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聖體聖事)와 성체신심(聖體信心)에 관한 소고(小考)
1. 성체성사의 진실과 이에 대한 부정이 공존하는 혼란스런 현황
성체성사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한결같은 신앙의 가르침은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에 의해서 미사 중에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는 그 외양은 그대로 있지만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외양에 가려져 계시는 예수님 살과 피는 살아계시는 살과 피이며 따라서 예수님의 영혼과 신성(神性)이 그 육신과 결합되어 계시므로, 성체는 부활하여 살아계신 온전하신 예수님이심이 자명한 결론이 된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하나 된 몸과 피가,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374)
그러나 죤 칼빈을 비롯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교리와는 달리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단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반면 마르틴 루터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존재한다고 하는 2중실체론을 주장하였다. 그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개신교 교파들에서는 그들의 성찬식에서 사용되는 빵과 포도즙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아니고, 상징적인 것임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註: 개신교에서는 12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가톨릭교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분리되었으므로, 개신교 성직자들에게는 성체축성권 및 고해성사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임.)
뿐 아니라, 특히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누린 일부 신학자들이 성체성사의 상징론을 주장하였으며 (독일의 칼 라너 신부(1904-1984), 벨기에의 에드워드 스킬레벡스 신부(1914-2009) 등)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젊은 신부들과 신학생이 많아진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그 영향을 받아 성체성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어 상징론을 따르는 이들이 전체 신자 수의7할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이러한 심각한 신앙의 혼란을 개탄하시며 이로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구해 내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지난 198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의 나주 및 나주와 관련된 곳들에서 14회에 걸쳐서 성체가 윤 율리아 씨의 혀 위에서 살아계신 살과 피의 모양으로 변하는 기적들, 3회에 걸쳐서 성합이나 성광에 모셔진 성체에서 성혈이 흐르는 기적들, 그리고 16회에 걸쳐서 성체가 위로부터 내려오시는 기적들, 도합 33회의 성체관련 기적들을 행하심으로써 성체가 참으로 천주성자이시자 우리의 구속(救贖), 구원을 위하여 강림하시고 수난, 부활하신,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력하게 증거 하여 주셨다.
그러나 성체가 참으로 살아계시며 온전한 예수님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광주대교구의 일부 지도적 사제들은 나주의 성체기적들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완전히 기피하였으며, 1995년 10월 31일 교황청에서의 성체기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판단과 권고를 완전히 무시한 채 1998년 1월 1일 나주의 일들을 부정하는 공지문을 발표하였다.
교황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의 입속에 변화된 성체를 보신 후 강복하시는 모습
그러나 광주대교구에서 나주의 일들을 부정하는 근거로서 내어놓은 것이 나주의 성체기적들이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하는 공지문 상의 선언이었는데, 사실은 나주의 성체기적들이 교회의 정통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주의 공지문에 선언된 교리적 해석이 정통 가톨릭교회의 교리들을 잘못 제시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지면들과 인터넷 싸이트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었으며, 또한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 보고되었음)
공지문 발표 후에 한국의 한 평신도가 어느 몬씨뇰께 “왜 광주대교구에서는 나주의 기적들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여쭈었는데, 몬씨뇰께서는 “나주의 일들이 교리에 어긋남이 드러났는데 구차하게 과학적 조사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하시어, 광주대교구에서 과학적 조사들을 기피한 사실을 정당화하려고 하셨다. 교회의 일부 목자들께서 엄위한 교회의 교리들을 왜곡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가르치심을 어기는 행위이며, 또한 그 오류의 교리 선언으로 기적의 증거물들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기피하는 것은 반드시 공식적으로 밝혀지고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주에서 주님과 성모님께서 지향하시는 일들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시대에 혼란에 빠져 있는 성체성사에 대하여 희석된 믿음과 신심을 바로 잡아주시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33회라고 하는 대단히 많은 수효의 성체기적들을 내려주시어 교회 지도자들과 만민에게 강력한 경고와 아울러 용기를 주시는 것이다. 과거 교회 역사상에 성체기적이 일어났던 유럽의 성지들을 보면, 각 성지에서 한 번씩의 성체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지난 22년 간 나주에서 그토록 여러 차례 성체기적들을 주신 것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체도리에 대하여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흐트러진 일반적인 이해와 이에 따라 약화된 성체신심을 다시 일으켜 주시려는 주님과 성모님의 강력한 원의와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2.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의미
