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운영진글

율리아님말씀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기도봉헌란

영광의자비의예수님

 

사랑의메시지

나주성지바로알기

나주의진실

나주 동영상

은총증언

 

 

 

 

☆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성체사랑
댓글 18건 조회 6,239회 작성일 11-07-11 10:09

본문

0711St%20Benedict%20(detail%20of%20Crucifixion).ANGELICO,%20Fra.1441-42.Fresco,%20550%20x%20950%20cm%20(full%20fresco).Convento%20di%20San%20Marco,%20Florence.jpg

 

St Benedict (detail of Crucifixion)-ANGELICO, Fra.

1441-42.Fresco, 550 x 950 cm (full fresco).Convento di San Marco, Florence.

 

 

축일;7월 11일

성베네딕토 아빠스

St. Benedictus, fundator O.S.B

San Benedetto da Norcia Abate, patrono d'Europa
(Norcia (Perugia), ca. 480 - Montecassino (Frosinone), 21 marzo 543/560 )
Born:c.480, Narsia, Umbria, Italy
Died:21 March 547 of a fever while in prayer at Monte Cassino, Italy;
buried in the same tomb as Scholastica
Name Meaning :blessed (= benedict)
Benedetto = che augura il bene, dal latino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5.jpg


 

성 베네딕도(480-560년경)는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진실로 하느님을 찾고자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비아꼬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생활을 한 후,

몬떼까시노에 수도원을 세우고, 거기서 수도규칙서(Regula Benedicti : RB)를 저술하였다.

이 규칙서는 이후 서방 수도승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1%2Ejpg

 

성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수학하던 중 도시생활의 혼란과 방종에 환멸을 느끼고 광야로 갔던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이다.

성인은 처음에 엔피데로 가서 은수생활을 시작하다가 수비야코에 정착했는데 그

는 3년 동안을 동굴에서 지내면서 로마누스라는 또다른 은수자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면서부터 비코바로의 수도자 공동체의 원장으로 초대되었지만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려 함으로 수비야코로 돌아왔다.

 

그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므로써 수비야코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로 변하였다.

베네딕도는 525년경에 몬테 카시노에 정착함으로써 이곳을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게 만든 것이다.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와 같은 무덤에 묻히기 까지 거기서 살았다고 합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2월10일.게시판944번.1609번

 

성베네딕도.몬떼까시노%20대수도원.jpg

             몬데 카시노 대수도원

 

이즈음에 그는 단일 수도원 공동체를 조직화하고,

올바른 금욕생활과 기도, 공부, 일, 원장의 역할을 규정하는 유명한 회칙을 기술하였다.

이 규칙서는 순종과 정주생활 그리고 신심을 크게 강조했으며,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성무일과를 안배하였다.

이것이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기초가 된 것이다.

 

한편 베네딕도는 국왕과 교황의 고문역을 담당했으며, 폐허화된 롬바르디를 재건하는데 헌신하던 중에

547년 3월 21일 몬테 카시노에서 선종한 것이다.

성 베네딕도는 서품을 받지는 않았으며, 그의 "수도규칙"은 외곬이고 침착 정직한 성품을 보여 줍니다.

 

8세기 말 부터 여러 지방에서는 7월 11일에 그 축일을 기념해 왔다.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인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는데

그의 문장은 깨어진 컵, 까마귀, 종 그리고 아빠스 문장과 숲이다.

 

0711Saint%20Benedict.PERUGINO,%20Pietro.1495-98.Panel.Pinacoteca,%20Vatican.jpg

 

Saint Benedict- PERUGINO, Pietro.

1495-98.Panel.Pinacoteca, Vatican.

 

 

 

 

1267.019라인.gif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2.jpg

 

베네딕도회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congregations)의 연합체(confederation)를 말한다.

그 종류로는 솔렘 연합회, 수비아꼬 연합회, 몬떼까시노 연합회, 오딜리아 연합회, 올리베따노 연합회,

까말돌리 연합회, 실베스트로 연합회, 발룸브로사 연합회 등이 있다.

