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다시 찾은 장애자 할아버지 (1990년 7월
1일)
방지거씨를 잃은 그 날 나는 철야 기도를 하는 내내 행려자인 방지거씨로 나타나신 듯한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시청 사회 복지과로부터 방지거씨와 비슷한 분이 나주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단숨에 나주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막상 가서보니 방지거씨와 조금은 비슷해 보였지만
방지거씨는 아니었다.
그분은 나이가 많으셨고 팔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말은 전혀 하지를 못했다.
비록 그분은 내가 찾던 방지거씨는 아니었지만 방지거씨 대신에 보내 주셨다고 생각하고
"방지거"할아버지로 이름을 지어 내가 그분을 돌보기로 했다.
그 날부터 매일 같이 병원을 찾아 그분을 돌보게 되었는데 맨 처음에는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던 그분이
점차 몸이 좋아져 며칠 후부터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았고 웃기까지 했다.
대 소변을 본 후 기저귀를 잘 갈아주지를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변을 잘 닦아주지 않았기에 아랫도리
전체가 변으로 범벅이 된 채 말라 있었기에 따뜻한 물로 불려서 가만가만 닦아 냈지만 살이 많이 헤어졌다. 그러나 자주 소독을 해주면서 치료해
주고 잘 닦아주고 통풍을 시켜 주었더니 금새 많이 좋아졌다.
너무 비싸서 우리는 사먹을 생각도 못하던 전복을 사다가 죽을 쑤어주면서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펴
드렸더니 한 일주일쯤 지나자 내가 집으로 가려고만 하면 그 할아버지는 돌아누우면서 우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 "안 갈게요" 하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이
고여 있는 채로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10일째 되는 날 병원에 가니 간호사들이 길가에 행려 병자로 쓰러져 있던 사람을 파출소에서 데려와
입원시켜 놓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에게 빨리 퇴원시켜 집으로 데리고 가라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간호사들의 호통소리에 너무 놀란 나는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려 했지만 지금 당장 마땅히 모실만한 방이
남아 있지를 않아 고민 끝에 꽃동네 수사님에게 부탁하여 할아버지에게는 우리 집으로 간다고 말씀드린 뒤 링겔 주사를 꽂은 채로 할아버지를 꽃동네로
모시고 갔다.
꽃동네에 도착하자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할아버지는 차에서 내리기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그만
팔을 다쳐 피까지 흘렸다.
겨우 겨우 할아버지를 달래어 방에 모셔다 눕혀 놓으면서 "또 올게요." 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린 채 할아버지를 꼭 안아주다가 결국 할아버지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말았다.
"지금은 우리 집에 방지거 할아버지가 계실만한 방이 없어 지금 당장은 못 모시지만 집을 지으면 모시러
올게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려 우셨다.
나는 우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빨리
작은 예수님과 작은 성모님을 모실 곳을 마련해야지' 하고 아픈 마음을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 주님! 그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내 작은 영혼아!
너의 그 정성과 사랑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그의 집이 되어주고 피난처가 되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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