2천 년 전, 천주성자께서 내려오시어 동정녀 마리아께로부터 아기 예수님으로 태어나신 후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그들 앞에 서신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여 내려오신 하느님의 참 아들이시며 또한 하느님과 동일하시며 완전하게 일치되신 분으로 깨닫고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지극히 고귀한 진리의 말씀과 모범을 베푸셨을 뿐 아니라,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심으로써 당신께서 천주성부의 뜻에 따라 인류구원을 위하여 지상에 내려오신 분이심을 거듭 증명하셨으므로 겸손하고 진리와 정의에 마음 문이 열려있는 이들은 그분이 구세주이시며 하느님의 참 아들이심을 어렵지 않게 깨닫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만, 체면, 세속 등에 대한 애착으로 마음이 어두워진 이들은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인간으로만 보였으므로 그분의 온전한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급기야는 그분을 정복자인 로마의 총독과 군인들에게 넘기어 극심한 편태의 고통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으시도록 하고 말았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나 인간들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마치 임금님이 백성들의 진심과 행실을 알기 위하여 허술한 모습으로 저잣거리를 다니시는 것과 비슷하게 인간세계에 오신 천주성자께서도 당신의 무한히 아름답고 거룩하시며 위엄에 찬 모습을 일단 숨기시고 인간들의 속마음을 알아보고자 하셨다. 그리고 그 테스트의 결과는 인간 각자의 영원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주님 오신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테스트는 성체성사와 성모님께 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성체성사에서 주님께서는 외적으로는 당신의 신성과 인성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면병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외양을 지니고 있는 그 성체가 당신의 살아계신 몸과 피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믿음에 기초하여, 아무리 주님의 모습이 면병이나 포도주의 외양에 가리어져 계신다고 할지라도 무한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주님을 올바로 알아보고 전적으로 흠숭과 신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주님께서 면병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 즉 믿음과 겸손, 그리고 주님께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보고자 하시는 것이다.
면병과 포도주의 외양만 보고 성체를 하찮게 여기며 성체성사에 관하여 주님께서 가르치심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화려한 금빛 옷을 입으시고 천사들의 웅장한 옹위를 받으며 오신다면, 주님을 환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들 모두에게 무조건의 상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며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에 이 테스트 기간 중에는 당신의 화려한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가난한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온 마음으로 성체의 주님을 흠숭하고 따르며 항상 성체의 주님과 겸손과 사랑으로 대화하며 일치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이 지상에서부터 이미 주님의 거룩하신 초자연적인 참 모습을 어느 정도 알게 해주시며, 또한 영적인 기쁨과 깨달음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우리가 성체의 주님을 모시고 일치함으로써 주님과 그리고 주님께 속한 천상천하의 모든 백성들과도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며,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뢰와 충성과 찬미와 감사는 더욱 확고해 질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아시기 위하여, 주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시고 함께 고통 받으신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가 친어머니로 모시며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지를 보고 계신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이며 자녀이자 친구라면, 그분의 어머니를 우리의 친어머니로 모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 즉 교회 그리고 천국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가정이며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생명이시므로) 그 가정의 모든 자녀들을 영적으로 낳으시고 돌보아 주시는 어머니이시다.
이 세상에서도 어머니가 빠진 가정은 쓸쓸하고 메마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마리아께서 인간인 예수님의 어머니이시지만, 천주성자, 즉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따로 떨어져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천주성자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천주성자의 한 인격 하에, 즉 한 분으로 일치되어 계신다고 가르치신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인간이신 예수님이 함께 다니시지만, 완전히 한 분으로 일치되어 계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천주성자의 강생 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이다.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자 참 인간이시면서도 천주성자 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성모님을 “하느님의 모친”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천주성자께서 이전에는 안 계시다가, 성모님을 통해서 계시기 시작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이 되셨다는 뜻도 아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처럼 하느님의 피조물이시지만, 무한히 자비로우시며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하느님이시자 인간으로 강생하신 천주성자, 예수님의 참 어머니의 위치에까지 올려주셨으며 또 그에 걸 맞는 모든 성덕과 거룩한 아름다움과 모든 자녀들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심지어는 사탄과 모든 마귀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충분한 힘까지를 주신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기를 주저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수난 공로로 성세 때 하느님께로부터의 상존은총(常存恩寵), 즉 성화은총(聖化恩寵))을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참 자녀들이 되었는데, 하물며 성모님께서 천주성자의 참 모친이시자 우리의 참 모친이 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일 것이다.
