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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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연도 가서 있었던 일 때문에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 외인들 그 누구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타인의 잘못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아픈 이들에게 위로자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예비자 때부터 성당에서 어떤 일이 있으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늘 참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도를 바치러 갔는데 신부님과 많은 신자들이 와서 우리와 함께 연도를 바치고, 모두가 함께 대화도 나누었다. 어떤 자매님이 “○○에 사는 ○○가 어떻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나았다.”라고 말하자, 어느 형제님이 그것은 마귀의 짓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남을 판단하는 이야기들을 계속하여 나는 너무 놀랐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남의 흉을 보는 일 없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줄 알았는데, 세속 사람들과 다름없이 그것도 초상집에서 남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니!

나는 세속에 살면서도 남 흉보는 것이 듣기 싫어서 늘 외톨이였는데, 열심하다는 신자들이 이게 웬 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우리가 확실하게 보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단죄해 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더니 거기서부터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 전교하지 않으시고, 직접 신부님과 수녀님을 통해서만이 하신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하느님은 직접 모든 일을 성령으로 하실 수도 있지만, 인간을 통해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누구를 통하여 일을 하실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계산할 수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어떻다고 판단할 수 없으며, 그 판단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에 우리는 순수하게 하느님만 따라가면 돼요. 만약에 어떤 형제가 잘못한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지요.”라고 하자, “영세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지금 그따위 소리 하는 거요?”라고 하며 특히 원로이신 두 분이 더 화를 내셨다.

나는 그분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더는 죄짓지 않기를 바라며 또 말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길을 인도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아요? 또 주님께서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는 고통을 허락하셔서 용광로에서 단련시켜 쓰실 수도 있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지금 이 시대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셔서 그분들이 전도하시기에 성령 운동 같은 것은 필요도 없는데,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설쳐 많은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있단 말이야.”라고 했다.

그분의 말을 듣고, 그 당시 성령 운동을 하고 있던 나는 너무나 놀라 “성령 운동이 필요 없다니요? 성령 운동은 마른 땅에 물을 주는 격인데요.”라고 하자,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장부 율리오 씨가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그때야 ‘아차!’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죄송합니다.” 하고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무 소리 않고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했다.

그렇게도 말이 없던 내가 웃어른들 계신 곳에서 이렇게나 말을 많이 하다니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가 흰 것을 검다고 해도 그것은 흰 것이라고도 안 해봤으며 내가 말을 너무 안 하니까 사람들이 “너는 입에서 냄새도 안 나냐?”라고 할 정도로 말을 안 했었는데…. ‘오! 주님, 당신의 뜻이 무엇이옵니까?’

 

382. “내가 함께해주겠다.”

 

다음날, 미사 후에 나는 그분께 인사를 했는데 그냥 외면해버리시니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인사를 계속했지만, 그분은 받아주지 않으셨다. 그분도 매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하시기에 우리는 매일 만났지만, 계속 투명인간 취급하시며 외면하셨다. 6일째 되던 날, 평화의 인사 때라도 인사하기 위해서 그분 바로 옆에는 앉지 못하고 한 사람 간격을 두고 앉아서 미사에 참례하였다.

평화의 인사 때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하고 인사하니 그분은 내 쪽을 향하여 “진심….”이라고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진심으로 평화를 나누며 드리고자 했던 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평화를 그분께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렇게 외면하도록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 너무 마음 아팠던 것이다.

신앙을 가진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고 마귀라고 단정 짓는 것은 판단이라고 생각했기에 남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건전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고자 했던 내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심각한 상태로 변해 버려 당황한 나는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했던 말들이 저분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어서 용서와 사랑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어요.’라고 하면서 그분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진심으로 내 탓으로 뉘우치면서 고백성사를 보고 조언을 청하기 위하여 그날 함께 계셨던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어쨌든 간에 웃어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니, 신부님은 “그래요, 자매님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요. 맞는 말을 했지만, 그분들은 성당에서도 가장 열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웃어른들인데, 성당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매님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니 옳은 말을 하는 자매님 때문에 자기들 처지가 조금 난처해져 자존심이 상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세요.”라고 하셨다.