* 시토회와 엄률시토회(트라피스트)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따르지만 베네딕도회에는 속하지 않는다.

 

 

성 베네딕도의 메달(The medal of St.Benedict)

 

성 베네딕도 탄생 1400, 150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수도원에서 다양한 모양의 메달이 만들어졌다.

이 메달은 1880년 몬떼까시노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0711베네딕도패앞면.gif

 

베네딕도 패 앞면  

 

성인이 오른손에는 십자가를 그 아래 독배, 그리고 왼손에는 성규를 들고 있다.

성인의 좌우에는 "CRUX SANCTI PATRIS BENEDICTI" (사부 성 베네딕도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성인의 발 아래에는 "EX S M CASSINO MDCCCLXXX" (1880년 거룩한 까시노 산에서)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Ejus in obitu nostro presentia muniamur"

(우리 임종때에 성 베네딕도께서 함께 하시어 보호하소서)라고 되어 있다.

성인은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일어서서 기도하시면서 선종하셨다.

 

0711베네딕도패뒷면.gif

 

베네딕도 패 뒷면  

 

십자가 안에 수직으로 "CSSML = CRUX SACRA SIT MIHI LUX"

 (거룩한 십자가가 나의 빛이 되소서)라는 기도가 새겨져 있고,

수평으로는 "NDSMD = NON DRACO SIT MIHI DUX"

(악마가 나의 인도자 되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의 네 모서리에는 "CSPB = CRUX SANCTI PATRIS BENEDICTI"

(사부 성베네딕도의 십자가)라고 되어있다.

십자가 위에는 "PAX"( 평화)라는 모든 베네딕도회의 모토가 새겨져 있다.

 

가장 오른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왼쪽 아래에서 위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 있다.

"VRSNSMV : SMQLIVB

= Vade Retro Satana Numquam Suade Mihi Vana : Sunt Mala Quae Libas Ipse Venena Bibas."

(사탄아 물러가라. 헛된 생각을 하게 하지 말고 네가 마시는 것은 악이니 네 독이나 마셔라)

성 베네딕도의 "십자가 메달"은 빠스카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하게 십자가의 구원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코이노니아 제 9집. 한국 베네딕도수도회 연합. 1984년 겨울호.118쪽 참조)

 

0711베네딕도성인의십자가.gif

 

베네딕도 성인의 십자가

CSPB = CRUX SANCTI PATRIS BENEDICTI" (사부 성베네딕도의 십자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홈에서 www.osb.or.kr)

 

 

0711bened2.jpg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11.jpg

 

 

1267.019라인.gif

 

 

 

성 베네딕도 아빠스의 [수도 규칙]에서

(Prologus, 4-22; cap. 72,1-12 CSEL 72,2-5.162-163)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다

 

우선 무슨 선행을 시작하든지 그것을 마치기 위해 주님께 간절한 기도로써 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악행 때문에 한 번이라도 상심하시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진 선에 따라 그분을 섬겨,

아버지께 서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에게서 상속권을 박탈할 뿐 아니라

우리 악행때문에 격분한 무서운 주인으로서 당신 영광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극악한 종들에게

영벌을 주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하신 성서의 말씀에 자극을 받아 일어나도록 하자.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주의를 다하여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니,

"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하시고,

’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성신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신 바를 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면(성신께서) 무엇을 말씀하신는가?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듣거라.

주님의 두려우심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너희는 빛이 있는 동안에 달려, 죽음의 암흑이 너희를 덮치지 않도록 하여라."

 

주께서 이 말씀을 백성의 무리에게 외치시고 그들 가운데서 당신 일꾼을 찾으시며,

"생명을 원하고 좋은 날들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말씀하신다.

만일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저로소이다." 라고 대답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만일 네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거든,

네 혀는 악을 피하고 네 입술은 거짓된 말들을 삼가라.

사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이대로 행한다면 내 눈은 너희를 바라보고 내 귀는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며,

"너희가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있노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아,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보다 우리에게 더 반가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보라, 주께서 당신 자애로써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신앙과 선행의 실천으로 허리를 묶고 복음 성서의 인도함을 따라 주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우리를 당신 나라로 부르시는 주님을 뵈옵도록 하자.

