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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동산에 마리아의 구원방주 제 2회 피정을 알리는 현수막 |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에 나주에 집중호우가 와서 성모님 동산도 좀 피해가 있었는데 봉사자들도 고생 했지만 피정 받으러 오신 여러분들도 주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오늘 너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지난 7월 첫 토요일 날 저 아프게 보였어요? 전혀 아니었지요? 제가 여기 나와서 그렇게 웃고 큰 소리로 여러분하고 같이 사랑을 나눠도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고통 안 받을 때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베드로 회장님은 그렇게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받는다고 여러분들에게 말했는데 제가 나와서 전혀 고통 받지 않은 사람처럼 얘기하니까 누가 알겠느냐고 자기를 거짓말쟁이 만든다고 그러잖아요.
6월 첫 토요일 날 신부님들과 수녀님, 협력자들이 모여 준비 기도를 했는데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어떤 기도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아무 기억을 못할 정도였어요.
첫 토요일 철야 기도를 하기 위하여 동산에 올라 왔는데도 숨이 너무너무 차오르고 심장을 완전히 창으로 찌르고 칼로 오려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기가 오면 손발에 힘이 다 빠져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못 잡을 정도로 꼼짝을 못하겠고 가슴은 목까지 차올라 뜨거운 기가 계속 나오는데 목구멍까지 뜨겁고 쓰리고 뭐라 표현을 못할 정도로 아파요. 그렇지만 제가 고통을 받음으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쁘게 봉헌할 수 있었어요.
제 시간이 되어 오는데도 도저히 나올 수가 없어서 진통제 제일 강한 것을 맞아도 안돼서 한 시간 후에 또 맞았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서 여기 나왔는데 여러분을 보니까 힘이 났기에 말씀을 전하고 만남도 유난히 힘껏 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고통은 일요일까지 아니, 월요일까지 계속되어 숨도 잘 못 쉬고 완전히 죽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심장병이 이렇게 오느냐?’ 하고 아는 간호사 둘에게 물었더니 심장병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하여 한국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이 모두 깨끗하게 나왔어요.
그래서 ‘그럼 괜찮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내과 과장님이 제 상태를 보면서 심전도 상에서 아무 이상이 없어도 크게 이상이 있는 사람이 2~30%나 된다고 소견서를 써주면서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으며 지금 당장 앰뷸런스 불러줄 테니까 산소 호흡기 끼고 빨리 전대병원 가래요.
제가 “가더라도 집에 들러서 갈게요.” 했더니 오늘 넘기면 절대로 안 된다며 “아주머니 상태는 밤을 넘기면 순간적으로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그러셔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소견서를 팩스로 보내어 다른 데 또 알아봤더니 거기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심장병이 최고 심하면 그렇게 올 수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광주가 아닌 제가 다니던 대학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도 이상 증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올 2월에 한 초음파 검사보다 더 깨끗하대요. 근데 제 증상이 너무 심하니까 응급실을 통해 입원해서 3일간을 2시간에 한 번 정도 피를 뽑아가며 계속 검사를 해보니까 심장에 피와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길게 거의 다 막히고 머리카락만큼만 남아 있었답니다.
신부님들은 제가 고통을 계속 받다보니까 고통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시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해주실 수도 있지만 모든 순례자들의 영적 육적 치유를 위하여 봉헌하면서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부분 마취를 하니까 정신이 말짱해서 제 살을 째고 혈관으로 관이 들어갈 때는 죄가 큰 영혼을 봉헌하고 수술을 하고 관이 나올 때는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상처로 굳어진 심장이 깨끗이 치유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수술해 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면서 봉헌을 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생활의 기도가 좋지요? (네!)
수술 후에 꼼짝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서 받은 모든 고통들을 피정을 받을 여러분들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바쳤습니다.
제가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나 여러분 앞에 서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고 빨리 나주 성모님 인준 받아서 온 세상 자녀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계획하심입니다. 왜냐면 저를 학회에 연구발표까지 한다고 사인을 받아 갔답니다. 이제까지 그런 환자가 없었답니다.