신부님 말씀을 듣고 나는 성체조배를 했다. 모든 일이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평화 안에서 잘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통에 대하여 깊은 묵상에 잠겨있었다. 그때 감실 쪽에서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음성이 들려왔다.

“딸아, 모든 이로부터 네가 낮아지고 겸손해지도록 가르쳐 주기 위한 나의 계획이니 어서 서둘러 용서를 청하여라. 내가 함께 해주겠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나의 가슴은 기쁨과 환희로 두방망이질했다.

 

383. 화해 안에서의 기쁨

 

다음날, 미사가 끝나고 나는 ‘설사 그분이 나를 때린다고 하더라도 웃으면서 끝까지 용서를 청하리라.’라고 생각하고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께 다가갔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나는 용감하게 그분께 다가가 인사하고 나서 손을 잡으며 “지난날 제가 어르신께 버릇없이 함부로 지껄였던 경거망동을 용서해주십시오. 정말 잘못했어요.”라고 하자 그분은 나의 손을 꼬옥 잡으며 “율리아씨, 율리아씨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내가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을, 그리고 그 깊으신 경륜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는가?’ 어긋났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주님의 사랑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잃었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다가 다시 찾은 듯한 그런 큰 기쁨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잃었던 은전 한 닢을 찾은 가난한 여자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잃었던 작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나는 기쁨이 넘쳐흘러 집으로 돌아올 때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마음, 예수님과 우리 하나 되었네.”

 

384. 주님 안에 한 형제

 

그분과의 만남을 주님께서 주관해 주셨기에 우리는 더욱 친하게 되었고, 성령 운동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서로서로 존중하며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더 굳건해지면서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온갖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비록 외모로 보아서는 다른 이와 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는 모두 이제 주님 안에 한 형제가 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고 하느님을 내 마음 안에 받아들였기에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영원함이니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얼마나 오묘하고 놀라우신가!

이제는 우리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아버지를 외면하기 이전의 자세로 돌아가서, 주님 안에서 항상 일치하여 주님 왕국을 건설하는 도구가 되기를,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이 거짓 없고 부끄러움 없도록 해 주시리라 믿으며 등경 위에 불을 켜놓고 빛을 발하여 항상 일치 안에서 주님의 증거자가 되길 염원해본다.

 

385. 음성(陰性) 나환자촌에서의 봉사

 

나주와 영산포 미용사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그때 나는 미용실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용감하게 제의를 했다. 나주와 인접한 함평 쪽에 음성 나환자촌이 있는데 거기 가서 머리 커트도 해주고 파마도 해주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반대해 그러면 나 혼자라도 우리 미용사 협의회 이름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두 사람이 동참하기로 했다.

소록도에서 살던 나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육지로 나와서 모여 살게 되는데 그곳이 그런 곳이었다. 그들은 나병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지만, 손가락질받지 않으려고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아 미용실도 이발소도 잘 가지 않는다. 나는 먼저 그곳 회장에게 미용실 쉬는 날 가서 파마와 커트를 해 드리겠다고 연락했다.

쉬는 날, 동참하기로 했던 미용사 협회의 두 미용사와 함께 그곳에 갔더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미용사는 그들의 몰골을 보고는 너무 놀라 우리는 못 하겠다면서 곧바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후유증으로 외모가 변형되어 눈이 하나 없고, 입이 삐뚤어진 한 자매님이 크게 실망해 어둔한 목소리로 “내 이럴 줄 알았다.” 하고 가버렸다. 그 많은 사람을 나 혼자 머리해줘야 하는 것은 괜찮으나 이분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는 미용사들 대신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용서를 청하면서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에 소록도에 가서도 환우들과 악수도 하고 꼬옥 안고 포옹하면서 격려를 해줬다고 말하니 그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머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자매들과 할머니들 파마는 열 두 사람 정도 하고 커트는 이십여 명 정도 해 드렸다.