만일 우리가 그분 나라의 장막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선행으로 달리지 않고는

결코 그 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지옥으로 이끄는 쓰고 나쁜 열정이 있듯이,

악습에서 분리시켜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좋은 열정도 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복종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 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 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가톨릭홈에서)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6.jpg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10.jpg

 

San Benedetto da Norcia Abate

 

 

1267.019라인.gif

 

베네딕토는 '좋게 말한' 또는 '축복된'이란 뜻이다.

현대 전기 문학이 서구의 수도원 제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에 대해서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베네딕토에 대한 이야기는 성그레고리오의 ’대화집’에 나오지만

그것은 그의 일생이 갖는 기적적인 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윤곽일 뿐이다.

그는 중부 이탈리아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공부했으며, 일찍이 수도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 그는 타락한 세상을 떠나 은수자가 되었다.

행진하는 이교도 군대들,분열된 교리,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고,도덕은 타락했던 것이다.

그는 대도시보다도 조그마한 마을에 숨어 사는 생활에 휠씬 만족했으나

더 이상 거기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3년 동안 산꼭대기에 있는 동굴속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몇 명의 수사들이 얼마 동안 그를 지도자로 모셨으나,

그의 엄격함이 자신들의 생활 양식과는 맞지 않음을 알았다.

 

베네딕토는 자기의 생활을 지금까지의 은둔 생활에서 공동 생활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는 수사들에게 일치,형제애,계속되는 전례 생활을 통한 은혜등을 주기 위해

하나의 ’대수도원’에 여러단체의 수사들을 모으기로 했다.

마침내 그는 3개의 좁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 규칙을 썼다.

점차로 발전된 규칙은 전례를 통한 기도 생활,공부,육체 노동 그리고 한 사람의 대수도원장 아래서

공동 생활을 할 것을 명시했다.

베네딕토의 금욕주의는 절제로,자선행위는 인근 시골 주민들에 대한 관심으로 항상 드러났다.

 

중세 서구의 모든 수도원 제도는 점차로 성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게 되어

그를 ’서방 수도 생활의 스승’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 베네딕토 수도회는 베네딕토회 본원을 비롯하여 시토 수도회등 열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베네딕토의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의 축일은 2월 10일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2월10일.

 

0711성베네딕도.jpg

 

교회는 베네딕토회의 풍부하고 적절한 예절로 구성된 실제적인 전례에서뿐 아니라,

수많은 회원들의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서, 또한 그들의 미사 봉헌을 통해서 축복을 받고 있다.


전례는 때때로 기타,기구,라틴 음악이나 바흐의 성음악 등으로 봉헌되어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우리는 교회내에 전통적인 전례 관습을 적용시키고 이를 보존케 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2%2Ejpg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느낄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 의식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성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를 보더라도 성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와 같은 자리와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7항)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0711St%20Benedict.MINIATURIST,%20Bohemian,1420.Vellum,%2015,5%20x%2016,1%20cm.Museum%20of%20Fine%20Arts,%20Budapest.jpg

 

St Benedict - MINIATURIST, Bohemian,

1420.Vellum, 15,5 x 16,1 cm.Museum of Fine Arts, Budapest

 

 

1267.019라인.gif

 

 

 

대 성인 베네딕토는 처음으로 수도회 규칙에 공동생활에 관한 규칙에 공동 생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은 그를 수도회의 시조(始祖)라고 일컫는다.

이보다 먼저 성 안토니오가 이미 이집트에서 도처에 산재해 있는 독수자, 은수자들을 모아

공동수도 생활을 행한 예는 있지만 그때는 아직 규칙을 명문(明文)으로 기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이집트의 성안토니오아빠스축일:1월17일,

그 뒤 수도자들의 생활에는 이완 타락(弛緩墮落)의 징조가 보여 이를 한탄한 베네딕토가

일반 수도 생활을 혁신 할 만한 기초가 되는 규율을 편성하여 친히 베네딕토 수도회를 설립하고

모범을 보여주었다.