제가 받는 고통도 제가 받은 고통이 아니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받으시고 여러분 치유 받으실 수 있도록 고통을 봉헌합니다. 고통이 와도 감사, 또 건강해도 여러분과 함께해서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나누니까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기적이나 징표는 남들이 볼 때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데 세상 어디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전대미문의 수많은 징표들을 보여준 이 성스러운 장소에서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함께 하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낙태보속고통을 자주 받다보니까 자궁과 장이 유착이 돼서 자궁을 떼어내 지금도 자궁이 없는데 임산부들은 10개월 간 배가 서서히 불러오지만 저는 낙태보속고통을 받으면 배가 한꺼번에 팍 부릅니다.
89년도에 경기도에 초청받아 갔는데 그 곳에 체중계가 있어서 올라갔더니 56키로가 나갔어요. 근데 바로 낙태 보속고통으로 배가 부르니까 다시 한 번 더 재보면 좋겠다고 해서 재 보았더니 8키로가 더 불어나 64키로가 되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받는 고통은 그냥 영적으로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받아요. 금방 괜찮을 때도 있지만 전에 폐병환자 기도해주고 실제로 제가 2주간을 심한 기침으로 피가 넘어오고 밤에도 잠 한숨을 못자 밤이 무서울 정도였고 미용실을 하면서 손님 머리 하다가도 뛰어나가 엎드린 채 가슴을 쥐어 잡고 각혈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손님들의 머리를 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생활의 기도를 봉헌을 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심하게 기침한 것은 봉헌 할 수가 있었지만 어느 날 보다 못한 손님들이나 장부가 안타까워 병원에 가보라고 하여 손님들에게 미안하여 일을 끝낸 뒤 장부와 함께 내과를 찾았는데 원장님이 “지금 상태로는 응급조치도 할 수 없으니 빨리 광주 기독병원 응급실로 가보세요” 하는 거예요 (그 병원은 당시 광주, 전남에서 폐병을 가장 잘 고치는 병원이었음.)
장부가 깜짝 놀라 의사의 말대로 하자고 했으나 집에 와서 깊은 기도를 하고 괜찮아졌는데 몇 달이 지난 뒤 미용실 하는 사람들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기에 찍었더니 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치료된 후에 찍은 사진처럼 폐에 구멍이 뻥 뚫린 흉터가 생겨 의사가 언제 폐병 알았느냐고 물어본 경우도 있었잖아요.
저는 고통을 하도 많이 받다보니 주위에 계신 분들도 의례 고통이려니 생각하시는데 한번은 목이 많이 아팠어요. 목이 너무 아프면 봉헌하기가 힘들어요. 목은 완전히 부어버리니까 말도 못하고 온몸이 완전히 다 부어버리거든요.
그때는 나주에 이비인후과도 없어 나주병원 내과를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목을 만져보다 “아주머니 누워보세요” 하더니 배를 만져보고는 “아주머니 산부인과 일인자가 우리나라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분은 서울대 병원에 계시고 또 한분은 다른 곳에 계시는데 제가 그분을 알려 드릴 테니 당장 가보세요. 지금 목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 해서 다음날 그 산부인과를 가 봤어요.
그 병원 원장님은 “아주머니 배가 걸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당장에 수술합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가 고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수술을 안했어요.
그렇게 2~3년이 지난 다음 나주 병원 내과에 갈 일이 있어서 그 말씀을 드렸더니 내과 의사가 “그분은 겸손해서 절대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바로 수술해야 됩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뒤 계속 아파지니까 다른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도 똑같이 수술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신부님들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그 당시 성체를 매일 영하지 않으면 제가 영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기에 미사도 할 수 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부산 메리놀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검사를 해보니 자궁이 장하고 유착이 됐는데 이것은 고통으로 온 것이니 수술을 하지 말고 어떻게든 약으로 해보자고 말씀을 드렸더니 열흘 동안 계속 금식시키고 계속 피 뽑아가고 하루에 항생제를 10번 이상을 투약했어요.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먹는데도 변이 피고름처럼 나오는데 견디기 어려웠으나 그 고통들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해 봉헌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봉헌했어요.
