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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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별세 (1990년 3월 8일)

 

성모님 집에서 철야기도를 하고자 전국에서 찾아오신 순례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나가다가 문턱에 살짝 걸려서 넘어졌는데 이상하게도 발이 금새 '퉁퉁'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픔을 순례자들을 위한 희생으로 봉헌하면서 아픈 발을 절뚝거리며 성모님 상을 모신 경당에 간신히 나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들어왔는데 가족들이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 고 하여 광주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더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뼈가 'V' 자로 부러져 있었다.

통증이 너무 심했지만 그 고통들을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죄짓는 곳을 향하는 세상 많은 죄인들의 회개와 그들이 짓는 죄에 대한 보속」으로 봉헌하니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당시 미국 피츠버그에서 나를 초청하여 이미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던 때인데 많은 이들이 부러진 발가락 때문에 미국 가기는 다 틀렸다며 극구 만류를 했지만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을 단 한마디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발가락이 아니라 두 다리가 다 부러졌을지라도 휠체어라도 타고 가겠다고 했더니 그때 성모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고맙구나.

매순간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너의 그 봉헌은 언제나 주님께 아름답게 제헌되고 있기에 매순간 마귀로부터 승리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보아라! 지금 마귀는 너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너의 발을 다치게 했지만 고통을 아름답게 기쁨으로 봉헌했으니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의 그 아름다운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으며 기쁘게 봉헌하는 너의 고통을 통해서 많은 영혼들이 회개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며 거대한 나의 잔치에 축복이 있으리라."

(피츠버그에서의 성모님 대회) 그렇다. 이미 성모님께서

 "미국에서 있을 모임에 초대한 것은 바로 나 어머니 마리아다"

하시며 큰 축복이 있으리라고 한 모임이었기에 이를 잘 알고 있는 교활한 마귀들이 내가 미국에 가지 못하도록 사고를 가장하여 가장 중심이 되는 엄지발가락을 부러뜨린 것이었다.

발가락이 부러졌을 때 처음에는 반 기브스(깁스)를 했다가 1주일 후에는 온 기브스를 했는데 엄지발가락이 부러졌는데 기브스를 무릎까지 하면서도 발가락은 내 놓고 기브스를 했다. 그것도 얼마나 두껍게 했는지 무거워서 걸을 수가 없었기에 다락방에 누워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에게 가보지도 못한 채 보고 싶어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봉센이 돌아가셨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와 그 순간 다리에 기브스를 했다는 사실조차도 잊은 채 비좁은 다락방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 내려와 정신 없이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보았더니 이미 할아버지는 싸늘하게 숨져 계신 것이 아닌가.

그 날 나는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할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할아버지는 내가 발을 다쳐서 못 오는 동안 죽음의 고통 중에 내가 오기만을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애타게 기다렸을까?

또한 얼마나 보고 싶어했을까?'를 생각하니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한없이 밀려들어 가슴을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나와 함께 살다 죽기를 그렇게도 소원하셨기에 조만 간에 방을 들여서 내 집에 모시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단 말인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회한에 나는 통곡을 금치 못하였다.

사람의 욕심은 한정이 없나보다.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단 하루만이라도 사신다면 원이 없겠다던 내가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4년 동안을 사셨는데도 그 동안 못다 해 드린 사랑만이 한이 되고 후회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다른 것은 잘 봉헌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죽음만은 봉헌이 잘 되지 않고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나를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리다 못하여 혹시라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셨다면 연옥 보속을 받을 수도 있을텐데…

내가 그 원인 제공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와 대성통곡하는 나를 보더니

"워따, 참말로 지어서는 못할 일이네. 암, 지어서는 못할 일이제.

아, 친아버지가 죽어도 저러지는 않겠네. 그랑께 봉센이 '머리털을 뽑아서 신을 만들어 주어도 그 은공을 다 갚지 못한다'고 했지."