물론 대 사명을 완수하는데 있어서 그의 천부적 재주와 수완도 있었거니와

그에 대한 특별한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3%2Ejpg

 

그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의 농촌도시 누르시아(Nursia)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수도 로마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로마는 교회 본부의 소재지도 되고 학문의 중시지도 되었으므로 위인, 수재들이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한 베네딕토는 희망을 담뿍 지니고 그곳에 갔지만 얼마 안 되어

일찍이 환멸(幻滅)의 비애를 맛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학생간에 나태, 향락의 기풍이 만연했고 그의 일상 생활에 얼굴을 찡그릴만한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곳은 군자가 있을 데가 아니라 생각하고 다시 엔피데로 옮겼다.

 

그곳에는 소수의 열심한 사제들이 경건한 공동생활을 하고 있어 그도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기도로 기적이 일어나 잠깐 사이에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었다.

 

성베네딕도1.jpg

 

겸손한 그는 이를 고통으로 여기며 남몰래 수비야코의 산중으로 들어가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소재지를 안 사람은 로마노(Romanus) 수사뿐이었는데 그는 가끔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빵 중에서

얼마를 떼어 갖다드리고는 했다. 베네딕토는 이런 고마운 빵을 먹고 살며 오로지 기도와 묵상에 골몰했다.

 

베네딕토는 악마의 유혹으로 아주 심한 정결에 관한 유혹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옷을벗고 가시덤불에 뛰어들어가 이곳 저곳을 뒹굴어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됨으로써

간신히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었고 그 뒤 다시는 그러한 유혹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베네딕도는 이와 같은 은수 생활을 3년간 계속 했다.

원체 인기척이 없는 산중이었으므로 그간 거룩한 예식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고 성사를 받을 사이도 없었다.

온전히 고독속에서 명상만을 하며 날을 보냈다.

 그러다 그는 자기 하나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수도자의 최선의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그 뒤부터는 천진난만한 목동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그의 명성을 전해 듣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점차 모여와서 지도를 바라자

그러 형제들을 위해 하나의 수도원을 세우고 그들의 원장이 되었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ubiaco%282%29%2Ejpg

 

 Subiaco.

 

 

어느 날, 부근에 있었던 비코바로 수도원의 원장이 서거했다 ,

그러자 그 수도원의 수사들이 덕망인 높은 성인을 찾아와 후임 원장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베네딕토는 그들의 간청에 못 이겨 마침내 수락했지만 아쉽게도

그 수도원은 규율이 문란하고 퇴폐의 기운이 농후했으므로 그는 철저히 개혁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엄격함이 타락에 젖은 수사들에게는 맞지 않았는지 그들은 새 원장을 싫어하게 되었지만

자기네들이 모셔온 이상 공공연하게 배척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터무니없이 성인을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며

점심 식사 때 포도주에 독약을 섞어서 이를 권했다.

 

베네딕토는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전례대로 십자가 표시를 하니

즉각 그 잔은 돌에 얻어맞은 것 처럼 깨져 버렸으므로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그들의 무모함을 한탄하면서 그 날로 그 수도원을 떠나 수비야코에 돌아왔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6%2Ejpg

 

수비야코의 수도원은 날로 번성해져 수도자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아래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일부로서 노동을 실시했고, 수비야코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인근의 사제이던 플로렌시오가 자신의 활동을 트집잡자,

갑자기 그곳을 떠나 525년 경에 남쪽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에 당도해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계속 하려고 생각했다.

 

몬테 카시노 인근의 토민들은 우상교를 신봉하고 그 산 위에서도 우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베네딕토는 아폴로에게 헌정된 이방인 신전을 파괴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성 요한 세례자의 성당과 성 마르티노(Martinus)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다.

이곳은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 베네덱토 수도회의 충본부다.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3.jpg 성베네딕도.bmp

 

몬테 카시노의 수도원에는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수없이 퍼져나가

또다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올바른 금욕생활, 기도, 공부

그리고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저 유명한 규칙을 썼는데, 이것이 널리 알려져

그는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규칙은 처음에도 말한 바와 같이 공동생활을 명백히 규정하고,

순명을 최대의 덕으로 삼고, 재산의 사유(私有)를 금지하고,

일평생 한 수도원에 머무를 것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를 것을 명하고 특히 전례를 중요시하여

수도 생활의 중심으로 성무일과를 안배했다.