그런데 산부인과 과장님이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수술해야만 된다고 하셔서 신부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수술을 해야지”하시어 수술 하기로 결정하고 수술하러갈 때 율리오씨에게 “율리오씨 걱정하지 마시고 기도하세요. 나 잘 하고 올게요. 알았죠?”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전화 좀 걸어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여 수술대에 누워서 전화로 “율리오씨, 나 정말 괜찮아요. 제가 수술하는 동안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성직자와 수도자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아름답게 잘 봉헌해 주세요. 저 너무너무 기쁘게 수술대에 올라 기도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관계자들이 이제까지 수술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빠이빠이 하면서 건강한 사람을 걱정 하는 것은 처음 봤대요.
그렇게 자궁 절제 수술을 했는데 담당 과장님이 “아기 낳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라고 묻기에 “10년 넘었는데요.” 했더니 “에끼, 여보시오 자궁이 그렇게 크던데 무슨 10년이 넘어요.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아, 낙태 보속 고통 받을 때 자궁도 실질적으로 커져 낙태 보속 고통 받을 때마다 몸무게가 7-8kg 정도 더 나갔었구나.’ 즉시 직감하고는 측량할 길 없는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에 소리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주님께서 다정하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받아왔던 그 극심한 고통들이 온 몸이 저려 오도록 그렇게도 기쁘단 말이냐? 온 세상의 수많은 자녀들이 멸망을 향해 맹진하고 있지만 너와 같이 매사에 감사하는 작은 영혼이 있기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진노의 잔을 늦추고 계시며 나와 내 어머니도 위로를 받는단다.
네가 받아내는 희생과 보속의 고통을 통하여 백배가 아닌 천 배 만 배의 소출을 낼 것인데 그것은 바로 메마른 나무에 단비가 되어 시들었던 영혼이 생기 돋아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그것은 바로 저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너무 너무 감사해서 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어찌 사랑을 안 나눌 수 있겠어요? 사랑을 안 나누고 있으면 못 견디겠죠?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정말 어린아이들 너무 이쁘면 꼭 깨물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저는 옛날부터 잘 배우고 못 배우고, 높은 사람이고 낮은 사람이고 그런 것 절대 따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옛날에는 오히려 행려자들, 거지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하고 친했지 정말 높고 잘난 사람들하고는 친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 높고 낮음이 없이 똑같죠?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높아지지 않을 거죠?
아무튼 이 가슴이 언제나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프고 심지어는 숨을 쉬기만 해도 아팠는데 수술하니까 안 아파요. 근데 여러분들 위해서 봉헌 할 때 여러분들의 심장병이나 깊은 상처들이 치유될 때는 말할 수 없이 또 아프지만 제게는 그 고통들이 오히려 기쁨이에요.
제가 병원에 갔을 때가 새벽 1시가 넘었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수술하기 전에 아직 주치의도 저를 안 봤을 때인데 아침 7시에 너무 너무 잘 생기신 의사 선생님이 제 병실에 들어오셔서 “아니, 어떻게 그 몸으로 4시간이나 차를 타고 올수가 있었는가? 위험했다. 너무 너무 위험했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이제 됐다.”하시는데 너무 놀라 이름표를 봤더니 이름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지개 색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어요.” 하고 나가셨는데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분은 나가셨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찾아봐도 의사 중에 그런 분이 안 계셨어요. 아마 예수님께서 직접 치유 해 주실 수도 있으셨으나 희생을 치르고 보속할 수 있도록 하시면서도 걱정이 되셔서 계속 함께 하시며 의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신 것 같아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거지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볼품없는 모습으로도 오시지만 의사의 모습으로도 오시어 병원의사가 수술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 곁에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모르니 우리는 누구에게나 잘해야 되겠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직접 하실 수 있지만 어떨 때는 또 희생이 필요해서 의사한테 보여서 수술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의사의 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실 수 있죠? 그 고통을 봉헌할 수 있도록 희생을 치를 영혼도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자궁을 들어냈을 때 율리오씨가 “여보, 여보, 이제 자궁을 떼냈으니까 더 이상 배 안 부를까?”하셔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모르죠.” 하고는 퇴원하기 전에 성당에를 갔는데 미사 끝나고 나서 배가 또 불러오는 거예요.
그 성당 보좌신부님은 제가 자궁 절제수술을 하고 하루도 지나기 전에 저를 찾아오셔서 뭘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하고 기도해 달라고 하셔서 신부님과 함께 기도를 했는데 제가 땀을 얼마나 뻘뻘 흘렸는지 몰라요.