또 할아버지들도 다섯 명 정도 이발해 드리면서 안마까지 다 해드렸다. 이런 내 이야기가 삽시간에 동네에 퍼지자 모두들 모여들었다. 그날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선물도 따로 많이 준비해 갔기에 그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다. 머리를 해 줘서도 좋았지만,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늘 소외되었던 그들은 누가 선물을 가지고 와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방문자들 모두 그들을 구경거리나 거지 취급을 하니 받은 상처가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신부님이나 수녀님들한테도 상처를 많이 받아 성당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들도 인간이니 실수하실 수도 있다고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고 성당 다니자고 말했다. 이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 냉담자들이 모두 다 성당에 나오기로 약속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아픈 곳을 찾아서 뽀뽀도 해주고 기도해주고 다 꼭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사랑을 전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다음에 언제 또 올 거냐?”라며 더 좋아했고 아이들은 물론 “내 이럴 줄 알았다.” 하며 상처받아 가버렸던 자매도 다시 와서 사랑을 느끼고 냉담을 풀기로 약속했다. 상처받았던 영혼이 치유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주님의 사랑을 느껴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렇게 온종일 홀로 사랑을 실천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내 발걸음은 정말이지 잘 떨어지지 않았다.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그들과 늘 함께하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사랑을 나누며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님, 그들을 당신께 맡기오니 당신의 사랑의 품에 꼭꼭 안아주시고 친히 돌보아 주소서.’

 

386. 미용 세미나에 가서

 

1983년, 서울에서 있는 3박 4일의 미용 세미나가 있었다. 그래서 판사가 된 서울 시동생 집에 혹시 머물러도 되느냐고 연락하여 허락을 받은 뒤 우리 미용실 미용사를 모델로 데리고 함께 갔다.

그 시동생을 판사 만들기 위해, 나는 임신한 상태에서 3살 된 큰아들을 업고 일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아이가 걸어 다니다 뾰족하게 잘린 자개 조각에 발을 찔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큰 아이를 업고 시동생의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돈에 눈이 먼 산부인과 의사의 욕심 때문에 4개월 된 아이를 강제 낙태를 당하고 죽어가면서까지 일하였다.

그로 인해 나는 결국, 전대 병원에서 죽게 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아직 때가 안 되었다.”라고 하시며 이 세상에 다시 보내주셨다. 그렇게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가르친 시동생이었지만, 처음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받을 생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집에 가면서도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으나 저녁밥은 먹었느냐고 묻지도 않기에 우리는 먹은 셈 치고 굶고 자야 했다.

오랜 세월 힘들게 버티며 판사를 만들어 주었어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미용사까지 데리고 갔는데 매정하게 홀대하는 그들의 모습에 미용사 보기가 무색하고 씁쓸했다. 나는 자주 굶어 봐서 봉헌할 수 있었는데 미용사는 배가 고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 같으면 늦은 밤이라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밤에 사 먹을 식당도, 편의점도 없어 데려온 미용사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그러나 방법이 없었기에 “먹은 셈 치고 봉헌하자.” 하고 미용사를 달랬다. 아침에 나와서 보니 전기밥통에 불이 켜있어서 ‘오, 그래도 어젯밤에 밥도 안 주더니 미안했는지 고맙게도 밥을 먹고 가라고 일찍 해놓고 들어갔구나.’ 하고 밥통 뚜껑을 열어보니 누룽지만 조금 들어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누룽지로라도 미용사의 허기를 채워 주고 싶었지만,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미용사에게 “나가서 맛있는 밥 사줄게!” 하고 나가서 돌아다녔지만, 근처에는 해장국집조차도 없었다. 그러다 세미나 시작 시간이 다 돼서 할 수 없이 미용사에게 돈을 주면서 밥 사 먹고 뒤에 오라하고 나는 또 먹은 셈 치고 먼저 들어갔다.