이것이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것이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5%2Ejpg

 

그는 순명을 최대의 덕으로 삼으며 중요시했는데,

그가 얼마나 순명의 덕을 존중했는가는 다음의 예로써 능히 알 수 있다. 어느 흉년때의 이야기다.

한 사제가 그의 수도원에 와서 기름을 청했다.

성인은 이를 쾌히 승낙했는데 재정 담당 수사가 기름이 조금밖에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주지 않았다.

그 뒤 이 사실을 들은 베네딕토는 그 수사를 불러놓고 "순명의 덕을 파괴하게 한 물건을

이 수도원에 둘 수 없다. 즉각 기름을 그릇과 함께 버려라"하고 엄중히 명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또한 사물의 진상을 알아내는 신비로운 안력(眼力)과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실례는 적지 않다.

고트(Goth)인의 왕 토틸라 도중 성인을 방문하려고

일부러 리트고라는 신하에게 왕의 옷을 입혀 먼저 그를 만나보게 했다.

베네딕토는 왕과 한 번도 대면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리트고를 보자마자

"당신의 의복도 아닌 것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어서 빨리 벗으십시오!"라며 즉각 허위란 것을 간파하고

그 뒤에 온 토틸라에 대해서는 9년 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10년째 죽을 것을 예언하면서

"당신은 참으로 참혹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그러한 것은 빨리 중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하고 훈계했다고 한다.

 

후에 그는 토틸라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로바르드를 재건하는데 정열를 쏟았고  역사 기록을 보면

토틸라는 성인을 뵌 후 자기의 소행을 삼가했다고 하지만 성인의 예언대로 10년째 되던 해에 죽었다고 한다.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4%2Ejpg

 

베네딕토는 남자를 위해 수도원을 세워 규칙을 작성했을 뿐 아니라

여동생 스콜라스티카 및 그의 동료들의 부인들을 위해서도 수도회 규칙을 정해주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오빠보다 먼저 죽었으나 생전에는 서로 도와 완덕의 길을 걸었다.

베네딕토가 수사들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수녀들의 어머니가 되어 다같이 자애로써 그들을 인도했다.

베네딕토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승천했다.

그날 그는 제대 앞에 서서 팔을 벌리고 기도하면서 선종했다고 한다.

 

여러 지방에서는 8세기말 부터 7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해 왔으며,

교황 바오로 6세가 1964년 10월 24일에 유럽의 수호 성인으로 선언했다.

 

베네딕토 회원은 고대 미술문화에 크게 공헌했는데,

어느 학자는 "세상 어떠한 국민이나 귀족도 성 베네딕토의 제자보다 더 우수하게 미술문화를 위해

진력한 자는 없다."라고 극구 찬양하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711San+Benedetto7%2Ejpg

 

"장화를 신은 채 죽었다’라는 말은

원래 총 맞아 죽거나 장화를 벗을 시간도 없이 갑자기 죽은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차츰 끝까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 말대로 성 베네딕토는 성당에서 신발을 신은 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죽었다.

성 베네딕토는 몬테카시노를 비롯한 12개의 수도원을 세우고 회칙을 만들었다.

그의 규칙서는 전 유럽에 걸쳐 많은 수도자들의 지침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성 베네딕토의 규칙서>를 수도회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수도원들이 많다.

