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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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장례 치른 날 집이 헐리다니 (1990년 3월 10일)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니 몸이 몹시 힘들었지만 그 힘든 고통들을 할아버지의 영혼을 위하여 온전히 바쳐드렸다. 장례 치른 그 다음날 아침에 세레나 할머니가 달려와

"율리아씨, 율리아씨, 세상에 인심도 야박하지. 장례 치른 날 글쎄 봉센이 살던 집을 다 헐고 땅을 벌써 다 골라 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말했다. "잘못 보셨겠지요. 삼우제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무리 양심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벌써 집을 헐었겠어요?"

"아니야, 정말 헐었다니까.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땅도 반반하게 다 골라 놓았는걸…"

그래도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한 협력자를 보내어 알아보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형제가 헐레벌떡 달려 들어오더니 "정말 집을 헐어버리고 땅을 반반하게 다 골라 놨어요" 했다.

나는 그 형제의 말을 듣고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목발을 짚은 채 달려가 보았더니 세상에 어쩌면 이럴 수가...

할아버지가 염려했던 대로 뒷집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집을 모두 헐고 자기 집으로 연결하여 반반하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뒷집으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전에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세금을 한번 내 준 적이 있는데 갚지 않고 죽었으니 마땅히 자기 땅이라는 것이었다.

"3일만이라도 지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요" 했더니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고 화를 버럭 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죄인이나 된 듯이 "영오(영위)는 어떻게 하셨어요?"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옘병, 영오는 무슨 얼어죽을 영오요? 사진이랑 모두 칙간(화장실)에 있으니 가져가시오" 하기에 화장실(옛날 시골집은 화장실을 간이 창고도 겸해서 사용했기에 조금 넓었다.)에 가서 찾아보았더니 한쪽 구석에 십자가와 작은 성모님 상,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진이 아무렇게나 내 팽개쳐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놓은 상위에 십자고 상과 성모님 상을 모셔 놓고 향을 피워 놨었는데 내가 마련해드린 살림살이까지 이미 다 처분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재물에 눈이 어두워도 그렇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할아버지 장례식 날 그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서둘러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에서야 "아짐, 이 집을 나 죽기 전에 아짐 앞으로 이전해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뒷집에서 가로채 갈 것이요. 아주 나쁜 사람들이거든"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할아버지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앞 못보는 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물 한번 떠다준 일 없는 사람들이 그동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장례식 날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한 것이다.

그들의 인면수심한 언행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너무나 기가 막혔던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먼지 묻은 십자가와 성모님 상과 할아버지의 사진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깨끗이 닦아서 사무실 방에 모시고 연도를 바쳤다.

할아버지네 앞집에 사시던 세레나 할머니가 오셔서

"아이고 봉센이 죽으면 그 집을 율리아씨 준다는 말을 늘상 입에 달고 살등만. 도대체 뭔일이다요, 어찌 그럴 수가 있당가이. 어찌 안 받았소? 아, 준다고 할 때 못이기는 체하고 받아놨다가 나중에 교회에라도 바쳤으면 좋았을 것을 쯧쯧쯧... 괜시리 엄한 놈 좋은 일만 시켜부렀네이" 하고 안타까운 넋두리를 늘어놓으시기에

"세레나 할머니! 그분들은 신앙도 없고 아무 것도 몰라서 그래요.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아버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하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그들이 회개하도록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드립시다. 아셨죠?"

했더니 세레나 할머니는

"아이고 지어서는 못한당께. 그렁께 성모님이 택하셨지" 하는 것이었다.

"오, 주님! 나의 님이시여!

저는 마냥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죄인이나이다.

인정없고 인색하고 완악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용서해 주소서"

 

"그래 사랑스러운 내 아기야!

나는 내게 향한 지고지순한 너의 그 사랑 안에서 나의 사랑을 저버리고 거부하는 영혼들로부터 받는 고통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단다."