그 모습을 보신 신부님께서는 “아, 이제까지 사제 생활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신다는 것을 이해를 못했는데 자매님께서 그렇게 기도해 주실 때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면서 기도하신 그 모습을 봤습니다.” 고 하셨어요. 그 신부님이 그때부터 강론도 잘 하시고 신자들한테 너무너무 잘하셨대요.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면 체험 한 거하고 안 한 거하고 다르잖아요.
또 제가 하느님을 모를 때 전남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을 했는데 입원한지 이틀 후에 산부인과와 내과의 검사결과 병명은 “자궁뼈 골반염” “열병” “자궁외 임신” “맹장염”이라고 나왔는데 산부인과와 외과가 급성환자인 저를 방치하고 서로 미루어 저는 계속되는 진통 속에서 아이와 함께 울었어요.
아이는 배가 고파서 울고, 나는 많이 아파도 아이 때문에 제대로 몸부림칠 수도 없어 너무 고통이 되어 울면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어요. 그러다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이 왔기에 기어서 외과를 찾아갔더니 너무 놀라 “아니 이럴 수가! 산부인과에서 아직도 수술을 안 시켰어요?” 하고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대변이 마려운 저를 기어이 대변을 보게 해주지 않은 채 수술실로 옮겼어요.
수술대 위에 누워서 보니까 산부인과와 외과에서 나온 의사와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들 15명가량이 저를 빙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아마 저를 실습대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들이 맹장을 떼어내고 자궁을 들어내려고 제 배를 열었는데 30년 넘게 자궁을 봤어도 그렇게 깨끗한 자궁은 처음 봤대요.
자궁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진단은 “자궁뼈 골반염” “자궁외 임신”이라고 나왔으니 마귀들이 그 때부터 저를 괴롭힌 거 같아요. 의사들은 맹장만 떼어내고 그냥 봉합을 했는데 그로인해 저는 말할 수 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 하지만 급성 맹장염을 사흘간을 방치했는데도 복막염으로 악화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지켜주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느냐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고통들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셨을까?’ 를 우리가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받은 고통 또 아내에게 받은 고통, 자녀들로부터 받은 고통, 부모로부터 받은 고통 그리고 시어머니께 받은 고통, 며느리한테 받은 고통, 그 외 다른 모든 고통들도 주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느끼고 그 모든 것들을 지금부터라도 생활의 기도로 바치면서 아름답게 봉헌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은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하시는가 보세요. 저는 맹장 수술했으니까 일주일 후에 퇴원하면 된다고 그랬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대변 나오려고 해서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안 나와요.
수술하기 전에 대변을 보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에서 가스가 생기는데도 대변도 안 나오고 가스도 안 나오니까 배가 터질 듯이 아프면서 장이 꼬이는 것 같았어요.
3일이 지나도 가스가 나오지 않아 온몸이 뒤틀리고 움직일 수도 없이 고통을 겪는데 소변 한 번 보는 것이 얼마나 따갑고 아픈지 아기 날 때보다도 훨씬 고통이 심했어요.
간호사가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물건 다루듯이 하면서 걸어 보라고 해도 전혀 걸을 수가 없어 엉거주춤하고 있으니까 엄살 부린다고 발로 차고 무릎으로 차면서 손으로 등을 막 때리더라고요.
그런데 사흘이 지나 적게나마 가스 소리가 나니까 함께 있던 자궁암 수술환자가 “엄마야!” 하고 반갑게 큰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 환자는 수술 후 일어나지도 못했지만 내가 몸부림치고 있을 때면 “아이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면서 함께 울어주다 가스가 나오니까 너무 기뻐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거예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듯이 배가 고파본 사람만이 배고픈 고통의 심정을 알아주죠.
그때 저는 먹지 못해 몸이 더 쇠약했는데 아무리 먹어 보려고 해봐도 음식을 먹으면 모두 토하고 심지어 수박즙을 내어 먹어도 토하니까 자궁암 환자가 가장 마음 아파했어요.