3. 신약성서에서의 성체성사에 대한 예고와 설명
요한복음 6장 1절부터 71절 끝까지에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인류에게 주실 가장 큰 선물, 즉 성체성사에 대하여 예고하시고 설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들은 일부의 유대인들은 불평을 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더욱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하며 수군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계속하셨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서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주 심각하고 위기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위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들과 제자들의 반응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a.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말씀의 문자 그대로 알아들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불평을 하며, 결국 예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b. 예수님께서도 그 말씀들을 상징적 의미로 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의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많은 제자들이 떠나갈 때, 그들에게 “너희들이 잘못 이해하였다. 나는 상징적으로 말한 것뿐이므로, 오해하지 말고 돌아오너라.”고 말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c. 그런데 불평을 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마치 소나 양의 살을 칼로 베듯이 베어서 나누어 주시겠다는 식으로 이해를 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육적으로만 이해함으로써 보다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놓치고 있음을 지적하셨다. 우리는 성체가 단순히 주님의 생명이 없는 살덩이와 피가 아니라, 주님의 육신이 영혼과 신성까지 함께 일치된 온전하신 주님이심을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온전하신 주님께로부터 초자연적인 은총이 성체를 정성껏 받아 모시는 이에게로 내려짐을 이해하며 바로 거기에 성체성사의 핵심이 있음을 알고 있다.
d. 그러면, 혹시 개신교 측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모시고 있으니, 구태여 그분의 살과 피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시므로 천국에 계시면서도 언제든지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오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부활하신 온전한 예수님은 신성과 영혼과 육신이 함께 일치되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육신을 배제하고서 주님의 실재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주성자께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취하신 강생(降生)은 인류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모든 활동들을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 즉 인간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혹시 성체성사의 진실을 믿지 않는 이들이 “보라, 예수님은 ‘내가 말한 것은 영적인 것이며,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하지 않으셨는가?”라고 하면서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는 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잘못된 이해에 불과하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육신의 중요성을 배제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여 뒤엎는 것이 될 것이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하신 것은 많은 유대인들이 영적인 차원을 생각하지 않고, 마치 주님께서 당신의 살을 베어 주겠다고 하신 것처럼 오해하여 육적인 것만에 집중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틀렸음을 꾸중하시는 말씀이시다. 현재에 있어서도, 어떤 이가 영성체를 하면서, 단지 예수님의 살덩이와 피를 영하였을 뿐,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살아계시며 온전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임을 모르고 있거나 부정한다면 이는 주님께 큰 실망을 드리는 것이 되며, 영성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되며, 성체성사의 핵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다.
4. 아래의 내용은 교회에서 가르치시는 진리와 계명들을 더욱 충실히 알고 실천하며, 성사들을 통한 은총을 잘 받기 위하여 우리들이 자율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되는 상식적 내용의 요약입니다
a. 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외적, 내적 생활 전체의 확고한 중심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는 것은 단시일 내에 성취되기 어려우며, 오랜 시일에 걸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진리와 계명들을 자주 부지런히 공부하고 숙고하며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우리 삶의 기본 토대와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는 우리의 일생을 가장 보람되게 해주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는 영적 일들에만 부지런할 것이 아니라, 일반 도덕률과 준법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모든 의무들의 실행에 있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며 복종하는 의향으로 정성껏 행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b. 특히 성체성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대충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해하며 확실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직업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고 성공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공부와 경험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마음과 행동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c. 성체는 살아계시며 온전하신 예수님, 즉 천주성자이시므로, 우리 중 아무도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는 없으며, 소죄나 남은 잠벌이 전혀 없이 깨끗한 영혼을 늘 유지하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매번의 영성체 전에 우리의 지난 죄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다시 통회하며 우리의 부족한 점들에 대하여 주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영성체에 임함으로써 더 많은 은총과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대죄가 아니라도, 소죄들이 쌓이는 것에 대하여 너무 미루지 말고 고해성사를 보고 보속을 하여 더 많은 성화은총을 받고 여러 가지 덕성들을 육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d. 성체를 모신 후에는 천주성부, 천주성령과 완전히 일치되어 계시며, 성모님과도 항상 지극히 밀접히 일치되시고, 모든 천사들, 성인들과도 함께 계시는 천주성자 예수님께서 내 안에 실제로 임하셨으니 가장 기도드리기 좋은 시간이므로 이를 허비하지 말고, 나와 모든 이웃들에의 영적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영성체 후 성당 안에서 오래 기도하기 어려우면, 성당 밖 어느 곳에서도 얼마든지 계속해서 나에게 오신 주님께 친밀한 흠숭과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e. 