 

우리는 늙은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면 건강을 잃게 되고 그러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늙은 후의 일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늙으면 육체적인 노동은 못 할지 모르지만, 영적인 노동은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한다든지, 남을 위해 기도한다든지,

상심한 사람들을 위로한다든지 하는 일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0711bened3.jpg 0711bened4.jpg

0711성베네딕도아빠스.우표.jpg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4.jpg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8.jpg 0711San%20Benedetto%20da%20Norcia%20Abate7.jpg

 
 
 
  •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다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갖고 수비아코 동굴에 들어가 3년 동안 고행과 기도를 하며 은수 생활을 하였다. 성인의 성덕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마침내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성인이 만든 수도 생활 규칙서는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표준 규범서 구실을 할 정도로 수도 생활의 완덕을 실천하는 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인은 547년에 세상을 떠났고, 1966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성인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새 임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으로 불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한다(제1독서). 주님께서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잘라 내고 오로지 주님께만 마음을 바치라는 뜻이다. 참된 평화는 세상에 대한 온갖 집착과 욕망을 잘라 내고 거기서 해방되어야 누릴 수 있다(복음).
제1독서
  • <이스라엘 백성이 더 많아지지 못하게 다루어야겠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8-14.22 그 무렵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마침내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ㅡ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꿋꿋하고 곧다는 뜻입니다. 내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모르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부드럽고 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상대방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있는 칼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 검법(劍法)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려고 갈고 닦는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신앙의 가치를 지키고 영적인 수련을 위해 필요한 내면의 칼입니다. 그 칼로 주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세상에 대한 온갖 집착과 산란한 마음을 단호하게 잘라 내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예수님을 따르는 데 유혹이 된다면 거기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삶 속에서 안주하는 거짓 평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잘라 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라고 하셨습니다. 날카로운 양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는 영적 수련을 하지 않으면, 거짓 평화를 진짜 평화로 착각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평화를 찾을 때까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거짓 평화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신 이유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댓글목록

profile_image

엄마꺼님의 댓글

엄마꺼 작성일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복종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 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 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아멘

성인이 만든 수도 생활 규칙서는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표준 규범서
구실을 할 정도로 수도 생활의 완덕을 실천하는 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아멘

성베네딕도아빠스이시여~!
나주성모님의승리와 인준을 위하여
율리아님의건강과 안전 기도지향이 이루어지도록..
저희 순례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profile_image

♥아기천사님의 댓글

♥아기천사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엄마와함께님의 댓글

엄마와함께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이시여!
저를 포함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모성심의 승리와 나주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 간에 건강하심과 안전 그리고 기도지향마다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주님! 당신께서 주신 평화
안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체사랑님. 오늘도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profile_image

성모님의사랑님의 댓글

성모님의사랑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여!
나주 성모님 빠른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카타리나님의 댓글

카타리나 작성일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아멘!!!

profile_image

생활의기도화님의 댓글

생활의기도화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여!
나주 성모님 빠른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에 건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아기님의 댓글

아기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시여 !

나주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율리아 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아멘 !!!

성체사랑님 항상 감사드려요 ^^

profile_image

어머니망토님의 댓글

어머니망토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시여 !!!

나주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아멘!!!

profile_image

맑은백합님의 댓글

맑은백합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어머니향기님의 댓글

어머니향기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이시여~~~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옹기그릇님의 댓글

옹기그릇 작성일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다." 아멘!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christina님의 댓글

christina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봉헌하시는
기도지향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아멘~!!!
 
 

              비밀글

profile_image

새롭게님의 댓글

새롭게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시고
율리아님의 영육간 건강과 안전 봉헌하시는 모든 기도 지향이
이루어지시도록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빌어 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애인여기님의 댓글

애인여기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나주 성모님의 빠른 인준과
율리아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Liliana님의 댓글

Liliana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시여!
한국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 자매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간절히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피난처님의 댓글

피난처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

나주성모님의 더 빠른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시고
율리아엄마의 건강과안전을 지켜주시오며
교황님의 기도지향이 모두 이루어질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자아포기님의 댓글

자아포기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시여!!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 베네딕토 아빠스 시여!! 율리아자매님의기도지향이 그대로이루어지도록 함께빌어주소서!! 아멘

profile_image

어머니사랑님의 댓글

어머니사랑 작성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시여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마리아의구원방주

주소 : 전남 나주시 나주천 2길 12 (우.58258)
전화 : 061-334-5003 팩스 : 061-332-3372

접속자집계

오늘
1,709
어제
6,009
최대
6,009
전체
3,948,398
Copyright © http://www.najumary.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