하지만 간호사는 걷지 못해 기어 다니는 저만 보면 엄살이 심하다고 볼 때마다 발로 차는데 제가 나가떨어질 정도로 세게 차서 뼈까지 아프더라고요. 그때는 그것이 하느님 사랑인지 몰랐는데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도구로 쓰시고자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도 도구로 쓰시려면 여러 가지 고통들이 있으실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해가지고 집에 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별것 별것을 다 해주셔도 못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골에 계신 시할머니께서 개 한 마리를 통째로 고를 내서 가지고 오셨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시어머니는 고기를 2000원 어치 사서 해오시면 딸 남편 먹으라고 한 그릇 덜어내고 갖고 오시면서도 2500원씩을 받아가셨는데 시할머니께서는 제 몸에 좋다고 개 한 마리를 몽땅 해주셨으니 먹지 못했지만 지금도 저는 그 사랑을 못 잊어요.
못 먹고 버렸을망정 시할머니의 사랑은 저를 감동시켰는데 하느님을 알고 보니까 시어머님이 제게 그토록 심하게 대하셨던 것도 사랑이었더라구요. (아멘!)
그런데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얼마 후 문제가 생겼어요. 배꼽 밑으로 열 바늘을 꿰맸는데 세 번째 꿰맨 데가 곪은 거예요. 율리오씨는 직장 충신이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불우 청소년들 가르치느라고 집에를 안 들어왔어요.
계속 먹지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우리 어머니가 수발해 주시고 학교에서 효행상을 탄 4학년짜리 큰딸이 많이 도와줬는데 곪은 데를 화장지로 잡아당겨보았더니 피고름과 함께 뭐가 길게 계속 쭈욱 나오는 거예요.
큰딸이 너무 놀라 “엄마! 그만해, 창자가 나오나 봐” 하며 소리 내어 막 우는데 저 또한 ‘나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이 어린것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수술 한 곳에서 거즈가 터져 나왔어요. 세상에 거즈가 뱃속에 들어 있었으니 어떻게 먹을 수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시골 병원 다녔는데 계속 다녀도 속에 피고름이 고여 있으니까 나을 수가 없었고 아파서 걷지도 못하고 나중에는 기어 다녔어요.
그래도 시어머니는 월급 때만 되면 오셔서 돈 달라 하시고 친정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낫게 해주려고 갖은 애를 다 쓰셨는데 상처가 안 아물어요. 상처에 소독만 하고 거즈만 붙이니까 안 낫는 거죠. 석 달을 계속 하다가 안 되니까 결국 어머니가 얘들 넷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서 거즈가 나왔다고 그랬더니 다시 수술하자고 그래요.
그 상황에서 다시 수술할 수가 없어 수술을 하지 않도록 간청을 했더니 어디를 소독해주고 싱을 넣어 주고는 다음에 혹시라도 아프면 바로 수술하자고 했는데 수술 안 해서 암이 걸린 거예요.
우리 시어머니는 막둥이 낳은 지 이레도 가지 않았는데 영암 군서라는 그 시골까지 오셔서 쌀 팔아달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옆에 마트들도 많고 전화만 하면 금방 갖다 주지만 옛날이라 방앗간에 직접 찾아갔더니 쌀이 없어서 다른 방앗간에 갔어요.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시골 정미소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한 십리쯤 걸어 다니며 쌀 한가마니를 팔아 드리고 나니 출혈이 시작되어 피가 신발에까지 내려와 걸음을 걷기가 힘들었죠.
출혈이 문제가 아니라 온 다리가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은 너무 뜨거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몇 달 가량을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면서도 남편에게 숨기면서 혼자 몰래 몸부림 했어요.
친정어머님은 딸 고생시키지 않고 병 낫게 해주시려고 밤낮으로 애쓰시며 시골집으로 쌀 가지러 가시던 날 시어머님은 쌀 팔아 달라고 오신 이 모든 일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예비하신 일들이었어요.
셋째아이 날 때도 완전히 11개월 만에 낳았는데 아이를 가진지 9개월째 되었을 때부터 1-2분 간격으로 진통이 와 한약을 달여서 먹으려고만 하면 진통이 멎었는데 아이는 나오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고문과도 같았어요.
저는 그때까지 한약 두 첩씩 먹고 아이 둘을 낳았는데 이렇게 1개월쯤 고통을 겪다가 산부인과를 갔더니 병원장이 “세상에, 이런 상태로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느냐?”며 “큰일 나기 전에 어서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도록 합시다.” 하고 율리오씨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시어머님께 허락을 받기 위해 시댁으로 갔어요.
