하며
나주성모님 눈물흘리신기념 30주년의 성공을 위하여
나주를 전파하는 모든분들과 전파의 활성화를 위하여,
율리아님의 건강회복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을 위하여
죄인들의회개와 한국교회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하여
냉담자들, 잠자고있는 영혼들, 모두 깨어주시기를 청하며
모든 가정, 자녀들의 성화와 보호를 위하여
나주를 반대하고 박해하는 이들의 회개를 위하여~
저희순례자들의 영적성화와 나주의5대영성 실천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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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마르코 복음사가이시여!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과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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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들이님의 댓글

빛나들이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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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성 마르코 복음 사가시여!! 율리아님의 영육간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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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님의 댓글

피난처 작성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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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사랑님의 댓글

영적인사랑 작성일

아~멘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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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겸손님의 댓글

사랑과겸손 작성일

성마르코 복음사가이시여! 사랑합니다.

나주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해,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 지향이 그대로 이루어 지도록 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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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님의 댓글

길동이 작성일

아멘.

성마르코 복음사가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안전과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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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이시여!

@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세계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마다 꼭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성체사랑님, 수고하셨습니다.
은총의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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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닮은아기님의 댓글

엄마닮은아기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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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여명님의 댓글

새로운여명 작성일

아멘+++♡♡♡

감 사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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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환호성님의 댓글

NJ환호성 작성일

성마르코 복음사가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 안전과 영육간의 건강과
기도지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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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이시여~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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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시여!
한국 나주에 친히 오신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그리고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뤄지도록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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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이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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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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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샘님의 댓글

위로의샘 작성일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이시여!

나주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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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베드로님의 댓글

유베드로 작성일

성체사랑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은총 많이 받으세요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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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님의 댓글

한처음 작성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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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비님의 댓글

장미꽃비 작성일

고마와요~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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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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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함께님의 댓글

주님함께 작성일

성 마르크 복음사가여 !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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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님의 댓글

야고보 작성일

아멘!
성체사랑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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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의 댓글

장미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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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마르코복음사가시여!!나주성모님 인준을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성 마르코시여!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함께빌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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