"새댁, 아, 말년에 눈도 뜨고 호강도 하고, 또 살만큼 살았으니

호상 아닌가? 그랑께 그만 우소" 하면서 나를 달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울고만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성당과 연도회에 연락하고 기다리던 중 앞집 세레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옷과 짐을 정리하다가 옷 속에 깊이 넣어둔 돈 36만원이 나왔다며 나에게 건네 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또 한번 울고 말았다.

그 동안 내가 드린 용돈을 쓰지 않고 다 모아두신 것이었다.

평소에 앞집 아주머니에게 입버릇처럼 "나 죽으면 미장 아짐이 책임지고 다 해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미안하니까 돈을 좀 모아 두어야 될텐데…"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난 앞집 아주머니가 '혹시 돈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았다는 것이었다.

앞집 아주머니는 비신자였는데 나와 우리 가족이 한결같이 다니면서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천주교가 참 좋구나.' 생각하다가 얼마 후 「세레나」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분이다.

그 돈을 보면서 가슴깊이, 아니 뼈저린 아픔으로 할아버지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했음이 더더욱 아쉽기만 했다.

내가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사 잡수시라고 준 돈을 쓰지도 않고 저렇게 모아 두기만 하시는 것을 알았다면 언젠가 나에게 돈을 주실 때 차라리 그 돈을 받아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더 많이 써 드렸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남에게 베풀기만 좋아했지 사랑으로 베풀려고 한 이웃의 사랑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여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내가 사랑으로 베풀고자할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면 그렇게도 마음이 아팠으면서도 정작 나는 왜 이웃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는지…

이미 할아버지 장례는 내가 치러드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니 할아버지가 쌈짓돈을 내어 주고 싶어 하셨을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할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드렸을 텐데…

그때에서야 비로소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애덕을 실천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봉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선물을 남기고 가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나는 내가 남에게 베풀었을 때 한없이 기뻐했던 그 마음을 왜 이웃도 누리지 못하게 했는지를 뼈저리게 뉘우치며 회개하고 용서를 청했다. 사실 이제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청백이라 부르지 않았는가.

수강 아파트에서 성모님을 모시고 있을 때는 아무도 봉헌을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국회의원 부인이 순례 왔다 가면서 봉투를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기어이 받지 않으려 하자 그 부인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봉투를 놓고 가기에 나는 또 다시 그 봉투를 문밖에다 던졌더니 나중에는 서로 받아라 못 받겠다며 부인이 문안으로 던지면 나는 문밖으로 던지는 실랑이를 여러 번 하다가 끝내는 내가 문밖에다 던지고 문을 잠가 버린 적이 있는데 그 부인은 그 이후로 다시는 나주 성모님을 찾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 온 어떤 자매가 봉투를 주기에 단호히 거절하며 받지 않았고 또 어떤 자매가 과자를 사 가지고 왔을 때에도 "집에 가지고 가서 잡수세요"하며

기어이 받지를 않았더니 그러면 다시는 안 할 테니 이번 한번만 받아달라고 울면서 통사정을 한 적도 있었지만 번번이 다 거절했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니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그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거절했을까?

이제야 그들에게 부드럽게 말하지 못하고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남의 도움이라고는 조금도 받아 보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나에게는 그러한 행동들이 당연한 처사라고까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남이 나에게 베푸는 사랑도

받아들일 줄 아는 폭 넓은 사랑으로 거듭 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그 날 굳게 다짐하며 고해성사를 보았다.

"오 나의 주님! 나의 전부이시여!

오늘도 변함 없이 이 죄인에게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 드리나이다. 영원한 일치로 이 죄녀 부르셨사오니 이 무자격자의 텅빈 가슴에 당신의 사랑으로만 가득 채우시어 성령의 지혜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나의 작은 영혼아!

너에게 불완전함이 없었다면 네가 어찌 죄인으로서 나에게 올 수 있었겠느냐.

너는 네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사소한 일에도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를 구하고 있기에 나는 더 큰 은총과 사랑을 보내고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내 안에 침잠하여 사랑을 속삭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