우리 시아버님은 서울서 경성대 나오시고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 나와서 대학원 다니셨는데 시어머니는 거기서 율리오씨 낳았을 때 건강하셨어도 한 달간을 입원하셨던 인텔리셨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님은 격분하여 “애기들은 누구나 시와 때를 맞추어 나오는 것인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림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내려가서 애기가 저절로 나오기를 기다려라”하시는 거예요.
시어머님 말씀대로 유도분만을 포기하고 집에 왔는데 또 보름동안을 2~3분 간격으로 진통은 하면서도 애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제가 죽어가니까 친정어머님은 용하다는 한의원에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당시 그 곳에는 병원이 없었으니 모두가 가니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였죠.
원장님은 저를 진맥하고 진찰 하더니 일주일 이내에 나올 것 같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또 보름이 지나가도 애기가 나올 생각을 않자 친정어머니께서는 다시 한의원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진맥과 진찰을 하시던 원장님은 “이거 큰일 났네. 아예 나오지 못 하겠는데요. 어서 병원에 가보세요” 하자 시어머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했기에 갈수 없으니 우리 친정어머니는 원장님을 붙들고 “여보시오. 어떤 방법이라도 좀 써 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하고 울면서 통사정을 하셨어요.
원장님은 “혹시 용약을 먹으면 애기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면서 한약을 일곱 첩 지어 줘서 그 한약을 먹고 11개월 만에 딸을 낳았는데 세상에 아이를 낳으면서 얼마나 출혈을 많이 했는지 어머니께서 손으로 훔쳐 담은 피가 요강으로 하나, 세숫대야로 거의 하나였답니다. 그 후 저는 6개월이 지나서도 다른 방에서 선풍기를 켜기만 해도 숨이 차오고 멎는 듯하여 헐떡거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이 하나를 더 낳고 몸조리를 잘하면 된다고 해서 막둥이를 낳았는데 시어머니께서 쌀을 팔아달라고 그 먼 데까지 오셔서 방앗간을 두 군데 돌아다니다 출혈을 하고나서 산후풍이 와버렸어요.
그런데 아이 낳은 지 4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에 걸려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오히려 몸이 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시어머니께서 우리가 아파트를 한 채 사줘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시동생 가르치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하고 셋방살이 집주인에게 모진 학대를 받으면서도 시댁의 도움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불을 둘러쓰고 밤새 일을 해가지고 그 시동생을 법대에 보내 공부시켰는데 아파트 사줄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또 제가 세 번째 아기를 가졌을 때 4개월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죽지도 않은 아기가 죽었다며 제 자궁을 가리켜 가면서 율리오씨에게 “당신 마누라는 지금 자궁이 썩어가고 있다”고 협박을 했어요.
“아이는 죽지 않았다고 하는 저에게 아이가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며 장부에게 “당신 마누라 죽이고 싶어요? 살리고 싶어요?”하면서 설득해서 저를 붙들어 수술대에 눕혀 놓고 손발 다 묶어 계속 마취주사를 놔도 안 되고 팔에다 마취제를 놔도 안 되고 입에다 둘러 씌워도 안 되는데도 강제로 살아 있는 아이를 긁어냈어요. 저는 마취가 되지 않아 그걸 다 볼 수 있었는데 주님께서 다 보여주신 거예요.
의사는 강제 낙태를 계속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했는데 몇 분이면 끝난다는 수술이 두 시간이 걸리고 피를 흘리면서 1시간을 계속 진통을 해도 그냥 놔둬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이모님이 오셔가지고 막 야단했어요. 그랬더니 그때서야 주사를 한대 놓더라고요.
입원하려고 했는데 입원 안 해도 된대요. 피가 퐁퐁 나와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 당시 2백 원짜리 솜 2개를 속에다 넣으라고 주더라고요. 그렇게 넣고 왔는데 일주일 만에 재수술하고 8일 만에 죽었다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서 살아났으나 13일 만에 태가 나왔어요.
이 모든 고통들이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었어요. 저에게 큰 고통을 주셨던 시어머님이 저한테는 은인이셨어요. 저를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잖아요.