점심으로 주최 측에서 샌드위치 하나씩 줘서 먹고 세미나에 집중해 세미나를 마쳤는데 미용사가 배가 고프다며 시동생 집에 빨리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지만, 미용사가 그 부잣집 동생 놔두고 뭐 하러 밖에서 사 먹느냐며 들어가자고 내 손을 끌어당겨 나는 할 수 없이 시동생네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남녀 친구들이 많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해 고픈 배를 자극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실컷 먹고 마시다가 밤이 늦어 모두들 돌아가고 시동생 부부도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저녁내 굶다가 밤이 이슥해져 미용사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열어 봤더니 아이도 없이 둘이 사는 집에 고기며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본 미용사는 “언니, 조금만 먹으면 안 돼? 음료라도 좀 먹자! 너무 배고파!”라고 하여 미용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더는 먹은 셈 치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락 없이 남의 것에 절대 손대지 않았기에 나는 “우리 그냥 이 집에서 나가자.” 하고 나와 서울에 오면 언제든지 오시라고 했던 어머니의 양아들 흥선이 가게로 갔다. 그 동생은 늦은 시간인데도 “어서 오셔요. 시장하시죠?”라고 하며 어찌 이 늦은 시간까지 밥도 못 먹었냐고 오히려 걱정하며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반갑게 맞아주고는 아는 정육점에 가서 이미 장사를 마감한 지 한참 되어 굳게 닫힌 문을 두들겨 고기를 사다가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 아닌가!

음료수까지 사다가 주는데 눈물이 났다. 그 사랑 덕분에 미용사 앞에서 구겨진 알량한 체면이 조금은 살아난 것 같았다. 사랑이 넘치니 안 먹어도 배부르고, 미용사가 맛있게 넘치도록 먹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387.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례를 받다.

 

1980년 성탄 때 세례를 받기로 했었는데 세례받을 사람이 나 혼자뿐이어서 포기로 엮어진 잔 꽃송이로 아름답게 봉헌하고, 1981년 부활절에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얼마나 많이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던가. 그때 나의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좋을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좋은 날, 천한 내 몸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 몸과 맘 다 바쳐서 영광의 주 섬기리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기쁜 날’ 성가를 부르는데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첫 성체를 모실 때 피비린내를 맡았는데, 모두가 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는 진짜 하느님의 친자식이 되었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그동안 희로애락의 뒤안길을 되돌아보니 살점을 헤집은 쓰라림과 아픔도 있었지만, 강물처럼 흐르는 하느님의 축복은 사랑의 홍수가 되어 나에게 오셨다.

 

고통받는 내 육체와 정신과 그 모든 기능,

겹겹이 싸매둔 아물지 않는 모든 상처와

메마름의 갈증을 채우지 못하여

바보처럼 숨어서 울지도 못하는 약자의 설움을 잘 아시는

나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이 죄인의 영혼 육신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구원의 샘에서 영생의 물을 마시도록 해주셨다.

 

진리는 바로 거짓의 무덤 속에 가둘 수 없듯이

자유도 속박의 무덤 속에 가둘 수가 없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이제는 세속에 갇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짜릿하도록 행복했다.

 

내가 이 기쁜 영광의 길을 진즉 선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고, 이제라도 주님을 만나게 해 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이제 새로이 주님 앞에서 아름답게 장식해보련다.

 

나의 빛이시며 구원자이신 주님!

사랑이란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나

땀 흘려 희생하는 것이요,

 

자신을 내어주며 잃어주고

먹혀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순교의 정신을 본받아

겨울의 모진 설한풍도 사랑하고,

 

끊임없이 닥쳐오는 모든 고통들을

슬기로써 대처하고 아름답게 봉헌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기 위해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당신의 위로자가 되고자 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