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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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아이고 이 아줌마 맞는 소리하네. (1982년 8월 18일)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 전국 성령피정이 3박 4일로 있었다.

"이번만은 방을 따로 얻어 혼자 조용히 묵상하면서 피정을 하고 올 작정으로 서울에 올라갔다.

하루 피정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데레사 자매님이 나를 부르더니 "오늘밤 W자매와 함께 예비신자인 자매님 댁에서 함께 지내고 와" 하기에 '내 의지와는 달리 이번에도 주님께서 그리로 부르시나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순명하는 마음으로 그 집에 함께 갔다.

그 댁 남편은 광주에 있는 집에 내려간다고 했다가 내려가지 않았기에 네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남편 되는 분이 "하느님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 하자 W자매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밥을 먹고 살수 있어요" 라고 하니 그는 "아니 하느님이 밥 먹여 줘요? 우리가 다 벌어서 먹고사는 것이지 무슨 소리예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W자매는 그에게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납득시켜 볼 요량으로 계속해서 "하느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등등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의 얼굴은 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얘기를 하자 그는 "나는 하느님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내 아내를 성당에 다니게 한 것은 조금이라도 착해지라고 보내는 것이지 나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이요"

하며 "저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99.999% 확신해요" 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데도 W자매가

"하느님은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며 열변을 토하기에 내가 그만하도록 W자매의 옆구리를 찌르자 말을 그쳤다.

내가 화장실에 같이 좀 가자며 W자매를 데리고 가서 말했다.

"저렇게 완강하게 거부하시는 분에게 하느님이 먹을 양식까지 내려주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믿겠는가.

우리가 말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해, 유치원생에게는 유치원생에게 맞는 말이 있고 대학원생에게는 대학원생에게 해야할 말을 해야지.

하느님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에게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더 반발하니까 조심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응?" 하면서 화장실에서 나온 뒤 나는 그분에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아까 W자매님이 한 말 어려웠지요? 그래요,

하느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꼭 믿으시라고 안 할게요.

그런데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치더라도 계신「셈치고」믿어보는 거예요. 성당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일단 성당에 나가게 되면 좋은 말도 많이 듣고 착하게 되려고 더욱 노력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요?" 했더니

"아이고, 이 아줌마 맞는 소리하네" 하며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탁' 치는 것이었다.

나는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 했더니

"그래요. 한번 해보세요" 하여 내가 7년 동안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가 나중에는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암세포가 내 온몸에 다 퍼져 있었고 혈압마저도 50-40이었기에 병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우리도 어쩔 수가 없으니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이나 많이 해서 드세요"라는 마지막 선고를 받고 임종준비를 하고 있던 내가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온전히 치유 받아 살아나게 된 동기를 세세히 이야기 해 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았습니다"

하고는 "우리는 여관에서 잘 테니 두 분이 쉬십시오"

하며 아내와 함께 나가 버렸다.

그런데 몇 주 후 광주 가톨릭 센터에서 있는 기도회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있는 성령기도회에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는데 나에게 인사하며 "그 날 저는 자매님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던 제가 하느님을 믿고 천주교에 입교하였습니다. 자매님 덕분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오  나의 사랑 나의 주님, 당신 홀로 영광 받으소서."

 "네가 내 사랑 안에 머물 듯이 나도 네 사랑 안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