주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허락하셨어요.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주어진 고통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름답게 봉헌하면서 오늘 이 시간부터 또 새로 시작합시다.
여러분, 우리를 괴롭혔던 사람을 이제부터 사랑합시다. 세속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 사람들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성당을 다녀도 이런 고통들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 괴롭히거나 자기를 조금만 아프게 한 사람도 다 미워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하고 별거를 했지만 성당에는 서로 내색하지 않고 가니까 사람들은 성가정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잘 때 잠꼬대 한 것처럼 발로 부인의 기도를 누르고 경동맥을 눌러 죽이려 해도 안 죽어요. 그러면서 매일 미사를 다니는데 이튿날 미사 가서 둘이 나란히 나가다가 발뒤꿈치로 발을 짓이겨 밟아 버린대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도 모르게 “악” 소리 나오는데 태연하게 “왜 그래?” 그렇게 계속 했대요. 교회법은 이혼은 안 된다고 하니까 어떻게든지 죽이려고 별짓을 다 하면서도 성체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성체를 영합니다.
그런데 나주 와서 회개를 하고 재결합 했어요.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그렇게 순례 다닌 사람들이 아니고 나주 성모님께서 특별히 알곡으로 뽑으신 분들입니다.
처음에는 검불과 알곡을 고른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쭉정이와 알곡을 고르신다고 하셨으니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정말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사랑으로 특은 받으신 분들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나의 찢어진 가슴을 기워줘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셨는데 바로 생활의 기도는 매순간 순간을 깨어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많이 해야 되지만 할 일이 있는데도 일은 다 놔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묵주만 계속 돌린다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묵주의 기도는 단 한단을 할지라도 정성을 다하여 바쳐야 됩니다. 그래야만 싱싱한 장미꽃을 성모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 전에 저는 살림하면서 놀러를 안다녔거든요. 주님 성모님 알고는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말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하는데 그 전에는 입을 딱 다물고 있으니까 이웃 사람들이 새댁은 입에서 냄새도 안 나냐? 고 그랬어요.
저는 33세에 주님 자녀가 됐는데 주님께서 그때 19세 소녀로 바꿔 주셨지만 그 전에도 어려 보이니까 제가 시집올 때 어린 아이들도 다 커서 “언니! 우리들은 어쩌라고 언니는 안 늙어?” 그랬는데 지금도 여러분만 보면 좋아가지고 힘이 펄펄 나고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아까 목이 쉬어가지고 말 많이 못 할 거라고 그랬는데 그냥 좋아가지고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더 잘 살 수 있는가?하고 말이 더 잘 나와요.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한 가정을 택하기도 어려웠다고 하시며 제가 살아온 삶과 제 가정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가정과 삶을 전하다보니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어머니도 도구로 사용되신 거예요. 제가 주님 일을 하려고 할 때 자꾸만 어떤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마귀가 그 사람을 시켜서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여기 오시기 전에 마귀들이 은총 못 받게 하려고 아마 방해받은 일이 많이 있으실 거예요. 이번에 여러분 은총 얼마나 많이 받게 하시려고 그때도 연기하셔가지고 이번에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엄청 많이 와가지고 여기 비닐 성전이 물이 다 찼었어요. 그래서 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에 여기를 말리고 하기 위해서 수녀님들이랑 협력자들이 모두 함께 다했어요.
그러면 그냥 했겠습니까? 이번에 피정 받으실 여러분들의 영혼 육신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봉사자들에게 “모두 닦아내고 말리느라 너무 고생하고 수고했다” 했더니 “아니에요. 천국에 갔다 왔어요.” 그러고 베드로 회장님도 피정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했는데 우리 마리아의 구원방주 식구들 보니까 힘이 딱 나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 봉사자들이 얼마나 신경들 썼는지 몰라요. 여러분들 밥 못해주게 하려고 주방에도 물이 다 들어와 엉망진창이 되었으나 피정자들과 가족들까지도 은총 많이 받으시도록 희생과 보속으로 바쳤습니다.
여러분! 좀 초라하고 누추하여 힘들지라도 아름답게 봉헌하십시다. 그럼 주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 꼭꼭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여러분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주셔서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해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밤 예수님과 성모님 품안에서 푹 주무시고 내일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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