성당 안에는 감실 안에 예수님께서 밤낮으로 계시므로 가능한 한 성체조배의 시간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성당에 들어가고 나올 때 반드시 경건하게 십자성호를 긋고 장궤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며, 미사 중, 특히 성체전례 중에는 전적으로 마음을 성체의 예수님께 집중하며 진심의 흠숭과 사랑으로 찬미와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f. 감실의 성체를 통하여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마치 잊고 있는 듯한 모든 행동과 자세를 삼가야 하겠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대화를 하거나, 소리를 내어 웃지 않도록, 핸드폰도 반드시 미리 꺼놓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큰 소리를 지르거나, 장난감으로 잡음을 내거나, 뛰어다니지 않도록 교육하며, 되도록이면 미사 전에 화장실을 다녀와서 미사 중에 화장실에 가는 일을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성체축성 등 미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 도중이나 전후에 성당 안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피해야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미사에 늦지 않게 최소한 몇 분 정도라도 일찍 성당 안에 들어와 꿇어 기도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g. 특히 여름철에 시원한 옷으로 지나친 노출을 하지 않도록 유의함. 자매님들이 미사포를 쓰는 것이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계시는 성당 안의 성스러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아름다운 성의의 표시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좋은 전통들은 가볍게 버리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지속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h.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을 교회에서 허락은 하시나, 본래는 수백 년 동안 혀로만 받았으며, 베네딕도 16세 (명예)교황님께서도 신자들이 꿇어서 혀로 받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이 오히려 원칙인 것처럼 되어 있는 성당들이 많은데, 이는 공의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것도 아니고, 실천적인 면에서도 심각한 단점들이 있습니다.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경우 불순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성체를 영하지 않고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독성을 저지르는 일이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성체를 손에 받으면 작은 성체조각들이 손에 남기 쉬우며 결국 마룻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사 상 성체의 작은 조각이라도 떨어뜨리고 잃어버리는 것은 성체께 대한 심각한 불손이며 모독으로 인식하였므로, 만일 성체를 손에 받았다면 영한 직후에 자기 손바닥을 잘 검사하여 아주 작은 조각들까지 영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작은 조각들이 잘 보이지 않기 쉽습니다.
성체에 대한 이단설을 퍼뜨린 칼 라너 신부는 “성체는 영적인 음식이므로 음식의 모양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성체 부스러기는 음식의 모양을 지녔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성체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하여, 많은 성당들에서 성체의 부스러기를 함부로 취급하는 악습이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반면, 소화 테레사 성녀를 비롯하여 여러 성인들께서는 어쩌다 성당 마루에 떨어져 있는 성체조각을 발견하면, 깊은 슬픔과 극진한 정성으로 그 성체조각을 모시는 표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체의 예수님께 최고의 정성과 사랑을 드리는 것은 가톨릭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에 속합니다. 성체를 입으로 받는 경우에도 성체를 배부하시는 분들은 (특히 평신도 봉사자들) 자신의 손가락 끝이 신자들의 혀에 닿지 않도록 유의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성체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극히 주의해야겠습니다.
i. 성체를 입에 모신 후 마치 껌을 씹듯이 열심히 씹는 이들을 일부 나라들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성체를 씹는가 안 씹는가에 대한 교회법은 없지만, 성체께 대한 최고의 흠숭과 존경과 정성을 바쳐드려야 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평신도들이 받는 성체는 크기가 작으므로 기도하면서 입 안에 모시고 있으면 저절로 삼키기 쉽게 되므로, 구태여 씹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제가 모시는 성체는 크며 또 성혈을 금방 마시므로 약간 씹는 과정이 이해되지만, 평신도들이 성체를 씹는 것은 살아계시며 온전하신 주님께 흠숭과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온전하신 예수님께서 성체성사에 현존하심을 굳게 믿고 있음을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증거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j.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거의 모든 성당들에 장궤틀이 있었고, 또 제단 앞에 영성체난간이 있었으나, 공의회 후에 한국 성당들에서는 거의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는 경건한 성체신심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더군다나 공의회에서 명하신 것도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는 여러 평신도들께서 의견을 모아서 본당 신부님께 건의를 드리고 또 그 추진에 힘을 합하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k. 동방정교회에서와 요즈음 한국의 젊은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면병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참 살과 피로 변하는 실체변화는 사제에 의한 성체축성 때가 아니고, 축성 전에 바치는 성령청원기도(Epiclesis) 때에 실체 변화가 일어난다고 잘못 믿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353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바치는)성찬제정 축성문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힘과 성령의 권능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곧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바쳐진 당신의 희생 제물을 성사적으로 현존하게 한다”고 하시어, 사제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축성문을 바치는 때에 실체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l. 교회법에서 허락된 예외들을 제외하고, 영성체 전 한 시간 동안의 금식을 잊지 않고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에게도 교계제도의 목자들의 지도하에 구원 메시지를 전파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발췌한 말씀들:
“#90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과 권한으로 가르치는 교계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예언자직을 수행하시는 것이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신앙 감각과 말씀의 은총을 주신다.”
“#85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앎으로써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구원은 진리 안에 있다. 진리의 성령의 활동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위임받은 교회는 그들에게 진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 그들의 희망을 맞으러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선교적이어야 한다.” |
이 분도 드림 Mary’s Touch By Mail Gresham, Oregon, USA 2013년 3월 7일 Our website: www.marys-touch.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